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는 충청남도 부여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묻힌 시인 신동엽을 만나기 위해서다. 서울남부터미널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여행의 설렘을 더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단풍잎은 가을을 보내기 싫다는 듯 나뭇가지 끝에 겨우 매달려 몸을 흔든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호젓한 부여에 도착했다.
부여시외터미널에서 신동엽문학관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다. 5분
'꿈꾸는 시인' 나태주는 백편의 시를 쓰는 것보다 한편의 시가 백사람에게 알려져야 좋다고 하였다. 이분은 특이하게도 젊은 날 좋아하는 여성에게 차인 얘기를 이력에 써 넣는다고 하였다. 완전 자존감 쩌는 남자였다. 자못 흥미로웠다. 그 아픔으로 그는 엎어져서 울었다고 하였다.
'문학은 고통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다'
그 실연의 고통이 그를 시인으로 탄생시켰다
"신이 내린 목소리"
지휘하는 모습 자체가 예술인, 그러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를 이렇게 극찬하였다. 지난주 목요일 밤 9시 50분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특집'이 방송에서 나오고 있었다. 화려한 콜로라투라 성악가인 그녀는 성공한 예술가이자 훌륭한 인품의 사람이었다.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김윤환 선생님의 오페라
배우 남경읍(59)의 경력을 보니 그가 처음 뮤지컬을 한 것은 이라는 작품으로,
어언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야말로 한국 뮤지컬 1세대라고 불리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후로도 그는 꾸준히 뮤지컬 활동을 하며 척박했던 뮤지컬 장르를 지금의 보편적 문화계로 올려놓는 데 기여했다. 또한 수많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에서의 활약으로 정통 연기자
1976년 여름밤, 진하해수욕장에서의 남녀 신입사원들을 위한 캠프파이어는 현란했다. 어둠 속에서 익명성이 확보된 100여 명의 격렬한 댄스파티는 젊음의 발산 그 자체였다. 그중 열정적이고 현란하게 춤을 추어대는 한 여직원의 실루엣이 너무 멋있어 끝까지 따라가서 얼굴을 확인해보니 순박하고 어려 보이기까지 했다. 익명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세상 다양한 무용 중 가장 범접하기 어려운 장르가 발레 아닐까? 단단하게 몸의 중심을 잡고 팔과 다리를 뻗는 화려한 동작들. 이미 굳어버린 내 몸은 허락하지 않을 듯싶다. 발레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면서 관심이 가지만 유독 전문가에게만 허락된 듯한 느낌은 떨칠 수 없다. 이에 과감하게 발레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시민들을 만나봤다. 올해로
지난 10월 9일에는 1979년 담임을 한 제자들을 37년 만에 만났다. 당시 고 3 야간반 학생들이었다. 제자들은 공부를 하고자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 많아서 자취를 하며 주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었다.
간절히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내가 처음으로 담임한 제자들이었다. 내 온 열정과 첫정을 듬뿍 주어서 가르친 제자들이기에 그 의미가 이만저만
‘Bossy’는 우두머리나 지도자를 뜻하는‘ Boss’의 형용사이다. 사전에 보면 ‘1.(구어) 두목 노릇하는 2.거드럭거리는 3.거만한’으로 되어 있다.
나쁜 뜻으로 보면 안 좋은 면이 있지만,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데 남들은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목소리를 내리 깔고 웃지도 않으며 제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다.
시니어들은 나름대로 얼마
미주 한인 사회에서 지식인의 멘토로 불렸던 노부부가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서 35년간 교수로 근무했던 故 김익창 박사와,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 25년간 교사로 일했던 그레이스 김(한국명 전경자·86)씨다.
부부는 평생 소외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힘썼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53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최고의
필자는 3년 전에 은퇴를 했다.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심하게 된 것은 은퇴 준비 없이 살아가는 노인들의 비극적인 삶이 매스컴을 통해 보게 되면서부터다.
필자도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 43년 만에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깨알 같은 시간들을 뒤로 한 채 텅 빈 세상 속으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