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
-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세계적 문화유산 2가지를 말하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아주 많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 불국사, 석굴암, 수원화성, 고인돌 유적, 해인사 대장경판, 종묘, 판소리, 강강술래 등 유형 및 무형 문화유산이 많은 편이다. 특히 제주도는 최근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는 그런데도 공기나 물처럼 그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 것인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세계 제일인 것을 말하라면 한국인에게 자랑스러운 유형의 한글과 무형의 선비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높은 문맹률 퇴치와 자본주의의 폐단인 이기적인 삶의 만연으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이러한 아름다운 문화를 전파하는 일에 우리나라 발전의 새로운 동력인 액티브 시니어들이 나선다면 우리의 인생 2막은 훨씬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이 되리라 생각한다. 1. 훈민정음 한글은 유엔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문자다. 유엔의 산하기관인 유네스코는 매년 지구촌 문명퇴치에 공이 큰 각국의 기관과 단체에게 세종대왕 문해상(King Sejong Literary Prize)을 수여하고 있다. 현재 서울 간송 미술관에 보관 중인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1962.12.20)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종 28년 (1446년) 창제 반포된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한글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는 이유는 표음문자, 음소문자, 자질문자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지구상의 유일한 문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발명한 문자 중 창제 목적이 확실하고, 창제 일이 정확하고, 창제자가 분명한 문자는 한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보편적이며 아주 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글은 인류가 발명할 수 있는 최고의 문자라고 격찬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IT시대를 맞이하여 한글의 우수성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한글의 세계화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어를 제1외국어 또는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국가가 2012년 현재 23개국 799개 학교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며 그 학생 수는 약 7만6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세계 10대 무역국가로서 농수산물, 공산품 등 제품의 수출입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이제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한글이라는 문화도 함께 수출하여 세계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한글이 지구촌 인류의 소통과 평안, 평등,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위대한 문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글은 자음과 모음 24자로 모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체계다. 오늘날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영어는 자음과 모음이 26자이지만 사실상 이를 표현하는 데는 26x4=84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문화를 통일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한글로 문자를 통일한다면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2. 선비정신 오늘날 선비라는 말은 뭔가 고전적이며 구태의연한 느낌을 주는 단어다. 또 막상 선비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라면 머리에서만 맴돌 뿐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는 일제 통치시대 때 일본의 한국 문화 말살 정책 결과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일 수도 있다. 선비란 “인·의·예·지의 인간 본성으로 개인 인격을 수양하고, 효·충·경·신의 조직 원리로 사회 인격을 수행하여 만인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리더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아주 멋진 말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오늘날 영어의 신사(gentleman)나 군자의 의미이지만 이런 낱말이 주는 뉘앙스보다 훨씬 더 멋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라는 말의 어원은 대략 3가지 설이 있다. 첫째, 선비란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알타이 어족 몽골어 기원설이다. 둘째, 고구려 조의선인(皁衣仙人)의 호칭인 선배(신라의 화랑도와 유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셋째, 선비 사(士, 하나를 알면 열 가지를 안다), 선비 유(儒,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 선비 언(彥, 문무를 겸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나온 의미라고 한다. 선비들이 갖춰야 하는 근본정신과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 선비정신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선비 아카데미 회장인 화원 선생은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살신성인, 거의소청, 극기복례, 법고창신, 솔선수범이다. 그러면 선비 정신의 보편적 핵심 가치는 무엇일가? 공자가 강조한 것은 인간은 개인적인 존재이자 사회적인 존재로서 대동사회를 펼치기 위해 유학사상을 창안했고 이는 선비정신의 근본이다. 유학은 인도주의 사상으로 수기치인지학(修己治人之學)이다. 유학은 현실 중심 사상이다. 매순간 인간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강령으로 하의상달로 요약된다. 유학은 실천중심 사상이다. 유학은 관계구현 사상이다. 공부와 학습은 개인의 인격 완성을 위해 하는 것이고 나아가 조직의 인격완성을 위해 하는 것이다. 퇴계 이황은 개인 인격의 완성으로 독립할 수 있고 사회 인격의 완성으로 상생할 수 있다. 개인 인격은 인간의 근본인 진실함인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격물, 치지, 성의, 정심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이를 지도자의 셀프 리더십 근본으로 삼았다. 이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태도 및 행동의 뿌리다. 여기서 격물이란 대상에 대한 깊은 궁리로 밑바닥까지 캐내고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을 뜻하며 과학적 탐구를 뜻한다. 치지란 정확한 지식의 종착점을 말하며, 성의란 성실한 의지로 열정과 집중을 한곳에 투입함을 뜻한다. 정심은 하늘로부터 받은 본래의 양심으로 옳고 바르며 순수한 편견이 없는 마음이다. 수신이 이루어지면 개인 인격의 독립이 완성되고 스스로 빛을 밝히게 된다. 그다음 단계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빛을 이끌어내는 행위다. 즉 나와 남이 빛을 함께 발할 수 있어야 대동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선비 리더십의 8가지 요소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다. 이황이 성의 정심에 무게를 두고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이이는 격물, 치지에 중심을 두고 물질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요컨대 선비란 어짊인 사랑과 섬김인 존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한 선비는 자기 자신을 닦아 개인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위한 조직 인격과 사회 인격을 확립시키는 사람이다. 선비가 되기 위해서는 수기안인, 위기지학, 법고창신을 해야 한다. 오늘날 사용하는 언어로 대체하면 인간성 교육, 전문성 교육, 창의성 교육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비정신은 붓의 문화이며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인 칼의 문화와 구분된다. 따라서 한국은 붓의 문화로 칼의 문화를 감싸 안고 이를 극복하여 세계 문화의 창달에 힘을 써야 한다. 또 나아가 선비정신을 전 세계에 수출하여 아름다운 세계문화 창달과 홍익인간의 이념 실현을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 2017-03-30 15:55
-
- 연극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보고
- 어릴 적 살던 정릉의 마당 넓은 집 사랑방에는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이 있었다. 부모님이 책을 좋아하셔서 많은 책을 채워 놓으셨다. 엄마 아버지가 책을 많이 읽으시니 우리 세 딸도 책을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필자가 오늘날 요만큼이라도 지식과 감성이 있는 건 아마 이때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일 것이어서 감사하다. 많은 장르의 책이 있었고 그중 근대문학과 현대소설 작품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책장 한편에는 러시아 문학작품이 꽂혀 있었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건 러시아문학 작품은 어렵다는 편견의 느낌이다. 대부분 러시아 문학책은 다른 책에 비해 크기가 컸고 두꺼웠으며 표지는 금장을 두른 단단한 재질로 되어 있어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죄와 벌, 전쟁과 평화, 부활 등 세계적인 명작도 지금은 흥미로운데 그땐 왜 그리 어려웠는지 한 장 읽으면 두 장은 뒤로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 할 만큼 힘들었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은 어렵고 지루한 책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었다. 이번에 어떤 이벤트에 당첨되어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게 되었는데 어릴 적 어렵게 느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다. 복선이 깔린 긴 내용을 어떻게 연출했을지 궁금하고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되었다. 아직 겨울이 다 지나간 건 아닌 듯 뺨에 닿는 바람이 차갑지만 상쾌한 기분으로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을 찾았다. 그런데 이 연극은 평상시 생각했던 연출이 아니었다. 보통 연극은 길어도 두 시간 반을 넘기는 작품이 드문데 오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생각지 못하게 1부와 2부의 각각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졌고 두 작품 모두 3시간 30분의 무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1부 2부를 계속해서 본다면 7시간의 공연이니 관객이나 배우의 입장에서도 좀 힘들지 않나 걱정되었다. 평일에는 1부나 2부만 공연한다고 한다. 그러니 1부만 보고 끝내기도 그렇고 새롭지만 좀 어려운 관람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내용은 방대하고 섬세한 복선이 깔린 대작이어서 그만큼 연극 한 편으로 함축하기엔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는 이날 1부만 관람하기로 했다. 주연인 탤런트 정동환 씨는 필자가 좋아하는 배우라 기분 좋은 설렘이 있었다. 막이 오르자 어두운 무대 한 편에서 작가로 분한 정동환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와 등장인물을 소개하면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수로 12년을 복역하다가 감형을 받고 풀려난 후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알게 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들어온 한 죄수의 이야기를 했는데 눈빛을 보니 그 죄수는 아버지를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독백한다. 잡혀 온 사람은 누명을 쓴 첫째아들 ‘드미트리’였다. 너무나 유명한 소설로 내용은 다들 아실 것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아버지를 누가 죽였을까? 네 아들의 이야기이다. 첫 부인이 낳은 방탕한 호색한인 장남 ‘드미트리’는 유산과 여자 문제로 아버지 ‘표도르’와 다투며 공공연히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떠들고 다닌다. 둘째 부인의 소생인 둘째 아들 ‘이반’은 무신론자에 자존심이 강한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반’의 동생인 셋째아들 ‘알료샤’는 성직자로 종교적 사랑의 실천자로 등장하며 복잡하게 얽힌 아버지와 형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애쓰는 인물이다. 그리고 순진하고 바보스러운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 넷째아들 ‘스메르자코프’가 하인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살해되었는데 누가 진범일까? 다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각자 죄책감을 느낀다. 그 와중의 복잡한 이야기가 너무나 길어서 연극도 한 번에 끝낼 순 없었나 보다. 세 시간 반 동안의 1부 공연방식이 필자에겐 좀 어렵게 다가왔지만, 연극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각 인물의 삶의 가치와 방식을 드러내는 내면의 심리상태를 공간적 이미지로 표현한 연출도 돋보이는 부분의 하나였다. 긴 시간 열정적으로 멋진 연기를 보여 준 배우들이 얼마나 노력하며 연습을 했을지 찬사와 감사를 함께 보낸다.
- 2017-03-18 12:41
-
- 스마트폰 사랑
- 싱가포르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적어낸 소원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다는 이야기가 새벽 출근길 내가 늘 듣는 라디오 오프닝 멘트로 흘러나온다. “나는 스마트폰이 되고 싶다. 엄마 아빠는 스마트폰을 너무 좋아하시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사랑받고 싶다.” 초등학생의 아주 절실하고 솔직한 소원이다.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소원은 “나는 스마트폰이 갖고 싶다”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예상 밖의 소원에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곧 그 스마트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스마트폰은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아니 정신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지하철을 타면 승객 대부분이 얼굴을 숙이고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길을 가다가 맞은편에서 앞도 안 쳐다보고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 직진해오는 사람을 만나면 피해야 한다. 운전 중에 스마트폰을 보거나 문자를 확인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부류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 심지어 셀카를 찍다가 낭떠러지 등에서 발을 헛디뎌서 사망하는 사람이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보다 많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필자도 운전 중에 급한 전화를 하거나 특별히 멋진 경치를 보게 되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니 할 말은 없다. 언젠가 지하철 의자에 앉은 늘씬한 미녀가 핸드백에 작은 노트북을 올려놓고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좀 혼잡한 지하철에서 컴퓨터에 열중하고 있는 지적인 외모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몇 정거장을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그녀의 옆자리가 비어 내가 앉게 되었다. 앉으면서 컴퓨터를 슬쩍 쳐다보니 그녀는 인터넷 고스톱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사적으로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더니 잠시 전 매우 지적으로 보이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스마트폰이 그 이름대로 삶을 조금이라도 더 스마트하게 해준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폐해가 자꾸 커진다. 아이보다 스마트폰을 더 사랑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오해를 살 수 있는 환경에 빠져들고 있다.
- 2017-03-17 10:02
-
- 감미로운 음악이 진정한 <사랑의 묘약>
- 봄은 사랑의 계절이다. 겨우내 죽은 듯이 잠자던 고목에 생기가 돌듯이 움츠렸던 몸이 기지개를 켜고 기운이 생동하기 시작한다. 처녀들 볼이 발그레 물들고 총각들 장딴지에 힘이 넘친다. 새 생명의 싹들이 돋아나듯 가슴마다 사랑이 물든다. 그렇다 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러니 어찌 방안에만 갇혀 있으랴! 모처럼 오페라 나들이를 했다. 이번 은 정확히 말하면 정식 오페라가 아니라 ‘오페라 콘체르탄테’다. 이는 콘서트 형식을 띤 오페라로 구체적인 연기나 배경이 없이 오케스트라와 성악이 중심이다. 오히려 오페라보다 오케스트라의 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어 더 좋기도 하다. 가에티노 도니체티의 은 ‘오페라부파(희극 오페라)’로 경쾌한 음악과 희곡적 스토리 덕분에 오페라를 잘 모르는 사람도 신이 나고, 낯익은 멜로디가 많아 친근감이 느껴진다. 스토리는 제목으로도 상상할 수 있듯이 사랑에 관한 것이다. 흔히 있을 법한 사랑의 삼각관계. 소박한 농촌 총각 네모리노(매튜 그릴스:테너)냐 아니면 멋진 하사관 벨코레(김주택:바리톤)냐? 이 두 사람 중 망설이는 절세미인은 아디나(이윤정:소프라노)다. 그녀 옆에는 친구 잔네타(윤성회:소프라노)가 있다. 첫 대목 아디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의 전설을 읽어주는 대목에서 ‘사랑의 묘약’의 복선이 깔린다. 그런데 애타는 네모리노에게 그 사랑의 묘약을 들고 둘카마라(사무엘 윤:베이스바리톤)가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네모리노는 대뜸 가진 것을 다 털어 이 약을 사고 약효가 나타나기를 하루 동안 기다린다. 하지만 아디나는 표변한 네모리노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벨코레와 결혼을 선언한다. 마음이 급해진 네모리노는 다시 둘카마라를 찾아가 약을 더 사려 하는데 빈털터리다. 할 수 없이 입대하는 조건으로 벨코레에게 돈을 받아 묘약을 사 먹고 약효를 기다리며 아디아에게 또 무관심한 척한다. 그 사이 네모리노 삼촌이 거액을 네모리노에게 상속했다는 소문이 돌아 잔네타와 마을 처녀들은 모두 네모리노에게 친절히 대하고 그의 사랑을 차지하려 한다. 이에 네모리노는 드디어 ‘약효가 나타나는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아디아가 돌아와 사랑을 고백한다. 네모리노가 자신을 모른 체하자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네모리노임을 깨달은 것이다. 속성 작곡가이고 한 번 작곡한 곡은 다시 보지 않는 도니체티는 이 오페라를 장장 2주에 걸쳐 고치고 또 고쳤단다. 그 때문인지 아름다운 아리아가 많다. 그중 백미는 2막에서 네모리노가 부르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다. 이 곡은 1832년 밀라노 초연 때에는 ‘희극 오페라에 웬 생뚱맞은 단조의 슬픈 멜로디냐?’라며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단다. 하지만 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그 멜로디는 공연이 거듭됨에 따라 사랑받는 명곡이 되었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둘카마라 역을 맡은 사무엘 윤의 분장과 코믹한 연기다. 약병으로 소주병을 들고 나온 것도 관객에게 친근감과 웃음을 더했다. 매튜 그릴스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에 혼을 다 쏟아 부었다. 아름다운 벨칸토를 잘 소화해 낸 소프라노의 활약도 극의 완성도를 높혔다. 여기에 호세 미구엘 에산디의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지휘가 더해졌다. 전체적으로 매우 감동적이어서 관객 중 한 외국인이 기립박수를 치며 모두 일어서기를 권했지만, 양반 기질에 수줍음이 덧입은 우리는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그냥 마음속으로만 벌떡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은 밤인데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봄날의 햇빛처럼 온몸에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본디 에 등장하는 사랑의 묘약은 죽음을 불러왔지만, 흥겨운 오페라에선 진짜 사랑의 묘약이 되었다. 그렇다. 음악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묘약이었다.
- 2017-03-16 16:17
-
- 은퇴 후에도 명함을 만들자
- 은퇴와 함께 없어지는 것 중의 하나가 명함이다. 새로운 직장이나 단체에 소속하면 새 명함을 만들지만, 그러기 전에는 대체로 명함을 갖지 않는다. 명함을 내미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게 되면 상대방 명함을 받기만 하며 멋쩍어한다. 예전에 쓰던 명함을 건네는 사람도 보는데 전화번호가 기재되어서다. 퇴직을 하면 직장과 관련한 인간관계는 줄어들고 새로운 관계망이 형성된다. 자신을 잘 알려줄 필요성이 대두한다. 은퇴와 함께 없어지는 명함 사용도 그런 시각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상대방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는 전달 매체, 또는 연락처 역할로서 명함이 필요하게 된다. 새로운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그냥 말로서 자기를 소개하는 것보다 멋진 명함 한 장을 내밀면 상대방은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이고 이름과 연락처 기억에 효과가 크지 않을까? 필자는 이른 나이인 47세에 평생직장을 그만두게 됨으로써 명함도 없어졌다. 소속이 없으므로 명함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당시에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거나 인사를 나누게 될 때 상대방이 명함을 건네는 경우 필자는 말로만 소개하게 되어 좀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말로 소개를 받았을 때 상대방의 이름을 쉽게 파악하거나 기억하기 힘들었다. 다시 물어보기도 뭣해서 그냥 알아들은 척 지나치곤 함으로써 다음에 만났을 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직장이 없어도 간단한 개인명함을 만들어 사용하면 그런 예에 도움이 되지 싶은 생각이 들어 이름과 연락처, 블로그. 메일 주소를 넣은 단순한 명함을 만들어 사용해보았다.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뒤로 개인명함을 줄곧 사용해 오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명함 만들기를 권유해 오고 있다. 현재는 활동 단체가 여럿이어서 여러 장의 명함을 가지고 있으나 여전히 개인 명함(사진)을 주로 사용한다. 근래에 “명함 코디네이터”란 새로운 직업이 생겨 독특한 명함을 디자인할 수 있게 해준다. 전통적 명함은 소속과 직위, 전화번호 주소, 우편번호 등이 수록된다. 직장인 명함이 그 대표 격이다. 그런데 새로운 시도의 명함은 새로운 세상에 새롭게 자기를 알리고 자기의 미래 비전을 명함에 담아 디자인한다. 우선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릴 수 있는 문구를 직함 대신에 넣는다. 필자는 사진을 취미활동으로 여가를 보내고 사진 강의하며 “사진은 카메라로 쓰는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그런 내용이 담긴 문구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사진은 카메라로 이야기” 의미를 곁들인 “포토스토리텔러’란 직업명을 만들어 넣었다. ‘사진 이야기꾼’이 되겠다. 또한, 그 문구에 미래의 비전을 담았다. 삶의 목적을 기록으로 남긴 일이기도 하다. 그 목적 성취를 위하여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포토스토리텔러”로 자칭하기에 더 나은 포토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어느 쌀 도정업자, 즉 방앗간 주인은 “사장 OOO” 대신에 ‘라이스 디자이너 OOO”’라고 명함을 새겼다. 쌀을 찧는 것을 ‘쌀을 디자인한다’라는 생각으로 전환한 셈이다.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었다. 라이스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이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어 정미소가 깨끗해졌고 디자이너답게 정성을 다해 찧었다. 손님이 늘었다. 신문배달원에게 ‘페이퍼 앵커’라는 명함을 만들어 주어 직업에 대한 긍지를 심어준 사례도 있다. 한 호텔에서는 객실 청소 담당 여직원을 ‘룸 스타일리스트’라고 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와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는 좋은 방법이 되었다. 은퇴 후에도 새로운 인간관계를 확대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 소속이 없어도 개인 명함을 만들어 사용하기를 권유한다. 상대방이 자신이 뭣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목적으로 사는 지가 표현된 새로운 명함을 말이다. 특히 가정주부로 평생을 살아온 여성분들도 살아생전에 멋진 명함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 2017-03-16 15:57
-
- 이중 잣대가 문제
-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에는 중량감 있는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65세 사진작가 킨케이드 역으로 출연했고, 메릴 스트립은 가정주부 프란체스카 역을 맡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4일간 집을 비운 사이 킨케이드가 프란체스카의 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사랑에 빠져 정사를 나누고 갈등한다는 줄거리다. 중년의 외도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명화라며 칭찬하는 분위기다. 남녀 구분 없지만 특히 여성들이 더 열광한다. 언젠가 EBS에서 주말의 명화로 이 영화를 방영한다고 하자 주변 여성들이 꼭 보라며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안 본 사람은 꼭 봐야 하고 이미 본 사람도 다시 볼 만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시큰둥해했다. 서부영화에서 카리스마를 보이며 멋진 총잡이로 나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너무 늙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도 보기 안쓰러웠고, 그런 나이의 남자에게 프란체스카의 마음이 움직여 정사까지 나누게 되는 전개도 큰 공감이 되질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며 같이 도망가서 살자는 킨케이드의 유혹도 도덕적으로 용서하기 어려웠다.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별 불만 없이 살고 있었고 아이들까지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가 가정을 버리고 킨케이드를 따라나섰다면 돌팔매를 당할 만한 줄거리였다. 여성들이 남편의 외도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 영화에 대한 평가에 관대한 것을 보면 대리만족이 아닐까 한다. 영화에서는 되고 현실에서는 안 된다는 이중 잣대인 셈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의 외도에 대한 조사 자료는 많다. 남자들의 외도율은 매우 높다. 여성들도 남성들보다는 낮지만 꽤 높은 수준이다. 통계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신뢰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 주변의 남자들이 예외 없이 외도 경험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은 성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성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군대에 입대한, 성 경험이 없는 졸병들에게 부대 인근의 매춘부를 붙여줄 정도로 남자들은 ‘숫총각 딱지’를 떼도록 강요받는다. 요즘은 성매매를 강력히 단속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남성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여자들과 섹스할 수 있는 기회는 널려 있는 편이다. 외도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애매하다.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데이트 정도 한 것을 외도로 보는 사람도 있고, 정사를 나눈 것만 외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남자들은 외도 기준을 상당히 깊은 관계에 둔다. 매춘부와의 섹스 정도는 외도로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남자의 본능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도 섹스를 할 수 있으므로 마음을 주지 않으면 외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종종 여성들도 마음을 주지 않은 섹스 정도는 눈감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니 외도를 하더라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 여성들은 폐경이 되면 성욕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전히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다. 섹스리스 부부 중 남편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병이 생길 수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지만 성욕이 떨어져버린 아내는 꿈쩍도 안 한다. 신혼부부라면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50대가 넘으면 애걸해봤자 “나이 들어 주책”이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가수 조영남씨가 쓴 책에 보면 5년마다 배우자를 바꾸는 공약을 내세우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개그가 있다. 남녀 모두 열렬히 동의하는데 특히 여자들이 더 뜨겁게 호응하더라는 얘기다. 생물학적으로 3년이 지나면 호르몬 작용에 의해 사랑하는 감정이 식는다고 한다. 그 무렵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가교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부부의 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에는 정상적으로 부부생활을 하는 커플보다 이혼을 하거나 별거인 커플이 더 많이 등장한다. 전 남편과 현 남편이 같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는 장면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이혼에 대한 시각이 상당히 관대해졌다. 이제 혼인빙자간음죄에 이어 간통죄까지 폐지되었다. 개인의 사생활을 국가가 개입해 제재를 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섹스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종족보존의 본능을 벗어나 섹스라는 쾌락을 즐길 줄 아는 동물이다. 그런 선물을 도덕적 잣대 때문에 억제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각자가 알아서 처신할 일이지만, 외도는 ‘적당한 간식’이며 ‘삶의 활력소’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단, 배우자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 2017-03-14 09:53
-
-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할 때 유혹을 이긴다
- 중년은 인생의 황금기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사람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기반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과 금전 때문에 미뤘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전문가로 우뚝 서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서기도 한다. 중년이 만족스러워 중년 예찬론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의 절정기여서 유혹을 제일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누가 기반을 잡지 못한 청년 혹은 활력이 떨어지는 노인을 유혹하겠는가? 성공한 사람은 권력, 명예, 재물, 이성의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이 이성의 유혹이다. 가정 파괴와 가족 구성원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외도는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외의 이성과 깊은 관계에 빠지는 것이다. 중년에 이성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뭘까? 열심히 살아온 인생, 이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며 허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유혹은 이러한 틈새를 타고 시작된다. 외도를 해도 평생 들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대가를 치른다.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학창 시절을 힘겹게 보냈다.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안 올랐고 외톨이처럼 우울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수십 년이 지난 뒤 알게 됐다. 의사로 성공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한 뒤 재혼을 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친구는 상당 기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행이 어려울 뿐이다. 첫째, 유혹에 빠질 환경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백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한다. 은밀한 만남은 피해야 한다. 유혹을 받을 경우가 생기면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게 현명한 일이다. 둘째,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지만 반드시 그 값을 치른다. 조금만 즐겨보자고 시작한 관계는 결국 인생을 망친다. 마약환자, 도박중독자도 다 그렇게 시작한다. 자신에게 그러한 결단이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빠져보고 그만두자는 생각은 위험하다. 순간의 유혹에 빠질 때는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가혹하다. 유혹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절세미인 황진이의 유혹을 견딘 서경덕은 얼마나 대단한가. 셋째,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나태해질 때야말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다윗 왕이 부하의 부인인 밧세바와 불륜에 빠진 것도 전쟁터가 아닌 한가하게 낮잠 잘 때 발생했다. 넷째,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최고의 이상형을 만난 것처럼 느껴져도 살다 보면 단점이 발견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상형을 택한 사람은 그래서 대부분 후회한다.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짧은 인생 한 사람만 죽도록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 최고의 이상형과 사랑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필자는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같이 살기로 약속했으니 그럴 기회가 없지만 말이다. 중년에 어렵게 얻은 가치들을 외도로 날려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순간의 유혹들이 있어도 그때마다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유혹을 이겨낸 인생이야말로 멋진 인생이다. 자만심이나 공허감을 극복하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할 때 우리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또 좀 더 성숙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 2017-03-07 10:28
-
- 바람구두, 본드와의 만남을 꿈꾸다
- 홍콩의 한 아파트에 두 가구가 새로 이사 온다. 지역신문사 기자 차우(왕조위 분) 부부와 무역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수리첸(장만옥 분) 부부다. 수리첸의 남편은 무역 회사에 근무해 출장이 잦고 차우의 아내도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차우는 수리첸의 핸드백이 아내와 똑같다는 것을, 수리첸은 남편의 넥타이가 차우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나서 자신들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차우와 수리첸은 배우자의 일로 괴로워하다가 점점 가까워지고 마침내 사랑에 빠진다. 배우자의 외도로 쓸쓸하게 남겨진 두 남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왕가위 감독의 줄거리다. 서구의 가치와 전통 가치가 충돌하던 홍콩에서, 사회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택했던 두 사람은, 이루지 못한 사랑임에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으로 그때를 기억한다. 훗날 차우는 앙코르와트 사원 벽 구멍 속에 사랑했던 리첸과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풀과 진흙으로 봉인한다. 앙코르와트 사원 벽에 비밀을 봉인하는 왕조위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가슴에 서늘하게 남아 있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건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감정이 영원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만일 이 영화에 후일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감독은 두 주인공이 나중에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찍어두었다고 한다. 짙은 색의 수수한 양복만 입고 다니던 차우는 선글라스에 청바지로 멋을 내고, 리첸은 아들을 하나 두었다는 설정이다. 고맙게도 감독은 변화된 주인공들의 모습을 생략함으로써 차우와 리첸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는 낭만적 상상을 가능하게 해줬다. 그러나 현실의 사랑은 영화와 다르다. 결혼식을 올릴 때 주례 앞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하지만 얼마 못 가서 그 맹세가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지 알게 된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하루하루가 축제 같고 설렘 가득한 나날이지만 로맨틱한 사랑이 일상이 되면 불타오르던 마음도 식어버리고 지루해진다. 콩깍지가 낀 상태가 영원히 유지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사랑은 변하는데 결혼생활은 점점 더 견고해지니 불협화음이 생긴다. 어쩌면 비밀스런 관계를 꿈꾸고, 밖으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바람구두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는 필자에게 본드라는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본드라는 닉네임을 쓰는 걸로 봐서 주색잡기에 능하고 여자 꼬시는 데 관심이 많은 남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혹시 첫사랑을 못 잊는 순정파는 아닐까. 그렇다면 낭만적인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필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상대방도 ‘바람구두’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에, 조금은 화려한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드 앞에 나타난 바람구두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점퍼 차림이었다. 그는 실망스러웠는지 “바람구두님 진짜 맞으세요?”라고 몇 번을 되물었다. 우리는 서로의 속내를 고백하고 껄껄 웃고 말았다. 만일 남편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까? 에서 불륜의 문턱까지 갔던 두 사람이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면서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애쓴 것처럼, 필자도 멋진 결별을 하리라 상상해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2017-03-06 10:57
-
- 역사의 숨결 따라 ‘눈 쌓인 남한산성을 걸으며’
- 겨울의 한가운데서 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더니 밤새도록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눈 쌓인 남한산성을 등반을 하기로 했다. 송파에 살고 있는 필자에게 남한산성은 매우 근접해 있어 매일같이 조망할 수 있으니 마을 뒷산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늘 그곳을 조망하면서 건강을 위해서 최소한 매주 한번 정도는 등산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실제로는 일 년에 두서너 번이 고작이다. 어제 저녁 내내 소복소복 눈이 오더니 아침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였다. 시내는 눈이 내리면서 녹았지만 산에는 낮은 기온으로 인해 많은 눈이 쌓여있어 모처럼 설원을 구경하면서 역사의 숨결 따라 멋진 눈길산행을 해 볼 요량으로 지인들과 함께 산행 길에 나섰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에서 내려 만남의 광장에서 합세한 일행은 성불사를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고즈넉한 사찰의 기와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이 눈부시도록 정겹다. 등산을 좋아 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드디어 미끄러운 등산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걸터앉은 눈꽃이 바람이 불적마다 후드득 머리위로 떨어지고 까마귀 울음소리가 까악 까악 산중에 울려 퍼져 우리를 반겨주는 듯 했다. 터벅터벅 올라가는 산행 길에서 만났던 멋진 설경은 덤으로 주어진 귀한 선물이었다. 올라가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오르락내리락 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 걷다보니 어느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힐 무렵, 드디어 산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성 기와에 소복하게 쌓인 눈은 한층 멋들어진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산성 위에서 내려다 본 도시(都市)는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묻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송파 쪽으로 바라보니 눈을 흠뻑 뒤집어쓴 도시 한가운데에 빌딩 하나가 우뚝 솟아 눈앞으로 다가온다. 124층짜리 잠실 제2롯데 빌딩이 그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빌딩이 이제는 완공단계에 접어들어 그 멋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반대로 돌아 하남시 쪽을 내려다보니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 속에 푹 파묻혀있는 그곳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를 평화로움이 마음 한 구석에서 샘솟듯 올라온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눈 속에 깊게 묻힌 산성은 고요와 함께 태고적 신비로운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수많은 외침을 겪은 민족이지만 특히 병자호란 중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임금이 결국은 오랑캐에게 항복을 하기 위해 어떤 심정으로 이 문을 나섰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인조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간 항전을 하였다. 청나라의 12만 대군의 침략을 받은 인조가 서울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항전하다가 끝내 청나라에 굴복하여 송파 삼전도에 나와 청태종 홍타이지 앞에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린 뒤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치욕적인 굴욕을 당해야 했는데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 불렀다. 인조가 땅바닥에 연이어 머리를 짓치며 피를 흘릴 때에 이를 보던 백성들과 신하들은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힘이 없는 나라의 백성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나라의 근간을 든든하게 하여 두 번 다시 이민족으로부터 핍박 받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상황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역사의 숨결이 어린 남한산성 위해서 심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다시 신발을 졸라매고 하남시를 향해서 눈길을 헤쳐 나갔다. 남한산성과 하남 의 이성 산성으로 이어지는 위례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대체로 길이 평평하고 무난한 코스이긴 하지만 등산로에 많은 눈이 쌓여 있어 다리에 한층 힘이 들어갔다. 눈길을 걸은 지도 어느덧 서너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양지 바른 곳에서 잠시 배낭을 풀고 갈증이 나던 차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멋진 설경속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은 세상 그 어떤 커피보다 맛이 있었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이성 산성을 거쳐 덕풍골쪽으로 하산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거의 4시간 반이나 걸려서 끝난 산행에 비록 몸과 마음은 지치고 피로했지만 멋진 설경에 도취되었던 시간들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 2017-03-02 10:37
-
- 꽃중년 신중년의 코디법 '좋아하는 대로 멋지게 자신 있게 입어라'
- 장소영 호남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내적으로 갖춘 아름다움이 외적인 꾸밈, 그것보다 앞설 수는 없으며 높이 평가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 초라한 겉모습일 때 대놓고 무시하는 일을 종종 겪고는 한다. 좀 더 예의를 갖춘 옷차림으로 누군가와 마주할 때 그에 맞는 응대가 돌아오는 것이다. 고작 옷 따위에 흔들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살면서 적지 않게 그런 겉모습이 매우 중요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옷차림, 즉 패션은 중년에게 있어서는 더욱더 중요한 인격과 같은 것이다. 20~30대에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일이 나를 가꾸는 즐거운 일이며 모든 관심사였는데 점점 나이가 들어 40~50대가 되면 변해버린 몸매 때문에 아예 패션에 대한 관심이 시들어버리거나, 옷 입는 방법이 어려워 포기해버린다. 아무거나 입어도 예뻤던 젊은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면 몸매도 망가지고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아 남다른 노력과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어렵기만 한 패션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꽃중년, 노노(No老)족이라 불리며 패션뿐만 아니라 운동, 식생활 관리로 멋있게 중·장년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꽃중년으로 닉우스터가 있고 한국에는 65세의 여용기라는 분이 있다. SNS를 통해 옷 잘 입는 대표적인 꽃중년으로 스타가 되어 있는 그분의 스타일링 비법은 “머리색, 안경부터 바꿔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꿔라!”였다. 패션니스타의 비법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웠다. 이처럼 패션은 간단해 보이지만 만만치 않다. 아무리 봐도 어렵고 누가 알려줘도 내게 옷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고 사람마다 체형이 다 다르니 더더욱 힘들다. 하지만 요즘은 그 답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모두에게 적용하기 힘든 코디법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멋지게 자신 있게 입는 것이다. 어디서나 어울릴 수 있는 팔색조 인기 패셔니스타의 SNS를 살펴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자신감’과 ‘건강함’이었다. 놀랄 만큼 멋진 옷차림과 혹은 민망한 컬러와 난해한 코디도 있었지만 무엇을 입든 자신의 옷차림에 대한 자신감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잘 관리되어온 건강한 신체가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줬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채워가야 할 것은 나를 지켜줄 건강한 신체와 자신감임을 기억하고 거기에 도움을 줄 몇 가지 꿀팁을 살짝 공유해보고자 한다. 청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너무 캐주얼하고 가벼워 보여 주말에 잠깐 입는 옷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양한 패션이 공존하고 미스매치(mis-match)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못 입을 이유가 없다. 다만 나이에 어울리는 멋이 중요하다. 멋도 멋이지만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에 맞는 품격인 것이다. 젊어서 청바지를 한 번쯤 입어봤던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민망하긴 하겠지만 청바지에 도전하기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청바지라는 아이템을 통해 요즘 흔히 말하는 상남자로 스타일링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자. 남성 임원들이 회사에 출근할 때 입던 정장 그대로를 떠올리면서, 바지만 청바지로 바꿔서 입는다고 생각해보자. 먼저 청바지와 비슷한 색과 톤의 재킷이라면 무리 없이 통과. 셔츠는 청바지가 어두운 색이라면 반대로 밝게 입어주면 된다. 또 반대로 셔츠가 청바지와 비슷한 색과 톤이라면 재킷을 청바지와 반대색이나 톤으로 입어주면 된다. 이런 경우 넥타이는 폭이 좁은 것, 캐주얼한 것으로 하고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겨울에는 폴라도 가능하고 스카프로 코디하면 된다. 만약 모임이나 레스토랑에 간다면 나비넥타이로 코디해도 좋을 것 같다. 어렵지 않은 청바지 코디법 밝은 색 청바지에는 브라운, 카멜, 카키 등 어두운 톤의 콤비 재킷으로 캐주얼하게 배색하는 것이 좋으며 셔츠는 무채색 계열로 선택해주는 것이 안정감 있게 만들어준다. 짙은 인디고컬러 청바지는 하체를 날씬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고 코디하기에도 편리하다. 색이 너무 밝은 것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고, 그레이나 블랙진도 코디의 폭을 넓혀주는 아이템이다. 체크나 무늬를 선택할 때는 재킷, 셔츠, 넥타이 중 하나만 입어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늬는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좋다. 종종 체크무늬 재킷, 줄무늬 바지, 페이즐리 넥타이를 입는 사람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하게 되는 흔한 실수다. 무늬는 되도록 하나에만 들어가도록 신경 써서 고르도록 한다. 패션의 법칙은 없지만 금기되는 코디법이다. 마지막으로 신발이다. 내가 더 젊어 보이고 싶다면 운동화를 선택하고 더 품위 있게 보이고 싶다면 구두를 선택하면 된다. 이미 청바지에 정장을 코디한 상태라면 어떤 것도 스타일리시해 보이므로 어느 것이든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운동화는 사이즈가 허락한다면 아들, 손자의 것을 살짝 빌려도 괜찮을 것 같다. 구두는 정장구두를 그대로 신어줘도 괜찮고 더욱 멋져 보이고 싶다면 통가죽의 컬러가 살아나는 구두나 워커도 괜찮다. 이때 양말은 바지보다 짙은 색을 신어주고 더욱 과감한 코디를 하고 싶다면 컬러 양말이나 맨발도 좋다. 이럴 때는 바지 밑단을 몇 번 접어 멋쟁이임을 과시해도 될 것 같다. 키가 작을수록 청바지 통에 신경 써야 한다. 너무 넓은 것은 선택하지 말고 배가 나왔다면 밑위길이가 짧은 골반바지는 피하는 것이 좋다. 배바지는 밑위가 길어 편하기는 하지만 윗배가 더 나와 보이게 하므로 역시 피하는 것이 좋다. 배가 나온 중년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반골반 청바지를 권한다. 골반과 허리 중간에 위치해 벨트 여밈이 나온 배를 적당히 눌러 커버해주므로 한 치수 큰 것을 선택하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엉덩이가 너무 작은 사람은 주머니가 큰 것을 권하며 엉덩이가 큰 사람은 작은 주머니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 봄가을 옷으로 쉽게 사계절 코디 가능 젊어지고 싶은 여성들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20~30대 의류를 주로 구입하는 연령층이 40~50대이며 자신들이 직접 입으려고 구입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단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의 옷을 입는다고 젊어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이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옷을 멋있게 입었을 때 진정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여성들의 영원한 꿈의 아이템은 허리가 딱 맞는 미니 원피스일 것이다. 젊어서 원피스를 입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 빼서 입어야지” 하며 구매한 원피스가 지금도 옷장에서 잠자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살은 빠지지 않고 아까운 원피스는 계속 몇 해째 묵혀두고 있다. 이런 옷은 과감하게 딸과 손녀에게 줘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요즘 누가 그런 것을 입겠냐고 하겠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리폼도 가능하기 때문에 원단이 좋으면 분명 환영할 것이다. 원피스는 길이에 상관없이 봄가을에 유행하는 카디건이나 재킷으로 코디해주고 겨울에는 코트를 입어주면 사계절 베이직 아이템이 된다. 원피스를 고를 때는 나이를 생각해서 허리가 타이트하지 않은 옷을 선택하는 게 좋다.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불편하면 잘 입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또 몸에 꼭 맞게 입으면 날씬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몸에 붙는 옷은 오히려 몸의 라인이 드러나 좋지 않은 인상을 주며 날씬해 보이지도 않는다. 또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옷보다는 단색 계열의 단순한 디자인을 권한다. 화려한 무늬는 오히려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하며 패턴이나 디자인이 복잡한 옷은 다양하게 코디할 수가 없다. 여름옷을 제외하고 봄가을 옷을 선택하면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다. 추우면 겹쳐 입을 수 입고, 겹쳐 입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코디법이다. 마지막으로 장식이 없는 깔끔한 미니멀리즘의 원피스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 장식은 유행에 민감해 유행이 지나면 구닥다리 옷이 된다. 원피스만으로 멋쟁이가 되려면 계절마다 몇 벌씩 사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유행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욕심껏 사다가 파산에 이를지도 모른다. 소재가 좋은 기본 컬러의 원피스를 선택한 후 스카프, 가방, 액세서리 등으로 다양하게 코디해 10년 젊게 보이는 코디법을 제안해본다. 첫째, 스카프는 가격대비 효과가 가장 좋은 아이템이며 연출법도 다양해 방법만 잘 익혀둔다면 효과가 200%다. 요즘은 인터넷에 스카프 연출법이 동영상으로 친절하게 잘 나와 있다. 나이가 들어 목에 주름이 생겨 고민인 사람에게도 스카프는 고마운 아이템이다. 여름에 에어컨의 찬 공기도 막아주고 겨울엔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무난한 소재는 시폰 소재이며 무늬가 화려한 것과 무채색으로 여러 개 준비하는 것이 좋다. 둘째, 요즘엔 가방이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 됐다. 스카프와 가방은 하나에만 포인트를 주거나 색과 톤 느낌을 통일하면 된다. 가방을 강조하고 싶을 땐 스카프와 원피스를 같은 색과 톤으로 통일시켜주면 된다. 셋째, 액세서리는 마치 화장 같은 것이다. 귀고리, 목걸이, 팔찌가 기본이지만 요즘에 다양한 브로치, 코사지를 활용한 코디가 유행이다. 낮에는 지나치게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피하는 것이 좋으며 파티를 할 때나 밤이라면 괜찮다. 키가 작은 사람은 벨트를 이용하면 좋다. 허리에서 시선을 한 번 차단해주면 비율을 좋게 해줘 키가 커 보인다. 넷째, 신발만큼은 한껏 젊어도 된다. 자칫 놓치기 쉬운 아이템이 신발이다. 나이 들었다고 할머니 같은 신발을 신는다면 잘된 스타일링을 망칠 수 있다. 하이힐이 불편하다면 젊은이들이 즐겨 신는 편안한 로퍼를 권한다. 귀여운 리본이나 체인 장식이 있는 젊은 스타일로 포인트를 줘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스타일링 기록이다. 자신이 보는 것과 타인이 보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매일매일 자신의 스타일을 셀카로 찍어 기록하고 일주일을 정리해 스스로 만족하는 스타일을 그다음 주에도 시도해보자. 그렇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면 된다. 너무 유행을 좇다 보면 흔한 패션이 되어 개성을 잃기 쉽다. 나이가 들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스타일이 가장 멋스럽다. >>장소영 호남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이너인 어머니에게 디자인을 배우고 실무를 익혔다. 지금은 그것들을 다시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고객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을 만들고 그것에 대해 강의한다. 가끔은 입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의상을 제작한다. 네번의 개인전과 여러 전시회에 참여했다.
- 2017-03-02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