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의 ‘웰파크시티’(Wellpark City)는 한국의 ‘선 시티’(Sun city)로 불리는 곳이다. 미국 애리조나의 ‘선 시티’는 은퇴 시니어들을 위한 주거 복합단지라고 할 수 있으며, 마을 안에 병원, 경찰서, 소방서, 쇼핑센터, 영화관, 피트니스센터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웰파크시티’는 국내 실버타운 점유율 1위 기업 ‘서울시니어스타워’가 조성한 곳으로, 은퇴자 및 프리시니어(은퇴를 준비하는 시니어)에게 ‘설레는 내일’을 안겨주는 힐링 메디컬 리타이먼트 빌리지(은퇴자 마을)이다. 약 40만 평(약 150만㎡) 규모에 주거시설을 비롯해 다양한 시설을 완비했다.
도심 인프라 갖춘 전원형 실버타운
서울송도병원을 모기업으로 하는 서울시니어스타워의 첫 번째 실버타운(유료 노인복지주택)인 서울타워는 지난 1998년 최초의 도심형 실버타운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강서·분당·가양·강남타워 순으로 도심 또는 도심 근교에 서울시니어스타워의 실버타운이 세워졌다.
웰파크시티 내에는 6번째 실버타운인 고창타워(2017년 개원)가 들어서 있다. 그동안 도심형 실버타운에 주력하다 지방으로 시선을 돌린 서울시니어스타워는 그 이유에 대해 시니어의 변화된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백나영 서울시니어스타워 본부장은 “서울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는 공공연한 진리가 깨졌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방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니어스타워가 만든 웰파크시티는 건강하고 풍요로운 노후,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목표로 만든 은퇴자 마을이다. 전북 지역의 최대 관광단지인 석정 온천지구 내에 위치하며, 방장산에 둘러싸여 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그러나 지방의 실버타운 특성상 주변에 인프라가 부족해 ‘고립’ 될 것 같은 우려가 든다.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이를 보완하고자 다양한 인프라를 형성해 시니어가 도심에서의 삶을 그대로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웰파크시티 내에는 고창타워를 비롯해, 고급 빌라인 석정힐스, 석정파크빌, 그리고 황토펜션 힐링카운티 등의 주거 공간이 있다. 또한 석정온천휴(休)스파, 파크골프장, 요가명상센터, 면역파동욕장, 마트, 은행 등의 편의시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시니어의 건강을 책임지는 병원이 실버타운 인근에 있는 것이 중요한데, 웰파크시티 내에는 준종합병원인 석정웰파크병원이 있다. 인근 게르마늄 온천과 방장산 편백림을 이용한 운동 치료와 자연 치료를 병행한다. 고창타워에서 도보 2분 거리로 입주자는 일반종합검진 및 특수검사를 할인된 금액에 받을 수 있다. 고창타워 내에는 24시간 간호팀이 근무하기도 한다.
저렴한 금액 포함 장점 많아
◇보증금 : 1억 6000만 원(66.84㎡)~3억 원(109.07㎡)
◇월 지출비 : 50만 원대~85만 원 예상(1인 기준)
- 의무식 30식 : 25만 5000원(1식 8500원)
- 일반관리비(공용시설 유지비, 소모품비, 화재보험료, 직원 인건비 등) : 22만 원~35만 원
- 세대관리비(난방비·상하수도 요금, 전기 요금, 전화 요금, TV 수신료 등) : 10만 원~25만 원
고창타워에 거주하면 웰파크시티 곳곳을 즐기면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실버타운 거주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보증금 및 월 생활비가 수도권 지역 실버타운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먼저, 고창타워의 입주 보증금은 1억 6000만 원(66.84㎡)~3억 원(109.07㎡) 정도로 층, 향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월 고정 지출 비용은 57만 원~85만 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고창타워는 의무식이 30식(1식 8500원)으로 25만 5000원이 든다. 공용시설 유지비, 소모품비, 화재보험료, 직원 인건비 등을 포함한 일반 관리비는 22만 원~35만 원 정도다. 여기에 세대별 관리비로 난방비·상하수도 요금, 전기 요금, 전화 요금, TV 수신료 등은 별도 부과하는데, 10만 원~25만 원 정도가 예상된다.
그러나 아무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도심에서의 생활을 버리고 지방살이를 결심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에 고창타워에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면, 실버타운 입주 전 힐링카운티에 먼저 거주해 보는 방법도 있다.
힐링카운티는 원래 여행객들이 머무는 펜션으로 운영됐다. 그러다가 장기 숙박을 원하는 시니어들이 늘어나면서 2년 임대가 가능한 장기 숙박을 진행하고 있다. 힐링카운티의 크나큰 장점은 실버타운에 비해 제약이 적다는 점이다. 실버타운은 60세 이상만 입주가 가능하지만, 힐링카운티는 나이 제약을 두지 않는다.
종합해 보면, 웰파크시티 거주의 장점은 도심에서의 생활을 자연 속에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현역에 있는 시니어에게는 힐링 세컨하우스로 추천된다. 물론 새로운 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할 수도 있다. 주변에 다양한 시설이 많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또한 석정힐스, 석정파크빌, 힐링카운티 등에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형 은퇴자마을로 주목받고 있는 웰파크시티는 모든 시설을 잘 갖췄다고 생각되지만,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아직 40%밖에 개발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컨벤션센터, 노인 전용 콘도미니엄, 관광호텔 등이 들어설 예정으로 더욱 탄탄한 은퇴자 마을을 형성할 계획이다.
연예인 쫓아다니는 자녀의 등짝을 때려 말리던 여성들이 변했다.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시니어 팬덤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곳엔 반짝 유행도, 반짝 스타도 없었다. 거대한 흐름이 된 시니어 팬덤의 형성 과정과 심리학적 이유를 추적했다.
“최종 보스 컴백 확정.”
“우리는 살았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컴백하는 그룹 너무 안타깝네요.”
“아, 이런….”
한 틱톡(동영상 공유 플랫폼) 게시물 속 글로벌 K팝 아이돌 팬들의 대화다. 누군가의 컴백 소식에 한 팬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또 다른 팬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세계 속 K팝 팬들을 웃고 울리는 이는 가수 임영웅이다.
임영웅 컴백 소식은 하나의 밈(Meme, 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자리 잡았다. 한 오랜 K팝 팬의 말이다. “임영웅이 컴백하면 ‘숨스밍’(숨 쉬듯 스트리밍)해야 한다는 말이 돌아요. 보통 오후 6시에 음원이 나오잖아요? 첫날에는 아이돌이 1위를 하기도 하는데, 유지는 힘들어요. 어머니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거든요. 임영웅 팬덤의 존재요? 글로벌 K팝 팬들 다 알 거예요. ‘우리 아이돌 그때 컴백하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걸요.(웃음)”
‘영웅시대’(임영웅 팬덤)로 대표되는 시니어 팬덤의 입지는 상상 그 이상이다. 견제 또는 의식의 대상이 된 그들은 빠르게 대중 시장 지형을 바꿔나가고 있다.
은퇴하는 오팔 세대, 트롯맨을 만나다
광신자를 뜻하는 영어 Fanatic(퍼내틱)에서 따온 ‘Fan’과 영토를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인 팬덤(Fandom)은 한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돼왔다. 백과사전에도 ‘어떤 대중적인 특정 인물이나 분야에 지나치게 편향된 사람들을 하나의 큰 틀로 묶어 정의한 개념’이라 실릴 만큼 인식은 형편없었다. 1990년대 이른바 ‘빠순이’로 불리며 노골적으로 비하받았던 이들에게 오랜 시간 쌓인 편견은 성숙한 팬 문화가 자리 잡고 팬덤 소비가 위력을 드러내면서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팬덤 문화에 시니어가 본격적으로 합류한 건 2020년 전후로 지목된다. 바로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이 방영된 시점이자 ‘오팔(OPAL) 세대’가 트렌드로 부각된 시기다.
오팔이란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노년층(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약자로,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처음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와 발음이 같아,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5060 액티브 시니어를 지칭한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오팔 세대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탄탄한 경제력과 안정적인 삶을 기반으로 은퇴 후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세대. 2010년 즈음 노동 시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 이들은 2020년을 기점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에서 고령층(65세 이상)으로 접어들었다. 때마침 막이 오른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은 시니어 팬덤이라는 전에 없던 문화를 만들어낸 기폭제가 됐다.
중장년 여성이 팬덤이 된 진짜 이유
시니어 팬덤이 써낸 기록은 역대급이다. 그중에서도 2020년 방송된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은 독보적이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아무도 넘지 못했던 ‘마의 시청률’ 30%를 깨며 최고 시청률 35.7%(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분당 최고 시청률은 38.5%에 달했다. 최종 결선 7인 중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문자 투표에는 773만 1781표가 쏟아졌다.
광풍은 식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임영웅은 새 디지털 싱글 ‘Do or Die’ 발매와 동시에 국내 차트를 석권했고, 김호중은 영화 ‘바람 따라 만나리: 김호중의 계절’로 예매율 1위에 올랐다. 장민호는 ‘호시절(好時節): 민호랜드[MIN-HO LAND]’ 서울 공연 티켓을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시켰다.
심리학자 김은주 박사는 이를 “일대 특이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일본의 ‘욘사마 신드롬’(배우 배용준이 이끈 2000년대 초중반 한류 붐)과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평행이론처럼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김 박사는 그 기저에 중장년 여성들의 복합적인 심리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오팔 세대 여성들은 희생의 아이콘과 같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5000달러가 되기까지 그들 역시 엄청난 공을 세웠어요. 남성은 경제활동을 하고, 여성은 육아를 담당했지요. 아무리 뛰어난 여성이라도 대개는 가정에서 살림을 담당해야 했던 게 지금의 60대 여성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아이도 키우고, 부모 봉양도 마치고 나니 ‘빈집 증후군’ 같은 게 생긴 겁니다. 뒤돌아보니 사회적 권리도, 힘도, 소속감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인생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치열하게 살아온 뒤 남은 주름진 얼굴과 아무도 몰라주는 헌신. 그 우울과 불안 그리고 헛헛함을 마주했을 때 등장한 것이 장르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음악을 하는 스타라고 김은주 박사는 분석한다. 중요한 건 ‘트로트’가 아니라 ‘스타’라는 것이다. 시니어 팬덤이란 사회적 통념에 맞춰 사느라 돌보지 못했던 욕구를 스타를 통해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박사는 시니어 팬덤이 자체 미디어 교육을 통해 조직적으로 스타를 지원하고, 아예 팬덤 이름으로 기부와 봉사를 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고 했다. “시니어 팬덤은 단순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길러냅니다. 1등을 만들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지요. 그렇게 생애 첫 소속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동안 희생만 했다는 것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거예요. 심리학적으로는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중 3단계(애정과 소속의 욕구), 4단계(존중 욕구)가 함께 충족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김은주 박사는 시니어 팬덤 활동이 결국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중 5단계(자아실현)로 이끈다고 설명했다. 임영웅 팬을 자처하는 그는 부친을 잃은 슬픔을 신간 ‘영웅앓이’를 집필하며 이겨냈다고 했다. 김 박사의 말이다. “사실은 다 스스로를 위해 하는 행동이에요. 행복해지기 위해서요.”
국민 모두 행복하기를 꿈꾸며 사회·복지·의료 분야에서 평생을 달려왔다. 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자리에서 퇴임한 뒤에도 그 꿈은 여전하다. 여유 부릴 새 없이 이듬해 전문가들과 함께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를 설립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
김용익 이사장은 대학 시절부터 지역사회 의료에 관해 무수한 경험을 했다. 의료봉사회에 들어가 본과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매주 주말마다 판자촌 진료를 하고, 방학 때는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다양한 지역을 누비며 환자들을 보살폈다. 당시에는 아파도 가까운 시설이 없어 치료받지 못해 증세가 심해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복지 사각지대를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의료 취약계층을 줄이려면 제대로 된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의사 등 의료 종사자들이 환자를 찾아다니며 병원 밖에서 진료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선친께서도 시골에서 왕진을 다니던 의사였어요. 그 영향으로 자연스레 의학을 전공하게 됐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아버지는 주로 자전거로 마을 곳곳을 다니셨습니다. 종종 옛 친구들을 만나면 ‘너희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나를 살렸다’는 말을 듣기도 해요. 현재는 방문 진료가 몇 가지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라진 상태예요. 2008년 장기요양보험의 등장으로 새로운 방문 형태가 생겼지만, 왕진이 다시 활성화돼 이동 기능이 약화된 노인이나 장애인을 돕는 의료와 요양 서비스를 연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정 환경과 관련 봉사활동은 행보의 기폭제가 됐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전공하는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했다. 1980~90년대에는 보건복지 운동에 참여했다. 의료보험의 통합일원화, 의약분업 등을 추진하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고령화및미래사회위원장과 대통령실의 사회정책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보건의료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사회·경제 정책을 들여다보게 됐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정 활동을 했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4년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복지 체계를 정립하려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면밀한 토론, 모색을 거쳤다.
“학자로서 이론과 현장성을 두루 갖출 수 있는 큰 행운을 얻었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도 여러 노력을 했고, 퇴임하고는 방법을 바꿔서 돌봄과 관련한 사회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세 가지 난제가 있습니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죠. 역대 정부가 저마다 해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붓고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어요. 각각의 요소들은 넓은 교집합을 갖고 여러 고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같이 풀어나가야 해요. 돌봄과 미래를 창립한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돌봄의 더 나은 미래
돌봄과 미래는 이론적 연구를 기반으로 대안을 개발해 지역사회 돌봄이 확대·강화되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자 만든 사회운동 단체다. 김 이사장은 돌봄 문제가 워낙 큰 의제인 까닭에 여론 조성과 정책 제안,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 연령층이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노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을 돌볼 책임은 그 가족 혹은 당사자에게 있다. 그는 개인이 돌봄 노동과 비용의 짐을 떠안지 않도록 방문 서비스, 주·야간보호 서비스, 주택 지원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전국민돌봄’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돌봄 재난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노인 인구와 생산가능 인구가 동시에 늘어나는 게 아니라 반비례하고 있어요. 물리적으로 돌봐주거나 돈을 낼 사람이 없는데, 돌봐야 할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돌봄 체계의 실상은 15년 전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보호자의 책임과 부담, 도움이 필요한 이의 죄책감을 함께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전문 인력이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고, 그 외 공백은 주·야간보호센터를 설립해 채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봄을 받는 것처럼요. 더불어 건강한 생활을 돕는 주택 지원 및 개조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거 환경까지 개선하는 겁니다. 그렇게 시설 입소 인원이 줄어들면, 신체 상태가 악화돼 정말 시설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질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오랜 시간을 들여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면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거예요.”
유종의 미 거두고 인생 3막 향해
학자, 시민운동가, 정치인, 정책가로 일하는 동안 많이 체험하고 가슴 아파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쉬이 흘러가진 않았어도 굴복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정책의 완벽한 대안이라고 자신할 순 없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찾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만큼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자녀들 얼굴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죠. 누군가에게 주례를 부탁받으면 모두 거절했습니다. 스스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결혼해서 잘살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10년이 흘러 80세가 되면 ‘진짜 은퇴’하려 해요. 돌봄과 미래 활동을 마무리하고 나면 가족과 함께 일상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도서관에서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실컷 읽고, 산책도 즐기면서요. 그 전까지는 제 노력이 사회정책의 새로운 담론을 세우는 데 작은 초석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노주선 한국인성컨설팅 대표가 물었다. 중장년에게 은퇴 후 대인관계는 ‘너무 어려운 숙제더라’고 하니 돌아온 질문이다. 대인관계를 재정립하고 싶다는데 꿈 이야기라니. 무슨 상관이 있나 싶겠지만, 은퇴 후 고립되지 않고 건강한 대인관계를 만들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그의 말을 들어보자.
노주선 한국인성컨설팅 대표는 기업에서 리더십 교육, 채용 평가, 저성과자 교육, 심리 케어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만나는 수많은 중장년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에서 30년을 일하고 임원 자리에 올랐어도, 공공기관에서 고위 공무원 자리까지 올랐어도, 은퇴하는 순간 마음 둘 곳을 잃는다.
나이 50이면 절반 살았다
그를 만난 중장년들은 많은 것을 하소연한다.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는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말로만 듣던 꼰대가 나인가 싶다. 집이라고 다를까. 아내는 매일 모임 있다고 나가고 회사에만 있는 줄 알았던 MZ세대는 우리 집에도 있다. 오랜만에 나간 동창회에서도, 취미 생활 하려고 가입한 골프클럽에서도 재력 자랑, 자식 자랑이 가득하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점점 더 위축될 일만 생기는 것 같다. 한창때는 안 그랬는데, 사람 만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고 말이다.
은퇴를 앞둔 중장년이라면 공감할 이야기다. 노 대표는 재취업 교육을 할 때 항상 ‘어릴 적 꿈’을 묻는다. 50대는 인생의 후반이 아니라, 인생의 절반을 온 것일 뿐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애주기를 재정립해볼까요? 건강수명이 76세쯤 됩니다. 60세에 은퇴해도 16년은 활동을 더 해야 하죠. 30세 정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고 가정하고, 민간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은퇴 나이를 평균 내어 55세쯤 은퇴한다고 생각해봅시다. 25년을 활동했고, 앞으로 20년을 더 활동해야 합니다. 건강수명을 기준으로 한 거니 기대수명인 83세까지 생각하면 활동을 마치고도 여생이 더 남아 있어요. 자, 0세에 태어나 90세에 죽는다고 가정하고 그래프를 그려볼까요? 우리는 이제 인생의 절반을 왔을 뿐입니다.”
노 대표는 남은 20년을 설계할 때 어릴 적 꿈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지금 다니던 직장이 꿈이었던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대통령, 과학자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이제 와 대통령을 다시 꿈꾸자는 말이 아니다. 가정을 책임지고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원하지 않는 일을 해왔다면, 이제는 노하우를 펼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에 좋은 때라는 말이다.
50대라면 인생의 절반을 살았을 뿐이라는 관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또 있다. 은퇴 후의 삶은 이전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나의 사회적 위치가 어디였든,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다 해야만 합니다. 동시에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리더의 역할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예요. ‘왜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갈등이 시작될 수밖에요.”
“여러분의 삶을 존중하세요”
관계로부터의 고립은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시작된다. 노 대표는 자존감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짚었다. 은퇴 후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면 대인관계도 없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자존감을 잃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의 근본은 자기 존중감, 자존감에서 나옵니다. ‘나는 유능한데 왜 사회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지’라고 생각하면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맞나?’ 의심하게 되고, ‘그동안 해온 게 무슨 소용인가’라며 우울해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스스로 말해줘야 합니다.”
노 대표는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을 만든 에릭 에릭슨을 언급했다. 사람은 60세가 넘어 노년기에 들어서면 지혜와 자아 완성(Integrity)의 특성을 가져야 한단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왔고, 나의 가족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체력도 환경도 젊었을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노 대표는 ‘이전과 삶이 달라진다’는 걸 받아들이고 사회로부터의 인정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고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자존감을 채우는 게 너무 어렵다면 또래들을 만나보세요. ‘우리 왕년에 그랬지’라며 추억을 나누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젊은 세대에게 하면 꼰대가 되죠. 윗세대에게 말하면 ‘우린 풀 뜯어먹고 살았다’고 합니다.(웃음)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온 또래는 그 마음을 알아요.”
노 대표는 아예 중장년의 ‘라떼는 말이야’ 성토장을 열어준다. 그가 운영하는 서비스 중에는 무조건 ‘왕년에~’로 시작하는 말로 글을 써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면 또래들이 ‘그때 저도 그쪽에서 일했는데, 우리 참 힘들었죠’라며 공감해준단다. 나의 현실을 인정하고 내가 당당하면 관계도 잘 풀린다. 노 대표는 말한다. “Respect your life! 여러분의 삶을 존중하세요.”
대화, 어떻게 하는 건가요?
그럼에도 대인관계를 맺는 일, 타인과 대화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노주선 대표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나이를 잊을 것. 둘째 맞춤형 접근을 할 것. 셋째 나의 쓰임을 살필 것.
“여러분은 이제 고등학생쯤 된 겁니다. 앞으로 20년을 더 활동할 거니까요. 그러니 나이를 잊어야 합니다. 만약 고등학생 과외를 하다가 초등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야겠죠? 과거에 내가 잘나갔더라도 현재 내가 있는 곳에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경험을 어떻게 적용할지 나의 쓰임을 잘 살펴보세요.”
‘관계’라 함은 첫째 관계를 맺을 대상자가 있어야 하고, 둘째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셋째 관계를 통한 이익과 만족이 있어야 유지된다. 중장년은 주로 업무나 성과 중심의 관계 패턴을 많이 배워왔다. 사적인 관계가 많지 않고, 혼자 무언가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배경이다.
“80대 이상이면 일제강점기를, 70대 이상이면 6·25전쟁을 겪었어요. 행복, 즐거움, 만족 등의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예요. 칭찬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나오거든요. 게다가 남성성이 강조되는 가부장적 문화였죠. 우리나라를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끈 주역임에도 50대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 세대에게 칭찬을 받아보지 못했어요. 비업무적 대화를 어려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업무적 삶에서 비업무적 삶으로 중심이 이동한다. 그래서 비업무적 대화를 연습해야 한다. MZ세대와의 대화가 어려운 중장년이라면 더더욱 성과 중심적 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 대표는 ‘스몰 토킹’을 연습해보라 제안했다. 미국에 이민을 간다면 미국 문화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MZ세대의 관심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하시면서 우리 중장년 말로 ‘아이스 브레이킹’ 다들 해보셨을 거예요. 스몰 토킹이 그런 거예요. MZ세대의 관심사로 워밍업을 해보세요. 비업무적 대화는 이런 연습이 쌓여야 합니다. 만약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게 너무 어렵다면 접점을 찾아보세요. 예를 들어 자녀가 아이돌에 푹 빠져 있는데, 나는 아이돌 노래가 너무 정신없어 듣기 힘들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운동이나 게임처럼 함께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보는 거죠. 관계의 재정립은 비업무적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중장년이 대인관계가 어렵다고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관계의 편향’ 때문이다. 지나치게 업무적인 관계가 많다는 것. 따라서 동호회나 취미 활동으로 비업무적 관계를 늘려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다만 비업무적 관계를 목적으로 할 때는 성과 지향적 모임보다 취향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좋다.
가장 중요한 건 이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돼?’라고 생각하면 슬퍼질 수밖에. 노 대표는 ‘생각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30년을 한 직장에서 일했다면 얼마나 대우받았겠어요? 하지만 은퇴 후는 달라요. 20대 청년들과 경쟁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관점을 바꿔보면, 20대 청년과 같은 급여를 받지만 30년간 쌓은 노하우가 있으니 중장년은 얼마나 훌륭한 인재들이에요! 신혼부부가 빚을 내어 집을 마련했어요. ‘우리 이 빚을 언제 다 갚아?’라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까요? ‘그래도 우리가 집을 마련했네’라고 생각하면 다르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예요.”
은퇴 후 재취업이 쉽지 않을 때, 가족 사이에서 겉도는 것 같을 때, 마음 나눌 친구가 없을 때 좌절하지 말고 나를 안아주자.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쌓아왔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다. “여러분이 얼마나 훌륭한지 아십니까? 지금부터 30분 동안 자신에게 칭찬해주세요. 리스펙트 유어 라이프를 꼭 기억하세요!”
오랜 기간 자신만의 공간 속에 살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이들을 둘러싼 문제는 점차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형됐다. 일본 정부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부모까지 대상을 확대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청년층에 한정된 실태조사와 지원사업만 진행 중이다. 일본보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확한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한국형 은둔’을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어로 히키코모리, 한국어로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이들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하지 않는 기간이 최소 3개월 이상이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학업이나 취업 등 사회적인 관계를 거부하며 △방 안이나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더불어 우울증, 대인공포, 조현병 등 정신장애는 은둔 생활이 길어지면서 따라오는 결과 중 하나일 뿐, 원인이 아니어야 한다. 197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한국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 비슷한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숨게 만드는 사회
이들은 왜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켜야만 했을까? 원인을 단숨에 짚기란 쉽지 않다. 은둔의 시작 시기와 계기를 비롯해 각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 경제적 수준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과 회복 가능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가 한데 얽혀 유형화하기 어려운 것이 오히려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심화돼 진학 실패, 가족과의 갈등, 지속되는 취업난, 경직된 대인관계 등이 맞물린 것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은둔형 외톨이를 단순히 ‘개인 사정’으로 치부해왔다. 가족, 학교,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이라 낙인찍는다. 그사이 흘러버린 27년의 세월 동안 은둔형 외톨이는 더욱 많아졌고, 장기적으로 은둔 생활을 지속한 이들은 나이가 들어 중장년이 됐다. 최근에는 ‘8050 문제’(50대 자녀가 80대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현상)까지 우려되면서 노년의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원래는 ‘7040 문제’라고 불렀지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진화한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부모가 은둔 자녀와 동반 자살을 감행하거나, 반대로 자녀가 부모를 폭행해서 숨져도 연금 수급을 위해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명확히 마주해야 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은둔형 외톨이 규모를 추정할 만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발굴하고 사회로 복귀시킬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이 없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대응책이 없다 보니 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세심한 지원을 하기도 어렵다. 동굴 속에 있던 은둔형 외톨이가 어렵게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상담을 시도해도 의지가 약해서, 철이 없어서 등의 비난을 받고 되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국내 은둔형 외톨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전문가들은 일본의 지원책을 참고하면서도 한국만의 고유한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문화 때문이다.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은 “열심히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삶의 방식이 변했다”며 “생산을 강요하고, 쓸모를 인정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는 편견은 접어둬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또 “이혼, 사별, 은퇴 등으로 40대 이후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은둔과 관련한 지원을 점차 전 세대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와 상담할 때는 다각화된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라며 “관련 상담 전문가를 육성하고, 관련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
“은둔형 외톨이들은 대인관계에서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간혹 폭발적인 분노를 표현하고 주먹을 휘둘러요. 조급한 마음에 문을 없애버리거나 방 밖으로 끌어내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돼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망가졌던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물론 전문가가 돕는 게 가장 좋죠. ‘나랑 대화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이랑 통화해볼래?’ 하면서 전문기관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자신을 살리고 싶어서라도 연락하더라고요.”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 ▶
“한 명의 은둔 생활로 다른 가족도 함께 위축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 계속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내면을 치유하도록 북돋아줘야 해요. 그들도 더 힘들지 않기 위해 덜 힘든 방법을 택한 거니까요. 병을 치료하듯 은둔의 그늘은 한 번에 없어지지 않아요. 다시 어떤 계기로 은둔할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차츰차츰 나아질 겁니다.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가족 모두가 성장하는 시기가 올 겁니다.”
70대 중반 여성이 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피로, 불면, 식욕부진을 호소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다고 딸이 대신 말을 했다. 환자인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의자에 앉아 넋이 나간 듯 멀거니 진료실 바닥만 내려다보신다. 그에 비해 딸은 약간 격앙돼 있다. 이런 어머니의 상태에 걱정이 큰 것 같다. 나의 첫 질문은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냐는 것이었다. 딸은 올해 초 그러니 거의 9개월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미 다른 병원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질문으로 어떤 병원을 방문했고, 또 어떤 검사들을 받았냐고 물었다. 역시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고 딸이 대신 답을 한다. 어지럼증 때문에 머리 MRI(자기공명영상) 촬영도 했고, 혹시 암일까 걱정돼 위내시경에 복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병이 진단됐건, 그렇지 않건 병원을 방문해 불편감을 호소하는 분에게는 무조건 약 처방이 나간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다음 질문은 어떤 약들을 먹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역시나 동네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제 어머니는 왜 1년여 전부터 이런 우울감과 더불어 온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병을 겪게 되신 건지 천천히 파헤쳐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어머니는 현재 그럼 누구랑 함께 지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내 높은 목소리로 답을 하던 딸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혼자 지내신다고 했다. 작년 11월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쭉 혼자 지내오고 계신다고 말했다. 환자는 거의 20여 년간 뇌졸중으로 누워지내는 남편을 돌봐왔다. 작년 말 남편이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그의 역할 역시 사라져버렸다. 마치 20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심각한 것은 이제 자신의 숨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텅 빈 집이었다. 이제 환자의 목소리를 들을 차례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일을 하시나요?”
환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혼자 지내면서 언제부턴가 식사를 차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심지어 잠을 자는 것도 살기 위한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다. 조심스레 따님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살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딸은 당황해했다. 형제는 3남매지만 누구 하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어렵다고 했다. 급기야 딸이 말했다.
“그냥 입원시켜 주시면 안 돼요?”
입원해서 MRI든 CT든 다시 모든 검사를 다 받더라도 반드시 원인을 찾고 싶다고 했다. 나는 구태여 불과 몇 달 전에 한 그 검사들을 다시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아마 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수 개월간 여러 병원을 함께 다니면서 나와 같은 얘길 한 의사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다시 환자에게 시선을 돌려 질문을 했다.
“그래서 식사는 어떻게 드시나요? 목 안으로 넘어가는 음식은 있으신가요?”
“혼자 있는데 뭘 차려 먹습니까. (딸을 가리키며) 가끔 이 애가 와서 같이 먹을 때나 밥술이 넘어가지...”
자녀들이 다 독립해서 집을 떠나고 단 둘만 남은 노부부 중 먼저 한 명이 떠나면 나머지 한 명의 삶은 참 고독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와서 다시 돌보기도 쉽지 않다. 딸도 알고 있다. 선택지는 결국 노인요양시설이라는 것을. 그러나 차마 그러고 싶지 않아서 대학병원 진료실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왔을 것이다. 누굴 비난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맞아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거의 20여 년째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노인 빈곤율 또한 독보적인 1위다.
우리는 젊은 날 자식들의 사교육과 재테크를 위한 주식, 부동산에 온통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우리가 늙었을 때 어떻게 지낼 지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과 공부 그리고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다들 막연히 은퇴 후에는 여행이나 다녀야지 하는 뻔한 말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노년은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낮은 출산율만큼이나 노년기의 우울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병으로 치부하고 병원으로 달려오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독(孤獨)과 고립(孤立). 한 글자 차이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고독을 씹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간헐적 단절 상태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립은 대체로 장기간 뜻하지 않게 사회와 차단된 처지다. 그런 점에서 ‘고독 위험’은 어색하지만, ‘고립 위험’은 말이 되는 듯하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쓰는 ‘고독사’라는 단어도 실상은 ‘고립사’에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고립은 사회적 고립과 감정적(정서적) 고립으로 나뉜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연결망 결여로 대인관계나 사회활동 참여가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감정적 고립은 사회연결망이 구축됐고 일원으로 속했음에도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주관적 고립 상태다. 최근에는 가족·이웃 간 유대 약화, 1인 가구 증가, 코로나 등으로 인해 사회적·감정적 고립을 경험하는 이가 늘고 있다. 특히 중장년은 은퇴와 동시에 사회연결망이 사라지고, 자녀의 독립, 배우자와의 사별 등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립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해칠뿐더러 자칫 고독사 위험에 놓이게 된다.
고독과 고립, 뭐가 다를까?
누구나 살면서 고독과 외로움은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잘 다루고 이겨내면 괜찮지만, 아닐 경우 고립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과 고립은 어떻게 구분할까? 임선진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도움을 청할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로 가늠한다”며 “중장년기에 퇴직, 사별 등으로 일시적인 우울, 소외, 고독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을 때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고립’ 상태로 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2’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도’는 위기 상황에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로 정의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있느냐,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느냐 등을 물었을 때 ‘없다’고 응답한 수치를 환산했다. 그 결과 사회적 고립도는 2019년 27.7%에서 2021년 34.1%로 6.4%p 증가했다. 연령별로 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고립도가 높아졌다.
보고서의 원자료가 된 2021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연령 대비 교류하는 사람 수는 반비례했다. 특히 ‘가족 또는 친척 이외 교류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0~30대 13~19%, 40~60대 20~27%, 70대에는 38%까지 늘어나다가 80대에는 51%로 절반을 웃돈다. 같은 조사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묻는 항목을 살펴보면(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는가) 이 또한 나이가 들수록 도움을 청할 사람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2022)에서는 평일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와 접촉 방식에 대해 파악했는데, 해당 조사에서도 고령자일수록 ‘하루에 접촉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졌다. 수치로는 40대(1.6%) 대비 65세 이상(4.7%)이 3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의 과반수가 가족 또는 친척 대상에서도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가 1~2명 정도라 답했는데, 그중 대면 접촉은 3분의 1 미만이었다. 대체로 전화 통화로 접촉하는 상황이었고, SNS나 문자를 이용하기도 했으나 극소수였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고립?
사회적 고립을 말할 때 1인 가구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해마다 이뤄지는 통계청 인구총조사를 보면 2015년 이래 1인 노인 가구 비율은 지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조사인 2021년 조사에서 65세 이상 1인 가구는 36.4%였다.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서도 1인 가구의 어려움울 묻는 항목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어 외롭다’는 응답 비율은 연령대와 비례했다. 물리적으로 혼자 지내기 때문에 외로움·고립감이 더 크다는 건 자연히 수긍이 된다. 그렇다면 함께 사는 가족(또는 동거인)이 있으면 고립을 피할 수 있을까? 임선진 과장은 “가족이 곁에 있다면 사회적 고립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감정적 고립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고 자녀가 출가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주변인은 배우자가 된다. 그럼에도 배우자와 걱정거리를 편하게 이야기하는 중장년은 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가족실태조사에서도 배우자와의 사별 가능성이 적은 40~60대 중장년의 경우 배우자와 고민을 나누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하루 중 대화 시간 또한 1시간 미만인 부부가 과반수였다. 임 과장은 “감정적 고립을 호소하는 분들에겐 가능하면 가족 교육을 진행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고립 대상자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힘든지, 왜 그런지,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해야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등을 설명해드린다”며 “자녀 세대와의 감정적 거리도 멀다. 특히 요즘 세대가 쓰는 약어나 은어 등을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단절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초반에는 소외감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심해지고 마음의 벽이 생기면서 고립을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마음의 문 열고, 관심사 확장하기
고립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대상이 꼭 가족이나 친구일 필요는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나 기관 상담사 등도 해당된다. 가령 종교가 있다면 교회나 절 등에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얻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관이나 제도의 지원을 받는 것도 괜찮다. 최근에는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지자체 프로그램도 활성화된 편이다. 이러한 지원책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서비스가 빈약한 지역에 산다면 고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하고 지역사회 서비스도 마련됐는데, 스스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다면 예후가 좋지 않다. 감정적 고립이 심한 상태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다른 질환이나 증상을 동반할(또는 동반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 과장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못 해본 중장년이라면 주변인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에 경계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는 성격적으로 의심이 많거나, 알코올 중독증이나 우울증, 조현병을 앓는 경우도 타인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지만 새터민이나 다문화가정 외국인 등도 지역사회나 이웃에 대한 신뢰를 갖기 어려워 고립되기도 한다”며 “내원하시는 분들에겐 필요하면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과 의논해 지속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끔 시도한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인도 나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고립 탈출의 첫발을 뗄 수 있다는 게 임 과장의 설명이다. 그는 “중장년이 고립되는 사례를 보면 이러하다. 퇴직 후 의기소침해져 친구들을 멀리한다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해져 약속이 부담스럽거나, 자녀가 취업·결혼 등을 못 했다는 이유로 주변과의 만남을 피하거나, 부부동반 모임이었는데 사별 후 소외를 느껴 나가지 않는 등 다양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원인이 자신에서 비롯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나이 들수록 본인의 정체성에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며 “뭐든 자신을 중심으로 관심을 확대해나가면 좋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 내가 갖고 있는 질환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만약 스스로 고립에 처했다고 느낀다면 이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줄 사람은 누구인지, 기관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렇게 사회와 연결되고 활동 반경을 넓혀나가는 노력을 통해 고립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가운데, 노후 준비는 더 이상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동산, 즉 아파트를 주거뿐 아니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왕 살 집, 자산으로서 교환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선택하고 싶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을 만나 여생을 위한 부동산 투자전략과 시세 변동성이 적은 '알짜' 아파트 고르는 방법을 알아봤다.
Q.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언제부터 주요 자산으로 기능했나요?
A. 우리나라는 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도시 주변으로 인프라가 형성됐고, 인구 집중 현상이 심화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다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생활을 위해 아파트가 도입됐어요. 새로운 주거 형태에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상품화가 이뤄진 겁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는 아파트 가격의 상승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지고, 남다른 애착이 있죠. 여전히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삶의 공간이자 최후의 안전망이라는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Q. 하지만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있어 즉각 대응이 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A. 보통 은퇴 전후로 자녀가 대학 진학이나 결혼 등의 이유로 분가하게 됩니다. 더 이상 자녀와 함께 살던 큰 규모의 주택이 필요 없어지게 돼요. 기존 부동산을 처분하고 중소형 주택을 마련하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고려해볼 법합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차익은 노후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Q. 노후를 위해 아파트를 마련한다면,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A.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익성보다는 안전성과 환금성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소위 ‘한방’을 노리는 투기적 접근을 시도했다가는 투자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요. 이미 3저(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은퇴자가 큰 폭의 매각차익만을 노리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다소 무모할 수 있죠.
Q. 신축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 둘 중 하나만 살 수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는 게 경제적인가요?
A. 신축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축 아파트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구축 아파트에 실제로 거주하면서 향후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몸테크’족도 있고요. 하지만 50대, 60대 은퇴자들이 동파 사고 등 낡은 건물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점을 견디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재건축에 돌입해도 최소 5년은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래도 구축에 투자한다면 땅값이 비싼 곳일수록, 재건축 사업 기간은 짧을수록, 대지 지분은 클수록, 현재 용적률 혹은 개발 가능한 용적률이 높을수록 좋습니다. 앞서 반드시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조합원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Q.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에서 주거와 투자 가치가 높은 아파트는 어떻게 골라야 하나요?
A. 입지 및 교통 요건, 지형, 방향, 층, 조망권, 학군은 물론이고 최소 500세대 이상의 단지 규모에 브랜드 파워가 강한 아파트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아울렛이 근접해 있으면 좋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쇼핑이 발달해 과거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더불어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지만 1인 가구, 2인 가구로 나뉘어 가구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앞으로는 소형 평수지만 수영장, 헬스장, 커뮤니티 시설 등 다양한 공간이 갖춰진 아파트가 주목받을 거라 예상합니다.
100세 시대가 온 만큼 세대별 노후자산 관리 전략이 중요하다는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김진웅 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2030세대 - 종잣돈을 모으자
“이 시기엔 종잣돈 모으기를 소홀히 하지 마세요. 자산관리를 일찍 시작하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은퇴할 때 적절한 대처가 가능합니다.”
4050세대 - 노후자금을 빼서 쓰지 말자
“생애주기를 봤을 때 추가 저축이 힘든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노후자금을 당겨 쓰면 안 됩니다. 현재와 노후, 두 축의 균형을 맞추도록 하세요.”
6070세대 - 자산의 수명을 최대한 늘리자
“인출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등으로 현금이 계속해서 공급될 수 있도록 하세요.”
비교적 젊을 때부터 자산관리를 하자
“노후자산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그때부터는 현재의 나를 위한 축 하나, 노후를 위한 축 하나, 두 축을 가져가야 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연금, 누가 핵심만 알려주면 안 되나?’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이 질문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총대를 멨다. 포인트만 쉽고 빠르게, 복잡하고 어려운 말 하나 없이 정리했다. 유불리를 따져 연금 수령 최고 효율을 얻으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일본 열도를 뒤흔든 베스트셀러 ‘노후파산’은 고령사회의 단면을 가감 없이 다뤄 한국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생활비가 부족해 매 끼니를 걱정하는 비참한 면면을 바라보며 바다 건너 우리네는 공포에 떨었다. 국내 전문가들은 겁에 질리지 말고 교훈을 얻으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연금의 사각지대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연금이란 일정 기간 또는 사망 시까지 매월, 매 분기 등 일정 간격으로 지급되는 금액을 의미한다. 개인이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연금을 적립하다가 주된 직장 또는 직업에서 은퇴한 후 노후 생활을 위해 연금을 지급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본이 ‘3층 연금’이다. 국가가 가입 대상을 강제로 정하는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 직장에서 가입하는 퇴직연금, 개인이 임의로 가입하는 개인연금이 매월 월급처럼 정기적으로 노후를 뒷받침하면 큰 걱정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연금 지급 금액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 소비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금을 적립하고 수령할 때 세제 혜택도 주어진다. 연금에 관심을 갖다 보면 다른 투자로 이어지는 등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노후에는 연금이 효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기초생활 보장을 위한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만 65세부터 평생 수령할 수 있는 종신연금이다. 소득이 있을 경우 의무적으로 가입되고, 최소 가입 기간 120개월(10년)을 채운 뒤 개시 연령이 되면 노령연금을 매월, 그리고 평생수령할 수 있다. 연금은 가입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이 받는다. 임의가입, 임의계속가입, 추후납부, 실업크레딧 등 가입 기간을 늘리는 방법을 본인 상황에 맞게 활용하면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도 있다.
정해진 시기에 노령연금을 반드시 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5년 당겨 받을 수 있고, 5년 늦춰 받을 수도 있다. 소득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 개시 연령을 미루는 연기연금을 신청하면 1년에 7.2%씩 연금액이 추가된다. 최장 5년 연기 시 36%가 가산 지급된다. 물가 상승에 따른 인상분까지 더하면 연금액은 더욱 커진다. ‘무조건’ 좋은 것은 없다. 연기연금도 마찬가지다. 신청 전 소득, 건강, 생존 확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좋다.
“연기연금의 단점은 건강보험료에 산정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다 계산해봐야 해요. 회사에 다닐 때는 급여로 건강보험료를 가산하지만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자산을 다 합산해서 부과합니다. 집, 자동차 전부 다요. 지역가입자로 하는 것보다 직장에서 내는 게 더 적으면 3년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퇴직 후 2개월 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결국 수령 시점에 본인한테 무엇이 더 유리한지 불리한지 알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퇴직연금’
퇴직연금은 회사가 근로자의 퇴직금을 금융사에 적립하고 퇴직 시 근로자가 이를 수령하는 제도다. 적립도 투자도 회사가 운영하는 확정급여형(DB), 적립은 회사가 투자는 본인이 하는 확정기여형(DC), 적립도 투자도 본인이 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와 개인형 IRP 계좌가 있는 사람에게 최근 화두는 디폴트 옵션이다. 디폴트 옵션이란 쉽게 말해 ‘기본값’으로, 사용자가 특별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때 기본값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다. 기존 금융상품 만기 후 6주간 운용 지시가 없으면 디폴트 옵션이 적용된다.
크게 원리금 보장형 상품, 펀드, 원리금 보장형 상품 또는 펀드가 둘 이상 조합된 포트폴리오 상품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대세는 ‘TDF’(타깃데이트 펀드)다. 은퇴 시점에 맞춰 펀드 내 위험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산 배분 펀드로 연금에 특화된 상품이다. 상품명 TDF 뒤에 붙어 있는 ‘2035’, ‘2050’ 같은 숫자는 은퇴 예상 연도를 의미한다. 본인의 투자 성향과 예상 은퇴 연도를 대략적으로 가늠해보고 결정하면 된다.
“퇴직연금은 엄연히 노후를 위한 제도인데도 다른 용도로 쓰는 분이 아주 많습니다. 국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500만 원 정도입니다. 퇴직연금으로 1년에 500만 원씩 20년 모으면 1억 원이죠. 30년 모으면 1억 5000만 원입니다. 원금만 그렇습니다. 아무리 운용을 못 해도 은퇴 즈음에는 1억 5000만~2억 원이 모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퇴직연금을 갑자기 생긴 목돈 정도로 여기는 게 문제예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은퇴 전까지는 건드리는 돈이 아니다’라고 여기고 운용해야 합니다.” -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한 ‘개인연금’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가입하고, 금융기관에서 운영하는 연금이다. 은퇴 후 기간은 길어지고 근속 기간은 짧아지면서 개인연금의 필요성은 점점 더 대두되고 있다. 연금 개혁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보완할 노후 소득원도 필요한 상황. 전문가들은 그 대안을 개인연금에서 찾고 있다.
개인연금의 가장 큰 장점은 세액공제 효과다. 절세하면서 노후자금을 천천히 만들어갈 수 있다. 대표적인 금융상품으로 연금저축과 IRP가 있는데, 이를 연금계좌라고 한다. 총 납입은 연 1800만 원까지 가능하다. 2023년부터 세제가 변경되면서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한도를 넘겨 저축한 금액은 이듬해 또는 그 이후로 이월해 세액공제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