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승재란 공자가 말한, ‘德勝才(덕승재) 謂之君子(위지군자), 才勝德(재승덕) 謂之小人(위지소인)’에 나오는 말이다. 즉 재주보다 덕이 높은 사람은 군자요, 재주에 덕이 못 미치는 사람은 소인이라는 의미다.
상암에 있는 맛집인 '덕승재'에서 근사한 한정식을 만났다. 비취색의 아름답고 기품 있는 그릇에 야채샐러드, 탕평채, 가자미구이, 매생이죽, 훈제 오리 등이 나왔고 후식으로는 잣이 동동 뜬 매실차가 나왔다. 밥그릇과 수저는 동으로 만든 제품을 쓰고 있었다. 플라스틱 그릇을 엄청 싫어하는 필자는 큰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훌륭한 맛집이었다.
영등포 비콤 회원과 더불어 담소를 나누며 가진 식사였는데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힐링을 시켜준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끔은 그동안 사느라고 수고한 자신에게 선물을 한다는 생각으로 분위기 있는 맛집에서 밥과 분위기를 함께 먹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의 대장인 박계선 이장님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더 커 보였다. 한 해의 비콤 모임을 마감하는 오늘만큼은 이장님이 꼭 함께해주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정은 시조 시인 차도연 선생님이 기획해주셨다.
"좋은 곳만 골라 안내해주신 차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독특한 구조의 '북 바이 북'이라는 서점은 상암에 있다. 카페와 함께 운영되어 책을 구입하는 고객에게는 한 잔의 차가 서비스로 제공된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서점의 구조는 여 사장님의 감성이 묻어나 있는 듯했다. 작은 공간에 고객카드와 책들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오밀조밀하니 예뻤다. 고객들이 손글씨로 적은 카드에는 그 책과의 만남에 얽힌 사연이 적혀 있었다. ‘북 바이 북’은 저자와 독자들이 수시로 만남을 갖는 공간인 듯싶었다. 일정표에는 저자와의 만남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필자가 평택여고에서 재직할 때 청명한 가을날이면 창밖을 내다보며 제자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이렇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면 귀여운 병아리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해야 해요."
그러곤 필자와 제자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평생 가꿔야 하는 것은 마음밭이다. 워드프로세서 수업을 할 때는 박목월 시인이나 서정주 시인의 시로 수업을 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18세, 여고 2학년 제자들의 마음밭을 곱게 가꿔주고 싶어서였다. 바로 그 시를, 재직할 때 제자들 앞에서 몇십 번을 낭송했던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을 오늘 '북 바이 북' 카페에서 영등포 비콤 벗님들을 위해 낭송했다. 필자의 낭송이 잠자고 있던 벗님들의 감성을 제대로 깨웠나보다. 몇몇 분들은 눈물이 났다고 했다.
'공대생이 반한 정재찬 교수의 오감만족 시 강의'라는 책을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평생 시와 음악을 좋아하며 살아온 필자의 흥미를 끌 만한 책이었지만 끝까지 볼 자신이 없어 끝내는 놓고 왔다. 그리고 금세 후회하고 있다. 몇 페이지를 보더라도 샀어야 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