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친구들과 1박 2일 모임을 한다. 잠깐 얼굴 보고 밥 먹고 헤어지는 만남이 아쉬워 언제부터인가 만나면 1박을 한다. 그날도 오후 느지막이 만나 여유 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가는 길에 노래방을 들러 가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브라보마이라이프 콘서트’에서 들었던 가수 양수경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차에 냉큼 맘이 땅겼다.
“노래방은 한 시간만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1)의 요리교실 이름이다. 연희동 주택가 골목을 헤매다 한참을 헉헉대며 올라가다 보면 2층 집 파란 대문이 보인다. 요리 스튜디오가 있는 그녀의 집이다. 이곳에 드나드는 수강생만 한 달에 200여 명, 대기자도 수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 셰프의 딸로 태어나 독일과 스페인
라면에 넣는 스프는 모두 맵다. 매워야 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기침엔 오미자차를 마시고 땀이 많이 날 때도 설사를 할 때도 오미자차나 매실차를 마신다. 약한 신맛이 몸의 진액이 새어나가는 것을 수렴하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허열이 날 때는 약한 짠맛이 들어간 콩국이나 죽염수를 마시면 열이 내려 땀이 덜 나고 머리가 맑아진다. 이렇듯 맛은 우리 몸에서
가족들이 주고받는 ‘단톡’방에 아들애가 보낸 사진과 글이 떴다. 생후 한 달쯤이나 지났을까 싶은 새끼고양이 두 마리다.
“공사판에서 주움”
톡을 확인한 필자와 남편, 딸애가 각자의 공간에서 이모티콘이나 글을 올렸다. ‘에미가 찾을 텐데 새끼가 있던 자리에 다시 놔줘라, 까페에 올려서 입양할 곳을 알아봐라, 지금 뭘 먹고 있나, 귀는 깨끗한가,
이제 우리는 ‘대전’ 하면 바로 ‘빵집’ 성심당을 떠올린다. 그만큼 대전을 대표하게 된 아이콘 성심당은 지역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는 착한 기업의 대명사로도 유명하다. 성심당의 고집은 기업정신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눔과 환원을 통한 가족 같은 공동체의 선을 향한 고집에도 적용된다. 아들은 빵을 굽고 딸은 요리를 하며 아내는 홍보를 맡는 등 온 가족이 빚는 성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37년의 삶 동안 극한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끝내 자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런 고흐의 영원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는 궁핍하지만 숭고한 예술혼을 지닌 형에게 금전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흐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동생에
전남 장흥은 남쪽 끝머리쯤에 위치해 있어서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막상 떠나보니 일일생활권의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렇지만 장흥은 당일로 다녀오기에는 너무나도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 땅에 남아있는 예술혼과 사람들의 진득한 인정이 더 머물고 싶게 하던 곳이었다.
가끔 막연히 생각만 하던 곳을 가게 되면 더 애착을 가지
노래 교실에 갈 때마다 앞자리의 K 회장은 늘 필자의 커피까지 한잔 사 온다. 백화점에서 파는 커피이므로 한잔에 5천 원 정도 한다. 혼자 마시기는 미안하니까 사는 김에 한 잔 더 사오는 모양이다. 양도 많아서 다 마시기에는 벅차지만, 성의를 봐서 다 마신다. 사실 저녁 시간에 마시는 커피는 자칫 불면증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사오지 말라고 하기도
‘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조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18년 우리 사회 10대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이미 회자되고 있던 ’작은 사치‘와도 비슷한 용어이다. 포미족(FOR ME)의 부상과도 연관이 있다. 빵집에서 가장 비싼 빵을 사 봐야 큰돈은 아니다. 500원 짜리
필자가 어렸을 적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곳은 돈암동이다. 당시 돈암동 랜드마크는 태극당이라는 제과점이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정할 때 ‘태극당 앞 몇 시’ 하면 다 통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규모도 상당히 컸고 빵도 맛있고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자주 이용했으며 그땐 데이트도 제과점에서 하는 게 보통이었다.
중학교 때 필자는 전차 통학을 했다. 전차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