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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호의 독서산책]돈으로는 노인문제 해결할 수 없다
-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되지만 막상 분주하게 사는 동안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여유를 갖는 사람은 드물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노후를 위해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여운을 남기는 책이 오근재의 ‘퇴적공간’이다. 대학에 적을 두고 있던 저자가 현직을 떠난 다음 노인 문제를 자신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쓴 책이다. 서울에는 노인들만의 특별한 공간이 있다. 한 곳은 종묘시민공원이고 또 다른 곳은 탑골공원이다. 저자는 이 두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의 노인문제를 독특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퇴적공간’은 강의 상류로부터 떠밀려 내려 하류에 쌓인 모래섬과 같은 공간을 뜻하는데, 이 두 공간에 대한 비유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퇴적공간에 쌓여 있는 잉여 인간들의 모습을 기록한 이 책은 노년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의 본모습”이라는 문장에 저자의 집필 동기가 담겨 있다. 노인이 된 다음 저자가 느끼는 소회는 어떤 것일까.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에 등장하는 벌레처럼 정년의 순간부터 자신이 이 사회의 걱정거리로 입장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벌레가 되기 전까지는 가족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벌레로 변신하자 이전 가족 관계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자기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가족을 보는 서글픔을 지난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와 내가 몹시 닮아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돈으로 노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기관들이 의욕적으로 세운 노인전문기관들을 증설해도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한다.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다. “급식이든 프로그램이든 자신의 몸을 자기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정상적인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제도’를 없애야 한다. 상징적으로 요금을 부과할지라도 그것이 우대일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들을 비루하게 만들고 사물화하며 자생력을 잃게 해 결과적으로 사회적 부담을 증가시킨다.” 짐작은 했지만 이 책에는 젊은이들도 깊이 새겨야 할 지적이 한 가지 들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사후에 어떻게 되는지 등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은 노년이 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5세기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 속의 노인이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노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노인이라도 어느 정도 굳건한 삶의 지향점을 지니지 않는다면 삶은 이리저리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은 젊은 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을 상기시켜 준다. 노인들에게 이런저런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그런 정책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정치권에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행복이란 자기의 욕망을 거두는 순간, 즉 소유물이 인간 존재를 설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찾아드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닐까.” 국가가 노인의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불편함을 나눠 가지려는 가상한 생각은 아름답지만, 결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조언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노인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2014-02-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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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재테크]지금 당장 은퇴생활 시작 가상의 노후를 체험하라
- 노후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유리하다고 말한다. 투자상품을 적절히 이용하면 투자위험은 낮추고 복리효과는 높여 목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사람은 주택구입, 대출상환, 자녀교육비 마련 등을 이유로 노후자금 마련을 자꾸자꾸 뒤로 미룬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실 행동과학 측면에서 보면 노후자금마련이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들은 먼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 ‘지금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 쯤으로 치부하고 뇌의 깊은 곳 어딘가에 넣어 두고 눈앞에 닥치지 않는 이상 꺼내보지 않는다. 흔히 저축액을 늘리지 못하고 충동적 소비를 늘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를 먹어 치우면 미래에 더 많은 마시멜로를 받을 기회를 잃어버리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당장 달콤함을 맛보길 원한다. 하물며 노후자금마련은 여러 형태의 저축 행위 중 가장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당장 카드값을 메워야 하는 사람들, 전세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 자녀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노후자금 마련은 마치 사치와 같을 것이다. 노후준비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면 프로테우스(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바다의 신) 효과를 활용해 보자. 스탠포드 연구진들은 실험 참여자와 닮은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을 경험하도록 했다. 그 결과 실험자들은 아바타를 통해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에 변화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프로테우스의 효과는 노후준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진들은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어 실험참여자가 미래에 힘겨운 노후생활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실험 후 노후자금을 늘리고자 하는 참가자들의 의지가 높아졌다. 이들이 체험한 가상현실처럼 준비하지 않는 이의 노후는 힘겨울 수밖에 없다. 사실 IMF이전에는 별다른 노후준비 없이 퇴직금을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이자 생활이 가능했다. 금상첨화로 가지고 있던 부동산 가격도 올라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도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의 은퇴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는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고용불안, 저금리, 자산가치 하락으로 굴릴 퇴직금도, 불릴 이자도, 빼먹을 자산도 없다. 연금만 믿기에는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층의 사정은 더 심각해 보인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65세이상 고령층의 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꿈꾸는 노후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은퇴생활이 시작됐다고 상상하고 가상의 노후생활을 체험해 보자. 수입은 끊기고, 부채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30~40년 가량의 기나긴 은퇴생활이 시작된다면 후반인생의 낭만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공포스런 처방이지만 100세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노후준비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 2014-01-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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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그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 장르 : 코미디, 드라마, 판타지, 멜로/애정/로맨스 제작국가 : 미국 러닝타임 : 82분 감독 : 우디 알렌 출연 : 미아 패로우(시실리아 역), 제프 다니엘스(탐 벡스터, 길 셰퍼드 1인 2역), 대니 앨로(시실리아의 남편 역)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감독 우디 알렌은 타임슬립(시간여행) 판타지를 참으로 현실감있게 풀어나간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타임슬립 영화들이 있었고 숱한 타임 슬립방법들이 연출됐었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든가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든가 절벽에서 떨어진다든가 타임머신 기계에 몸을 싣는다든가 등등. 아마도 수많은 작가들이 며칠밤낮 제대로 자지도 못해가면서 고민한 결과물들이었으리라. 어떤 작가들은 ‘웜홀’을 공부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고 어떤 작가들은 하늘과 땅의 조화를 따져가며 옛날 서적들을 샅샅히 뒤졌을 법하다. 하지만 우디 알렌은 그저 과거에서 온 자동차 한 대를 지나가게 만들 뒤 펼쳐진 세계를 받아들일지 말지 그 결정을 전적으로 관객들에게 위임한다. 그런데도 그 방식은 상당히 세련되고 또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그가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의 사고 메커니즘이 특별할 뿐. 오히려 그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러한 설정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것인지 확인하며 또 한 번 탄복해마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우디 알렌의 그러한 재능이 그 어느 곳에서보다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배경은 대공황 시대다.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일을 해도 쉽사리 돈을 모을 수 없는 팍팍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시실리아는 일이 서툰 탓에 매번 주인에게 핀잔을 듣고 실업자인 남편은 시실리아에게서 돈을 받아 딴 짓을 할 궁리밖에 하지 않는다. 삶이 지겹고 재미없는 그녀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 즉 영화에서 일상의 도피처를 발견한다. 그녀가 한 참 몰두하던 영화가 이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속 가상의 영화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레스토랑에서 해고까지 당해 어떻게 해서든 이 지독한 현실에서 탈피하고만 싶었던 딱 그 순간! 극장 객석에 앉아 있던 시실리아에게 그녀가 보고 있던 영화 속 주인공 탐 벡스터(제프 다니엘스)가 말을 걸어온다. “맙소사. 정말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군요. 우리 얘기 좀 해요.” 시실리아가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몇 번 씩 반복해서 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영화 속 주인공은 뚜벅 뚜벅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와 시실리아의 손을 잡는다. 우디 알렌은 평범한 여자가 영화 속 주인공과 현실 세계에서 만나게 된다는 설정을 위해 이렇게 탄탄한 구성을 하고 있다. 즉, 이 영화에서 판타지는 현실의 아픔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극적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 셈이다. 이후 주인공 탐 벡스터는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온다. 물론 번개가 치지도 않았고 주인공이 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한 것도 아니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일 따위는 더더구나 없었다. 시실리아가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을 때 그저 뚜벅 뚜벅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왔을 뿐이다. 이러한 우디 알렌의 대범함은 일상으로 판타지를 끌고 들어와 관개들로 하여금 쉽사리 판타지에 빠져들도록 유인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관객들은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 물씬 풍기는 주인공이 영화 밖으로 걸어 나와 열렬하게 사랑고백을 한다는 그 자체에 정신을 놓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학교 짱들이 “너 같은 여잔 처음이야. 네 마음에 들기 위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겠어.”하고 이야기하는 대신 “뒤져서 나오면 10원당 1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실 세계이니 말이다. 영화관에서 도망 나온 시실리아와 탐 벡스터는 근처 버려진 놀이공원으로 향한다. 버려진 놀이공원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공간이다. 더 이상 낭만을 찾을 여유가 없어진 사람들은 놀이공원을 황폐하게 버려두었고 그곳엔 쓸쓸한 낙엽만이 뒹군다. 이곳은 황폐한 시대의 상징이자 동시에 현실에 함몰되어 살아야만 했던 시실리아가 버려둔 그녀의 마음 속 마지막 낭만을 상징한다. 무작정 탐 벡스터의 손을 잡고 환상과 낭만의 세계에 들어왔지만 시실리아는 현실에서 떨어져 살아갈 수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아요? 지금은 나라 상황이 좋지 않아요. 불황이에요. 모두가 가난하죠.” 그렇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뒤 영화 속에서나 사용하는 가짜 돈을 건네고, 열쇠도 꽂지 않은 자동차 위에 앉아 “영화에선 (열쇠 없이도) 잘 가던데”하고 말하는 남자와 현실 세계에서 영원히 함께 할 순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직업이 구해지지 않아도)사랑으로 살 수 있어요.”하고 말하는 탐 벡스터에게 시실리아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한 마디 뿐이다. “그건 영화 얘기죠.” 탐은 그런 세실리아를 위로하며 부드러운 키스로 그녀를 안심시키려 한다. 하지만 탐은 갑자기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다. “불은 어디서 꺼지지? 키스가 강렬해지고 사랑을 나눌 때가 되면 불이 꺼지는데....” 현실에서 괴리된 탐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갈등하던 세실리아의 앞에 영화에서 탐 벡스터를 연기한 배우 ‘길 셰퍼드’가 나타난다. 도망간 탐 벡스터로 인해 영화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자 자기가 직접 탐을 잡으러 온 것. 처음엔 탐인 줄 알고 다가갔던 시실리아는 그가 진짜 배우 길 셰퍼드라는 것을 알고 몹시 흥분한다. 배우로서의 자신을 알아봐주는 세실리아의 모습에 길 세퍼드도 호감을 보이면서 둘 사이에도 묘한 분위기가 흐르게 된다. 그렇게 꿈만 같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 때 시실리아를 둘러싸고 있던 판타지의 공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편이 급기야 탐의 존재를 알게 된 것. 남편이 결국 탐과 함께 있는 시실리아를 찾아오면서 탐과 남편 사이에는 몸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하필 탐과 남편이 주먹질을 하고 있는 그 장소가 역설적이게도 교회 안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마치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이 신 앞에 절규하듯, 인상을 상징하는 탐과 현실을 상징하는 남편이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인다. 탐의 주먹에 결국 남편이 쓰러지고 잠시 탐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넘어진 남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려는 그때, 남편이 야비하게 공격을 해오면서 결국 탐은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그 후 시실리아와 탐이 나누는 대화에서 이 영화의 주제가 함축적으로 요약된다. 탐, “원래 내가 이긴 건데 반칙 때문에 졌어요.” 시실리아, “그래서 현실은 더 살벌한 거예요.” 시실리아는 탐을 돌려보내 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온 길과 우연히 데이트를 하게 되면서 점점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시실리아가 연주하는 우크렐라 소리에 맞춰 길이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그들은 교감하며 급기야 달콤한 입맞춤까지 나누게 된다. 탐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적인 모습을 동시에 겸비한 길에게 시실리아가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그러다 영화관에서 시실리아와 탐, 길 세 사람이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시실리아에게 급기야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시실리아를 사이에 두고 길과 탐이 서로 자신을 선택하라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 그런 둘 사이에서 시실리아는 어찌할지 모르고 고민하는데... 과연, 시실리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엔딩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엔딩으로 꼽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엔딩이 조금만 다르게 그려졌어도 이 영화는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디 알렌은 82분간 이 영화를 보여준 이유를 마지막 한 장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설명해 준다.
- 2014-01-07 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