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 네 쪼고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윤동주 시인의 ‘눈 오는 지도(地圖)’의
영화의 한 장면이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부인. 별다른 표현 없이 서먹하게 마주앉아 있다. 눈 쌓인 스키장이 배경이다. 카페의 활기와는 대조적으로 부부는 어색하게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몇 마디 무의미한 대화 뒤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남자의 만류에도 여자는 나가버린다. 남은 술을 다 마신 남자가 쓸쓸한 모습으로 주차된 자신의 차로 다가간
싫은 사람이 있으면 안 보면 된다. 부득이 마주치게 되면 피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마주치게 되는 관계가 고등학교 동창생들 모임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만나 50년을 지내왔으니 친한 관계이다. 그런데 그 중에도 친소관계는 있게 마련이다.
A는 동창회 모임에 좀 늦게 도착했다. 한정식집이었다. 인기 있는 반찬은 먼저 바닥난다. 간장게장이 인기
산골짝 사이로 강물이 흐른다. 강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선율처럼 부드럽다. 오솔길 위에 곱살한 낙엽들 폭신히 얹혀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숲엔 화염이 너울거렸으리라. 붉디붉은 단풍이 산을 태우고 숲을 살랐으리라. 그즈음, 조용히 흐르는 강물 위에 어린 건 홍조(紅潮) 아니면 황홀한 신열이었을 테지.
강가엔 절이 있어 풍경에 성(聖)을 입힌다
삼총사와 자유여행 도전!
11월 마지막 주에 삼총사 친구들과 일본여행을 떠났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도 하지만 비행시간이 두 시간 남짓으로 여행 가기엔 적당한 곳이다. 특히 두 친구는 꾸준히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어서 웬만한 의사소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좋았다. 이번에 우리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자유여행을 떠나보려고 했다.
그래도 비행
요즘은 겨울에도 눈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지금의 겨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몹시 춥고 눈도 많이 왔다. 그때는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곤 했다. 그 시절엔 눈 내리는 정경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나이 든 지금도 눈 내리는 날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늘 그랬던 일과였다. 저녁 종합뉴스가 끝나고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그날의 경기들을 정리해주는 스포츠 뉴스. 수십 년간 그랬듯이 그날도 놓치지 않고 TV 앞에 있었다. 무심코 바라보던 화면에서 머릿속을 번쩍이게 한 소식이 한 줄 지나갔다. 그는 그때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걸어보자”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푸른 잔디 위 다이아몬드에서 땀흘리는 선수들과 함
김 서린 다관 속에서 따뜻한 잠영을 하는 총천연색 꽃들을 나른하게 바라본다. 꽃다발을 받는 느낌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향긋한 기운과 느긋함이 찻잔 속에 한아름 안겨 담긴다. 추운 겨울 얼었던 손에 꽃차가 담긴 잔을 감싸쥐고 한 모금, 또 한 모금. 몸도 마음도 봄날 꽃처럼 활짝 핀다. 아름다운 모습만큼이나 순하고 착한 꽃차의 매력에 빠진 이들을 만
한국 포크 블루스의 살아 있는 전설, 이정선의 음악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에게 오랜 활동의 원동력을 물으니 “다른 걸 할 줄 모르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그는 거의 모든 질문에 무심하고도 간단하게 답한다. 자신의 음악적 삶에 대해서조차도 “그냥 오래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974년에 데뷔한 이후 그가 대중음악사에서 이룬 것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신혼집처럼 설레어 방과 방으로 이륙과 착륙을 반복했다. 에너지가 충만해서 허공을 걷는 듯 했다. 창문마다 다르게 보이는 풍경이 자유이용권을 산 찻집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무리를 했나보다. 며칠이 지나자 허리가 묵직하고 손목이 저렸다. 고양이자세, 허리꺾기, 허리 돌리기…. 살살 스트레칭을 해봤지만 통증이 멈추지 않아 한의원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