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락지를 낀 용의 꿈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나의 할아버지는 용꿈을 꾸셨단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용의 다리에 가락지가 끼어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걱정스러웠다고 하셨다. 그 덕택에 필자가 양자로 가서 잘 살 수 있었음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손자를 남겨 두는 결심을 하고 나의 사촌 형을 양자로 보내셨다고 한다. 필자는 서울에서 식품사업을 하시던 아버님 슬하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나 겨우 걸음마를 하던 다음 해에 바로 6.25 사변으로 인해 어머니는 필자를 들쳐 메고 아버지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는데 기차를 타고 남으로 가던 중 인민군 비행기들의 기총사격에 전 승객이 정신없이 숲 속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올라타고 매달려서 가는 행렬이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왼쪽 다리를 약간 삐어 낮에는 잘 놀고 밤마다 아프다고 했으나 시골에서는 당시 마땅한 병원도 없었으니 아이의 꾀병이라고 그냥 넘긴 것이 화근이 되어 2~3세 때부터 심한 골수염을 앓게 됐다.
그러나 신이 나를 살리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침 당시 부산에 전후 서독에서 파견된 서독병원이라는 것이 부산 대신동에 있어 그곳에서 진료를 받고 바로 완쾌 상태로 퇴원하게 되었다. 당시 나이 8살이었는데 병원에서는 통원치료를 하던지 약 1년간 입원을 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 갈 나이라 입학을 시키고 통원치료를 결정한 것이 화근이 되어 아직 후유증을 앓고 있어 보행이 불편하다. 어린 나이에 너무 활발하게 놀다 보니 환부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고 후유증이 남게 된 것이었다.
2. 학문의 길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에게 통지표의 국어 과목에 ‘수’가 없으니 ‘수’를 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해 국어에 ‘수’를 받을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필자는 대체로 우수한 학생 측에 들었다. 그러나 당시 진해에서 일류중학이라는 진해중학교에 응시하여 입학시험을 치르고 나서 혼자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과연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거의 꼴찌 수준으로 겨우 합격하였다.
합격 이후엔 학문에 뜻을 둔 공자와 비슷한 나이 15세에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치기 시작하였는데 꼴찌 수준의 합격이 필자를 자극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1학년 첫 학기부터 상위권의 수준으로 시작했던 필자는 중학 시절 내내 상위권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잘해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가정 사정이 여의치 못해 대학 진학을 잠시 미루고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장남인 필자는 4명 동생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필자는 일하는 와중에 지방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마침 동생들이 대학 공부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지난 7년간 접었던 대학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70년 당시 5급을류 지방 공무원 월급은 약 1만 원 정도로 집 월세 충당하는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사직하고 학원 강의를 하던 시기에 배움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상대에 진학하여 공부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축적하는 길이 꿈을 실현하는 첩경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 대학 생활을 통해서 이를 확인하고 싶다는 강한 집념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이 지나서 진학한 대학 4년은 꿈같은 세월이었다. 엄청난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생활 중에 터득한 사업 경험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계기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물 안의 개구리가 세상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한국경제의 흐름을 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방향설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대학 4년은 학문의 즐거움을 알게 된 시기기도 했다. 이런 즐거움으로 수석 졸업할 수 있었지만 한편에선 미래의 진로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도 동생들 학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학계로 나아가고 싶은 생각이 맘은 접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다시 산업전사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먼 훗날 이론과 실제를 최대한 일치시키는 교수가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안고 현실 속의 길을 찾기로 하여 당시 최고의 보수를 주는 대기업 건설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3. 중동 건설 현장을 누비면서 아라비아 상인의 숨결을 느끼다.
필자가 취업한 시기에 건설회사는 한참 중동 붐이 일어 대졸 신입사원에게 최고의 월급을 주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중소기업이었던 한국유리(주) 기획실에 동시 합격하였지만 모든 사람이 추천한 건설 회사로 취업하였다. 희망하던 기획실이 아닌 자재부로 인사명령이 났다. 기왕이면 큰 뜻을 펴기 위해 나는 중동근무를 지원하였더니 사우디아라비아 TEP 본부 자재구매 담당으로 명령을 내주었다. 여기서 사우디아라비아 상인들의 상술의 대단함을 깨우쳤고 향후 중동국가와 업무상 협상하는 기술을 배우는 전기가 되었다. 영어가 능통하여 구매업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말도 좀 익혔다. 운전 기술도 익히는 기회가 되었다.
1980년대 초 리야드 시내는 상가도 크게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건설용 자재를 구매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아서 해외에서 구매하여 조달하였으나 급한 자재는 현지에서 조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사 팀으로부터 자재 조달 독촉을 받았던 독특한 자재 A가 생각난다. 당시 필요한 자재는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 수소문하여 어느 주택가에서 상호를 달고 있는 공급업자를 찾았다. 급한 김에 대충 가격 협상을 하고 공급을 하고 나서 보니 약 3배나 비싸게 구매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동국가의 무표정한 협상력 앞에서는 국내 업자는 한순간 실수하면 엄청난 바가지를 쓴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모든 물건을 생산하지 않고 수입해서 판매하는 까닭에 부르는 것이 값이 되고 모르면 속아 넘어가게 되어 있는 곳이 중동이었다. 이후 상대와 협상 시에 얼굴에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여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런대로 사우디아라비아 생활은 재미는 있었지만 33세에 결혼하여 바로 해외근무를 하게 되어 아직 아이가 없는 관계로 회사에서는 연장근무를 요청하였지만 귀국을 결심하였다.
4. 세계 제1의 중공업 회사를 만들어내다
대학 재학 중에 아산학자금을 받아 공부했던 연고로 인하여 귀국 후에 현대중공업(주) 플랜트 사업본부 계약관리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구매부서의 업무도 재미있고 할 만했지만 주위에서 바라보는 의혹의 눈초리는 아주 거북스러웠다. 따라서 수출과 관련된 업무를 하려고 하던 차 현대중공업(주) 계약관리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당시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현대에서 정주영 회장과 함께 일을 하던 한유동 전무가 담당 중역이었다. 필자가 계약관리부로 가게 된 것도 한 전무의 뜻이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계약서의 핵심 사항을 짚어가면서 일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였지만 리더십도 출중하여 회사의 임직원들이 많이 존경하는 그런 분이었던 것 같다.
1981년 만 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쉴 수 있었고 그 외는 업무에 전념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필자는 혼자 회사에서 제공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업무에 전념하였다. 우리는 현대가 이미 국가적인 회사였으므로 현대가 잘되는 길이 우리나라가 잘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근무하였다.
계약관리부서는 요즘 PM 부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회사의 대표이사로부터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위임을 받아 사장을 대신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영국 등 구미 국가를 위시하여 호주, 인도, 중국 등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총괄관리하다 보니 각 국가 및 회사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해양플랜트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선진국의 기업들과 계약과 협상 업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업무도 세계화의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회의하면서 영문으로 회의록 (MOM)을 만들고 노트북이 생기면서 회의 시 바로 회의록을 작성하여 상호 서명하는 수준까지 이르니 어떤 계약과 협상 업무도 가능하게 되었다. 단지 기술적으로 좀 미진한 부분은 세계적인 설계회사와 하도급 계약을 하던지 합작회사를 설립하여 경영하는 식으로 보완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어느 사이 우리도 모르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선박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고 조선업 세계 1위 회사로 성장해 나아갔다.
초기 단계에 인도 ONGC사로부터 수주한 Win, Wips 공사는 실행률이 85% 정도가 되는 수익이 많이 나는 프로젝트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도 클레임 보험사고 처리 등의 업무에서 600만 달러 이상의 순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해양사업본부는 인도 ONGC사로부터 인정을 받아 약 25년간 매년 지속해서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한때 ONGC사업본부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였었다. 이와 관련 인도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 발주하지 않고 한국의 현대에게 지속적인 발주를 함에 따라 위 기간 약 2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절감하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5. 함께하여 행복하다
먼 길을 갈 때는 함께 가라고 했다. 필자는 사랑하는 5남매들과 함께하여 행복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필자가 존재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 오남매는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집도 절도 없는 상황임에도 함께 노력하여 다 대학을 졸업한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필자 집안에 행복을 몰고 온 사람은 어쩌면 나의 아내인 것도 같다. 아내와 결혼하자마자 5남매의 장남인 필자를 도와 얼마 되지 않은 월급을 쪼개 동생들 학업을 지원하고 집안을 평화롭게 이끌어왔다. 회사 야유회 때 부부동반이라 같이 가자고 하였더니 옷이 없어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순간 너무나 미안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난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들 둘은 이제 장성하여 결혼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큰 행복이라 생각한다. 손자를 보고 손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이 즐거움 또한 어디에 비길 수가 있을까? 며느리가 수시로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가 하면 손자가 커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내 우리 부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6.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찾아서 도전
대기업 30년 중소기업 10년의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양자의 주요한 차이는 도덕성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가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은 도덕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여 필자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필자가 스스로 도덕성을 허물지 않는 한 누구도 필자에게 도덕에 반하는 일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서 외자 유치 3500만 달러를 성사시킨 필자는 이를 회사가 갚지 못할 시 처할 수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도덕성이 모자란 그런 결정을 했는데 당시 이런 생활을 접기로 했다.
필자는 전문성이 있으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국제계약 컨설팅을 하는 일이다.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한양대 및 중앙대나 전문 교육기관, 한국플랜트협회, 건설전문공제조합 등에서 국제계약 관련 강의를 한다. 신문사에서 집필 요청이 있으면 글을 쓰기도 한다.
강의는 대학 졸업 당시 학계로 나가고 싶었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루에 7시간 강의를 하는 필자를 보고 아내는 철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강의 자체를 즐기다 보니 강의를 시작하면 나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필자가 또 하나 사명감을 느끼는 일이 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창출하는 일이다. 원래 국가가 앞서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야 할 일이나 현재 국가가 해주기를 기다릴 수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에서 실시하는 SBA의 창업 닥터 과정을 이수하면서 청장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창업닥터로서 자격을 취득하고 KDB 시니어브리지 센터 1기 과정 도심권 인생설계 1기과정 등을 수료하면서 많은 뜻을 함께하는 좋은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인 꿈도 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장학회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이름하여 가칭 ‘태성(太晟)장학회’ 다. 가난으로 인하여 젊어서 배우지 못하는 후손이 없도록 해두고 싶은 생각으로 오래 동안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시니어들이 건강한 삶을 살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또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또 다른 이상 사회를 꿈꿔가는 것은 필자의 또 다른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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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컬’이라는 같은 제목의 다른 영화 두 편을 봤다. 아이덴티컬(Identical)은 일란성 쌍둥이를 말한다. 외모가 거의 같으니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재미있는 일도 벌어진다.
하나는 더스틴 마르셀리노 감독의 영화인데 출연에 레이 리오타, 세스 그린, 애슐리 쥬드, 아만다가 나온다. 가난한 부보가 일란성 쌍둥이를 낳자 하나는 아이가 없는 집에 입양 보낸다. 둘의 환경은 아주 다른데 타고난 음악적 소질은 서로 통해서 벌어지는 일을 영화화 했다.
하나는 아직 영화 소개가 제대로 되지 않아 스쳐 본 영화인데 쌍둥이 중 하나는 잘 나가는 금융맨이고 하나는 무명의 화가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더 인상적이다.
잘 나가는 금융맨은 같은 사무실에 사귀는 여자가 있다. 결혼까지 생각하는 여자는 아니고 그냥 연인관계를 유지한다. 문제는 이 여자를 버리면 여자가 고발할 경우 직위를 이용한 성추행 내지는 성폭행에 연루되기 때문에 고민한다. 때 마침 스위스 은행 비밀 계좌를 공개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거기에도 연루되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출장과 회사 파티가 겹치자 금융맨은 화가 형제가 자신의 여인 파트너로 같이 자리를 하면 회사사람들의 눈길을 돌려 자신들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계획을 꾸민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단순한 대역이 아니라 꽤 가까운 사이로 진전된다. 여자의 끼도 있고 무명의 화가로서는 만나기 힘든 세련된 미인이다. 여자도 금융맨이 너무 머리가 팽팽 돌아가서 진지한 면이 없는 반면 화가는 진실한 면이 있어 끌린 것이다. 화가는 여자를 사랑하지만,여자는 금융맨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금융맨의 아파트를 빌려 금융맨인 것처럼 행세하며 여자를 불러들이지만, 결국 여자를 죽이고 만다.
일란성 쌍둥이가 같은 길을 가면 스토리가 간단하다. 그러나 둘이 완전히 다른 환경에 있고 비교되면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비교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돈 잘버는 옆집 남편과 비교하거나 ‘엄친아’처럼 공부 잘하는 다른 집 아이와 자기 아이를 비교하는 것은 매우 못 난 사람이 하는 짓이다.
동창 모임에 가 보면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를 나왔는데도 사회적 위치가 크게 다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상당히 의식한다. 여자들은 겨울철이면 동창회 가는 날은 유난히 밍크코트를 입고 나가는 여자들이 많다. 서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것을 무난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외모까지 비슷하게 생겼다면 더 짙은 유유상종 의식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서 만족하고 산다. 돈의 많고 적음, 사회적 지위의 고하, 남이 가진 행복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다.
“오늘만 해도 태안군 안면도, 양평·가평을 갔다가 내일은 대구로 갑니다.”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질문을 건네자 덤인 정경자(鄭京子·50) 대표의 카랑카랑 애교 섞였던 목소리가 풀이 죽으며 답한다.
바빠서 달리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다. 집안일로만 여겼던 ‘정리하고 수납하는 일’을 전문 분야로 끌어올린 주인공 정경자 대표.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스며들 듯 부드러운 방법으로 시장을 넓혀갔다. 쇄도하는 강의 요청과 방송 출연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 취재가 있던 날에는 한 아파트의 광고 모델로 발탁돼 촬영을 마쳤다. 그렇다 쳐도 여전히 생소한 정리수납 컨설팅.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왜 필요한지 들어봤다.
“저를 납득시켜 주세요, 정리수납에 왜 돈을 쓰죠?”
정경자 대표가 정리수납 컨설턴트를 알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캐나다 주재 한국 물류회사의 법인 대표로 일하고 있었다.
“저는 캐나다에서 정리수납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미 캐나다나 유럽에는 20~30년 전부터 있던 직업이더라고요. 자기 물건을 자기가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리해주기도 하는구나. 막연하게 나중에 한국에 가면 이걸 꼭 직업으로 만들어야지 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해보겠다는 것도 잠시. 회사에서 캐나다 법인의 철수 결정이 갑작스럽게 났고 2002년 한 달 만에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경자 대표는 회사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물어보는 사람마다 직업으로는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어요. 어찌됐건 아무리 아이템이 좋아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인식이 안 돼 있어 사업성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바로 정리수납으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를 교육하고 양성해서 파견하는 일을 했어요.”
당시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 아이를 자기가 키우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던 때였다. 사업을 하면서도 정리수납에 관한 준비를 꾸준히 했다.
“5년 정도 준비 끝에 정리수납 교재와 매뉴얼을 만들고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 교육을 할 때 가르쳤어요. 1대 1서비스를 잘 하기 위해서 정리수납교육을 한 거죠. 그런데 베이비시터가 아이 옷을 잘 정리하니까 고객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가정관리사도 옷을 세탁하고 개는 것을 달리해주니까 고객 만족도도 좋고 일 하는 사람들 또한 좋아했습니다.”
2010년부터 방송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다 보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저런 거 배웠으면’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드디어 2011년 11월, 한국정리수납협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정리수납 컨설팅 활동을 시작했다.
“협회를 만들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여성능력개발원에서 여성유망직종으로 정리수납 관리사를 선정했더라고요. 아이템 자체를 보고 한 것 같아요. 경력단절 여성 일자리 창출에서부터, 2015년에는 신직업지원 육성정책에도 정리수납이 들어갔습니다. 여성가족부, 노동부 등 정부기관이 육성한다고 하니 이와 관련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났어요. 사람들 관심도 높아졌고요. 저희만 봐도 정리수납 컨설팅을 교육받고 있는 회원이 전국에 3만9000명 정도입니다.”
정리수납, 한국 사람에게 절실하다
정리수납에 있어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심어지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 교육에 정리수납을 접목해 이용자들에게 미래 사업을 노출시켰다.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외국에서 이것을 매우 당연하다고 봤고, 우리나라에서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어렵게 살아온 시절이 있기 때문에 돈만 생기면 집이랑 차 넓히고 물건 사고 그래요. 자신이 어렸을 때 옷을 잘 사 입지 못해서 아이한테만큼은 옷을 잘 입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과 장난감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제 한계가 왔고, 물건을 버릴 때도 돈을 지불하는 사회가 된 거죠.”
시니어, 정리습관을 기르자
정경자 대표의 말에 의하면 시니어들의 정리 습관은 참으로 심각하다.
“지금 제가 잘 버리는지 엄마가 잘 버리는지를 비교하면 우리 엄마가 더 잘 못 버려요. 나이가 들수록 더 못 버리게 돼요.”
시니어 세대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정경자 대표는 ‘애정결핍’의 문제라고 했다. 젊었을 때는 관심 가질 것도, 행동할 것도 많아서 물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거는 어디서 산 거고, 누가 준 선물이며, 의미를 사람이나 관계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물건에서 찾으려 한다고.
“나이가 들면 자식이 분가하거나 배우자가 죽을 수도 있죠. 결국 자기 혼자 남기도 해요. 자식들과 자주 만나 생활한다면 선물해준 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은 혹시 온다 해도 아주 잠깐만 있다 가죠. 그러니 이거는 큰아이가 사준 거였고, 이건 누가 사준 거고 말입니다.”
버리는 습관과 정리하는 습관은 젊었을 때부터 길러야 한다.
“80세에 갑자기 잘 버릴 수 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가 85세신데 제가 뭘 버리라고 말하지 않아요. 어머니 집에 가서 저는 정리 안 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있기 때문에 제가 하루아침에 바꿔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상처가 될 수 있어서 삶을 이해하려 하지 바꾸려고 들지는 않아요.”
시니어 고객에게 하는 조언은?
“제가 시니어를 만났을 때 하는 얘기가 딱 그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죽었을 때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죽는 순간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다 버려지게 된다. 돈 혹은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니면 다 버려진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물건을 정리하는 자식들은 무슨 얘기를 할까?
“왜 엄마는 아직까지 이걸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냐고 합니다. 좋은 얘기 안 하죠. 물건을 보며 엄마를 추억하지 않아요. 내가 살아 있을 때 쓰레기들을 남에게 버리게 하는 수고로움은 덜어주고 가야죠. 그게 시니어가 돼가는 것이고 내 삶을 정리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정경자 대표는 시니어에게 정리수납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주방 싱크대 상부장 맨 위에 의자를 받치고 올라갔다가 떨어져 허리 다치고 병원에 입원하면 기력이 쇠하고 점점 더 빨리 늙는 것을 봐왔다는 것.
“왜 거길 올라가는 거죠? 10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하면서요. 본인이 그렇게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드려야 합니다.”
한국의 여성 CEO, 일하는 여성을 말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5년째. 여성 CEO로서의 고충을 물어보자 고충보다는 이 분야 선구자로서 할 일이 태산이라고 했다. 벤치마킹할 곳도 없고, 슬로건 교재도 만들어야 해서 바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라고.
“그리고 좋은 건 정리수납은 여자들의 섬세함이 필요하잖아요. 남자들이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나 할까요(웃음)?”
경력단절 여성들과 작업에 대해서도 흥미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전업주부들이 사회적응을 잘 못한다고들 하죠. 그런데 정리수납을 가르치고 기본 원칙을 알려줬더니 이만큼의 전문가가 없는 거예요. 생소한 분야가 아닌 거죠. 자기 삶의 가치가 바뀌었죠. 정리를 못하는 사람에서 정리 전문가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자신감이 생기니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도 내고요.”
바쁘게 사는 그녀, 복지관 예쁜이 할머니 꿈꾸다
올해 딱 50세가 된 정경자 대표. 그런데 누가 봐도 50대로 볼 수 없는 그녀는 지금 일이 아니면 뭘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일이 우선 많아요. 결혼도 연애도 시간이 없어서 못 했거든요. 20대 때부터 세계여행도 하고 뭐든 다해봐서 혹시 시간이 좀 생긴다면 운동을 해야겠어요. 얼마 전에 면역력 저하로 세균이 번식을 해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반성을 많이 했죠. 그런데 퇴원하는 날 방송사 가서 10시간 촬영했어요. 책 읽는 것도 좋아했는데 도무지 시간이 안 나요.”
그리고 그녀에게는 원대한 꿈이 하나 있다. 복지관에서 인기 있는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돈을 많이 벌어서 기회가 되면 지금 우리 직원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직원 전용 실버타운을 짓고 싶어요. 이분들이 나이 들어서 정리수납 강의도 하셔서 강사료도 받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100만원 정도의 수입만 있으면 시니어가 되어서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여기서 나이 먹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90세가 됐을 때 목표는 제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가장 예쁜 할머니가 돼 있는 거예요. 그럼 거기서 내가 가장 인기 있는 할머니가 된다면 무척 바쁠 것 같아요. 밥 사준다는 할아버지들도 많을 거 같고요. 내가 아파 복지관 못 나가면 우리 가족이 나한테 전화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복지관에 있는 분들이 어디 아프냐고 죽이라도 사가겠다고 하겠죠? 늘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거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 잘 살아가는 세상 꿈꾸는 정경자 대표의 멋진 미래가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복지관 퀸카 할머니가 꼭 되길 바란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드라이버는 힘, 아이언은 기술, 퍼팅은 돈’ 아마추어 골퍼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일단 드라이버는 멀리 보내고 볼 일이고 아이언은 정확하게 핀 근처로 갖다 붙여야 한다. 그리고 마무리인 퍼팅이 좋아야 내기에서 돈을 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중요한 퍼팅이 가끔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이때 본인의 최종적인 판단과 실제 퍼팅시 잘못은 생각지 않고 애꿎은 캐디에게 한마디 던지는 골퍼가 있다. 물론 캐디가 경사를 잘못 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캐디의 조언을 받아 본인이 동의를 하고 그에 따라 퍼팅을 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 아닌가? 그럴 때마다 필자는 참지 못하고 꼭 하는 말이 있다. “주식투자와 퍼팅은 자기 책임이다. 우리 인생에서 또 하나 자기 책임 하에 하는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느냐?” 답은 ‘노후준비’이다. 우리가 주식투자에서 다양한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는 것처럼 퍼팅 시에는 홀마다 실제로 공이 굴러간 궤적 등을 보고 익힌 캐디의 조언을 참고한다. 캐디가 못 미더울 때는 동반자의 의견을 구할 수도 있다. 경험 많고 노련한 캐디가 있는가 하면 초보 캐디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나 최종 결정과 최종 퍼팅은 내가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엉뚱하게 나왔다고 해도 조언한 사람은 조언에 그칠 뿐이다. 조언을 받아들인 것도 나고 그에 따라 퍼팅을 한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이다.
노후준비는 어떤가? 노후준비 역시 주식투자나 퍼팅처럼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요즘 노후준비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후준비 또는 은퇴설계 관련 전문가가 주식투자 전문가와 캐디에 못지않게 많다. 오히려 주식투자와 퍼팅은 나름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반면 노후준비는 누구나 당면한 과제이므로 한마디씩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식투자와 퍼팅은 안 해도 그만이지만 노후준비는 안 하면 노후가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좀 더 나은 노후준비를 위해 전문가는 물론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선배들의 경험과 조언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식투자와 퍼팅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노후준비에도 정답은 없다. 여기서 정답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맞는 답, 즉 정답(正答)도 없지만 정해진 답이라는 뜻의 정답(定答)도 없다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대신 현명한 답, 현답(賢答)은 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아니라 노후준비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현문(賢問)에 대해 현답을 하는 것, 즉 현문현답(賢問賢答)인 것이다. 더욱이 그 현답은 자기 책임 하에 나만의 맞춤형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스스로 뭔가 계획하고 설계하기에는 뭔가 크게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퍼팅이나 주식투자를 할 때처럼 전문가와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조언과 정보는 헛갈리게 만들 뿐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전문가 2~3명, 이미 은퇴해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선배 또는 친구 2~3명으로부터 조언을 듣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더해서 관련 책을 읽기도 하고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듣고 읽으면서 은퇴자들의 실제 생활을 보다 보면 나만의 철학과 전략이 설 것이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나만의 노후라는 집을 설계하고 지으면 되는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이 핑계 없는 노후불안도 없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무덤은 피할 수 없지만 노후불안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후가 불안한 사람들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핑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소득이 적거나 가족관계 또는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하는 식이다.
따라서 스스로 한 번쯤 짚어 봐야 할 질문은 “만약 내 노후가 불안해진다면 그 핑계거리가 무엇일까?”이다. 이때 기준은 필자가 좋아하는 ‘행복한 노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다섯 가지 분야, 즉 5F(Finance, Field, Fun, Friend, Fitness)’이다. 분야별로 조목조목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노후에 쓸 돈(Finance)이 부족하다면 왜 부족할까? 은퇴한 후 그 많은 시간을 보낼 소일거리 또는 취미활동(Field)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뭘 해야 할까? 노후에 나와 함께 할 배우자와 가족을 포함한 친구(Friend)가 없다면 왜 없을까? 재미(Fun) 없는 노후가 예상된다면 왜 그럴까? 현재 건강(Fitness)에 문제가 있거나 문제가 예상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라도 5F 중 가장 부족한 분야를 우선적으로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과연 돈만 있다고 해서 할 일과 친구, 재미, 건강이 따라올까? 그 돈을 누구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할 일과 친구, 재미, 건강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돈은 비료와 같아서 쓰지 않고 움켜쥐고만 있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 돈을 잘 써야 할 일도, 친구도 생기고 재미도 따라오고 건강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기만 해도 돈과 건강을 한꺼번에 챙길 수 있다. 배우자와 가족, 친구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를 되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취미활동이나 문화행사 또는 봉사활동에 참가해보라.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뿌듯함과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특히 걸어 다녀야 몸이 건강하다는 걸 알고 열심히 대사활동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이가 들수록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이 더 중요해진다. 오래 살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치매에 걸리지 않고 100세까지 건강하게 산다면 가족이나 친구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인터넷을 뒤져 재미있는 건배사와 에피소드를 발굴,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써먹어 보라. 하다 보면 늘기 마련이고 잘 하면 나만의 주특기가 될 수도 있다. 사는 게 재미있으려면 내가 재미있거나 재미있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되는 것이다.
‘평균화의 맹점’은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한 말이다. “다리의 수송력은 여러 교각이 떠받치는 힘의 평균값이 아니라 가장 약한 교각의 힘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다리는 가장 약한 곳에서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5F도 평균값을 끌어올리는 것에 못지않게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건강을 잃으면 다른 4F가 아무리 풍족해도 다 소용없는 것이다. 5F 중 부족한 F를 찾아내서 채워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자 우리네 인생이다.
△ 최성환(崔聖煥)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은행 과장, 조선일보 경제 전문기자, 고려대 국제전문대학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은퇴연구소장 등 역임.
이른 아침부터 스마트폰 소리가 사람을 자극하고, 오늘따라 자유를 깨우는 세상 소리가 사람을 속박해온다.
만약에, 고독과 자유의 삶 중에 하나만을 택하라 한다면, 필자는 그 고독 속에서도 또 자유의 삶을 택하리라. 어떤 연결고리 같은 것들이 없는 그러나 구속할 줄도 아는 올바름의 자유만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의 여유와 살아 내뿜는 숨소리에 육신을 그저 맡기고 싶으리라.
한때, 필자는 자신이 세상에서 등돌려진 외톨이인 줄만 알았다. 가끔씩 밀려오는 혼자라는 그 외로움이 싫어도 고독이 몸서리를 치던 날에도, 잘 견뎌내며 자신을 넘어 울컥하는 메아리 덩어리 같은 것들도 애써 삼켜내곤 했었다.
자신이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들어 가는 위선 덩어리들과 함께, 그저 혼자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독만이 아주 자유롭다고, 고독을 즐기는 자유도 멋지고 행복한 삶 중에 하나라고, 또 혼자 웃고 울며 그 가식 뭉치들과 뒹굴어 대곤 했다.
어느 날인가, 사람이 두려워 몸서리치는 날에도 필자는 솔직히 사람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채워지는 것은 알 수 없는 묘한 관계 상처투성이들뿐. 차곡차곡 쌓아온 추억의 세월은 흔적조차 무시당한 채, 사소한 것들에 서로가 서로를 등돌리며 작은 애정마저도 고개를 돌리며 외면한다.
그 아픔들은 몸속 저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와 악몽의 앙금으로 캄캄한 터널을 만들고, 자신은 다시 혼란스러운 상처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산다는 것은, ‘관계 속에 삶’이란 참으로 복잡 미묘한 것 같다. 평화롭고 잔잔하게 아주 단순한 채로 그냥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것일까? 차 한 잔에 씁쓸한 마음이 투정을 담아 그 엉켜온 날들을 잠시 뒤돌아본다.
사람들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아니 운명의 숙명이든 만남이라는 관계를 맺고, 시간과 함께 나이테를 쌓아갈 때도, 진정한 인연들이 하나둘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늘하게 돌아서버린 서늘한 눈길만이 먼발치로 서로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또 등 뒤에 그림자로 슬퍼지겠지.
진실로 상대를 알려고 하기도 전에 이익 앞에서는 자기를 감추며, 외면으로 돌아서 버리는 참으로 매정한 사람의 관계. 희미해진 추억에 사연들은 갈 길을 잃고, 그리 멀지 않은 사람과 사람 사이, 찬바람으로 가득한 텅 빈 거리를 헤맨다.
이제 또 찬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면 사람의 삶들은 사람들이 그리워 만남에 옷깃을 여미고, 또 시간 속에 헤어지고, 그리고 자기 색깔들을 찾아 무수히 방황을 하곤 하겠지. 어떤 사람은 그 이별이 싫어서 아니 진정한 나이테의 의미를 져버리기 싫어서 술 한 잔에, 차 한 잔에 가득한 고독을 담고 자유를 벗 삼아 중얼거릴 테지.
아직은 알 수 없어, 지쳐만 가는 사람의 관계, 차라리 고독한 자유도 진정한 삶이 될 수 있다며 너털 웃음으로 혼자 지껄 일테지.
민감한 성격 탓에 잠을 설친 적은 있어도 잠 문제로 크게 고통을 당한 적은 없다. 식사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때가 되면 수면을 취할 수밖에 없다. 수면 중에 회복과 재충전이 이루어지니 잠은 시간낭비가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대학입시를 위하여 잠을 줄이려는 시도를 했었다. 4당 5락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시간 이하 자면 시험에 붙고 5시간 이상 자면 떨어진다는 증명되지 않은 슬로건이었다. 입시를 앞둔 급박한 상황이라 무비판적으로 진실인 것처럼 수용되었지만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밝혀졌다. 오히려 충분히 잠을 자야 학습의 효과가 난다고 한다. 필자는 잠을 적게 자면 컨디션 유지가 안 되어 이를 실행하지 못해 자책하곤 했다. 조사에 의하면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선조보다 잠을 잘 못자는 것으로 나타난다. 필자가 실행하는 수면 비법은 단순하다. 정신적 안정과 신체 리듬 유지이다.
정신적 안정
수면에 정신적인 면의 영향은 크다. 필자는 민감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한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께 칭찬 받으려고 시험 점수를 올렸다가 양심의 가책으로 밤을 꼬박 새웠던 기억이 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대인관계의 갈등이 있으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되도록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먼저 화해를 청하려고 한다.
시험 전날 과도한 긴장으로 잠을 못 이루어 거리를 배회하고 술을 먹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해 시험을 망쳤던 일도 있었다. 시험 보고 나니 거짓말처럼 잠이 쏟아졌다.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중에 보면 사소한 일이니까. 양심에 어긋난 일을 했을 때도 잠을 못 이룬다. 이때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 그러면 기적처럼 평안한 잠을 이룬다. 그러니 잠자기 전에는 마음에 걸리는 일을 다 처리하여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신체 리듬 유지
너무 머리만 쓰고 몸을 사용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다. 그래서 적당한 운동과 활동이 필요하다. 규칙적으로 걷거나 짧은 시간이나마 규칙적으로 운동하여 건강을 유지하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 몸을 위해 30분 내지 1시간의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루 종일 책을 보는 날은 머리는 피곤한데 몸은 그렇지 않아 상념이 꼬리를 물어 잠을 잘 못 이룬다. 아플 때 고통으로 잠을 못 이룬 경험이 있다. 대학교 때 무리를 했더니 아파서 한숨도 못 잔 일도 있었는데 그 당시는 병명도 모르고 상당기간 휴식을 하고 병원을 다니다 나았는데 10여년이 지나 간염 검사를 하니 면역이 된 것을 통해 간염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고통으로 잠을 못 이루어 나중에 대상포진인 것으로 발견했다. 두 경우 모두 좀 무리한 것이 원인이었다. 무리하지 않고 신체 리듬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잠을 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는 것도 수면에 도움이 된다. 평소 자는 시간을 놓치면 잠이 들 때까지 고생을 한다. 몸은 밤에 자는 것을 선호한다. 직업상 야간 근무를 하는 사람들의 수명이 짧아지다는 조사보고가 있다. 그러니 잠은 늦어도 12시 전에 자는 것을 습관으로 하는 것이 좋다. 환경이 바뀌면 수면에 지장을 초래한다. 예민해서 장소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이룬다.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외국여행을 하는 경우 시차로 한동안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은 약 일생의 3분의 1을 잠자며 보낸다고 한다. 숙면하면 다음 날 활기차게 보낼 수 있으니 잠의 중요성은 크다. 그러나 잠을 자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누구나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 최고의 고문이라고 한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안정과 신체리듬의 유지에 유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차를 타지 않고 원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대인관계 갈등을 선도적으로 처리하며 기도를 통해 불안, 초조, 스트레스를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정신적인 면이 신체적인 면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일본 엄마들은 정말로 사람을 만나면 항상 웃는 얼굴에 상냥한 마음을 보여주는 얼굴이다. 거기에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는 표정들이다. 어떤 말이 흘러나올까 몹시 궁금해지는 얼굴이라고나 할까? 물론 가식적일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에게 본인들이 우호적임을 나타내려는 의도라고 보인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의 일본 얘기들은 내가 살았던 1982년부터 ‘88년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릴 때까지의 실 경험들에 준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느꼈던 얘기들이다. 정말 언제 만나도 자기가 본래 지니고 있는, 각자 미묘하게 다른 표정의 미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 주는 엄마들이다. 만들어 놓은 인형처럼 언제나 그 얼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고 목소리 톤을 가다듬어서 얘기를 시작한다. 그런 것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재미있다.
우선 만나면 무엇인가 상대방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순간 포착하거나 아예 외출하면서 준비를 해 오는 거 같다. 순간적으로 건네는 말들은 ‘오 이 머플러 정말 멋져요. 김상이 아니라면 이런 감각을 표현할 수 없었을 거예요’ 하는 등의 차림에 대해 진심어린 말을 해 주는 것들이다. 준비해 오는 멘트로 생각되어 지는 것은 ‘저번에 만났을 때...’ 로 시작되는 나는 기억에서 지워진 걸 멋지게 기억나게 해 주는 인사말이다. 암튼 상대방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기분 좋은 말을 시험지를 받고 정답을 척 내 놓는 자신만만한 아이처럼 해 주는 기술들을 연마해서 장인의 수준이 되어 있다고 느꼈다. 들은 말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하다가 그만 선수는 언제나 뺏기고 말았다. 별 것도 아닌 단어들을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해 가며 칭찬에 속하는 말들을 잘하는 도사 급들인 것이다. ‘아라, 오늘 날씨에 완전 잘 어울리는 블라우스! 김상의 패션 감각은 우아합니다!!’ 또 뺏겼구나, 왜 그런 거지? 하며 생각을 해 보지만 그렇게 잽쌀 수가 없다는 답만... 어느 환경에서도 순간 포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데,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좋음을 정말 가치 있게 사용할 줄 안다고나 할까? 그런 게 습관이 안 되어 있으면 가능 할까?가 답인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오면서 연습을 엄청 많이 했을 테니까요. 칭찬 받는 것을 어느 누구나 좋아하지만 우리는 약간은 남에게 입 발린 말은 잘 못하겠다는 국민성이 있는 거 같거든요. 내 맘에 안 들면 거북해서 목구멍 까지는 나왔어도 입 밖으로 말로 되어 나오는 데는 아주 힘이 들고 어려운 갖가지 생각들과 망설임과 부끄러움, 자존심... 등등... 그네들은 말을 안 하면 나를 상대방이 어떻게 알겠느냐며! 내 마음이 그런 게 아닌데도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데, 왜 똑똑하게 나를 어필시키는데 시간을 버리느냐며 그러면 안 된다고 합니다.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이고 나를 표현하면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에 자존심을 앞세우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주 작은 눈썰미를 발휘해서 상대방에게 좋은 감정을 심어주는 인사를 하면서 만나면 그 하루가 아주 유쾌해지고 즐거워진다고. 그러다 보면 서로 깊은 우정도 쌓아갈 수 있다면서 습관을 잘 들여가며 살아야 한다고 말 해 줍니다. 다 옳은 말인데도 어려서부터 살아 온 습관에 배어 있어서 인지 어렵긴 합니다. 노력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이제 우리 엄마들도 밝은 인사를 잘 나누고는 있다고 보입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유익하고도 위트가 섞인 칭찬들을 생각날 적마다 마음 갈피에 잘 새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나 틀에 박힌 말을 인사와 함께 듣게 되는 건 너무나도 성의 없이 들리기도 하고,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아 듣는 순간 감동도 없으니까요. 상대방의 마음을 스쳐갈 수 있는 기쁨과 황홀감이 그 순간을 최고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인사말을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봅시다.
세상에 와인을 구매하는 행위보다 간단한 것도 없다. 마트나 와인 숍 등에서 여느 상품처럼 그냥 돈을 내고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원하는 와인을 제대로 구매하는 것만큼 까다로운 일도 드물다. 글로벌 시대에 특히 뉴 월드 와인이 공산품처럼 대규모로 생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와인은 여전히 규격화된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와인 중에서 자기가 필요로 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와인의 최고 전문가라 해도,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을 모조리 꿰차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실수하지 않고 와인을 구매하려면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라.
최고로 비싼 와인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향과 맛에 관한 한 최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존재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최고일 뿐이다. 게다가 주관적인 관점은 시시각각으로 변할 수 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그리고 그날의 기분, 컨디션, 분위기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 음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평소 여러 종류의 와인을 접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와인 선택에도 당신의 개성과 끼를 발휘하라.
둘째, 비싸다고 다 좋은 와인은 아니다.
대체로 값과 질은 비례한다. 저 유명한 1855년 보르도의 ‘그랑 크뤼 클라세’도 가격을 바탕으로 작성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값에 비해 질이 수준 이하인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정 AOC의 명성을 배경으로 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와인들도 있다.
그러니 레이블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아직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격 대비 질이 우수한 와인을 찾는 노력을 하라. 가격이 적당하면서도 질이 우수한 새로운 와인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느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똑같은 와인이 어느 날 유명 전문 잡지에 소개되고 나면 값이 20~30% 이상 치솟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먼저 선수를 쳐라! 참고로 프랑스에는 병당 1만5000원 이하의 와인만 모아 놓은 와인 가이드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와인을 레이블이나 값으로 마시지 않고 각 와인의 고유한 특성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와인 애호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오래된 와인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대개의 와인은 생산 후 5년 안에 마시는 것이 좋다. 화이트나 로제 와인의 경우는 1~3년, 레드 와인의 경우는 3~5년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고 샹파뉴는 특별한 빈티지 샹파뉴를 제외하면 구매한 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소비하는 것이 좋다. 보졸레 누보는 6개월 내에 마셔야 한다. 물론 뛰어난 빈티지의 고급 와인의 경우 보관기간이 10~20년 이상 가는 것들이 대다수지만, 이런 와인은 값이 비싼 만큼 예외적이란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런 고급 와인은 하나같이 타닌이 높아 몸체가 탄탄한데, 너무 일찍 마시면 향과 맛이 채 열리지 않아 절대 고급 와인의 오묘한 진수를 느낄 수 없으니 창문으로 돈을 던져 버리는 것과 같다.
넷째, 빈티지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많은 와인 아마추어들이 빈티지 표를 마치 수학 공식처럼 신봉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빈티지는 와인의 출생신고 같은 것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지역, 같은 빈티지라 할지라도 주조하는 사람의 정성과 테크닉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와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빈티지를 참고는 하되 너무 신봉하지 않는 게 좋다. 게다가 나쁜 빈티지는 오랜 보관이 불가능하므로, 고급 와인이라 할지라도 오랜 기간 기다리지 않고도 마실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 우리 실정에 맞는다고 판단된다. 가끔 활용해보기 바란다.
다섯째, 머잖아 마실 와인과 장기간 보관했다 마셔야 할 와인을 구별하여 구매해야 한다.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고 10년 이상 보관했다 마셔야 제격일 ‘그랑 크뤼 클라세’를 구매해서 그날 바로 마시는 것은 정말이지 어리석은 행위이며, 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자칫 돈만 낭비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여섯째, 같은 와인을 최소한 여섯 병 단위로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사람과 마실 때 한 병으로 모자라는 낭패를 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한 종류의 와인을 일정 시간을 두고 마시게 되면, 그 와인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와인이 자신의 기분이나 컨디션, 그리고 시간과 더불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도 경험해 볼 수 있다. 만약 그러지 못할 사정이면 최소한 두세 병이라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물론 매우 귀한 고가의 와인일 경우는 한 병으로 만족해야겠지만.
일곱째, 믿을 만한 와인 가이드북을 한 권 정도 준비하는 것은 필수다.
한글로 번역된 것들도 있으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접근이 가능하다. 가이드북을 통해 와인을 구매하기 전에 구매할 와인에 대해 사전에 공부를 할 수 있고, 마시고 있거나 마신 와인이 어떤 것인지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평과 전문가의 평을 비교해 봄으로써 와인 시음에 대한 능력과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문제인 ‘언제가 마시기 적절한 시기인가?’에 대해서도 상세히 일러준다.
가이드북의 종류에 따라서는 생산자나 가격에 대한 여러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각자의 필요에 맞는 와인 가이드북을 꼭 한 권 갖추라고 권한다.
한 가지 문제점은 매해 새로운 빈티지가 나오기에 매해 새로운 빈티지를 첨가한 가이드북의 개정판이 나온다는 점이다. 와인 마니아나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적당한 간격으로 구매하면 어떨까 한다.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차선은 되리라고 믿는다.
여덟째, 공동구매를 해보라.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같이 공동구매에 대해 논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모르는 와인에 대한 새로운 지식도 습득하게 되고, 특히 할인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가격대가 높은 와인일수록 공동구매는 더욱 유용하리라 본다.
“당신이 어떤 와인을 마시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만큼 이제 와인은 단순한 음료나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와인의 선택은 간단한 생필품 구매와는 여러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주머니 사정을 넘어, 선택하는 사람의 성향과 인품을 나름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 장 홍(張洪)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하고 있다.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대표작 와 가 한 무대에 오른다. 두 작품은 노령화,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현대사회 중·장년이 겪는 사회적, 심리적 증상들에 대해 다룬다. 다른 해에 발표됐던 작품이지만 닮은 부분이 많은 점에 착안해, 하나의 무대에서 주중에는 번갈아가며 공연하고 주말에는 연이어 상연한다. 독특한 점은 는 박정희, 는 이병훈이 연출을 맡아 여자가 바라본 아버지, 남자가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다. 두 연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출하며 아버지/어머니가 가장 생각났을 때
[이병훈] 어렸을 때 효자상도 받고 해서 그런지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를 연출하면서 그동안 내가 과연 어머니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동물적 사랑도 느낄 수 있었고, 자식을 향한 집착이나 다 큰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비극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무서운 박탈감, 집착 그리고 사랑의 한계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박정희] 작품 후반부에 아버지 앙드레와 안느가 얘기하면서 간병인 로라를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앙드레는 로라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즐거워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생각났다. 여행을 많이 다니셨던 내 아버지는 출발하기 전이면 큰 기대감으로 즐거워하셨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가족과 만난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곤 했는데, 그러한 아버지와 앙드레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많이 겹쳐졌다.
의 윤소정/의 박근형 두 배우와의 호흡이 어땠는지
[이병훈] 연습 초반에는 윤소정 선생님과 서로 스타일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품을 하며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윤소정 선생님은 소탈하고 겸손한 분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약점을 듣고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소위 ‘쿨’하게 받아들인다. 뿜어내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보다는 본능적인 감각과 즉흥적인 에너지에서 나온다. 그런 선생님의 연기술을 이해하며 좀 더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됐다.
[박정희] 박근형 선생님과의 호흡은 좋았다. 코멘트를 받으면 꼭 실행하고 더 발전하기도 했다. 앙드레라는 역할에 대해 창조적으로 해석하며, 능동적으로 연습에 참여했다. 원로배우이시지만 영리한 배우라고 느꼈다.
중·장년 관객이 공감할 만한 부분
[이병훈] 중년에 찾아오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어머니의 삶의 비극성을 그려낸 작품인 만큼, 어머니 자신들의 사랑과 좌절을 통해 의타적 삶에서 주체적 삶으로 바뀌어 가기를 희망한다.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족들에서 발견하는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을 떠나보내고 삶의 허망함에 맞닥뜨렸을 때 보면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우리는 살면서 ‘나’를 주장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타인들과의 관계도 자기중심적으로 맺는다. 하지만 ‘나’라는 정체성은 ‘기억’이라는 모래 기둥처럼 부실한 발판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같다. 기억은 뇌가 노화되거나 병들면 점차 사라지고 기억을 잃는다는 건 한 사람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정체성’이라는 허상을 깨닫고 가족과 함께 사랑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작품이 치매를 다루긴 하지만, 공연의 메시지는 충분히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일정 8월 14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박정희, 이병훈 출연 박근형, 윤소정 등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과 멋진 관계를 맺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젊었을 때보다 말과 행동이 적을지라도 더 깊은 사랑과 지혜를 전하고, 그 속에서 관계를 맺을 줄 알면 참된 시니어 세대가 됐다는 증거다. 로마의 훌륭한 정치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친구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말과 마음가짐이 시니어 세대에게 필요한 좋은 친구 되기의 조건일까?
글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
시니어의 우정,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라!
시니어가 되면 누군가에게 우월하려고 하거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줄어들어 비로소 마음 열린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젊었을 때는 쉽게 내가 너보다 낫고, 내 말이 옳고 네 말은 틀렸다고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제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믿고 있던 것이 편협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독선과 편견이 가득했던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남이 들어서게 된다. 다른 사람이 어려운 줄 알게 되고, 나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데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게 된다.
눈치 덜 보는 친구가 되자
살아가다 보면 편안하고 즐거운 날들도 있지만 때로는 힘들고 우울한 날들도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못나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혹은 매일 같은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전화기만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숨기고, 친구가 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얘기를 외면하다 보면 관계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럼 누구를 붙잡고 답답하고 힘든 얘기를 해야 할까? 이때 그저 가까운 사이와 친구를 구별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눈치를 덜 보고 힘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다. 내 허물, 친구의 흉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를 찾아보자.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시니어의 필수 감각은 유머, 마법 같은 말 “괜찮아”
지혜로운 시니어가 관계를 잘 맺는 또 다른 비결은 유머 감각이다. 시니어의 유머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과장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언행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하고 웃음 짓게 한다. 그리고 그 비결에는 “괜찮아”라는 말이 크게 작용한다. 사별한 부인을 이야기하며 자책하는 친구에게, “왜 그랬어. 있을 때 잘하지”라고 말하는 대신 “그럴 수 있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라고 얘기하자. “괜찮아”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마음에 구원이 된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녹여, 결국 울고 웃게 한다. 그렇게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괜찮아”란 말로, 사람을 넓게 보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경청의 힘, 젊은이와도 친구가 된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시니어는 젊은이와도 친구가 된다. 말을 아끼는 대신 남의 말을 듣는 데 시간을 더 보내며 섣부른 조언 대신, 지혜롭게 질문을 해야 한다. 예컨대 회사 다니기 힘들다고 말하는 손녀딸에게 “요즘 다들 힘든데 참아봐라”라고 하면 “에이, 내가 얼마나 힘든데. 말 안 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대신, “요즘 많이 힘들구나? 어떤 게 힘드니?”하고 물어보라. 그러면 손녀딸은 자신이 뭐가 힘든지 이야기하다가 “그래도 참고 다녀야겠지?”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배우자에게 “뭘 그렇게 화를 내?”라는 말 대신에 “여보 많이 화났어요? 내 무엇이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라고 물어 보라. “잔소리 좀 그만 하시구려”라는 말 대신 “기분이 많이 나빴어요?”라고 질문하자. 그리고 상대방의 답변을 들어 보라. 전자는 타박을 부르지만, 후자는 대접이 달라진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라
마음이 여유로운 시니어는 친구 관계에서도 너그럽다. 상대방의 부족함과 실수에도 넉넉하게 웃으니, 친구들은 그 앞에서 마음이 편하고, 긴장이 풀어져서 더 자연스럽고 유쾌해진다. 같이 더 많이 웃게 된다. 이렇게 만남이 즐거운데 어찌 노년의 우정에 흔들림이 있을까. 세상이 점점 더 삭막해지고, 서로 증오하고 싸우는 일이 늘어가는 세태에 시니어의 열린 마음과 따뜻함은 희망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아름다운 점을 알아주고,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고, 넉넉하게 웃어 주는 것, 이것이 시니어 세대에게 있어 관계를 잘 맺는 가장 큰 비결이다.
배려하고, 서로에게 일리가 있다는 긍정의 마음
오만과 독선이 어린이와 젊은이의 서툰 모습이라면, 시니어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포용할 줄 안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해 공격받았을 때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는 “미국 국민은 ‘그놈의 이메일’에 질렸다. 실질적 이슈에 집중하자”며 그녀를 옹호했다. 이 발언을 통해 샌더스는 ‘대인’ 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지율이 급상승했었다. “그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신에 “일리가 있구나”, “당신 말이 맞아”라고 말하는 이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남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알고, 실천할 줄 아는 시니어는 참으로 넉넉하고 슬기롭다. 당신은 남 귀한 줄 알고, 마음을 진정으로 품어주는 시니어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좋은 친구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 박대령(朴大領)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했다. 현재 사회불안 자조모임인 이아당(이미 아름다운 당신) 심리상담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