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노는 삶”
- ‘논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일컫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다 보면 한이 없습니다. 그것은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라는 데서 온전한 행복의 다른 표현이라는 데 이르기까지 그 폭이 엄청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 놀이이고, 어떻게 놀아야 놀이다운 놀이를 하는 것인지 금을 긋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두루 살펴보면 우리네 문화는 놀이를 저어하는 태도를 꽤 진하게 이어온 것 같습니다. 논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게으름, 하릴없음, 비생산적임, 낭비, 무절제, 철없음 등과 나란히 놓입니다. 이에 맞서는 것들로 근면과 성실, 점잖음과 어른스러움을 드는 것을 염두에 두면 놀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그림이 환하게 떠오릅니다. 오랜 유교적인 근엄함 탓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풍토에서는 우리네 시니어들이 잘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놀이가 낳는 직접적인 경험이 무언지 생각해보면 좀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놀이는 재미있고, 그래서 즐겁고, 그래서 온갖 것에서 풀려난 홀가분함을 만끽하게 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보면 그것은 각박함에서의 여유이고, 노동에서의 휴식이며, 긴장에서의 풀림이고, 절제가 낳은 보상이며, 노력이 맺은 결실이기도 합니다. 결국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삶이란 잘 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사람이 바라는 꿈의 실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네 시니어들에게 ‘당신네들이야말로 마땅히 잘 놀아야 한다!’고 거들어주는 일보다 더 현실적이고 귀한 추임새는 없습니다. 그런데 놀이와 노년을 부정적으로 잇든, 긍정적으로 맺든, 위에서 묘사한 그러한 놀이에 대한 이해는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놀이라는 삶이 따로 있고, 놀이 아닌 삶이 따로 있는 것같이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일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멈춰 쉬고 싶고, 일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은 꿈을 지닙니다. 그러다 잠시 일에서 풀려나면 그리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 순간을 채워주는 대표적인 것이 놀이입니다. 그 내용은 어떤 것도 좋습니다. 그저 즐겁고 신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살다 보면 산다는 것은 잘 노는 삶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매 순간의 삶이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기보다 그 과정의 끝에 이르러 비로소 누리게 될 ‘잘 놀기 위한 삶’의 준비 과정이 되는 거죠. 수단적인 가치로서의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놀이하며 사는 행복한 지경에 이르기 전의 삶을 어떤 상황도 참고 견뎌야 하는 무거운 색깔로 채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견디며 지워야 할 삶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기다리며 즐거울 삶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자칫 일상의 삶을 연민과 고통으로만 여기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놀이 아닌 삶은 삶이 아니라는 자학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일에서 벗어나 이제는 잘 놀면서 살리라는 기대를 실현한 삶이 뜻밖의 엉킴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친구는 은퇴를 하고 나서 자기가 평소에 늘 꿈꾸었던 사진에 몰입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행복’을 저리게 만끽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제게 감동스럽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뒤에 만난 그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내 ‘놀이’를 위해 시간도 자금도 엄청나게 투자를 했네.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을 포함해 많은 것을 희생하기까지 했지. 그러다 보니 내가 은퇴 이전에 일에 몰입하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더군. 이제 좀 쉬어야겠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이 아닌 삶은 삶이 아니라는 무의식이 놀이조차 일로 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한 것이니까요. 문제는 이제 시니어가 되었으니 모든 일에서 벗어나 잘 놀아야 한다든지, 그러기 위해서는 시니어가 되기 전에 일에 몰두해 그런 삶을 준비해야 한다든지 하는 이분법적인 판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을 과외공부에 뺑뺑이를 돌릴 수밖에 없이 살아온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그 엄마는 과외하러 가는 자식에게 늘 이렇게 말했답니다. “너 오늘은 수학 과외 가는 날이구나. 거기 친구들과 수학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다 오거라. 내일은 피아노 선생님한테 가는 날이네. 선생님하고 재미있게 놀다 와라. 다녀와서 놀던 이야기를 엄마 아빠에게 들려줘. 우리도 정말 그렇게 놀고 싶거든!” 그런데 그다음 이야기가 제게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녀석이 돌아와서는 재미있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었던 일, 속상했던 일도 다 말하더군요.” 일상의 삶과 단절된 ‘잘 노는 삶’이 따로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기다리는 놀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놀이가 있을 뿐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나이가 충동하는 ‘찾아야 할 즐거움’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2019-12-11 13:37
-
-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 행복하세요? 고개를 가로저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통계도 이를 보여준다. 2019년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른 대한민국 행복지수. 156개국 중 54위다. 순위로 보면 중간보다 위쪽이니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27위, 기대수명 9위라는 점과 견주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행복지수 개발에 관한 연구'에서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기준을 건강, 일, 관계 순으로 두고 있다. 경제적 안정, 삶의 가치와 목표 등은 행복 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연령대별 행복지수를 보면 60대가 20대, 30대, 40대, 50대보다 낮다. 10점 만점 기준으로 30대가 6.56인데 60대는 6.05이다.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연령대인 60대의 행복도가 낮은 이유는 행복 기준인 건강 일관계에서 만족하지 못해서다. 은퇴하면 건강이 점차 나빠지고 더 일할 수 없게 돼 불안감이 커진다. 줄어드는 인간관계 네트워크도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행복요소 3가지가 모두 빨간불이 켜져 불안감, 즉 걱정거리를 해소할 수 없다. 걱정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지 않다. 지금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걱정거리가 있다는 의미다.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로 '나와 가족의 건강'을 꼽았다. 노후 의료비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걱정도 더해진다. 건강보험 진료비 전체의 40.8%가 65세 이상 고령층에서 차지하고 있어 걱정이 이해된다. 노후자금과 연금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갖기 힘들어 생활비 마련도 큰 불안으로 다가온다. 은퇴자 10명 중 4명은 노후생활비 부족을 경험했다고 실토하고 있어 걱정거리가 틀림없다. 57세에 9급 공무원시험에 도전해 동사무소 근무를 하는 분도 있음을 기억해두자. 하루 6시간씩 5년이면 1만 시간이 넘는다. 어느 분야건 우뚝 설 수 있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된다. 5년을 투자해도 30, 40년을 더 활용할 수 있는 수명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미래의 행복을 설계하는 일이다.
- 2019-11-25 12:59
-
- 인생의 쓴맛 안엔 보약도 들어 있다
- 애석한 사실 하나 귀띔하고 그의 귀농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귀농 7년 차. 농사도 살림도 어언 자리 잡힐 만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문기운(60) 씨는 아직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자나 깨나 진땀을 흘리는 것 같다. 화살을 쏘았으나 여태 과녁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속사정을 모르는 남들은 일쑤 ‘귀농우수사례’로 치지만, 사실은 실패 사례에 가깝다는 게 아닌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사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세월이 줄레줄레 길어진다면? 안간힘을 다했으나 자꾸 스텝이 꼬인다면? 기세가 꺾일 수 있다.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던 초심의 열정이 얼어붙을 수 있다. 그러나 문기운 씨는 고난을 차라리 디딤돌 삼아 맥락을 잡아간다. 심술궂은 운명아, 넌 그래라, 난 내 길 간다! 그런 태세로. 고난과 정면으로 독대해 희망의 불씨를 지속하는 일. 인생의 요점을, 그는 그리 생각하는 것 같다. 시골에서 누리는 ‘인생 2막’. 도시생활의 중압과 불쾌로부터 벗어나 경치 좋은 산골에서 한가하게 노니는 일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오전엔 운동 삼아 약간의 노동을 하고, 오후엔 책을 읽는다. 밤이면 두릿두릿 돋아나는 별들과 교신하며 영속하는 가치를 생각한다. 이런 삶, 그 무엇보다 이상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문기운 씨는 그런 식의 삶에 들뜬 적이 없다. 그는 사업에서 명퇴를 했다. 그러나 사업적 욕망까지 명퇴하진 않았다. 그는 산촌을, 농촌을 매력적인 사업장으로 판단했다. 농업 경영인으로 도약해 생의 후반을 흥미진진하게 돋우겠다는 야심. 그게 귀농을 선동했다. “흔히 은퇴 이후엔 격렬한 삶과 멀어집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휴식을 추구하는 것이죠.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은퇴를 계기로 또 하나의 격렬한 삶 속으로 뛰어드는 게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길이라 봤지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직업을 잡아 나를 새롭게 확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어요. 그 방편으로 귀농을 택한 건, 농사가 지닌 사업적 가망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직격탄 맞은 조경수 사업 그는 KT 출신이다. 줄곧 KT에 근속하다 자회사를 창업, 6년간 대표이사로 일한 뒤 퇴직했다. 마음은 일찌감치 산골로 먼저 이주해 그를 열렬히 호명했던 모양이다. 퇴직을 한 바로 그날, 잽싸게 짐을 싸 귀농을 했다는 게 아닌가. 이전에 미리 사두었던 이곳 홍천의 산골짝 터전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던 것. 매봉산 자락 해발 780m 고지에 있는 터전의 규모는 조경수 농장 2만 평을 포함, 총 4만 평. 광활한 터이니 광폭의 행보를 예감하며 기꺼웠을 게다. 새 삶의 기획자인 자기 자신에게 진정 새로운 삶을 선사할 기회가 도래했다는 확신으로 설레었을 테고. “사실 귀농은 오래된 계획이었어요. 도시보다 시골이 좋았고, 농사가 제 적성에 부합한다고 봤으니까. 일테면, 제가 흙냄새 좋아하고, 몸 쓰기를 좋아해요. 게다가 땅이 지닌 생산성에 호감을 느껴 나름대로 농업 연구도 해왔죠. 그러하니 지당한 귀농이었다는 거.” “부인께선 찬동했고?” “찬동까지는 아니었지만 반대하지도 않았어요. 부부이니까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도시생활에 지친 남편을 조용히 응원하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시골생활에 닻을 내리기까진 시간이 걸렸어요. 이모저모 버거운 경험을 하며 아내가 한동안 마음고생 좀 했습니다.” “농사의 사업적 가망성에 착안한 건 어떤 근거에 의해서였죠?” “조경수 농업이 매우 유망하다 봤던 겁니다. 제가 농장을 사들인 10여 년 전엔 나무시장이 생동했어요. 남북경협이 기폭제였죠. 산림 황폐화가 심각한 북한으로 막대한 물량의 나무들이 보내졌으니까. 당시 국내 과실수 묘목의 40%가 북한으로 넘어갈 정도였지요. 그 매우 긍정적인 상황에 착안하고 나무 농장을 사들였던 겁니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2010년, 남북경협이 중단됐어요. 상황이 돌변했겠군요. 호재가 사라지고 악재가 덮쳤으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순간에 벌어진 거죠. 직격탄을 맞았다 할까, 국내 조경사업 자체가 냉각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더라고요. 게다가 이 사업이 원래 건축 경기하고도 맞물려 있는데 건축 바람마저 가라앉아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어요.” 시퍼런 꿈과 야심이 실린 그의 ‘무네미농장’엔 주목과 소나무를 주종으로 한 조경수들 1만5000그루가 자라고 있다. 농장 사위엔 초목들이 비밀 회합을 하는 숲의 연쇄. 가을이 붓을 들어 서서히 주황을 칠할 테지. 그러나 10월 초의 숲은 여전히 초록을 토하는 재미에 심취해 있다. 저 기고만장한 풍경의 기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환하게 밝아질 것만 같은 낙토(樂土)라 말 못할 게 없는 가경이다. 그러나 문기운 씨는 풍경에 별 관심 없다. 오나가나 경치를 즐겨 일상에 흥을 부여하는 취향의 소유자가 아니거니와, 한가하게 자연에 눈 돌릴 때가 아니라 보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상의 활로를 찾아야만 하는 현실이지 아니한가. “자연도 일상이 되면 무료해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자연보다는 노동이지요. 기질이나 체질이 그래요. 물론 노동 자체가 목적일 리는 없죠. 수단일 뿐이니까. 사실 귀농 준비부터 소홀했던 것 같아요. 따라서 뜻대로 사업이 진척되지 않았지만 이게 다 성과가 발생하기 직전의 과정이거니, 그런 생각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새로 태어난 ‘무네미농장’ 그는 어쩌다 귀농한 사람이 아니다.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삶을 농사로 구현하겠다는 또렷한 목적을 가지고 이 후미진 산속에 들어왔다. 모든 기량과 경험과 뚝심을 쏟아 농업 경영인으로 부상하겠다는 신념을 스스로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붓고 있다. 조경수로 쓴맛을 봤지만 쓴맛 안엔 보약이 들어 있는 법. 그는 혼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콘셉트를 고안했다. 다목적 관광농원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간 것. 현재 그의 농원에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갖가지 나물을 재배해 가공 판매를 하며, 수영장이 있는 2층짜리 게스트하우스를 지어 휴양객들을 불러들인다. 농사 체험, 별보기 체험, 계곡 트레킹, 잔디밭 웨딩, 동아리 워크숍 등등 각종 프로그램과 시설물들을 구비해뒀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 그간의 총 투자비용이 30억 원 이상이란다. “투자금은 자체 조달했어요. 가지고 있던 부동산과 동산을 정리해 확보한 자산이었죠. 만약에 자산이 부족했다면, 부채를 얻어 썼다면, 이미 망가졌겠죠.” “귀농지의 특산 작물을 재배하는 게 귀농 성공의 한 가지 비결이라고들 합니다. 이 지역은 고랭지 배추의 주산지로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많다고 알려졌고요. 배추 농사엔 관심 없었을까?” “고랭지 채소 농사로 고소득이 가능한 건 분명합니다. 이 마을 배추 농가들이 보통 연평균 1억 원쯤의 매출에 순소득 5000만 원 정도를 기록하더군요. 홍천군 전체 농가 평균 매출 500만 원에 비하면 압도적인 금액이죠. 저는 조경수 외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설령 배추 농사에 뛰어들었다 해도 실패했을 수 있죠.” “왜죠? 불굴의 투지. 당신에게선 그런 게 엿보이는데.” “직장생활만 했던 사람이잖아요. 내 안엔 뛰어난 적응력이 있다, 그런 착각 속에 귀농을 했어요. 알고 보면 등신이라는 거.(웃음) 고랭지 채소 농부들, 이분들 참 대단합니다. 고도의 집중력, 냉철한 상인정신, 생활상의 모든 움직임이 이윤과 관련돼 돌아가더라고요.” 그도 한동안 농사에 주력했다. 조경수 사업의 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엄나무, 마가목, 오미자 등 가장 일손이 적게 드는 작물들을 재배했다. 그러나 이 역시 헛수고. 소득이 되질 않더라는 거다. 무엇보다 유통 루트를 발굴하기가 어려웠다지. 그렇게 농사에서 다시 빙벽을 만났던 그는 이후 관광농원 조성에 전력투구, 근래에 근사한 복합 농원 구축을 완료했다. 그러나 수익구조는 여전히 불안하다. 해서, 지금도 몇몇 나물류를 재배해 가공 판매한다. 이런 그가 농업을 바라보는 눈은 지극히 신중하다. 농사란 냉혈의 세계라는 인식에서겠지. “귀농하려는 분에게, 부디 충분한 준비를 통해 농사 물정과 실력을 비축한 뒤 본격 농사에 뛰어들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거주 지역 특산물을 작목으로 선택하는 건 그나마 현명한 선택이라 말하고 싶고요. 유통망 개척의 수고를 덜 수 있고, 재배 기법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가장 좋은 건 농사를 아예 짓지 않는 겁니다.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니까. 특히 자연주의 농법은 100% 망합니다. 그 위험한 모험을 하겠다는 사람을 보면 저는 뜯어말려야겠죠.” “이 농원은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데다 멋진 시설물들이 즐비해 호감을 자아내요. 그러나 시련은 여전한 거예요? 문제가 어디에 있죠?” “홍보도 아직 미흡하지만, 상당히 외진 산기슭이라 가볍게 접근하기 어렵다고들 느끼는 것 같아요. 강원도 오지 특유의 구불구불한 언덕길이 길게 이어지니까. 그러나 낙관합니다. 특유의 농업 비즈니스 모델로 부상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도 시퍼런 꿈 안고 달려가겠다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갈망과 갈증. 사람은 다들 그런 걸 속에 두고 산다. 하지만 선한 믿음이 있는 한, 게임은 차라리 스릴 있게 계속된다. “사업 성취를 위해 몰두하다 보면 마음의 여유를 놓치기 쉽죠.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죠?” “오락 삼아 기타를 치지만 사실 정서적 만족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불만이에요. 자연 속에 살지만 자연과 가까워지진 않더라고요. 바람이 나무숲을 흔들 때나 계절이 바뀔 때 잠시 잠깐 자연의 존재를 느끼는 정도에 불과해요.” “귀농했으나 도시를 향한 심한 향수에 젖어 사는 이들도 있더군요. 도시의 휘황한 야경이나 파도 같은 인파 속에 있을 때 오히려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사회적 동물이죠.” “도시의 흥청거림, 텁텁한 공기, 생맥주집에서의 대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 이런 것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사람이 살 만한 곳은 도시일까, 자연일까? 이는 단정 짓기 어려운 문제예요.” 적막한 자연에 때로 외로운 심사를 느끼는 모양이다. 오랜 로망이었던 귀농을 위해 가차없는 질주로 산골에 들어왔지만, 만사가 술술 풀리기는커녕 착오와 장애로 점철된 시간들. 쓸쓸한 감회를 피할 수 있으랴. 인간관계의 헐거움과 얕음에서도 그는 시골생활의 애환을 느낀다. “깊은 산골에 살다 보니 도시와 접촉하기 어렵고 읍 소재지조차 멀어 불편이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교류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폐단이죠. 그저 마을 농부들과 농사 얘기를 나누는 정도니까. 의미 있는 소통에 관한 허기, 고립감, 공허감, 이런 게 달라붙는 겁니다.” “다정한 벗 하나, 따뜻한 커피와 음악, 잘 익은 술 한 잔, 이런 게 곁에 있다면 안도할 만한 생활이겠죠. 특별한 이유 없는 행복감이 그런 것에서도 나오니까. 이건 너무 소박한가?” “동호인들과 음악회도 열고, 저 나름대로 친선을 즐기는 면이 있긴 해요. 그러나 사실 여유시간이라는 게 없어요. 일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체질상 일을 안 하면 우울해지고 몸도 아프더라고요. 일종의 강박증도 있어요. 보람 있게 세상을 살아야 한다, 조금치의 시간 낭비도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런 거.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생각 하나에 집중하며 사는 겁니다. 너무 속물적인가요?(웃음)” 속물 플러스 미물. 인간 안에 그런 성분을 집어넣어 디자인한 조물주의 계략에 누가 삿대질할 수 있으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사. 그러나 기어이 뜻을 이루려 발버둥치는 게 또한 인생사. 예외 없이 누구나 그렇듯, 그도 트랙 위에 선 경주마다. 앞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는. ◇ 문기운 씨가 주는 귀농 Tip ◇ •경관만을 추구해 터를 구하지 마라. 나만의 왕국을 세울 듯이 외진 골짜기로 들어가 살다보면 외롭고 불편해진다. 그런 터는 농사에도 금물이다. 생산성이 낮은 비탈이기 십상이어서다. 약간 비싸더라도 반듯한 농지를 매입하자. •강원도 고원지구로 귀농할 경우엔 고랭지 채소 농사가 유망하다. 제반 조건에 최적화된 작물이라 다른 농사보다 경제성이 높다. 그러나 투기성 다분한 재배 풍토를 유념해야 한다. •허영과 허세에 찬 농사를 짓다가 파산하는 사례가 많다. 자신의 능력을 냉정하게 점검, 과욕 없는 규모를 설정하라. 천재지변이나 기상이변으로 흉작을 볼 수 있는 게 농사라는 인식도 철저해야 한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 2019-11-15 08:54
-
- 산야에 은둔했으나 창작욕의 화톳불은 활활!
- 예술이 인간을 구원하고 영혼을 인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좀 과한 예찬일지도.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예술은 현실의 벽을 으라차차 걷어차는 행위라는 점에서 위력적이다. 종교, 사상, 철학을 부수거나 뛰어넘는 곳에 예술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창작이란 지병에 시달리는 것처럼 끔찍한 싸움이다. 거역할 수 없는 유령에게 덜미를 잡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진짜 예술가’의 경우에 말이다. 도예가 신상호(72). 웅장한 창의적 행보로 ‘거장’이라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그는 어떻게 사나. 예술과 맞붙어 무엇을 얻나. 도예란 흙과 불을 다뤄 도자(陶磁)를 만드는 장르다. 그러나 신상호의 작업엔 이미 형식이 없으며, 경계가 없다. 일찍이 전통 도예의 권위자로 부상했던 그는 무적함대, 또는 해적선과도 같은 거침없는 도발과 활보로 혁신적 현대 도예를 구현했다. 그의 작업은 진즉에 조각으로, 회화로, 심지어 건축 영역으로까지 대차게 확장됐다. 실험적 현대 도예의 전위이자 전사다. 신상호의 작업실 ‘부곡도방’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야산 자락에 있다. 45년째 이곳에 산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장직을 박차고 나온 2008년 이후엔 일체의 외부 일을 작파, 붙박이 장롱처럼 이곳에만 틀어박혀 창작에 진력해왔다. 부곡도방은 살림채, 작업실, 전시장, 휴게실 등속으로 이루어졌다. 놀랍게도 건물과 공간과 사물의 거의 모든 게 작품이다. 학교 운동장처럼 널찍한 마당에 늘비한 대형 조각과 소조들. 건물의 내부는 물론 외벽 도처에 조직적으로 부착한 세라믹 작품들. 창작에 혼을 빼앗긴 한 남자의 일상적 관습이 어떤 식의 지독한 양상인가를 한눈에 알게 하는 풍경이다. 가슴 깊이 제 할일을 품은 자는 제 할일 외엔 관심이 없는 법. 그는 무위(無爲)로 구하는 정신세계에는 더더구나 관심이 없으니 앉으나 서나 작업에 분망하다. 산야에 은둔했으나 심중엔 창작욕의 화톳불이 활활! 45년 전,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어릴 적에 경험한 어머니의 된장찌개 맛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에겐 자연을 찾는 본능이 있지 않던가. 그게 간절하면 회귀할 수밖에 없다. 흙과 불을 다루는 직업적 특성상 산야에 사는 게 적합하기도 하고.” 과거 청년기엔 경기도 이천에 작업장을 두었다. 당시의 작업 내용은 어땠나? “현대 도예와 전통 도예 작업을 병행했다. 한국인으로서 전통에도 애정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뭘 하든 도예로 먹고살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이천에선 판매 위주의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자 회의가 몰려들더라고.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자! 그런 생각으로 이천과 작별했다.” 국내외로 신상호는 도예의 첨단을 활주하는 작가로 알려졌다. 많은 작가가 시대의 첨단 트렌드에 천착한다. 그들과 당신은 어떻게 다른가? “미술은 새로워야 예술이다. 나는 끊임없이 나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나만의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 주력했다. 단순히 신사조를 뒤따라가는 식의 첨단성과는 다르다. 남이 이미 시도한 걸 비슷하게 흉내 내는 방식, 난 그런 걸 극단적으로 두려워한다.” 예술에 있어서 새로움이란 날마다 눈뜨면 자동으로 다시 맞이하는 새아침과 다르다. 시대의 증상을 읽는 안목과, 고도로 발달한 직관과 센스가 합세하지 않고서는 구하기 힘든 질료다. 신상호는 실험정신이라는 갈고리로, 범속한 세상 징후들의 안과 밖에 감춰진 새로운 테마와 소재를 찍어내는 것 같다. 실험정신이라는 에너지의 배양을 위해 그는 많은 여행을 했다. 여행 견문이 안목과 관점을 갱신해주기 때문에. 충실한 독서생활 역시 그의 수칙이다. 지적 단련이 선행되지 않으면 창의도 돋지 않아서겠지. 예술이 사기라는 말은 진리다 나는 신상호의 작품에 쓰러질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 토템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아 그가 제작한 동물 두상(頭像) 시리즈물에서였다. 이는 기묘한 추상 도조로 형상의 압도적인 이색, 그리고 관람자에게 즉각 원초적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감염력으로 탁월했다. 전대미문의 도예로 평가된 이 작품들은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지금도 장작 가마로 작품을 굽는가? “미술도 과학을 피해갈 수 없다. 특히 가마 작업이 중요한 도예엔 과학이 붙어야 한다. 장작 가마를 고집할 일이 아닌 거다. 난 나무 가마를 가스 가마로 전환한 최초의 작가였다. 비난이 쏟아지더군. 매국노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반면, 국내에선 오히려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정말 그런가? “나는 아웃사이더다. 그게 나의 강점이지. 뭐 국내건 국외건, 평판엔 관심 없고. 나름의 정직한 작업을 계속해왔다는 걸 자족할 뿐이다. 게다가 작가로서 충분히 다양한 경험도 쌓았다.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서 교환교수를 하면서는 세계의 흐름을 보고 듣고 배웠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야 할 필요성도 깨달았지. 그러나 이미 배운 지식과 경험에 안주하는 건 우습다. 다 놔야 하지 않겠나. 고정관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쥐었던 걸 거듭 놔야만 새로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은 “예술은 사기”라 했다. 혹세무민이나 착취가 없는데, 예술이 어떻게 사기가 되지? “예술이 사기라는 말, 그거 진리다. 일테면 미술시장을 보라. 장삿속에 이골 난 화상들이 한마디로 사기를 치고 있지 않은가? 이건 세계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안목 없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라 사기가 더 쉽지. 이렇게 예술작품이 사기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 풍토. 그걸 꼬집는 데에 백남준 선생의 뜻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뉴욕 소호의 길거리에서 난 자주 선생을 만났다. 그는 늘 말했다. ‘나, 사기치러 가!’ 하하핫. 여하튼, 선생은 한국에서 나온 유일한 세계적 작가였다.” 어떤 기자가 왜 뉴욕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범죄가 많아서 좋다”는 백남준의 답이 돌아왔다. “사회가 썩고 인생이 썩어야 예술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화통한 백남준은 때로 돈에 시달렸다. 지구 전체에 이름이 났지만 현실이 그랬다. 무소유가 좋다지만 그건 이미 가진 사람의 허세일 가능성이 크다. 세사에 둔하게 마련인 예술가에겐 흔히 궁핍이 따개비처럼 들러붙는다. “백남준 선생이 값싼 고물 TV로 작업을 한 것도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폭넓고 깊이 있는 예술작업을 일관해 성공했다. 특유의 천재적인 쇼맨십과 타협적 기질 역시 그의 강점이었지. 돈 문제에서도 그런 강점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데, 난 그게 안 된다.” 작품이 팔리지 않는가?” “안 팔려. 죽겠어.” 왜지? “비싸서.” 화상들이 드나들 것 아닌가? “내가 있어 보여서일까? 아예 접근하지 않는다. 약해 보이는 구석이 있어야 파고들 텐데 그렇질 않아서일 거다. 저놈은 빈틈이 없다! 그렇게 보는 거겠지. 물론 나는 강인하고 직정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내 인생은 허점투성이다.” 작가란 고난을 자양으로 해 성장한다. 불편과 불안을 절호의 찬스로 여기는 게 진정 자유로운 삶일 테고. “불편은 맛이 있다. 어떻게든 해결하게 되는 맛도 괜찮고. 그런데 왜 모두들 이악스럽게 돈 하나만 좇나? 돈에서만 행복이 나오던가? 나이 든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들 공부를 하지 않아서 생긴 폐단이라 본다. 거듭 자신을 씹어 고통스럽게 반추해야 한다. 정체되면 썩을 수밖에 없다. 어떤 화가가 그러더군. ‘내겐 돈 버는 게 예술이다’라고. 야, 별게 다 예술이구나.” 불편과 고독과 고난, 이 모든 고통을 예찬할 일은 아니지만, 고통을 일부러 추구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고통을 경유하지 않고는 좀체 길이 열리지 않는다. 진흙을 딛지 않고 피는 연꽃이 있으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지만, 불편에 쫓긴 작가는 퍼뜩 빛나는 작품을 건져 올리기도 한다. 일상의 불편과 치열하게 맞서는 힘. 그게 신상호의 타고난 근성이자 예술혼의 토대일지도. 후회? 그런 건 하지 않는다 도예 창작이란 왜가리가 유유히 강을 건너는 일과 달라 최후의 기력 한 방울까지 쥐어짜야 가능한 행위다. 정신을 쏟아야 하며, 흙을 움켜쥔 손으로 고강도의 노동을 치러야 한다. 그러자면 강건한 체력이 필수. 의외로 많은 작가가, 체력에 기반을 둔 집요한 깡이 결과를 가른다고 말한다. 신상호 나이 어언 70대. 그러나 그에겐 체력 여부를 초월하는 갈증과 열망이라는 게 있다. “나이 먹어서도 해낼 수 있는 작업을 찾으면 된다. 작업이 나를 늘 들뜨게 하는 것이지. 작업 외에 다른 것엔 관심도 미련도 없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작업실로 들어가 오후 4시까지 일을 한다. 단순한 나날들이 이렇게 흘러간다. 요즘은 친구도 없다. 그게 난 좋다.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니까.” 예술가는 창조의 충동에 사는 사람이라는 점으로 다른 사람과 구분된다. 그들은 상식이나 모럴을 넘나든다. 자의식도 강해 누가 뭐라 하건 귀 기울이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내린 명령에 따를 뿐이다. 그들은 권력에 꼬리치지는 않지만, 세상이 그에게 부여한 명예에 취해 스스로 권력이 되기도 한다. 조지 오웰이 말하길, 예술가의 열정은 순전한 이기심, 즉 명예욕에서 추동된다고 했다. 당신을 추동해온 동기는 무엇이라 보는지. “내게도 그런 게 왜 없겠는가. 평생 자신과의 싸움으로 작품을 해왔지만 강한 명예욕, 그걸 떨치긴 어려웠다. 허욕이고 허영이겠지. 그런 군더더기를 죽기 전엔 다 깎아내고 싶다. 내가 다 옳은 건 아니다.” 별안간 보고 싶어지곤 하는 얼굴이 있다면? “없다. 예전엔 다양한 인간관계가 있었지만 일부러 다 끊었거든. 그런 내게 작가들에게 흔한 무슨 일탈 같은 건 없었다. 염문을 뿌린 적도 없고, 아내와 불편한 관계에 빠진 일도 없다. 연애감정과는 다른 돈독한 정, 아내와의 사이엔 그게 있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알고 보면 당신은 참 품성이 선해! 아내가 그렇게 치켜세우면 나는 설렌다.” 이제 와 생각하자니 크게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후회? 그런 걸 왜 하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 않겠는가. 참혹한 실패의 경험으로 오래 괴로운 적은 있었다. 또 하나 자인할 것은, 나와 주변과의 관계를 객관화해서 느긋이 관조할 만한 거리를 가질 수 있는 교양을 결여한 흠, 그것이다. 난 지금도 싫은 사람과 마주앉기를 질색한다. 당장에 쫓아낼 지경으로.” 추방령을 다반사로 내린다는 일. 그건 아마도 내부에 서린 파시즘이라기보다 홀로 생태계를 이룬 사람의 특유의 수비 방식이겠지. 미술작업이라는 믿을 만한 벙커에 들어앉은 자존감의 표명일 테고. 신상호가 살기등등한 송골매는 아니지만, 창작에 취한 그의 냉정한 열정엔 으스스한 뭔가가 들어 있다.
- 2019-11-11 08:41
-
- 논골담길을 아시나요!
- 대부분의 여행지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혹은 맛있는 음식으로 후각과 미각을 자극해 매혹적인 제안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문화와 각종 체험으로 여행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곳도 있다. 그렇게 대부분의 여행지는 오감의 쾌락으로 여행자를 기쁘게 해준다. 가을이 한창일 즈음 찾아간 곳은 특별한 곳이었다. 일반적인 여행지처럼 감각의 만족만을 주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나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는 도시’였다. 마치 이탈리아의 친퀘테레와 프랑스의 투르빌을 합쳐놓은 것 같았다. 그곳은 한반도에서 해돋이로 유명한 해오름의 도시 ‘동해시’다. 동해시 묵호진동의 ‘묵호등대 담화마을’은 동해가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묵호 등대를 중심으로 묵호항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등대오름길을 따라 올라가 바람의 언덕에 서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이탈리아 북서부 라스페리아 지방에 있는 다섯 개의 해안마을 ‘친퀘테레(Cinque Terre)가 떠올랐다. 해안 절벽의 가파른 지형에 테라스를 갖춘 화려하고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집들의 마을 풍경과 지중해를 따라 마을이 이어진 산책로로 유명한 곳이다. 묵호 등대 담화마을은 오랜 세월의 담에 지나온 시간의 소박한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려 여행자들에게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불러일으켰다. 겹겹이 쌓인 골목의 담벼락들은 저마다의 굵직한 사연을 여행자들과 함께 한다. 한적한 골목에도 자기만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서의 노스탤지어는 잃어버렸던 시간을 다른 모습으로 만나고 느끼면서,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고 곱씹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노스탤지어가 아픔이 아니라 창조적 에너지를 끌어내는 원천이 된다. 화려한 구경거리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이 빚어낸 삶과 추억의 기억들이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1941년 개항된 묵호항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마을에는 4개의 길이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묵호의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골목이 주제인 ’논골 1길‘, 떠난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 찾아올 사람들 모두가 기억하고 희망하는 묵호와 논골담길에 대한 사랑이 주제인 ’논골 2길‘, 묵호의 옛 이야기와 추억이 담겨있는 ’논골 3길‘, 새로운 희망과 바람에 관한 이야기로 지역사람들이 참여한 ’등대오름길‘. 시간의 흔적들이 있는 골목길을 걷다 보니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는 슬픔이 지나간 자리가 생각났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의 정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발아래로 보이는 동해를 바라보니 마치 어두운 배경 속에 밝게 처리된 여인의 나신을 그린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처럼 바다의 한정된 일정 부분만이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찰랑거렸다. 슬쩍 내 옆에 누군가 앉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를 덮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니 과거에 대한 후회가, 또 한 모금을 마시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다. 결국,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는 동안 현재를 위협하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마을 앞 해안을 따라 2km의 거리에는 도시풍 카페와 횟집들이 즐비한 풍경이다. 모네가 끝없이 변하는 바다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배운 프랑스의 투르빌 해변이 떠올랐다. 그곳의 싱싱한 해산물처럼 이곳 역시 동해 어업기지로 갓 잡은 싱싱한 활어를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언젠가 이곳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와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싶어졌다. 한편 동해시에는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존과 일상 공간이면서, 오래된 역사를 지닌 의미 있는 곳으로 “북평 민속시장”도 있다. 전국에 있는 다른 장터와 달리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영동지방 최대의 전통 오일장이다.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에 열리는 장으로 200년 전통의 장터다. 1796년부터 시작된 이 장터에 가면 짙은 향토색과 서민들의 삶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동해시는 이렇게 오래된 흔적들을 고택의 기왓장처럼 가지런히 쌓아놓은 느낌을 주는 도시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사람들과 담과 골목의 이야기들이 넓디넓은 동해 옆에 살포시 앉아있다. 그래서 동해시는 여행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설렘이 지속하는 특별한 곳이다.
- 2019-11-04 15:38
-
- 차근차근, 차의 세계에 다가가기
- ‘차품(茶品)은 인품(人品)’이라 했다. 그만큼 재료도 중요하지만 차를 우려내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맛과 향, 효능이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즉, 같은 차라도 어떤 방법으로 즐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셈이다. 이제 막 차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들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줄 쏠쏠한 정보들을 모아봤다. 감수 한국티협회 STEP 1. 알아두:다[茶] 녹차와 보이차의 원료는 같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 등은 맛과 향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라는 나무의 잎으로 만든다. 흔히 ‘차나무’라고 부르는데, 똑같은 잎이라도 차를 만드는 방식과 산화·발효 정도에 따라 풍미가 다르게 나타난다. 산화를 억제하는 녹차는 폴리페놀, 카테킨을 비롯한 항산화 성분이 가장 많고, 보이차는 후발효 과정에서 유익한 미생물을 포함해 소화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티 카페인’과 ‘커피 카페인’의 차이는? 차에 함유된 카페인을 일컬어 테인(theine)이라 부른다. 말린 찻잎의 무게를 기준으로 따지면 카페인 함량은 커피와 비슷하거나 더 많다. 그러나 차는 본래 지닌 카페인의 60~70%만이 우러난다. 두 카페인은 화학 구조나 성질 면에서 동일하지만, 작용 면에서는 다르다. 차 속에 들어 있는 테아닌(theanine)은 카페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데, 이를 길항작용(拮抗作用)이라 한다. 상반되는 두 성분이 동시에 작용해 그 효과를 서로 상쇄시키는 것이다. 테아닌은 카페인에 의한 중추신경 자극을 약화해 흡수를 서서히 일어나게 하고, 카페인으로 인한 불안, 불쾌감 등의 부작용을 억제해준다. 티젠을 아시나요? 엄밀히 말하면, 차나무 잎과 싹을 달이거나 우린 물을 ‘차(tea)’라 하지만, 통념상 다른 식물의 잎, 가지, 뿌리, 꽃, 열매 등을 가공해 마시는 것을 모두 ‘차’라 일컫는다. 꽃차나 허브차, 한방차 등은 ‘티젠(tisanes)’ 또는 ‘대용차’라 부른다. 티젠은 한 종류만 마시기도 하지만, 성분의 궁합이나 맛을 고려해 여러 종류를 혼합해 ‘블렌딩 티’로도 만든다. ‘마테차’를 제외하곤 카페인이 없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다. ‘티백’은 ‘잎차’보다 맛이 떨어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티백은 ‘편리성’ 면에서는 좋지만 향미 측면에서는 잎차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찻잎을 직접 우려 마시려면 다소 번거로우니 개인 상황에 맞춰 차를 즐기면 된다. 간혹 티백이나 티백 속 찻잎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해다. 과거에 비해 티백 재료도 좋아졌고 가공 기술도 발달해 안심하고 우려 마실 수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잎차와 마찬가지로 물에 너무 오래 담가두면 향미가 떨어진다. 뜨거운 물에 2~3분 정도 우린 뒤 건져냈다가 재탕해 마셔도 괜찮다. 어떤 티백을 고를까? 찻잎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성분이 충분히 우러날 수 있도록 티백 주머니가 넉넉한 것이 좋다. 직사각형보다는 피라미드형 티백이 물이 쉽게 드나들어 찻잎이 더 잘 우러난다. 피라미드형 티백에는 나일론, 실크, 그리고 친환경 소재로 만든 것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고급일수록 그에 걸맞은 좋은 재료를 넣게 된다. 종이 티백에 들어 있는 차는 향이 많이 새어 나오기 때문에 구입 후 바로 마실 것을 권한다. STEP 2. 우리:다[茶] 차, 겉만 보고 사지 마세요! 차는 종류와 품종에 따라 외형, 색, 향 등이 다양하지만 전문가도 건차(乾茶)의 상태만으로는 품질을 판단하기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마셔보고 구입하는 것. 그러나 차는 온도, 습도, 물, 다구, 그리고 우려내는 사람의 손맛 등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직접 마셔보고 샀더라도 집에서 우리면 그 맛이 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연하게 우린 차는 더욱 그 맛과 품질을 구분하기 어려우니, 기왕이면 조금 진하게 우려 달라고 요청해 테스트해본다. 찻잎 우릴 때 어떤 물이 좋을까? 중국 속담에 ‘물은 차의 어머니’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의 향미는 달라진다. 가장 좋은 물은 연수 또는 단물이라 하는 깨끗한 샘물(용천수)이다. 무기질이 다량 함유된 광천수는 차의 향미가 무거워져 적합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돗물도 나쁘지 않지만, 하루 정도 그릇에 받아놨다가 윗물만 사용하는 게 좋다. 또는 시판되는 샘물이나 정수된 물을 쓰면 된다. 단, 물을 너무 오래 끓이거나, 식은 물을 재탕해 사용하면 미네랄, 산소, 이산화탄소량에 변화가 생겨 차가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좋은 차 구매 요령 • 찻잎을 만졌을 때 까칠하고, 가늘게 잘 말라 있으면서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 찻잎은 개봉 후엔 향미가 점점 떨어지니, 소량 포장된 것을 고른다. • 티 케이스에 차를 우리는 시간과 물의 온도가 표시된 것을 구입한다. • 커피나 다른 향신료와 함께 판매하는 곳은 가급적 피하고 차 전문점을 이용한다. • 시음이 가능하고, 직원이 차에 대한 질문에 잘 응대해주는 곳을 찾는다. • 차 산지나 다원, 차 관련 박람회 등을 통해 차를 경험하고 비교 시음해본 뒤 선택한다. 차의 맛을 좌우하는 최적의 온도와 시간 차의 맛은 물의 알맞은 온도에 달려 있다. 가령 녹차에 팔팔 끓는 물을 부으면 신선한 찻잎이 푹 익어버리고, 너무 오래 우리면 맛이 떫어져 불쾌한 쓴맛이 강해진다. 찻잎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향미를 좋게 하는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다음과 같다. 물 온도를 맞춰주는 티포트가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물을 끓인 뒤 뚜껑을 잠시 열어 식힌 뒤 사용한다. 녹차는 5분, 우롱차는 3분, 홍차나 보이차는 2분 정도 온도를 내린 후 우리면 알맞다. 또 찻잎을 살 때 포장지나 설명서 등에 표기된 온도나 시간 등을 참고한 뒤 물과 찻잎의 양을 조절해가며 차의 맛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물과 재료의 분량은 물 200㎖에 재료 1.5~2g이 적당하다. 차를 시원하게 우릴 수는 없을까? • 생수 냉침법: 물 500㎖당 찻잎 3~5g 또는 티백 1~2개 정도의 분량을 넣고, 냉장실에서 8~10시간 동안 천천히 우린다. • 우유 냉침법: 우유에 우릴 때는 진하게 잘 우러나는 찻잎을 선택한다. 뜨거운 물 100㎖에 찻잎 10g 정도를 넣고 3분 정도 우린 뒤, 우유 400㎖를 부어 냉장실에서 하루 정도 냉침한다. 습기, 햇빛, 향기 No! 예민한 차 보관법 말린 차는 빛과 공기, 습기에 취약해 잘못 보관하면 향미 성분이 빨리 날아가 버린다. 또 커피나 향수, 비누 등을 주변에 두면 찻잎이 향을 빨아들여 본연의 맛이 변질된다. 다양한 차를 보관할 때는 향이 강한 차(국화차, 진피차 등)는 따로 구분하는 게 좋고, 조금씩 소분해 밀폐된 용기에 넣어둔다. 고온 다습한 환경을 피해 서늘한 곳에 보관하고, 냉장고 안이나 가스레인지 주변엔 두지 않는다. 꽃차나 허브차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유리병에 넣기도 하는데, 가급적 햇볕이 들지 않는 장소에 보관하고 최대한 빨리 사용한다. STEP 3. 즐기:다[茶] 차와 요리의 마리아주 마리아주(mariage)는 마실 것과 음식의 조합을 뜻한다. 그렇다면 차와 궁합이 좋은 음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차와 곁들이는 음식은 차 맛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향과 맛이 너무 강하거나, 기름지면서 끈끈한 것, 씹을 때 소리가 나고 부스러지는 것은 피한다. 달달하고 기름진 케이크나 쿠키, 타르트 등에 차를 곁들이면 지방을 분해해주고 입안을 깔끔하게 해줘 잘 어울린다. 차와 페어링하면 잘 어울리는 먹거리 • 녹차: 송화 또는 흑임자 다식 • 홍차: 달콤한 쿠키나 케이크, 아이스크림 • 우롱차: 콩가루 다식과 양갱, 연어 • 보이차: 육포나 과일 등으로 만든 정과류와 떡 다구도 차 맛에 영향을 끼칠까? 차 애호가들은 차마다 선호하는 다구를 따로 마련한다. 물론 비싼 고급 다구를 써야 차 맛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구의 재질과 모양 등을 바꿔가며 최선의 향미를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차를 우리는 사람의 손길이 어떠하냐에 따라 차의 품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단, 좋은 차일수록 큰 주전자보다는 작은 티포트로 여러 번 우려 마실 것을 권한다. 차를 큰 주전자에 넣고 우리면 향이 쉽게 날아가 풍미와 품질이 변하기 때문이다. 대개 은은한 차의 향미를 살리고자 할 때는 자기 재질이 적합하고, 꽃차나 허브차처럼 우러나는 색감을 만끽하려면 유리 재질이 알맞다. 또 가향차나 훈연차의 경우는 향이 오래 남아 주전자를 별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편리한 현대식 실속 다구 • 인퓨저(infuser): 모양과 크기가 다양해 취향에 맞는 인퓨저를 골라 쉽게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 주전자, 텀블러, 머그 등에 내장된 제품도 판매한다. • 버튼식 차 여과기: ‘표일배(飄逸盃)’로도 알려진 제품으로, 찻잎을 담는 인퓨저와 티포트, 머그가 일체된 형태다. 인퓨저에 찻잎을 넣고 우리다가 뚜껑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침출된 차와 찻잎이 간단히 분리된다. • 프렌치프레스(french press): 커피를 내리는 도구이지만 차를 우릴 때도 유용하다. 찻잎을 넣고 물을 부은 뒤, 적당히 우러나면 플런저를 내린다. 너무 세게 내리면 찻잎이 짓이겨져 재탕해서 마시기 어려우니 힘을 적당히 줘야 한다. 오감으로 즐기는 차 한 잔 차를 시음할 때는 고요한 분위기에서 집중하며 맛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우러난 찻잎, 색깔, 향, 맛,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 등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나아가 찻물이 끓는 소리, 마른 찻잎의 촉감과 촉촉이 젖어드는 모습, 입술에 닿았을 때의 온도 등 오감을 활용해 차를 즐긴다. 문향(聞香), 차의 향에 귀 기울이기 주로 대만 우롱차 등을 시음할 때 차의 향을 더 깊게 느끼기 위해 ‘문향배’를 준비한다. 향이 오래 머물도록 길쭉한 모양이며, 마시는 찻잔과 별개로 향을 맡는 용도로 사용한다. 문향에는 열후(뜨거울 때 맡는 향), 온후(절반쯤 식었을 때 맡는 향), 냉후(다 식은 후 맡는 향)가 있는데, 열후는 향의 유형과 강약, 온후는 향의 농담과 장단을 구별한다. 냉후는 차향의 순수함과 혼탁함을 살피기 좋다. ‘마시는 때’를 알면 금상첨화 잠들기 전이나 늦은 시간에는 카페인이 함유된 차보다는 라벤더나 캐모마일 등의 허브차가 적합하다. 반대로 아침에 잠을 깰 때나 집중력이 필요할 때는 홍차나 마테차 등 카페인 티가 도움이 된다. 계절과 어울리는 차도 따로 있다. 봄에는 생명의 기운을 오롯이 담은 신선한 우전이나 다르질링 퍼스트 플러시 등이 좋고, 차가운 날씨에는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홍차나 보이차 등이 잘 맞는다. 계절별 궁합이 맞는 차 • 봄 : 우전, 감국차, 캐모마일, 다르질링 퍼스트 플러시 • 여름 : 백차, 오미자차, 황기차, 다르질링 세컨드 플러시 • 가을 : 우롱차, 황차, 재스민차, 다르질링 오텀널 플러시 • 겨울 : 홍차, 보이차, 어성초차, 겨우살이차 *플러시(flush): 언제 찻잎을 수확하느냐에 따라 3~4월은 ‘퍼스트 플러시’, 5~6월은 ‘세컨드 플러시’, 10~11월은 ‘오텀널 플러시’라 부른다. 퍼스트 플러시가 가장 상큼하고, 수확 시기가 늦을수록 맛이 깊어지고 몰트향은 강해진다. [참고 및 발췌] ‘THE TEA BOOK’(시그마북스), ‘구구절절 차 이야기’(이른아침), ‘하오명의 차 이야기’(씨마스), ‘티는 어렵지 않아’(그린쿡), ‘티 아틀라스’(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차 茶 TEA’(시그마북스)
- 2019-11-04 10:50
-
- 언제 가을이 왔을까?
- 언제 가을이 왔을까? 계절이 소리 소문 없이 변하며 찾아왔다. 세월과 함께 서서히 잊혀가던 추억을 찾아 월출산으로 떠났다. 넓디넓은 평야에 불쑥 솟아오른 해발 809m 화강암의 국립공원이 아니라 어느 천국 같은 가을날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경포대 탐방지원 센터에서 시작하는 탐방로를 따라 산을 올랐다. 숲속 산길을 걷기 시작하니 달아나는 시간이나 그 시간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졌다. 진정한 여행자는 풀잎을 보고도 우주를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사물 그 너머의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여행자는 모래알 하나로도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오르는 산길 곳곳에서 나는 작은 우주들을 보았다. 행복했다. 하지만 추억 속 가을의 길은 만나지를 못했다. 산행 내내 가을을 찾았으나 가을을 보지 못했다. 천황봉 구름 덮인 곳까지 눈길로 찾아보았다. ‘너무 이른 가을인가?’ 바람재 삼거리에 도착하니 그곳에 가을의 내음이 있었다. 추억 속 가을의 단편 하나가 튀어나왔다. 삼거리의 무성한 갈대는 바람보다 먼저 누워있었다. 은빛 갈대밭은 잘 익은 성숙한 생명의 벌판이다. 누워있는 갈대는 머리가 무거워 숙인 것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의 길이가 고개를 숙이게 한 것이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돌아 구정봉에 올랐다. 누렇게 변해가는 나주평야와 굽이져 흐르는 영산강 줄기가 한눈에 보였다. 뜨거운 가을 햇살이 벼 이삭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남도 가락의 노랫소리가 실려 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이 욕심을 어찌할까!’ 구정봉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애석불이 있다. 벼랑 아래 큰 바위에 총 길이 8.6m 크기로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이다. 벽면에 새겨진 불상은 눈이 옆으로 길고 끝이 올라가 있어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안 짓는 것 같기도 하다. 벼랑길을 힘들게 내려와 불상과 마주친 순간 그렇게 찾던 가을도, 추억의 가을도 모두 내려놓게 되었다. 알 듯 모를 듯한 불상의 얼굴 표정이 번뇌를 멈추게 했다. 가을날 오후의 햇살이 석불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가을 햇살을 쫓아 석불이 바라보고 있는 쪽을 보니 삼층석탑이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삼층석탑의 투박하고 단순한 선이 온 감각을 깨웠다. 그렇게 찾았던 가을이 그곳에 있었다. 이번 떠남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만나고 싶었다. 이른 가을의 월출산에서 나는 나와 세계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나와 세계를 함께 깨달을 수 있었다. 강진으로의 가을여행은 울림이 있는 여행이 되었다. 또 하나의 기억이 쌓였다. 무엇보다 내 삶이 풍요로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2019-10-29 10:25
-
- 소도시 완주 삼례읍의 문화예술 공간 만나러 가는 길
- 전주를 감싸고 있는 완주군은 전주보다 존재감이 덜할 뿐 매력이 차고 넘친다. 아마도 완주에 안 가본 이는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이는 없을 듯하다. 완주를 음식에 비유하면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곰탕’ 같다고나 할까. ‘어느 날 문득, 무궁화열차를 타고 완주 삼례에 다녀오리라’ 했던 결심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걷기 코스 삼례역▶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책마을▶ 수도산근린공원▶ 비비정▶ 비비정예술열차▶ 호산서원▶ 비비낙안▶ 삼례역 느린 무궁화열차 타고 삼례 여행 완주 삼례에는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책마을, 비비정, 비비정예술열차, 카페비비낙안 등의 명소가 모여 있다. 모두 삼례역에서 도보 5~10분 거리에 있어 걸으며 둘러보기에 좋다.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하는 삼례역은 서울 영등포역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긴 이동시간이 지루해지면 4호차에 들른다. 무궁화열차 4호차는 자유석 객차이며 창밖을 볼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이 좌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 풍경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글을 쓰며 기차에 머무는 시간을 즐긴다. 연산역, 계룡역, 부황역, 개태사역 같은 낯선 간이역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삼례역에 도착한다. 1920년대 양곡 창고의 대변신,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역을 빠져나와 3분 정도 걸으니 삼례문화예술촌 입구가 나온다. 맹꽁이 조형물의 환영 인사를 받고 입장한다. 옛날 이 지역은 습지여서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삼례 농민들에게 수탈한 쌀을 보관하기 위해 대규모 양곡 창고들을 지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창고들을 개조해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한 곳이 바로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이로써 삼례에도 옛 건물을 공간 재생한 뉴트로 콘셉트 명소가 탄생했다. 삼례문화예술촌 안에는 어울마당을 중심으로 모모미술관, 문화카페 뜨레, 책공방, 커뮤니티 뭉치, 김상림목공소, 디지털아트관, 소극장 시어터애니 등이 자리해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에 들어서면 모모미술관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녹슨 건물 외벽에 흰 페인트로 쓴 ‘삼례농협창고’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출입구 옆에는 로봇 태권브이 조형물이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다. 모모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교육아카데미, 미술 체험 등을 진행한다. 모모미술관 뒤에 있는 문화카페 뜨레는 차를 마시며 음악 공연과 미술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천장이 높고 실내가 시원하게 트여 있어 갤러리 같은 느낌을 준다. 뜨레 옆에는 책공방이 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인쇄 기계들과 책 만드는 옛 공구들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팝업북, 앨범북, 가죽다이어리 만들기 등의 체험을 진행한다. 건물 앞에 목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곳은 김상림목공소다. 목공소 안에 들어서자마자 청량한 소나무 향이 풍겨온다. 전통 목가구 전시장과 목수들의 작업실 공간으로 나뉜다. 작업실 벽에 전시된 옛 목수들의 손때 묻은 연장이 눈길을 끈다. 김상림목공소에서는 김상림목수학교와 나무 브로치, 나무 목걸이, 나무 촛대 등의 소품 만들기 체험을 진행한다. 이밖에 VR기기를 통해 미술 작품을 입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아트관과 국악·마술 공연 또는 영화 상영을 하는 시어터애니가 있다. 삼례책마을에서 즐기는 독서삼매경 삼례문화예술촌 앞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삼례책마을에 닿는다. 잔디밭에 창고형 건물 세 동이 ‘ㄷ’ 자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곳 건물도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 사이에 지어진 양곡 창고를 공간 재생한 것이다. 삼례책마을의 중심 건물은 고서점, 헌책방, 북카페로 이루어진 북하우스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지었고, 내부는 목조로 마감했다. 이곳에서 10만 권에 달하는 헌책과 고서를 만날 수 있다. 북하우스에 입장하면 옛 창고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천장에 시선이 먼저 간다. 천장 분위기와 어울리게 헌책방 서가도 아날로그 감성으로 꾸몄다. 곳곳에 있는 벤치는 관람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2층 서가에는 1인 책상을 짜 넣은 코너가 있어 학창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2층에서 고서점인 호산방이 한눈에 보이는데 서가의 높이가 아찔하다. 한국, 중국, 일본, 서양 고서까지 취급한다고 하니 그럴 만하다. 헌책을 사면 1층 북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실 수 있다. 북하우스 옆에는 전시장, 공연장, 강연실, 자료실, 무인 헌책방 등으로 사용하는 건물 두 동이 있다. 기러기도 쉬어가는 경치 좋은 비비정마을 삼례책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삼례역 방면으로 가다 보면 문화생태탐방로 이정표를 만난다. 비비정 방향으로 걷는다. 삼례역사 왼쪽 담장을 따라가는 길로, 붉은 바닥에 자전거 표시가 되어 있다. 통행하는 이가 적어 자전거를 피해 걸어 다닐 일은 없겠다. 낯선 길에서 불안하던 참에 자전거를 탄 아이가 지나간다. 아이에게 비비정 가는 길을 물으니 모른다 한다. 다시 제 갈 길을 가던 아이가 잠시 뒤 자전거를 멈춘다. “가르쳐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가본 적이 없어서요”라고 외친다. 삼례가 더 좋아진다. 삼례역 상공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지나면 수도산근린공원이 나온다. 누군가 부르는 7080 대중가요를 엿들으며 구릉 같은 공원을 넘는다. 공원을 벗어나 오른쪽 찻길로 내려가다 보면 후정리 남쪽 언덕에 세워진 비비정을 만난다. 비비정은 조선시대 선조 때 정자인데 소실되어 1998년에 복원했다. 한자로는 ‘飛飛亭’이라 쓴다. ‘날아가던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 선비들이 비비정에 올라 한내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긴 것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고 했다. 비비정 아래로는 한내라 부르는 삼례천이 흐르고 주변에 넓디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다. 하얀 백사장에 기러기 떼가 내려앉은 옛 풍경은 사라지고, 갈대와 풀이 무성한 강변에 낚시꾼들만 보인다. 비비정에 오르면 한내를 가로지르는 옛 만경강 철교가 한눈에 보인다. 일본이 호남평야의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세운 다리다. 2011년 근처에 호남선 철교를 새로 놓아 폐철교가 되었다. 폐철교 위에 놓은 비비정예술열차가 명물이다. 새마을열차 객차 네 량을 개조해 각각 레스토랑, 카페, 수공예품 가게,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맨 마지막 칸의 카페는 일몰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늘 붐빈다. 비비정예술열차 카페에서 호남선 철교를 건너 삼례역을 오가는 열차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비비정에서 언덕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비비정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카페비비낙안에 도착한다. 사방이 탁 트여 가슴이 벅차다. 삼례에서 이처럼 트렌디한 카페를 만나게 될 줄이야. 카페 뜰의 옛 물탱크를 활용한 전망대에 오르자 마을 전경과 만경강, 호남평야가 와락 달려와 안긴다. 주변 명소 & 맛집 새참수레 새참수레는 완주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한식뷔페 레스토랑이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완주 지역의 식자재를 이용해 슬로푸드를 만든다.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으면서도 음식을 맛깔나게 요리해 단골이 많다. 메뉴는 쌈채소, 샐러드, 꽃김밥, 한방수육, 두부까스, 잡채, 제철 나물 등 20여 가지나 된다. 삼례문화예술촌 앞에 있다. (봉동읍 봉동동서로 11) 호산서원 비비정 아래에 아담한 호산서원이 있다. 조선시대 순조 때 송시열, 정몽주, 김수향, 정숙주, 김동준을 추모하기 위해 송시열이 거주했던 비비정 옆에 서원을 세우고 위패를 모셨다. 누가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 헐렸다가 1958년 다시 세워졌다. 현재 홍살문, 강당, 외삼문, 사당 등이 남아 있다. (삼례읍 후정리 137) 삼례성당 삼례문화예술촌과 이웃한 삼례성당은 2016년에 개봉한 독립영화 ‘삼례’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1951년 한국전쟁 중에 본당이 창설되었고, 전쟁 직후인 1954년에 착공해 이듬해 8월에 준공했다. 붉은 벽돌 건물로 정면 중앙에 종탑이 우뚝 솟아 있고, 좌우에 8각 첨탑이 설치돼 있다. 종탑 아래 주 출입구와 보조 출입구를 아치형으로 만들어 장식미를 더했다. (삼례읍 삼례역로 65) 여행 정보 걷기 Tip • 삼례 여행 전에 전북투어패스를 구매해두면 알뜰하게 여행할 수 있다. 삼례문화예술촌 안내소에서 전북투어 패스를 제시하고 무료 관람권을 받으면 된다. 삼례문화예술촌 내 모든 시설을 할인받아 관람할 수 있다. 비비정예술열차도 할인 혜택이 적용된다. 전북투어 패스 홈페이지나 네이버 예약에서 모바일 패스를 구매할 수 있다. • 삼례문화예술촌은 장애인, 어르신, 영유아 동반 가족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시설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장, 촉지 안내판, 장애인 화장실 등을 갖췄으며 휠체어 이동 동선을 안내한 브로슈어를 제공한다. 안내소에서 휠체어와 유모차도 대여해준다. 삼례책마을 북하우스는 시각장애인 겸용 도서관을 운영한다.
- 2019-10-22 13:39
-
- “어르신과 요양보호사 인권은 함께 지켜져야 합니다”
- 인터뷰 섭외는 쉽지 않았다. 기사가 나가면 문의 전화가 너무 많이 와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아직 부족한 점이 있어 노력 중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아무래도 민낯이 불편한 기색이었다.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는 만 11년째. 현재 요양시설은 5300여 곳이나 되고 약 16만 명의 고령자가 입소해 있다. 하지만 요양원에 대한 불신은 여전해 보인다. 이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5회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은 안산시립노인전문요양원 이성혁(李成赫·52) 원장이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2027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치매 환자도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장기요양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2008년. 그 사이 요양시설은 3배 이상 늘어났지만 관리·감독은 제대로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심지어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리는 등 시설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 돌볼 상황이 안 돼 불가피하게 요양시설에 가족 또는 노부모를 맡겨야 하는 보호자들은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다. 그나마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시설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요양원을 찾아 문을 두드려보지만 입소가 쉽지 않다. 괜찮은 곳은 전체 시설의 10여 %밖에 안 돼 2~3년간은 대기자로 기다려야 한다. 요양시설 서비스의 질은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가까운 미래의 우리들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몇십 년 뒤에도 노인 돌봄 환경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안산시립노인전문요양원 이성혁 원장은 무엇보다 성숙한 요양원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도 개선을 통한 효율화도 중요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위한 재정 확보도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르신 돌봄 서비스 질은 현장에서 일하는 요양사 선생님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분들에 대한 처우가 아직 열악해요. 과도한 격무는 물론 더러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등 인권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요. 제도적 지원이 부족할 때는 마음이라도 먼저 열어야 합니다. 상대로부터 존중받는 느낌이 들면 일이 아무리 고되어도 힘이 생깁니다. 옛날에는 가난했어도 아름답고 훈훈한 일이 많았잖아요. 서로를 존중하며 지냈기 때문이라고 봐요. 요양원은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닙니다. 요양보호사는 보호자의 마음을, 보호자는 요양보호사의 업무 스트레스를 헤아려줘야 합니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르신들을 오래 돌볼 수 없습니다. 금세 지쳐요.” 요양보호사의 인권도 중요하다 올해 개원 14주년을 맞이한 안산시립노인전문요양원은 2005년 사할린영주귀국동포들이 입소하면서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는 현재 81명의 고령자가 입소해 있고 34명의 요양보호사들이 상주해 있다. 이성혁 원장은 늘 출근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나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입소자들을 만나러 간다. 손도 잡고 눈도 마주치며 시시콜콜한 대화도 나눈다. 올해 초 제4대 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사회복지시설에서 20여 년간 활동하며 역량을 쌓아온 복지 전문가다. 3년마다 이루어지는 정기 평가에서 5회 연속 최고 등급을 받은 비결을 묻자 “규정을 잘 지키려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요양사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큰 도움이 됐다”며 모든 공을 요양보호사들에게 돌렸다. 이 원장은 인터뷰 내내 요양보호사들의 자존감에 대해 거듭 이야기하며 입장을 대변했다. “어르신 돌봄 과정에서 요양보호사가 모든 짐을 질 수는 없습니다. 우선은 그분들의 자존감이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야 돌봄 서비스도 좋아질 것입니다.” 사실 현행 제도를 수정해야 할 만큼 요양보호사의 근무 환경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한 명이 입소자 2.5명을 돌봐야 하지만 주간과 야간 교대근무를 배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규정 때문에 실제로는 한 명이 8~9명의 노인을 보살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식사 수발과 기저귀 케어 등으로 한바탕 전쟁이 벌어질 때는 뛰어다녀도 시간이 부족해 패닉에 빠지곤 한다. 과중한 업무에 허리를 자주 다쳐 복대와 손목대 착용은 기본이고 진통제를 먹으며 일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속속들이 아는 보호자는 없다. 이 원장은 대부분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생활하는 시설이지만 요양원에서도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이 오가고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며, 제일선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보호자의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분이 나쁘면 고함을 지르며 이년 저년 심한 욕을 하는 어르신도 있습니다. 인지 능력이 떨어져 그러시겠지 이해가 돼도 당장은 속상하고 기분도 안 좋겠죠. 요양보호사가 천사는 아닙니다. 간혹 육체노동보다 감정노동이 더 힘들다고 눈물을 보이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텃밭을 좋아하는 어르신에게 채소라도 다듬어보게 손에 쥐어드렸다가 ‘우리 엄마에게 왜 일을 시키냐’고 화를 내는 보호자 때문에 당황한 적도 있습니다. 저희도 더 세밀히 살피고 노력해야겠지만 보호자들도 믿고 어르신을 맡겨주시면 좋겠어요. ‘요양원은 믿을 수 없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보면 신뢰 형성이 안 됩니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요양시설에서 보내는 고령자가 많아질 것이다. 이 원장은 10년 가까이 생활하고 있는 입소자들 중에는 요양보호사를 마치 딸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요양원에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면서 안부 여쭙고 이야기 들어주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사랑하는 가족도 매일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한 어르신은 자신이 좋아하는 요양사 선생님만 들어오면 좋아서 씩 웃으신대요. 잘해드려도 맘에 안 드는 요양사 선생님을 보면 눈 감고 모르는 척하시고요.(웃음)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 아닐까요. 비록 거동은 불편하시지만 마음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요양사 선생님들도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자신이 진짜 딸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대요. 절대로 인위적으로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진실, 이제는 드러내놔야 그러나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보호자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마음고생도 만만치 않다. 가족을 요양원에 맡긴 뒤 속앓이가 더 깊어진 사람도 있다. 세상이 변해 인식이 바뀌고 있다지만 부모를 직접 모시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불효자의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면회 갈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눈물 글썽글썽한 그 외침을 애써 외면한 채 견뎌야 하는 현실도 참혹하다.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면 다른 시설은 좀 나을까 싶어 옮겨 다니다가 몸과 마음이 다 지쳐버리기도 한다. 약물 오남용, 낙상 등으로 인한 사고도 많지만 속 시원한 해명은 들을 수 없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는 형편. 자칫 부모님이 불이익이라도 받을까봐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부모님 모시는 일로 한 번쯤 고민해본 사람들은 감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이성혁 원장은 가족을 요양원에 보내는 입장도, 입소자를 받아들이는 입장도 초창기에는 예민해지기 마련이라서 알게 모르게 주고받는 상처가 많다고 말한다. “요양원에 부모를 모시고 오는 보호자들은 죄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요구 사항이 많습니다. 잘 모셔줄까 불안해하고 작은 일에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저희 요양원에서는 그러한 오해와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정기적으로 운영위원회를 열고 있습니다. 회의 과정이 오픈돼 있어 보호자들도 참석할 수 있지요. 다행히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을 조금씩 열기도 합니다. 대화할 때 상식이 통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판단 기준이 다를 때는 무척 힘이 듭니다. 예를 들면 의사가 처방한 약물 복용에 대해 설명을 할 때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책임은 요양원이 져야 한다고 말하는 보호자들이 있어요. 어르신을 위해 고심해서 내린 처방인데 다짜고짜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보호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요.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상처들도 아뭅니다.” 이 원장은 노인 학대 문제에 대해서도 시설에서 폭력을 행사하면 요즘은 바로 폐쇄 조치에 들어가는 분위기라면서 특히 국공립 시설은 인권보호 기준이 더 엄격하다고 했다. “저희는 침대에 누워 말씀 한마디 못하시는 어르신의 존엄도 잊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든 인격이 침해당하는 일은 없어져야 해요.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국공립 요양시설은 전체의 1%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다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죠. 민간시설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도 있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안 좋은 사례들을 대할 때는 오랫동안 복지 관련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앞으로 관리 감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문화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몸이 불편해져도, 요양시설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을 선뜻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마주해야 할 풍경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장기요양보험 기금이 급격히 고갈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대로 가다간 고령자 삶의 마지막이 극한 체험 속에서 끝날 수도 있다.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적극 기대할 수밖에 없다.
- 2019-10-07 09:47
-
- 가끔은 피곤을 친구로 삼아도 괜찮다!
- 우리의 삶에는 없었으면 하는데 꼭 함께하는, 피할 수 없는 동반자가 있다. 바로 각종 질병, 정신적인 외상, 스트레스, 사고 등 떼려야 뗄 수 없는 질환들이다. 그런데 이 중에는 질병도 아니고 질병의 징후도 아닌 일종의 하소연에 가까운 같은 증상이 있다. 바로 피곤(fatigue)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심지어 이 원고를 쓰고 있는 필자, 또 이 책과 글이 제대로 완성되도록 노력하는 구성원들 모두가 종종 피곤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15년 전 필자는 한국인의 피곤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의사를 찾는 환자의 15% 정도가 ‘피곤’이 주요 증상이었다. 미국 등 다른 여러 나라의 통계를 봐도 의사를 찾는 환자 5명 중 1명 이상은 ‘피곤함’을 호소했다. ‘피곤’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성별, 학력, 직업, 인종에 따라 “기운이 없어요, 고단해요, 힘이 쭉 빠져요, 모든 게 귀찮아요,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어요, 되게 우울하네요, 계속 자고 싶어요, 비몽사몽간에 하루를 지내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아요” 등등 그 표현 방법과 신체 언어가 매우 다양하다. 의사 입장에서, 피곤은 진료가 필요한 하나의 질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신체적, 정신적, 약품에 의한 피로로 나누어 살핀다. 그러나 잠시 숙면을 하고, 운동 조금 하고, 잘 먹고, 잘 쉬면 사라지는 피곤은 의학적 관심 대상이 아니다.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일상의 고달픔에서 비롯되는 피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는 의학적 의미의 ‘피곤’에서 제외된다. 잘못된 생활 방식이 원인이 되는 피곤 피로 원인은 의외로 일상생활의 습관에서 찾아지는 경우가 많다. 첫째 술, 담배, 습관성 마약을 하는 경우. 둘째 과하게 운동을 하는 경우. 셋째 운동을 거의 안 하는 경우. 넷째 수면이 부족한 경우. 다섯째 불량식품을 섭취할 경우. 여섯째 항히스타민제, 기침약 등을 자주 복용할 경우. 일곱째 의학적 증거가 없는 각종 건강식품, 건강비법(목욕법) 등을 맹신할 경우이다. 전반적 피곤이 되는 질병 나이 들어서 오는 피로의 원인 중에는 신체의 혈액순환이 안 되는 단순한 원인부터 난치병, 불치병, 암, 유전병 등 다양한 질환들이 있다. 그 종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급성간기능상실, 빈혈, 불안, 암, 만성피로증후군, 만성전염병 및 염증, 만성신장질환, 뇌진탕, 만성폐쇄성폐질환, 우울증, 당뇨, 폐기종, 섬유근육통, 슬픔, 심장병, 갑상선기능항진증, 갑상선기능저하증, 염증성장질환, 다발성경화증, 비만, 만성통증, 수면무호흡증, 스트레스, 뇌 외상 등. 필자가 질병의 종류를 기술한 것은 피곤을 증상으로 하는 각종 질병이 산재해 있고, 우리 몸 전체 기관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위의 24개 질환들에서 이어지는 피로 증세를 제외하고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14가지 피로 증세를 소개한다. 피곤한 원인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누어 살펴보지만 이 둘은 ‘바늘과 실’의 관계라고 보면 된다. 정신적인 원인이 신체적 질병을 만들고, 신체적인 원인이 정신적 질병을 만든다. 신체적 피곤으로 이어지는 질병 ① 불면증 : 불면증은 그 원인이 다양해서 피곤함을 심하게 느끼면 신체적 질병을 초래한다. 반대로 신체적 질병이 잠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일단 수면 환경(조명, 온도, 이불, 베개, TV, 전화 등)을 숙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래도 잠이 안 오면 진료를 받는다. ② 수면무호흡증 : 일시적으로 수면 중 호흡을 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환자 자신은 모른다. 주로 비만자, 흡연과 음주를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서 증세가 나타난다. 또 드물기는 하지만 유전적 불치병인 피크위크증후군(Pickwickian syndrome)도 여기에 해당한다. ③ 불충분한 영양공급 : 식사를 안 하거나, 영양이 부족하거나, 불균형적인 식사를 할 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저혈당일 경우 피곤하고, 식은땀도 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과하게 다이어트를 할 경우 나타나는 상황이다. ④ 빈혈 : 빈혈의 원인도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이 철분 부족으로 오는 빈혈이다. 특히 젊은 여성일 경우 생리, 다이어트, 골고루 먹지 않는 식습관 등이 이 질환을 일으킨다. 시니어는 노화로 젊을 때처럼 많이 먹지 못하는데 소식다채(양은 적게 채소는 많이)라는 잘못된 건강상식을 장수의 비결인 양 잘못 알고 있어 빈혈을 일으키키도 한다. ⑤ 다리 움직임증 : 주로 밤에 잠을 잘 때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이거나, 다리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거나, 심한 통증이 발생할 경우 자동적으로 다리를 떠는 질환이다. ⑥ 갑상선기능저하증 : 갑상선은 신체의 목 앞쪽에 있는 방패 모양의 호르몬 생성기관이다.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이 부위의 기능이 저하되면(항진증도 포함) 피곤함 등의 증상을 보인다. 진단은 피검사로 간단히 할 수 있다. ⑦ 카페인 중독 : 하루에 마시는 커피 양은 4잔 정도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물론 개인 차이는 있다. 카페인은 정신을 깨우고 에너지 공급도 한다. 그러나 과하게 마시면 몸이 떨리고, 심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고, 불안함을 야기하고,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카페인 양을 줄일 때는 서서히 줄여야 금단증상을 이겨낼 수 있다. ⑧ 숨어 있는 방광염 : 나이 든 여성들 중 상당수가 소변을 자주 보고, 소변을 볼 때 통증을 포함한 불편함 등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별것 아닌 상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숨어 있는 방광염 환자들이 자주 겪는 일이다. 증세가 악화하면 수면 방해를 받을 수 있다. 방광염은 소변검사로도 쉽게 진단할 수 있고 항생제 복용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⑨ 당뇨병 : 당뇨병의 첫 증상은 ‘피로’다. 목이 심하게 마르고, 소변 양도 많아지고, 식사 양도 늘고, 체중이 감소하는 듯하면 당뇨병일 가능성이 크다, 혈액검사로 쉽게 진단이 되고 치료법도 다양하다. 첨언하면, 당뇨병뿐 아니라, 저혈당증도 ‘피곤’이 주 증상이다. ⑩ 다발성 경화증 : 신경을 감싸고 있는 보호 껍질이 자가면역 문제로 공격당해, 뇌와 신체가 연결되지 않고 신경이 파손되는 질환이다. 다리가 저리고 쇠약해져 걷기 힘들고, 목을 구부릴 때 전기에 쏘인 듯한 느낌이 든다. 떨림증, 시력과 대소변 기능에도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다. ⑪ 심장병 : 심장이 비대해지면서 펌프질이 제대로 안 되는 심울혈증, 부정맥, 관상동맥 질환 등도 ‘피곤’이 첫 증상이거나 동반한다. 최근에는 쉽게 진단, 치료된다. ⑫ 음식 알레르기 :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해도 경험을 통해 피부발진, 호흡곤란, 두통, 피곤 등이 나타나는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알레르기 음식을 피하는 것이 치료 방법이다. ⑬ 약품 중독 : 주로 정신과적 질환인 우울, 불안 증세에 쓰는 약물, 피부질환, 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제, 항고혈압제 등이다. ⑭ 기타 : 암, 류머티즘 질환, 비만, 암 화학치료 요법, 방사능 치료 등이 피곤을 동반할 수 있다. ‘피곤’은 누구나 겪는다. 생활 방식의 변화 등으로 간단히 회복되는 경우 문제가 되지 않으나 다만, 다음과 같은 증상이 있을 때는 의사의 진료를 꼭 받기를 권한다. 첫째 피곤이 갑자기 올 때. 둘째 간단한 생활 방식의 변화로 피곤이 풀리지 않을 때, 셋째 피곤이 점점 심해지고, 만성이 될 때, 넷째 다른 증상이나 증세를 동반할 때, 다섯째 기절하거나 거의 기절할 것 같은 상황일 때 등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세상에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더러는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피곤을 친구로 삼아라! 과민함이 스트레스가 되어 오히려 피로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위의 5가지 피곤함은 반드시 원인이 있으니 의사의 진료가 필수다. 피로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시중에 범람하는 피로해소제를 무턱대고 복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최고의 건강회복제는 잘 먹고, 잘 걷고, 잘 즐기는 것임을 잊지 말자.
- 2019-09-03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