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다른 ‘소확행(小確幸)’

기사입력 2018-02-14 19:49 기사수정 2018-02-14 19:49

‘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조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18년 우리 사회 10대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이미 회자되고 있던 ’작은 사치‘와도 비슷한 용어이다. 포미족(FOR ME)의 부상과도 연관이 있다. 빵집에서 가장 비싼 빵을 사 봐야 큰돈은 아니다. 500원 짜리 편의점 커피도 있지만, 점심 한 끼보다 비싼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는 것도 ’작은 사치‘이다. 집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싸 생애에 아파트 하나 살 형편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 대신 자동차는 멋진 것으로 사는 것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아파트 값에 비하면 ’작은 사치이다.

소확행의 전제는 긍정적이어야 하고 작은 일이지만, 흡족하고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남들이 보는 관점과 달라도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큰 목표를 이루면 좋겠지만, 큰 목표는 성공 확률이 높다. 그럴 바에는 성공 확률이 높은 작은 목표가 좋은 것이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는 ‘달관세대’라 하여 출세에 관심이 없다. 높은 직위에 오르게 되면 사생활을 희생해야 하고, 책임이 많아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을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식 직원도 마다하고 자유로운 아르바이트를 오히려 선호하는 풍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소확행을 즐기는 것이다.

70년대 말 전자오락 게임이 한창 유행이었다. 필자는 그 당시 ‘갤럭시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기록 중이었다. 위에서는 포탄이 쉴 새 없이 점점 더 많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밑에서는 방어물 뒤에 숨어 레버와 버튼을 이용하여 위쪽 적을 공격하여 파괴하는 게임이었다. 순발력과 빠른 손놀림이 동시에 필요한 게임이었다. 서울역에서 갈월동으로 가는 도로변은 전자오락 게임방이 줄지어 있었다. 밤늦은 시간에 가면 그날의 하이 스코어가 8만점대정도로 표시되어 있었다. 필자는 기계마다 20만점에 근접하는 기록을 만들어 냈다. 필자 뒤에는 그것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날도 한창 신기록을 수립 중인데 동료가 그만하자며 뒤에서 갑자기 필자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순식간에 게임이 종료되었다. 필자가 불같이 화를 내자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동료는 필자가 하이 스코어를 낸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남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면 되지, 그렇게 몰입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문했다. 그때 마땅한 어휘가 없어 필자의 입장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게 필자에게는 소확행이었다.

일 년 내내 전국에서 댄스스포츠 대회가 열린다. 권위 있는 큰 대회도 있고, 고만고만한 실력의 선수들만 참가하는 댄스 대회도 있다.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겠지만, 예선을 통과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작은 지방 대회는 우승도 할 수 있고 적어도 등수 안에는 들어 트로피도 탄다. 혹자는 그런 대회에서 우승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무시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보람이 있다. 목표가 크지 않으니 소확행이다.

작년에 마라톤에 입문했다. 10km에 도전했다.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풀코스도 아닌데 감히 마라톤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풀코스를 뛰는 사람도 처음엔 10km부터 뛰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풀코스에 도전하기 위해서 10km로 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10km 코스면 흡족하기 때문이다. 소확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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