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미난 일도 없고 밥맛이 자꾸 없어져.”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만 있으니 날로 스트레스만 쌓여.”
“이제 자식도 다 크고 할 일 했으니 혼자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시니어들이 만나면 흔히 하는 말이다. 몇 년 계획을 세우고 노년 준비를 했지만 자꾸 움츠러드는 기분…. 신체적, 정신적 변화 때문에 오는 우울 증상이다. 취미로 운동이라도 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미 그 한계를 벗어난 감정도 있다. 서울 서초구 소재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에게 우울증과 치료 방법에 대해 자문해봤다.
독거노인 문제 우울증으로 이어져
우울증을 앓는 시니어가 꽤 많은가요? 주요 증상은 어떤 게 있나요?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 시니어 조울증 환자와 우울증 환자가 30~40%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조증은 기분이 갑자기 업(UP)되거나 자신감이 생기고 말수도 많아지고 돈을 많이 쓰는 행동들을 해요. 술을 안 먹었는데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 정도가 심하면 의심해볼 수 있죠. 우울증은 기분이 가라앉고 수면 부족과 식욕의 변화가 일어나는 게 대표적입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책을 하고 걱정이 많아지는 등의 증상을 보입니다. 모든 일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것도 증상 중 하나입니다.
노인 우울증은 왜 생기는 건가요?
생물학적, 즉 신체적 변화가 큰 요인이에요. 당뇨나 고혈압, 외과 질환 등이 생기면서 치료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경제적인 부담, 은퇴 후 환경 변화 등도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남편이 은퇴 후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갈등을 겪는 부부도 많습니다. 독거노인 문제도 우울증과 연관이 깊어요. 당장 혼자가 되면 연세가 있어도 자식들과 같이 지내기 부담스러워 따로 지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스트레스를 받는 어르신들이 결국 삶의 터전을 떠나 자제분들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고민이 있다면 상담을 해야 해요. 이성 문제, 성적인 불만족, 갑작스런 신체적 변화도 우울증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해요.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면서요?
직접치료비, 간접치료비, 우울증 때문에 경제활동을 못해서 생기는 비용 등이 사회적 비용입니다. 국내 우울증 환자 수가 60만 명 정도이고 항우울제 시장은 2016년 기준 약 1456억원 규모입니다.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2007~2011년 사이 40% 이상 급증했어요. 국민 4명 중 1명꼴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시니어들은 어떤 증상들을 주로 호소하나요? 특별한 유형이 있나요?
‘걱정이 많아졌다’는 말을 지인들에게서 듣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이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봐야 합니다. 물론 이런 증상이 일시적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만큼인지가 우울증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많죠? 우울증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나요?
방치하면 할수록 치료가 더 어려워집니다. 고혈압, 당뇨 등도 초기에는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조절할 수 있잖아요. 우울증도 초기에는 취미생활이나 운동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약을 써도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증세가 심해지면 ‘자살’이라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임의로 약 끊으면 증상 더 심해질 수도
가면우울증은 무엇인가요?
우울한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 우울증을 흔히 가면(假面)우울증이라고 부릅니다. 우울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의욕 저하, 수면 저하, 식욕저하 등이 나타납니다. 특히 혼자 살거나 자녀들 눈치를 보며 사는 경우 가면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몸을 자주 움직이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건전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절성 우울증도 있다면서요?
계절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봄에는 기분이 업되었다가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나 겨울이 되면 가라앉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사가 귀찮고 예민해지는 건 일반 우울증과 같지만, 과다 수면을 취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흔히 계절성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발생했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워낙 재발률이 높아서 자칫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깊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자가진단법이 있나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우울증 자가진단법’이 많아요. 잘못을 저지르면 죄책감이 들면서 자책하게 되고, 만성두통이나 복통, 흉통 등의 증상이 지속되는 것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이런 증상만으로 우울증이다, 아니다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우울증 의심이 되면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을 어떻게 진단하나요?
우울증에 해당하는지 병력 산출을 통해 뽑아냅니다. 우울증은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데, 이러한 증상이 카페인이나 음주 등 외부적 요인 때문인지, 일시적인 스트레스 때문인지를 먼저 구별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단을 할 수 있습니다.
치료 방식은요?
주로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하는데 상담치료가 도움이 안 되는 환자들도 있어요. 그래서 약 처방을 주로 하고 증상이 좋아지면 약 복용을 중단하도록 합니다. 정신과 약은 오래 먹으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많다거나 의존성이 높아진다는 등 편견이 많은데 오해입니다. 이런 오해 때문에 먹던 약을 마음대로 끊으면 치료기간이 더 길어지기도 해요.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는 전기충격치료를 많이 했습니다. 주로 종합병원에서 하는 이 치료법은 우울증이 심할 때 효과가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치료 환경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아서 또는 환자가 겁을 내는 경우가 많아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
시니어들이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울한 감정을 키우지 않으려면 적당한 취미생활과 운동을 해야 합니다. 활발한 사회적 관계를 해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활동이 줄면 위축이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이 있을 때 가족과 이야기하기 불편하면 병원에 와서라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약물치료도 받고요.
초등학교 시절 필자와 친구들의 아지트는 등나무 밑이었다. 그런데 5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등나무 밑에 몇 명의 아저씨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작은 짐 보따리 앞에서 웅성거리다가 한 명이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열쇠를 가지고 와서 옆에 있던 건물의 쪽문을 열었다.
우리는 호기심에 모두 그리로 달려가서 안을 들여다봤다. 아저씨들은 상자를 열어 책을 꺼내기 시작했고 보따리를 풀어 옷들을 열심히 정리했다.
그때 아저씨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갔다가 또다시 그곳으로 갔다. 수십 번을 그렇게 하면서 놀이처럼 즐겼다. 나중에는 아저씨들이 주는 과자도 받아먹고 이름을 물으면 대답하면서 친해졌다. 어머니한테 얘기하니 자취생들이겠지 했다.
아저씨들은 가끔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했고 우리에게 동화도 들려줬다. 그 뒤 아저씨들이 서울대 1학년이라는 것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가 겨울방학이 되었고 그 다음해는 6학년이라 입학시험 대비로 바빠 아저씨들에 대해선 까맣게 잊은 채 중학생이 되었다. 중2 때 혼자 집에 오는데 한 아저씨가 “야아~ 너로구나 많이 컸네!”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부끄러움이 부쩍 많아진 필자는 그 말에 놀라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뛰어갔다. 씩씩거리는 필자에게 동생들이 “언니 왜 그래?” 하고 물었지만 “몰라!”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날부터 가끔 그 아저씨를 길에서 만났다. 자취생들 중 한 명이었는데 제대하고 복학했다고 들었다. 키가 무척 컸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별명이 개고기였다.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랑 얘기도 하고 동생들과는 시시덕거리다가 가곤 했는데 필자는 특별하게 할 얘기도 없어 무시하고 지냈다. 이후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 아저씨는 장학생으로 대학원까지 들어가 연구원이 되었다.
필자는 그 아저씨가 어느 과 학생이며 이름은 뭔지 동생들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당시 이성에 관해서는 무조건 멀리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형제가 없어 필자가 여동생이 되어줬으면 했던 거 같다. 물론 필자도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눈치만 보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필자가 결혼하고 몇십 년 뒤, 뜬금없이 개고기 아저씨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부터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개고기 아저씨가 떠올랐다. 뭔가 의논하고 싶을 때, 어려운 일을 겪을 때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는 오빠라는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어느 날 그 친구분을 어느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필자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고는 개고기 아저씨가 폐가 안 좋아 고생하다가 갔다는 얘기를 해줬다. 지금이라면 살갑게 대해줬을 텐데… 그렇게 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졌다. 친구와 묘소라도 찾아가볼 걸 그랬나? 왜 그런지 친구분을 만난 뒤로 개고기 아저씨 생각이 더 났다. 필자 오빠가 되어줄 사람이 이젠 영원히 떠나버렸다는 생각까지 들고, 아저씨가 “이제 내 마음 알겠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억울한 마음은 또 뭔지 알 수가 없고. 어쨌든 만나보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실이다. 이제는 마음껏 스스럼없이 굴 수 있는데… 아저씨가 이 세상에 없어 슬프다. 아니 그립기까지 하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면 그 사람은 ‘후성 나이’를 잘 조절해서 그렇다고 한다. ‘후성 나이’란 유전자에 새겨진 나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반대로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사람은 ‘연령 가속화 현상(Age Acceleration)’ 때문이라고 한다.
‘후성 나이’가 있다 하여 유전자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후성 유전’이라 하여 본인이 하기 나름으로 이것을 조절할 수 있다니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은 일반적으로 바라는 바이다. 늙었다면 그만큼 사회적으로 효용가치가 없어졌다는 얘기와 통하기 때문이다. 이성에 대한 매력에서도 젊어 보여야 상대의 관심을 받지, 늙어 보인다면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시대이다.
문제는 늙어 보이면 그에 따라 건강 역시 나빠진다는 것이다. 물론, 안색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얼굴 피부가 맑고 탱탱하면 젊어 보이고, 피부가 푸석푸석하거나 얼굴색이 맑지 못하면 그 사람은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후성 나이를 잘 조절하기 위해서는 식습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된장 고추장 나물 종류에 생선 과일 채소류에 닭고기, 오리고기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외국에 나갔을 때 실제 나이를 얘기하면 놀랄 정도로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다.
필자의 경우도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다만, 탈모 현상으로 벗겨진 앞이마 때문에 나이는 속일 수 없다. 피부는 젊어 보이는데 머리카락은 많이 빠졌으니 결국 제 나이로 보이는 것이다. 제 나이로 보인다는 것은 고령자 우대 사회에서 유리한 점도 많다. 전철을 탔을 때도 노약자 석에 버젓이 앉을 수 있어 좋다.
필자의 생각은 우선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얼굴도 젊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병이 예방되어 신체적으로 건강하다. 적당한 운동으로 땀을 배출하다 보면 몸 속의 노폐물이 빠져 나오고 근육은 탱탱하게 유지될 것이다. 다만, 마라톤처럼 자외선을 장시간 오래 받아 햇볕에 타거나 극한 체력을 요구하는 운동을 자주 하다보면 얼굴이 찡그려 진다. 힘들어 보인다.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한 사람도 나이 들어 보인다. 육체적 능력에 비해 소모가 많아서 인 것 같다.
다음으로는 정신적인 문제도 큰 것 같다. 나이 들면 스트레스가 없어야 한다. 스트레스는 환경적인 요인에서도 오지만, 자신의 성격과도 꽤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나이 들면 느긋해져라”라는 말은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별 것 아닌 일로 남을 미워하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일찍 늙는다. 공과금 납부처럼 돈 낼 일 있으면 빨리 조치하고 나면 마음속이 개운하다. 찌꺼기가 쌓이지 않도록 항상 머릿속을 가볍게 하라는 얘기이다.
입고 다니는 옷도 칙칙한 무채색보다 밝은 색을 입는 것이 얼굴이 환하게 젊어 보인다. 후줄근한 추리닝이나 등산복 차림보다는 가끔 깔끔한 옷을 입어 보면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상당히 중요한 팁으로, 남자들도 여자들처럼 피부 관리를 한 번 쯤은 받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승꽃이라 불리는 검버섯은 옅게 할 수 있고, 나이 들면 생기는 검정깨알 같은 점인 편평 사마귀 등은 피부 관리로 간단히 제거할 수 있다. 몇 십만 원짜리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아내에 비해 그리 큰돈도 아니므로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경제적으로 부담된다면, 자녀들에게 환갑이나 칠순 잔치 대신 피부 관리 한번 받게 해달라고 하면 된다. 천하의 정주영 회장도 검버섯을 없애지 못하고 갔지만, 시대가 좋아져서 이제는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외도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아내와 남편이 아닌 상대와 성관계를 갖는 일로 바르지 아니한 길이나 노릇이라고 설명돼 있다. 배우자의 허락이 없는 이성과의 성관계가 있을 때 외도라고 본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지인의 아내는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어느 날 “당신을 사랑하지만 여자 없이는 못 살겠다”고 말했단다. 그 후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외도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아내가 모르는 편이 낫다는 것이 필자의 마음이다.
외도는 명백한 잘못이고 문제인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 같다. 외도는 뭔가 허전하거나 불만족스러울 때, 그리고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을 때 일어나곤 한다. 무심한 지경이 지속될 때 어디에 무지개가 없을까 하며 기웃대는 행위가 외도다. 어디에선가 햇볕 같은 위로를 받아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나를 지지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오매불망해보는 것이다.
어쩌다 감정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 서로 잠자리를 나눌 수 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외도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구구한 이유를 갖고 있다. 남자에게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욕구가 여성보다 더 많다는 잠재적 이유가 있을 테고, 여자에게는 반드시 결핍 동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돈을 제대로 안 벌어다 주거나 신뢰가 무너졌을 때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배우자와는 엄청 다른 사람이라는 착각과 편견을 갖게 된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로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로뎅의 작품이라며 감상을 요구했더니 혹평을 했다. 그래서 사실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했더니 줄행랑을 쳤다는 일화가 있다. 이런 편견들은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곤 한다.
외도가 발각됐을 때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부부가 이혼을 하는 이유의 49.3%는 배우자의 외도였다. 이렇게 가정이 파괴되는데도 애인이 없으면 심지어 불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외도는 잠시의 상쾌한 느낌일 뿐이다. 외도 호르몬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한 번의 만남으로 정나미가 떨어질 수도 있고, 이런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외도로는 일상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필자의 친구는 남편이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자기와 성관계를 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모습에서 깊은 사랑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 한눈팔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상대를 믿고 진심을 다해 살면 된다. 부부간에는 속 깊은 대화가 더 많아야 한다. 사실을 추궁하고 상대의 마음을 쓸데없이 확인하면 점점 상대가 부담스러워지고 숨기는 것들이 많아진다. 또 그런 모습을 눈치 채면서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이때 벌어진 틈으로 외도라는 바람이 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변덕스럽고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바람이다.
고도(古都) 이스탄불을 여행하다 보면 도시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구도심으로 들어가면 원시시대에나 형성되었음직한 좁은 미로들이 오밀조밀하고 그 외곽으로는 동로마시대의 유적이 아직 남아 있다. 현대적인 도시는 멀찍이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이 모든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원시시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 뇌의 구조도 이와 꼭 닮았다. 인간의 뇌도 창조론자들이 들으면 고깝게 여길지 모르나 어느 한순간 누군가의 설계로 짠! 하고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진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뇌가 형성된 것이라는 말이다. 즉 편도체와 같은 파충류 시절의 뇌에서부터 포유류의 뇌를 거쳐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한 전두엽까지 꾸준히 중첩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이 복잡한 것은 그래서 다 이유가 있다.
인류의 역사를 억압의 역사로 본 견해는 탁월하다. 인간의 뇌 발달 과정이 곧 이전 뇌를 제어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이성과 각종 문화, 예술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원시적인 본능의 뇌를 점점 억압해왔다는 말이다. 인간의 문화와 문명은 결국 저 깊숙이 내재된 본능의 발현을 최대한 억제하는 기제가 된 것이다.
시작이 장황했다. 그러나 외도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인간의 전모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외도를 꿈꾼다.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뇌에 그렇게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강력한 전두엽의 조종으로 이성을 동원해 억제하고 있을 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인간이 본능의 세계와 결별하기 위해 선택한 눈물겨운 제도인 셈이다.
그러나 공고해 보이던 이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의심을 받는 것은 그 안에 부조리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종종 ‘작은집’을 두고 살았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들은 크게 저항하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살았다. 여성을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어두고 자신들은 원숭이 시절의 본능을 맘껏 누려온 셈이다.
외도가 꼭 원시적인 뇌의 산물만은 아니다. 전두엽으로 하는 외도도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의 외도를 꼭 성적 욕구의 산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문화와 문명은 새로운 아름다움과 매력을 생산했고 그런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안나의 탈출은 완고한 구제도의 모순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물론 그 보복은 잔인했지만.
쉽게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원시적인 뇌의 충동에서 일어나는 외도가 남성에 가깝다면 전두엽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외도는 여성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남성의 외도는 가정으로 회귀하기 쉬운 반면, 여성의 외도는 가정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두엽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외도는 결혼제도에는 치명적이라는 말이다.
억지로 막아놓은 둑은 오래가지 않는다. 법으로 막아놓은 간통죄라는 둑은 무너져버렸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선진국형 외도로 진화(?)해갈 것이 틀림없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미명하에 외도에 대해 관대해지고 있는 분위기는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외도라는 용어 자체에 결혼을 신성시하고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점차 솔로들이 많아지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터넷 검색창에서 ‘외도’를 치면 거제도 외곽의 작은 섬 외도가 뜰 만큼 우리의 외도는 그 세력을 잃어간다. 마치 지금은 사라진 원숭이 꼬리처럼 점차 퇴화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어쩌면 조만간 ‘외도’라는 언어가 ‘쿨(Cool)’이라는 말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다. “오! 외도여, 정녕 어디로 가시나이까?”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에는 중량감 있는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65세 사진작가 킨케이드 역으로 출연했고, 메릴 스트립은 가정주부 프란체스카 역을 맡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4일간 집을 비운 사이 킨케이드가 프란체스카의 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사랑에 빠져 정사를 나누고 갈등한다는 줄거리다. 중년의 외도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명화라며 칭찬하는 분위기다. 남녀 구분 없지만 특히 여성들이 더 열광한다. 언젠가 EBS에서 주말의 명화로 이 영화를 방영한다고 하자 주변 여성들이 꼭 보라며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안 본 사람은 꼭 봐야 하고 이미 본 사람도 다시 볼 만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시큰둥해했다. 서부영화에서 카리스마를 보이며 멋진 총잡이로 나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너무 늙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도 보기 안쓰러웠고, 그런 나이의 남자에게 프란체스카의 마음이 움직여 정사까지 나누게 되는 전개도 큰 공감이 되질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며 같이 도망가서 살자는 킨케이드의 유혹도 도덕적으로 용서하기 어려웠다.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별 불만 없이 살고 있었고 아이들까지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가 가정을 버리고 킨케이드를 따라나섰다면 돌팔매를 당할 만한 줄거리였다.
여성들이 남편의 외도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 영화에 대한 평가에 관대한 것을 보면 대리만족이 아닐까 한다. 영화에서는 되고 현실에서는 안 된다는 이중 잣대인 셈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의 외도에 대한 조사 자료는 많다. 남자들의 외도율은 매우 높다. 여성들도 남성들보다는 낮지만 꽤 높은 수준이다. 통계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신뢰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 주변의 남자들이 예외 없이 외도 경험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은 성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성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군대에 입대한, 성 경험이 없는 졸병들에게 부대 인근의 매춘부를 붙여줄 정도로 남자들은 ‘숫총각 딱지’를 떼도록 강요받는다. 요즘은 성매매를 강력히 단속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남성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여자들과 섹스할 수 있는 기회는 널려 있는 편이다.
외도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애매하다.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데이트 정도 한 것을 외도로 보는 사람도 있고, 정사를 나눈 것만 외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남자들은 외도 기준을 상당히 깊은 관계에 둔다. 매춘부와의 섹스 정도는 외도로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남자의 본능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도 섹스를 할 수 있으므로 마음을 주지 않으면 외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종종 여성들도 마음을 주지 않은 섹스 정도는 눈감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니 외도를 하더라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
여성들은 폐경이 되면 성욕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전히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다. 섹스리스 부부 중 남편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병이 생길 수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지만 성욕이 떨어져버린 아내는 꿈쩍도 안 한다. 신혼부부라면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50대가 넘으면 애걸해봤자 “나이 들어 주책”이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가수 조영남씨가 쓴 책에 보면 5년마다 배우자를 바꾸는 공약을 내세우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개그가 있다. 남녀 모두 열렬히 동의하는데 특히 여자들이 더 뜨겁게 호응하더라는 얘기다. 생물학적으로 3년이 지나면 호르몬 작용에 의해 사랑하는 감정이 식는다고 한다. 그 무렵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가교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부부의 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에는 정상적으로 부부생활을 하는 커플보다 이혼을 하거나 별거인 커플이 더 많이 등장한다. 전 남편과 현 남편이 같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는 장면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이혼에 대한 시각이 상당히 관대해졌다. 이제 혼인빙자간음죄에 이어 간통죄까지 폐지되었다. 개인의 사생활을 국가가 개입해 제재를 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섹스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종족보존의 본능을 벗어나 섹스라는 쾌락을 즐길 줄 아는 동물이다. 그런 선물을 도덕적 잣대 때문에 억제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각자가 알아서 처신할 일이지만, 외도는 ‘적당한 간식’이며 ‘삶의 활력소’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단, 배우자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길 수 있다. 그래도 가정을 파괴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속속들이 사정을 들어보면 자의든 타의든 그런 일이 종종 있기도 하다. 필자는 좀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외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단언했었다. 특히 잘나고 우위에 있는 쪽이 외도로 인해 상대방을 버리는 경우 더욱 분통이 터졌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비록 외도로 만난 사이라 해도 너무너무 사랑해서 죽고 못 살 정도라면 그래 길지도 않은 인생 후회 없도록 한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판단에 따른 상처나 피해는 전적으로 당사자들이 짊어져야 할 일이다.
최근 주말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남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줘 흥미롭게 시청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외부의 요인(남편의 과거 여자, 시어머니의 계략 등) 때문이긴 했지만 엄연히 가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그것도 상대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의사였다.
필자는 매우 보수적이다. 그래서 왕자님을 만나 신분상승하는 신데렐라 신드롬도 싫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남자를 유혹해 불행에 빠뜨리는 팜므파탈도 싫다. 이런 사고방식의 필자가 남편 외의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일탈하는 여자에게 공감을 느낄 리는 절대 없다. 아, 물론 당사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외도로 가정이 깨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아름다운 그 불륜 남녀에게 응원을 보내는 자신을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짓곤 했다. 어느 날 불륜 남녀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서 포옹을 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이성적으로는 ‘어어~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이 무슨 조화속일까. 저렇게 선하게 생기고 잘난 남자가 괴로움에 빠진 여자가 마냥 좋다는데, 여자가 유부녀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 관계를 지지해주고 싶은 이 속마음은 뭘까.
다가오는 남자 배우가 너무 멋져서 여주인공이 필자였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외도를 허락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해서 화들짝 놀라면서 쓴웃음을 짓곤 했다. 그러고 보니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알겠다. 아름다운 남녀 배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불륜을 미화시키면서 드라마에 열광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외도가 나쁘지 않다고 설득하는 것 같아 두렵다.
요즘 세상에는 어느 한쪽의 잘못을 참고 살아가는 부부는 드문 것 같다. 딸을 시집보낸 요즘 부모들은 자기 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절대로 속 썩지 말고 이혼하고 돌아오라 얘기한단다. 인간이므로 잠깐의 실수도 있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면서 토닥이고 달래서 잘살 수 있도록 조언해줘야 하는 게 부모 입장인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이러하니 젊은 사람들이 부부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도덕적이기만 한 세상도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도 살짝 해본다. 그러나 외도 같은 위험한 상황에는 절대로 빠질 염려가 없는 나이에 와 있는 필자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니 약간 서글프기도 하다. 어쨌든 결론은 자신만 생각하고 배우자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외도는 없는 세상이면 좋겠다.
걷기 모임이 있었다. 새로운 회원이 많아서 대부분 처음 보는 분이었다.
간단하게 서로의 인사말을 주고받았는데 잠시 후 점잖게 생긴 남자 분이 나직하게 말을 건네셨다.
필자 소개에서 다녔던 학교와 년도를 듣고 궁금한 친구가 생각났다며 대학동창과 아직도 연락되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대학 동창들과 30년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궁금한 분이 누구냐고 했더니 이름을 말하는데 필자의 친한 친구이다.
와! 대학을 졸업한 지 40년이 넘었는데 대학생일 때 알았던 사람의 안부를 묻는 사람을 만났다.
필자가 알던 사람을 만난 것만큼이나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그 친구 잘살고 있다고 전해주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안부가 궁금하다고 말하는 분의 표정 속에서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풋풋한 청춘 시절 마음에 담아두었던 좋은 추억이었나 보다.
친구에게 안부 전하겠다고 했다.
한동안 싸이월드라는 사이트에서 친구 찾기가 열풍이었던 적이 있다.
따로 필자의 블로그를 갖고 있지 않을 때라 필자와 우리 동창들은 싸이월드를 만들어 사진을 공유하고 서로 댓글을 달아주면서 즐거웠다.
인터넷도 유행을 타는지 그렇게 열심히 사이트를 꾸미고 사진을 올려 서로 돌려보던 시간이 지나고 스마트폰을 갖게 되자 친구들 하나둘씩 싸이월드를 버리고 스마트 폰 꾸미기 열풍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싸이월드의 친구 찾기를 보면서 필자도 찾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이름과 나이를 알면 찾아볼 수 있었는데 필자가 찾고 싶었던 사람은 아마 싸이월드 회원이 아닌 듯 찾아봐도 나오질 않았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대전에서 살 때부터 알았으니 고향 초등학교 동창이라 할 수 있는 친구로 집안끼리도 아는 남자애다.
필자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돈암동의 태극당에서 우연히 만난 이후로 친하게 지냈다.
성이 같은 박 씨라 서로 이성적으로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우리는 정말 동성 친구처럼 지낸 사이였다.
자기는 관심 없는데 자꾸만 쫓아다니는 여자가 있다며 애인 행세를 해 달라고 해서 여자 친구인 척 따라 나간 적도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우리 엄마가 그 애 엄마와 모임이 있어 만났는데 그 친구가 책상 위 노트에 필자 이름을 가득 써 놓은 걸 보셨다고 은근히 경계하더라는 말을 전해 주셨다. 그러면서 너도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 친구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 후로도 서로의 이성 문제를 고민하고 상담하면서 편하게 지냈다.
필자도 젊은 시절 알고 지낸 이성 친구가 많았지만 지금 안부가 궁금한 사람은 그 애 하나뿐이다. 이번에 필자 친구의 안부를 묻는 사람을 보니 필자도 그 친구가 몹시 보고 싶다.
외대생인 그 친구를 찾아볼 아무 단서가 없지만 한 가지 국민배우 안성기 씨와 같은 과를 다녔다는 게 생각난다.
커피 광고나 공익광고에서 부드러운 모습의 안성기 씨를 보면 그 친구가 생각난다.
꼭 찾으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뭐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냥 필자 친구 경우처럼 우연히 소식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일부러 담백하게 지내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애를 좋아했었나 보다.
안 가본 길이 궁금하고 아쉽다는 말처럼 어쩐지 그때가 아련하게 그립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걷기모임의 그 남자가 안부 묻더라는 말을 전했더니 깔깔 웃으며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고 당시 그 사람이 저를 속으로 좋아하는 걸 느꼈었다고 한다.
또다시 만나면 보고 싶다더라고 전해 달라며 명랑하게 웃는다.
글쎄, 필자가 다시 그 걷기모임에 나갈지 안 나갈지는 몰라서 그 말을 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지나간 옛일은 다 아름답게 생각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누군가 필자를 찾는 사람은 없을지 은근히 궁금해서 웃음이 난다.
중년은 인생의 황금기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사람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기반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과 금전 때문에 미뤘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전문가로 우뚝 서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서기도 한다. 중년이 만족스러워 중년 예찬론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의 절정기여서 유혹을 제일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누가 기반을 잡지 못한 청년 혹은 활력이 떨어지는 노인을 유혹하겠는가? 성공한 사람은 권력, 명예, 재물, 이성의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이 이성의 유혹이다. 가정 파괴와 가족 구성원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외도는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외의 이성과 깊은 관계에 빠지는 것이다. 중년에 이성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뭘까? 열심히 살아온 인생, 이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며 허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유혹은 이러한 틈새를 타고 시작된다. 외도를 해도 평생 들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대가를 치른다.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학창 시절을 힘겹게 보냈다.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안 올랐고 외톨이처럼 우울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수십 년이 지난 뒤 알게 됐다. 의사로 성공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한 뒤 재혼을 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친구는 상당 기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행이 어려울 뿐이다. 첫째, 유혹에 빠질 환경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백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한다. 은밀한 만남은 피해야 한다. 유혹을 받을 경우가 생기면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게 현명한 일이다. 둘째,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지만 반드시 그 값을 치른다. 조금만 즐겨보자고 시작한 관계는 결국 인생을 망친다. 마약환자, 도박중독자도 다 그렇게 시작한다. 자신에게 그러한 결단이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빠져보고 그만두자는 생각은 위험하다. 순간의 유혹에 빠질 때는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가혹하다. 유혹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절세미인 황진이의 유혹을 견딘 서경덕은 얼마나 대단한가. 셋째,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나태해질 때야말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다윗 왕이 부하의 부인인 밧세바와 불륜에 빠진 것도 전쟁터가 아닌 한가하게 낮잠 잘 때 발생했다. 넷째,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최고의 이상형을 만난 것처럼 느껴져도 살다 보면 단점이 발견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상형을 택한 사람은 그래서 대부분 후회한다.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짧은 인생 한 사람만 죽도록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 최고의 이상형과 사랑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필자는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같이 살기로 약속했으니 그럴 기회가 없지만 말이다.
중년에 어렵게 얻은 가치들을 외도로 날려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순간의 유혹들이 있어도 그때마다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유혹을 이겨낸 인생이야말로 멋진 인생이다. 자만심이나 공허감을 극복하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할 때 우리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또 좀 더 성숙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1만 년 전 세계 인구는 500만 명이었는데 1만 년이 지나 서기 1년에는 2억5000만 명이 됐다. 그리고 1000년에는 5억, 2000년에는 60억 명이 됐다. 2030년에는 100억 명을 예상하고 있다.
생명이란 번식 능력을 특징으로 한다. 유전자는 생명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알려주는 일종의 제작 설명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속에 정보화되어 전체가 완벽하게 다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염색체다. 나라는 몸 역시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형체에 불과하다. 내 유전자가 진정한 내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또 나라고 생각하는 개체는 복제품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다. 개체는 생명의 한계가 있지만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한 번도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 그 DNA를 모두 갖고 부분적으로 더하거나 빼면서 살고 있다. 심지어 죽은 세포에도 그대로 살아 있다. 이라는 영화를 보면 DNA는 피를 빨아먹은 모기의 몸 속에도 남아 있지 않은가.
자연은 지구라는 제한된 한계의 자원을 보호하고 낭비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한다. 그래서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쥐떼가 바닷물로 뛰어든다든지, 박쥐떼가 동굴 벽에 부딪치는 등 한꺼번에 자살을 시키고 벌이나 개미처럼 하늘에서 수태가 완료되거나 알을 낳거나 수정을 완성시키면 가차 없이 수컷을 제거한다.
수컷은 태곳적부터 이제까지 이어온 완벽한 유전자를 완벽한 토양에 심어 건강한 유전자를 이전과 현재보다 더 나은 복제품으로 남겨야 하는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태어났으니 완수하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복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인 것이다.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손대대로 물려주는 유전자뿐이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에 반기를 든 것이 인간이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했으면 사라져야 하는 법칙을 어기고 영생을 꿈꾸는 자연의 반역자가 인간인 것이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려야 하는 임무를 갖고 태어났기에, 암컷을 보면 이성이 마비되고 오로지 유전자 퍼트릴 생각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본능이다.
이 행위는 어떤 동물도 암컷의 배란기에만 가능한 수태 행위를 인간만이 늘 가능하게 한 신의 걸작품 중 하나다. 암컷은 자신이 갖고 있는 유전자와 전혀 다른 유전자를 받아 생명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출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며 좋은 유전자를 받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 애쓴다. 특히 배란기가 되면 이성적 판단보다는 콩깍지가 씌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이 맹목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인간의 외도는 다른 무엇과도 섞이지 않은 인간이라는 하나의 개체가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해 일관되게 준비되어온 행위를 윤리, 이성이라는 잣대로 억압해놓은 데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렇다면 외도의 예방은 가능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수컷이길 거부하기 전에는 유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단, 인간이기에 사회적, 윤리적 도덕관에 입각한 억제력을 발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