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코하우징(senior co-housing)은 지역사회 안에서 나이 들어서도 잘 사는 데(aging-in-place) 초점을 두고 개발된 시니어 주택 대안 중 하나다.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현대 코하우징은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돼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등으로 전파됐다.
시니어 코하우징은 널찍한 커먼하우스(common house, 공동생활시설)와 소규모 개인 주택(private dwelling)으로 구성돼 커뮤니티의 이념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해준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주민들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며 동년배에게 시니어 코하우징을 추천할 정도로 전반적인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다.
① 다른 시니어 주택 대안보다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적정 가격의 주택 제공
② 주민의 프라이버시와 공동생활 이익추구를 혼합한 주거 유형
③ 은퇴 후 시니어가 가진 유휴 인적자원과 사회 경험 활용
④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면서 가능한 한 노인 부양시설의 입주를 늦출 수 있어 노인 부양에 드는 사회적 비용 지출 감소
⑤ 동년배끼리 생활하며 정서적 지원과 상호 부양을 통해 노후생활의 질 향상
시니어 코하우징에 입주하려면 신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하고, 함께 거주하는 자녀가 없는 부부 또는 독신 노인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들어가서 거주하게 될 주민이 주체가 되어 그룹을 형성한 뒤 지방정부, 건축가, 은행 등과 협조해 설립하는 형태를 띤다. 코하우징 주민은 연금 수입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이웃 간 상호 부양과 사회적 교류를 통해 인지기능을 활성화한다. 국내에서 눈여겨볼 만한 스칸디나비아 시니어 코하우징 두 곳을 소개한다.
◇ 크레아티브 시니어보(Det Kreative Seniorbo)
위치 덴마크 오덴세 입주 연도 1992 건물 유형 단층 연립주택 주택 수 12개 주민 수 18명
성공적인 시니어 코하우징 사례로 손꼽히는 덴마크 크레아티브 시니어보는 설립 이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방문객이 줄지어 발걸음하는 곳이다. 오덴세 중심지에서 멀지 않고 식품점, 학교, 우체국, 주택가, 버스정류장 등이 매우 가까워 접근이 용이하다. 부지 전체 면적은 3000㎡, 건물면적은 980㎡으로 이 중 주택면적이 850㎡, 커먼하우스가 131㎡를 차지한다. 12채의 단층 연립주택이 커먼하우스를 둘러싼 환경이 특징이다. 이 중 5채의 개인 주택은 현관문을 열면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곧장 커먼하우스로 이어진다. 나머지 주택 7채는 중정을 둘러싸고 배치돼 커먼하우스가 아닌 중정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주택마다 거실과 연결된 개인 정원과 개인 창고에는 건물이 별도로 지어져 있다. 개인 주택은 부엌과 2~3개의 방이 있는 58~82㎡ 규모로 면적은 크지 않지만, 천장이 높아 거실에 로프트(loft, 다락)를 설치해 공부방, 침실 또는 손주가 방문했을 때 놀이방 등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부엌, 식당 겸 회의실, 취미작업실, 세탁실, 손님방 등이 마련된 크레아티브 시니어보의 커먼하우스는 주택에서 접근이 쉬워 주민들이 부담 없이 자주 모인다. 이곳 주민들은 공동 취미활동을 자주 하는데, 여자들은 공동거실 취미실에서 바느질이나 퀼팅을 하고 남자들은 중정 목공실에서 목공예를 하거나 기계를 수리하곤 한다.
◇ 패르드크내팬(Fardknappen)
위치 스웨덴 스톡홀름 입주 연도 1990 건물 유형 7층 아파트 주택 수 43개 주민 수 50명
패르드크내팬은 지방정부 공영임대아파트 형태로, 몇 명의 중년 여성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그들에겐 두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중·노년기 사람들이 편한 환경에서 가까이 살면서 서로 돕고, 사회적 접촉을 많이 하며, 정부의 도움을 적게 받으면서 자립적으로 살 방법은 무엇일까? 자녀들이 독립하고 ‘빈 둥지(empty nest)’가 되었을 때, 넓은 아파트를 아이가 있는 젊은 가족에게 물려준 뒤 이주할 주택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그들은 1987년 코하우징 조합을 결성하고 2년간 공동체 이념에 대한 오랜 논의를 거쳐 주민의 비전에 맞는 건물을 완성했다. 패르드크내팬은 37~75㎡의 개인 아파트 43개(부엌과 1~3개의 방)와 400㎡의 커먼하우스로 구성돼 있다. 개인 아파트는 일반 주택에 비해 좁지만 커먼하우스가 넓어 손님 접대와 파티를 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주 5일 이뤄지는 공동식사는 ‘코하우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핵심적인 공동활동이다. 순번대로 돌아가는 취사당번은 의무이지만 식사는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원할 때만 식사시간에 참여하면 된다. 이곳 주민이라면 누구나 6주에 한 번씩 취사와 청소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커먼하우스 청소, 정원관리 등을 수행한다. 주민들이 청소와 단순 유지관리 등을 하면 주택 회사가 이러한 활동에 대한 비용을 조합에 되돌려주는 형태다.
커먼하우스에는 TV가 있는 독서실, 컴퓨터실, 세탁실, 공동식당, 부엌, 목공실, 식당에서 곧장 나갈 수 있는 정원이 있다. 주민들은 아파트와 커먼하우스의 임대료를 아파트 면적 비율에 따라 산정해 지불한다. 임대료에는 건물유지비,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장고 등의 수선충당금이 포함된다. 평균적인 아파트 임대료로 넓고 다양한 공동시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한국형 코하우징은 어떻게?
우리나라도 은퇴 후 자녀로부터 독립해 부부 또는 독신으로 지낼 새로운 주택 대안을 강구하는 중장년이 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주택 대안으로 시니어 코하우징 운동이 벌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코하우징과 유사한 국내 동호인 주택을 살펴보면 대부분 부동산이 개인 소유이고 대지와 주택난이 극심한 한국의 특성상 개인 주택 공간을 최소화하고 커먼하우스 면적에 투자하는 것을 재산상의 불이익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주민 간 의견 차를 심화시켜 공동체 생활의 와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따라서 개인 소유의 코하우징을 계획한다면 주민 스스로 생활의 질과 물질적 이익 중 어느 것을 우선으로 추구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이미 시행했던 것처럼 비교적 재산권 갈등이 적은 공공임대주택 분야에 주거복지 차원에서 시니어 코하우징을 도입해 시범 운영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국내에서 준비하는 공공임대주택 단지의 1~2개 동을 우선으로 시니어 코하우징으로 개발해 보급한다면 코하우징이라는 새로운 주거 대안을 홍보하고 지원해주는 방안이 될 것이다. 그 결과가 성공적일 때, 점차 민영주택 단지에서도 임대 또는 분양 방식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는 근래 지자체에서 노후한 다세대주택을 구입해 개조 후 저소득층 가구에 임대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 중 몇 개를 시니어 코하우징으로 개조하는 시도도 신축 건물을 설립하는 것보다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최근 서울시 주체로 시작된 공동체주택(코하우징, 셰어하우징) 보급사업을 통해 개인 토지를 가진 협동주택은 물론, 시에서 소유한 토지를 시중보다 싸게 40년간 임대해 주민 스스로 주택을 짓도록 토지임대부 공동체주택을 보급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머지않아 다른 지자체에서도 공동체주택 개발을 수월하게 하는 다양한 지원책이 생겨 시니어 코하우징을 포함한 다양한 코하우징 개발이 시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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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소비자 주거학 전공, 명예교수. 스웨덴 샬머스 공과대학교 명예공학박사. 저서 ‘굿모론 예테보리’. ‘스칸디나비아의 시니어 코하우징’, ‘코하우징 공동체’ 외 다수.
브라보 앙코르 라이프
우리는 잘 늙고 잘 죽기 위해 잘 살려고 한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 여러 필수교양 지침 가운데서도 비우기, 내려놓기, 나누기를 배우고 훈련하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시니어 세대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고들 이야기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모아야 하고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강박 속에서 성실하게 노력하고 희생하며 살았다고 하는 그 공로를 돌이켜보면 사실 나와 가족을 위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다른 사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재능이나 금전을 기부하고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기부’문화에 익숙지 않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 미국의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은 미국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삼성 같은 대기업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개인이 기부를 하는 일은 아주 드믄 일이다. 기부 DNA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보통의 사람들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기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쉽다.
퇴직을 하고 일정한 가처분소득 없이 사는 마당에 기부하고 싶어도 형편이 그렇다. 대부분 이런 생각일 것이다. 퇴직 후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든지, 연금이나 일정 자산소득이 있든지 간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될지 불투명한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면 불안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향후 30~40년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보통의 시니어라면 말이다. 얼마가 있어야 안심이 될까?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소유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다. 단언컨대.
인생 후반기 시니어의 차이 나는 경영 노하우는 빼기와 나누기다. 인생 후반기야말로 기부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다.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부한다’는 말 대신 소비하는 금액의 일정 부분을 줄이고 빼서 기부금 명목으로 지출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얼마큼씩 빼기를 할 것인가. 물질적으로 나를 비워가는 과정 또한 나를 내려놓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매달 생활비에서 10퍼센트 혹은 13퍼센트는 떼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나 공익을 위해 애쓰는 단체에 기꺼이 기부하고 나누어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기는 순간 삶의 가치는 고양된다.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물론, 줌으로써 누리는 행복감은 나만을 위한 소비가 주는 행복감보다 훨씬 큰 의미를 준다. 신기하게도 기부는 투자의 효과로 내게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는 것이다.
기부하는 일에 어린이, 어른, 노인을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게 기부문화가 그리 친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각 세대에 맞는 기부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공감할 만한 동기부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몇 달 전에 지인들 몇몇과 다음과 같은 궁리를 해봤다.
당신이 누구이든 기부할 돈도 재능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시라. 우리나라 국민은 만 65세가 되면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다. 필자도 2년 내에 소위 지공족에 편입된다. 웃음도 나고 머쓱한 기분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지하철 무임승차로 한 달에 적어도 4만여 원의 지하철 교통비가 절약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외출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2만원 정도는 절약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거야말로 공돈인데 이럴 때 과감하게 월 2만원을 기부해보라. 이름하여 지공펀딩 캠페인을 벌여보자고 5명의 예비 지공족이 모여 논의했다. 지하철이 공짜라는 희화적 의미의 ‘지공’을 ‘지공(至公)’이라 표기하고 공익을 위해 기금조성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열 명, 스무 명, 백 명, 천 명, 그 이상으로 지공족이 참여한다면 그야말로 지공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고 시니어 문화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시금석이 될 만하다.
성실하게 일하고 절약하며 살아온 세월은 어디로 가고 무임승차족, 사회비용부담 세대로 비하되고 있는 지금의 시니어에게 비타민 같은 기회로서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제안으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공개하기도 전에 벌써 동참의 뜻을 보내온 사람이 30여 명이다. ‘기부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지만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도 없는데 누구한테 기부하라는 거냐’ 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감할 만한 명분이 있고 믿을 만한 단체라면 나도 기꺼이 지공 멤버가 되어 기부자가 되겠다는 의미다. 본격적으로 이런 운동을 전개하면 ‘나도 기부를 한다’는 자부심과 즐거움에 행복해하는 시니어가 많아지리라 본다. 이 운동의 목적이나 목표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기에는 적합한 지면이 아니어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단, 기부의 마음만 있으면 기부할 돈과 재능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설사 기부를 하고자 해도 누굴 믿고 기부를 하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가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어금니아빠 사건, 새희망의 씨앗 전화사기 사건, 미르재단에 이르기까지 최근 1년 사이에 부패한 재단, 기부금 횡령사건이 줄을 이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래서 진정 목적에 잘 쓰이고 있는지 믿을 수 없어 더 이상 기부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 대응이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탄소 배출이 증가해도 우리는 숨을 쉰다. 숨쉬기에 필요한 산소는 여전히 공기 중에 존재한다. 기부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부문화가 성숙해가면서 스스로 사회의 자정 장치까지도 만들어낼 것으로 믿는다.
후반기, 다시 시작하되 자장격지(自將擊之)의 자세로 한다. 과식하지 않을 줄도 알고 내 몸의 상태에 맞춰 행동을 조심할 줄도 안다. 그러지 않으면 탈이 나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과히 나쁘지 않다. ‘스스로 가지려고만 하지 않고 주려고 한다. 더하기, 곱하기보다 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이런 현상은 연륜의 지혜가 주는 자정기능이고 자기균형 효과라 생각한다. 나이에 걸맞게 노쇠해가는 것이 노익장을 과시하고 노욕을 부리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보기에 자연스럽다. 몸도 마음도 물질도 스스로 비워야 하고 빼야 하는 줄 알게 되니 기쁘다. 나와 내 자녀에게만 주는 것보다 이 사회의 더 많은 사람, 더 필요로 하는 곳에 주면 내가 실제로 준 것보다 더 큰 몫으로 가치가 증대된다. 기부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이고 생산이다. 기부하는 사람은 투자자이고 보람과 기쁨이라는 배당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명예로운 주주가 되는 것이다.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일에 시니어가 동참하는 것이다.
평범한 당신이 죽기 전에 기부의 즐거움을 누리고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에 있을까.
은퇴를 앞둔 사람이 제일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돈이다.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과연 먹고살 수 있는지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노후생활을 위해서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할까 궁금하다. 2017년 초 금융회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노후자금은 7억 내지 10억이 필요하다. 20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이렇게 큰돈이 필요한 걸까.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은퇴 후 부부가 생활하려면 월평균 200만원의 생활비가 든다. 만약 정기예금의 금리가 연 2.4%라면 10억원을 예치했을 때 월 200만원의 이자를 받는다. 금융회사에서 노후자금으로 10억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런 논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주장은 자사 금융상품을 팔기 위한 공포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자기 회사에 맡기면 월 이자로 그만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정해서 말하면 노후생활을 하기 위해 10억원의 돈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적정생활비에 상응하는 월 200만원이 나올 수 있도록 현금흐름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이런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직장생활을 정상적으로 한 사람이라면 국민연금을 통해 월 100만원의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 국민연금으로 적정생활비의 반은 해결하는 셈이다. 그리고 정년이 되었을 때 규모는 크지는 않더라도 집 한 채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다. 노후에 이 집을 주택연금에 위탁하면 또 월 100만원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이용해 최소한 은퇴 후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 금융 회사의 말만 듣고 노후준비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생활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물론 소비는 하방경직성이 있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은퇴 전에 미리 소비 수준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검소한 생활을 하겠다고 작정하면 살아가는 데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은 비싸지 않다. 가격이 비싼 것들은 생필품이 아니고 대부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들이다.
돈만 있으면 노후준비가 다 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돈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인생 2막을 살기 위해선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은 자존감을 지켜주고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힘이다. 다만 그 일은 남의 지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한다.
세계적인 투자가 조지 로저스가 최근 자선단체에 180억달러를 기부했다. 우리 돈으로 20조원 가까이 되는 돈이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철학자였다. 그러나 철학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철학자가 될 수 있다면 전 재산과 바꾸어도 좋다고 했다. 올해 그의 나이 87세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돈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인생 2막에는 자신이 꿈꾸었던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면 더욱 좋다.
이란 책이 있다. 오래전 이 책을 사서 캐나다로 이민 간 지인에게 선물을 했더니 교포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며 좋아했다. 이 책은 의대를 나와 오랫동안 의사로 일했던 저자가 54세에 밴쿠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캐나다 역사를 수학하고 쓴 것이다. 의사는 그가 먹고살기 위해 택한 직업이었지만 은퇴 후에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인생 2막은 바로 이런 일을 찾는 과정이다.
국내 H그룹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만돌린을 배우러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지인도 있다. 그는 소기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지금은 이웃들에게 만돌린을 가르치고 있다. 간혹 서울시향과 협연하기도 한다. 그에게 직장을 중도에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냐고 물으니 전혀 그렇지 않단다. 직장에 있었으면 지금쯤 퇴직을 해야 하는데 자신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연주자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다가 은퇴 이후에 필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더니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되었다. 어느 정도의 돈, 좋아하는 일, 그리고 친구다. 얼마 전 란 책을 펴낸 김형석 교수도 무엇보다 친구의 떠남을 아쉬워했다. 나이 들어 친구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빌 게이츠 이전에 세계 제일의 부자는 월마트를 창업한 샘 월튼이었다. 그는 죽을 때 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했다. 그의 주위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인 L회장도 그러지 않을까.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죽을 때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다. 더구나 주위에 자기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의 삶은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있을까. 내가 먼저 그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후반생은 길지 않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홀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70세에 불과하다. 60세에 정년퇴직한다면 10년이 내게 주어진 시간이다.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겠다.
전반생에서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었다면 후반생은 선택이 필요한 시기다. 많은 사람을 사귀기보다 만날 때마다 에너지를 느끼는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인생 2막에서 어느 정도의 돈, 자신이 좋아하는 일,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친구, 이 세 가지만 갖출 수 있다면 비교적 행복한 후반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 지식인의 멘토로 불렸던 노부부가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서 35년간 교수로 근무했던 故 김익창 박사와,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 25년간 교사로 일했던 그레이스 김(한국명 전경자·86)씨다.
부부는 평생 소외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힘썼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53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최고의 동지이자 친구였으며 연인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아내는 여전히 열심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You should keep going.” 당신은 계속 그렇게 살아 달라는 것이 남편의 바람이었다.
사랑스러운 사회운동가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클래식 음악회 준비로 정신이 없어요. 오후에는 신문사에 음악회 기사를 전달하러 가야 해요. 오늘도 너무 바쁘네요!”
그녀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3년 전, 애너하임의 한 노인병원에서 김익창 박사와 그레이스 김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김익창 박사는 파킨슨병으로 상당히 힘들어하면서도 아내와의 인터뷰를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당시 인터뷰 주제는 ‘부부’였는데 김 박사는 “부부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젓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남편은 나를 커뮤니티 액티비스트(사회운동가)라고 별명처럼 불렀어요. 조용하고 신중했던 그와 달리 나는 말도 많았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곤 했는데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사랑해줬지요. 우리는 6·25전쟁을 눈앞에서 겪은 세대입니다. 모두가 못 배우고 가난한 시절에 그래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우리는 그것을 갚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소외받는 곳,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늘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1931년 중국 상해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해방이 되던 해 부친의 고향이었던 평안북도로 돌아왔고, 남북으로 갈리게 되자 다시 38선을 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막내 동생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은 그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상해에서 사업을 했던 부친은 임시정부에 돈을 보내며 독립운동을 도왔고, 주위에 고학을 하는 한국 유학생이 있으면 장학금을 내놓기도 했다. 어머니 역시 그 시대에 평양신학교를 나온 신여성으로서 이웃과 나누는 것을 평생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었다고.
“여고 시절 내 꿈은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가서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화여대 의대로 진학했지요. 그런데 입학한 그해 6·25전쟁이 터졌어요. 산속으로 피난을 갔다가 와 보니 집이며 모든 것이 폭격으로 사라져버렸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당장 군에 입대해 총 들고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어린 아가씨가 얼마나 맹랑했겠어요. 그때 영락교회를 다녔는데 목사님이 하루는 보여줄 곳이 있다면서 저를 데리고 가신 곳이 있어요. 바로 고아원이었죠.”
폭격을 맞고 부서진 학교 건물에 임시로 마련된 고아원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밤낮으로 울부짖었고 아프고 굶주린 아이들을 돌봐줄 손길은 없었다. 그렇게 김씨는 여군 대신 고아원 선생님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김씨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재입학한다.
“등록금을 댈 형편이 아니었어요. 서울대 사범대가 등록금도 싸기도 하고 모자라는 교사를 길러내기 위해 장학금도 많이 준다고 하니 좋았지요. 또 고아원 선생을 하면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도 알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으니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요?”
서울대학교 캠퍼스에서 그녀는 남학생들이 데이트 신청이 쇄도할 만큼 인기가 있었지만 모두 퇴짜를 놓아 별명이 ‘NO’였을 정도로 콧대가 높았다고 한다. 그중 유일하게 ‘YES’를 한 것이 남편 김익창 박사의 오페라 데이트 신청이었다고. 생전 김익창 박사는 인터뷰 때마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탁월한 미모의 소유자’였다고 아내를 향한 무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1956년, 김익창 박사가 미국 유학을 떠난 이후 6년 동안,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다. 그 사이 김씨는 숭의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후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용산직업학교를 세워 불우한 형편의 아이들을 지도했다.
“6년 동안 우리는 떨어져 있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았는지 몰라요. 삶에 대한 가치관, 철학, 문학, 음악, 예술, 종교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닮아 있는지 알게 되었죠. 그 시간 동안 다져진 신뢰는 남녀의 사랑 그 이상이었어요.”
‘Dear, Grace’
1962년, 마침내 두 사람은 미국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김익창 박사가 샌프란시스코 마운트 자이언(Mt. Zion) 병원에서 인턴십을 하는 동안 두 아들 데이비드와 다니엘이 태어났고, 남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병원 응급실에서 일해야 했다. 잠을 잊고 살아야 했던 고된 시절이었다.
“대단한 정신력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3년 만에 박사과정을 끝내더라고요. 레지던트를 마칠 무렵 남편이 내게 공부를 해보라고 제안했어요. 너무 기뻤죠. 내가 너무나 원하던 거였으니까요.” 김씨는 그 길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원에 진학, 1969년 상담학과 아동발달학으로 교육 석사학위를 받는다.
캘리포니아의 진취적인 교육 도시 데이비스에 정착하면서 부부는 본격적으로 소수민족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게 된다. 김익창 박사는 임상정신과 의사로서 평생 소수민족의 정신의학에 관심을 두었다. UC데이비스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문화가 다른 환자들에 대한 의료진들의 이해’를 강조하며 대학에 강좌를 만들고 끊임없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다문화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로 자리 잡았고 그의 노력으로 현재 미국 정신의학협회에는 ‘화병’이 정식 병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김씨는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언어와 문화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소수인종 학부모들과 학교를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청했다. 특히 인종차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차별도 받지 않도록 앞장섰다.
특히 1980년부터 시작했던 미주 한국일보의 질문과 응답 형식의 칼럼 ‘Dear, Grace (그레이스에게)’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부모들이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려움이 많다고요. 흔쾌히 하겠다고 했죠. 궁금한 것을 편지로 보내면 답을 주겠다고 했는데… 세상에, 편지가 어마어마하게 와서 너무 놀랐어요. 궁금한 것은 많은데 어디에 물을 곳이 없었던 거예요. 한국말을 하는 선생님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 학교와의 마찰, 인종문제를 비롯해 마약, 섹스, 가출 문제까지. 그레이스 김은 한인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고 칼럼은 1990년까지 계속됐다.
나눔, 그 위대한 유산
이들 부부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부’에 대한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입양아 단체, 아시안 청소년 장학재단 등에 적지 않은 기부를 하고, 무료 진료와 상담 등의 봉사활동을 해왔던 부부가 은퇴하면서 제대로 일을 치른 것이다.
2006년 김익창 박사가 35년간 몸담았던 UC데이비스 대학에서 나왔을 때, 이들은 캘리포니아 실비치의 한 은퇴촌에 작은 집을 마련한 뒤 나머지 재산은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20여 개 단체에 전달한 기부금은 적게는 5만 달러, 많게는 25만 달러에 이르렀다. 모두 익명으로 한 기부였다. 이 놀라운 기부는 당시 UC데이비스대학에서 이들이 내놓은 기부금 25만 달러로 ‘다문화정신의학센터’를 만들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사실 그만한 목돈이 생긴 데는 숨은 사연이 있어요(웃음). 젊은 시절 내가 하도 많이 기부를 하고 다니니까 남편이 매달 월급의 반만 받고 나머지는 은퇴연금으로 저축을 하자고 한 거예요. 은퇴할 때 그렇게 돈이 쌓인 줄 몰랐어요. 평소 돕고 싶었던 단체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는데 얼마나 신이 나던지. 남편과 아주 펑펑 잘 썼어요!”
고마운 것은 부모의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여준 두 아들이었다.
“그때 아이들이 한 말이 잊히지 않아요. 돈이 필요하면 지금 이야기하라고 했죠. 두 아이 모두 자신들을 키워준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며 원하는 곳에 다 쓰라고 하더라고요. 아, 우리가 아이들을 잘 키웠구나. 갑절로 행복해지더라고요. 두 아들 내외 역시 어려운 곳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2009년 데이비드 김씨가 지난 오바마 정부의 교통부 차관보에 임명됐을 때, 그가 남긴 말이 있다.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마음만 있다면 언제나 남을 도울 힘이 있다고요.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또 다른 방식으로 도울 수 있다는 거죠. 바로 그 나눔의 정신이 우리 가족을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고개 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시아인은 돈을 많이 벌어도 미국 주류 사회에 들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님의 삶은 제 미래를 위한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부모님의 기부가 저를 성공적으로 키운 셈입니다.
상해에서 독립운동가와 유학생을 돕던 부모에게서 김씨에게로, 이것이 다시 김씨의 아들들에게로 이어진, 참으로 위대한 유산이다.
To my forever love…
‘김 여사의 해피 에너지’는 은퇴촌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씨는 입주한 은퇴촌 실비치 레저월드의 한인회 회장이 되어 커뮤니티 간 화합에 앞장섰다. 한인 노인들을 위해 각종 세미나와 교양 프로그램을 속속 만들어내는가 하면 지역구 선거에 한인 후보자가 나오면 발벗고 나서서 선거운동을 도왔다. 물론 그 뒤에서 묵묵히 김씨를 돕는 사람은 남편 김익창 박사였다.
이 무렵 김익창 박사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부부에게는 예상치 못한 슬픔이 찾아왔지만 이 또한 차분히 받아들였다.
“한동안 멍했지요. 왜 이런 병에 걸리게 됐을까. 젊었을 때 잠을 너무 못 자고 힘들어서였을까…. 하지만 남편은 곧 받아들이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어요. 파킨슨병은 관리만 잘하면 당장 어떻게 되는 병이 아니라면서요. 그렇게 8년을 투병했지요. 그 사이 자신의 인생을 덤덤히 돌아보며 두 권의 자서전도 집필했고요.”
병세가 악화되어 노인병원에 입원하고 2년 동안, 부부는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고. 아내는 매일 아침 예쁘게 화장을 하고 직접 구운 쿠키를 만들어 남편을 만나러 갔고, 남편도 눈을 뜨면 아내를 기다렸다. 전립선암이 발병했을 때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김 박사는 항상 웃는 얼굴로 아내를 맞아주었다. 병원 스태프에게 ‘She is my forever love’라고 소개해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편지 한 장을 건네더라고요. ‘결혼해줘서 고맙고 행복했다. 아파서 미안했고 먼저 가서 또 미안하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까지처럼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슬픈 삶을 살까봐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끝에는 늘 하던 말, ‘my forever love’라고 적어놓았더군요. 마지막 러브레터였어요(웃음).”
김익창 박사가 떠난 후, 그녀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문득 자신이 이렇게 될까봐 걱정하며 병실에서 간신히 손을 움직여 편지를 썼을 남편이 떠올랐다.
“아니다.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내 모습으로 끝까지 열심히, 즐겁게 살자. 그렇게 결심했어요. 나는 지금 아주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은퇴촌에서 음악회도 열고 노래도 부르고 세미나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러다 남편이 너무 그리울 때는 조용히 말합니다. ‘하나님 나는 준비되었으니 이제 데려가셔도 됩니다. 루크를 만나게 해주세요…’ 라고요(웃음).”
오랜 대화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열심히 포즈를 취해주는 그녀의 미소가 캘리포니아 햇살만큼이나 화사하다. 누구에게나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는 이런 모습을 남편은 사랑했으리라.
“Good to see you!”
쿨하게 인사를 남기며 보무당당히 사라지는 ‘유쾌한 그레이스씨’. 그녀와의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아이디어 닥터, 트렌드 몬스터, 강연여행가, 브랜드 전문가…. 이장우 브랜드 마케팅 그룹 회장(62)의 여러 별칭이다.
이 별칭들엔 이장우 회장의 개인 브랜드 혁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현재 전통제조업에서 IT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의 기업 7곳에서 고정·비고정의 급여를 받는다. 1년에 최소한 5~6회는 미래 유망 트렌드를 찾아보고자 해외 아이디어 탐방 여행을 가 브랜드의 촉과 감을 갈고 온다. 삶 자체가 ‘살아 있는 브랜드’로 부단한 자기 혁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을 햇빛이 투명한 어느 멋진 날,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화려한 컬러의 통 좁은 바지에 선글라스, 중절모는 물론 반지와 팔찌 등 액세서리 일습을 갖춘 그는 말 그대로 꽃중년 그 자체였다.
인터뷰 다음 날, 그는 인도로 3주간 홀로 명상연수를 떠날 예정이라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보통 사람은 한 곳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좌불안석입니다. 무려 일곱 군데에서 급여를 받으신다니 부럽습니다(웃음). 퇴직 후 급여가 오히려 더 많아졌겠습니다.
“돈의 재미를 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날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현재 다섯 군데가 고정급여이고 두 군데는 비고정급여인데 늘었다가 줄었다가 합니다(웃음). 솔직히 퇴직을 앞두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최고경영자들이 퇴직 즈음해선 쪼잔한 상념이 많아지거든요. 부러진 날개 신세에서 영웅담을 생각한다는 것은 뻥이에요. 하다못해 국민연금, 4대보험 문제는 어떻게 하나, 별 게 다 걱정이 됐어요.”
퇴직 후 바로 이장우 브랜드 컨설팅 그룹을 만드셨지요. 직원 한 명을 둔 미니 지식기업을 창직(創職)하셨습니다. 퇴직 후, 현직 때 마지막 연봉의 두세 배를 번다고 들었습니다. 성공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실정과 저의 현실을 냉정하게 본 것입니다. 조직 브랜드와 개인 브랜드를 헷갈리지 않은 것이지요. 퇴직 후 회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조직을 키우기보다 개인으로서 나, 이장우를 키우는 게 효과적이란 생각을 했어요. 규모의 경제에서 제가 대기업, 다국적 컨설팅 그룹과 경쟁하려 한다면 백전백패입니다. 그런 기업들의 CEO와 경쟁한다면 승부수를 던질 만하지요. 개인 브랜드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퇴직 후 공황을 겪는 것은 조직 브랜드와 개인 브랜드를 헷갈려서입니다.”
퇴직 CEO들이 과거의 성공 스토리에 머물러 인생 2막 설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더군요.
“강의, 컨설팅 모두 부단한 콘텐츠 개발 싸움입니다. 대중의 열광, 과거의 영광 모두 거품이고 잠깐이에요. 길어야 1~2년 가기도 힘들고 곧 고갈되지요. 강의는 말이 아니라 콘텐츠로 하는 것입니다. 말 못해도 콘텐츠 있으면 오래 갈 수 있어요. 콘텐츠 없이 말만 잘하면 금방 바닥이 나게 돼 있지요. 멀리 보고 깊이 보려면 끊임없는 공부를 해야지요. 저는 책 공부보다 여행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차원에선 스몰데이터, 감(感)이 브랜드 차별성이에요. ○○에서 들었다, 읽었다는 개인의 스몰데이터가 기업의 빅데이터를 이기기 힘들어요. ‘내가 직접 해봤다, 가봤다, 느껴봤다’를 이야기해야 먹히지요. 경쟁력은 기능이 아니라 나만의 느낌에서 옵니다.”
브랜드 전문가, 아이디어 닥터, 그리고 강연여행가로 별칭이 계속 진화하고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브랜드 연구는 제 평생의 업으로 한 일입니다. 여행은 콘텐츠 개발을 위해 하다 보니 어쩌다 본업이 돼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인문학 강의를 좋아하더라고요. 트렌드의 발상지, 원산지를 직접 방문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는데요. 요즘은 여행인문학으로 관심이 확장됐어요. 저는 관심의 촉, 미래의 촉이 느껴지면 배울 만한 곳이 어디에 있나 찾아봐 세계 어디든 직접 가보려고 합니다. 가령 2009년 도쿄 책방을 갔을 때의 일인데요. 트위터에 관한 책이 한 코너를 다 차지하고 있더군요. SNS가 뜨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미국 뉴저지 스테이트대학으로 공부하러 갔어요. 동양의 중년 남자가 그 먼 곳으로 한겨울에 SNS 공부를 하러 왔다니 학교에서 놀라더군요(웃음). 공부는 선(先)투자이자 선(善)투자예요. 공부하면서 계발하고, 계발하면서 공부해야지요.”
일반인이 ‘트위터’의 ‘트’란 말에도 익숙하지 않을 때 조기유학(?)을 한 덕분에 그는 SNS 브랜딩 홍보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또한 현재 페이스북 팔로워 6만 명. 카카오스토리 5만 명, 인스타그램 1만 명의 팬을 확보하는 기틀이 되었다.
그의 ‘본산지, 원산지 찾아 아이디어 탐방 삼만리’는 SNS에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 치즈학교, 미국 포틀랜드 커피 바리스타스쿨, 영국 수제맥주 학교, 이탈리아 전통 베네치아 파스타 학교 등 관심 분야도, 아이디어 탐방 지역도 무궁무진하다. 전국 방방곡곡, 아니 세계 도처를 누비며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익혔다. 말 그대로 ‘왔노라 보았노라 배웠노라’였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부딪치는 소소한 사고와 우연한 사건들. 그것이 경험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느낌이 되어 그만의 브랜드로 승화된다.
제가 소심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용이 먼저 걱정되는걸요. 항공비, 체재비, 게다가 연수비용까지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버는 것의 20%는 자기계발에 투자한다는 주의입니다. 되도록 스폰서를 잡지 않고 제 돈으로 가는 게 원칙입니다. 후원을 받으면 여행 순서를 깨뜨리고 구속이 되거든요.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공부하는 데 2000만~3000만원 정도 들었어요. 결과적으로 강연, 컨설팅 요청이 들어와 투자한 것의 10배 정도는 뽑게 되더군요.”
그는 처음인 일을 나만의 것으로 차별화하면 브랜드가 된다고 말했다. 가령 커피 바리스타 강의를 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커피와 맥주를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브랜드 전문가는 흔치 않다.
흔히 “관광이 아닌 현지 체험, 풍경이 아닌 사람을 만나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 회장님처럼 여행을 즐기면서 아이디어 탐방 기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여행은 필연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연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일단 떠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보세요. 너무 목적, 목적 하며 따지지 마세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틀에 갇히기 쉽습니다. 기회는 인과관계 밖에서 터져 나옵니다. 많이 가야 합니다. 삶은 가고 싶은 목적지를 갖는 것입니다. 여행은 꿈입니다. 꿈을 가져야 여행을 가게 되고, 여행을 가야 자꾸 꿈을 키울 수 있지요.”
이장우 회장은 “여행은 꿈이고 도전”이라며 “목적을 갖고 가지만, 가서 새로운 목적과 도전을 얻는 우연, 세렌디피티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목적지를 정하면 온갖 정보를 검색, 6개월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짜지만, 막상 가서는 널널하게 현지에서 자유여행을 즐긴다”고. 사전 계획 때는 채우고, 막상 가서는 비운다. 말하자면 서양식 사고의 과학적 플래닝과 동양적 사고의 인문학적 여백의 결합형이다. 이번에 가는 인도행은 이름하여 소울 트립(soul trip). 트렌드의 촉을 읽으면 정통 원산지를 찾아 도전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다듬어 전달하고 퍼뜨린다. 그것이 바로 브랜딩 아니겠는가.
외국어가 가능하다는 점도 세계 도처 어디든 도전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포함해 6개 국어를 하시지요. 최근에는 힌두어, 라틴어까지 공부하신다고요.
“새로운 언어를 하나 더 배운다는 것은 머리가 하나 더 생기는 일입니다. 언어를 한다는 것은 사고를 한다는 것이거든요. 여행한 곳을 더하면 새로운 마음의 눈이 하나 더 생기고요. 외국어 공부는 자기를 다른 세상으로 집어넣는 일종의 유체이탈 행위입니다. 리얼하지요. 비유하자면 번역이 사진 속 풍경이라면, 원어는 풍경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아무리 인공지능 즉시 통번역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외국어 공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리얼한 것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니까요. 그것은 단지 속도가 아니라 느낌의 문제예요. 앞으로 세상은 지식이 아니라 필(feel)의 경쟁시대가 될 거예요. 지식과 상식은 보편화돼 검색하면 나오니까요. 느낌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아요. 새로운 아이디어 탐방을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요즘 문제되는 것은 세대 간 소통입니다. 기업 자문을 하실 때 신세대 직원들과 같이 일을 하셔야 할 텐데요. 그들이 어려워해 소통이 어렵진 않던가요.
“제가 얼마나 신세대랑 잘 노는데요(웃음). 저는 나이듦을 장점으로 활용해요. 바깥바람 막아주지, 아이디어 아낌없이 공유하지, 성과 올려주지, 이들의 입장에선 ‘성과와 실력은 향상시켜주면서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일은 쉽게 풀어가면서 어려운 책임은 상대가 가져가고’ 당연히 좋을 수밖에요. 신세대가 저처럼 나이 든 멘토와 일하는 장점이지요.”
그는 세대 간 불통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매력 자원이라는 무기의 문제라고 진단하면서 “신세대가 기성세대와 소통을 안 하는 것은 어렵거나 겁먹어서가 아니다. 기성세대를 무시해서다. 기성세대에게 배울 게, 물어볼 게, 아쉬울 게, 부러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다. 기성세대가 신세대와 소통하려면 호통이나 비위 맞추기는 불필요하다. 그보다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은 재미와 의미를 갖고 일하지 않으면서 ‘나처럼 돼보라, 해보라’고 하면 누가 따르겠냐는 반문이다.
평생 재미와 의미로 점철된 흥미진진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서의 ‘그늘’이 궁금합니다.
“웬걸요. 제가 콤플렉스 투성이인걸요. 콤플렉스가 힘이 되니, 인생은 알 수 없어요. 단점이 강점이 되고, 엎치락뒤치락이에요. 집은 가난했고, 머리는 나빠 구구단도 못 외울 정도였어요. 다행인 것은 지식이 들어가기 힘든 대신 나가기도 힘들더군요. 외우는 데 오래 걸렸지만, 한 번 외우면 잘 안 잊어버렸어요. 그게 외국어 공부의 동력이 되었지요. 또 집이 가난해 구멍가게를 했고, 상고에 진학해야 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물건 팔고 장사를 하다 보니 세일즈에 일찍 눈을 뜨게 됐어요. 머리 좋은 사람이 끝까지 하는 사람을 못 이겨요. 제 삶의 모토가 ‘긴 호흡으로 살자’입니다.”
이장우 회장과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원고를 한 자 한 자 치고 있었다. 마침 그의 블로그에 인도에서 쓴 따끈따끈한 새 포스트가 올라왔다. 아쉬탕가 요가의 요람인 인도 마이소르의 한 수도원에서 올린 사진과 글이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주황색 승려복을 걸친 모습이 얼핏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연상시켰다.
“요가와 명상을 배운다는 사실이
설레었고, 그 느낌은 참 편안하고 좋았다.
영혼이 춤추는 세상을 찾아가는 새로운
배움의 여정임에 틀림없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명상과 요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by 이장우
어느 날 문득 그가 명상과 요가 브랜드 전도사로 새롭게 나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여행가 뒤에 붙을 그의 새로운 브랜드 네임이 문득 궁금해진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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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소동파는 황주에서 매달 아주 적은 생활비를 받았기 때문에 식솔들의 의식주는 예전에 해두었던 저축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지출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는 매달 초 저축했던 돈 가운데 4000~5000개의 동전을 꺼내서 한 꿰미에 150개씩 나눈 뒤, 집 대들보에 걸어놓고는 매일 한 줄씩 풀어서 사용하였다. 가능하면 하루의 지출을 한 줄의 동전으로 제한하려고 했다. 만약 그날 저녁에 몇 개의 동전이 남으면 단지에 넣고, 그다음 날에는 다른 동전 줄을 풀어서 사용했다. 한 달이 지나면 단지의 동전을 정산해서 손님들이 올 때 접대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스야후이, )
요즘 개인형 퇴직연금(Individual Retire ment Pension, 이하 IRP)이 금융계의 핫이슈다. 지난 4월 퇴직연금법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7월 26일부터 소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IRP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후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공적연금의 보장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보장수준을 높이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세대 간 부조에 의존하는 공적연금의 특성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인구학자인 서울대 조영태 교수는 저서 에서 “사회적 미래는 정해져 있을지언정 개인의 미래는 매 순간의 판단과 선택과 노력으로 ‘정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학연금을 받게 될 20년 뒤에는 인구구조상 사학연금 급여가 반 토막 날 가능성이 크다며 별도의 노후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무리 사회적 미래가 암울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해도 개인의 미래는 ‘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44세에 좌천된 소동파가 철저하고 체계적인 절약과 황무지를 개간해 몸소 농사를 지으며 고난을 헤쳐 나갔듯이(전원시를 많이 쓴 중국의 고대 문인들 중 장기간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도연명과 소동파 둘뿐이다), 현재의 삶이 고달프다고 욜로(YOLO)만 부르짖다간 언덕 너머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초원 같은 후반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외면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우를 최소화하고 우리의 인생을 만개시키는 데 IRP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출산·고령화시대 자조노력연금의 대명사로 우뚝 설 IRP를 남이 아니라 내 잔칫상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철저히 파보고 스마트하게 이용해야 한다.
IRP란 무엇인가?
원래 IRP는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급여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 축적해나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문용어로는 통산장치(portability)라고도 부른다. 애초에 IRP는 퇴직(일시)금을 수령한 퇴직 근로자와 퇴직연금제도에 가입한 재직 근로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7월 26일부터는 자영업자,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와 1주 소정근로시간(所定勤勞時間)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 등의 퇴직급여제도 미설정 근로자, 퇴직금제도 적용 재직 근로자, 공무원·군인·사립학교교직원·별정우체국직원 등 직역연금제도 가입자들도 가입할 수 있도록 IRP의 문호가 활짝 열린 것이다. 사실상 모든 취업자가 IRP에 가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2017년 6월 말 현재, IRP 가입 건수는 226만 6000건이고, 적립금액은 13조6928억원에 달한다. 적립금액 기준으로 2016년 성장률은 14.1%로 다소 주춤했지만 2015년과 2014년에는 각각 44.3%와 24.8%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가입 대상이 크게 확대됨으로써 이전 수준의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IRP의 높은 성장률과 자조노력연금 대명사의 역할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IRP에 해당하는 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가 이미 2010년에 DC(확정기여)형을 추월해 퇴직급여제도 중 가장 큰 적립금 규모를 자랑한다. 2017년 3월 말 미국 IRA의 적립금 규모는 8조2000억 달러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IRP를 iDeCo라고 부르는데, 2017년 6월 말 가입자 수는 54만9943명에 불과하지만, 최근 자영업자는 물론 학생·전업주부·공무원·회사원 등 20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면 누구나 IRP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가 대폭 확대되었다. 명실상부 전 국민적 노후준비수단으로 격상된 것이다. 바야흐로 IRP가 글로벌 대세로 부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결국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지금 당장 살림이 쪼들리는 사람들에게도 노후는 중요하다. 일일 생활비를 아껴 단지에 모아놨다 손님 접대비로 사용했다는 소동파처럼 돈이 부족한 사람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IRP에 가입하면 의외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바로 압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민사집행법에서는 급여채권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연금채권은 전액 압류금지채권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2014년 1월 23일) 이후 퇴직연금은 급여압류 대상채권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IRP는 퇴직연금의 한 종류다.
IRP에는 어떤 혜택이 있나?
IRP의 가장 큰 혜택은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금융상품에 가입하면 발생한 이자(배당 포함)에 대해 15.4%의 이자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IRP에 가입하면 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3.3~5.5%의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 이자소득세만큼 적립액이 늘어나고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IRP에는 연금저축과 합산하여 연간 18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보통 세액공제 한도액인 700만원까지 납입을 권유받거나 그렇게 납입하는 가입자가 많은데, 세액공제액을 초과하는 1100만원을 잘 활용하면 의외의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1100만원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는 못하지만 소득세를 절감할 수 있고, 중도해지나 연금을 받을 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요즘 보기 힘든 비과세 상품인 셈이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는 분들은 IRP 납입 최고한도액을 적극 활용하면 노후가 든든해질 것이다. 참고로 연금소득세율은 연령별로 다른데 연금소득자가 70세 미만인 경우는 5.5%, 70~79세는 4.4%, 80세 이상은 3.3%다. 단, 연금소득자가 70세 미만이더라도 종신연금을 신청하면 4.4%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IRP의 두 번째 혜택은 연금저축과 합산해 연간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IRP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400만원까지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비해, 연금저축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IRP에 가입하면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근로자 등 급여소득자의 세액공제율은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사람은 16.5%를, 이를 초과하는 사람은 13.2%를 적용받는다. 자영업자 등 종합소득세를 적용받는 사람들의 세액공제율은 4000만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16.5%, 초과하는 사람은 13.2%다. 연간 700만원을 납입할 경우 연말정산 때 16.5%를 적용받는 사람은 115만5000원을, 13.2%를 적용받는 사람은 92만4000원을 돌려받는다([표1] 참조). 쏠쏠하지 않은가?
IRP에 대한 세제혜택은 또 있다. 바로 퇴직금을 IRP 계좌에 넣어두고 운용하다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30%나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연금수급 자격에 대해선 [표2] 참조). 많은 사람이 퇴직할 때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간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금 규모와 근속기간에 따라 0~28.6%의 퇴직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실제로 받는 퇴직금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다. 그러나 퇴직금을 IRP 계좌로 이체한 뒤 연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소득세율의 70%만 연금소득세로 납부하면 된다. 퇴직소득세 대비 연금소득세가 30% 절감되도록 소득세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하더라도 60일이 경과되지 않았다면 이미 납부한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금융기관을 방문해 IRP 계좌를 개설한 뒤 수령한 퇴직금을 이체하면 퇴직한 회사에서 원천징수해둔 퇴직소득세를 IRP 계좌에 입금시켜주기 때문이다. 만일 퇴직금 중 일부를 사용했다면 남은 금액만 IRP 계좌에 입금해도 입금비율에 맞춰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IRP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세액공제한도를 초과해 납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세액공제한도 초과분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를 면제받는 혜택이 있을 뿐 아니라 다음 해에 세액공제를 신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을 넘는 근로자가 2017년에 1000만원을 납입했다면 당해 연도에 700만원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고, 2018년도에 300만원을 이월신청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보너스를 받을 경우에 활용하기 좋은 방법이다.
IRP에 가입할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바로 중도에 해지할 경우 이미 세제혜택을 받은 납입금액은 물론 운용수익까지 16.5%의 기타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망, 해외 이주 등 세법상 부득이한 인출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 인출액에 대해 세율이 낮은 연금소득세(3.3~5.5%)가 적용된다. 사유 발생일 이후부터 6개월 이내에 증빙서류를 갖춰 금융회사에 신청하면 된다. 한편 IRP에 가입해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때 연금수령한도를 초과해 수령하는 경우 한도초과금액에 대해 16.5%의 기타소득세가 부과된다. 연금수령한도는 연금개시 신청일 당시의 적립금을 ‘11-연금수령연차’로 나눈 뒤 1.2를 곱해 계산된다. 예를 들어 연금개시 신청일 현재 IRP 적립금 평가액이 5000만원이면 첫해 연금수령한도는 ‘5000만원/(11-1)×1.2=600만원’이 된다.
IRP 가입과 적립금 운용은 어떻게?
절세상품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절세덩어리인 IRP는 매우 매력적이다. IRP 가입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신분증과 [표3]과 같은 필요서류를 준비해 금융기관을 방문하면 그만이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온라인으로도 가입할 수 있으니 업무시간 중 금융기관을 방문하기 힘든 사람들은 이를 활용하면 된다. 계좌를 개설할 때는 0원으로도 가능하다. 계좌를 개설했으면 그다음은 계좌에 들어갈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표4]에서 보는 것처럼 IRP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도 있고, 선택할 수 없는 상품도 있다.
특히 투자형 상품을 선택할 때는 수익률과 리스크를 잘 따져야 한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현재의 수익률이 미래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수익률만 보고 펀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의 수익률과 함께 수익률 추이,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 수준, 펀드운용 시스템, 자산배분, 수수료 수준 등을 잘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금융기관별 수수료율과 장기(5년/8년) 연평균 수익률은 노동부 퇴직연금 홈페이지에 공시되어 있다.
만약 이미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이 최근 나빠졌다면 다른 펀드로 갈아타자. 이를 위해선 최소한 3개월에 한 번씩은 수익률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손성동(孫盛東)한국연금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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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 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내가 바로 서야 가족이 바로 선다!’ 진부해 보이는 것 같은 이 말 속에 5070세대의 자아가 녹아들어 있다. 진부하다고 아재 자아로 치부하면 안 된다. 말이 진부하다고 5070세대의 인생이 진부한 것은 절대 아니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 어느덧 20~30년이나 훌쩍 지났다. 쏜살같은 세월의 빠름에 총총하던 눈빛은 노안으로 시들고, 숯덩이 같았던 머리칼은 반백으로 눈부시다. 그 덕분인지 미약한 바람에도 쉬 꺾일 것 같았던 연한 연둣빛 새싹 가족이 짙푸른 이파리가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재목으로까지 자랐다. 이를 바라보는 5070세대의 마음속엔 뿌듯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기분이다. 그 구멍으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면의 아이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 아이의 얼굴을 마주 보노라면 뿌듯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허함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 공허함과 함께 ‘나는 누구란 말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는가?’ 등의 질문이 솟구쳐 오른다. 이는 내면의 아이가 자신을 어루만져 달라는 메시지다. 5070세대가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행복한 노년을 일궈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애써 외면해왔던 내면의 아이와 잘 지내야 한다.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사주며 달래듯 나의 내면의 아이도 그렇게 달래야 한다. 어떻게 달랠 것인가? 내면의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면 된다. 일반적으로 명상을 많이 권하지만, 오롯이 자신을 위한 소비도 내면의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나 중심 소비’라고 해서 내가 원하는 물품을 맘껏 사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런 소비는 내면의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세파에 찌든 겉모습의 내가 원하는 소비일 가능성이 높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소비로는 내면의 아이를 달랠 수 없다. 오히려 공허함만 깊어질 뿐이다. ‘나 중심 소비’에는 좀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나 중심 소비’를 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았던 커다란 가치를 발견하고 큰 성취를 이룰 수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잃어버린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청소년은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주변인이다. 이 때문에 정서적 동요가 심하다. 그 동요가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중년이라 불리는 5070세대 역시 주변인이다. 패트리샤 코헨이 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년은 “젊음에 집착하면서도 노년으로 흘러넘쳐 들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중년 역시 질풍노도에 휘둘려 이리저리 떠돈다. 청소년의 질풍노도가 생물학적 특징에서 기인한다면 중년의 질풍노도는 다분히 사회적, 개인적 상황에서 기인한다. 청소년이 학업을 통해 질풍노도의 시기를 넘어가듯, 중년 역시 집중할 대상이 필요하다.
몽테뉴는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빈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다면 수만 가지 쓸데없는 잡초만 무성해진다. 이 땅을 유용하게 이용하려면 이것을 개간해서 씨를 뿌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정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정신은 어떤 문제에 전념하도록 제어하고 강제하는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이런저런 공상의 막연한 들판에서 흐리멍덩히 헤매게 된다.(중략) 마음은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처럼, 사방에 있다는 것은 아무 곳에도 있지 않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중년이 정신적으로 집중할 것은 바로 잊고 있었거나 잃어버렸던 꿈을 되살리는 일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에서 중년의 꿈 찾기는 몽테뉴가 말하는 비옥한 땅을 개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년의 풍부한 사회적 경험은 그야말로 비옥한 땅이다. 이 땅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도록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어릴 적 꾸었던 꿈에 그동안 모아온 자산의 일부를 과감히 헐어 사용해야 한다. 자식에게 물려줄 돈이라며 아끼다간 중년의 기름진 경험에 잡초만 무성하게 된다.
자식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떳떳하지 못한 노년으로, 그야말로 꼰대로 늙어갈 뿐이다. ‘나 중심 소비’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다. ‘나 중심 소비’는 잃어버린 꿈을 찾아준다.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자신에 대한 투자다
꿈을 찾기 힘들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누구나 하나 이상의 재능은 타고 나는 법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내가 잘했던 일, 남으로부터 칭찬받았던 일이 분명 한두 개 정도씩은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찾아내어 더 잘할 수 있도록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김경록 소장은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거 우리는 퇴직 후 여명이 짧다 보니 별다른 생각 없이 지냈다. 하지만 이제는 3년을 투자하면 20년 이상을 써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성과 기술로 무장된 1인 1기는 고령화를 헤쳐갈 안전벨트가 된다.”
이런 점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자산을 사용하는 ‘나 중심 소비’는 자신에 대한 투자의 다른 말이다. 투자 성격의 ‘나 중심 소비’는 생활의 활력소이자 든든한 노후지킴이를 만들어준다. 정년 이후에도 일정한 현금흐름을 계속 창출해주므로 노후빈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식에게 민폐 끼칠 염려도 없다. 오히려 자식과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는 멋진 부모, 조부모로 대접받을 수 있다. 꽤 괜찮은 투자 방법이지 않은가?
소비를 지혜롭게 하면 기대 이상의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믿음이 없이 그냥 내지르는 소비는 ‘나 중심 소비’의 허울을 뒤집어 쓴 세태 추종적 소비일 뿐이다. 괴테는 에서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신뢰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신을 믿고 ‘나 중심 소비’에 도전하는 5070세대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밝힐 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도 희망을 준다.
망망대해에 고깃배 한 척이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떠 있다. 주변에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바다에 튕겨 하늘로 솟아오르는 빛의 잔치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배를 때리는 파도소리만이 심해와 같은 적막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바다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팽팽한 긴장감으로 서늘한 느낌마저 든다.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온 고깃배가 자동항법장치와 통신장비의 고장으로 항구로 돌아가지 못한 채 닻을 내리고 구조되는 행운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를 할 수도 있지만 연료가 소진되기 전에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선원들은 잘 알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 실린 음식물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현재 우리나라 퇴직연금 가입자들도 좌표를 잃으면 망망대해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의 선원들처럼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원리금보장 상품에 몰린 퇴직연금 적립금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우리나라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전년 말보다 16.3% 늘어난 147조원이다. 이 중 약 131조원, 즉 전체 적립금의 89%가 원리금보장 상품에 몰려 있다.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되어 있는 적립금은 10조원 정도로 전체 적립금의 6.8%에 불과하다. 나머지 4.2%는 운용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성 자금이다. 대기성 자금은 운용 지시가 있을 때까지 원리금보장 상품에 보관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전체 적립금에서 원리금보장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95.8%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경우 사실상 자산배분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산배분은 위험과 수익구조가 상이한 상품에 분산투자함으로써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여러 개의 원리금보장 상품에 적립금을 나누는 것은 자산배분이라 할 수 없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원리금보장 상품에 집중된 결과 2016년 총비용 차감 후 퇴직연금 적립금 수익률은 1.58%에 머물러 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 수익률인 셈이다. 원리금보장 상품의 수익률은 1.72%, 실적배당형 상품의 수익률은 -0.13%이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안전지향적 적립금 운용 형태는 적어도 2016년만 보면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장기수익률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2016년 기준으로 5년 연환산 수익률과 8년 연환산 수익률은 2.83%와 3.68%로 1년 수익률보다 각각 1.25%p와 2.10%p 높다. 이는 과거의 원리금보장 상품 금리가 지금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8년 수익률만 놓고 보면 실적배당형 상품의 수익률(5.61%)이 원리금보장 상품의 수익률(3.05%)보다 2.56%p나 높다. 수익은 위험의 대가라는 기준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역사적 저금리 기조와 길어진 수명에 대한 인식이 많이 제고된 그간의 상황을 감안하면 원리금보장 상품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경도되어 있는 우리나라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행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이는 닻을 내리고 구조의 행운을 기다리고 있는 고깃배 선원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상이 우리나라 퇴직연금시장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원인은 아주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단순하다. 퇴직연금시장의 적립금 운용 관련 행태와 인간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뇌 구조라는 양 측면에서 살펴보자.
목표가 없는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먼저 우리나라 퇴직연금시장에서 가입자의 적립금 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자. 자신이 적립금 운용에 대한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에 가입한 근로자는 사용자가 납부한 부담금을 어떤 방식으로 굴릴지 결정을 해야 한다. 이를 운용 지시라고 부른다. 앞에서 살펴본 원리금보장 상품과 실적배당형 상품이 바로 운용 지시의 결과물이다. 감독기관의 통계는 이처럼 아주 단순하게 집계해 발표되지만 원리금보장 상품에도, 실적배당형 상품에도 수많은 상품들이 존재한다. 개별 가입 근로자가 수많은 상품을 일일이 비교해 자신에게 적합한 상품을 고르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운용관리기관이라는 퇴직연금사업자가 선별해 제시하도록 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도다.
퇴직연금사업자는 상품을 제시할 때 원리금보장 상품과 실적배당형 상품을 함께 제공한다. 이를 상품 라인업이라고 하는데, 가입 근로자는 라인업된 상품 중에서 자신의 적립금을 굴릴 상품을 선택한다. 모든 사업자는 두 부류의 상품을 함께 제시하며 자산배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배분이 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바로 자산배분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적배당형 상품에 적립금의 일부라도 배정하면 자산배분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자산배분은 목표수익률을 정하고 가입자가 감내할 수 있는 위험수준 내에서 목표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적립금을 다양한 상품에 분산투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산배분의 핵심은 목표수익률을 정하는 것인데, 희망하는 목표수익률을 묻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우리나라 퇴직연금시장의 현주소다.
정확한 목표수익률을 정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별로 노후 준비에서 퇴직연금이 차지하는 몫을 계산하고 현재의 퇴직연금 부담금 규모와 앞으로의 전망치, 예상되는 가입기간, 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근로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인 퇴직연금사업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퇴직연금사업자는 이런 역할을 포기하거나 모른 체하며 “저금리 시대엔 실적배당형 상품을 편입해야 합니다! 중위험·중수익 투자가 필요합니다!” 등의 쉬운 방법을 동원한다. 이 정도 방법과 노력으로 ‘퇴직금은 손해보면 안 된다!’는 강고한 유산을 깨트릴 수 없음은 원리금보장 상품에 극도로 치우쳐 있는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근로자별로 목표수익률을 쉽게 산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발 및 운영 인력 등 투자가 필요하다.
동물적 특징에 지배당하고 자극하는 현실
인간의 역사는 선택의 역사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등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선택은 심사숙고 끝에 내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있다. 또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선택도 있다. 어쨌든 수많은 선택들은 인간의 뇌에서 이뤄지는 신경학적 반응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뇌에서 선택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전두엽(frontal lobe)과 대뇌변연계(limbic system)다. 전두엽은 대뇌반구 앞에 있는 부분으로 이마엽이라고도 한다. 전두엽은 인간의 역사에서 볼 때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15만 년 전에 발달한 뇌의 한 부분으로서 합리적 판단과 장기계획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뇌변연계는 대뇌반구 내측 벽의 대뇌피질 아래에 고리처럼 감겨 있는 부분으로, 인간의 감정적·본능적 반응을 담당한다. 대뇌변연계는 작은 위험신호라도 감지되면 즉각적인 36계를 종용함으로써 인간의 생존을 담당해온 중요한 부분이다. 즉 전두엽은 우리에게 장기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만, 대뇌변연계는 즉각적인 만족을 얻는 것을 요구한다. 퇴직연금처럼 장기간 운용해야 하는 자금은 전두엽의 결정을 따르는 게 맞지만 대뇌변연계가 자꾸 훼방을 놓는다.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은 이란 책에서 “인간은 주로 대뇌변연계에 따라 움직이며 즉각적인 만족에 굴복하는 경우가 많다. 삶이 험악하고 야만스럽고 짧은 경우에는 즉각적인 만족에 굴복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기대여명이 길어지고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결정을 하려면 합리적인 전두엽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좀 더 현명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퇴직연금은 장기자산이니 자산배분을 통해 적절히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높은 기대수익을 추구하는 게 맞다고 전두엽은 말하지만, 대뇌변연계는 퇴직연금은 안전하게 굴러야 하니 원리금보장 상품에 넣어두라고 고집을 부린다.
우리는 은연중에 대뇌변연계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개미투자자들의 실패한 투자 경험도 한몫한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이런 성향을 부채질하기라도 하듯 퇴직연금사업자들은 금리가 1bp(0.01%)라도 높은 원리금보장 상품을 제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한 퇴직연금 가입자의 속성과 영업실적에 대한 부담을 무시할 수 없는 퇴직연금사업자의 속성이 맞물려 나온 결과가 원리금보장 상품 일변도의 적립금 운용행태인 셈이다.
퇴직연금 잘 굴리려면?
‘100세 인생’이 약방의 감초처럼 일상 대화에 등장하는 요즘 퇴직연금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 수명연장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 한 후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공적연금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노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자조노력 연금시대도 거스르기 힘든 대세다. 노후의 재정적 안정은 퇴직연금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은 뻔하다. 공부를 해야 한다. 좋은 고과를 얻기 위해, 승진을 위해 내가 맡은 일과 관련한 지식을 습득하듯 금융과 연금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지난 호에서 말했듯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금융 지식이 해박한 투자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똑같은 수준의 리스크를 감내하면서도 연간 수익률이 1.3%p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주 큰 차이다. 만약 10만 달러를 10년 동안 투자할 경우 금융 지식이 많은 투자자들은 1만6000달러를 더 번다. 20년 동안 투자할 경우에는 4만2000달러를 더 벌고, 30년 동안 투자할 경우에는 14만5000달러를 더 번다는 결과가 나온다.
문제는 금융 지식이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있는 시대에 금융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퇴직연금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상품들의 수수료율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수수료율이 높다고 그 상품이 좋은 상품이고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금융 회사들이 제시하는 표면적인 금리수준이나 기대수익률 또는 과거의 성과만을 보고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수수료율을 체크포인트의 하나로 꼭 첨가하자. 개별 금융상품의 수수료 관련 정보는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확인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은 금융 지식과 연금 지식을 제고하는 좋은 방법임을 잊지 말고 실천하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을 법정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은 법적으로 보장된 가입자의 권리다. 이 권리를 내팽개치지 말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금융과 연금 지식을 제고하고 자산배분에 도전해보자. 자산배분을 했다면 그것에 안주하지 말고 주기적으로 자산배분 비율을 조정하는 리밸런싱을 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면 자산배분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거나 원리금보장 상품에 묻어놓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퇴직연금사업자는 가입자들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잘 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가입자들이 목표수익률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리밸런싱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상생의 길이다.
6개월 뒤면 강찬기(59세, 남)씨는 정년퇴직을 한다. 회사의 배려 덕에 퇴직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친 강씨이지만 아직 풀지 못한 미해결 과제 때문에 고민 중이다. 그의 고민거리는 다름 아닌 집안의 가계부다. 대부분의 남자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강씨 역시 생활비가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정년퇴직이 다가오자 주 수입원이 중단된 이후의 생활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강씨는 은퇴생활을 위한 개인 용돈과 아내가 원하는 생활비 모두를 해결하려면 퇴직 후에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부부가 식사를 하던 중 그는 아내에게 생활비 내역에 대해 물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내 김숙경(56세)씨는 대략의 생활비 규모만 얘기해줄 뿐 구체적인 내역은 복잡하다는 이유로 알려주지 않았다. 의외로 강경한 아내의 태도에 강씨는 당황스러웠다. 혼자 전전긍긍하던 그는 주변의 권유로 재무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부부의 필요 은퇴자금 계산
상담 의뢰는 강찬기씨가 했지만 상담이 시작될 때는 부부가 함께했다. 은퇴상담은 부부가 함께하면 더 도움이 된다는 상담사의 제안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상담의 첫 주제는 ‘은퇴 후 부부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얼마나 될까?’였다. 아내 김숙경씨는 현재 가치로 매월 350만원이면 본인 용돈을 포함해 가정의 생활수준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강씨는 본인이 원하는 은퇴생활을 하려면 매월 150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또 퇴직 후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과 사회활동을 충분히 하기를 원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강씨는 강씨대로 각자 원하는 은퇴생활비의 규모를 알고 놀라워했다. 일단 부부가 원하는 매월 500만원(현재가치)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은퇴자금 규모를 계산해보기로 했다. 생활비에는 매년 3%의 물가상승률이 반영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리고 투자 성향이 보수적인 부부의 성향을 고려해 현재 자산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세후수익률 연 1.5%로 운영된다고 가정했다. 부부의 은퇴기간은 30년으로 예상했다.
부부가 원하는 은퇴생활을 하려면 약 22억4000만원이 있어야 한다는 결과에 강찬기씨 부부는 두 번째로 놀랐다.
은퇴를 대비해 준비된 자산
다행히 강찬기씨는 직장생활을 정년까지 한 덕분에 국민연금으로 매월 130만원 정도를 수령할 수 있다. 퇴직연금과 아내가 개인적으로 가입해둔 개인연금도 있어 매월 120만원의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매월 250만원 정도의 연금소득을 고려해 필요한 은퇴자금을 다시 계산해보니 14억 정도의 자산이 더 필요했다. 은퇴준비자산을 계산할 때,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만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현재 보유 중인 주택(10억)과 예금(2억)을 합해도 2억원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자녀의 결혼자금(자녀 1인당 1억씩 예상)도 고려해야 한다. 몇 번의 계산 시뮬레이션을 더 거쳐 필요 자금 규모를 확인한 부부는 예상 지출내역을 세부적으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부부가 지출내역을 정리할 때 참고한 양식은 [표2]와 같다.
전화위복이 된 재무상담
부부가 함께 지출내역을 정리하는 동안 강찬기씨는 아내의 알뜰함에 놀라면서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김숙경씨 역시 한 직장에서 충실히 근무하며 가족들을 위해 경제적 터전을 마련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부부는 상담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준비된 자산으로 은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월 400만원 정도의 생활비가 적당하다는 데 합의를 했다.
부부가 각각 50만원씩 양보해 아내는 자신의 용돈과 생활비를 포함해 300만원, 남편은 100만원의 용돈을 사용하기로 했다. 친척 경조사비나 외식비 등 가정의 공통 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항목들을 부부가 동시에 지출로 잡아놔 예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부부는 지출내역들을 정리해보며 예산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그리고 사소한 다툼의 원인이었던 경조사비나 외식비 그리고 문화비 등의 예산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지출 기준과 규모를 합의함으로써 향후 다툼의 소지를 예방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자칫 부부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생활비 문제로 재무상담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고 전화회복의 기회도 되었다. 더불어 강찬기씨는 자신이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부부는 역할과 스타일은 달랐지만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배우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두 사람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부는 새로운 30년을 더 잘 이해하며 살아가자는 취지에서 부부심리상담까지 받기로 했다.
총 10회로 구성된 부부상담의 예상비용은 150만원. 올해 계획 중이던 남편의 정년기념 여행비로 충당하기로 했다. 강찬기씨 부부는 정년퇴직 기념여행을 ‘내면 여행’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100세 시대엔 자산관리도 평생 동안 해야 한다. 평생학습처럼 평생 자산관리 시대다. 평생학습이 정신적·심리적 강장제라면 평생 자산관리는 재무적·경제적 예방주사이자 영양제다. 지금까지 일만 하면서 살아온 것이 억울해 앞으로 열심히 놀고 싶은데 자산관리를 평생 하라니…. 원통한가? 그러면 곤란하다. 평생 자산관리는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인생을 보다 의미있고 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의식주는 당연한 일이고 사회활동을 하는 데도 돈이 든다. 노후에 몸이 아파도 큰일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평소 건강관리를 하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아무리 초연해지려고 해도 돈이 없으면 건강도 챙기기 힘들고 하고 싶은 일 하기도 어렵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
특별한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돈 걱정 없는 노후의 삶을 바란다. 특별한 사람의 대표적 사례는 톨스토이다. 그는 돈을 매우 싫어했으며, 평생 가난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돈이 그를 너무 사랑해 한 번도 가난해진 일이 없었다. 결국 그는 가난한 삶을 찾아 길을 떠났고 객사하고 말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는 돈을 매우 좋아했으며 평생 부자를 꿈꾸었다. 글도 돈을 벌기 위해 썼으며, 선금을 주지 않으면 작품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그는 물질적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인 두 사람의 삶은 왜 이렇게 극명하게 갈렸을까? 톨스토이는 돈이 마를 수 없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그 재산을 물려받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원고료를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 기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도박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다.
톨스토이가 모든 재산을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건전한 삶을 살았다면 꿈을 실현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요즘 말로 하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오! 저런!’과 ‘오! 이런!’
“자식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오! 저런!’을 모릅니다.” 로 잘 알려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본을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인이 그에게 해준 말이다. ‘오! 저런!’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쓰라린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이런 극단적인 일 말고도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단말마처럼 ‘오! 이런!’을 내뱉는다. 리스크 관리는 바로 ‘오! 이런!’의 빈도를 줄이는 일이다.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노후자산 관리의 핵심은 돈과 죽음의 경주에 있다. 다시 말하면 돈의 고갈 시점이 더 빠르냐, 생명의 소진 시점이 더 빠르냐를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돈과 죽음의 랠리는 흔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비교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긴 것은 토끼가 도중에 잠을 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죽음의 경주는 다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없다. 돈은 빠져나가는 속도는 너무 빠르다. 쉬어가는 법도 없다. 가끔은 키다리처럼 보폭이 커지거나 아예 도약대를 딛고 날아오르는 체조선수처럼 큰 점핑을 하기도 한다. 그 속도와 높이를 쉽게 따라갈 수가 없다. 반면 생명의 소진 속도는 너무 느리다. ‘오! 이런!’
돈과 죽음의 경주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늦추거나 돈 뭉치를 크게 만들면 된다. 많은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익률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한다. 자산관리가 바로 그것이다. 자산관리는 소득과 지출 수준, 자산과 부채 규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2040세대에게도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고, 5070세대에게도 수익률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산관리의 무게 중심이 2040세대는 수익률에, 5070세대는 리스크 관리에 둬야 한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말하면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5070세대가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3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5070세대는 현금 유입이 급감하거나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을 하면 월급이 끊어진다. 퇴직 후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돈 뭉치를 키우기 위해 수익률 높은 곳을 찾아 기웃거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별일 없으면 다행이지만 리스크가 터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키우려고 한 돈 뭉치는 더욱 쪼그라들고 생활은 불안해진다. 현금이 계속 유입되는 2040세대는 리스크가 터져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그 자산을 사들임으로써 가격상승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이른바 물타기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금 유입이 급속히 줄어드는 5070세대는 그럴 여유가 없다. 수익률보다는 리스크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둘째 급감하는 현금 유입에 비해 지출의 규모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현금 유입이 줄어든다고 해서 지출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고정비에 가깝고, 나이가 들면 몸 여기저기서 돈을 요구한다. 게다가 장성한 자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더해지면 설상가상이다. 노후가 길어진 만큼 지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만약 연금이 줄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장기적으로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자산관리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화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기술의 수용 속도를 보면 라디오 38년, TV 13년, 아이팟 4년, 인터넷 3년, 페이스북 1년, 트위터 9개월 등이다. 변화를 이끄는 신기술에 대한 수용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세대를 가르는 시간 기준 역시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 세대를 구분할 때 30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후 20년에서 10년으로 짧아지더니 최근에는 5년까지 짧아졌다. 한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4~5년이면 세대 간의 차이와 거리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변화는 곧 리스크다. 자산관리에서 리스크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