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댄스스포츠는 시각, 청각, 지체, 지적 장애인들이 댄스스포츠를 하는 것을 말한다. 대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산하에 전국 17개 시도에 연맹이 결성되어 선수 육성과 경기 운영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있어 왔던 소문이었으나, 하체를 못 쓰는 지체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하는 휠체어댄스는 세계 대회에 대비하여 존속하지만, 다른 부문은 전국체육대
“이 아이는 물을 많이 먹어요.” “저 아이는 추위에도 잘 자라죠.” 애정 어린 말투로 야생화들을 ‘아이’라고 부르는 백경숙(白慶淑·63) 백경야생화갤러리 대표. 그녀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갑작스러운 병마로 교단을 떠나야 했지만, 야생화 아이들과 싱그러운 ‘인생 2교시’를 맞이하고 있다는 그녀의 정원을 찾았다.
글 이지
한여름 피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물이다. 물속에 온몸을 담그면 더위 따위는 쉽게 잊을 수 있다. 여기에 더위를 피하며 건강까지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 방법이 바로 수중 운동이다. 수중 운동이라고 해서 수영만 떠올린다면 곤란하다. 태생이 맥주병 체질이라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다양한 운동이 당신을 기다리고
필자는 한국전쟁이 나던 해 자식 많은 가난한 농사꾼의 9남매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풍요로움을 느낄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 생각에 마음 한구석 애잔함이 밀려든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로 변한 농촌에서는 극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13명의 대가족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해야 할 만큼 식량이 필요했
지난 5월 22일 도쿄(東京)에서 막을 내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배구 세계 예선전에서 한국은 4승 3패로 올림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순위는 출전 8개국 가운데 4위였지만 앙숙 일본을 3-1로 이긴 데다 올림픽 출전이 확정된 뒤 열린 경기 패배를 빼면 순위가 더 올라갈 수 있었기에 스포츠 팬들은 23일 개선한 김연경 등 선수들을 열렬하게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 하는 사람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리움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어렸을 때의 일을 글로 한번 꼭 표현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만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돌아가 볼 수 없는
그토록 바라던 조국이 해방된 지도 70여년이 지났다. 단기간에 눈부신 성장을 이룬 조국의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감격스럽다. 특히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 세워진 내 동상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1910년 나라를 잃고 일본의 무자비한 지배가 시작되었다. 조그마한 힘이나마 독립운동에 보태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상해로 떠났다.
내 나이 33세이던 192
중학교때, 작문시간엔 일주일에 꼭 책 한 권씩 읽고 원고지에 독후감을 써서 내는 숙제가 있었다. 숙제를 내면,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 가면서 평을 써 주었는데, 선생님이 평이 무척이나 궁금해서 숙제를 돌려 받는 날이 기다려지곤 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작문선생님을 만나게 된 덕분에, 문학작품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그때 감명 깊게 읽은 작품 중의
김원휘 목사는 독립유공자다. 필자가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그리워 더욱 존경스러운 아버지다.
아버지 김 목사는 갑신정변의 해 1884년 7월 20일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났다. 의성군은 안동군과 함께 우리나라 유교의 본고장이고 한학 수준이 높았다. 그래서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학공부를 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신학문의 흐름을 빨리 받아들여 대구에서 기독교 학교에서
동생을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외가에 가는 어머니를 필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따르고 있다. 그때 필자는 7세 정도 였을까 아직 국민학교를 안 가는 나이였다. 외가에 가면 남의 집 문간방에 외할머니가 혼자 사시고 계셨는데 외할머니는 단아고 조용했다.
외가가 단칸방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이유는 필자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외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