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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가을처럼 물들어가고…
- 첫 만남 내가 처음 뵈었을 때 하영(가명) 어르신의 연세는 팔십이었다. 100세 시대라는 요즘 세상에 팔십은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 비로소 자신만의 꽃을 피울 나이 아닌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닥쳐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어눌한 말투,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수시로 넘어지는 파킨슨병의 고통은 인생의 가을을 너무 빨리 맞이하게 했다. 어르신의 몸은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 인지능력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 자꾸 아련해져가는 기억을 붙들려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평생 원만한 성격에 모범생처럼 살아온 인생,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의 군대 생활 얘기를 할 때면 눈가에 생기가 넘쳤다. 광주 기갑 학교에서 특기병 교육을 받을 때는 전체 교육생 중 1등을 해서 학교 조교로 차출될 정도로 총기가 있었다.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으면서도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되어 딸 둘에 아들 하나 낳아 대학까지 보냈다. 은퇴 후 자신만의 삶을 꿈꾸었는데, 그렇게 어르신에게 갑자기 닥친 병마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르신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소통 나는 요양 보호차 만난 그분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애썼다. 그러나 어눌한 발음 때문에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듣다 보면 가끔은 피로감이 몰려와 퇴근한 후 쓰러지듯 누워버리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듣고 또 들으려 애썼다.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어 대화를 포기해버린 아내와 자녀들 때문에 말수가 많이 줄었지만 나를 만난 후부터는 활발하게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그분의 지나간 인생에 대해 듣고 현재의 삶을 함께 관조하면서 이심전심의 공감으로 물들어갈 즈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분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을 살피다 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의중까지 살피게 됐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70~80%를 알아듣게 됐다. 맞장구를 쳐드리면 더욱 신이 나서 말씀하시는 어르신! 불과 10년 후의 내 모습을 그 어르신에게서 본다. 그래서 1분 1초라도 더 성심성의껏 보살펴드린다. 어느새 10개월을 함께했고 이젠 정도 많이 들었다. 아내인 할머니 건강도 몹시 안 좋다. 어르신과 함께 딸네 집에 어린 손주를 돌봐주러 갔다가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워커를 의지해야 겨우 바깥출입을 하신다. 집 안에서 할머니의 역할은 2~3일에 한 번 세탁기 돌리고 식사 준비를 하는 게 전부다. 물론 매주 한 번씩 가까이 사는 딸이 반찬을 해 나르고 있긴 하지만 식사는 맨눈으로 봐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점심은 우유 한 잔으로 때우기 일쑤다. 게다가 두 분 모두 치아가 좋지 않아 음식을 제대로 못 씹는다. 어르신의 소망은 틀니가 아닌 임플란트를 하는 것이다. “틀니를 왜 사용하지 않으셨어요?” 하고 여쭈었더니 “파킨슨병으로 가뜩이나 발음이 어눌한데, 틀니까지 끼면 상대방이 내 말을 아예 못 알아들을까봐…”라며 말꼬리를 흐리신다. 어르신 대답에 콧날이 시큰해졌다. 할머니는 남편이 원래 달변가였다고 말씀하신다. “달콤한 말로 날 꼬드기는 바람에 홀딱 넘어갔지 뭐야 참나.”, “우리 어머니가 저 양반한테 시집가면 고생할 거라고 두 손 들어 만류했는데 안 듣고 달콤한 꼬드김에 넘어가 시집왔더니 지금 이 꼴이 되었네.” 할머니의 말투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사사건건 젊은 날의 남편을 책망했지만, 어르신은 그럴 때마다 피식 웃거나 고개를 돌렸다. 동네 공원으로 산책 겸 나와 잠시 쉴 때 “어르신, 젊은 시절에 할머니한테 좀 잘하시지 그러셨어요?” 하고 묻자 정색을 하며 “아니에요, 그건 그 사람 얘기지. 난 참으로 열심히 살았어. 3남매 모두 대학 보내고 내 집 거느리고 살았으면 됐지 뭐” 하신다. 어르신의 말씀에 무언의 믿음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파킨슨병으로 몸은 다소 불편하지만, 할머니보다 인지능력이 좋은 어르신은 나의 적극적인 케어를 받으며 바깥일을 모두 처리하신다. 공과금 납부와 생활비 입출금 등의 은행 업무, 시장보기도 직접 하신다. 약방에서 약을 사 나르는 일도 물론 어르신의 몫이다. 할머니는 병원에 갈 때마다 필요한 비용을 보채듯 청구하신다. 애틋한 노부부의 사랑 2020년 초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혼수상태가 되신 어르신을 119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눈을 감고 축 늘어진 채 누워 계신 어르신은 계속 잠만 주무셨다. 그 옆을 지키고 있던 나는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걱정을 많이 했다. 센터 복지사 도움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뒤따라오신 할머니는 남편 머리맡에 앉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영감, 나 죽는 거 보고 따라온다고 해놓고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고? 얼능 일나라!” 비통하게 울부짖듯 소리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남편을 원망하던 할머니의 평소 모습이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의 속마음을 알고 속울음을 울었다. 만 하루가 지나서 겨우 정신이 돌아온 어르신은 할머니의 손을 마주 잡고 통곡했다. ‘아! 노부부의 사랑이 이토록 지고지순하다니….’ 할머니의 울부짖음을 듣기라도 한 듯 기적같이 눈을 뜬 어르신은 요양병원에서 1개월간의 재활치료 후 다시 할머니 곁으로 돌아오셨다. 경자년 구정을 병원에서 보내고 돌아오신 어르신은 예전보다 더 힘든 상태로 일상을 맞이했다. 병원에 있을 때는 내가 케어를 해드릴 수 없었기에 퇴원 후 다시 만났는데, 어르신은 내 손을 붙잡고 눈물을 꾹꾹 눌러 삼키셨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속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올라왔지만 먼 데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인생 선배의 삶을 거울삼아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되는 요즘이다.
- 2020-06-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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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디슨 카운티 다리로 본 '부부의 세계'
- 요즘 여자들이 모였다 하면 빠지지 않고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이야기를 나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부터 시작돼 ‘밀회’를 거쳐 폭발한 김희애의 불륜 연기는 의사, 음악가 등 고스펙 불륜녀의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이번 ‘부부의 세계’에서는 너무 완벽한 삶의 조건으로 균열 하나 있을 것 같지 않던 부부 사이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남편의 오래된 불륜으로 급격하게 돌기 해 부부의 삶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인생까지 소용돌이치게 되는 부부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사실 간통죄까지 폐지된 마당이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전대미문의 불륜들이 우리 주위에 넘실댄다.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거침없고 솔직한 불륜들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은 이제 정치적인 은유는 물론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만 나무란다'라는 뜻으로 청소년들까지도 사용하는 대중적 언어가 된 지 오래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국의 중년 여성들에게 '불륜'이라는 단어가 은밀하게 회자하기 시작했던 건 아마 이 영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단아해 불륜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조용조용 속삭이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개봉된 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아일랜드 시인인 예이츠의 시를 읽고 이탈리아 가곡을 듣는 지적이고 단아한 가정주부, 메릴 스트리프(프란체스카)는 아내의 취향은 전혀 모른 채 큰 소리로 떠들고 문을 쾅쾅 닫아 프란체스카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그런 남편과 살고 있다. 엄마가 이탈리아 가곡을 듣고 있으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자녀들은 요즘 유행하는 팝송으로 재빨리 바꿔버려 집안에서 프란체스카의 자리는 없다.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시간은 서로 나눌 이야기도 없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없는 침묵의 시간으로 변한 지 오래. 가족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채 그저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부속품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에 찌들어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어느 날 남편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바깥세상의 살아 숨 쉬는 인생을 동경하게 해주는 그런 남자가 불현듯 나타난다. 배경은 1965년, 미국 중부 아이오와주 매디슨 카운티의 조용한 시골 마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조만간 철거될 이 마을의 명물인 로즈먼 다리를 찍기 위해 이곳으로 트럭을 몰고 온다. 낡은 청바지에 셔츠, 니콘 카메라를 메고 프란체스카가 동경하는 세상의 냄새를 풍기며 조근거리는 목소리로 ‘로즈먼 다리가 어디 있냐?’고 물어온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었다. 마침 남편과 두 아이는 나흘 동안 일리노이주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나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결혼 이후 처음 가족과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길을 묻는 그 순간에도 가족들의 빨래를 널고 있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지구를 사랑하는 패션 브랜드로 알고 있지만 이 잡지는 지구의 자연을 보호하고 현대화로 사라지고 있는 옛것들을 찾아 기록으로 남겨놓는 전통의 잡지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격조 높은 잡지다. 그러니 전 세계를 다니며 오지와 천혜의 자연을 촬영하는 로버트라는 사진작가의 영혼이 얼마나 깊고 넓을지 쉽게 상상하고도 남는다. 결혼한 지 15년이 넘어 자신의 꿈을 접은 채 한 남자와 자식만을 위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세계의 풍물과 삶의 모습들을 렌즈에 담는 로버트의 인생은 동경 그 자체였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사는 로버트가 부럽기만 했다. 게다가 그와의 대화는 익숙하다 못해 더 이상은 나눌 이야기가 없는 남편과 나누는 대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문학과 여행, 음악과 미술… 그 자체로서 너무나 환상적인 감정이입의 순간들을 공유한다.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이 떨릴 듯 화면에 전해지던 장면이 있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저녁에 초대해서 함께 부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에게 감자 스튜를 만들어주기 위해 부산스럽기만 하다. 감자는 미국 중부를 상징하는 아이오와주의 대표적인 농산물. 프란체스카의 부산스러움을 느낀 로버트는 “제가 도와드릴까요?” 란 말로 그녀의 맘을 빼앗아 버린다. 너무나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편과의 생활에 익숙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요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요리를요?” “예… 요리를” “당근을 깎아주세요” “이거 말인가요” “예… 끝은 이렇게 다듬어야 해요” 짧은 단답식의 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낯선 두 남녀가 한 발짝 한 발짝 자신의 세계를 향해 들어오는 타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부엌에서 함께 채소를 손질하고 감자 스튜를 저으며 그렇게 완성해갔다. 서로에게 배우자가 있다고 해도 어느 날 운명 같은 사랑이 나타날 수 있다. 뒤늦게 사랑의 열병을 앓다 제자리에 도로 주저앉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운명적인 사랑을 따라 지금까지 가꿔왔던 자신의 세상을 박차고 떠나 새로운 삶을 꾸리기도 한다. 대부분 우리는 순서가 잘못돼 '만났어야 할 운명의 파트너'를 만나 인생을 살고 있기보다 '스치고 지나갔어야 할 그 누군가'를 만나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산다. 착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 믿으며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다. 이렇게 착각으로 쌓아 올린 결혼이라는 견고한 성안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일상을 쌓고 그 일상이 다시 모여져 삶의 결로 퇴적된다. 퇴적된 내 인생의 결이 어느새 작은 봉우리가 되고 제법 봉긋한 작은 산 하나 만들어질 때쯤 우리네 인생은 노년의 삶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 이 영화를 보면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의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는 아직 중년의 감성은 아니었기에 100% 감정이입을 못했지만, 육체적 관계의 선을 넘는 것이 아닌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시선을 맞추며 안타까워하는 그런 '선'을 나름대로 느낄 수 있었다.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그렇게 부산스럽게 타오르지 않는 사랑, 스튜처럼 오래 끓이며 뭉근히 재료의 맛을 우려내고 깊어지는 사랑. 하지만 ‘불륜’은 그러하지 못할 경우가 많으므로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속전속결로 잡아먹을 듯이 집안을 화염에 휩싸이게 한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며칠간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대화하며 깊은 울림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자신들의 사랑을 흔히 남녀들이 하는 것처럼 세속에서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함께 떠나자는 로버트의 간절함을 뒤로하고 프란체스카는 이 작은 마을에 남아 가정을 지키고 자녀에게 헌신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로버트의 유품이 프란체스카에게 도착한다. 로버트가 로즈먼 다리를 찍은 사진이 표지로 담긴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와 니콘 카메라, 그리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남긴 다리 위의 쪽지. 프란체스카는 이 유품을 간직해오고 있다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유서를 남긴다. “살아온 인생은 가족을 위해 살아왔으니 죽은 뒤에는 가족묘지 대신 화장을 해서 다리에 뿌려 달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로버트에 대한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영화도 연령대에 따라 감상했을 때 차이가 크게 난다. 예전에는 이 부분이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았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프란체스카가 자신이 죽은 후, 가족묘지 대신 화장을 해서 다리 위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말의 뜻이 이제 정확하게 이해된다. 프란체스카는 죽어서까지 가부장적인 가족의 굴레에 매여있기 싫었던 것이다. 그녀처럼 나도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을 태평양에 뿌려달라고 딸아이에게 말했더니 눈을 살짝 흘긴다. 바다를 떠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딸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 ‘난 또 어쩔 수 없이 엄마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난 연휴 주말 방영된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가 자신의 아들에게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할 수 없다며 아무도 도우려 하지 않는 전 남편의 알리바이를 증언한다. 뒤를 이어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가운데 이미 헤어진 부부가 뜨겁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고 옷이 흐드러진 침대를 보여주면서 끝나 전국의 여성들이 갑론을박 난리가 났다. 한번 갈라진 부부의 길은 다시 합쳐지지 않는다. 잠깐 합쳐지는 듯하다가도 이미 다시 파국을 맞는다. 사랑의 유효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 스펙의 의사도 자신의 감정 다스리기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부부의 세계’를 시청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 19의 극복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부 혹은 가족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다 알아야 하고 간섭해야 하고 내 뜻대로 콘트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들이 의외로 많다. 내 눈앞에서 안보일 때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내 가시권 안에 있을 때는 완벽한 평강공주가 온달에게 시혜를 베푸는 모양새다. 흔히 똑똑하고 성공했다는 고스펙 여성들의 결혼생활은 평강공주 신드롬에 빠져 온달들을 관리하느라 부산스럽기 그지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부부 사이의 적정한 거리 두기는 결국 나에 대한 객관화로 이어져 보다 성숙한 자아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제발, 몰빵 하지 말 것이다. 사랑은 다 가질 수 없어 안타깝고 그래서 귀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시니어들은 감자 스튜 같은 뭉근한 사랑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프라이팬에 와인을 부으면 불같이 일어났다가 금세 스러지는 그런 불꽃 같은 사랑을 꿈꾸나? 곰곰이 우리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 2020-05-0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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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독자를 위한 5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 프렌치 모던: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 일정 6월 14일까지 장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미국 최초로 인상주의 전시를 열었던 브루클린 미술관의 유럽 컬렉션 중 59점의 대표작을 만날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 모더니즘 예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폴 세잔,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클로드 모네 등 총 45명 작가의 작품들을 풍경, 정물, 인물, 누드 등 4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각 작품의 의미와 특성을 통해 모더니즘 전반에 걸친 미술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간대별 관람 인원을 제한하며, 고양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사전 접수 후 입장 가능하다. ◇ 가능성에 대한 가능성: 오브제 시리즈 일정 7월 28일까지 장소 아이러브아트센터 셀린박 갤러리 개인과 사회, 정치적 이슈를 테마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셀린박 디자이너가 작업한 사물 시리즈 전이다. 앞서 2018년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과 2019년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 초청돼 전시한 바 있다. 비판적 디자인을 기반으로 사회 구조의 이면적인 모습을 사물기호증(움직이지 않는 특정 물체에 초점을 둔 성도착증의 일종)과 관련지어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관객 스스로 구조와 제도의 모순으로 생긴 결함을 통찰하도록 이끈다. ◇ 모두의 건축 소장품 일정 6월 14일까지 장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관 서소문 본관 ‘모두의 소장품’ 전과 연계한 전시로, 동시대 수집의 범위와 행위를 성찰하고 미래의 소장품 형식을 탐색한다. 1980년대 초반 중구 회현동에서 현재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축된 서양 고전양식의 구 벨기에 영사관을 중심으로 건축 수집의 기원, 의미, 방법을 체험하는 2개의 섹션으로 마련했다. 건축을 수집하는 8개 국·공·사립 기관과 40여 명의 건축가가 함께한 150여 점의 전통 건축과 근·현대 건축자료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로 인한 잠정 휴관으로 서울시립미술관 SNS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다. ◇ 메이커 탐구생활 일정 9월 30일까지 장소 크리타 과학과 예술의 유쾌한 연결을 이어가는 메이커 세 팀이 함께한 전시다.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공학 유튜버 ‘긱불’(GEEKBLE), 을지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디자인과 메이커의 경계를 허무는 ‘프래그’(PRAG),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메이커테인먼트 콘텐츠를 선보이는 ‘크리타’(CR!TA)가 참여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은 일상의 탐구에서 시작된다”라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전시품 외 큐레이터 기획공간을 별도로 꾸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으로 최대 10인까지 입장 가능한 소규모 전시 예약제를 잠정 운영하며, 일일 8회 진행된다. ● Stage ◇ 2020 디즈니 인 콘서트 일정 5월 23~2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대극장 출연 디즈니 콘서트 싱어즈, 디토 오케스트라 미국 월트 디즈니 본사의 프로듀서이자 음악 작·편곡가로 활동해온 테드 리케츠가 전 세계를 무대로 선보였던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이다. ‘인어공주’,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알라딘’을 비롯해 ‘겨울왕국 2’까지, 디즈니 대표 명작들을 대형 LED 화면과 더불어 60인조 이상의 풀 오케스트라 연주로 즐길 수 있다. 화려한 무대와 아름다운 선율의 향연으로, 손주와 함께라면 더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 로빈 일정 5월 1일~8월 2일 장소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연출 정태영 출연 김대종, 임찬빈, 박정원 등 지구 밖 행성을 배경으로, 유능한 과학자이지만 자식과의 교감에 서툰 아빠와, 답답한 우주를 벗어나 지구로 돌아가려는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부녀 사이에 중재자로 나선 로봇 ‘레온’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기억, 가족의 사랑에 대한 의미를 일깨운다. ◇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일정 6월 27일까지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출연 클레어 라이언, 맷 레이시, 커트 올즈 등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최초 1만 회 공연을 돌파하며 가장 오래된 뮤지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새롭게 단장한 월드 프로덕션 팀이 8년 만에 한국 관객을 찾아 더욱 압도적인 스케일의 무대와 진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 Movie ◇ 나는 보리 개봉 5월 21일 장르 드라마 감독 김진유 출연 김아송, 이린하, 곽진석, 허지나 등 농인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11세 ‘보리’는 왠지 모를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다. 그런 보리가 소외감을 벗어나기 위해 특별한 소원을 빌게 되며 벌어지는 일련의 성장 스토리를 담았다. 정겨운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보리네 가족의 일상과 주인공의 고민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제24회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과 켐니츠상, 제20회 가치봄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해 국내외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 개봉 5월 14일 장르 공연실황 감독 제임스 파우웰, 장 피에르 출연 마이클 볼, 알피 보 등 지난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선보였던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됐다. 콘서트 형식의 작품으로 모든 대사가 노래로 진행되는 송스루 공연의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 ◇ 보이콰이어 개봉 5월 14일 장르 드라마 감독 프랑수와 지라르 출연 더스틴 호프만, 캐시 베이츠 등 상처가 있는 소년이 국립 소년합창단에서 인생 스승을 만나며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카데미 주연상에 빛나는 더스틴 호프만과 캐시 베이츠 등 연기파 배우들의 참여로 기대를 모은다. ● Book ◇ 백세 일기 (김형서 저ㆍ김영사) 올해 4월, 만 100세 생일을 맞아 펴낸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신간. 소박하지만 특별한 ‘일상’, 온몸으로 겪어온 격랑의 ‘지난날’, 100세의 지혜가 깃든 ‘삶의 철학’, 고맙고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 등 4가지 주제로 70여 편의 글을 엮었다. 한 세기를 살아보니 알게 된 깨달음과 솔직한 심정, 그간의 희로애락 등을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게 들려준다. ◇ 천년의 수업 (김헌 저ㆍ다산초당) 존재와 죽음, 자존과 행복, 타인과의 관계 등 인생에서 주요한 9가지 질문에 대해 통찰한다. 수천 년 동안 서양 고전이 던져온 물음들을 통해 ‘나다운 삶은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한다. ◇ 50, 이제 나를 위해 산다 (호사카 다카시 저ㆍ상상출판) 50세를 앞두거나 접어든 사람이 참고할 만한 ‘행복 습관’ 80가지를 정리했다. 취미, 공부, 인간관계, 건강, 마음가짐 등 행복한 노후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상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 더 월 (론 란체스터 저ㆍ서울문화사) 2019년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기후 변화로 인해 황폐해진 미래 세상에서 벌어질 문제를 그린다. 시사적이고 풍자적인 시선으로 갈등을 드러내면서 경고의 메시지도 담았다.
- 2020-05-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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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으나 마나 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 디지털 실버,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이 자주 귀에 들려오는 요즘이다.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시니어들의 삶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내가 청파 윤도균 님을 만난 건 순수문학 수필작가회에서다. 팔순을 코앞에 둔 나이에 아직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인천 N방송 시민기자로도 활동한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걸까. 그 열정은 디지털 실버, 액티브 시니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인생 선배로서 닮고 싶은 분. 요즘은 주 3회 근처 초등학교에 나가 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있단다.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에게 시니어의 삶이란 뭘까.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은퇴 전에는 어떤 일을 하였는지? 처음에는 종로 세운상가에서 전자제품 판매사업을 했다. 그런데 일할 때 양심을 속일 때가 있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했다. 판매사업 일에 회의가 들던 차에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일이 연결되어 학원 사업으로 전환을 하게 됐다. 어린 시절 내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아마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교육과 관련된 일이 싫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학원 사업을 하며 20여 년간 독서실 운영도 했다. 하루에 100여 명 이상의 학생들을 통솔하며 아침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했다. 그 일도 판매 사업 못지않게 힘들었다. 하지만 해맑은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학생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조언도 해주고 예뻐하니까 아이들도 나를 따랐다. 교육 사업은 7년 전에 접었다. 시대의 큰 흐름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정성들여 운영해오던 사업을 접을 때는 마음에 다소 서운한 감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퇴 결정 과정은 어떠했는지? 20여 년간 일궈온 사업을 접을 때의 감정은 누구나 다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초조함도 있었고 욕심 같아서는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업자는 전망 흐름을 보고 빨리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는 마음을 내려놨고 한편으로는 편했다. 제2의 인생, 은퇴 후의 꿈을 설계하며 접었다. 이모작 인생은 계획한 대로 잘 이루어졌는지? 하던 일(직업)이 없어졌으니 당연히 처음엔 헛헛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내가 만약 어느 날 갑자기 퇴직했을 때’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마음속에 써두고 적응 훈련을 했다. 대안도 미리 생각해놔서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사업할 때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내 건강’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았다. 퇴직과 함께 잡념을 없애기 위해 먼저 운동(등산, 헬스)을 시작했다. 사실, 직장에서의 퇴직이 아니라 내 일을 하다가 일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일반 은퇴자들보다 나는 나이가 많았다. 어느새 70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건강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평소 내 성격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있으나 마나 한 인간’으로 취급되는 걸 가장 싫어한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이지만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해 땀 흘려 운동했다. 그러자 사업할 때와 비교해 건강이 몰라보게 향상됐다. 스스로 느낄 정도였고 마치 회춘하는 것 같았다. 자랑이 아니다. 몸이 달라지는 걸 실질적으로 체험했다. 건강하니까 매사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해도 긍정적이고 의욕적이었다. 은퇴 전과 후의 생활은 어떤 차이가 있나? 금전적인 면에서 보면 은퇴 후의 생활이 많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퇴직 후 줄어든 수입으로 인해 생활이 척박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란 한도 끝도 없는 것,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의 척도가 달라진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세월 따라 사람이든 자연이든 영원하지 못할 것이기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깨달으려고 했다. 작은 욕심조차 내려놓으면 편했다. 그렇게 즐거운 나의 ‘인생 이모작’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퇴직 전에는 내면에서 꿈틀거리던 ‘꿈, 소망’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도 돈 생각으로 이어지면 애써 잊으며 살게 되더라. 그런데 이제 은퇴자가 되니 청년 시절 꿈꿔왔던 글쓰기, 사진, 컴퓨터, 운동, 여행, 친목모임, 봉사활동, 취재, 기타 등을 마음껏 하고 배울 수 있어 좋다. 우연한 기회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선발되어 13년에 걸쳐 약 300여 편의 기사도 썼다. 인천 N방송 시민기자로 영상뉴스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또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를 통해 수필작가로 정식 등단도 했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지금의 삶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내 나이 일흔일곱이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그래도 십몇 년째 계속해온 새벽운동은 빼먹지 않는다. 아침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동네 단골 헬스장으로 향한다.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한 시간에 걸친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으로 2시간을 보내고 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렇게 하루를 열고 집으로 돌아와 개인 블로그 ‘청파의 사람 사는 이야기’에 새 글을 쓰고 댓글도 읽고 답장을 쓴다(그는 블로그 운영을 17년째 하고 있다. 요즘도 하루에 800~1000여 명이 다녀간다. 블로그 활동은 손자인 도영이를 돌보면서 시작했는데, 도영이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은퇴를 앞둔 시니어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지? 조언이랄 것은 못 되고, 은퇴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마음가짐을 바로 잡아야 한다. 사람마다 환경, 조건이 다르지만 인생 이모작 시대를 새로 개척해 살아야 하는 은퇴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첫째 : 자신의 현실에 맞는 소박한 은퇴 설계를 하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은퇴 설계에 포함하라. 둘째 : 가족과 시간을 많이 가져라. 지금까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가족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삶을 살아라(가사분담 등). 셋째 : 꾸준히 운동하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를 하라(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은퇴는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으로만 간직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여운이 남았다. 아울러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떠올랐다. 그는 칠순 때, 북한산 인수봉 암벽등반을 하고 그 후 2년에 한 번씩 암벽등반을 꾸준히 하고 있다. 팔순에는 북한 암벽등반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니어에게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굉장히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2020-04-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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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1인 미디어 도전기 '슈퍼시니어' 예능 제작
- 시니어 세대에게 평생 직업의 대안을 제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된다. 아프리카TV 자회사 프리콩은 20일 MBC D.크리에이티브센터와 함께 시니어들이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에 도전해 새로운 직업을 찾아가는 관찰형 서바이벌 디지털 예능 프로그램 ‘슈퍼시니어’를 공동으로 기획 제작한다고 밝혔다. 최근 시니어들의 1인 미디어 이용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이들의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등을 통한 구매량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많은 브랜드와 기업이 홍보, 마케팅을 위해 다양한 시니어 크리에이터 발굴 및 양성에 나서고 있다. ‘슈퍼시니어’는 100세 시대를 맞은 시니어들에게 1인 미디어를 통해 인생 제2막을 엶과 동시에 수익 창출의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기업들에게는 방송을 통해 성장한 시니어 크리에이터를 직접 연결해 주는 오작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MC로는 방송인 하하와 아프리카TV 먹방계의 명실상부 원톱 BJ ‘쯔양, 국내 최정상 유튜버 도티’가 참여한다. 3MC들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 구독자와 팔로워 수가 도합 800만에 육박해 방송 협찬에 참여한 브랜드들에게 파급력 있는 제품 홍보 가능성을 제공할 전망이다. ‘슈퍼시니어’는 오는 5월부터 프로그램에 참여할 시니어들을 모집하고 본격적인 제작 일정에 돌입한다. 본인의 끼와 장기를 어필할 수 있는 시니어는 영상을 찍어 제출하면 된다. 자세한 일정 및 신청 방법은 별도 공지될 예정이다. ‘슈퍼시니어’ 첫 방송은 오는 6월부터 MBC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채널 및 아프리카TV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 2020-04-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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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사랑, 몇 살까지 가능할까?
- 글 배정원(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대한성학회 회장, 유튜브 배정원TV ) “몇 살까지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교육생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요”, “문지방 넘을 힘만 있으면요”라는 대답이 나오고, 좌중에는 와르르 웃음이 쏟아지곤 한다. 교육생들이 이렇게 답을 하면 나는 또 묻는다. “80세가 된 어머님께서는 아직도 아버지와 섹스를 하고 계시겠죠?” 그러면 교육생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무슨 말이냐는 듯 손사래를 친다. “아휴… 무슨요.” “에이, 이제 안 하시죠.” 섹스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지만, 60세가 되신 부모님이나 80세가 넘으신 조부모님은 안 하신다는 것이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가? 놀랍게도 내 주변엔 80세가 되었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행복한 어르신이 꽤 많다. 2015년, UN은 인간의 발달단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발표했다. 만19세는 여전히 청소년이지만, 놀랍게도 65세까지는 청년이고, 75세까지는 장년, 85세까지는 중년, 그 이후가 노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00세 이상은 많이 사신 분이란다. 나라에서 나이가 들었다고 이런저런 혜택을 주는 시기가 65세 기준이라 보통 그 나이가 넘으면 노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몸도 마음도 청년처럼 젊기만 하다. 또 매력남녀를 보면 씩씩하게 열정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말하는 70대도 많다. ‘만약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그래서 멋진 섹스를 할 수 있다면, 내가 여전히 남자라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아’, ‘누군가를 보며 다시 설레는 마음이 생겨 사랑에 빠진다면, 내가 여전히 매력 있는 여자란 걸 느끼게 된다면 얼마나 멋지겠어?’라며. 성욕은 나이와 반비례할까? 사랑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은 성욕은 정말 나이와 반비례하는 것일까? 성욕을 부추기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인데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분비된다. 물론 남성에 비해 훨씬 소량이지만, 그렇다고 여성의 성욕이 남성보다 부족하다는 증거는 없다. 남성은 30세가 지나면서 남성호르몬이 1년에 2~3%씩 떨어진다. 이 호르몬 분비 저하는 나이 때문인 경우가 제일 많지만, 자극이 없는 지루한 생활이 이어지거나, 운동도 하지 않고 소파에 붙어서(?) TV만 본다든지, 단백질을 너무 적게 섭취한다든지, 규칙적으로 섹스를 하지 않을 때 더욱 저하된다. 그러므로 성욕을 부추기는 호르몬이 꼭 나이와 반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나이가 들어도 피돌기가 잘되는 사람은 발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성 역시 폐경을 겪으면서 호르몬 수치가 조금씩 떨어진다, 하지만 난소를 적출하지 않는 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폐경이 되면 일시적으로 성욕이 급격히 줄기도 한다. 그래도 규칙적으로 사랑을 나눴을 때 이조차 서서히 회복되어 폐경 후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멋진 성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분도 많다. 노화에 따른 성욕 저하와 폐경에 따른 에스트로겐 분비 감소로 사랑을 나누기가 불편하다면, 의학적으로 호르몬 보충요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남성에겐 테스토스테론, 여성에겐 에스트로겐을 경구약이나 크림, 주사 등을 통해 보충하면 성욕이 더 강하게 일어나고, 질건조나 질위축 현상을 완화해주기도 하므로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색다른 자극이 필요해 노년의 섹스는 아무래도 감각이 점점 둔해지고, 파트너에게 많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변화를 주고 색다른 자극을 만들어보는 게 필요하다. 나이 들어 하는 섹스는 여성이 남성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더 많은 일을(?) 할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 익숙한 애무 방식에서 벗어나 섹스토이를 함께 사용하고, 때로는 에로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된다. 전에 하지 않던 야한 농담도 상대가 불쾌해하지만 않는다면 새로운 자극이 된다. 그동안 전혀 가보지 않았던 모텔을 이용해본 노년의 부부들이 꽤 만족해하는 건 그 때문이다. 또 이국적인 곳으로 낭만 여행을 떠나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여유로운 노년이 주는 선물이다. 이렇게 그간 해보지 않았던 낯선 자극을 준비하기도 하고, 편안한 익숙함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건 젊은 커플이 누리지 못하는 오래된 커플의 강점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노년의 섹스가 상대의 벗은 몸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면서 당장 발기가 되고, 파트너와 키스만 해도 정신이 몽롱해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젊은 시절의 사랑과는 같을 수가 없다는 점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연륜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섹스의 목표가 단지 성기 결합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면 천천히 지구력으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다. 꼭 매번 사정을 하지 않아도, 지구가 멈추는 것 같은 오르가슴을 자주 느끼지 않아도 함께해온 익숙함이 더 편안하고 따뜻한 만족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노년의 섹스에는 서로에 대한 연민과 오랫동안 인생의 동반자로서 지내온 신뢰가 좋은 연료가 된다. 몸과 마음의 온기를 나눈다는 것, 다정한 눈빛을 나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멋진 섹스다.
- 2020-04-0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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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홀로 항해’로 망망대해를 노닐다
- 그의 집은 바다에 있다.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산다는 얘기가 아니다. 꿈과 정신의 집, 그걸 바다에 두고 산다. 다시 말해 바다에 홀린 사람이다. 요트를 타고 대양을 누비는 모험에 심취해 달리 남은 욕망이 없다. 이렇게 몰입이 깊어지자 즐거움이 커졌다. 즐거움이 커 몰입이 깊어졌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단 한 번 주어진 생을 으으 즐거운 쪽으로 몰아가는 사람의 정경엔 노련한 인생 항해술이 비친다. 뚝심과 낭만으로 반죽된 고유의 기풍이 서려 있다. 김승진 선장(58). 해양모험가 또는 요트탐험가로 불린다. 요트란 일종의 일엽편주. 버들잎 하나처럼 미미한 동체로 물살을 가르는 미니 선박. 주로 유람이나 경주 목적으로 연안이나 강, 호수에 띄워진다. 그러나 김승진은 요트를 타고 저 창망한 대양을 활개 친다. 이미 지구를 세 바퀴 일주했다. 지난 2014년엔 단독 무기항(無寄港), 무원조(無援助) 요트 항해로 세계 일주에 도전해 성공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기록이라서 당시 언론이 들썩거렸고, 이후 요트 애호가들이 늘어났다. 그의 쾌거에 가장 열렬히 환호한 건 김승진 자신이었겠지. 가슴 깊이 키워온 꿈을 드디어 성취한 만족감으로 말이다. 흔히 내가 나를 지극히 사랑하며 살더라도 나의 겉과 속은 달라 자주 분열되기 십상이다. 품은 지향과 실제의 삶을 일치시키기가 어디 쉽던가. 알고 보면 갈지자 행보를 일삼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김승진은 바다로 겨냥된 꿈, 모험이 있는 삶으로 뻗은 꿈 하나를 실천으로 이룬 게 아닌가. 자신에게 장미꽃을 바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아직 고프단다. 이왕지사 내친 김에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거다. “무기항 단독 요트 항해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전 세계에 100여 명이 있다. 이제 나는 더 격렬한 항해에 나서고자 한다. 올 연말 ‘이모카(IMOCA) 오션 마스터스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할 예정이다. 세계 최정상급 요트맨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레이스로, 속도 경쟁이 벌어진다. 누가 더 빨리 지구를 한 바퀴 도느냐, 그게 핵심이다.” 대양의 거친 파랑과 맞붙기에 이골 난 사람이라 아마도 근육이 울룩불룩한 터프가이이겠거니 했으나 전혀 아니다. 날씬한 체구에 눈매는 온순해 정신의 강골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얼른 짐작되지 않는 인상이다. 가지런히 다듬은 콧수염은 다소 코믹해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그윽이 상대를 응시하는 버릇으로 자리를 차분하게 만들어 대화에 리듬이 붙는다. 이 세련된 요트 선장의 원래 전공은 미술. 그러나 미대를 다니면서도 그림보다는 스킨스쿠버에 푹 빠져 살았다. 사회에 나와서는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피디로 줄곧 뛰었다. 고베 대지진의 현장을, 북한 꽃제비들의 참상을, 여전히 석기시대 풍색으로 살아가는 파푸아뉴기니 오지 부족의 태평한 삶 따위를 다큐로 제작해 세상에 알렸다. 지구촌 곳곳의 참경과 진경을 찾아다녔으니 일찍부터 탐험으로 종횡무진했던 셈이다. 해양모험가로서 높아진 인지도 김승진 선장이 막연하게나마 바다를 꿈꾸기 시작한 건 어릴 적에 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가슴에 들어와 앉으면서였다고 한다. 요트에 혼이 쏠린 것도 독서의 영향이 컸다. 일본의 유명한 요트모험가 시라이시 코지로가 쓴 ‘일곱 개의 바다를 건너서’라는 책을 읽고 무릎을 쳤던 모양이다. 바다를 누비고 싶다는 묵은 소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알려준 책이었기에. 요트로 대양을 질주하는 행위에 노른자처럼 박힌 모험적 요소와 풍부한 가치 역시 그를 사로잡았다. 이후 그는 요트 조종 기량을 숙달했고, 마침내 크로아티아에서 중고 요트 한 척을 사왔다. 가격은 3억 원. 당시 그는 물심양면의 불황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고가의 요트를 사들였다. 이거 발칙한 도발? 인생의 흥미는 도발적일수록 진진해진다. “다큐 제작자로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사업에도 꽤 재주가 있어 풍족하게 살았다. 뉴질랜드에서 처자와 함께 수영장이 딸린 집에 살기도 했지.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순간에 다 날아가더라고. 빚을 청산하고 남은 돈을 털어 요트를 샀다. 인생을 새롭게 바꿀 상황이 도래한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래 익혀온 꿈을 실현할 절호의 찬스라 보고 바다로 떠났다.” “2014년, 마침내 단독 요트 항해를 통한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그게 인생의 변곡점으로 작용한 셈인가?” “그렇지. 다큐멘터리 피디에서 해양모험가로 변신했으니. 지난날, 내게도 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 사람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은 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는 뜻일 게다. 지금 당장 나를 흥분하게 하고 설레게 하는 일에 몰입하기. 늘 그걸 생각하며 살았다. 좀 위험한 상황에서 오히려 생동감을 갖기도 한다.” “요트 항해도 모험이지만 인생 자체도 어쩌면 모험의 연속이다.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지루한 모험. 이건 달아날 길을 좀체 허용하지 않는다. 당신의 요트 구입에 가족들이 원성을 터뜨리진 않았나?” “가족은 나를 좀 특별한 사람으로 간주해 그냥 인정해줬다. 게다가 난 허영에 찬 모험가가 아니다. 마지막 남은 자금으로 왜 집을 사지 않고 요트를 샀느냐며 이상해들 하지만 그건 투자이기도 했다. 집 대신 요트 모험에 투자했거든. 난 현재 강연 활동 등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해양모험가로서 인지도가 높아진 덕분이다. 투자 효과가 발생한 것이지. 국내 해양레저 산업은 아직 불모지이지만 머잖아 블루칩으로 떠오를 거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란 얘기다.” “실용적 의도가 다 있었구나.” “맞다. 다 계산이 있었다. 그런 게 없다면 무모한 짓이지. 그러나 이건 본질이 아니다. 난 평생 모험으로 살아왔으며 가급적 모험의 절정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이 점에서 요트를 이용한 항해는 더할 나위 없는 적격이었다. 모험적 항해로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자는 것. 이게 내가 추구하는 본질이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딱 하나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시 빨리 찾아 행복을 즐겨라! 이거저거 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데에서만 행복이 나오랴. 아침에 눈을 떠 하루가 더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에서도 행복이 나온다. 급할 때 화장실을 못 찾으면 불행이지만 찾으면 행복이다. 그러나 그런 걸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타성에 안주해 그저 ‘귀차니즘’이 증가하는 걸 바라볼 뿐이다. 어항에 갇혀 주둥이를 뻐금거리는 붕어처럼 굴레에 갇힌 삶. 거기에서 벗어나라고 김승진은 재촉하고 싶은 것이다. 타성을 들어내고 모험심으로 심장을 채우라는 권장이다. “항해 중엔 그리움이 들솟더라” 김승진의 요트에는 ‘아라파니호’(길이 13m, 폭 4m, 무게 9t)라는 선호(船號)가 붙어 있다. ‘바다’의 순우리말인 ‘아라’와 달팽이의 옛말인 ‘파니’를 조합했다. 바다를 달리는 달팽이! ‘느림의 미학’이 담긴 이름이다. 조급해할 것 없이 유유낙낙 항해를 즐기되 끈질긴 달팽이처럼 좌우간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를 담았을 게다. 바람을 돛에 매달고 해면을 미끄러지는 요트. 힘과 속도와 우아함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동체다. 그는 이 돌고래처럼 아름다운 요트에 꿈과 모험과 낭만을 싣고서 ‘나 홀로’ 세계 일주 항해에 도전해 성공했던 것이다. 출발점은 충남 당진의 왜목항. 태평양을 넘어 남극해를 건너고,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왜목항으로 귀항하는 코스였다. 총 항해거리는 4만여 km. 209일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209일간 혼자 망망대해를 항해하다니, 황홀한 고행 아니었을까?” “시련이 많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면 선물처럼 환상적인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규정된 룰을 깨지 않고 기어이 완주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많았지. 성공을 해야만 모험가로서의 위상과 진로가 주어질 거라서.” “대양이라는 원초적 대자연과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가 정면으로 마주친 모습이 영화 장면처럼 연상된다. 노자가 말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자비롭지 않다고. 심지어 노리개처럼 가지고 논다고.” “내가 지금 어마어마한 대자연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전율이 잦았다. 물론 태풍이나 파도는 때로 위협적이었지. 남빙양에서는 9m 높이의 파도를 만났다. 야, 그 거대한 파도에 휩싸여 요트가 미끄러지는데 살벌한 굉음이 귀청을 찢더라고. 내가 간덩이가 큰 사람이지만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선실이 천국이라면 그 한 치 밖은 지옥이었으니까.” ‘지옥’이라는 표현에서 공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성벽처럼 견고하게 일어서 울부짖는 초대형 파도의 습격 앞에서 떨리지 않을 장사가 있겠는가. 자연의 가공할 위력에 인간의 잘난 콧대는 흔히 납작해진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벼락을 일곱 번이나 맞고도 살아난 사람이 있다지 않은가. 우리는 자주 인간 역시 하나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위대한 자연에서 나온 강인한 종이라는 걸. 김승진은 인간의 질긴 근성을 입증하듯 위기가 오는 족족 능숙히 처리했다. 물론 그럴 만한 항해의 지식과 경륜에도 힘입었겠지만. “궁금하다. 망망대해에서 요트를 즐기기 위해선 어떤 능력이 필요하지?” “우선은 항해술에 능해야 한다. 기기 작동은 물론, 바람을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무동력 항해가 가능하다. 잠시 뒤에 닥쳐올 위험을 미리 예감하는 센스도 중요하다. 멘탈도 빼놓을 수 없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 즐길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 거다.” “아무나 할 수 일이 아니구나.” “겁먹을 거 없다. 누구나 탈 수 있다. 열여섯 나이의 호주 여자애가 지구를 한 바퀴 돌기도 했거든. 인간이 만든 모든 탈것들 중 요트가 가장 안전하다는 말도 있다. 배가 뒤집힐까 걱정하지만 요즘 요트들엔 ‘발라스트 킬’이라는 장치가 있어 자체 복원된다. 넘어졌다가도 오뚝이처럼 저절로 일어선다고.” “바다에서 본 가장 특별한 광경은 어떤 것이었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었다. 별들은 잔잔한 수면에도 무수히 어려 환상적으로 반짝였다. 숨이 멎는 것 같은 황홀감을 맛봤다. 내가 아예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었지. 삶이 숭고해지더라. 가슴에 고이 담아 돌아온 밤별 풍경이었다.” “해적도 만났다지?”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에서 해적의 추격을 받았으나 간신히 떼어냈다. 물속에 들어가 돌고래를 구경하며 놀다 상어가 덤벼들어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거대한 유빙(流氷)이 요트 곁으로 떠밀려올 때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말 난처했던 건 무풍(無風)지대를 만났을 때였지. 요트를 움직일 방법이 없으니.” 바람이 잘 때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달려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무동력 요트는 바람이 잠들면 같이 잔다. 그럼 그도 덩달아 자거나,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라도 추면 좋을 테지만 그러기엔 아깝다. 잠이나 자자고 세상의 변경을 찾아간 게 아니니까. 결국 그는 흘러가는 생각들을 잡아채는 데에다 시간을 쓰곤 했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의 사색. 사색의 끝은 주로 사람에 닿았다지. “나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항해 중에 거듭 사람이 그리웠다. 아는 사람들의 좋았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그리움이 들솟더라. 별수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인간이다. 그럴 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외로움이 뭐야? 난 그런 거 몰라! 그는 그런 투로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러나 항해 중엔 무인도마냥 고독했던가보다. 그걸 피할 길이 있겠나. 해서 가슴으로 사람이 사랑처럼 피어올랐겠지. 나는 그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다. 개중에 저릿하게 남는 한마디. 사람이 그리웠다.
- 2020-04-0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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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지혜를 나누는 친근한 벗으로 5년, 꿈의 공간으로 우리 곁에…
- ‘브라보 마이 라이프’ 창간 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나이 먹음에 저항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추레해진 노년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노년다운 노년을 스스로 짓고 좇고 이루려 애쓰게 됩니다.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노년은 노년 나름의 아름다움과 무게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이러한 노년의 삶을 도와주려 우리 사회에 탄생한 드문 잡지입니다. 그동안 다섯 해를 지내면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노인들에게, 노인이 되어간다고 느낀 분들에게, 많은 것을 되살피게 해주었습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꿈을 안겨주었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꿈의 공간으로 우리 옆에 늘 있어주었습니다.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노년에 새 로운 꿈을 지니게 해주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노년들에게 참 드문 놀이터를 제공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 놀이터에서는 꿈의 실현이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실증하는 온갖 놀잇감을 펼쳐놓고 누구나 마음껏 즐기도록 해주었습니다. 익숙한 이제까지의 삶을 다듬을 수 있는 놀이도 할 수 있고, 그야말로 꿈도 꾸지 못했던 모험을 할 수 있는 놀이도 감행할 수 있고, 보고 듣고 만지고, 그리고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놀이도 지천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 꿈의 공간이, 그 즐거운 놀이터가, 까맣게 높거나 멀어 내가 가 닿을 길이 없다는 생각을 한 노년도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가끔 스며들기도 했습니다. 꿈의 자리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는 느낌보다 자신의 초라함과 누추함을 새김질해야 하는 계기를 만나야 하는 것은 노년에게는 무척 견디기 힘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자리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만, 그런 노년에게 드리고 싶은 설명만큼의 자성을 스스로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성숙한 놀이터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시 다섯 해, 어떤 모습으로 우리 노년들의 삶 안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자리를 잡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그때까지 있어야 할 이유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는데, 어쩌면 그것의 가능성 여부는 매달 나오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결정해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듭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창간 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 정진홍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인생 이모작의 나침판 ‘브라보 마이라이프’ 창간 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베이비부머들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될 무렵 창간되었지요. 마침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때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창간기념 메시지에서 농업과 농촌이 은퇴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후 저는 3년 6개월의 장관직을 끝으로 고향집으로 돌아와 노모를 모시며 텃밭을 가꾸는, 꿈에도 그리던 은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느 농부와 다름없이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땀 흘려 가꾸어 수확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늙고 지친 농업과 농촌, 무너지는 지역공동체를 보며 과연 무엇을 하였는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지방 소멸과 농촌 붕괴를 막는 일이 급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농사 짬짬이 경상북도의 농촌살리기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고위공직에 있던 사람이 낙향해 노모와 사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직접 농사를 짓고 하위직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게 없던 일이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요. 선하심후하심(先何心後何心)이란 말처럼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처처히 걷는 나그네에게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당산나무처럼 위안과 격려를 주는 소중한 친구가 됩니다. 더 크고 푸른 거목으로 자라나 판에 박힌 삶에 지친 방랑자들이 기대어 가치 있는 인생을 꿈꾸며 쉬어갈 수 있도록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탄생한 지 5년이 됐다니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충실히 담아내고 애로점을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정보와 공감의 메시지를 담은, 어른을 위한 잡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큰 언덕이 됩니다. 사실 나이 들어가면 몸이 힘들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마음도 시들어갑니다. 거기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너무 지치고, 불안으로 피로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다들 잠을 많이 자고 푹 쉬어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고 호소합니다. 몸이 쉬어도 뇌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로토닌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 습관’을 잘 들여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상을 하면 행복과 사랑의 뇌 신경물질이 많이 분비됩니다.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그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한 말과 행동으로, 봉사와 배려로,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을 분비시켜 젊고 건강하게 희망 바이러스가 퍼지기를 바랍니다. UN이 평생연령 기준을 다시 정립해 발표했습니다.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는 청년, 66~ 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후를 장수노인으로 구분했습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시니어 대다수는 아직 청년입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 여러분, 청년이 되어 올 한 해도 행복하고 활기차게 살아갑시다~ - 이시형 세로토닌문화원장
- 2020-04-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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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단톡방 10계명
- 카톡은 국민의 생필품적 통신수단이 된 지 오래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연말연시엔 수첩과 명함을 정리하곤 했는데, 지금은 카톡을 정리하는 게 큰일입니다. 불필요한 동영상이나 사진, 의미가 없어진 사람의 이름을 삭제하고 중요한 걸 따로 갈무리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이 느꼈을 법한 불편과 불쾌함을 덜기 위해 일정한 지침이 필요하다 싶어 카톡 10계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주로 단톡(단체카톡)방에 관한 것들입니다. 1. 시도 때도 없는 “카톡!”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카톡을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카톡, 카톡!” 소리가 싫어 묵음으로 해놓거나 아예 문자메시지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 때나 카톡을 보내는 건 실례입니다. 특히 시차가 있는 외국에서 제 흥에 겨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을 보내면 역효과만 나게 됩니다. 낮에는 전혀 카톡을 읽거나 답하지 않다가 남들 자는 밤 12시, 1시 넘어 답장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2. 정치·종교 이야기 금지 얼마전 모 사회단체의 단톡방에, 어떤 사람이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주당 헌법 개정 초안이 나왔다는 글을 띄웠다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정치 이야기하는 곳 아니다, 거짓 뉴스 띄우지 마라, 대체 누구냐, 나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그 사람은 나가지는 않은 채 숨만 쉬고 있습니다. 친목과 사교, 공지사항 전달이 주목적인 단톡방에서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서로 불편해지고 편이 갈려 싸움이 납니다. 3. 삼가야 할 중복·반복 용량이 큰 동영상 또는 사진을 다량 전송하거나 동일 내용을 반복 홍보하는 일도 삼가야 합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실황 중계를 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는데, 대부분 그 사진이 그 사진이어서 받자마자 삭제하기 바쁩니다. 잘 선별해 의미 있는 것만 최소한으로 보내든지 ‘사진 묶어 보내기’ 기능을 이용하면 남들이 편해집니다. 4. 기성품 안부·격려 지양 월초나 주초, 또는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힘내세요”, “웃고 사세요”, “오늘도 으라차차!” 따위의 응원 인사가 폭주합니다. 내용이 빤한데 본인이 쓰거나 만든 것도 아닙니다. 같은 걸 하루에 다섯 번 받은 날도 있습니다. 이런 거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배우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고 “어디 가져오는 데가 있어” 하면서 알려주지 않고 뻐기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5. 좋은 글·미담 공해 1960년대에 코미디언 살살이 서영춘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이런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글과 사진을 마구마구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이도 자기보다 한참 적은 사람이 인생철학을 거론하며 착하게, 바르게 살라는 글을 보내오면 누가 좋아할까요? 이런 글 중 감동적인 미담에는 출처와 근거가 없는 가짜나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게 부지기수입니다. 6. 억지 초대 자제 서로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모아 단톡방을 개설하는 것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삼가야 합니다. 초대된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이야기만 하거나 자칫 말이 엉켜 불쾌해지게 됩니다. 100명 넘는 사람을 초대해 운영하다가 “잠시 잠적한다”며 없어지더니 몇 달 후 다시 나타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게 뭐야, 장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 OB 내지 않기 골프에서는 공이 규정된 지역 외로 나가면 OB(Out of Bounds)라고 합니다. 단톡방에도 OB꾼들이 많습니다. 아내에게 보내는 카톡을 엉뚱한 모임에 날리거나 임대료 빨리 보내라는 카톡을 대학 동창 단톡방에 올려 웃음거리가 되곤 합니다. 정신 차리세요. 간판도 못 다는 사람이 많지만 단톡방 간판을 잘 보세요. 뒤늦게 삭제해도 ‘때는 늦으리’입니다. 8. 댓글 달기 신중하게 수신자가 지켜야 할 것도 많습니다. 행사나 모임에 초대하는 카톡에 눈치 없이 제일 먼저 못 간다고 댓글을 다는 건 한마디로 흥행을 방해해 김이 새게 만드는 짓입니다. 카톡을 빨리 읽는 건 좋지만 불참 통보는 최대한 늦춰야 합니다. 또 어떤 일에 대해 회원들의 반응이나 논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걸 올리는 건 실례입니다. 이런 중간 낙서는 먼저 글 올린 사람을 불쾌하게 할 뿐 아니라 호응도 얻지 못합니다. 하루 정도 지나 그 일이 정리된 뒤 새 글을 올리는 게 바람직합니다. 9. 딴전·딴청 부리지 말기 여럿이 의견을 주고받는 단톡방에서 그 주제 내의 특정 사항에 대해 둘이서 설왕설래, 지지고 볶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떠들다 보면 본인들은 신날지 몰라도 꼴불견이 되기 십상입니다. 개인 카톡으로 1대 1 대화를 하는 게 좋습니다. 10. 반응·답장 잘 하기 카톡을 받으면 반응을 보이고 답을 하는 게 소통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묵묵부답인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내용이 지겨워 오는 족족 카톡을 지우고 일절 답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자 보낸 사람이 삐쳐서 전화도 안 받더랍니다. 겨우겨우 기분을 풀어주었는데, 영영 안 볼 사람이 아니면 적절히 알은척을 해주십시오. 데이터가 꽉 찬 경우 카톡방에서 나가버려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휴대폰 우측 상단의 석 삼자를 누르고 그 아래 기능 버튼에서 ‘대화 내용 모두 삭제’를 눌러 몸을 가볍게 하십시오.
- 2020-03-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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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뒤에 선 든든한 거장
- 풍금으로 전해지는 선율은 환상적이었다. 화음의 오묘함에 매료된 소년은 깊고 깊은 예술의 체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음악을 한 차원 높은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는 숨은 예술가, 이종열(李鍾烈·82)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를 만났다. 예술의전당 음악당 무대 뒤로 들어갔다. 크고 작은 무대 장비들 사이에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문패가 달린 방 하나, 이종열 조율사가 1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개인 공간이다. “1995년 1월부터 예술의전당으로 출근했습니다. 원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오페라단, 발레단 등 예술 단체들이 상주해 있었어요. 조율사 공간은 없었지요. 우면산 중턱에 건물 새로 짓고 다들 그쪽으로 이전하고 나니 방이 생겨 하나 얻었습니다.” 올해로 피아노 조율만 64년. 수천 명의 연주자를 만났다. 2003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내한했을 때, 연주가 끝나고 이종열에게 경의를 표하며 청중의 박수를 이끌었던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헝가리의 안드라스 시프, 이탈리아의 미켈레 캄파넬라 등 까다롭기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에게 인정받은 조율사.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종열의 손을 거치면 음에서 빛이 난다”며 그의 실력에 찬사를 보냈다. “별거 아닌 거 같겠지만 저는 국위선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이런 조율사가 있구나 하고 말이죠.” 세종문화회관에서 15년. 그리고 예술의전당에서 25년.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장 1호 조율사다. 2007년 피아노 조율사로서는 처음으로 명장 1호가 된 이종열 조율사는 오랜 시간 음악 안에서 살아왔다. “평생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하니 행복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요. 어떤 직업이든 다 스트레스가 있어요. 집에서 레코드판을 들을 때가 가장 편안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 뭔가 잘못될까봐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잖아요.(웃음) 제 직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유명한 연주자와 악수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 좋겠다’고 해요. 그런데 연주자마다 추구하는 소리와 음색이 다르죠. 어떤 연주자는 ‘피아노 소리를 브라이트(밝게)하게 해주세요’ 또 누구는 ‘이쪽 소리가 너무 쨍쨍거려요. 줄이면 안 될까요?’ 합니다. ‘건반을 눌렀을 때 건반이 저항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해주세요’라고 주문하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어제는 조율이 너무 좋았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 날에는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게 제 일입니다.” 우리 가락을 통해 음을 알다 이종열 조율사는 전주 출신으로 전주 이 씨 종가에서 태어났다. 행동거지와 언어, 옷매무새에 제약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런 집안 분위기에서 공구를 다루고 피아노와 가까이 사는 자신이 신기하다고 했다. “양반은 뛰면 안 된다고 해서 조용조용 걸어 다녔습니다. 제사도 크게 지내는 집안이었고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시조창을 참 잘 부르셨어요. 할아버지가 선창하면 동네 분들도 따라서 노래 부르곤 했죠.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어른들이 기분 좋으니까 풍악을 한 거예요. 왔다 갔다 하면서 들었는데 다 외워지더라고요.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거죠.” 학예회 때 친구들은 독창을 하거나 무용을 했는데 이종열 조율사는 무대에 올라 양반다리를 하고 시조창을 했다. 돈 벌어 제일 먼저 산 것도 클래식 음악이 아닌 시조창 레코드라고 말했다. 우리 가락에 귀가 열리더니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피아노 독주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교복을 입고 찾아다니기도 했다. “풍금소리는 너무 좋은데 학교 비품이라 만질 수 없었어요. 여유 있는 집 자식들이 기타를 사서 배울 때 저는 달밤에 반딧불이가 돌아다니는 곳에서 하모니카를 불었어요. 할아버지가 단소를 자주 부셨는데 ‘궁상각치우’ 5음계였어요. 저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서양 음계가 필요해서 대나무를 뚫고 구멍 크기를 조절해가면서 직접 만들어 썼습니다.” 먼 훗날 생각해보니까 그 자체가 관악기 조율이었다. 불어보고 소리가 잘 나면 악기 하나를 완성해갔다. 조율을 만나다 풍금을 원 없이 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기독교 신자였던 사촌이 끊임없이 전도를 하자 그는 못 이기는 척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 가야 했던 명분은 바로 풍금. 페달을 밟으면서 풍금을 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교회 집사라는 분이 풍금으로 반주를 하는데 멜로디에 옥타브를 첨가하는 정도였어요. ‘아, 저걸 내가 배워?’, ‘그럼 열심히 교회에 다니자’ 했어요. 오르간 교본을 사서 혼자 공부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음악 통론’을 펼쳤죠.” 오르간 교본을 떼고 난 뒤에는 580개가 넘는 찬송가 전곡을 쳤다. 그런데 풍금을 치는 게 너무 좋아지자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단소와 하모니카를 불 때는 몰랐는데 똑같은 장조의 3음계라도 건반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났다. 집에 있는 공구를 교회로 가지고 가 풍금을 뜯어보고야 말았다. 풍금은 놋쇠 철판을 깎아서 조율하는데 점점 어려워지고 소리는 제 소리에서 점점 멀어졌다. 스스로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풍금이 일본 제품이니까 어딘가 문원이 있을 것 같았어요. 서점에서 책을 찾아보니 ‘피아노 구조, 조율, 수리’라는 책이 일본에 있었어요. 장남으로서 농사 일구고 동생들 보살피기를 원했던 아버지는 제가 이런 책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렵게 사정해서 용돈을 받아 책을 주문했어요.” 해방 후 일본과의 국교가 닫혀 있던 시절. 책이 한국으로 오는 데 두세 달이 걸렸다. 문제는 일본어였다. 해방이 되던 해 소학교에 입학했던 그는 일본 학교들이 문을 닫으면서 한국식 교육을 받게 된 것. 해방 후 처음 발간된 ‘일본어 첫걸음’이라는 책을 사서 교본이 오기 전 열심히 독학하며 글자를 익혔다. “기다리던 책이 왔을 때는 어느 정도 일본어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빨리 보고 싶어서 샛길로 접어들어 논두렁에 앉아 책을 폈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피아노 구조 도면을 살펴봤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율을 시작한 거죠.” 풍금 조율을 시작하면서 피아노와 쳄발로와 파이프오르간 등의 악기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피아노를 조율해도 쳄발로 등 다른 건반악기까지 다루는 사람은 드물다. 조율의 인생을 정리하다 작년 말 이종열 조율사는 60여 년 조율사로 살아온 삶을 정리하면서 ‘조율의 시간’(민음사)을 펴냈다. 백전노장의 이야기는 담백했고 진솔했다. 베스트셀러가 됐고, 사람들은 조율사 인생에 주목했다. 재미있는 것 하나. 책을 읽다 보니 마치 판소리의 아니리가 연상되는 박자감이 느껴졌다. 그와 인터뷰를 해보니 확실히 알았다. 어려서부터 시조창을 하는 할아버지의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으니 자연스레 리듬이 말하는 습관으로 밴 것. 박자처럼 글 속에도 묻어 있었다. 이종열 조율사는 말초신경을 보호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고 했다. 술은 모임에서 맥주 반 잔 정도, 담배는 피운 적 없다. 귀가 나빠지면 높고 낮은 음을 구별할 수 없다. “조율 자체는 기계를 보고 해도 되지만 조율의 최고 생명은 ‘보이싱’입니다. 음색을 고르게 음량 크기를 같게, 밸런스를 제대로 맞춰야 하거든요.” 아무리 조율이 잘되어 있어도 보이싱이 안 좋으면 피아노를 못 치겠다며 일어나는 연주자도 있다고. 그는 앞서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토로하기도 했지만 인생 끝까지 조율에 매진할 생각이다. “지금도 할 게 많아 보입니다. 학문은 끝이 없잖아요. 죽기 전날에도 궁금한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늘 새로운 것들이 들리고 보입니다.(웃음)” 그는 한 차원 높은 피아노 조율을 위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후학 양성에도 열심이다.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에서 발간한 기술 서적 중 보이싱 파트는 이종열 조율사가 집필했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튜닝아트가’라는 모임도 꾸준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튜닝아트, ‘조율은 예술이다’라는 뜻입니다. 돌아가면서 조율에 관해 토론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서로 조언도 해줍니다. 지금 예술의전당에 새 공연장을 짓고 있는데 훌륭한 후배가 대기 중입니다. 이제 서서히 제자들에게 자리를 내줘야죠. 100년, 200년 할 수 없잖아요.” 그는 피아니스트 뒤에 선 조율사로서의 자부심을 조심스럽게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관객은 조율하는 사람에게 아무 관심이 없어요.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만 박수치고 소리 지르잖아요? 그런데 연주자들은 공연장에 오면 저한테 매달립니다. 조율사의 손에 멋진 공연이, 연주가 달려 있으니까요.”
- 2020-03-09 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