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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찍을 때의 포즈
- 위안부 할머니 장례식장에 간 국회의원들이 인증 샷을 찍을 때 ‘엄지 척’ 포즈를 취했다가 거센 비난을 들었다. ‘엄지 척’은 사진 찍을 때 엄지를 치켜들며 찍는 것을 말한다. “호상이라 그랬다”, “좋은 세상 가라고 그랬다” 등 변명이 더 궁색했다. 위안부 할머니의 험난한 일생을 돌이켜볼 때 ‘호상’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호상이라 해도 장례식장에서 웃는 모습으로 ‘엄지 척’까지 한 것은 지나쳤다. 단순한 인물 사진, 단체 사진 등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다양한 포즈를 취한다.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선동해서 통일된 포즈를 취하게도 한다. 웃는 모습을 하라며 “치즈~”, “김치~”를 권하기도 한다. 그 정도는 애교다.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라고 주문하기도 하고 검지와 중지를 세워 빅토리(Victory)를 뜻하는 ‘V' 자를 만들라고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포즈는 사랑을 의미하는 하트 모양이다. ‘엄지 척’은 ‘최고’라는 뜻이다. 그것은 비교와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손가락 중지와 검지로 만드는 ‘V'자가 의미하는 ‘빅토리’도 비슷하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시니어들이 이런 포즈를 취하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그 경쟁에서 탈락시켜야 한다. 시니어들은 양보의 미덕이 돋보여야 한다. ‘파이팅’도 그렇다. 군대도 아니고 스포츠 팀도 아닌데 파이팅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는 지나치거나 무리한 일을 하면 병난다. 과유불급이다. 시니어의 세계에서는 남을 이기겠다는 의지보다는 화합하고 어울리는 모습이 더 바람직하다. 두 팔로 만드는 하트 모양은 그래도 귀엽기는 하다. 그러나 엄지와 검지로 만드는 하트 모양은 비슷한 모양의 비속한 손가락 욕처럼 보여 민망하다. 아이들도 아니고 어른이라서 채신머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개성 있게 보이는 것은 점프해 공중에 떠 있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은 대부분 스냅 사진에 담긴다. 스냅 사진은 자연스러운 표정이나 일상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찍는 사진을 말한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그러면 좋겠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마치 임시정부 수립 때 비장한 각오로 사진을 찍던 사람들처럼 포즈를 취할 필요는 없다. 무슨 중요 서류에 들어갈 자료도 아니고 당시 누가 참석했는지 기억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그러므로 누가 앞자리 중앙에 앉고 뒤에 서고를 놓고 신경전을 벌일 필요도 없다.
- 2017-07-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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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리 헵번의 숨겨진 이야기
- 오드리 헵번의 영화나 사진을 보면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맑은 눈과 예쁜 미소를 지닐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만인의 연인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그녀가 주연을 맡은 몇 편의 영화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표작 에서는 멋진 파티 걸로, 싸구려 패스트푸드로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유명한 보석가게 티파니의 쇼윈도를 구경하는 가난한 아가씨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연기해 잊지 못하는 장면으로 남게 해주었으며, 비상계단의 창가에 앉아 기타를 치며 ‘문 리버’ 라는 노래를 정말 달콤하게 불러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에서는 작은 나라 공주님으로 여러 나라를 순방하던 중 공식적인 행사에 지쳐 잠시 뛰쳐나와 일반인처럼 로마의 이곳저곳을 경험하는 아름다운 아가씨 역을 연기했다. 경호원을 따돌리려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짧게 자르는 장면은 너무나 귀여웠다. 그 당시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고 한다. 정말 상큼하고 예쁜 모습이었다. 이외에도 많은 영화를 통해 즐거움과 감동을 줬던 오드리 헵번이 유니세프 홍보대사를 하면서 죽을 때까지 봉사활동을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젊었을 때는 아름다웠지만 나이 들어 그 모습을 잃어버리는 여배우들도 많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은 나이 들어서도 얼굴에 주름살만 생겼을 뿐 체형도 그대로인 채 미모가 여전했다. 게다가 좋은 일까지 많이 하니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도 있었다. 오드리 헵번이 봉사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벨기에에서 영국인 은행가 아버지와 네덜란드 귀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하면서 독일의 침략을 받은 벨기에에서 살던 어린 그녀와 어머니를 버렸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와 네덜란드로 이주한 뒤 아주 힘든 삶을 살아가던 그녀는 독일군이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끌고 가는 광경을 보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배우로 성공한 후 그녀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편지를 전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나치 추종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배우로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어머니가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영화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많은 여배우들이 욕심을 내는 역이었지만 몇 날을 고민한 끝에 그녀는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주연 캐스팅을 거절했다. 그 후 는 아카데미 3개 부문 수상을 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안네 역할을 꼭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나치 협력 때문에 양심상 수락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60년, 영국에서 홀로 살고 있던 아버지를 찾아간 그녀는 아버지의 죄를 대신해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유니세프 홍보대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말년에 대장암에 걸렸는데도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는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에 도움의 손길을 펼쳤다. 보기만 해도 행복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오드리 헵번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아버지의 죄를 대신해 봉사를 시작했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참 슬프고 가슴 아프다.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던 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방송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보다 오드리 헵번의 사망 소식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외모만큼 마음도 아름다웠던 오드리 헵번. 영화배우만이 아닌 진실한 사람으로 언제까지나 필자에게 기억될 아름다운 여인이다.
- 2017-07-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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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식스티 컬처
- 조용필(67), 안성기(65), 전영록(64), 윤석화(61), 김창완(63), 하춘화(62), 김해숙(62), 배철수(64), 송승환(60), 손석희(61), 장사익(68), 임성훈(67), 강석우(60), 혜은이(61), 태진아(64), 최백호(67), 양희은(65), 윤여정(69), 이수만(65)….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행하는 코드와 아이콘이 급변하는 영화, 방송, 드라마, 대중음악, 공연, 연예기획사 등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연예인과 방송인, 사업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60대라는 공통점도 있다. 60대 관련한 새로운 문화와 산업이 뜨고 있다. 과거의 60대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과 소비패턴, 활동 양태를 보이는 뉴식스티(New Sixty)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나이를 잊고 사는 ‘논 에이지(Non Age)’ 대표적인 세대가 요즘 60대다. 뉴식스티로 불리는 60대는 베이비붐 세대로 1970~1980년대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자 1990~2000년 아파트 호황기를 누리며 민주화의 정치적 격변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다. 이들은 패션에서부터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상품을 본격적으로 소비한 세대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요즘 60대는 가장 오랫동안 일했고 가장 많은 돈을 벌었으며 소비욕망이 강한 세대로 은퇴를 본격화하며 100세 수명시대에 인생 2막을 열고 있는 주역이다”라고 분석한다. 2013년 기준 우리의 기대수명은 81.8세로 요즘 60대는 평균 20년의 삶을 더 산다. 그동안 60대 하면 인생이 끝났다고 보고 퇴직 이후 새로운 시작을 하지 않았지만, 기대수명 82세 시대에선 60대가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며 다양한 취미와 문화생활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업이나 일에 도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세대별 가구당 평균 자산 규모는 50대가 4억2229만원으로 가장 많고 60대가 3억642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다음은 40대(3억3175만원), 30대(2억4007만원), 30세 미만(8998만원)의 순이었다. 이처럼 자산이 많은 60대는 이전과 다른 왕성한 소비 스타일을 보인다. 서울문화재단이 최근 발표한 ‘서울시민 문화향유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연평균 문화예술 관람 횟수가 38.6회로 30대(37.3회), 40대(30.1회), 50대(31.6회)를 압도했고 문화예술 동호회 참여(66.2%)와 창작적 취미활동(44.6%)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라이프 트렌드 2017’에서 “오늘날의 60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나이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특별 지대인 셈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60대가 등장했다. 나이를 잊은 60대의 변신, 멋쟁이로 거듭나는 ‘뉴식스티’를 주목하라. 60대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소비 주체로 급부상한 새로운 60대의 실체가 보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60대는 인생을 즐기고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며 노인이기를 당당하게 거부하고 왕성한 소비활동과 여가생활을 하는 뉴식스티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젊은 주인공과 식사하는 장면에만 모습을 보여 ‘식탁용 캐릭터’로 전락한 60대 조연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최근 들어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60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 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60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그린 작품에서 새로운 60대의 변화된 생활과 심리를 소재로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60대 주인공 캐릭터를 내세운 다양한 내용과 소재의 영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연극, 뮤지컬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요즘 중년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소설 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과 연극, 자식 세대의 결혼 인턴제, 부모 세대의 졸혼 등 변화된 가족 풍속도를 담은 KBS2 주말극 , 60대 부부가 자식을 다 결혼시킨 후 황혼 이혼 대신 한집에 살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사는 해혼(解婚) 생활을 다룬 SBS 주말극 , 60대인 윤여정이 요리사로 나오는 tvN 예능 프로그램 , 김윤진이 40대와 60대 엄마를 오가며 연기하는 영화 등 60대 주인공을 내세운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60대를 겨냥한 대중문화 작품이 붐을 이루면서 이전에는 ‘퇴물’ 취급을 받았던 60대 연예인과 방송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안성기, 윤여정, 김해숙, 강석우, 송승환 등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고 윤석화, 예수정은 젊은 연극배우들도 소화하기 힘든 모노드라마 등에서 주연으로 나서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배철수, 임성훈은 음악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 메인 MC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손석희는 JTBC 앵커로 나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조용필, 김창완, 하춘화, 장사익, 태진아, 전영록 등 60대 가수들은 신곡을 발표하며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갖는 등 전성기 못지않은 현재진행형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대중문화 산업의 선두주자인 SM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수장은 60대 이수만이다. 60대에도 주연을 맡으며 한국 영화계를 선도하는 안성기는 “나의 최고 작품은 언제나 다음 작품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60대 배우만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나 내용, 소재의 영화들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대중문화뿐만이 아니다. 이전의 60대와 전혀 다른 소비 스타일과 여가생활을 보여주는 뉴식스티를 겨냥한 패션, 화장품, 여행, 통신 상품 등도 본격적으로 출시되며 성업 중이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초 정년퇴임한 정영재(65)씨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스킨스쿠버를 배우기 위한 여행상품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레저와 결합한 여행상품은 젊은 층만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나 같은 60대도 많이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뉴 식스티는 이제 새로운 대중문화와 산업의 트렌드의 진원지이자 새로운 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 2017-07-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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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조어 얼마나 알고 있나요?
-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아래 신조어 중 몇 개나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이거 실화냐? □고흐흑 바흐흑 □뉘예뉘예 □현타 □뇌섹남 □극혐 □-잼 □흠좀무 □문센 □동공지진 이거 실화냐?: ‘이게 진짜냐?’ 혹은 ‘이게 사실이냐?’라는 뜻으로 믿기지 않는 내용의 글이나 사진 또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쓰인다. A 치킨 다리 한입도 못 먹고 떨어뜨렸다. 이거 실화냐…? B 주워서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냐? 고흐흑 바흐흑: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천재 화가 고흐의 이름에 우는 소리를 의미하는 ‘흑흑’을 붙여 ‘바흐흑’, ‘고흐흑’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웃긴 상황엔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이름 끝에 ‘키키’를 붙여 사용하는 자매품 신조어도 있다. A 소개팅 갔다가 차였어. 고흐흑 바흐흑. B 괜찮아. 내가 다른 사람 소개시켜줄게…. 뉘예뉘예 알겠쭙니다: ‘네. 알겠습니다’를 약간 비꼬듯이 늘여서 쓰는 말. A 방구석이 이게 뭐니? 엄마 나갔다 올 때까지 청소해놔! B 뉘예뉘예 알겠쭙니다~ 현타: 욕구 충족 이후에 밀려오는 무념무상의 시간을 일컫는 ‘현실자각타임’의 준말. A 오늘 햄버거 먹고 피자 먹고 라면 먹고 먹기만 했어. 현타 온다. B 인생 뭐 있니~ 원하는 거 하면서 사는 거지. 뇌섹남: ‘뇌가 섹시한 남자’의 줄임말. 주관이 뚜렷하고 유머러스하고 지적 매력이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A 네 이상형은 뭐야? B 요즘은 똑똑한 사람이 멋있어 보이더라. 뇌섹남이라고나 할까? 극혐: ‘혐오하다’라는 말에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극’을 붙여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을 강조할 때 쓰는 말. A 어제 자는데 천장에서 뭐가 뚝 떨어지는 거야. 봤더니 바퀴벌레였어. B 윽 극혐. 꼽등이, 바퀴벌레같이 더듬이 달린 생물은 다 싫어. -잼: ‘재미’를 줄인 단어 잼을 활용해 재미의 정도를 나타낼 때 쓴다. 예) [안 웃김] 핵노(NO)잼, [웃김] 꿀잼 A 이번에 새로 개봉한 영화 진짜 핵노잼이더라. B 왜? 난 꿀잼이던데! 흠좀무: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의 줄임말로 무서움을 느낄 때 사용. A 오늘 뉴스 봤어? 거기서 또 살인사건 일어났다잖아! B 흠좀무…? 앞으로 일찍 다녀야겠다. 무서워서 다니겠나. 문센: ‘문화센터’의 줄임말. A 요즘 문센에선 다양한 수업이 많이 열리더라. B 오 정말? 무슨 수업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동공지진: 당황했을 때 동공이 지진 난 듯 흔들린다는 의미로 쓰이는 신조어. A 너 거짓말하면 동공지진 일어나서 금방 알 수 있어. B 눈을 감고 말할까봐….
- 2017-07-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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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저절로 고장 난다
- 좋은 옷을 아낀다고 장롱 속에 오래 넣어두면 체형의 변화로 몸에 맞지 않거나 유행이 변해 입을 수 없게 된다. 엔젠가는 옛날의 체형으로 돌아오겠지 또는 유행은 돌고 돈다니까 언젠가는 입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언제나 실망으로 돌아온다. 적당하게 맞을 사람이 있거나 탐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는 것이 상책이다. 3년 이상 입지 않은 옷이라면 버려야 한다고 정리 전문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옷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산품인 가전제품도 오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면 쓸 수 없다. 비디오테이프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그렇고 전축이나 라디오는 물론 TV까지 그렇다. 시골에 가면 몇 십 년 된 전기밥솥이나 라디오를 아직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일 애지중지하며 분신처럼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아끼고 있다. 무엇보다 계속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용하면 쓸 수 있지만 처박아두면 녹슬고 고장이 나서 못쓰게 된다. 집도 그렇다. 시골에 번듯하던 집들이 사람이 살 때는 윤이 나서 반짝이지만 주인이 떠나고 빈집이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불을 때지 않는 빈집에 쥐들이 구멍을 내고 새들이 집을 짓고 온갖 해충들이 덤벼든다. 이들을 잡아먹으려는 뱀이나 너구리들도 들락거린다. 지붕이나 마당에도 잡초가 용트림을 한다. 흉물스럽게 곧 쓰러져가는 집도 한때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운동화 같은 신발도 아낀다고 신발장에 몇 년을 묵혀두면 본드로 붙인 곳이 들떠서 못 신게 된다. 겉이 멀쩡해서 신고 다니다보면 발가락이 쑥 나오는 황당한 경험을 해 본다. 신발을 계속 신으면 신발 바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신을 수 있다. ‘아끼다가 DONG(?)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고장 난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독사(孤獨死)가 많다고 한다. 고령사회인 일본에서 고독사한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기업 ‘키퍼스(Keepers)'가 있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인 요시다 타이치는 그의 저서 에서 ‘고독사의 현장에 가보면 집 안에 고장 난 채로 방치되어있는 전자제품이 너무나도 많다’ 라고 말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해서 소중하게 쓰는 사람이었다면 인간관계를 포함해 생활스타일도 많이 달랐을 것이고 고독사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장 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일본의 저명 정신과의사인 호사카 다카시는 말했다. 고독사 당하지 않고 건전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인간관계도 연락하고 챙겨야 한다. 오랜 기간 무심코 찾지 않으면 친했던 사람사이도 영영 남남이 된다. 먼 훗날 그때 가서 연락하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살아있어도 예전의 정감을 느낄 수가 없다. 적어도 1년에 한번 씩이라도 전화번호부를 펼쳐놓고 잊을 사람은 지우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연락을 취해야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로 오래 지나면 기억이 희미하게 되어있다. ‘누구시더라?’라는 대답을 들을 때 참으로 쑥스럽다. 영원히 풀어지지 않을 것처럼 꽉 맨 운동화 끈도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풀어진다. 수시로 다시 고쳐 매야 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일 년에 한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기 보다는 짧은 대화라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다. 세상만사 모두가 오래사용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고장 나게 돼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감당 못해 쩔쩔매지 말고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겨야 정신건강에도 좋다.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은 물건에게도 잘하고 사람에게도 잘하라는 말이다.
- 2017-07-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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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70세대의 존경받는 소비원칙 ‘SPPS Up’
- 얼마 전 필자가 퇴직예정자 교육에 강사로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강의장에 들어서자마자 맞은편 벽면에 걸려 있는 현수막 문구가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YOLO’라는 글자였다. YOLO’란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직역하면 ‘인생은 단 한번뿐’이라는 뜻이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려는 2030세대의 자조적인 의미가 담긴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처럼 자조적 의미가 담긴 ‘YOLO’는 5070세대에게도 이제는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최근 5070세대는 더 이상 누구의 행복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는 세대가 아니라, 직장과 일에서 떠나 과거와는 다른 삶을 꿈꾸고 새로운 소비문화까지 주도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소비의 반란’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과거에는 부모가 모아둔 재산을 어느 정도 자식에게 남겨주고 떠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자식들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윤택한 삶을 사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기대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은퇴 시기도 빨라지고 있어 어떻게 하면 긴 노후를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보낼 수 있을지가 더 큰 관심이다. 많지는 않지만 모아둔 재산을 현명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5070 시니어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5070세대의 똑똑하고 현명한 소비란 무엇일까. 이번 호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가성비를 추구하되 지출초과는 경계하라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도 소위 ‘코스파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저렴한 비용으로 효과가 높은 상품을 구매하려는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코스파는 비용(cost)과 효과(performance)를 합친 말로 코스파 세대는 ‘가성비를 좇는 세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버블 붕괴의 여파로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2030세대가 저렴한 비용으로 소비 효과가 큰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등장한 말이다. 우리나라도 구조적 저성장기가 고착화되면서 소비에서 ‘가성비(cost-effectiveness, 價性比)’를 따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는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 ‘싸면서 맛있는 떡’을 찾아 발품을 아끼지 않는 소비 행동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가성비 추구 소비는 단순히 최저가 상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상품을 찾는 현명한 소비 형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성비에 입각한 소비에도 함정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가령 5070세대가 어떤 상품을 구매한다고 가정해보자. 직접 매장을 찾아 상품 정보를 탐색하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그 물건을 사용한 경험자들의 사용 후기를 꼼꼼히 체크하고 가격과 기능, 특징 등을 따져본 후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상품가격 대비 효과, 즉 가성비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사용 경험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용 후기를 계속해서 보다 보면 가격 대비 더 좋은 성능의 상품을 찾게 되고 결국에는 애초에 계획한 수준을 벗어난 지출을 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성비는 높지만 실제 내게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구매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5070세대는 가성비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참고는 하되 구매에 대한 판단과 기준은 자신이 세운 소비계획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나에게 가치가 있는 소비에 집중하라 남은 여생 아끼지 말고 다 ‘쓰’고 ‘죽’자는 의미의 ‘쓰죽회’가 최근 화제다. 지인들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고 공유하는 작은 동호회 성격이지만 평소에 다니지 못한 여행뿐만 아니라 봉사 및 재능기부 활동을 통해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자 하는 5070세대들의 대표적 커뮤니티 중 하나다. 자식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법도 하지만 노후에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동안 모은 재산으로 당당하게 가치 있는 노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담겨져 있는 활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주고 싶기도 하겠지만 가고 싶은 곳 못 가고, 쓰고 싶은 것 못 쓰면서 살고 싶지 않은 게 5070세대의 속내가 아닐까? 그렇다면 5070세대에게 가치 있는 노후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삶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코 행복이다. 인간의 궁극적 삶의 가치는 행복이라는 말에 이의가 없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5070세대에게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다시 귀결된다. 한 언론인은 “행복은 지금 저축하고 나중에 꺼내어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 멋진 말이다. 행복할 수 있을 때 마음껏 그 행복을 누리라는 조언이다. 5070세대는 늘 행복을 뒤로 미루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를 위해 현재가 담보 잡히는 삶을 살기에는 건강도 그렇고 시간도 부족하다. 5070세대에게 지금 바로 이 순간 행복을 누리고 가치 있는 소비를 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비하는 것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소비일까? 사카모토 세쓰오가 쓴 를 통해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 시니어 세대들의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일본 고령 시니어 세대들은 자녀가 독립할 때쯤인 50대부터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가꾸는 소비를 점차 늘려간다. 둘째, 건강유지 및 관리 분야의 소비를 늘린다. 노화에 따른 신체기능이 저하되면서 이를 순응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건강예방과 관련된 상품과 서비스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셋째, 수준 높은 노년의 삶을 위해 문화생활에 대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자녀 독립 후 시간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새로운 즐기는 문화형성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일본 단카이세대(1947~1949)다. 이들은 음악, 공연, 미술을 관람하면서 좀 더 멋을 내고 즐긴 뒤 비싸더라도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긴다. 이 세 가지를 요약하면 일본 고령 시니어들은 노후에 자신을 가꾸는 데 게을리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며 즐겁게 사는 데 기꺼이 돈을 쓴다. 우리나라의 시니어들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물론 노년의 행복한 소비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일본 고령 시니어 세대들의 소비 트렌드를 통해 우리나라 5070 액티브 시니어 세대가 행복하고 가치 있는 소비가 무엇인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존경받는 소비원칙 ‘SPPS Up’ 은퇴재무설계에서 잘 쓰는 것도 잘 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젊은 시절 아껴 쓰고 저축만 하고 살았던 5070세대가 소비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면 돈을 잘 써야 한다. 그래야 가족, 동료, 지인들이 좋아하고 존경한다. 나이를 먹어도 돈을 움켜쥐고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수전노, 자린고비, 노욕장 등의 불명예스런 이름표만 얻는다. 인품과 지성, 매력만으로 존경받기에는 2% 부족한 사람들인 것이다. 2%를 채우기 위해서는 돈을 잘 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존경받는 소비원칙 ‘SPPS Up’을 실천해야 한다. 앞의 SP는 ‘입은 닫고(Shut Up) & 지갑은 열라(Pay Up)’는 원칙이다. 나이 들어 베푸는 것 없이 잔소리만 늘면 기피 대상 인물이 되기 쉽다. 지인들에게 늘 밥 한번 산다고 호언장담해놓고 막상 기회가 오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오리발 내미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기피 대상 1호다. 반면 말없이 조용히 지갑을 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환영받고 존경을 받는다. 뒤의 PS는 ‘잘 놀고(Play Up), 잘 쓰자(Spend Up)’는 원칙이다. 시쳇말로 좀 놀아본 놈이 잘 논다고 하지 않던가? 여기서 ‘잘 쓰자’의 의미는 흥청망청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써야 할 곳, 즉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대상에는 맘껏 투자하라는 의미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고 가슴 떨릴 때 가는 것”이라는 어느 누구의 말처럼 건강을 잃어버리면 소비도 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가슴 떨리고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 잘 써보자. ‘잘 놀고 잘 쓰는 것’이야말로 5070세대의 바람직한 소비 행동이다.
- 2017-07-1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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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모한 도전
- 몇 년 전 갑자기 기타가 배우고 싶어졌다. 오래전 학창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었다. 학창시절 엠티나 야유회를 가면 누군가 꼭 기타를 가지고 왔는데 참 부러웠다. 저녁에 캠프화이어를 하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필자가 속해있던 써클에서는 ‘밤배’ 라는 제목의 그 당시 유행하던 가요가 써클송처럼 불렸다. ‘검은 빛 바다위에 밤배 저어~ 밤 배... 무섭지도 않은가봐 한없이 흘러 가~네’로 시작되는 가사도 어디론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때 기타 치는 회원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것도 부러웠다. 오랜 세월 생각만 하다가 필자 나이 오십이 넘어서 드디어 기타에 도전하기로 했다. 기타를 배우면 학창시절 그 노래 ‘밤배’부터 치고 싶었다. 생활기타 학원에 들어서는 필자를 보고 아이들이 원장실로 뛰어갔다. 아이들은 원장님 손님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기타학원 원장도 약간 놀란 눈빛이었고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 했다. 아이들이 신기한 구경이 난양 필자 주위를 맴돌았다. 혼자 들어가는 아주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도레미파... 연습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메트로놈을 놓고 기타코드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연습을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했다. 필자의 손가락 기능에 그렇게 문제가 많은 줄 새삼 알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손가락 끝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서서히 굳은살이 박혀갔다.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 기본적인 기타코드를 몇 개 외우고 아주 쉬운 노래는 악보를 보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 즈음 우리가 속한 어느 단체의 부부모임에서 용문산인근으로 1박2일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스케줄을 보니 마침 밤 스케줄에 캠프화이어도 들어있었다. 관중 앞에서 기타 연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기타를 챙기는 필자를 보며 아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직 코드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타와 노래가 따로 논다면서 구박을 하던 아내였기 때문에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제발 좀 참으라는 절규에 가까운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악보집과 보면대도 챙겼다. 저녁 늦은 시간 짙은 어둠이 깔린 펜션 마당에는 캠프화이어가 펼쳐졌다. 나이 지긋한 중년부부들이 불 꽃 주위에 둘러앉아 학창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다들 술도 한 잔 씩 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 때 기타를 들고 나타나는 필자를 보고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아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배운지 두 달 되었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두 달인데 그 정도라면 다들 기타에 도전해야겠다고 덕담을 했다. 그날 서툰 기타연주는 오랜만에 학창시절 분위기를 재연하기에 충분했다. ‘밤배’도 합창했다. 그날 아내는 캠프화이어가 다 끝나고 뒷정리하고 모두 객실로 들어갈 때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도 필자의 돈키호테 식 돌발 기타연주는 계속되었고 그 때마다 아내는 주책이라면서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지만 필자의 기타 도전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끈질긴 노력과 설득 끝에 최근 가족 모임에서 아내와 듀엣으로 노래하게 되었다. 그 날 우리는 노사연의 ‘만남’을 불렀다.
- 2017-07-0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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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조어 얼마나 알고 있나요?
-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이번에 배운 신조어를 활용해 휴가철 가족과의 소통에서 헤매지 말자! □댕댕이 □1도 모르겠다 □텅장 □싸펑피펑? □피꺼솟 □상메 □궁예질 □하태핫태 □지름신 □낄끼빠빠 댕댕이: ‘멍멍’ 글자와 ‘댕댕’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 멍멍이 대신 댕댕이라고 부른다. 같은 예로 ‘멍청하다’를 ‘댕청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A 오늘 너희 집 댕댕이 보러 가도 돼? B 너도 우리 집 댕댕이의 댕청한 매력에 빠졌구나. 1도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는 의미다. 중국계 캐나다인 가수 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퀴즈의 정답을 ‘모라고 하는지 1도 몰으갰습니다(뭐라고 하는지 1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은 것이 유행됐다. A 이 문제 어떻게 푸는 거야? B 응 그건 말이야, 나는 1도 모르겠다. 한 번 더 물어보면 싸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일게. 텅장: 텅텅 빈 상태의 통장을 의미 A 친구야, 내 통장이 텅장이 되는 이유가 뭘까? B 술을 그렇게 마시니깐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지. 싸펑피펑?: 예능 프로그램 에서 나온 유행어로 ‘싸우고 시펑? 피나고 시펑?’의 줄임말이다. A 아니 근데 있잖아. B 뭐야 왜 말 끊어! 싸펑피펑? 피꺼솟: ‘피가 거꾸로 솟는다’의 줄임말이다. (아직 탑승하지 못한 승객은 서둘러 5번 게이트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A 아! 피꺼솟! 여권 집에 두고 왔어! 상메: SNS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기능 중 ‘상태 메시지’의 줄임말이다. A 도대체 하루에 카톡 상메를 다섯 번이나 바꾸는 사람의 심리는 뭐예요? B 후~ 자기의 심정을 알아달라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궁예질: 궁예가 정적들을 도륙할 때 대표적 명분으로 삼았던 관심법을 비꼬아 만든 표현이다. ‘멋대로 판단하지 마라’, ‘추측하지 마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A 오늘 신나보이네~ 데이트 있나봐? B 아니거든. 궁예질하지 말아줄래? 하태핫태: 가수 지코가 CM송으로 부른 노래가사 중 ‘하얗게 태우자 핫하게 태워’의 줄임말. ‘반응이 뜨겁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A 저 고깃집은 매일매일 사람이 줄 서 있네. B 저 집 방송에 한 번 나오더니 인기 장난 아니야. 완전 하태핫태. 지름신: ‘충동구매’를 의미하는 표현 ‘지른다’와 초인적 힘을 가진 존재를 의미하는 ‘신’의 합성어. 충동구매를 일으키는 가상의 신을 뜻함 A 나 이번에 또 신발 질렀어. B 이번 달은 왜 그냥 지나가나 했더니 역시 지름신 강림했구나~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라는 말로 눈치 없는 사람을 지적하는 용어다. A 여어~ 여기 다들 모여 있었네! 왜 나는 연락 안 해줬어~ 같이 놀아도 돼? B 아, 오늘은 여자끼리만 놀기로 했는데. 가…같이 놀자 그럼. 하하. (아 좀 낄끼빠빠)
- 2017-06-2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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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뜻해진 우리 동네 골목길.
- 골목길은 어쩐지 큰길보다는 뭔가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이 있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하던 정다움도 느껴지고 꽃다운 젊은 날 좋아하는 사람과 거닐며 가슴 떨렸던 수줍 은 기억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필자는 10살까지 대전의 대흥동 주택가에서 살았다. 골목 안쪽에 우리 집이 있었는데 그 골목은 다른 곳보다 무척이나 좁았다. 어릴 땐 몰랐지만, 어른이 되어 그리움에 한 번 찾아가 보니 뚱뚱한 사람은 통과하기 좀 힘 들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그래도 그 골목은 좁아서인지 더욱 골목 안 우리 친구들의 천국과 같은 놀이터였다. 지금과는 달리 어릴 때의 필자는 매우 개구쟁이였던 모양이다. 노래도 잘했다는데 아이들의 동요가 아닌 당시 유행하던 강화도령이나 제목도 모르지만 ‘반 짝이는 불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던 그으 나알밤~’이란 가요를 구성지게 잘도 불러 재껴 서 동네 어른들은 필자만 보면 “노래 한 자락 해봐라.”고 하셨다. 그 골목에서 즐거웠던 일은 동네 아이들과 연극을 해보자고 작당했던 일이다. 무대는 좁은 골목 안 용호네 대문 위쪽과 반대편 전봇대에 줄을 매달고 담요를 걸쳐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무대를 만든 것처럼 즐거웠고 춘향전을 한다며 담요를 들치고 나와 연기를 펼치며 깔깔대었다. 정말 그땐 어른들도 볼거리가 없었던지 철부지 동네 꼬마들이 하는 연극에 신문지나 가마니 를 깔고 앉아 귀엽다며 칭찬하고 웃어주셨다. 그렇게 골목길은 필자의 어린 시절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 곳이다. 작년에 우리 동네 뒤쪽으로 산책로가 새로 조성되었다. 2km의 길이로 펼쳐진 산책길은 중간 한 부분 100여 미터 정도 골목길을 통하게 되어있다. 처음 그 골목을 지나며 필자는 깜짝 놀랐고 낯설지 않은 느낌에 내심 반갑기도 했다. 좁다란 골목이 어린 날 개구쟁이 모여 놀던 그 골목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후줄그레한 지저분한 회색 담벼락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 지나다 보니 담장 치장이 한창이었다. 아마 개인이 하는 건 아니고 지자체에서 골목단장사업을 하는 것 같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 할당받은 예산을 없애기 위해 잘 깔려있는 멀쩡한 보도블록도 교체하 는 등 무리하게 예산 집행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골목을 깔끔하게 단장하는 데 쓰인다면 칭찬해 줘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산책 때문이든 그저 통과하는 것이든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어서이다. 각 집마다 색상을 달리해서 칠하는 페인트의 색이 너무 고와 어느 집 담장이 더 예쁜지 감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파스텔 톤으로 인디언핑크, 연하늘색, 연보라 연노랑 등 은은한 색의 담장이 뽐내듯 이어졌 고 골목 끝 부분의 좀 큰 담장에는 사계절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졌다. 이제는 골목을 지나며 우중충한 모습을 보지 않게 되어 기분이 좋다. 봄을 상징하는 꽃잎 담장도 있고 가을 단풍을 그려놓은 담장도 있다. 동심의 세계로 이끌 것만 같은 겨울 눈 내리는 공간에 다정히 서 있는 눈사람 한 쌍도 정겨 운 풍경이다. 누구의 발상으로 수십 년간 우중충했던 골목을 이렇게 예쁘게 바꾸게 되었을까? 골목 안 주민들도 좋겠지만 화사한 골목길을 지나는 나그네들도 산뜻한 기분일 것 같다. 오늘도 골목을 지나며 어떤 담장이 더 예쁜지 기분 좋은 감상을 했다.
- 2017-06-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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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왜 늦은 줄 아세요?
-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 그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를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보내주셨습니다.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누님. 이렇게 불러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이젠 누니~임 하고 소리 높여 불러도 대답 없을 당신에게 띄웁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참 바보 같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누님 앞에 서라면 아마도 그때 그 시절처럼 한없이 작아질 것입니다. 누님 결혼식 날, 축시를 읽어주기로 약속해놓고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축시를 읽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기억나세요? 내가 막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 누님은 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차 안에서 내게 손을 흔들어줬습니다. 그날 내가 왜 늦은 줄 아세요?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기억인데 이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정말 누님이 미웠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내 여동생의 S 언니가 되면서입니다(그 시절엔 S 언니 동생이 유행이었습니다). 동생의 언니이니 당연히 나한테는 누님이 된 것입니다. 누님과 내 나이 차이는 딱 한 살입니다. 누님이 생겼으니 공연히 즐겁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동생을 통해 말로만 듣던 누님을 만난 것은 훨씬 나중 일입니다. 마침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누님과 친척이었는데 조카뻘이었습니다. 그러니 동생으로 인해 누님을 얻고 누님으로 인해 조카를 하나 얻은 셈입니다. 어느 날 친구를 앞세워 누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갔으나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선 다음에 만나면 이런저런 말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 말들을 지금까지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시험에 낙방하고 실의에 빠져 외가 근처에 있던 직지사에 들어가 한 학기 동안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누님 꿈을 생전 처음으로 꾸었습니다. 글쎄요. 나 혼자 간직하고 싶었던 꿈이었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누님이 나한테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누님이 나한테 해주셨습니다. 그 황홀한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깨어보니 허망하게도 꿈이었습니다. 계속 그런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그날의 꿈이 아쉬워 그 꿈을 꾸었을 때의 환경에 맞춰 여러 번 잠을 자보기도 했습니다만 그 후로는 한 번도 그런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누님은 영문과를, 나는 의예과를 다니던 시절이라 만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참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못했습니다. 누님을 만나고 나면 즐거움만큼 아쉬움도 컸습니다. 꿈같은 대학 시절을 보내고 내가 모교 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누님은 결혼을 한다며 내게 축시를 부탁했습니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고 당일 낭송하기 위해 축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뭐라고 썼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습니다. 시를 쓰고 그림도 그려 시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 눈물이 떨어져 번져버렸습니다. 축시를 쓰면서 왜 눈물이 났을까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 명쾌히 그 이유를 압니다. 내가 사랑한 누나를 다른 사람이 채갔기 때문입니다. 누나를 채간 사람에 대한 분함과 그 사람을 따라간 누님에 대한 서운함이 범벅이 되어 눈물로 떨어졌습니다(나이답지 않게 참 바보 같았네요). 예식시간에 맞춰 예식장에 충분히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우물쭈물하다 시간이 늦어버렸습니다. 핑곗거리는 충분했습니다. “환자가 많아서 그랬습니다”라는 핑계입니다. 그러나 기실 환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분노와 서운함이 밀려와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 분노와 서운함을 직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생각하면 그 뿌리는 깁니다. 내가 대학시험에 낙방해 직지사에서 한 학기 동안 칩거하면서 제일 많이 생각한 사람은 누님입니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누님을 상상하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냥 보고 싶다는 수준이 아니라 결혼까지 하고 싶을 만큼 많은 시간을 누님과 함께하는 상상 속에서 보냈습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항상 얼굴을 붉혔습니다.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언제나 얼굴을 붉혔습니다. 결혼을 할 수도 있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항상 나를 통제하는 나만의 도덕적 기준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기준이지만 그땐 정말 바보스러웠습니다. 그 기준은 누님하고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하느냐는 자문이었습니다. 죄의식이었습니다. 참 바보스러웠지요. 누님은 내 혈연적 누님이 아니잖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님과의 결혼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생각에 얽매였습니다. 누님하고의 결혼이라니….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해선 안 된다는 마음이 서로 상충하는 양가감정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한 학기 동안 가슴앓이만 하다 내려왔습니다. 이런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결혼식 날 예식장에 늦게 도착한 것이 꼭 환자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턴 과정을 마친 뒤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 수련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내가 갓 결혼해 신혼생활을 시작했을 때입니다. 그 뒤 20여 년 동안 나는 누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첫아들이 개혼할 때 누님에게 청첩장을 보냈습니다. 아들 결혼식을 준비하다 불현듯 누님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예식장에서 누님을 20여 년 만에 만났습니다. 반가워서 잡은 손을 한참 놓지 않았습니다. 그날 나는 누님 손을 처음 잡아봤습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습니다. 이젠 누님을 채간 분에 대한 분노도 누님에 대한 서운함도 내려놓은 지 오래돼서 그런지 그날은 그냥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정말 반가웠습니다. 바보스러웠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누님 손을 오래 잡고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또 세월이 많이 흘렀지요. 인편에 누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옛날 생각이 밀려오면서 누님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전화를 드렸지요. “누님 나 대구 갈 일이 있는데 누님 집에 들려도 돼요?” “오지 마.” 내 기대와는 다른 답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누님은 아파서 누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했습니다. 체중이 35kg밖에 안 나간다니 그 모습을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대신 전화 자주 해.” 나는 그래서 매일 전화를 했고 옛날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네팔로 봉사를 떠났습니다. 네팔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누님이 돌아가시지나 않을까 내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네팔 봉사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곧바로 누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벨이 한참을 울리는데도 누님은 받질 않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곤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아 한동안 걸지 않았습니다. 누님의 부음을 들은 것은 그 후 한참 지나서였습니다. 나는 또 바보짓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두려워도 참고 전화를 걸어볼걸. 자책하고 또 자책했습니다. 전화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지금도 내가 그런 바보입니다.
- 2017-06-15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