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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생의 ‘結’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다 다르다
- 한동안 ‘기승전OO’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어떤 일의 시작, 전개, 전환 과정과 무관하게 결론이 항상 같게 나타날 때 쓰는 용어인데, 본래는 한시의 형식을 설명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따온 말이다. 안대회(安大會·58)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한시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이 부침하는 인간의 생애 또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띤다고 말한다. 유행어의 의미와 차이가 있다면 누구나 ‘결(結)’에 다다르지만, 그 모습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안대회 교수가 엮은 책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인간의 삶을 큰 줄기로 잡아 152편의 한시를 ‘기승전결’ 4부로 나눠 편집했다. 전반부(기·승)가 갈등과 슬픔, 불안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면 후반부(전·결)는 기쁨과 안정, 소소한 즐거움을 노래한다. 시를 고르고 해석하며 자연스레 동년배인 중장년층을 염두에 두게 됐다는 안 교수. 그의 삶은 기승전결의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했다. “책에 실린 한시가 쓰인 시대로 따지면 이미 ‘결’이겠지만, 요즘의 생애주기로 보면 아직 ‘전’ 단계라고 생각해요. 전(轉)은 인생에서의 변화를 겪는 전환기라 할 수 있죠. 일반적으로 보면 퇴직 전후나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때이고요. 책에서는 ‘삶이 다가오는’(시기)이라는 말을 덧붙여 표현하기도 했어요. 구성상 4부로 나누긴 했지만, 독자에 따라 어떤 시는 ‘이게 왜 여기에 들어갔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꼭 기승전결에 얽매여 억지스럽게 배열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생에는 굴곡과 변수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정조도 염원한 ‘미로득한방시한’ 책 제목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영조 시대의 문관 홍신유(洪愼猷)의 시 한 구절을 따와 만들었다. 풀이하면 ‘재주가 없어 낙향한 덕분에 무척 한가롭다. 바쁜 세상은 재주 많은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저 넓은 하늘과 바다를 즐기겠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어떤 점에서 이 구절을 마음에 둔 것일까? “홍신유는 중인(中人) 출신이지만 문과에 급제했을 정도로 역량이 출중했어요. 그러다 출세가 힘들어져 부산으로 쫓기듯 내려왔는데, 그때의 상황에서 보면 이중적인 의미가 있죠. 정말 능력이 없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니까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회한도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일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니 행복하다는 거죠. 가질 수 없는 걸 부여잡고 탐하기보다는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에 집중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꼈어요.” 홍신유는 자칫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을 한가로움을 즐기는 만족으로 전환했다. 안 교수는 그런 홍신유의 태도도 훌륭하지만, 가장 좋은 건 스스로 한가로움을 택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미로득한방시한(未老得閒方是閒)이라는 옛말이 있어요. ‘미로’ 늙기 전에, ‘득한’ 한가로움을 얻어야, ‘방시한’ 그게 진정한 한가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끔 정년까지 회사에 다니지 않고 그전에 퇴직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나이 들어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억지로 얻는 한가로움보다는 스스로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보내는 한가로움이 더 유익하다고 보는 거죠. 꼭 정년퇴직 문제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리 정리한 삶의 방향대로 간다면 인생이 여유로워지리라 생각해요.” 그는 ‘미로득한방시한’을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특별한 장소를 추천했다. 바로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 있는 ‘득한정(得閒亭)’이다. “수원을 방문한다면 기념 삼아 한번 가보세요. 득한정은 말 그대로 ‘한가로움을 얻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정조가 붙인 이름인데, 그 역시 미로득한방시한을 원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정조가 세운 ‘갑자년 구상’을 보면 세자가 15세 성년이 되는 해인 갑자년(1804)에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죠. 아쉽게도 정조는 그 구상이 실현되기 전인 1800년에 병으로 세상을 뜹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이 그런 결심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가진 게 많을수록 내려놓기 어려우니까요. 내가 정말 많은 것을 안고 있을 때, 또는 너무 바쁠 때는 스스로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각별함, 평범한 것이 특별해지다 여항시인 최천익(崔天翼)의 시에서도 홍신유와 비슷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병석의 나를 위로하며(病中自慰)’라는 시에서 그는 병이 생겨 누워 있는 탓에 몸은 수척해졌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내적 양식을 쌓으리라 의지를 다진다. “원문에는 ‘近裏工夫或庶幾(근리공부혹서기)’라 쓰여 있어요. 가까울 근, 속 리, 즉 근리공부는 내면공부와 같아요. 최천익은 병상에 누워 있는 지금이야말로 절실한 내면공부를 하기에 알맞은 시기라 말했죠. 대부분 좌절을 겪으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나이 들면 병이 생기는 것도 큰 좌절이잖아요. 낙담하지 않고 내면을 다스려 채워간다면 위기도 더 나은 인생을 향한 전환기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봐요.” 이황(李滉) 역시 ‘세상맛은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며 노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안 교수에게 나이 들수록 특별히 더 좋아지는 것이 있는지 묻자, 이때의 ‘각별함’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는 건 그동안 별것 아니던 무언가가 특별해지는 경험을 말해요. 젊어서는 즐길 거리가 워낙 많으니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꽃도 좋아하지 않거나 장미처럼 화려한 걸 선호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름 없는 작은 들꽃도 참 예뻐 보여요. 늙어서 새로 생긴 것이 아닌, 본래 있던 평범한 것들에 눈이 가고, 소중함을 재발견하는 거죠.” 안 교수는 노탐(老貪)을 버리고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결’에 이르고 싶다고 소망했다. 더불어 언젠가 다가올 인생의 한가로운 시기에 대한 계획도 빼놓지 않았다. “퇴직 후엔 인생 이모작보다는 연장전에 가까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하던 작업을 계속할 테니까요. 그게 제겐 즐거움이고 취미거든요. 다들 그건 너무 단조롭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해요. ‘인문’ 자체는 하나의 종목이지만, 내용에는 인간의 풍부한 경험과 다양성이 존재하죠.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다 해내지 못할 정도로 끝도 없고, 경지도 없어요. 그 속에서 내가 보는 만큼 아는 거고, 찾는 만큼 나아가는 거죠. 욕심 부리지 않고, 역량껏 차근차근 ‘결’의 시기를 맞이하고 싶어요. 자료 수집하러 여행도 다니고, 다른 것에 매여 하지 못했던 박제가(朴齊家) 평전도 쓰고요. 그게 바로 제가 택한 한가로움입니다.”
- 2019-03-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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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방 이야기
- 우리나라 외식 창업 중 커피집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에도 우후죽순 카페가 여럿 생겼다. 국립공원 등산로 밑에도 이전에는 없었는데 어느 날 카페 두 곳이 문을 열었다. 그래도 등산하는 사람들의 약속장소로 유용하니 생길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동네마다 들어서는 커피숍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이 커피 마시러 그렇게 많이 드나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주말에 집에 놀러온 예쁜 손녀가 제 어미에게 커피숍을 가자고 졸랐다. 아직 어린아이가 커피숍이라니?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커피숍이 뭐하는 곳인지는 알아?" 했더니 거기 가면 커피숍 이모가 초콜릿도 주고 사탕도 준다며 웃는다. 아들네가 이사 가기 전 동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들여보내놓고 엄마들끼리 카페에서 브런치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는데 하원 후에도 아이들과 엄마들이 카페에 들르는 일이 많아서 손녀에게 커피숍이 마치 키즈카페처럼 인식된 모양이다. 이렇게 커피집이 많이 생겼는데 그중 시장통에 새로 생긴 커피숍 한 곳이 내 눈길을 끌었다. 외국어로 만든 멋진 상호가 대부분인데 이 커피숍의 간판은 ‘옥다방’이었다. 좀 촌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게 보이기도 하는 ‘옥다방’ 간판에는 귀여운 아가씨 얼굴 사진도 붙어 있었다. 흘깃 들여다보니 다방 종업원과 닮은 듯도 하다. 비슷비슷한 커피숍들이 많아서 그런지 정감이 묻어나는 이곳이 특별하게 보였다. 한번 들어가 다방 커피 한잔 마셔보고 싶었는데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그 자리에 요즘 체인점으로 유명한 '빽다방'이 들어섰다. 커피 값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다는 소문이어서 시장 다녀오는 길에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 사 들고 오는 게 유행처럼 되었다. 우리는 다방 세대다. 그때도 지금의 수많은 카페처럼 한 집 걸러 다방이 있었다. 다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으로 카운터가 있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마담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마담들은 예복처럼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았다. 마담의 미모나 수완에 따라 매상이 올랐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마담들은 대부분 인물이 좋았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로 주요섭의 ‘아네모네 마담’이 있다. 아네모네 다방에 인기가 많은 마담이 있었다. 어느 날 잘생긴 대학생 손님이 들어와 미완성 교향곡을 틀어달라고 했다. 그 후에도 그는 늘 괴로운 표정으로 같은 곡을 부탁했는데 가끔 마담을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마담은 자기에게 관심 있는 줄 알고 예쁜 귀고리도 달고 신경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 손님이 발작하듯 울부짖으며 뛰쳐나가는 일이 생겼다. 잠시 후 그의 친구가 들어와 죄송하다면서 친구가 교수님 부인을 사랑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랬으니 이해해 달라면서 카운터 뒤 모나리자 그림이 교수 부인을 닮아 너무 좋아했다고 말한다. 마담은 잘생긴 학생이 자기를 본 것이 아니고 카운터 뒤편의 모나리자 그림을 바라본 것을 알고는 무안해서 귀고리를 뺀다. 나도 젊은 날 착각깨나 해봐서 마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잘생겼던 신성일이 대학생 역, 엄앵란이 마담 역을 맡았다. 어린 손녀가 커피숍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 생각났다. 그 시절 다방에 얽힌 추억들이 문득 정겹다.
- 2019-03-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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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60대 ‘당구 동호회’ 완장 떼고 당구로 뭉칩니다!
- 시니어 사이에서 당구의 인기를 논하는 것은 철 지난 유행 얘기를 꺼내는 것만큼이나 진부하다. 영화 속 폭력배들의 격투신 단골 장소였던 당구장도 옛 추억거리가 됐다. 맑은 공기 흐르고 신선 노니는 듯한 당구장 문화를 이끈 시니어들. 그래서 만나봤다. 다음(Daum) 카페 아름다운 60대의 ‘당구 동호회’. 큐대 끝에 파란 초크 삭삭 비비고 예리하게 공을 응시하는 동호회원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패션 쇼핑몰에 있는 너른 당구장 안. 이곳에서 정기모임을 하는 동호회들의 현수막이 천장 가까운 벽면마다 촘촘하게 붙어 있다. 동호회 이름만 살펴봐도 50대 이상 세대들의 당구 사랑이 짐작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우수 카페인 ‘아름다운 60대’에 속해 있는 ‘당구 동호회’도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정기 모임을 갖는다. ‘아름다운 60대’는 말 그대로 60대 이상 연령대가 가입하는 인터넷 카페로 올해 18년째 운영되고 있다. 2만6000명에 가까운 회원이 띠별, 지역별, 취미별로 다시 뭉쳐 활동한다. 당구? 우리 세대에게 딱이다! 당구 동호회 등록 회원은 50명. 매주 25명에서 30명은 정기모임에 참여한다. 당구 동호회가 생겨난 지 올해로 10년째. 취미 모임 중에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창단 멤버이자 ‘가을국화’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박은희(70) 씨도 이날 모습을 보였다. 사진 모임의 전시회 준비로 바빠서 최근 당구 모임 참석이 뜸했다. “10년 전에 은평구 불광동에서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1년 정도 모임을 가졌다가 교통 좋은 종로3가로 장소를 옮겼고, 지금은 동대문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아름다운 60대 당구 동호회는 특별하게도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초창기에 여자는 저랑 두세 명 정도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남자들만큼 당구 실력이 좋은 분들이 꽤 있어요. 여자가 많으니까 좋습니다. 당구 모임을 만든 이유는 이게 쉬워 보이지만 운동량이 꽤 되더라고요. 몸도 쓰고 머리도 쓰고요. 치매 예방에도 좋겠더라고요.” 가만 보고 있자니 포켓볼(공을 큐대로 쳐서 당구대 사방에 뚫린 구멍에 집어넣는 경기)을 치는 여자 회원이 없다. 다들 4구 당구를 치며 어울린다. 구력이 쌓이다 보면 단순히 공을 구멍에 넣는 재미보다 공이 지나왔던 길을 기억해내고 각도를 연구하는 4구 당구의 매력에 깊이 빠진단다. 숨은 고수들의 마스터클래스 소싯적 당구 천재부터 입문자들까지 누구든 당구에 관심이 있으면 들어올 수 있다 보니 실력 차이도 천차만별이다. 경기를 할 때는 상급, 중급, 초급자들의 실력을 감안한다. 입문자는 무조건 당구지수 30으로 시작하고 중간 정도가 120~150 사이다. 여자 회원의 경우 80~100 정도면 좋은 실력이라고 김봉훈 방장은 말한다. “가끔 당구지수가 500인 분이 오면 그보다 아래 지수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훈수를 해주죠. 당구를 하다가 제일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묻기도 하고요. 힘을 어떻게 줘야 하고 각도 잡는 것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한 가지 수를 알면 거기서 파생되는 수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걸 응용해서 쳐라 이거죠. 공 좀 칠 줄 안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더 잘 치는 사람과 당구 대결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제가 200을 치는데 그런 분이 오시면 3, 4수는 따라붙을 수 있거든요.” 이날 모임 참여자 중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춘 회원 두 명을 만났다.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홍수경(70) 씨. 당구지수 150으로 여성들 중 상위 등급이다. “150까지 올리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실력이 안 느는 거 같아요. 62세에 여기 들어왔는데 그땐 여자 회원들이 별로 없어서 다들 잘해주셨어요. 잘 가르쳐주시기도 하고요. 그런데 당구는 절대적으로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스포츠예요. 처음에는 왜 이렇게 안 되나 스트레스도 받았어요. 쫓아다니면서 그냥 어깨 너머로 배웠습니다. 한 2년, 3년 사이에 많이 늘었어요. 제가 지수가 100일 때 사위랑 처음 당구를 쳤어요. 그때 사위가 훈수도 두고 그랬는데 요즘은 치자고 하면 피해요. 아들은 저랑 당구는 안 치지만 우리 엄마 실력 좋다고 자랑한대요. 150 정도면 길도 알고 누구든지 상대할 수 있어요.(웃음)” 그다음으로는 당구지수 250인 홍창표(72) 씨를 만났다. 다른 남자 회원들이 젊을 때 좀 쳐봤다면 홍창표 씨는 정년퇴임 후 당구에 발을 들였다. “젊었다면 3년 정도 배워도 잘 쳤을 텐데 나이 먹어서 시작했더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퇴직하고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면 식사하고 당구 치러 가더라고요. 가만히 하는 거 보면서 저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당구 잘 치는 친구한테 나도 좀 배우겠다고 했더니 아름다운 60대 당구 동호회를 추천해줬습니다.” 주로 동갑내기 친구들과 팀을 이뤄 당구를 치는 홍창표 씨는 현역 시절 국내 최초 전동차량 개발에 일조했다고. 1974년 지하철 1호선을 개통하고 3년 뒤 우리 기술로 전동차량 개발에 성공했는데 그 당시 주역이라고 했다. 영광스런 현역 시절 모습을 내려놓고 이곳에 나와 재밌게 어울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첫째는 내 시간 즐겁게 보내려고 나와요.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반갑고요. 대단히 깊은 관계도 없고 거래도 없으니까 부딪히지도 않아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편해요. 이렇게 또 정이 쌓이는 거겠죠.” 당구로 시니어 대동단결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다들 자기 방식대로 당구를 치는 동호회원들. 안절부절못하며 몸서리를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화 없이 공에만 집중하는 팀도 있다. 밖에 나가면 전직 경찰공무원, 군장성급, 사회 저명인사 등 이력들이 빵빵하지만 적어도 당구장에 나올 때만큼은 집에 완장을 놓고(?) 나온다고 김봉훈 방장은 말한다. “들어와서 잘난 척하면 스스로가 못 이겨서 나가요. 왕년에 못나간 사람 어디 있어요. 다 잘 나갔지요.(웃음)”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하는 말이 있다. “당구는 시니어를 위한 완벽한 운동”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나이가 들어 운동하기 힘든 사람한테 당구만큼 좋은 것이 없어요. 젊었을 때 저거 칠십 넘어서 하면 좋겠는데 했는데 실감이 납니다. 지금 우리 나이에 서너 시간 집중하고 서 있고 걷는 게 적은 운동이 아니에요. 움직여야 하고 머리도 써야 하고 공 겨냥하려면 허리도 숙여야죠. 큐대를 지속적으로 들고 있으려면 팔에 힘도 있어야죠. 계절에도 관계없고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춥든 덥든 할 수 있는 게 당구라 시니어에게 정말 적합한 운동이죠.” 이유 있는 당구 홀릭! 시니어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 해방창구로 뜨는 곳 당구장이 아닐까? mini interview 베이비붐 세대는 당구로 젊은 시절을 추억한다 아름다운 60대 모임의 ‘당구 동호회’ 김봉훈 방장 ‘돌곶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김봉훈 방장은 다음카페 ‘아름다운 60대 모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걷기 모임과 소띠모임에서 오랜 시간 방장을 하다가 작년 말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올해 또 당구 동호회 방장 자리를 수락해야 했다. “당구 동호회 방장을 4년 동안 하셨던 분이 저보다 네 살 위 선배님입니다. 작년 가을부터 몸이 안 좋다고 했는데 같은 해 12월에 심장수술을 하셨어요.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회원들의 편의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보니 작은 것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한다. “별거 없어요.(웃음) 회원들이 오면 노란색 명찰에 이름을 써주고 간식 좀 챙기고 그런 거죠.” 워낙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도맡아왔다. “다들 뭘 좀 하자고 공지하면 일단 잘 뭉쳐요. 물론 행동이 좀 느리고 말이 많기도 하지만요. 그게 우리 시니어 모습이잖아요.” 당구지수 200이라는 김봉훈 방장도 어린 시절의 당구장 분위기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때는 당구장 가면 불량배 취급했습니다. 정학 또는 퇴학도 당할 정도였죠. 근데 대학교 들어갔더니 선배들이 당구장부터 데리고 가는 거예요. 거기서 담배 배우고 술 배우고. 뭔가 젊은 혈기로 한판 노는 장소였어요. 그때까지도 당구장 하면 좀 안 좋게 생각했어요. 요즘처럼 정식 스포츠로 받아들여질지 정말 몰랐죠. 그 뒤 직업전선에 뛰어들고 먹고살기 바빠지면서 당구와 멀어졌죠.” 가족을 위해 평생 일하고 자기 취미 한번 제대로 가져보지 못하고 사회에서 은퇴한 시니어들. 각종 모임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당구를 치던 기억들이 각자 하나둘 씩 남아 있었다. “모여서 경기를 해보니 재미있거든요. 나이가 들어도 또래들이 어울리니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도 있어요. 당구는 그렇게 기억력도 살려주는 것 같아요. 마음과 세월 나이는 다르다고 하잖아요. 우리 세대에게 당구가 나이를 잊고 즐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이 된 겁니다. 어릴 때 당구를 접해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배우는 이유입니다. 어울리려고요.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서 당구에 입문하는 건 향수 때문입니다.” 김봉훈 방장도 1970년대의 산업 현장을 누비며 살아왔다. 당구 치고 난 다음의 뒤풀이 자리는 젊은 시절 이야기로 떠들썩하고 흥겹기 그지없다. 모두들 현역 시절 사연 많은 사람들이지만 다 잊고 그저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참으로 따뜻하다. “인간 사이에도 구도가 있어요. 거기서 우러나오는 냄새와 스토리도 있고요. 나이 드는 재미를 당구 모임에서 찾는 것 같습니다.” 장소협찬 헬로APM당구클럽
- 2019-03-0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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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킹핑크 재킷 입고 만날 ‘봄’
- 한때 유행에 따라 옷을 갖춰 입고 멋쟁이 소리를 듣고 살았다. 미니스커트가 유행일 땐 단속에 걸려 명동파출소에 잡혀가기도 했고 미디와 맥시가 한창일 때는 치렁대는 긴 치마를 좋아했고, 거리를 다 쓸고 다닐 정도로 나팔바지의 유행을 따랐던 적도 있다. 옷을 고르는 내 기준은 단연 색상이다. 디자인이 아무리 예뻐도 좋아하지 않는 누런 색 계통의 옷은 절대 사지 않았다. 젊을 때부터 튀는 옷차림이 좋았다. 요즘은 아찔한 탱크톱 옷차림도 아무렇지 않게 봐주는 시대이지만, 예전엔 끈 달린 원피스도 못 입고 다닐 정도로 사람들 시선이 보수적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절에 나는 양장점에 가서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맞춰 입었다. 그중에는 어깨를 과감히 드러내는 원피스도 있었다. TV 드라마에서 여학생들이 집에서 멀쩡한 교복 차림으로 나와 밖에서 아찔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혀를 끌끌 차다가 내 생각에 웃고 만다. 나도 부모님 눈을 피해 좋아하는 옷을 입고 몰래 외출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깨를 훤히 드러낸 차림으로 외출하긴 어려워 레이스 볼레로 정도는 걸치고 나갔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릴 땐 용감하게 벗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용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지난가을 친구들과 옷을 사러 갔다. 내 맘에 딱 드는 의상을 집어 들자 친구들이 소화할 수 있겠느냐며 웃었다. 나이 들수록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는다는 통계도 있지만, 나는 젊을 때부터 고운 색을 좋아했다. 쇼킹핑크라 불리는 재킷을 들고 거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상당히 튀는 옷을 입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옷차림에 대해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어떻게 저런 옷을 입고 다닐 수 있냐면서 다들 수군댔다. 나도 처음엔 놀랐지만 자주 만나면서 친구의 패션 스타일을 이해하게 됐고 내 스타일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도 디자인이나 색상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옷들을 입고 다녔으니 뒤에서 그런 말들을 꽤 해대지 않았을까?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 스타일이 좋다. 그래도 그날의 화려한 핑크 재킷에 대한 친구들의 시선은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젊을 땐 누가 뭐래도 자신 있게 좋아하는 옷을 입었지만, 나이가 드니 남의 눈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이 나이에는 그저 욕먹지 않을 정도의 무난한 옷차림이 좋은데 나는 왜 또 튀는 색상의 옷을 샀을까 슬쩍 후회도 했지만 금세 ‘지금 아니면 언제 입어봐?’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침 같은 색상의 핸드백까지 있어 금상첨화라 여기며 벌써부터 하의 코디할 생각에 즐겁다. 발목까지 오는 흰 바지에 작년에 장만한 멋진 부츠를 신으면 잘 어울릴 것 같다. 꽃피는 봄이 오면 누가 뭐라 하든 잘 차려입고 외출하려 한다. 그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날들이 행복하기만 하다.
- 2019-02-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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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쟁이가 되려면 ‘TPO’를 지키자
- 곧 3월이다. 여기저기서 꽃망울이 툭툭 터지기 시작하면 사람들 옷차림이 가벼워질 것이다. 간절기에는 아침저녁 온도 차이에 따라 입고 벗을 수 있는 옷이 필요하다. 특히 겉옷을 벗었을 때를 대비해 블라우스나 티셔츠의 소재와 색깔을 잘 맞춰야 한다. 봄에는 가벼운 소재에 파스텔 색조의 옷이 잘 어울린다. 진정한 패셔니스타가 되려면 TPO(Time·Place·Occasion, 시간·장소·상황)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시간과 장소와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경우 잘못하면 패션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면 옷을 더 품위 있게 입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이나 색깔만 고집하면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다. 또 무조건 비싼 옷보다는 체형과 나이에 맞는 옷을 입는 게 보기에 좋다. 의상과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화려한 액세서리는 오히려 거부감을 준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자. 핸드백, 구두, 소품의 색깔은 두 가지 정도로 맞추는 게 세련되고 단정해 보인다. 패셔니스타 소리를 들으려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백화점 등에 가서 트렌드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옷장에 걸려 있는 옷을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게 코디할 수 있다. 남성 패션에서도 TPO가 역시 중요하다. 잘 차려입어도 가방이나 구두, 넥타이가 안 어울리면 스타일이 살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향수를 사용할 줄 아는 남성이야말로 진정한 패셔니스타다.
- 2019-02-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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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 선물 고르기
- 매년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생일에 맞춰 손주들에게 줄 선물을 고른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새 학기에 3학년이 되는 외손자의 생일이 다가왔다. 여느 때처럼 선물을 사러 외손자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 있어?”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장난감 가게로 가요!” 침착한 성품의 이 녀석은 평소에도 선물을 허투루 고르지 않았다. 생각하는 태도가 사뭇 진지하다. 해마다 수십 개의 모형 자동차, 변신 로봇, 팽이 등 유행 따라 선물이 쌓여갔고 세월이 지나면 쓰레기로 변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선물의 종류를 좀 바꾸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장난감은 어려서부터 많이 가지고 놀았지? 이제 선물을 다른 걸로 바꾸면 어떨까?”라고 말하며 외손자의 표정을 살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 장난감에는 어른들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도 많이 있어요!” 하는 게 아닌가. 어린이 세계를 잘 모르는 외할아버지의 속을 꿰뚫는 한마디였다. 다른 말을 할 여지가 없었다. 서점을 지나 장난감 가게에 이르렀다. 아이는 장난감을 고르느라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한참 후 ‘야구게임’ 상자를 집어 들었다. 지난해부터 외손자는 방과 후 수업에서 야구를 선택해 또래들과 야구놀이를 즐기고 있다. 요즘은 야구게임 룰 익히느라 바쁘다. 낮이 짧은 겨울철이라 밖에서 오래 야구를 할 수 없는 걸 아쉬워하더니 실내에서 친구들과 야구게임을 할 수 있는 장난감을 고른 뒤 입이 귀에 붙었다. 그러고는 “다음에는 외사촌 누나와 형처럼 다른 선물을 고를게요!” 하며 너스레를 떤다. 외손자보다 5개월 먼저 태어난 쌍둥이 손녀와 손자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이 아이들에게는 주로 책을 선물한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나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4학년에 진급하는 아이들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있다. “할아버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면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열심히 설명한다. 혹시 정답을 말하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하며 신기한 표정이 된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의 특징이다. 손주들에게 주는 특별히 좋은 선물은 없다. 책이든, 놀이기구이든, 장난감이든 아이들이 받고 즐기면 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장 정도와 취향을 잘 살펴야 한다.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되 아니다 싶으면 부드럽게 잘 설명해서 다른 생각도 해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른이 생각한 대로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선물의 효과는 사라진다. 아이들에게 선물이란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하므로.
- 2019-02-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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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기 힘든 담배, 작심삼일 벗어나는 방법은?
- 작심삼일(作心三日). 1월을 벗어나 2019년이 익숙해질 즈음 떠오르는 단어다. 동해로 솟아오르는 새해를 바라보며 우리는 많은 것을 다짐하고 각오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수년간 벗어나지 못한 일상의 습관을 되풀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담배. 늘 “이번이 마지막 한 대”라고 각오하지만 어느새 한 개비의 담배가 또 손에 들려 있다. 그리고 자책한다. 경기북부 금연지원센터(국립암센터) 센터장 서홍관 교수는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포기 않고 계속 도전하려는 각오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 제게 주셔요.” 싸늘한 표정의 며느리의 한마디가 A 씨의 가슴에 와 박힌다. 아들 내외가 찾아오는 날은 한 달에 한 번뿐. 이때마저도 손주를 맘껏 안아보지 못하니 서러울 뿐이다. 이런 신경전이 시작된 것은 며느리가 3차(간접)흡연이 영유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기사를 본 다음부터다. 손주에게 해롭다니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만지지도 못하게 하니 자신을 마치 병균 덩어리 취급하는 것 같아 자괴감마저 든다. 서 교수는 “실제로 이런 갈등 때문에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이 꽤 많고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한다. 건강 걱정보다 왕따 싫어 금연 결심 “예전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금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런데 최근엔 그렇지 않아요. 간접흡연이나 3차흡연 때문에 흡연자가 배척당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흡연자들이 못 견뎌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족들도 싫은 티를 내는데 남들은 어떻겠어요. 사실 길거리에서는 흡연이 가능하지만 비흡연자의 부정적 태도나 언행 때문에 맘 편히 담배를 피우는 것이 어렵죠. 이런 사회적 따돌림이 싫어 금연클리닉을 찾는 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사실 시니어 세대에게 흡연은 한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찬밥신세가 더 서러울지도 모르겠다. 서 교수도 흡연을 성인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한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았어요.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80%를 넘었고, 의사들도 예외는 아니었죠. 대학에 가면 음주가 허락되는 것처럼 흡연도 성인이면 누려야 할 권리처럼 여겼으니까요. 저의 가족도 형님 세 분과 아버지 모두 담배를 피우셨죠.” 서 교수도 1977년 대학에 들어가면서 흡연을 시작했다가, 1988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양담배 수입 저지 투쟁을 하다가 담배를 끊었다. 그는 “중독 상태가 심하지 않았는지 크게 괴롭진 않았다”고 회상했다. 서 교수는 이 과정에서 담배의 해악을 알게 되었고, 남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읽다가 금연 전문가가 되었다. 현재 그는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이자 국내에서 손꼽히는 금연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금연캠프 활용하면 성공률 높아져 서 교수는 “끊는 과정이 괴로워도 금연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국내 사망 원인 1, 2, 3위가 암과 뇌혈관, 심혈관 질환이에요. 중풍이나 심장마비 등이 대표적 질환이죠. 그런데 이 질환을 일으키는 공통 위험인자가 바로 니코틴이에요. 30년 이상 담배를 피웠다면 이미 혈관이 좁아져 있을 거예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죠. 자발적으로 발암 물질을 몸 안에 집어넣고 있는 셈이에요. 당장 끊으셔야 합니다.” 30년쯤 담배를 계속 피워온 사람이라면, 서너 차례쯤 금연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험했던 좌절감은 금연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 서 교수는 “금연은 혼자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으므로 국가의 금연 관련 서비스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특히 고령 흡연자는 오래도록 니코틴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에 의지만 가지고 끊기가 어렵습니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해요.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지역별로 금연 진료병원을 찾을 수 있어요. 약값이나 진료비는 나중에 환급되어 공짜나 마찬가지예요. 껌이나 패치 같은 니코틴 보조제 또는 부프로피온, 바레니클린 등의 약물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지역금연지원센터의 ‘금연캠프’를 이용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4박 5일 일정이며 금연과 관련한 교육, 건강검진도 받습니다. 참가비는 무료이고 약제비만 부담하면 되는데 이 비용도 환급이 되니까 경제적 부담은 없어요. 이 캠프를 체험한 흡연자 중 65% 정도는 6개월 이상 금연에 성공했으니까 효과가 높은 편이죠.” 금연 실패해도 구박 말고 응원해줘야 흡연자들이 금연에 도전할 때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스트레스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흡연을 통해 해소했는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느냐는 고민이다. 서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비흡연자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잘 살고 있잖아요. 실제로 설문을 통해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해보면 오히려 흡연자들에게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것으로 나와요. 되레 해소를 못하고 있다는 의미죠. 금연은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해요. 다만 주변인들이 도와줘야 합니다. 금연에 실패해도 구박하지 말고 또 도전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최근 유행하는 전자담배에 대해서도 서 교수는 할 말이 많다. 담배회사에서 마치 전자담배가 훨씬 덜 유해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는 것이 마뜩찮기 때문이다. “궐련형 전자담배도 연초담배하고 다를 바 없다고 봐야 해요. 물론 액상형 전자담배도 해롭고요. 담배회사에선 유리한 결과가 나온 성분 자료만 골라 발표하고 있지만, 모든 유해물질을 고려하면 유해성은 연초담배와 다를 바 없어요.” 올해 7월부터 30갑년(매일 1갑씩 30년 혹은 매일 2갑씩 15년 이상 흡연) 이상 흡연자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저선량 폐CT를 활용한 폐암 검진 사업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흡연자들이 금연을 선택하기보다는 검진과 흡연을 병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폐암은 5년 생존율이 25% 전후에 불과해 일찍 발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 2019-0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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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자
- 전에 알지 못했기에 몇 년 전에 발표된 줄도 몰랐는데 요즘 내 마음 속으로 쏙 들어온 노래가 있다. 나는 음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젊을 때는 트로트를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트로트를 들으면 무식해 보일 것 같은 편견까지 있었다. 당시 어른들이 말했다. 나이 들면 음악 성향도 다 바뀐다고, 그러나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는 말처럼 나이가 드니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 그렇게 무시했던 가수 남진, 나훈아가 지금은 너무 섹시해 보이고 노래도 멋지게 들리는 것이다.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한 영상에 눈길이 꽂혔다. 선남선녀의 결혼식에서 우아한 한복 차림의 친정어머니가 축가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신나는 반주에 맞춰 열창하는 노래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들려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노래 제목은 바로 ‘아모르파티(amor fati)’. 아모르파티에서 파티는 우리가 흔히 아는 ‘party’가 아니라 ‘fati’로 운명이라는 라틴어라고 한다. '아모르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뜻이어서 축가로서도 손색이 없는 노래다. 역주행이라는 말이 있다. 오래전에 발표되었지만 당시에는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다시 유행이 되는 역주행 노래가 있다. 가수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파티’도 그렇다. 리듬이 경쾌해 들으면 이토록 신이 나는데 왜 이제야 듣게 되었는지 의아하다. 가사도 의미 있다.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여”라는 구절이 내 가슴을 울린다. 생각해보니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내용 같다. 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옛 추억이 가슴 아파 슬프게 느껴지는 행복이 있다. 유행가 가사는 어찌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지 놀랍다. 유튜브 동영상에 나오는 매력적인 친정어머니는 무대 위에 나란히 선 딸과 사위를 향해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 뛰는 대로 살라”고 노래했다. 신혼부부에게 할 얘기는 아닌 듯하지만 장면이 재미있어 웃으며 감상했다. 그 영상을 본 후 나도 아모르파티를 배워 멋지게 불러보고 싶어졌다. 한때 가수가 되려 한 적도 있으므로 금방 배워 잘 부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휴대폰을 켜놓고 따라 불러보니 만만치 않은 노래였다. 몇 시간을 연습해도 가수 김연자처럼 감칠맛 나게 부르기가 힘들었다. 리듬을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잘 불러보려고 열심히 연습 중이다. 누구나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와서 소설 같은 이야기를 써가며 산다.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자.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되고 인생은 지금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트로트 가사에 다 녹아 있다. 아모르파티! 우리 모두 운명을 사랑하고 지금을 멋지게 살아보자.
- 2019-02-0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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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의 롱 패딩
- 작년 겨울 한 유명 백화점에서 평창올림픽을 겨냥해 만든 롱 패딩은 없어서 못 팔았다. 이 상품을 사려고 고객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등 그야말로 광풍이었다. 대부분의 스포츠 의류 업체에서는 롱 패딩을 대량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겨울은 그야말로 롱 패딩이 거리를 휩쓸었다. 그런데 롱 패딩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는 보도가 들려왔다. 살 만한 사람은 대부분 샀을 테고 올겨울이 그다지 춥지 않은 탓도 있다는 분석도 따랐다. 내가 한때 일하던 회사에서 1996년 ‘UMBRO’라는 영국 스포츠 의류 브랜드를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 달러 환율이 800대 1까지 가던 시절이었으니 수입해서 팔 만했다. 그때 상품 품목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롱 패딩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 클럽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 옷을 입고 광고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추리닝 정도가 주종이던 스포츠 패션에서도 멋스러웠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던 패션이라 보기에도 그럴싸했다. 나는 그 무렵 이 회사의 대표이사로 일했는데 롱 패딩 가격을 놓고 사장과 갈등을 빚었다. 수입 원가 1만5000원 상당의 품목이었으니 9만 원 정도로 팔면 괜찮은 가격이었다. 요즘처럼 오리털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인조 솜으로 만든 패딩이었다. 그런데 사장은 비싸게 정가를 매겨야 팔릴 품목이라며 판매가를 놓고 고집을 피웠다. 더 올리면 안 팔린다고 강하게 조언했는데도 사장이 내가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12만 원, 15만 원, 18만 원으로 가격을 순차적으로 올렸다. 롱 패딩이 유행하던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판매는 부진했다. 결국 1997년 1월이 돼서야 사장은 내게 가격 책정을 맡겼다. 하지만 이미 판매 기회를 놓친 상황이었다. 이런 상품은 추운 겨울에 잘 팔리고 첫 추위 때가 적기다. 11월이 적기이고 날씨에 따라 12월까지도 판매가 이어질 수 있지만, 1월에 겨울 상품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근년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패딩이 100만 원을 훌쩍 넘었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린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롱 패딩 가격으로 사장이 책정한 가격은 너무 비쌌다. 롱 패딩의 유행이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난 작년에서야 시작된 셈이다. 나나 사장 모두 너무 앞선 시기에 롱 패딩에 큰 기대를 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유행에 민감한 편이고 유행 주기도 짧다. 롱 패딩 하나를 사면 더 이상은 사지 않는다. 롱 패딩을 입어보니 과연 따뜻했다. 무릎까지 덮어주니 당연하다. 그러나 걸을 때마다 무릎에 옷이 닿아 걸리적거렸다. 이를테면 멋을 포기한 패션이다. 마치 이불을 두르고 다니는 형상이다. 패딩 옷에 붙은 모자에 털이 달린 것도 있다.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보온 효과는 거의 없다. 털이 붙었다는 이유로 비싸기만 하다. 따로 따뜻한 모자를 사서 쓰는 편이 더 실용적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때 롱 패딩을 가져가려 했다. 고산에 올라가면 기온이 급강하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부피 때문에 포기했다. 숙소에서는 입을 수 있으나 트레킹 때는 입을 수 없다는 조언도 작용했다.
- 2019-01-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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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외교관들에게 사랑받는 '피터 킴'
- ‘주님 위의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시니어의 로망을 넘어서(?) 이제는 모든 세대가 인생의 마지막 꿈처럼 여기는 듯한 건물주라고 하면, 흔히 일반 상가 소유자나 빌라, 빌딩 주인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 좀 독특한 건물주가 있다. 김현우 씨, 주한 외교관들에게는 ‘피터 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주한 외교사절들을 대상으로 주거공간 렌트 사업을 하고 있는 흔치 않은 건물주다. 사업을 한 지 어언 30여 년이니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난 생활 또한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를 만나서 쉬이 볼 수 없는 삶을 들여다봤다. 동빙고동에 위치한 모로코 대사관 Owls Avenue에서 만난 김현우 씨의 나이는 거의 40대로 보였다. 아무래도 주한 외교사절들과 접촉해야 하는 업의 특성이 그를 젊게 만든 것일까? 외교관들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연예인들, 셀럽들 또한 그의 집을 빌리기도 했었다. 특별한 이들을 손님으로 모시는 건물주로서 살아야 했던 그의 감각 또한 계속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0여 년 전에 시작된 거죠. 남대문에 대한화재 건물이 있었는데, 독일대사관이 그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독일대사관 사람들에게 저희 집을 내주면서 일을 시작했죠. 그 후로 계속 대사관과 주재원들에게 집을 빌려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글로벌 회사가 인정한 인테리어 감각 그는 손님의 니즈에 맞게끔 인테리어를 짠다고 말한다. 최근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추세는 컨템포러리, 미니멀리즘이란다. “주거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롱패딩이 유행하면 모두가 롱패딩을 입지만, 서양 사람들은 개인의 개성이 다 달라요. 특히 독일 사람들을 25년간 겪었는데 굉장히 합리적이에요. 헤어질 때도 나이스하고. 독일 사람들이 인간으로 치면 명품이라고 봐요.” 요즘 그에게 가장 재밌고 즐거운 일 또한 인테리어다. 그는 자신의 감식안에 대한 모종의 자부심도 있다. “덴마크에서 온 레고 코리아 대표님이 저희 집에서 사실 때가 있었어요. 그분이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제가 코디한 가구와 그림을 그대로 다 계약서에 넣어 달라고 요청하시더군요. 유러피언 미니멀리즘적인 인테리어로 한 거였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정말 희열을 느꼈죠.” 젊게 살려면 가구 공간부터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인테리어에 대해 물어볼 차례였다. 과연 젊게 보이는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만들 수 있을까? 그가 볼 때 한국 주거문화의 문제점은 ‘너무 많이 갖다 놓는다’는 것이었다. 가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컨템포러리하고 미니멀하게 해야 해요. 나이 드신 분들은 제발 오래된 가구 버리고 요즘 디자인의 가구를 들이는 게 젊게 사는 비결이에요. 앤티크하거나 바로크적인 디자인의 가구는 나이 들어 보이거든요. 좀 더 모던하게 꾸밀 필요가 있어요.” 그가 중시하는 또 하나의 인테리어 조건은 컬러를 많이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주로 화이트와 그레이, 우드색을 활용한다. 한 집에 컬러를 서너 개 이상 쓰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것은 패션 쪽에서 말하는 ‘세 가지 색 이상을 입지 말라’는 말과도 통용된다. “집은 자기가 평생 살 수 없어요. 반드시 이사를 가게 되어 있죠. 그래서 보편성에 맞춰야 해요. 맞춤에 있어 가장 좋은 것은 화이트예요. 화이트에는 그림을 걸어도 되니까 일종의 캔버스라고 생각하면 되죠. 그래서 저는 화이트를 많이 써요. 자기만의 컬러를 그 안에 넣어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독일의 포용력에서 많은 것을 배우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사업가로서의 그의 첫 인연이 독일이었고 지금도 그 연을 이어가는 만큼, 그는 독일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지금까지 중국을 육십 번을 갔어요. 아이 공부 때문에도 그렇고 가구 수입 등의 일이 있어서. 그런데 그때가 20년 전이었는데, 모든 대도시의 택시가 폭스바겐이더군요. 다른 회사택시는 하나도 없었어요. 차만 팔았을까요? 차가 팔리면 부속적인 파트들이 얼마나 많이 팔리겠어요.” 그가 본 독일 사람들은 계약이 끝나면서 안 좋을 수 있는 관계라도 끝까지 매너 있게, 상대를 배려하며 합리적으로 마무리 짓는 사람들이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이 주재원이라는 엘리트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를 일이나, 그는 그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가 직원들에게 절대 싸우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떠한 일이든 절대 싸우면 안 된다고 가르쳐요. 분쟁이 생긴 후부터는 여러 가지 쌓이는 문제점들이 나오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게 되거든요. 분쟁은 최종적으로는 소송으로 가죠. 그러면 변호사 고용해야지, 서류 검토해야지, 증거 서류 준비해야지…. 내가 다 해줘야, 변호사는 그걸 보고 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양보해라, 보듬어라’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의 사무실에는 ‘Sue Zero(소송 제로)’라는 말이 붙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그가 소송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미국의 유능한 엘리트들은 소송을 피하는 기술을 알아요. 그게 필요해요. 정신적으로나 건강 면에서 너무 좋은 것이니까. 포용은 무섭고 강한 힘이 있지요.” 좋은 공기가 행복이다 그는 차에서든 집에서든 에어컨과 히터를 쓰지 않는다. 건조한 공기가 피부를 망가뜨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제주로 보냈다. 서귀포와 서울의 미세먼지 차이가 어마하게 나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다. 용인 세컨드 하우스에서 사는 것도 공기 때문이다. 용인의 산속에 자리한 그 집은 큰 도로에서 1000m 더 들어간 곳에 있는 숲으로 둘러싸인 트리 하우스다. 봄부터 가을까지, 금·토·일의 주말 동안은 그곳에서 난방을 하지 않은 채 지낸다. 봄과 가을은 춥지 않냐는 말에 그는 구스다운 이불과 두꺼운 잠옷 그리고 러시아 친구가 준 솔잎가루 베개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다. “공기의 소중함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와 닿습니다. 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이에요. 특히 디젤차. 최근에 판매된 승용차 대부분은 디젤차죠. 디젤차가 인센티브가 있고 연비가 좋으니 사람들이 많이 샀잖아요.” 그래서 그는 은퇴한 사람들이 도시에서만 살려고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디젤차로 가득한 서울 도심은 그에게 있어선 미세먼지 공장 같아 보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하니까 이해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울에 너무 중심을 두죠. 은퇴 후 여유가 되면 근교로 옮기는 게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흙냄새가 올라오는 집, 별과 하늘이 가까워 일상에서 마음의 치유도 가능한 곳입니다.” 월·화·수·목은 서울에서 금·토·일은 자신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용인 세컨드 하우스에서 힐링을 하는 그는 워라밸과 함께 휴양, 문화, 여가를 향유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 중용 그는 건물 관리를 하며 여유로운 인생 후반기를 지내는 중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니어의 일상을 유유자적 보내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그도 30, 40대에는 일에 미쳐 있었다. “일을 하면 미친 듯이 하던 시절이었죠. 이른 아침 논현동 건축자재상인들이 안 나왔다해도 일찌감치 가 있기도 하고 점심은 차에서 사과나 바나나만 먹으면서 지내고…. 그러다 독일 사람들의 삶을 보며, 저의 멘토들을 보면서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그가 선호하는 단순하고 절제된 감각은 그의 삶의 법칙과도 연결되고 있었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그가 ‘젊어 보이기 위해서는 절제하는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고 대답한 것도 사진의 취향이나 감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공자가 한 중용이란 말을 중요시합니다. 사람 관계도, 먹는 것도 밸런스가 중요해요.” 김현우 씨는 일과 취향, 삶까지 일치시킨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일치는 그에게 ‘지지부진하지 않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느낌을 부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세운 법칙에 따라 자신을 오롯이 정렬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만족과 행복 덕분 아닐까. 그 쉽지 않은 길에 도착한 그의 모습이 부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 2019-01-21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