-
-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 누드화 전시
-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공원 내 소마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누드화 전시가 있다 하여 가봤다. 8월 11일부터 12월 25일까지란다. 모처럼 갔는데 휴관일이 아닐까 걱정되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0월30일까지는 휴관일이 없다고 되어 있어 안심하고 가봤다. 소마 미술관은 종종 가봤는데 휴관일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한다. 평소에는 여러 가지 기획전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제법 큰 전시회라고 홍보되어 있었다. 입장료가 성인 1만 3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6000원으로 꽤 비싼 편이다. 경로할인이 6000원이다. 운 좋게 필자가 방문한 날에 이벤트가 열렸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카페에서 1만 3000원 어치 이상 음료를 팔아주면 1만 3000원짜리 무료 초대권을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입장 티켓을 보여주면 구매한 음료 외 아메리카노 한잔을 무료로 받았다. 테이트 미술관은 영국의 국립 미술관이라고 한다. 거기 소장되어 있던 작품 중 누드화를 테마로 하여 피카소, 드가, 르누아르, 마티스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이 한국에 나들이 왔다. 누드화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누드는 19세기~20세기 작품 위주이다. 그전의 그림이나 조각품은 주로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심으로 누드를 등장시켰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누드를 아카데미 교육의 일환으로 채택했고 테마는 역시 고대신화, 성경, 문학 작품 등의 상상의 주제를 사용했다. 이것을 역사적 누드라고 분류했다. 20세기 들어 사적인 누드라 하여 목욕하는 여인, 욕조 안의 여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근대에 들어 모더니즘 누드라 하여 입체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위라 불리는 방식의 누드가 등장했다. 1920년대~1940년대까지를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시대라고 하여 누드를 꿈의 세계와 연관시켜 표현했다. 1950년대는 더욱 발전하여 표현주의 시대라고 한다. 피카소가 등장하고 나서 에로틱 누드 시대가 등장한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여성 화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그동안 남성 화가가 그리는 여성의 몸에 대항하여 소년부터 시작하여 남성의 누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는 몸의 정치학 시대라 한다. 1980년대 들어서는 누드 장르에 사진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연약한 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누드를 연약한 몸으로 보는 시대 조류이다. 이렇게 8가지로 구분하여 전시실을 배정했다. 테이트 미술전의 하이라이트는 3톤이 넘는 대리석 조각 ‘키스’이다. 로댕 작품이다. 특별 공간에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다. 한 부호의 요청으로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에로틱하다 하여 오랫동안 빛을 못 보던 작품이란다. 조각상의 모델도 불륜 사이라서 이 장면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설명이 있다. 오늘날 이 작품은 여러 예술품의 모델이 되고 있지만, 초기에는 주요 부위를 천으로 가리고 전시하는 등, 우여 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누드라 하면 음탕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웬만한 누드화는 집에 걸어 놓기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이라고 하니 예술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인간의 누드가 가장 아름다운 소재라 하지 않는가? 그렇게 보면 누드도 모두 숭고하게 보인다. 누드에서 발전하여 남녀의 성교 장면을 스케치 한 작품도 따로 있는데 그 전시실에는 미성년자들은 못 들어가게 통제한다. 인상적인 작품으로, 누드를 말로 풀어 단어를 나열한 작품도 있었다. 이카루스의 죽음을 표현한 작품도 좋았다. 누드 작품 100여점을 보고 났는데 성적인 욕망이 전혀 안 생긴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올림픽공원의 푸른 녹음을 보며 진정시켜야 한다.
- 2017-08-17 20:54
-
- ‘SIWA 모닝커피 오픈 하우스’
-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아기를 등원시키는 며느리가 손녀를 유아원에 들여보내고는 종종 또래 엄마들과 근처 커피숍에서 모닝커피 타임을 가진다고 한다. 비슷한 나이의 엄마들이니 할 말도 많을 것이고 정보도 나누면서 즐거운가보다. 모닝커피 타임이라 하니 예전에 필자가 활동했던 SIWA(서울국제부인회)가 생각난다. ‘시와’는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 부인들의 모임인데 우리나라 부인들도 회원이 되면 같이 어울릴 수 있었다. 여행 클럽 등 다양한 모임이 있었는데 필자는 영어회화 클럽에 가입했었다. 홍은동의 스위스 그랜드호텔(지금의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정기적인 바자회도 열려 각 나라의 특산품을 판매하고 각국의 요리도 소개되었다. 여기서 얻은 이익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필자는 바자회에 낼 상품으로 크리스마스용품과 헝겊으로 리스 장식을 만들었다. 각국의 부인들과 모여 예쁜 장식품을 만들던 시간은 참으로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또 ‘시와’에서는 ‘모닝커피 오픈 하우스’ 행사가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당시 한 달에 한 번씩 집으로 오는 소식지에는 ‘모닝커피 타임’ 행사 관련 기사가 실렸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느 집에서 모닝커피 오픈 하우스가 열리니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시와’ 회원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주로 열리는 장소는 성북동이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필자는 매번 참석했다. 당시 필자는 무척 당돌하고 얼굴도 두꺼운 용감한 여자였던 것 같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외국인 부인들뿐인데 유창한 영어 실력도 아니면서 찾아다녔으니 말이다. 소식지에 쓰여 있는 대로 구불구불한 성북동 언덕의 오픈 하우스 집을 찾아가면 골목 입구부터 화살표가 그려진 예쁜 팻말이 장소를 안내해줬고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들이 사는 집은 대부분 렌트한 집이었는데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면 많은 외국 부인이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오래 알아온 친구처럼 함박웃음으로 맞아줬다. 매우 어색할 것 같았지만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오히려 용감하게 인사를 건네며 어울릴 수 있었다. 거실 한쪽 테이블엔 향긋한 커피와 직접 구운 쿠키를 가지런히 담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접시에 쿠키 몇 개와 커피 한 잔을 들고 아무 데나 섞여서 이야기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역시 서양인보다는 아시아계 부인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필자보다 훨씬 나이가 어려 보이는 필리핀 아줌마 캐시는 필자를 친구라고 불러주었다. 그녀에게는 세 살짜리 예쁜 딸 ‘리아’가 있었고 한국에 온 것은 바나나 수입 일을 하는 남편의 사업 때문이라고 했다. 친정엄마는 필리핀에서 이름 좀 있는 배우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공지했던 시간이 되면 넓은 거실에 둥글게 모여앉아 자기소개도 하고 활동내용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기소개 이외의 내용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필자 소개를 할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도 했지만,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렘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몇 번의 ‘모닝커피 타임’을 가진 후 캐시와 친해져 근처에 있는 캐시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기도 했다. 집안 분위기로 보아 필리핀 상류층인 듯했다. 캐시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 공부를 하는데 같이하자고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캐시 집에서 대여섯 명이 모여 공부를 했다. 영어로 된 성경책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필자는 잘 모르는 것이 있어도 열심히 질문도 해가며 동참했다. 그 후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캐시를 외국인 병원에 데려다주기도 했고 미사를 드리고 싶다 해서 성북동 성당에도 같이 가줬다. 또 아기 옷을 사러 유아복 전문점도 같이 다니면서 우리나라 아줌마의 친절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캐시가 필리핀으로 돌아갈 때까지 친하게 지냈으니 필자는 썩 훌륭한 민간외교를 한 셈이다. 몇 년 열심히 다니다가 그만둔 ‘시와’ 모임은 지금도 여전히 잘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커피 한잔을 들고 젊었을 때의 잊지 못할 즐겁고 멋진 시간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보았다.
- 2017-08-10 17:00
-
- 반려견 놀이터에서 예절도 지키고 즐겁게 뛰놀고~
- 여름이 한창인 8월이다. 아무리 덥다 해도 반려견과의 산책은 필수! 반려견과 가볍게 동네를 거니는 것도 좋지만 반려견 놀이터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목줄 없이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는 너른 공간은 물론 다양한 편의시설이 준비돼 있다. 반려견과 갈 곳이 없어 망설였던 이들에게 좋은 곳이 바로 반려견 놀이터다. 자료 제공 반려동물이야기 반려견 놀이터는 전국적으로 13개가 있다. 서울에 3개, 경기도 8개, 전북·울산 각 1개 등이다. 부산 등 지자체들도 반려견 놀이터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시는 2013년 어린이대공원(광진구 능동), 2014년 월드컵경기장(마포구 상암동), 2016년 보라매공원(동작구 신대방동)에 반려견 놀이터를 개설했다. 보라매공원 반려견 놀이터를 만들기 전에 한 조사 결과 어린이대공원과 월드컵공원의 반려견 놀이터는 연간 4만여 마리 반려견과 5만여 명의 보호자가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월드컵공원 반려견 놀이터는 이용객 설문조사 결과, 설치 전(2014년 2월) 73.9%였던 만족도가 설치 후(2015년 10월) 84.8%로 증가했다. 그러나 ‘개 놀이터를 뭐하러 만드냐’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반려견 놀이터 이용 전 반드시 지켜야 할 일 반려동물 놀이터 이용자라면 동물등록 및 기본 이용 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 첫 번째, 놀이터 이용 전 ‘동물등록’을 먼저 해야 한다. 등록된 반려동물만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유자는 반려동물 등록신청(등록대상: 3개월 이상의 개)을 한 뒤 동물병원에 내원해 마이크로칩 시술 또는 외장형 무선식별장치 부착, 인식표를 부착해야 한다(동물병원에서 등록신청서를 작성하면 마이크로칩 장착이 가능하다). 이후 시·군·구청에 방문해 동물등록증을 발급받으면 된다. 두 번째, 예방접종은 필수다. 광견병 등 유행성 질병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여러 반려견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질병을 옮길 수도 있으므로 반려견이 건강한 상태에서 이용해야 한다. 세 번째, 이용 수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반려견 놀이터 이용 수칙 1반려견과 함께 13세 이상 보호자 한 명 이상 동반해야 입장 가능 2 배변 봉투, 목줄 필수 지참(놀이터 입장과 퇴장 시 반드시 목줄 착용) 3사나운 개(맹견, 예를 들어 핏불테리어 등의 투견, 사냥견), 질병이 있는 반려견, 동물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반려견, 발작이 있거나 특이체질인 반려견은 입장 불가 4반려견끼리 마찰(싸움)이 없도록 주의(사고에 대비해 입장 전 반려견 놀이터 이용자 확인서 서명 후 입장 가능) 5음식물 반입 및 흡연 금지 6다른 반려견과 보호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행위 및 고성방가 금지 반려견 놀이터 안전 문제는 없을까? 작년 10월, 수원 광교 호수공원 반려견 놀이터에서 비글 두 마리가 구토 증세를 보이며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잔디에 서식하는 벌레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 살충제가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에 광교 호수공원은 해당 성분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올해 1월 1일 다시 문을 열었다. 반려견 놀이터는 시민들의 요구로 증가 추세이지만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야생동물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길고양이, 비둘기, 까치, 너구리 등)에 반려견 놀이터가 있는 경우 반려동물에게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야생동물은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이 되어 있지 않아 기생충 감염이나 진드기, 각종 질병에 노출돼 있다. 또한 야생의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심하는 순간 반려동물과 마찰이 생겨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앞서 말했던 광교 비글 사건을 비롯해 반려견 놀이터 안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놀고 온 뒤에는 꼭 목욕을 해요 반려견 놀이터는 말 그대로 개판(?)이다. 다양한 견종이 흙모래에서 구르고 뛰면서 신나게 놀기 때문이다. 이때 반려견들이 발바닥에 상처가 난 줄도 모르고 뛰어노는 경우가 많은데 발톱이나 발바닥 사이에 상처가 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또 진드기나 야생동물로 인한 질병이 생길 수도 있으니 귀가한 뒤 가벼운 빗질로 진드기 등 벌레로 인한 피해를 방지한다. 놀이터를 다녀온 뒤에는 하루 동안 반려견의 컨디션을 체크해야 한다.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으니 당연히 피로가 쌓일 터. 이럴 때는 목욕을 시킨 후 드라이기로 털을 말린 뒤 집에서 쓰는 천연 오일이나 반려견용 마사지 오일을 발라 부드럽게 마사지해주면 좋다. 반려견과 놀이터에서 하면 좋은 놀이 1원반 물어오기 ‘프리스비’ 프리스비(Frisbee)는 사람이 던진 원반을 반려견이 뛰어올라 받는 놀이다. 외국에서는 공원 등에서 반려견이 원반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각종 대회를 통해 묘기에 가까운 프리스비도 볼 수 있다. 프리스비 놀이를 시작하기 전 반려견이 좋아하는 공 또는 장난감을 이용해 소유욕과 집중력을 높인다. 소유욕이 없는 반려견이라도 견주와 물어오기 놀이를 하다 보면 ‘주인과 놀 수 있는 물건’, 즉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인지하게 된다. 프리스비 놀이를 하려면 던진 원반을 다시 회수할 수 있도록 미리 “가져와!”라는 구호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 우선 개가 좋아하는 물건을 던져 “가져와!”라고 명령을 내려 익숙해지면 장난감 대신 원반을 던져서 가져오게 한다. 이때 개의 소유욕을 더 높이기 위해 원반에 먹을 것을 넣어주기도 한다. 원반을 땅에 굴려 물어오게 하는 연습을 시작으로 천천히 원반놀이에 재미를 느끼도록 훈련시킨다. 프리스비는 대형견에게 적합한 운동이지만 어느 견종이든 단계별로 차근차근 학습한다면 견주와 반려견 모두에게 즐거운 놀이가 될 것이다. 반려견이 원반을 물었을 때 턱이나 입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부드러운 재질과 비행력이 좋은 원반을 사용한다. 2공 던지기 ‘플라이 볼’ 말랑말랑한 소프트볼을 힘껏 던져 반려견이 물어오게 하는 놀이다. 바닥에 공을 굴리거나 안전하고 넓은 장소에 공을 던져 “가져와!”라고 한다. 입으로 잡은 공을 놓지 않을 때는 간식을 내밀어 공을 놓게 한다. 플라이 볼은 반려견에게 사냥 본능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놀이 중 하나다. 반려견 놀이터에서 공을 던지면 다른 반려견이 물어올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이 공에 맞을 위험도 있으니 주변을 확인한 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던진다.
- 2017-08-07 12:07
-
- 아들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
- 한국인들은 기계처럼 일해왔다. 그게 한국을 2차 산업의 승자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계처럼 일하는 인간은 기계를 이기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인간으로의 회귀, 그것은 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보다 천천히 가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보다 멍청해져야 한다는 말이며, 그것은 보다 양심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패가 용인되는 사회,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회, 똑똑하지 않아도 재미있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사회, 그리고 도덕적인 사회, 그것이 바로 창조적 사회이며,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이, 한국인들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렇다고 믿고 싶다. 30대 중반인 아들이 오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야! 물무지개다!" 감탄하며 어린 아들의 고사리 손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아주 작은 물웅덩이에 차에서 떨어진 기름이 번져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였다. 아들은 필자를 깨우쳐줬다. 사물을 다른 눈으로 보라고. "엄마 아까부터 올챙이들이 계속 내려오고 있어요." "어디? 어! 정말이네?" 어린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버스 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이 정말 고물고물 움직이는 올챙이 같았다. 비 오는 날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한 날이었다. 어린이는 모두 천재이고 시인이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두 아름답고 신기하다. 어린이들과 같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는 축복의 시간이다.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엄마 나 내릴래." "왜?" "엄마 힘들까봐." 아들이 네 살 때였다. 퇴근해 힘없이 누워 있는 아들의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펄펄 끓었다. 부랴부랴 아들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그런 말을 해서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평소에도 곰살맞은 아들은 필자가 안아주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필자를 더 꼬옥 안아주곤 했다. 아픈데도 엄마를 걱정해주던 아들. 아들의 고운 마음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가을 밤길 귀뚜라미 귀뚤귀뚤 우는 밤길을 나 혼자 걸어봅니다. 소리를 밟을까봐 조심조심 소리를 쫒아버릴까봐 조심조심 나 혼자 가을 밤길을 걸어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들이 쓴 시다. '소리를 밟을까봐'라는 탁월한 표현에 감탄해 동료 국어선생님들께 보여드리니 타고난 시인이란다. "엄마 저를 자유롭게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몇 년 전 아들이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고3때도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는 자율학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집에서 자유롭게 공부했다. 좋아하는 바로크 음악을 들으며. 어차피 공부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은 배움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피아노, 컴퓨터, 성악, 발레, 지점토, 홈패션, 영어, 수영, 일본어, 태권도, 미술 등 학원을 열 곳 이상 다녔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시켰더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많은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학원 가는 게 싫다고 하면 언제라도 그만두게 했다. "억지로 시키면 창의성이 나올 수가 없어요." 아들의 주장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욕심 많고 의욕이 넘쳤던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가 너무 하고 싶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하늘하늘 춤추고 싶었다. 피아노도 치고 싶었다. 정말로 미치도록 치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어느 것도 못해봤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즉시 배울 수 있게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필자의 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강렬한 의지 때문이었다. "아들, 엄마는 한국에서 살아남을 테니 너는 일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열여덟 어린 나이의 아들을 홀로 일본에 보내며 비장한 심정으로 말했다. "아드님은 분명 한국을 빛낼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될 거예요."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학생부장님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일본의 명문 게이오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IT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 2017-07-28 11:33
-
- “뽀빠이 필승, 제 몸 건사합니다”
- 함께 브라운관에 울려 퍼졌던 이 말. 바로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이 라는 군인 대상 TV 프로그램 사회를 보면서 마지막에 외치던 멘트다. 어느새 칠순을 훌쩍 넘긴 그는 요즘 인기 강연자로서 제2의 인생을 숨가쁘게 살고 있다. 그런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사회자였던 그의 소식을 우리는 듣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프로그램의 종영,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졌던 그의 침묵 뒤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전히 ‘뽀빠이’다운 건강을 뽐내며 살고 있는 그를 만나 현재와 과거를 잇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활동 안 하세요?” ‘뽀빠이’ 이상용과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인데, 식당 주인이 살갑게 물어왔다. 로 전국을 누비며 당대 최고의 MC로 활약했던 그를 한참 동안 TV에서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물을 것이다. 그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날리면서 대답했다. “너무 많이 해요.” 그 말대로다. 그는 요즘 하루에 서너 개의 강연을 뛰고 있다. 한 달이면 쉬는 날을 빼고 대략 오륙십 건에 달한다. 기자가 그를 만난 것도 중구보훈회관의 강연이 끝난 뒤였다. 1990년대 전성기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는 다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73세의 나이에. 죽지 않으려고 한 운동 이상용이라고 하면 누구나 ‘건강’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듯이, 그는 7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태어날 때부터 체질이 건강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나는 기초 체력이 약하지. 여섯 살 때까지 누워 있었거든. 일곱 살 때 처음 걸음마를 뗐어요. 그래서 안 죽으려고, 삶의 의욕이 강했지.” 그에게 건강은 태어날 때부터 얻은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서 쟁취해야 할 어떤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한 상태로 아버지를 만나러 열 달 동안 부여에서 백두산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만나지 못했고, 다시 부여로 돌아와 그를 낳았다. 열 달 동안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그는 12세까지 여덟 가지 병을 앓아야 했다고 한다. 그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13세에 아령 운동을 시작해 18세에 미스터 대전고와 미스터 충남, 미스터 고려대, 고대 응원단장을 거쳐 ROTC 탱크 장교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는 우리가 아는 ‘뽀빠이’의 삶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살아 있음에 감사 그에게 70세가 넘어서도 젊음을 유지하는 건강 비법을 물어봤다. “건강? 밥 먹으면 돼. 오래 살려면 나이를 먹으면 되고. 그리고 숨쉬기 운동이 중요해. 숨쉬기 운동은 하다가 안 하면 죽어(웃음).” 슬쩍 치고 들어온 농담과 함께 그는 자신이 평생 담배, 술, 커피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찬물을 마신다고 한다. 밤 동안 속에 쌓인 노폐물을 씻기 위해서다. “아침은 치즈, 계란, 바나나 하나씩 먹어. 소식이야. 그리고 저녁은 일찍 먹고. 최근에는 콩비지와 두부를 좋아하게 됐어. 고기는 일주일에 두 번 먹고.” 그는 인생의 마지막 승리자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인명은 제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는 날까지 사람들이 자신만 보면 즐거워지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단다. “사람들이 내 강연을 들으면서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내가 헛살았다’ 하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 모든 것을 무너뜨린 억울한 누명 이상용과 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989년 4월에 처음 방송을 시작해 1997년 3월에 종영된 는 군인 위문을 예능으로 만든 신선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국민 예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특히 마지막 코너인 ‘그리운 어머니’는 를 상징하는 코너로 무수히 패러디되었다. 하면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를 외치는 장병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의 사회자였던 이상용은 를 의미하는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건이 터진다. 공금횡령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당시 그는 사회봉사와 모금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특히 주력한 것은 심장병 어린이 돕기 사업이었다. 그런데 1996년 11월 녹화 도중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쳤고 녹화가 중단됐다. 그들은 경찰이라고 주장하면서 심장병 어린이 기금 횡령 혐의로 이상용을 수사한다고 했다.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갔고 온갖 매체에서 그를 횡령범으로 몰았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안 된 출처 불명의 소문들이 퍼져나가더니 마치 진실인 양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벤츠 S500을 탄다, 집이 40억짜리다, 만 평이나 되는 땅이 있다….’ 진실은 얼마 안 가 드러났다. 검찰에서는 조사를 착수한 지 3개월 만에 그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 사업을 이용해 횡령을 일삼은 파렴치범’이라는 누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제대로 된 해명 기사도 내주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아무도 나한테 확인조차 하지 않았어. 얼마나 답답하고 원통한지.” 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용은 42만원 들고 미국으로 떠났다. ‘벤츠S500을 탄다’는 괴소문과는 달리,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82억원을 쓴 그는 돈 한 푼 없었다. ‘횡령범’ 이미지가 씌워져 방송에서 활동할 수도 없었다. 먹고 살려고, 돈을 벌기 위해 떠나야 했다. 미국에서 관광버스 가이드로 일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훈장을 세 개나 받았는데 ‘한 명도 수술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고 대서특필하면 40년간 해온 일이 어떻게 돼? 나쁜 놈들이야.”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누가 그에게 누명을 씌운 걸까? 자연스럽게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혹자는 그가 당시 제안받은 국회의원 출마를 거부했기 때문에 정치권의 보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불쾌하다는 듯 그때의 기억을 단답형으로 무뚝뚝하게 말하는 이상용의 목소리에는 아직 씻지 못한 분노와 억울함이 느껴졌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심장병 어린이 돕기 사업도 그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그는 전 재산을 털어가며 무려 567명을 치료했다. 그러나 치료받은 아이들 중 단 3명만 연락이 닿았다. “내가 한 일에 대해 후회는 안 해. 다만 좀 서운한 것뿐이지. ‘고맙습니다’ 한마디만 해줘도 좋을 텐데…. 그런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못 나서는 게 아닌가 싶어.” 그렇게 힘든 시절, 이상용에게 위로가 됐던 것은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김동길 박사가 해준 말들이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걱정 마라. 눈이 왔다. 쓸지 마라. 봄이 오면 눈이 녹고 너는 나타난다’고 말씀하셨고, 법정 스님은 ‘자루에 너를 넣고 흔든다. 많이 담으려고 그런다. 하루 종일 흔들지는 않을 것이다. 땅에다 놓으면 흔들림은 없어지고 너는 많이 담기는 자루가 된다’고 말씀 주셨지. 김동길 박사는 ‘강물이 흐르다 보면 위에서 오줌 누는 놈이 있다. 그렇다고 강이 지려지지 않는다. 너는 흘러가서 큰 바닷물이 되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고마운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준 말대로, 자신을 폄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내버려둔단다. 그들은 이쪽에서 상관하지 않으면 스스로 죽는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견뎌내면서 단단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멋지게 살다 간 놈’으로 기억되고 싶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매일 명동성당에 간다. 아침 6시면 성당에 앉아 있는 그를 볼 수 있다. 눈비가 와도 멈추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문득 그의 얼굴이 보살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그가 겪은 일들, 그리고 그것을 견뎌낸 세월이 새겨졌기 때문일까. “법정 스님이 ‘너는 불자다’라고 말씀하셨지. 내 얼굴이 지장보살인데, 지장보살은 베푸는 보살이라고 하시면서 절도 다니라고 하셨어. 그래서 절도 다녀(웃음).” 그는 사회를 보는 것보다 강연하러 다니는 게 마음이 편하다면서 외로울 때는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사우나, 그리고 독서를 하지. 내가 책을 좋아해.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그의 큰딸은 쉰 살, 아들은 마흔두 살, 외손주는 열일곱 살이다. 그는 자제들이 잘 자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우직하게 한마디로 말했다. “멋지게 살다 간 놈.” 그는 마지막으로 독자들을 위해서도 한마디했다. “브라보 독자님들, 뺏으려고 하지 마시고 주세요. 악착같이 사는 모습을 보이지 마세요. 측은합니다. 돈은 쫓아가면 도망가고 외면하면 찾아옵니다. 그저 오늘을 즐기세요.”
- 2017-07-17 11:56
-
-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학문의 메마름, 문학으로 적시다'
- , ,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통찰을 담아냈던 송호근(宋虎根·61)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자로 저명한 그가 이번에는 소설가로서 대중과 만났다. 논문이나 칼럼이 아닌 소설을 통해 송 교수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성과 지혜를 를 통해 나누고자 한다. 송호근 교수의 첫 소설 는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무렵부터 두 달여에 걸쳐 쓴 작품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무신이자 외교관이었던 신헌(申櫶, 1810~1884)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신헌은 봉건과 근대 사이에 선 경계인이자, 강화도조약을 협상하며 제국의 도래를 내다봤던 선각자로 그려진다. 신헌이 살던 19세기의 모습과 진영논리가 대치하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모습은 송 교수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신헌이 쓴 가 바탕이 된 소설인데, 당시와 현재 우리의 처지가 많이 닮았더라고요. 미국과 중국의 함대가 맞붙고, 사드 배치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는데 내부 싸움에 여념이 없는 현실을 보며 느낀 답답함을 소설의 언어로 표현했어요. 소설이라는 새로운 작법이 낯설긴 했지만,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도전하게 됐죠.” 감성의 바다에서 건진 위로 그렇다면 왜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한 것일까? 평소 그가 쓰던 사회과학서나 논문 등으로 보여주는 게 더 편리하지 않았을까? 이에 그는 ‘감동’의 유무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일어난 사태들을 가지고 논리로만 표현하면 별 감동이 없어요. 140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할 거냐, 이 시대에 신헌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이렇게 규범적으로만 끝나버리죠. 논리만으로는 화해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거든요. 사회과학이 다루는 이성보다는, 소설의 언어와 감성이 사람들을 움직일 때가 있죠. 지식의 공유가 아닌 그런 지혜를 나누고 싶었어요.” 사실 그에게 소설은 낯선 장르가 아니다. 대학 시절 문학평론을 쓰며 가까이했고 여전히 소설을 통해 삶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학창 시절에는 줄곧 문학만 봤어요. 현실에 불만이 많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현실을 뛰어넘는 방법은 종교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젊을 때이니 종교에 빠지긴 어렵고, 사랑은 가능하긴 하고. 어쨌든 그 두 가지를 리허설해볼 수 있는 방법은 문학밖에 없었으니까요. 문학의 세계가 워낙 넓잖아요. 그 감성의 바다를 유영하면서 살아가는 원칙을 건지거나 신념과 조우하기도 하는 거죠. 소설에는 대개 영웅보다는 요즘 말로 루저(loser)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에게 나를 투영하면서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했고요. 문학은 내가 사회과학을 하는 힘이자 문제의식의 창고를 마련해주는 존재로 늘 함께했죠.” 감성의 바다에 흠뻑 젖어 지내던 시절을 지나, 사회학자로서 현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동안 그는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는 가뭄의 단비처럼 촉촉하게 송 교수의 마음을 적셔주었다. “논리는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해요. 어떤 논리를 완결해놓아도 조그만 한 부분에 불과하니까. 그걸 학문이라고 말하죠. 학문은 곧 인식론인데, 그건 이미 루트나 패러다임이 정해져 있어요. 그러니 뭘 해도 배고프죠. 집을 지을 때 뼈대가 학문이라면, 그 집을 어린이집으로 지을지 귀신의 집으로 지을지 정체성을 부여하는 건 문학이에요. 산을 볼 때도 문학이나 예술은 색깔도 모양도 다르게 보는데, 사회과학은 그냥 ‘산’이거든요. 그게 리얼리티이고, 그것을 포착하고 분석하는 데 익숙해져 있죠. 말하자면 메마른 지식인 셈인데, 지식은 위로가 되질 않더라고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는 그런 허기를 달랠 수 있었어요.” 경계인의 고독, 공(共)으로 채워야 소설을 읽다 보면 이따금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 에서 자신의 모습을 이입한 인물이 있냐고 묻자, 그는 단번에 “신헌 그 자체”라고 대답했다. 작가와 주인공,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경계인이라는 점이 같아요. 신헌은 문과 무를 겸한 유장인데, 중세와 근대가 마주치고, 유교와 천주교가 공존하는 경계에 서 있던 인물이죠. 나 역시 과거와 미래, 내부와 외부를 오가며 시세와 처지를 엿보고 있잖아요. 최근 일어난 사건들만 봐도 지식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요. 학자는 선택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결정은 정치인이 하는 거죠. 그저 경계인으로서 담벼락만 걷고 있을 뿐이에요. 양쪽을 흘깃흘깃 쳐다보고 고민하고, 계속 가슴속에서 갈등하고. 그런 모습이 신헌에게 투사된 거죠.”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뻘인 그는 또 다른 경계에 서 있다. 바로 세대 간의 경계다. 아버지 세대를 봉양하고 아들 세대를 부양하는 끼인 세대로서 그는 불만과 설움보다는 자책과 인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베이비부머는 세대와 권력의 경계에서 밀려나고 있죠. 그 설움이 대단할 거예요. 물론 우리도 한때는 내 아버지 세대를 밀어냈죠.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가 유독 예민한 것은 그 짐이 증폭된 세대이기 때문이에요. 흔히 경제성장의 주역이라고들 하잖아요. GNP(국민총생산)만 해도 1970년대와 현재가 100배 이상 뛰었으니까요. 그만큼 경제적 부담, 양육의 부담, 효도의 부담 등이 증폭된 거예요. 또 부모 세대에게 받은 게 없으니 자식 세대에게 그 한을 많이 풀었죠. 지금의 혼수문화도 돌이켜보면 다 우리 세대가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 덫에 우리가 걸려들어버렸죠. 그러니 다 큰 자식 껴안고 살 수밖에요.” 송 교수가 베이비붐 세대의 삶을 그린 라는 책 제목처럼, 세대의 경계에 선 그들은 소리내 울 수조차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황일수록 나 자신만이 아닌 ‘공(共)’의 개념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세대는 평생 사(私)를 위해 살았거든요. 나의 가족, 나의 직장 이게 세계관의 전부예요. 공적인 자산?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왔죠. 그러나 서양의 경우를 보면 ‘사’가 너무 힘들다 보니 ‘공’으로 돌리는 방법을 찾거든요. 그게 바로 복지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좋아요. 아이들 등하굣길을 돕거나 동네 청소를 하거나 구청에 작은 사랑방을 얻어 주니어 멘토링을 한다거나. 그래야 세대 간 조화를 이루고, 일종의 소득 자원도 창출할 수 있다고 봐요.” 그 언젠가 어느 경계에서 또다시 로 시작한 대화는 자연스레 우리 사회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소설가로 마주했던 그는 어느 순간 다시 사회학자의 모습으로, 그렇게 학문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혹시 이번 기회에 소설가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슬쩍 질문을 던지자 역시 경계인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갑자기 소설가로 등단했다기보다는 예전부터 갖고 있던 것 중 하나를 드러낸 것에 불과해요. 앞으로는 뭘 할지 모르는 거죠.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고. 소재도 생각해놓은 것은 많아요. 다만 어느 순간에 절박한 무언가와 만나서 터져 나올 때, 그때 잠시 논리 밖으로 외출하게 되겠죠. 탄핵처럼… 아마 또 그런 계기가 있지 않겠어요? 암울하잖아요.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나. 또 그 속에서 생기는 딜레마. 논리로 풀 수 없는 세상과의 부딪침. 그런 게 터져 나오는 거죠. 뭐,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돼도 안 돼도 그만인 거고요.”
- 2017-07-12 09:23
-
- 이웃사촌이 보험이다
- 아들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며느리가 급성 맹장염이어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아이 셋을 당장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이다. 고양시 일산에 살고 있는 아들네는 요즘 보기 드물게 아이가 셋이다. 맨 위의 손녀가 7세이고 그 밑에 4세 손자와 2세 손녀가 있다. 하나같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급한 김에 수원에 살고 있는 딸한테 전화를 했다. 딸은 전업주부이기는 하지만 돌이 갓 지난 아들이 하나 있다. 움직이려니 기저귀, 우유병 등 짐이 한 짐이고 밖에는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려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만 하고 있다. 아이들의 할머니인 필자의 아내는 몇 달 전 새로 얻은 직장에 나가고 있는데 몇 사람이 서로 팀을 짜서 일을 하기 때문에 빠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불똥은 필자에게로 튀었다. 하지만 필자도 직장에 나가야 해서 손주들을 돌보려면 휴가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런데 아들은 필자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지 믿지 못하는 눈치다. 결국 아내가 회사 눈총을 받아가며 아이들을 돌보기로 결정했다.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전철로 이동을 하는데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파트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이웃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했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일단은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그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집도 또래의 아이 셋을 둔 가정이란다, 동병상련이라고 사로의 사정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 같다. 며칠 뒤 그 집 아이 셋과 우리 손주 셋이 함께 생활하는 사진을 보내왔다. 꼭 어린이집 같은 분위기라서 안도감과 함께 웃음이 나왔다. 물론 아들이 휴가를 내고 아내 간호도 하고 틈틈이 집에 와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찾아오는 일을 해야 한다. 아들이 집을 비우고 병원에 가는 시간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틈새관리를 해줄 것이다. 맹장염 수술법이 발전해 예전처럼 오래 병원에 입원해 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도 3일은 걸릴 텐데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승낙해주신 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도시의 현대인들은 거미줄처럼 꽉 짜인 스케줄대로 너 나 할 것 없이 바쁘다. 갑자기 계획에도 없는 일이 생기면 당황하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도와줄 일가친척이 멀리 떨어져 살면 도움을 주기도 어렵다. 이런 시대를 반영하듯 예전에 없던 산후조리원이 생겨나고 간병인, 요양보호사라는 직업도 생겨났다. 그전에는 이런 일들을 모두 가족들이 해줬다. 도시인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이번 일을 겪다 보니 친한 이웃이 멀리 있는 형제들보다 백번 낫다는 생각이다. 살다 보면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던 일들이 닥치기도 한다. 가까운 이웃을 가까이 알아두는 것은 마치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 2017-07-06 11:03
-
- “날도 더운데, 뭘 하지?” 오늘 ‘북캉스’ 떠나볼까요?!
- 지독하게 더웠던 2016년 여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올해도 그 끔찍한 시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무더위를 피해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더위의 고통에서 벗어나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것도 책과 함께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 알고 보면 근처 한 시간 거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북캉스’로 하루 보낼 곳을 기웃거려볼까. *북캉스: 책을 뜻하는 영어 단어 ‘북’에 ‘바캉스’를 결합시켜 만든 신조어 책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TV, 영화 등 화려한 영상 문화와 게임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밀려 문화의 중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책이었다. 우리들에게 지금 책은 영상과 말의 과잉으로 넘쳐나는 일상을 힐링하는 촉매로서 그 역할을 되찾고 있다.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의 도서관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일상을 힐링하는 책의 공공기능적 역할을 간파한 기업들은 너도나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이제 젊은 시절처럼 산으로 바다로 가지 않아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대신 도서관이나 동주민센터, 백화점 북카페, 서점 등에서 책을 읽으며 더위를 식히는 이른바 ‘북캉스’ 문화가 시니어들에게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책 향기 그윽한 서점과 강연과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합공간의 도서관은 무더위를 식히는 도심 속 정자마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순화동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한길사 ‘순화동천’ 책 좀 읽었다는 시니어들에게 인문학 중심 도서들을 주로 펴낸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만들어내는 무게감은 각별하다. 그 한길사가 오랜 준비 끝에 지난 4월 말에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의 문을 열었다. 한길사가 창업 초기 자리했던 서울 중구 순화동에 만들어진 순화동천은 3만여 권의 책이 즐비한 550평 규모의 공간이며 책 박물관, 갤러리, 강의실, 회의실, 서점으로 구성됐다. 한길사는 오래전부터 독자가 중심이 된 ‘책 놀이터’를 마련하고자 했으며 순화동의 ‘순화’와 노장사상에 나오는 이상향인 ‘동천’을 더해 ‘순화동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문·예술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평화를 순례하는 유토피아’가 되겠다는 의미다. 책 박물관은 근·현대출판문화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고서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또한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어 음악과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강의실과 회의실로 사용할 수 있는 4개의 공간은 각각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으로 불린다. 전시회나 출판기념회, 8~15명이 참석하는 소규모 회의, 50~7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강연을 진행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는다. 아트갤러리와 한길책방은 60m에 이르는 긴 복도로 이뤄져 있다. 복도의 한쪽 벽은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이 걸린 아트갤러리로, 다른 쪽 벽은 한길사가 지난 40년 동안 펴낸 고품격 인문·예술도서가 들어찬 한길책방이다. 복도 중간에는 ‘카페뮤지엄’이 있어 커피와 함께 잠시 쉬며 책과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시원한 자유,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코엑스 안에 초대형 도서관이 있다? 사실이다. 신세계가 지난 5월 말에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이다. 회원카드도 따로 없다. 오래 머물러도 된다. 음료를 가지고 와도 괜찮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책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별마당 도서관은 총면적 2800㎡에 2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 내부에는 13m 높이의 대형 서가 3개를 중심으로 소파형·계단형 등 총 200석의 의자와 책상을 배치했다. 또 은은한 간접조명을 설치해 개인 서재 분위기를 냈고, 곳곳에 콘센트와 USB 단자를 구비해 노트북과 휴대전화 충전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5만여 권의 장서와 600여 권의 잡지가 준비되어 있는데, 잡지 코너만 보면 국내 최대 규모다. 고객들의 도서 기증도 받고 있기에 집에 보관해둔 책을 기증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별마당 도서관은 대출은 불가능하며 열람만 가능하다. 또한 도난방지 장치가 없다. 도서관과 쇼핑몰 사이에 출입구가 따로 없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구조이지만, 도난경보기 등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믿는 구조다. 별마당 도서관은 문화와 휴식을 갖춘 열린 도서관을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도서관이 지역 상권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시설이라고 판단해 만들어졌다. 별마당 도서관의 모델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인 일본 다케오 시의 ‘다케오 시립 도서관’이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열린 도서관 콘셉트로 2013년에 리뉴얼한 이후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 키덜트 겨냥한 예스24 ‘홍대던전’ 인터넷 서점들의 오프라인 서점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 서점들이 오프라인 거점을 주로 중고서점 중심으로 만든 것과는 달리, 예스24는 콘셉트 서점을 기획해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 서브컬처(하위문화) 복합문화공간인 ‘홍대던전’을 열었다. 홍대던전은 청소년에서 키덜트까지를 주 고객으로 하는 라이트노벨(가벼운 느낌의 장르소설)·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 맞춤문화공간을 지향한다. 5월에 문을 연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과 아래위층으로 연결돼 있다. ‘홍대던전’에는 누구나 무료로 라이트노벨을 읽을 수 있는 열람공간, 피규어와 퍼즐 등 캐릭터 상품과 코스프레 전문용품을 모아둔 판매공간,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 메뉴를 모티브로 한 음식을 판매하는 매점 등이 마련되어 있다. ◇ 지적 세계로의 여행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현대카드는 ‘혁신’을 기업 이미지로 삼으면서 아날로그와의 적극적인 결합을 꾸준히 지향했다. 서울 도심의 네 곳에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세워진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아날로그의 대표적 콘텐츠인 책에 주목한 현대카드의 또 다른 실험이다. 공연과 문화공간 등을 통해 컬처 브랜딩의 선두주자로 각인된 현대카드에서 책을 통해 지적 브랜딩의 출발점을 잡은 것이다. 가회동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디자인 서적들이, 이태원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음악 관련 서적들이 있다.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책과 함께 1950년대 이후에 나온 1만여 장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LP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LP를 통한 음악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계속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신사동 ‘쿠킹 라이브러리’는 음식 관련 서적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어 있다. 재료 카드를 사면 현장에서 요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청담동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독서를 여행과 동일하다고 여기고 1만5000여 권에 달하는 여행 관련 서적들뿐만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는 여행을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모든 형태의 지적 활동’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하는 ‘네이버 라이브러리’ 분당구 정자동의 네이버 사옥 로비에 자리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도서관, 서점, 북카페를 결합시켜 책이 있는 공간의 장점들을 모두 경험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뒀다. 디자인과 IT에 특화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디자인 장서 1만7000여 권, IT 장서 7000여 권, 전 세계의 전문 백과사전 1300여 권, 국내외 잡지 250여 종이 준비되어 있다. IT 기업이 운영하는 도서관이라는 특색을 살리면서 개인이 구매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비싼 디자인과 IT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책을 고르기 쉽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인 도서관들과는 달리 ‘절대 정숙’ 문화가 아닌 대화하고 토론하는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네이버의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사서는 시니어들이 맡고 있으며 안에 위치한 카페는 발달장애인의 일터를 만드는 회사 베어베터와 함께 운영되며 지적장애나 자폐를 가진 청년들이 커피를 만든다. ◇ 도심 속 한옥 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청운문학도서관은 종로구에서 16번째로 만들어진 도서관이자 최초로 한옥으로 만들어진 공공 도서관이다. 지붕은 전통 방식의 수제 기와를 사용했고 담 위에 얹은 기와는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의 기와 3000여 장을 가져와 사용했다. 그야말로 전통 한옥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물이다. 청운문학도서관 1층은 한옥이며 지하는 반지하식 양옥 건물이다. 1층에서는 시, 문학 창작교실, 문화예술교육, 인문학 콘서트 등이 열린다. 지하층은 시, 소설, 수필 위주의 문학 도서를 만날 수 있는 자료실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또한 온돌식 독서공간도 마련되어 한옥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를 충실하게 살리고 있다. 물론 여름에는 에어컨을 통해시원하게 유지된다고 하니 냉방은 합리적인 현대기술을 이용했겠다. 도서관 같은 서점 인터파크 ‘북파크’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2, 3층 총 2000㎡ 공간에 자리 잡은 ‘북파크’는 북카페나 도서관처럼 이용할 수 있는 서점이다. 50여 개의 테이블과 200여 개의 의자, 앉아서 책 읽기가 가능한 계단 등이 마련돼 있다. 독서공간의 분위기도 다락방 스타일, 테라스 스타일, 응접실 스타일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또 계단 밑이나 서가 뒤 숨은 공간에서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린이책 코너 부근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일곱 곳이나 있다. ‘보신 책은 북박스에 넣어주시면 직원이 정리한다’는 안내문구까지 있으니, 책의 구매 여부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서점이다. 북파크는 인터파크의 과학재단인 카오스재단이 2016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카오스재단의 설립 목적인 ‘과학의 대중화와 과학지식의 공유’ 취지에 맞춰 총 10만여 권의 보유 서적 중 절반 정도가 과학 관련 책이다. 서점 안에는 35석 규모의 다윈룸과 8석 규모의 뉴턴룸 등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북파크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 유명 맛집과 가깝고 공연장이 같은 건물에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여름방학이 되면 손주 손을 잡고 다녀와도 좋겠다. 이밖에도 CJ CGV와 쉐라톤워커힐 호텔도 도서관을 만들었다. 금융계에서도 KEB 하나은행 본점인 을지로 사옥에도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고 대신증권도 명동 사옥에 도서관을 열었다. 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 차원에서 도서관을 개장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과거에는 한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에 비유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식의 총량이 매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인생 경륜을 어설프게 드러내는 것은 자칫 뭘 모르면서 꼰대 노릇하는 걸로 비치기 십상인 세상이 됐다. 나이 듦에 따라 정신과 지식의 세계도 변모하기에 품위 있게 늙는 일은 중요하다. 문화지성인으로서의 비움과 채움이 필요한 시니어에게 도서관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자 여행지다. 다시 찾아온 무더운 여름, 어디를 갈까 고민 말고 가까운 도서관에 놀러 가보자.
- 2017-07-05 09:14
-
- ’나방생활사 전문가 허운홍’ 낭만주부 나방 엄마로 허물 벗고 빛을 보다
- 나방을 고운 시선으로 본 적 있던가? 여름밤, 밝은 조명 주위로 크고 작은 나방이 몰려들면 무서웠다. 누군가는 살충제를 들고 나와 연신 뿌려대기도 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의 사오정 입에서 나오는 나방은 그저 웃음거리. 더럽고 지저분하고 방해되는 날개 달린 벌레. 인간사 속 ‘나방’이란 정체의 위치가 그러했다. 허운홍(許沄弘·64)씨가 나방의 생활사에 대해 관찰하고 알리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차갑던 시선에 조금씩 꽃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부 허운홍, 나방에 빠지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만 ‘나비’가 아닌 ‘나방’을 연구하고 그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 있다니! 대학 교수라면 이해가 갈 것 같다. 자연계열과는 거리가 멀던 주부가 ‘나방생활사 전문가’로 불린다. 바로 허운홍씨 얘기다. 우선 허운홍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10여 년 동안 직접 채집해 길러낸 나방이 2000여 마리 900여 종에 이른다. 이렇게 채집한 나방은 손수 표본으로 만들었고 올해 초 광릉수목원에 기증했다. 나방뿐만 아니라 파리와 벌들의 표본도 함께 기증해 시민에게 내줬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출신, 곤충과는 멀던 삶. 나이 오십 넘어 그 작고 날라 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돌볼 것 많은 주부생활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자식도 남편도 아닌 나방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녀는 왜! 수많은 곤충들 중 나방에 빠지게 된 걸까? “전업주부로만 살아왔어요. 대학 졸업하고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과 곧바로 결혼했거든요. 뭐든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잘 안 풀렸어요. 그런데 뭘 하고 살 것인가는 늘 고민했죠. 그러다 1997년에 남편이 교환교수 자격으로 영국에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생태학과 만났어요.” 영국에서 생태학에 눈뜨다 가족과 함께 간 영국 케임브리지. 그곳이 나방 연구에 힘을 실어주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케임브리지는 지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도시의 한가운데는 대학교와 도서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배울 것이 널려 있었다. 학업에 대한 갈증과 궁금증이 많았던 허운홍씨는 케임브리지 개방대학에서 관심 있는 것이 있으면 뭐든 찾아서 수강신청을 했다. 천문학에 미술사, 영국사 강의도 들었다. 그중에 생태학도 있었다. “생소했어요. 식물에 관한 걸 배울 수 있다기에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어요. 그때까지 에콜로지(Ecology·생태학)란 단어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학교였지만 수준은 남달랐다. 생물학, 곤충학, 천문학 전문가가 한 학기 동안 전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숙제도 내주었다. 무엇보다 허운홍씨가 놀란 것은 학문을 대하는 영국인의 자세였다. “천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은하계를 볼 수 있는 필름과 슬라이드 장비를 가지고 있었어요. 옷은 정말 허름하고 냄새가 날 정도였는데 슬라이드는 다들 가지고 있더군요(웃음). 생태학 수업을 같이 듣는 분과 영국의 유명한 습지에 간 적이 있는데 차 트렁크에 장화며 쌍안경, 돋보기 등 없는 게 없더라고요. 저는 운동화 신고 뒤따라갔거든요. 문화수준인 거 같았어요. 그게 제가 느낀 차이였어요.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다들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셨어요.” 지식이 넘쳐나는 영국에서 소녀처럼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은 잠시였다. 1998년 한국에 IMF 위기가 와서 1년도 채 못 되어 돌아와야만 했다. 조금 더 영국에 빨리 가서 공부를 시작했거나 더 오래 있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늘 아쉬움이 남는다. 벌 대신 나방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는데 1999년에 길동생태공원이 문을 열었어요. 2008년까지 생태안내 자원봉사를 하면서 곤충 생태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영국에 있을 때 교수님이 소개해준 책도 해석해서 보고 말이죠. 사실 벌을 더 연구하고 싶었어요. 벌이 선구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이 배워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자은행의 시초였을 것 같은 여왕벌의 저정낭, 말벌의 독특한 아파트 생활 등 벌들의 사회생활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꿀벌과 말벌을 제외한 대부분의 벌이 나무줄기 속, 집 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생활을 해 포기했다. “그래서 나방으로 돌아섰습니다. 처음에는 이쪽 분야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다 연구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구가 전혀 안 돼 있었어요. 도감 대부분이 일본 책을 베낀 거였어요. 영국에 있을 때도 생태학 교수가 일본 책만 소개시켜줬죠. 그때까지 한국 책은 없다고 했어요.” 2007년부터 중부지방을 기점으로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나방 애벌레를 채집하고 인공으로 키워냈다. 수백 회 반복한 끝에 2012년과 2016년에 1권과 2권을 발표했다. 나방의 탄생과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도감이다. 새로운 나방 찾아 순천으로 남하(南下)하다 현재 허운홍씨는 남편과 순천에서 살고 있다. 서울 생활을 접은 이유는 나방 때문이다. “중부지역 쪽에서만 주로 채집했어요. 친정이 밀양이라 그곳에서도 좀 했고요. 그렇게 900종을 채집했으니 새로운 곳에서 채집을 해보려고 순천에 왔어요. 이곳에 친척 한 명 없는데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웃음). 남쪽은 사는 식물이 달라요. 그래서 나방도 다른 종이 나와요. 예덕나무, 푸조나무 이런 것들은 서울에 없어요. 제주도에서도 살아볼까 생각했는데 여기랑 식물이 비슷하고 섬이라 한계가 좀 있죠. 이곳에 훨씬 생물이 더 다양하게 있어요. 지리산도 가깝고. 내려와서 70~80여 종을 찾았습니다. 백운산, 제석산, 조계산, 봉화산 등 순천 쪽 산은 거의 다 다니고 있어요.” 지금도 매일 주위 산을 오르고 반가운 마음에 애벌레를 채집하고 관찰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대학 박사, 교수 같은 명함은 없지만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수 몇 분이 와서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면 어떻겠느냐고 한 적이 있어요. 공부를 하면 채집을 못하지 않냐 물으니까 채집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채집하러 나가면 새벽 6시에 나가서 왕복 6시간, 6시간 채집해서 한두 종 추가해요. 어떻게 공부하면서 할 수 있겠어요? 안 해본 사람들 생각이죠. 벌레들이 생각처럼 쉽게 찾아지지 않아요.” 허운홍씨는 78세까지 2000종의 애벌레를 채집해 나방 성충으로 키워낼 꿈을 가지고 있다.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모아둔 자료를 가지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 “채집 생활을 모두 끝마치고 나면 나방을 생활사별로 정리하고 싶어요. DNA 검사를 비롯해서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싶은데 눈이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시력이 너무 떨어져서 의사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원시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지만 하는 일들을 멈출 수 없단다. “제가 78세까지 2000종을 채집하겠다고 허풍을 쳐놔서요(웃음).” 경조사는 못 다녀요 나방 애벌레 채집에 집중하는 기간은 4월 말부터 9월 말까지. 10월에도 밖을 나선다. 비가 오는 날은 사진을 정리하고 그 외 모든 시간은 산 이곳저곳을 다닌다. 나방 엄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특히 표본작업을 할 때는 강의나 다른 일들은 하지 않아요. 6월에도 성남에서 토크쇼에 와달라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일단 채집이 시작되면 사람도 안 만나요. 친인척 결혼식도 안 가요. 장례식에는 꼭 가죠. 그 외에는 아무 곳도 안 가요.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집중이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은 올해 채집을 못하면 내년에 하면 되지 않느냐고묻는다. 애벌레를 집으로 들여와 길러보니 매년 나는 종들이 다른 것을 알게 됐다. 한 해 거르면 영원히 못 보는 개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여름 여행도 포기했다. 이런 허운홍씨. 가족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가족은 서로 관여 안 해요. 예전에 아들들은 ‘엄마 나방이 날라 다녀요,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봐요’ 그러기도 했어요. 손자들은 벌레들에게 너무 관심이 많죠. 친구들은, 제가 경기여고를 나와서 수준이 있거든요(웃음). 동기 모임도 미술관, 박물관 이런 곳에서 하니까 제 생활을 이해해요. 가끔은 제 남편 대단하다고 해요. 벌레 키우는 여자랑 이혼 안 해주고 산다고요.” 그래도 주부로서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새벽에 나갔다 저녁이 돼서 집에 오면 남편 먹을 반찬은 꼭 만들어놓는단다. 남편이 반찬투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자연을 만나다 채집할 때 가방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열어봤다. “물, 카메라, 우산, 비닐, 샬레(실험도구인 납작한 원통형 용기), 가위는 3개 정도 꼭 넣고 다녀요. 작업하다 가위를 떨어뜨려서 찾으려고 보면 뱀이 있다거나 보이지 않은 곳에 떨어져 못찾을 때가 있거든요.” 가위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것은 ‘식물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잎사귀나 가지를 깨끗하게 잘라주지 않으면 병이 들 수도 있고 끝이 갈라져 보기에도 좋지 않다.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본은 가위를 이용해 가지를 잘라주는 것이란다. “사람 좋을 대로 하면 안 됩니다. 식물 입장도 생각해봐야죠.” 올해 허운홍씨의 나이는 64세. 적지 않은 나이에 매일 새벽 나방이 될 애벌레 채집을 위해 길을 나선다. 집안일하다 생긴 손가락 관절염에 점점 나빠지는 눈, 매일 걸어 다녀 굳은살 박인 발은 물론이고 어깨 통증도 달고 산 지 오래다. ‘가지에 손만 닿으면 되지’ 싶어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 사명감일까. “여섯 시간을 찾아 헤매야 한두 종을 찾는다고 했잖아요? 10년을 이렇게 찾은 것입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나방생활사 연구를 한다면 제가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잖아요. 누가 하겠어요. 제가 할 수밖에 없죠. 결과물에 비해 시간이 너무 많이 요구됩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다면 가르쳐주고 싶지만 돈도 안 되는 것을 누가 하겠어요.” 보물찾기, 퍼즐게임 그리고 컬렉션(?) 요즘도 매일 나방 애벌레를 찾아 곳곳을 돌아다니는 허운홍씨는 이를 두고 ‘보물찾기’라고 표현한다. 숲속을 헤매다 눈앞에 새로운 종의 애벌레가 보이면 날아갈 듯 좋단다. 그 시기가 지나 겨울이 되면 또 다른 재미, ‘퍼즐게임’에 돌입한다. “겨울에는 동정(생물의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을 해요. 표본한 것을 쫙 펼쳐놓고 종류를 구분해요. 애벌레 사진 찍어놓은 것과 성충 표본을 보면서 일본 책을 가지고 이름을 찾아요. 밖에 나가는 건 보물찾기, 동정은 퍼즐게임 그리고 모으면 컬렉션이에요. 재밌는 일이 아주 많은 저만의 취미입니다.” 78세가 되면 소속된 학교도 단체도 없지만 나방 아줌마의 멋진 퇴임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에 “2000종 채우면요!” 한마디 외치며 산속으로 걸어갔다.
- 2017-07-05 09:11
-
- 자신의 몸을 믿지 못 하는 세상
- 온 방 안이 한증막이다. 모두 그놈의 앱(App) 때문이다. 유월 중순인데 벌써 한낮에는 30도를 웃도는 더위다. 다만 아직 습기를 머금지 않아 그늘은 시원한 편이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창문만 열어놓으면 서늘한 게 지내기 좋다. 그런데 그놈의 앱이 이런 주말의 쾌적을 온통 망가뜨렸다. 딸애가 앱을 들이대며 집 안의 문이란 문은 다 봉쇄해 버린 것이다. 딸애가 신봉하는 것은 바로 미세먼지를 알리는 앱이다. 스마트폰에 깔아놓고 수시로 들여다본다. 속에서 불이 난다. 몇 년 전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한 미세먼지. 도대체 그 앱은 무슨 기준으로 문을 닫으라 말라 하는가? 아! 방안에도 미세먼지는 많은데. 밖의 공기가 훨씬 시원하고 맑게 느껴지는데. 속에서 말이 들끓는다. 그러나 꾹 참는다. 앱을 들이대면 속절없이 지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해주었지만, 반면 인간을 억압하고 퇴보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번 정기 건강검진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늘 고혈압, 당뇨 등의 수치가 경계선에서 간당간당하기 때문이다. 때론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 푸른색으로 표시되면 안도하고 선 위로 올라가 붉은색이 나타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숫자에 민감하게 살았던가. 그저 몸의 감각만 믿고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과학의 독선적 기준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아날로그 세상을 디지털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점검해볼 새도 없이 우리는 어느새 과학이 만든 숫자의 포로가 된 건 아닌가? 과학의 발달로 우리가 잃은 것이 많다. 예전에는 길눈이 밝아 한번 가 본 길은 지도 없이도 잘 찾아갔는데 내비게이션이 나온 뒤로는 어렴풋이 알아도 내비게이션에 의지한다. 스마트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한 뒤론 숫자들이 좀처럼 외워지지 않는다. 어떤 학자는 이런 것이 뇌의 확장이라며 사소한 기억은 기계에 맡기고 뇌는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확장이 자랑스럽기보다는 그저 퇴보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전에 북한 어린이들은 기생충이 많아 아토피가 없다는 북한 의료지원 단체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인간의 몸은 그런 것이 아닐까? 어려서부터 땅바닥에 뒹굴며 세균이라는 외부의 적들과 친해지는 과정에서 면역이라는 자신을 지키는 방어막이 만들어진다. 요즘 아이들에 아토피가 많은 것은 과학에 중독되어 너무 청결하게 키우는 젊은 엄마들의 강박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뇌과학의 발달이 우리에게 준 큰 착각은 두뇌가 주인이고 몸은 그저 부속물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뇌도 몸의 일부일 뿐이다. 운동을 많이 한 아이가 머리도 좋고 손을 자주 놀리면 두뇌가 발달하는 것은 몸과 머리가 하나임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두뇌의 확장에 매달리다 몸이 퇴보하고 몸의 퇴화가 머리를 약화시키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더위를 피할 길이 없어 에어컨을 켜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다 메모할 일이 생겨 펜을 잡으니 옛날의 내 글씨가 아님을 느낀다. 아! 이젠 별게 다 퇴화하는구나. 밖에 나가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딸애가 깔아준 스마트폰의 미세먼지 앱을 슬며시 열어본다.
- 2017-06-19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