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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인생] 아름다운 차인(茶人) 오양가, 한국 다도 전파를 위한 숭고한 발걸음
- 올해로 차납 서른을 맞이한 경희대학교 오양가(吳洋嘉· 60) 겸임 교수. 불가에서의 나이를 ‘법랍’이라 하듯, 그녀는 차를 만난 이후 나이를 ‘차납’이라 한다. 짙게 우러난 그녀의 다도 30년은 그윽한 향으로 우리 문화 곳곳에 번지고 있다. ‘차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뇌와 시련도 ‘차인’이라는 사명감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오양가 교수의 다도 인생을 돌아봤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능과 감성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차를 우려 그 향과 온기로 손님을 맞이했다. 그런 어머니를 도와가며 자연스레 차를 가까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땐 그것이 그저 평범한 우리나라의 예절인 줄로만 알았다. “성인이 되고, 행다(行茶)를 처음 봤을 때 ‘아, 내가 고향에 돌아왔구나!’라고 느꼈어요. 어릴 때 어머니랑 늘 하던 건데, 내가 그동안 서양문물에 젖어 다 잊고 살았구나. 내가 왜 플루트를 사랑하고 클래식을 더 고상하다 생각했을까? 그런 깨달음이 있은 후 우리 전통문화가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플루트보다 대금을 더 사랑하게 된 거죠.” 어머니가 끼친 영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때 무용가로도 활약했던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오 교수는 무용을 비롯해 발레, 체조, 양궁, 펜싱, 미술 등 다재다능한 끼를 발휘했다. “차는 ‘찻상에 표현되는 종합예술’과도 같기 때문에 우리 문화 전반에 대한 지식은 물론, 그와 어울리는 음악, 꽃꽂이, 손놀림, 복식, 도기 등 갖춰야 할 영역이 많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키워온 재능들은 제가 다도를 하며 다양한 영역을 복합적으로 아우르는 데 큰 힘이 됐어요. 어머니는 조개껍데기를 밥그릇으로 사용하시는가 하면, 돌담 밑에 달맞이꽃을 한 아름 키워 서치라이트처럼 꾸며놓곤 하셨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표현하신 분이셨어요. 그런 어머니의 감성이 제가 하는 모든 것들에 접목됐고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됐죠.” 격을 지킨 사람만이 그 격을 파할 수 있다 한국의 차 문화 보급을 위해 달려온 30년. 행다를 익히고 기본을 갖추기까지 10년, 다도를 연구하고 자신의 다법을 정립하는 데 10년, 그리고 창작 다법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익히는데 10년. 오 교수의 30년은 그렇게 정직하게 흘러갔다. “처음 10년은 좋든 나쁘든 배운 것을 거스르지 않고 똑같이 연습했어요. 혼자 차를 마실 때나, 아들에게 차를 줄 때나 누구를 만나도 순서를 지켜 차를 올렸죠. 절대 차를 쉽게 보지 않고, 그 누구보다 기본에 충실했어요. 기본이 배어 있어야 잘못된 것을 파악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계(契)도 지킨 사람이 파할 수 있듯, 무언가를 엄격히 지켜보고 행한 사람만이 필요에 의해 그 격을 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지를 경험해볼 필요가 있고, 그 후에 격을 파하고 자신의 것을 정립할 수 있어요.”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가장 한국적인 다도를 정립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하지만 다도가 언제 어디서 왔는지, 또 그 순서와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기록된 문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다도를 우리 전통의 다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죠. 하지만 일본에서 왔다 해서 ‘이건 안 해’가 아니라, ‘우리만의 것으로 가장 한국답게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차 다(茶)’ 자만 보이면 다 챙겨 봤고, 공부가 될 때마다 방향과 순서를 바꿔가며 그 행위에 대해 연구했죠. 다도를 하는 데 물 넣고, 차 넣고, 우리는 것은 전 세계가 같지만, 그 퍼포먼스 속에 한국의 생각, 한국의 몸집, 한국의 철학, 한국의 예술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누구와 견주더라도 자신 있으니까요.” 손끝에서 느껴지는 한국의 숨결 오 교수는 행다에서 보이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한국의 사상과 멋을 담아내기 위해 깊은 고뇌와 마주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그릇을 엎으면 그 집의 살림을 엎었다.’ 해서 그릇을 엎어두지 않았죠. 그런 풍습이나, 어른들의 이야기도 한국의 문화이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제 다법에 적용했어요. 그래서 일본 다도는 엎어놓은 잔을 바로 세우는 데서부터 시작하는데, 제 다법은 잔을 바로 세워둔 상태에서 시작하죠.” 오 교수의 행다를 본 이들은 그녀의 평온한 움직임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한다. 특별할 것 없이 스쳐 지나가는 동작 하나에도 뜻이 있고, 오 교수의 생각과 노력이 담겨 있다. “손놀림 하나에도 한국의 온화함과 곡선의 미를 살리려 했어요. 이 세상에 아무런 기물이 없을 때 인간이 물을 마시려면 어떻게 했겠어요? 양손을 모았겠죠. 거기서 영감을 받아 잔을 잡을 때도 옹달샘 담아내 듯 양손으로 잔을 감싸요. 다기를 잡을 때도 내가 아이를 안았을 때처럼 편안한 모습을 하려 하고, 손동작 할 때도 초가집의 곡선을 형상화하곤 했죠. 그렇게 무언가가 정립될 때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연습을 끊임없이 했어요. 당시엔 집에 전신거울이 없었는데, 밤이면 베란다 유리창이 제 거울이 됐죠. 밤이면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어디가 비뚤어졌는지,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게 곡선을 표현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또 연습했어요.” 사람의 본질을 사랑하게 하는 매개체, 차 전통문화를 전수받는 이들은 스승의 손사위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과 기풍까지 고스란히 담아내야 한다. 오 교수는 그런 제자들에게 ‘본질을 바라보는 눈과, 진심 어린 마음’을 강조한다. “손동작과 기교는 연습시키면 누구나 흉내는 낼 수 있어요. 하지만 영혼 없는 몸짓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죠. 사람의 본질을 바라볼 줄 아는 혜안과 그를 향한 진심을 겸비해야 해요. 육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죠. 겉으로 드러난 그 사람의 스펙이나 환경, 액세서리를 다 거둬낸 본질 있잖아요. 그걸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해요. 그 안목을 키우려면 ‘수신(修身)’ 즉, 자신을 다스리고 반성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하죠.” 사람을 위해 차가 존재하는 것이지, 차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 무엇보다 사람을 향한 마음이 중요하다. 그 마음을 차를 매개로 전하는 것이 다도의 본질이며, 그 속에서 차 문화의 아름다움이 꽃필 수 있는 것이다. “차는 그저 마셔서 입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원활히 하고 그 마음을 달래는 데 의미가 있어요. 다도를 통한 수신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매개로 상대를 만났을 때 함께 이루어져요. 내 인격체가 반듯하고 교양을 갖추었을 때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원활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함께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다도를 통해 수신을 이루고, 그 문화가 번지면 곧 자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의미가 있어요.” 존재의 이유, 차 그리고 가족 “그냥 전부 같아요. 내 인생의 전부. 가족 외에는 다 차였으니까요. 차가 머릿속에서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어요.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더라도 다 차로 귀결됐어요. 지금 보면 차에 너무 심취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른 취미도 즐기고, 모임도 가고 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 생활이 전혀 없었어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차에만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어쩜 그렇게 차만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내 청춘을 오로지 차에 미쳐 보내고 나니, 어느새 나는 늙어서 환갑이 돼버렸지 뭐예요. 돌이켜보면 ‘나도 참 힘겨웠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때는 힘들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차에 몰입해 있었지만요.” ‘차인’으로서 안아야 했던 힘겨운 세월에 가장 버팀목이 되어 준 것 역시 ‘차인’이라는 사명감이었다. 그리고 차인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오 교수에게 ‘가족’은 늘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는 오로지 ‘차’와 ‘가족’이라고 말하는 그녀. 하지만 차에 몰입했던 세월만큼 가족과 함께 나누지 못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늘 미안한 마음이다. 차가 있는 곳엔 늘 향이 함께 했기에 과거 우리 선비들은 향을 사르고 차를 마시며 꽃과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네 가지 아취(雅趣, 고아한 취미) 있는 일로 꼽았다. 그동안 차인들의 노력으로 차 문화는 뿌리를 내려 뻗어가고 있는데, 향은 아직 그 쓰임과 문화에 대해 생소해 하는 이들이 많다. “차가 있는 곳에 향이 있고, 향이 있는 곳에 차가 있어요. 늘 함께 하죠. 하지만 항상 차를 해 오면서도 ‘향’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동안은 차를 연구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에 바빠 향을 더불어 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이제는 향에 대한 갈증을 채워보려 해요. 앞으로는 다도를 해왔듯 향도를 해나갈 계획이에요.” 한국의 향도는 활발한 태동을 일으키고 있다. 오 교수 또한 지난 자신의 다도 발자취를 거슬러 그 시작과 나란히 향도 문화 전파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처음 하는 일에 대해 두려움은 없어요. 어떤 일이든 처음은 있는 것이고, 두 번 세 번 하다 보면 프로가 되는 거잖아요. 향도 시연을 창작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다도가 그랬듯 향도 역시 기본을 익힌 후 연구를 통해 창작해야 해요. 대만이나 중국, 일본의 향도를 살피고 공부를 해서 가장 한국적인 향도를 탄생시켜야죠.” 차인(茶人) 30년 세월이 내게 남긴 것 “전통문화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고독하죠. 남이 알아주지 않고, 돈도 안 되고.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오로지 차 문화 보급을 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초등학교 운동회부터 OECD 장관 접빈 다례, 조정사신연 행사 등 수많은 행사를 치러냈지만 정말 힘든지 모르고 했어요. 거의 자비로 봉사하다시피 해왔지만, 그날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차 문화가 있다고 생각하면 흐뭇하고 그 자긍심은 이루 말할 수 없죠.” 행사장 테이블에 마련된 차를 즐기는 것이 이제는 생소한 문화가 아니다. 이처럼 ‘티 테이블 셋팅’ 에 대한 익숙함이 싹트기까지 오 교수는 끊임없이 곳곳에 다도의 씨앗을 심고, 애정의 물줄기를 적셔주었다. 모든 것을 바쳐 한국의 다도를 각인시켜 왔지만, 정작 오 교수 자신은 소박하게 남길 바랐다. “나중에 우리 후배들이 나를 떠올렸을 때 ‘아, 오양가 선생님은 참 아름다운 차인이었어’라고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저 그렇게 ‘아름다운 차인’으로 남았으면 해요.” 천의보다법은 차문화와 우리나라 보자기문화를 접목한 오양가 교수의 창작 다법이다. 천의보라는 명칭은 하늘의 보배로운 옷자락이라는 뜻으로, 복의 기원과 함께 소중한 기물을 싸는 보자기에 차를 우릴 다완(茶碗, 차를 마실 때 쓰는 그릇)을 싸 더욱 귀중함을 나타냈다. 보자기를 싸면 상보를 대신하고, 펼치면 찻상이 된다. 행다 시에 중복되는 행위와 기물을 최대한 줄여 절제미와 단순미가 돋보인다.
- 2015-01-2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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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1] 오래 사는 길 VS 제대로 사는 길
-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 오전’을 거쳐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 존 쿠퍼 포우어스는 노년에 어느 정도의 품위와 행복을 누리면서 살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철학이 절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인생 오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냐를 찾는 것이 아니고 바람직한 모습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반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삶이었다면 후반의 삶은 거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 후반전을 사는 어른들은 후배에게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조언을 한다. 그들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후반전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그분들의 삶은 그분들 자신뿐 아니라 젊은이들과 우리 사회에 영향과 축복이 되고 있다. 후배들에게 하는 보배로운(?) 행동이 힘이 되고 후배들은 근사하고 당당하게 여생(餘生)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마중물을 찾게 된다. 은퇴한 고등학교 교장이 정년퇴직한 다음 날부터 학교 청소원으로 나타난 경우가 있었다. 하루에 2시간씩 복도 청소, 쓰레기 줍기 등 청소를 해주는 봉사로 아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을 전해주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일을 할 때, 열심히 할 때 그 일을 사회의 나눔과 봉사에 접목을 하면 더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을 알기에 남은 삶을 학생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 교장선생은 오래 사는 것보다 멋있게 늙어가는 것이 간절했기에 그리고 나눔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이기에 청소원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배울 것이 남아 있다 후반전, 이제는 그냥 오래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오래 살면서 무언가 배우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배울 것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나누고 베풀면 배우게 됨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인생은 무위자연, 스스럼없이 살아가며 마음의 풍요로움을 얻는 것이 인생 후반부의 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우리는 나눔과 비움의 지혜를 배우며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보낼 수 있는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고 싶어 한다. “나눔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마음, 웃음, 지식, 말, 손길 등 다양합니다. 나를 위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내가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즉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가진다면 나누는 길이 열릴 것이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와 나눔이 습관이 되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손욱 회장은 노후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자신이 알고 쌓아 온 것들을 나누고 기부하면 기쁨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많습니다. 우선 나이가 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걸 확인하고 무리한 욕심을 안 부리고 만족할 줄을 알게 되죠.” 만족할 줄 알게 된다는 것, 백만기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은 나이 듦에 대해 그렇게 명쾌한 정의를 내렸다. ‘놀 줄 아는’ 멋진 어른이다? , “나이 든 분들이 기껏 한다는 게 모여서 골프 가거나 등산하거나, 고스톱 친다든가 하는 정도면…. 사실 우리나라의 현재 은퇴자 문화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하는 놀이가 별로 없어요. 경제적인 발전에 비추어 문화적인 면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백 교장은 은퇴 후 분당FM방송에서 동호인 클럽과 문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4년 동안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백 교장은 음악애호가로 시작하여 드럼, 피아노, 클라리넷, 콘트라베이스 등 직접 악기를 배우고 밴드를 만드는 것까지 시도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놀지 못한다는 말은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성싶다. 악기는 ‘놀 줄 아는 멋있는 어른’,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예다. 은퇴자들이 제대로 노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백 교장은 설명했다. 그리고 제대로 노는 법은 ‘어른다움’을 배우는 일환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은퇴를 하고 나면 어른의 길을 가느냐 노인의 길을 가느냐의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이게 됩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하잖아요?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이 돌아가신 이후 사회적 어른이 부재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줄 아는 어른의 부재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의미 있는 일로 ‘인생의 오후’를 만끽하고 싶다 백 교장은 19세기 폴란드 시인 노르비트가 밝힌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세 가지 필요한 것들’의 균형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는 먹고 살기 위한 수입, 두 번째는 재미있는 일, 세 번째는 의미 있는 일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가 부족하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되는 것이고 두 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는 것이다. 어른이 없다는 것은 먹고 사는 일과 재미있는 일은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다고 백 교장은 지적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가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손 회장은 “노인은 자기만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죠. 반면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게 되죠”라고 최고의 노년을 보내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신이 좋아하는 건 뭔지를 물어 보세요. CNN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2%가 여가 시간에 TV만 본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모르기에 TV를 보게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라고 해서 다르지 않죠.” 악기를 배우는 것도, 저작물을 하나 남기는 것도 모두 일정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노인이 되지 않고 어른이 되는 길, 거기에는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부단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라고 백 교장은 덧붙였다. 노인은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가꾸고 노력해야 한다. 오래 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눈부신 삶의 변곡점에 서ek 태어나 관계 맺고 살다 죽는 인간의 삶의 경로는 변치 않고 우리는 대체로 엇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살다 간다. 그래서 인지 생의 새로운 국면, 삶의 이정표 앞에서도 우리는 흔한 일상으로 당연시하며 무심히 넘기기 일쑤다. 성공적인 제2인생은 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기를 추구한다. 그러다가 눈부신 삶의 변곡점에 가다보면 보람, 나눔, 행복, 소통, 활동, 일, 공부, 참여, 관계, 건강, 취미, 문화, 배려, 승계, 후배교육, 인생 마무리 준비 등 지극히 평범했던 생의 순간들이 어느 새 ‘의미’있는 삶으로 변환되며 인생이 새로운 가치로 다가오게 된다. 이러한 제2인생을 맞이하려거든 보람, 열정, 관리, 여유, 준비라는 5대 키워드로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신중년의 행복은 건강과 취미에 달려 있다 해도 무방하다. 거기다 성찰과 관리를 잘하는 친구와 어울려야 활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즉, 철저한 자기관리와 열정적인 마인드가 있으면 세상만사를 지긋이 바라보는 여유가 비움의 미학을 문화로 채우는 가치 있는 삶으로 발효되기 때문이다. 제2인생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소신이나 긍지를 갖는 것이다. 학생 때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좋은 학생이고,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의 결정이 옳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면 베스트 사원이었다. 그러나 정년 후에는 주위의 시선이나 평판보다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소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오후’는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후반전이 낙원이라면 가치 있는 삶을 좇을 필요도, 성찰을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너무나도 불확실하고 혼란스럽다. 이러한 혼돈의 시기일수록 자기를 낮추고 공감하고 배려를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공적인 제2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믿음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행복하고 멋진 제2인생이 찾아올 것이다.
- 2015-01-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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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어머니]“어머니는 평생 외로운 여자였어요”
- ‘총체적 예인.’ 박윤초 명장을 칭하는 문화예술계의 표현이다. 세기의 명창이었던 만정 김소희 선생의 딸로,그녀의 예술적 기질을 모두 가진 듯한 박 명창은 판소리, 가야금 병창, 전통 춤 등 많은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TV 출연과 같은 요란한 활동과는 철저하게 담을 쌓은 채 자신의 예술 세계를 더욱 공고하게 다듬으면서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는 박 명창의 열정은 어머니를 향한 사무침을 시대의 소리꾼답게 불사르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가 말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김소희. 본명은 김순옥. 아호는 만정(晩汀). 지난 세기를 살았던 한국 사람이라면 그 이름 익숙할, 5척의 작은 몸에서 나오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소리를 가지고 있던 명창. 고창에서 태어나 6개월간의 배움으로 14살의 나이에 남원명창대회 1등을 거머쥔 김소희 씨는 일제 강점기에 이미 레코드 회사들 사이에서 섭외 1순위였다. 또한 판소리뿐만 아니라 춤, 악기 연주, 서예 등에서도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어 국악계의 대모로 불리웠고 1964년에는 인간문화재 5호로 지정된 김소희 씨는 세계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이었다. 1995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후학들의 존경은 그녀의 영향력이 격함을 알려준다. 만정 김소희 씨에겐 딸이 한 명 있다. 바로 박윤초 명창이다. 그녀는 마치 어머니처럼 자연스럽게 명창의 자리에 올라 국악계의 거목이 됐다. “제 어머니는 천부적인 목소리를 지닌 소리꾼입니다. 성음이 청미한 애원성으로 심금을 울렸죠. 여기에 삶과 예술에 대한 자기성찰과 노력이 더해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창이 됐습니다.” 고맙디 고마운 ‘어머니이자 스승’ 1944년생인 박 명창은 20년 전부터 목이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여전히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걸 보면 납득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어머니께서 1995년에 돌아가시면서 제게 미안하니까 목을 주고 가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선몽을 자주 꿉니다.어머니가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나쁜 일을 암시해 주는 꿈을요. 어머니께서 곱게 화장하고 푸른색 한복을 입고 업어달라는 꿈을 꾸는 날에는 제가 다리가 아파서 일을 그르치게 된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겨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일기를 써 왔다는 박 명창은 자신의 역사와도 같은 일기장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기장을 보여줄 수 있겠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게 말이 됩니까”라는 말이 시크하게 돌아왔다. “일기장에 어머니에 대한 글을 투덜투덜 썼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그 글들이 시가 되어 있더군요.” 당연한 일이었지만, 만정 김소희는 박 명창의 어머니인 동시에 스승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시절 뉴욕타임스에 보도되었듯이 마리아 칼라스를 능가하는 분이었어요. 어머니는 제게 판소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발림(춤)을 잘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죠. 다행히 저는 발림의 중요성을 포인트로 하는 편이라 소리는 어머니보다 형편없지만 발림은 제가 더 잘했어요.”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어머니의 외로움 그러나 국악인이라는 쉽지 않은 삶.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평범한 아낙으로 요조숙녀의 길을 가지, 가시밭길 같은 국악인의 길은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생전에 말했다고 한다. 와 같은 영화에서 봤던 치열하고 기구한 국악인들의 삶을 기억하는가. 그런 삶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박 명창이 기억하고 바라보는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에는 애증의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천상 여자였지만, 사랑을 받는 걸 못했어요. 제가 남편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아보니 알게 됐어요.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으셨던 어머니가 외로운 여자였다는 걸.” 박 명창의 아버지인 박석기는 거문고 산조의 달인으로 부잣집 둘째 아들에 동경제국대학교를 나온 재사였다. 그는 담양에 별당을 하나 만들어서 전국에서 똑똑하고 장래성 있는 사람들을 뽑아 모아서 국악을 가르치기로 했다. 국악을 지켜야만 문화적으로 일제에 지지 않을 수 있다는 뚜렷한 민족의식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거기에 뽑혀서오게 된 어머니 김소희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 게 이 모든 인연의 시작이었다. 재회, 어머니와의 전쟁이 시작되다 그러나 지성과 남성적 매력을 갖춰 인기가 많아 ‘걸물’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애정을 많이 주지 않았다. 어머니 또한 그토록 여성스러웠음에도 정작 사랑받는 법은 몰랐다. 결국 아버지의 바람기에 분노한 어머니는 박 명창이 2~3살 되던 때 박 명창을 두고 서울로 올라 갔고 박 명창은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와 더 친할 수밖에 없었죠. 제가 요조숙녀로 예쁘게 크시길 바랐던 아버지였어요. 그분은 노래를 돈 받고 팔지 말라고 가르치셨죠. 하지만 아버지는 6·25 피난길에서 얻은 병으로 제가 열 살 때 돌아가셨어요.” 박 명창은 12살이 됐을 때, 다시 어머니를 만나게 됐다. 육당 최남선 선생의 막내 동생이고 박 명창을 잘 살펴 주던 큰어머니가 박 명창을 이끌어서 어머니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오매불망 저를 보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를 보고 싶으면서도 함께 살고 싶진 않았어요. 나쁜 애였지(웃음). 그래서 만나긴 해도 서먹서먹했죠. 그때부터 어머니와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근본부터 완전히 달랐던 모녀 “저년은 사막에 내놔도 안 죽고 살 거다.” 어머니가 박 명창을 가리켜 했던 말이란다. 거친 표현이지만 그 정도로 박 명창을 믿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런 굳은 믿음이 있었음에도 만나면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건, 원래 서로의 성정부터가 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색깔부터가 달라요. 저는 쥐색이라든지 어두운 색을 선호하는데 어머니는 주황색, 분홍색 같은 밝은 색들을 좋아했어요. 눈썹이 좋은데도 거기에 또 뭔가를 그리려고 하시고. 완전 달랐지. 저는 어머니 속에서 나왔지만 아버지 딸이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대로 박 명창을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 근저에는 어머니 나름의 걱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너는 세상에 의해 멍들 거라고 하시며 저를 길들이려고 하셨죠. 하지만 전 절대로 엄마 스타일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어요.” 완벽한 소리꾼으로 살아간다는 고독 그녀는 어머니가 한 말 중 ‘나는 슬퍼도 기뻐도 그리워도 외로워도 소리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있는 명창으로서의 무게만큼이나 말 그대로 예인으로서의 생활이 인생 그 자체였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제자들이 많았고, 그 제자들이 좀 성장했다 싶으면 어머니를 밟으려고 그러고. 저는 그게 보였어요. 하지만 제가 그걸 지적하며 어머니께 뭐라고 하면 제가 그들을 질투하는 거라고 화를 내시니….” 국가를 대표하는 명창의 딸이라는 입장 때문에, 그리고 계속해서 부딪치는 혈육이기에 기운이 빠져서, 어머니는 박 명창을 일대일로 못 가르쳐줬다. 그래서 박 명창은 몰래 어머니의 소리를 녹음기에 녹음해서 혼자 집에서 들으며 소리를 배웠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목소리의 키를 높일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소리를 높여서 부르곤 하셨습니다. 그거 사람 죽이는 일이에요. 그런데 어머니는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인지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생 고달팠던 건지도 몰라요. 그에 비하면 저는 소리를 즐기는 편이었죠. 그렇게 높이지 않아도 하늘에서 내린 목소리라는 평을 받던 분이셨는데.” 하고 말하는 박 명창의 목소리에선 늦은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한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박 명창은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와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고, 대신 그 정이 벌판의 풀처럼 부드럽고 강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뒤늦은 깨달음은 안타까움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멈추어만 준다면 죽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어머니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은 죄를 빌 최소한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이승에서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굴곡 졌는지 알고 있는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안식을 바란다면 죽어도 품어서는 안 될 소망입니다.” 78세의 어머니를 보내면서 박 명창은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고 자책했다. 할 수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긴 세월 동안 맺히고 맺힌 한의 매듭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될지를 몰라서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한마디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가 없지만, 사랑과 미움의 뒤엉킴이라고밖에 표현이 안 됩니다. 평생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무슨 천형이라도 되는 양 남이 볼까봐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꽁꽁 숨겨놓고 거칠고 드센 미움으로 어머니를 대했습니다. 마음 밑바닥에 있던 내 삶의 불행의 근원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를 위한 후회 없는 20주년을 만들고 싶어 어머니에 대한 애증을 해독하기 어려운 상형문자라고 표현하는 박 명창은 자신의 부족했던 바를 늦게라도 채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김소희라는 거목을 둘러싼 주변의 잡음은 그녀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같은 일을 하는 명창들과의 알력들도 있었죠. 어머니 추모 1주기 때 어머니에 대한 사무침이 워낙 강했어요. 그래서 후원을 받아서 넉넉하게 할 수 있었는데, 그때 그런 제 행동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허무했죠. 저는 딸로서의 도리를 다하려고 하는 것뿐인데.”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내년 2015년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된다. 박 명창은 이번에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모로 고민하던 차에 이명희 선생님, 김미숙 씨 등 진정으로 어머니를 사랑하는 분들로부터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시금석이 되어 내년의 20주년은 부끄러 움 없이 치르고, 그 이후로는 그분들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알림. 가슴 한 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리움, 안타까움을 쏟아내고 싶을 때 기자를 부르세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두 스푼, 추억 세 스푼 담아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기꺼이 차 한 잔 마주하고서 부모님을 향한 마음을 온전히 읽어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불러보세요. 제보 받습니다.
- 2015-01-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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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⑥]日 꿈의 라이프 위협하는 6가지 강적 퇴치법
- ‘인생 90년’의 시대를 맞이한 장수사회 일본, 10월 13일 간행된 경제시사지 [프레지던트(President)](통권 884호)는 특집 ‘부자 노후 빈곤 노후, 당신은 어느 쪽?’을 기획해 정년 후 꿈의 라이프를 위협하는 6가지 강적을 정리하면서 그 퇴치법을 소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후의 불안감을 없애는 전문가의 조언을 포함해 그 해소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연금 감액 수입 대비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일본의 소득대체율은 일본 정부가 설정한 표준세대의 경우 평균 수입 월 34만8000엔 가운데 62.7%를 차지한다. 연급 지급은 21만8000엔이다. 이것이 전문가가 추정한 재정 검증의 결과, 최악의 경우 2015년에는 50% 수준인 약 17만 엔으로, 나아가 2072년 35% 수준인 약 12만 엔으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됐다. 닛세기초연구소의 주임연구원 나카시마 쿠니오(中嶋邦夫)씨는 “연금 감액에 대응하는 법은 ①절약하기 ②계속 일하기 ③돈 모으기의 세 가지 선택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절약은 어렵고 저축이 없으면 일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하는 것에 저항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30년 후에는 인구의 약 40%가 65세 이상이 된다. 국민의 40%가 일하지 않으면 나라가 꾸려지지 않기에 고령자라도 일하는 게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잡지는 최악의 경우로 연금 삭감률을 후생연급 22%, 기초연급(국민연금) 60%로 내다보면서 기초연금만 수령하는 자영업자와 후생연금 및 기업연금을 수령하는 회사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생겨나 ‘세대간 격차’만이 아닌 ‘세대대 격차’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연금감액을 전제로 한 충분한 저축액은 얼마일까? 파이낸셜플래너 고야 요이치(小屋洋一)씨는 “3000만 엔 정도는 준비해 뒀으면 한다”고 조언하면서 “연금생활자는 평균 매년 70만 엔 정도 지출 초과로 퇴직 후 25년을 지낸다고 가정한다면 합계 1750만 엔이 필요하며, 연금지급액이 20% 줄어들 것을 가정한다면 1000만 엔이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경단련(경제인단체연합) 소속의 대기업은 평균 2000만 엔의 퇴직금이 나오지만, 중소기업은 평균 1000만 엔 정도로 그중에는 지급하지 않는 기업도 있기에 집이 없고 개호를 받는 경우 더 추가 비용이 발생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민간의 연금상품과 저축으로 미리 노후에 대한 만전의 준비가 필요하겠다. 둘째, 팔리지 않는 집 일본 총무성의 2013년 주택 및 토지통계조사에 따르면 국내 총주택수 6063만호 가운데 13.5%가 빈집이라고 한다. 부동산 컨설턴트 나가시마 오사무(長嶋修)씨는 “고령자가 돌아가시면 빈집으로 방치되고, 젊은 사람들은 신축 맨션에 살려는 구도이다. 게다가 현재 일본의 주택소유율은 약 60%이지만, 집 구입 의향이 저하돼 앞으로 더욱 떨어질 거로 예상된다”고 밝히면서 “확실하게 가격 상승이 예측되는 부동산과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경우는 제외하고 팔린다면 지금 당장 파는 게 좋다. 향후 20년 일본의 주택가격은 매년 2%씩 하락된다는 계산도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올해 8월부터 실행된 ‘개정 도시재생 특별조치법’의 이른바 ‘콤팩트시티정책’에 따른 우대조치를 받을 수 있는 지역의 물건을 노려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콤팩트시티란 시가지의 공동화 현상을 해소해 범위를 작게 유지하면서 걸어다닐 수 있는 범위의 생활권에 커뮤니티를 재생해 살기 편안한 마을 만들기를 목표로 한다. 또한 현재 지은 지 20~25년이 넘으면 가치가 제로로 평가받고 있지만, 내년부터 바뀌는 중고주택에 대한 건물평가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건축 햇수는 같아도 건물의 질과 노화 정도 등에 따라 자산 가치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산 가치가 평가받는 시대가 온다고 밝혔다. 셋째, 의료비 부담 증가 올 4월부터 70~74세 고령자의 의료비 자기 부담률이 10%에서 20%로 올랐는데, 현재 국민이 병 치료를 위해 의료기관에 지불한 의료비(국민의료비)는 연간 약 40조 엔으로 그 가운데 반 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자 의료비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자료에 따르면 20세에서 59세까지는 자기부담과 보험료 합계가 의료비보다 적어 흑자이지만, 60세부터는 의료비가 늘어나 적자이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는 국내총생산(GDP)이 성장률을 앞질러 공적비용 부담은 2025년에 현재보다 10조 엔 이상 늘어나 25조 엔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현역 세대의 세금이 고령자 의료비를 대신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건강보험제도의 상황도 심각해 국민건강보험은 2012년도 3000억 엔 남짓 적자를 냈다. 건강보험조합 연합회에 따르면 일반 기업의 회사원이 가입한 건강보험조합도 1419개 중 67%가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파이낸셜 플래너 나이토 마유미(內藤眞弓)씨는 “민간의료보험은 의료비 부담이 아무리 무거워져도 입원 등의 계약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본의 공적 의료보험 보장이 잘돼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의료비만으로 사용될 돈이 150만 엔 정도 있으면 충분하다. 보험에 납입할 돈을 저축으로 돌려 노후를 준비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일본에서는 국민개보험제도 가운데 ‘고액요양비제도’가 있어 보험 내라면 아무리 고도의 의료를 이용해도 의료비 10만 엔 정도를 지불하면 되기에 의료비가 수백 만엔에 달하는 경우는 없다. 넷째, 간병 비용 증가 일본의 간병보험제도는 2015년에 개정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베이비붐세대가 후기 고령자가 되는 2025년을 목표연도로 한다. 현재의 정책 방향성인 ‘의료에서 간병으로(자립지원)’와 ‘시설에서 주택으로’가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간병 초점은 ‘어떠한 간병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거기에 얼마나 비용이 들까’로 옮겨지고 있느냐다. 공적시설의 특별 양호노인홈에 입주할 경우 매달 9만6000 엔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설도 부족하고 희망자도 많아 대기해야 한다. 민간시설의 경우는 도쿄를 예로 월 14만8000 엔에 식사비 등 비용을 포함하면 매달 부담액은 20만 엔 정도. 재택 간병의 경우에도 6만 5000 엔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는데, 금전적 비용만이 아니라 간병 때문에 가족이 구속되는 비용도 상당하다. 간병시설 이용자가 보통 입주 후 평균 7년 정도 산다고 보는데, 따라서 재택 간병의 경우도 같은 정도의 기간을 상정하고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문가는 자신의 힘으로 배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휠체어에서 혼자 일어나 변기에 이동하는 정도의 근력은 재활 운동을 하면 되돌아온다며 고령자가 퇴원하면 가족들이 밥상 옆에서 식사를 돌보려고 하는데 과보호로 인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돼 갈수록 쇠약해진다고 덧붙였다. 각종 간병시설에서도 재활운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같은 비용이 든다면 1일 서비스라도 재활운동을 중시하는 시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다섯째, 무직 자식 일본에서는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하는 히키코모리, 전혀 일하려는 의사가 없는 니트족(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자식을 둔 가족이 늘고 있다. 니트의 고령화에 따른 가계의 경제적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2014년도 학교 기본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등교’를 이유로 30일 이상 장기 결석한 초등·중학생은 약 12만 명으로 전년도보다 약7000 명이나 증가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들이 그대로 은둔형 외톨이로 이어지고, 취직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프리타(아르바이트로 평생 생계를 이어가려는 사람을 일컬음)와 파견노동자, 그리고 가사돕기도 잠재적 무직이라고 하겠다. 전문가는 부모가 자신의 사망 후 구체적인 자식의 생존 계획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 자식 나이 40세가 포인트라고 지적한다. 자식이 젊을수록 계획이 장기에 걸쳐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 금액도 커지고 현실감도 점점 옅어지는데, 향 후 자식이 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연금만큼은 체납하지 않고 꼬박꼬박 내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다만 부부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사망할 경우 연금수입이 줄어들기에 1명분의 생활비가 높아지고 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부모 사망 후 자식이 혼자 생활하기쉬운 주택 확보를 강조했는데, 넓은 집은 광열비와 유지비, 세금 등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24시간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작은 중고 맨션을 고르되 단독주택이라면 건평수를 줄이고 남은 토지를 팔거나 주차장으로 빌려준다든지 월세용 주택으로 재건축해 수입원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다. 여섯째, 정년연장 및 재고용 일본에서는 2013년 4월 ‘개정고령자고용안정법’이 실시돼 기업에 대해 희망하는 사원 전원을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시켰다. 이 법률은 노령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에 맞춰 고용 연령의 상한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인정한 조치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약14만 개 회사 가운데 65세 이상 일할 수 있는 기업은 66.5%로 종업원 301명 이상의 대기업은 48.9%에 머물렀다. 나아가 정년 폐지를 선택한 기업은 2.6%, 70세 이상 일할 수 있는 기업도 전체의 18.2%에 지나지 않았다. 법률 내 ‘계속고용제도의 도입’의 실상을 보더라도 주3일 근무, 두 사람이 한 명분의 업무를 담당 등의 근무형태를 합리적인 재량 범위로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어 정년 후 일의 내용이 크게 변화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후생노동성의 조사에서도 정년 후 22.3%는 계속고용을 희망하지 않았고, 1.2%는 희망했지만 조건이 안 맞아 계속 고용되지 않았다. 경영인사 컨설턴트 에노모토 마사카즈(榎本雅一) 씨는 재고용은 보너스도 없고 연수입도 40%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라며, 정년의 연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재고용으로 연수입이 큰 대기업에서 일했던 사람일수록 삭감액이 커서 60% 정도 줄어드는 회사도 드물지 않다고 밝혔다. 급료의 변화뿐만 아니라 많은 부하를 거느렸던 관리직이 위탁 형태로 재고용돼 계약직으로 신입사원과 같은 마찬가지로 대우받으며 상사가 된 아랫사람의 꼼꼼한 지시를 받아야 한다며 꾹 참고 버틸 것인지 때려치우고 그만 둘 것인지의 문제도 있다. 또 인간관계와 든든한 파벌로 출세해 온 ‘회사 인간’보다는 업무를 통해 전문성을 익혀온 ‘일하는 인간’이 회사 내외에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기에 기술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 환영받는다며 명확하게 정년 후 플랜이 있는 사람을 빼고 가능하면 회사에 꽉 달라붙는 것이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이밖에도 정년 연장, 재고용 이외에도 독립해 현역시대의 전문성을 확대시킨 인사, 회계, 영업, 판로 개척, 경영 조언 등을 대행하거나 하청받는 ‘확대고용’의 형태도 제안했다. 끝으로 “경험이 없는 곳에 도전해도 성공은 어렵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 정년을 경험 리셋이 아닌 일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확대고용’을 생각해 봐도 좋겠다”고 덧붙였다.
- 2014-12-0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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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사가 함께하는 북人북] '국화꽃향기' 작가 김하인 <이별 없는 세대>에 살다
- 세상이 메마를수록 순수한 감성에 목이 마른다. 가슴을 적시는 애잔한 사랑이야기에 울컥해보고 싶을 때도 있다. 눈물로 이별을 고했던 나의 지난 사랑도 짠하게 아름답기만 하다. 가 생각나는 까닭도 그러하다. 김하인의 감성멜로에 추억을 떠올리는 이가 있듯, 그에게도 순수하던 그 시절의 책갈피 같은 책 한 권이 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의 다. 폐허냄새가 나는 아름다움을 지닌 아이로부터 20대 중후반 쯤 만나던 여자에게서 를 선물 받았다. 문학을 정말 좋아하던 아이였다. 술도 같이 많이 마셨고, 담배도 그 아이에게서 배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혼자 담배를 필 적이면 가끔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는 그녀를 ‘폐허냄새가 나는 아름다움을 지닌 아이’로 기억한다. 그런 그녀를 만나던 시절, 그는 한창 시를 썼다. “오늘 같은 가을날, 술자리에서 그 애가 ‘오늘 날씨가 쌀쌀해’, ‘단풍잎이 예쁘다’라고 운을 띄우면 나는 술을 먹다가도 즉석에서 시를 썼다. 목소리가 좋았던 그 여자는 내가 쓴 시를 바로 낭송해주곤 했다. 그 아이의 시를 들으면서 술을 마시면 술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대학시절 신춘문예 3관왕을 거머쥔 그였지만 막상 문학인의 길은 맹렬한 정글과도 같았다. 사범대를 나온 그의 동기들은 이미 교사가 되어 안정적인 수입과 사회인으로서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꾸준히 글을 썼지만 이렇다 할 수입이 없던 그 시절. 가난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아이와는 오래 만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래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내 자신이 비장하고 멋있기는 하다. 나는 그때 내가 마흔까지 살면 잘 살리라 생각했다.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기 때문에 건장한 형들이 많으니 나 하나쯤은 내가 꽂히는 것(문학)에 의해 멸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좋게 말하면 독기였고, 형들 표현으로는 ‘너는 병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걸 수 있는 것이라곤 달랑 목숨 하나뿐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그는 어느 시점엔가 선회를 했다. 더 이상 문학지상주의에 취하지 않고 ‘문학도 직업이고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 사랑 이야기 쪽으로 돌아섰다. “그때를 떠올려 보면 나도 나름 풍부한 연애를 했다. 내가 보낸 여자들을 떠올려보면 그때의 애틋함이 살아나고, 그런 감정과 이미지를 하나씩 가져와 멜로소설을 썼다. 그랬기 때문에 글을 쓰며 인위적으로 짜 맞추려 하지 않아도 감정의 흐름을 표현해 낼 수 있었다.” 이별 없는 세대로부터 그는 를 처음 읽고 ‘문체가 굉장히 좋고 미려하다’ 느꼈다. 책의 저자 볼프강 보르헤르트(1921~1947)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느낀 단상들을 회화적으로 풀어낸다. 존재에 대한 성찰, 외압적인 폭력과 전쟁 등에서 오는 무위와 슬픔에 대해 구어적 표현보다는 미세한 느낌만을 담았다. 그는 글을 읽노라면 ‘금속적인 전쟁의 차가움’, ‘북유럽 날씨의 칙칙함’, ‘담배연기’ 등이 떠오른다 했다. “저자는 굉장히 서정적인 사람인데 전쟁을 경험한 뒤 상처를 입고 ‘사는 게 뭘까’라는 허무함에 빠지게 된다. 요즘 사람들도 출근전쟁, 취업전쟁 등 일상에 전쟁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며 숨 가쁘게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작은 전쟁들 속에서 인간이 ‘왜 사는가’에 대한 그 본질, 자아와 타인의 관계 특히 자기 내면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인간이 통찰력이 있으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의 연속을 보듬고 살아갈 수 있다. 때문에 당시에도 현대에도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통하는 것이다.” 그는 존재의 성찰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내가 왜 사는가’, ‘국가와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인간의 야망과 폭력은 무엇인가’라는 구조적 성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책에서 답을 주지 않지만, 한 번쯤 고개를 숙여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게 시작이다. 여기에 자신의 지식의 총량을 동원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나에 대해 측은히 생각하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주변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측은지심이 발동하면 그게 인문학으로 가는 본질이다.” 그는 를 ‘아주 순수하고 맑은 청년정신이 느껴지는 책’이라 표현했다. 처음 읽었을 때와 자신의 상황은 달라진 부분은 있지만, 존재의 무의미성, 자기성찰 등에 있어서 주는 메시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내 나이가 쉰을 넘었지만 내 생각의 70~80%는 여전히 20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그때의 사고와 정신의 힘으로 평생을 산다. 나이가 들어 외향이 변하고 강개함은 늘어났을지 몰라도 내 마음은 늘 20대다. 우리 아버지가 ‘사람 마음은 늘 안 늙는 거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 당시는 이해를 못했다. 어른이 되면 풍채도 우람해지고 빌딩도 짓고 생각도 점점 거대해지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김하인으로부터 그는 최근 ‘김하인 아트홀’을 운영하고 있는 강원도 고성에 국화꽃향기 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강원도에는 민간협동조합이 262개나 있다는데 고성에서는 ‘국화꽃향기’가 첫 번째 민간 협동조합이다. ‘첫사랑’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만큼 자연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지역인데 침체되고 움직임이 없어 안타깝다.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국화꽃향기 협동조합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고성을 찾아 삶을 재미나고 즐겁게, 또 가능하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문화를 향유하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그에게는 또 다른 바람이 있다. 올해 말 를 시작으로 그동안 사랑받았던 그의 소설들을 다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초창기 때 내가 쓴 글들을 보면 문장력도 어설프고, 치기어린 모습도 보이지만 옹달샘을 발견하듯 아주 깨끗하고 순수한 맛이 살아 있다. 때문에 나는 당시 내 글들에 대해 별로 고칠 생각이 없다. 세상이 흉흉하고 악이 판을 칠수록 그 반대 끄트머리에 있는 이들은 순수로의 회귀를 원한다. 그들에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맑은 수채화 같은 내 초창기 작품들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 2014-11-2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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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②] 일이 곧 삶의 엔진이어라
- 돈은 중요하지 않다. 일자리가 나를 움직인다. 대기업 임원에서 숲 해설가가 된 김용환씨를 만났다. 많은 돈을 받지 않지만, 퇴근하면 다시 출근할 생각에 설렌단다. 두 번째 직장에서 퇴직한 후 약 4년이 흘렀다. CJ 제일제당 상무, 스파클 CEO. 화려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명함들은 집안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 명함의 주인공 김용환씨는 이제 화려한 직함이 새겨진 명함 대신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라고 써진 명함을 내민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더 큰 세상이 보이더라고요. 그것 중 하나가 숲입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궁무진한데 그것을 모르고 살았지요. 저는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보람된 일도 하니 그야말로 일이 힐링이지요.” 김씨의 얼굴에는 이제 여유가 넘친다. 어깨를 무겁게 했던 직장생활의 고달픔과 긴장감은 이제 얼굴에 남아 있지 않다. 부드러운 말투와 편안한 미소가 김씨의 현재를 알려줄 뿐이다. 대기업 임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진 월급봉투는 새로운 일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보람이 있고, 나이가 더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김씨를 광릉 숲으로 인도했다. ◇ 재취업 준비 늦을수록 적극적으로 김씨의 퇴직 준비는 오래전부터 이뤄진 게 아니었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몸담아 온 CJ 제일제당에서 퇴직했을 때 새로운 일을 하며 은퇴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가 그렸던 청사진은 전원생활이었다. 산에서 약초도 캐 팔기도 하고, 펜션 사업을 하면서 유유자적하며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당시 그의 나이 49세. 아내와 대학생인 두 아들을 부양하기에 전원생활은 위험부담이 컸다. 때마침 들어온 후배들의 간곡한 청도 거절할 수 없었다. 생수 제조업체 스파클의 경영을 맡아달라는 것.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싶었지만, 첫 직장 퇴직 후 반년도 안돼 스파클의 CEO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49세였던 당시 회사에서 퇴직해서 은퇴준비를 하려고 했어요. 상황이 안 도와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은퇴 준비는 자연스럽게 소홀하게 됐죠.” 그 후 8년이 흘렀다. 그가 스파클의 경영을 맡은 사이에 연 매출도 8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물론 더 그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마흔 끝자락이 었던 나이도 어느새 이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꿈꿔 온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 57세. 그가 생각한 은퇴 준비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는 두 번째 퇴직 후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한 때가 이때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미리 해뒀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전원생활과 같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다. 더 이상 공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진 자리는 있고 싶지 않았다.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까?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내와 찾은 국립수목원. 그때 김씨는 ‘아!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숲 해설가와의 첫만남을 이렇게 회상 한다. “아내와 휴식도 할 겸 국립수목원에 간 적 있어요. 그게 약 4년 전쯤이에요. 70세는 돼 보이는 숲 해설가가 관람객들에게 숲에 대해 설명하는데 무척 감동이었어요. ‘저 나이에도 저렇게 해박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구나’ 하고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숲 해설가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찾아보게 됐죠.” 의외로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는 숲 해설가가 되는 방법과 절차, 교육 기관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산림청 인증 숲 연구소, 숲 해설가 협회, 국민대 숲 해설가 양성 교육과정이 있다는 정보를 접한 김씨는 한달음에 달려가 산림청 인증 숲 해설가 양성 교육에 등록한다. 입문 1개월, 전문가 과정 8개월의 장기간 교육이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숲 해설가라는 목표가 9개월간의 교육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가 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2회의 교육에 수강료 총 160만원.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숲 해설가가 되는 길은 의외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야를 공부해야 하는 것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조금 힘에 부쳤죠. 원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좋아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수목, 생태, 교육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 숲 해설가 숲 해설가 양성과정 9개월. 국립수목원에서의 실습 30시간. 숲 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모두가 수목원에서 숲 해설가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기 위해 몇 가지 관문을 더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도 김씨의 철저한 준비가 빛을 발했다. “숲 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국립수목원에서 면접과 해설 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숲 해설가로 활약할 수 있었어요. 원고를 쓰고 시연하는 것까지 있었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밤새 원고를 쓰고 연습해 결국 합격하게 됐죠.” 김씨는 어느새 4년차 베테랑 숲 해설가가 됐다. 그 사이 관람객에게 해설할 때 자신의 노하우도 생겼다. 그러나 첫 걸음은 그리 쉽지 않았다. 숲 해설가 교육과정에서 배운 이론과 실전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배운 것과 실전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때는 꽤 애를 먹었는데 경험이 늘어나니까 노하우도 생기고 저만의 해설 방식도 생기더라고요.” 그는 이제 숲 해설에 감성을 담으려 한다. 관람객에게 숲과 나무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감성이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도 숲 해설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김씨가 수목원의 숲길을 걸으며 차근차근 숲과 나무에 대한 자신의 감회를 설명한다. 나무에 대한 알짜배기 정보도 담겨 있지만, 그것에 자신의 생각과 철학도 녹아 있다. 설명을 듣지 않았으면 쉽게 지나쳤을 수도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 4년차 숲 해설가답게 그는 그것을 끄집어낸다. “저기 전나무 숲 보이시죠? 전나무는 더 높게 자라기 위해서 나무 상단의 가지가 자라나면 그 밑에 있는 가지들은 자체적으로 모두 쳐내요. 울창한 숲에서 살아가기 위한 자기만의 생존 방식이죠. 사람도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고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포기할 줄도 알아야 더 큰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겁니다.” ◇ 일이 곧 삶의 엔진이어라 이제는 김씨에게 일 그 자체가 삶의 활력소다.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숲 속을 거닐고, 숲의 향기를 느끼며 감상에 잠기는 것. 그것이 일이고 일상이자 삶의 낙이 됐다. 일이 곧 삶의 엔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씨답게 새로운 일에 대한 준비도 수월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여름 산림 치유 지도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것. 알코올 중독, 주의력 결핍 장애(ADHD), 게임 중독자, 주부 우울증 대상자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숲 해설가만 4년 했어요. 앞으로 일의 성격을 달리해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요. 물론 그 일의 중심에는 산림이 있죠. 자연 자체가 제 일이고 삶의 낙인데,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산림 치유 지도사는 제 삶의 새로운 엔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14-11-1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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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①] '해피 END'를 위한 '해피 AND' -인생후반전을 위한 6대 키워드
- 당신이 이제 막 인생 후반전에 도착했다고 상상해보자. 나름 모든 준비는 끝마쳤다. 은퇴를 대비해 자산은 확보했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으며 즐길 수 있는 취미와 친구들도 갖춰졌다. 이제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잠깐, 도리어 당신이 착실하게 준비했다고 결론 내린 것들로 인해 당신의 나머지삶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지? 그럴 리 없다고? 전문가들은 그럴수 있다고 말한다. 생애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실현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인프라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재무, 승계, 관계, 일, 보람, 건강이다. 인생 후반전을 좌우하는 6대 키워드를 차근차근 파헤쳐본다. 도움말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대표,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가나다순) 10억대 이상 자산가라면 “부동산 팔아 금융자산 만들어라” 대한민국 1% 부자도 인생 후반전 재무 리스크를 벗어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산가들은 돈 버는 데 온 힘을 쏟으면서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60세가 됐을 때 번 돈이 모자란다면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을 배워야 하고 부자라면 아름답게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남들 눈을 신경 쓰다 무리한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이들의 불행한 사연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목돈이 있는 사람들은 은퇴 연령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데다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는 부동산 자산을 서서히 줄이고 금융 자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2014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부자의 총자산 구성비를 살펴보면 △부동산 자산 54.1% △금융 자산 39.6% △기타 자산(예술품·회원권 등) 6.3% 등인 것으로 나타나 부동산 비중이 높았다. 이러한 자산의 부동산 쏠림현상은 고도 경제성장기와는 달리 ‘부동산 불패 신화’가 끝난 지금은 잠재적인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소득의 기회가 줄어들 뿐더러 노후자금 및 의료비용 지출이 늘어나게 돼 결국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매물화 되는 부동산은 부동산 가격시장에 악순환을 몰고 올 수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 상무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금융자산 비중이 줄어드는 현실과는 반대로 노후 생활에 적합한 금융자산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적절한 가계자산 정책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식이 가업 승계할 자질이 되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였으며 의 저자로 역사에 남게 된 성군이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황제이자 친아들이었던 콤모두스는 잔인한 폭정, 무능함으로 문제만 일으키다가 결국 암살당한다.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업적만을 남긴 아들은 이후 전개되기 시작한 로마의 멸망을 열어젖힌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내가 세운 집안의 미래를 자녀가 완전히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입증된 얘기다. 이상건 상무는 노후에 도달하면 가업을 자식에게 승계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매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식에게 승계할 경우에는 가업에 대한 보람이나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러나 자식의 자질이 부족하면 전문경영인을 두거나 매각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수십 년을 일군 사업을 자식이 한순간에 망쳐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가업 승계의 경우 아들 가운데 물려줄 인재가 없다고 판단되면 딸을 매개로 데릴사위를 들여 가업을 물려주기도 한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매각 계획을 세워 정리 작업에 서서히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부부와 자녀 관계 모두 새롭게 바라보라 한국영화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좋아 죽겠다”고 극찬한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2002년에 나온 박진표 감독의 . 70대 노인들의 사랑을 직설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나이와 노골적인 묘사로 인해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영화에 비난을 퍼부었던 이들은 ‘다 늙어서 노인들이 추잡하게 논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그러니까 그런 비난을 하던 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영화의 가치는 재평가 받았다. 이러한 재평가는 시대가 노후 행복을 보다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건강한 부부관계는 노후 행복의 지름길이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 자녀 양육 이후 부부만 남게 되는 시기도 길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친밀감과 화목함을 키워주는 부부간 성생활이 더욱 중요해지기도 한다. 은퇴 후 자식들을 출가시키고도 부부가 최소 30년 이상 함께 붙어 살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남자가 은퇴하면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다툴 여지가 많아질 수 있다. 남자들은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내와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하며 오순도순 느긋한 노후를 보낼 거라 기대하지만 그것도 딱 한 달이다. 나이가 든 아내들은 이러저런 취미활동을 하느라 예전처럼 남편을 돌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친구를 찾고 남편은 아내랑 함께 하길 원한다. 이런 경우 아내는 남편이 재취업이나 창업으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걸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내조해야 한다. 지금껏 가장으로서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평생을 바친 만큼 남편 인생 이모작을 위한 좋은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남자도 집에서 아내에게 기대려고 하기 보다 평생 현역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온전한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 관계도 만만치 않다. 요즘 같은 저성장시대에는 그만큼 청년층의 성공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식들이 성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결핍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부가 소신을 갖고 자식 교육에 나서야 한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무리해서 외국 MBA코스에 무작정 보낸다거나 억대에 이르는 결혼 자금을 무턱대고 지원해줘서는 안 된다. 자칫 젊은이들이 냉혹한 이 사회에서 물러터진 자세로 경쟁력을 잃어 도태될 수도 있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은 신중년들은 미혼자녀와 대화 시간이 짧고, 성인자녀와의 교류빈도도 낮을 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자녀와의 관계가 취약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퇴 후 일은 필수 과제 똑같은 노후자금을 갖고 있더라도 일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소일거리라도 하는 사람은 마음이 덜 불안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괜한 욕심을 내거나 겁을 내기 십상이다. 강창희 대표는 3번의 정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가 고용의 정년, 두 번째가 일의 정년, 세 번째가 인생의 정년이다. 젊은 시절부터 일하던 자신의 주 업종에서 은퇴(고용의 정년)한 이들은 ‘일의 정년’에 적응해야 한다. 대략 60~70세로 은퇴했지만 재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펼쳐야 한다. 이에 덧붙여 강 대표는 100세 시대에는 공부-취업-공부-재취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취업 전의 공부란 단순히 학문과 기술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다. 강 대표는 “수입을 위한 일을 하든, 자기실현을 위한 일을 하든, 아니면 사회환원적인 일을 하든 준비가 필요하다. 재테크가 아니라 평생현역이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기출 소장은 단순히 생활 유지가 아닌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즐거운 일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에서의 그러한 추구가 재무적인 면에서나 관계적인 면에서는 물론, 건강까지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당장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신건강부터가 튼튼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현명하게 수입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생현역이야말로 최고의 노후대비책이다. 박기출 소장은 은퇴자들이 여가생활을 하는 주된 목적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재미와 즐거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기 시절 시장 독과점을 통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실리콘밸리의 악마라고도 불렸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리더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자선사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국가에 쏟아붓는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기부액은 2007년 이후 28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또한 엄청난 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와 그자신이 보고 감명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강의 영상 저작권을 사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한 것은 그의 기부행위가 단순히 돈만 많이 내놓는 게 아니라 인류를 위한 봉사정신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일화들이다. 건강관리는 곧 돈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죽음의 춤’이라고 불리는 그림들이 유행했었다. 부자, 수도사, 농부, 귀족 등 각계각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린 이 기이한 그림들은 실은 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때를 은유하고 있다. 해석하자면 ‘죽음의 춤’은 흑사병-죽음은 부자와 서민, 왕과 하층민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건강관리는 재무나 자산 관리와 연결된다. 건강관리를 하느라 생활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아픈 데가 많아지지만 보험 등을 제대로 들지 않았다면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건강관리를 잘못해 큰병이라도 걸리면 모든 ‘은퇴 준비’가 허탕으로 돌아간다. 건강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장기화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상건 상무는 40대부터 건강을 위한 금연이나 절주를 비롯해 꾸준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제적 어려움이야 수입에 맞춰 지출을줄 여가며 노후를 보내며 지낼 수 있다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평생을 질병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현실이기에 예상보다 훨씬 힘든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2014-11-1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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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자문단 칼럼] 2060시대와 생애교육- 가재산 피플스그룹 대표
- 10여 년전 연구회에서 잘 알고 지내던 교수 한분이 직접 쓴 ‘경제수명 2050시대’ 이라는 책을 보내왔다. 50대에 창업을 하여 과거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새로운 제2인생의 길을 선택한 필자의 이야기가 그 책에 소개되어있으니 한번 읽어보라는 뜻으로 보내온 것이었다. 5권 세트로 나온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경제 수명' 을 늘릴 수 있을까에 대한 이 분야 전문가들의 체험적 연구서였는데 '2050'은 20대부터 50년을 일해야 한다는 의미도 되고, 50대도추가로 20년을 더 일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즉 경제수명을 50년은 유지해야만 고령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요지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경제수명 2060’시대가 절실하게 되었다. 20살에서 70세까지만 일한다가 아니라, 80세까지 60년 동안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다. 나이 들어서도 직업이 있거나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질 수 있다면 고령화 사회를 겁낼 필요가 없다. 겁을 먹게 되는 것은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편으로, 평균적 퇴직 연령의 급격한 감소가 이뤄지고 있지만 은퇴 후 30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90세, 100세를 사는데 50대 퇴직도 보장하기 어렵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2060을 몸소 실천하는 분 중에 이상헌 선생님이 계시다. 80세 가까이 되어서도 열정적으로 일하시며 100살까지 일하시겠다고 늘 말한다. 지금까지 무려 140여권의 책을 썼는데 지금도 일 년에 책을 서너권을 쓰고 있고, 일주일에 4~5회 강연과 신문 잡지사에 컬럼쓰기는 물론 1주일에 한번씩 행복에 대한 멧세지를 지인들에게 직접 보낼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이다. 며칠 전 선생님을 찾아뵈었더니 ‘100살이다 왜!’라는 책을 선물로 주셨다. 보통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후쿠이 후쿠타로(福井福太郞)씨가 쓴 자서전이다. 실제로 저자는 1912년생 102세다. 증권사 임원으로 은퇴했지만 더 일하고 싶어서 70세에 직원 3명이 일하는 도쿄 복권상회에 입사한 현역 회사원이다. 아침마다 전철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일터로 출근해 복권 분류와 배달, 회계 업무를 맡아 지금까지 30년째 일하고 있다. 근무 시간은 9시부터 2시. 96세 되던 해에 회사에 폐가 될까 우려해 회사에 사표를 냈지만 계속 남아서 일해 달라는 회사 경영진의 간곡한 만류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고 한다. 100세가 넘어서도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인간은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요. "그 일이 대단한 일이건 그렇지 않건 돈을 많이 벌건 적게 벌건 자기가 먹을 양식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멋진 직업“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들이 이미 23%를 넘었고, 지금 100세 이상의 고령자가 6만명을 넘는 세계 최고령국가다. 그래서 그런지 100세 이상 일하는 현역 분들이 의외로 많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100살에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을 내어 100만부 이상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의 저자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박사는 금년 103세(1911생)로 현역 병원장이다. 100살이 되던 3년 전 83세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는 이길녀 총창의 초청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러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어떤 일도 생각하기 나름, 늙는 다는 것은 쇠약해 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진정한 늙음과 젊음은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도 자신이 활동하거나 일하는 유통기한 즉, 경제수명을 50년에서 60년으로 늘려야한다. 여기에는 생애교육(生涯敎育)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에는 더블 30, 즉 부모 밑에서 30년 + 자신의 30년 인생을 살았다. 이제는 트리플 30으로 바뀌었다. 퇴직 후 기나긴 30년이 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 준비 없이 퇴직하여 ‘무노동 무임금’으로 마지막 30년을 보낸다는 것은 이제 본인에게는 악몽의 30년이 될 수밖에 없고, 자식들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되고 만다. 여기서 말하는 생애교육은 평생교육과 같은 의미로 쓸 수도 있지만 매우 다르다. 생애교육은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젊은 나이에서부터 공부하고 무언가를 미리 준비하자는 것으로 막연하게 죽을 때까지 공부하자는 평생교육과 다르다. 평생교육은 어찌보면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큰 효과가 있으나 2060을 실현하는 데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기업들은 일찌감치 퇴직지원은 물론 젊어서부터 생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오래 전부터 입사한 신입사원부터 퇴직이후를 준비하는 Life Plan을 세우고 은퇴 이후의 노후 커리어 관리와 생활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5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세컨드라이프 코스에 참여하는 기회를 주면서 퇴직 준비를 돕는다. 서구에서도 인사조직 컨설팅사 에이온휴잇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90% 이상이 정기적으로 은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독일에선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려면 퇴직지원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진행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 퇴직 프로그램은 전직 전문회사(Outplacement)주도로 퇴직 이후 전반적인 삶을 설계하기보다 전직이나 당장 경제활동을 지속하도록 하는 재테크 컨설팅에 그쳤다. 단기간 성과는 제공할 수 있어도 길어진 은퇴 기간을 준비하는 데는 너무 미흡하다. 재무 설계뿐 아니라 지속적인 일(job), 건강, 여가, 가족관계 등 비재무적인 프로그램까지 포함시켜‘퇴직지원’에서‘은퇴준비’로 젊어서부터 노(老)테크를 준비하도록 생애교육 프로그램 영역을 넓혀야 한다. 기업 측에서는 물론 노조도 생애교육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직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생애교육”에 적극 나서고 참여해야 할 때다. 젊어서 생애교육을 통해 준비한 후 퇴직이후에 무슨 일을 하던 한 달에 가령 2백만 원을 번다고 치자. 말이 그렇지 초저금리로 인해 200만원을 이자로 받으려면 적어도 10억 이상의 현금을 은행에 넣어두어야 가능한 금액이다. 만약 퇴직 이전에 노후 대비 자금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면 60세 이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잡는 것과 젊어서부터 미리 준비하여 취미와 소일거리로 직장을 찾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즉 은퇴 계획은 특정 세대와 상관없이 빠를수록 좋으며 노테크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이렇게 변화했는데 우리의 의식 수준은 ‘퇴직은 곧 일에서 은퇴’라는 80세 수명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청년이란 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붉은 뺨이나 입술이 아니라 굳센 의지, 상상, 감정, 생명력에 달렸다. 청년은 용기로 비겁을 이기며, 모험으로 앞일을 안다.”고 맥아더 장군은 말하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젊음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으로 활기찬, 늙었지만 진정한 젊은이가 많아야 고령화시대에 대비할 수 있다. 열정 인생엔 나이가 없다! 글: 피플스그룹 대표이사 가재산 한국형 인사조직 연구회 회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 2014-09-2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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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수 좋은 날] 2014년 9월 15일 (음력 8월 22일) 띠별·생년별 오늘의 운세
-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높은 곳에 있어 상하지 않으니 위태하나 망하지 않는다. 운기가 흉흉하여 얻어지는 것은 적다고 하나 구설시비가 발동하여도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 자중함이 길하다. 84년생 : 수화 상극하니 괴로움은 있으나 이성 갈등은 해결된다. 72년생 : 구설 시비만 잘 피하면 재물이 가히 뜻과 같다. 60년생 : 바람이 조용하고 달이 밝으니 술이 있어 잔에 가득하도다. 48년생 : 집안에 사람이 화합하니 화기가 문에 이른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호랑이 굴에 들어 가도 정신만 차리면 매사가 여의 할 것이니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 정신만 차리면 무슨일이든 이룬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망동은 삼가하라. 85년생 : 동북에 출입하면 횡재수가 있으나 망동하면 날아간다. 73년생 : 재물이 생기지 않으면 영화가 있다. 61년생 : 눈앞에 보이는 괴로움은 참고 견디면 해결된다. 49년생 : 하던 일은 힘차게 밀고 새로운 일은 뒤로 미루라.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뜻을 얻은 땅에는 두 번 가지 못한다. 같은 일로 인해 소득은 없을 것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기이다 어리석게 반복하지 말라. 86년생 : 집에 있는 것이 길하니 나가지 마라. 74년생 : 강변이나 해변은 불길하다. 산에 오름이 길하다. 62년생 : 재운이 성하니 재록이 몸에 따른다. 이성은 조심하라. 50년생 : 동원의 홍도가 저절로 꽃을 피운다. 새로운 이성운이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밭을 갈고 우물파서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격이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을 것이니 운기가 길하여 때가 온 것이다. 자만하지 말고 은인자중하라 대길하다. 87년생 : 열심히 노력하면 얻어지는 게 많다. 75년생 : 문서에 재물이 있고 문필에 명예가 있다. 63년생 : 허욕을 발하지 않으면 일신이 편안하다. 51년생 : 일신이 영귀하니 만인이 우러러 본다. ◇ 용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하늘이 비를 내리니 만물이 새로움을 머금는다. 때맞추어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내리니 어이 기쁘지 않을 것인가 기다리던 호운이니 역량을 발휘할 기회이다. 76년생 : 친구와 합세하면 가히 천금을 이루리라. 64년생 : 귀인이 도와주나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구나. 52년생 :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을 조심하라. 믿을 사람이 없다. 40년생 : 집에 있으면 평탄하나 출타하면 손해본다. ◇ 뱀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오고가는 정이 두터우니 만사가 능통하도다. 인간관계에서 이익을 볼 것이니 평소에 대인관계를 원만히 한 사람에게는 호운을 맞을 것이다. 서로 돕고 이익이 증가한다. 77년생 : 손님 다루기를 잘하면 재운이 열린다. 65년생 : 낚시를 창파에 던지니 마침내 고기를 얻도다. 53년생 : 관재를 이기면 문서로 재물이된다. 41년생 : 신수가 태평하니 재물이 산같이 싸인다. ◇ 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시비 구설을 미리 막으라. 곤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인간구설에 시비, 손재가 발동하니 일신이 곤고함에서 벋어 나기 힘들다. 망동을 삼가할 것이니 흉한 운을 사전에 막으라. 78년생 : 도움받는 것 같으나 허송세월이다.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라. 66년생 : 칠전팔기의 힘을 보여주면 누구든 나를 인정한다. 54년생 : 재물이 생기지 않으면 자식에게 영화가 있다. 42년생 : 막힘을 탓하지마라.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 ◇ 양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처음에는 서글프나 점차 길성이 나타난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처음은 곤고하나 노력하는 가운데 후에 이룸이 클 것이니 기쁨을 맞보게 될 것이다. 79년생 : 횡재수가 없으면 이름을 날려도 날린다. 67년생 : 상하를 잘 중개 노력하면 상받을 일만 생긴다. 55년생 : 사면초가가 이제야 희망이 약하게나마 보인다. 43년생 : 자기 것 인줄 몰랐던 것을 잘만 챙기면 큰보물이 된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먼산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내 것으로 보인다. 허망한 공상은 시간만 허비할뿐 감나무에서 감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말라.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니 길함을 구하라. 80년생 : 허망한 상상은 건강을 해친다. 재운은 높은 사람이 도운다. 68년생 : 막중 대사를 앞에놓고 흔들림이 왠말이냐. 56년생 : 잠안잔 듯 기분이 찌뿌둥하나 잊어버리면 뒤에 길하다. 44년생 : 용돈 정도 생기는 운이나 날개를 다시 펴보는 운이다. ◇ 닭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뜻을 받들어 부모에게 효도하니 재수도 길하도다. 수신재가 치국 평천하라. 스스로 다스리고 가정을 돌보니 만사가 여의함과 같이 부모님께 효도하라. 길함이 머물게 될 것이다. 81년생 : 부모에게 잘하면 금전운이 풀린다. 69년생 : 미리 구설을 원천봉쇄하라. 손재수를 윗사람이 막아준다. 57년생 : 말조심하고 본분을 지키니 손해가 없도다. 45년생 : 감언이설로 형제 친구간에 구설이 통하니 조심하라. ◇ 개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매사에 막힘이 있으니 실력만 믿어서는 안되고 조력을 청하라. 자만은 일을 그르치게 하니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라. 그리하면 운기가 길하여 만사가 여의해 질 것이다. 82년생 : 사람으로 다투는 일이 있으니 양보하라. 70년생 : 손재가 없으면 처궁을 조심하라. 58년생 : 북방을 가까이마라 손재가 두렵도다. 46년생 : 길을 잃은 나그네가 이정표를 찾음이니 희망이 보인다. ◇ 돼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모든 것이 막힌다. 내일을 기약하자. 오늘일은 오늘만 고민하고 해결하는데 혼신을 다하라. 내일은 길할 것이니 내일의 태양은 내일 떠오르는 것과 같다 하겠다. 83년생 : 이상하게 일이 꼬이나 억지로 하려하면 잘 안된다. 71년생 : 적막한 여관에서 공연히 탄식하는 격이라 걱정이 팔자다. 59년생 : 상가에 가지마라. 음식 끝에 탄식한다. 47년생 : 벗을 잃은 마음이라 공연히 의심만 간다.
- 2014-09-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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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 시대, 인생2막 재취업으로 대비③]기업과 퇴직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아웃플레이스먼트의 진화 절실
- “25년을 근무했는데 내가 과연 무엇을 잘하는지…” 증권사 퇴직을 앞둔 이창수 부장(가명)은 전직지원(outplacement)서비스를 받을지, 현금으로 보상을 받을지 고민이다. 퇴직하면 최대 12개월 치의 급여에 해당하는 돈을 받을 수 있다. 부장급이 1억 원 정도다. 앞서 구조조정을 추진한 A증권과 B증권의 부장급이 각각 받은 2억3000만 원, 2억 5000만 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소중한 직장을 떠나는 이 부장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부장은 회사에 대한 서운함, 조직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 평생을 몸받쳐 일한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다 못해 배신감마저 들 것이다. 당장 현금으로 몇푼 주면서 생색내고 하는 그런 위로 따위는 사양하고 싶다. 새로운 직장에서 보란 듯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당장 생애설계와 경력목표를 지원해주는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업의 대표적 아웃플레이스먼트 두가지 유형의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포스코 ‘그린라이프 서비스’】 아웃플레이스먼트는 회사를 떠나는 퇴직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혜택을 자발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실직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새 직장을 찾도록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기업 측으로서는 퇴직자가 회사와 고용관계를 청산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결국 퇴직관리를 효율적으로 시행함으로써 해고가 보다 원활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아웃플레이스먼트는 기업과 퇴직자의 자발성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전직지원제도이다. 전직지원제도는 향후 국내 기업들의 노사간 이슈로 부각되면서 신고용 창출의 모델로 정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 ‘그린라이프, P&G 상시 아웃플레이스먼트, 삼성전자 경력컨설팅센터 등이 퇴직자를 위해 제대로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하는 기업으로 꼽는다. 포스코는 정년을 1년 앞둔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퇴직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 해소 및 사회 적응력을 배양할 ‘그린 라이프 서비스(Green Life Service)’ 과정을 개발해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특히 2001년 10월 시작된 ‘그린라이프 서비스’는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들을 인재개발원에 파견해 새로운 진로 개척을 위한 컨설팅 및 학습 기회를 부여해 인기다. 그린 라이프 서비스 과정은 제 2의 인생설계에 필요한 실용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퇴직이라는 급격한 인생 변화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 사회에 조기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 중 정년퇴직 예정 직원을 대상으로 재취업 교육을 실시하기는 포스코가 처음이다. 정년퇴직을 1년 앞둔 직원을 대상으로 매년 4월과 10월에 1년 과정으로 두 차례 운영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공인된 진단 기법을 이용해 개인별 가치관, 성격, 행동양식, 핵심역량 등을 진단하고 분석된 내용을 기초로 미래의 새로운 진로 개척을 위한 개인별 카운셀링을 병행한다. 또 퇴직후 당면하게 되는 변화에 적응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인드를 심어주고, 노후의 여유 있는 재테크 테크닉, 건강·스트레스 관리 등을 배우는 과정도 함께 진행한다. 통상 재취업 알선은 구조조정 기업에서 어쩔 수 없이 퇴직하는 직원을 위주로 하는데 비해, 포스코의 ‘그린 라이프 서비스’ 프로그램은 50세이상 재직중인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포스코의 퇴직 예정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개인별 여건에 맞춰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맞춤식 컨설팅’ 형태로 운영한다. 이를 위해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그린 라이프 센터’를 설치해서 지원해주고 있다. Life Plan Workshop(총 8일)을 통해서 퇴직 이후의 자신의 삶의 변화와 현재 자신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더불어 관련 목표를 수립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 관계자는 “그린라이프 서비스의 장점은 고용환경 변화와 퇴직 이후를 대비한 생애관리, 재취업, 창업, 재무관리 4개의 목표를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재취업 희망자에게는 자신에게 적합한 취업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70~80%는 포스코로 재취업이 이뤄지고 나머지는 외주 협력업체로 고용이 된다”고 말했다. 그린라이프 서비스를 받으면 자신의 변화는 물론 퇴직 후 재정계획 수립과 인생설계 작성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자기 모습을 적나라하게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개인별 가치관, 성격과 행동양식, 핵심역량을 진단한 뒤, 그 결과를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카운슬링한다. 그리고 주1회 카운슬링 날을 지정해서 사외 전문 컨설턴트의 자문을 받고 진로 개척을 위한 전략수립 및 목표설정을 세운다. 아울러 부부동반 워크샵 프로그램을 가동해 부부가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진행한다. 퇴직이 임박한 단계에서는 지금까지 수강한 프로그램을 종합해 개인별 재정계획, 능력배양 계획, 건강관리 계획, 진로 결정 등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마스터플랜’을 확정하는 워크숍을 갖고 마무리한다. 또 퇴직후에도 3개월간 지속적인 카운슬링을 온라인을 통해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전문 컨설팅사와의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경력컨설팅센터’】 삼성전자는 지난 2001년 9월 퇴직자 및 퇴직예정자의 전직 지원을 위해 경력개발센터(Career Development Center : CDC)를 설립하고 재취업을 지원해왔다. 그 후 2011년 8월 경력컨설팅센터(Career Consulting Center: CCC)라는 명칭변경과 함께 인력보강 및 별도 공간을 마련하여 새롭게 개소하게 됐다. 평생경력시대에 있어 퇴직이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예측 가능해짐에 따라 퇴직예정자와 퇴직자의 고용가능성을 제고, 퇴직 이후에도 퇴직자를 회사에 우호적인 잠재고객으로 유지하며 채용부터 퇴직까지 균형 있는 인사관리 체계를 구현하고 있다. 삼성전자 경력컨설팅센터는 10여명의 전담자가 전직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등 임직원의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교육장과 Open Desk, 상담 공간, 집단 상담실, 휴게 공간 등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체계적인 연계를 위해 5,000여개 중소기업과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양적으로는 2001년 경력개발센터 개소부터 2013년까지 3,600여명의 퇴직(예정)근로자가 재취업에 성공했다. 삼성전자 경력컨설팅센터 전직지원서비스는 ‘자발적, 비자발적인 이유로 퇴직하거나 퇴직예정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퇴직으로 인한 충격을 극복하도록 지원하고, 급격하게 진행되는 환경의 변화를 인지하게 한다. 퇴직자가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구직활동을 통해 신속하게 경력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새로운 직무나 경력 또는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인생 100세 시대에는 장기적 관점의 경력관리가 필수이다. 정년(60세) 후에도 약 10~20년의 활동기간에 하나의 직장·직업으로는 생애에 걸쳐 의미 있는 삶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임직원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쳐 경력을 준비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평생경력의 의식과 태도 함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퇴직자가 퇴직 후 중소기업에 재취업하는 경로를 선택하다보니 조직문화, 시스템, 환경 등에서 큰 차이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관점의 전환에 중점을 두었다. 재취업이 지연되면 구직기간이 길어지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취업스킬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전직지원 프로그램의 전 과정은 기본교육, 일대일 컨설팅, 잡매칭, 정보제공의 서비스가 병행하여 진행된다. 지세근 삼성전자 경력컨설팅센터장은 참여대상과 목적에 따라 프로그램을 차별화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자문역 전직 프로그램은 임원으로 재직한 후 퇴직을 앞두고 있는 자문역과 퇴직 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생애 전반에 대한 점검과 중소기업의 이해와 경영전략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대일 상담과 재취업을 위한 잡매칭(job matching)이 함께 진행된다. 둘째, 정년 준비프로그램은 정년 퇴직자와 정년 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재취업시장과 중소기업의 이해, 제2의 인생을 위한 경력대안 탐색, 취업전략, 라이프 플래닝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대일 상담과 재취업을 위한 잡매칭으로 진행된다. 셋째, 전직실행 프로그램은 퇴직자 및 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전직 가능성이 저하된 구직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개발됐다. 퇴직 후 심리적 안정과 실행력 제고를 목표로, 고용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개인 특성과 외부 취업시장을 고려한 개인별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 과정으로는 퇴직 후 변화관리, 나에 대한 탐색, 경력목표 설정, 구직전략 수립, 파워 이력서 작성, 면접 전략, 잡서치 실습, 셀프마케팅 실습, 네트워킹 실행, 경력관리와 라이프 플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퇴직 예정 근로자들의 고용가능성 증대와 함께 퇴직으로 동반되는 심리적 불안과 상실감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2014-09-11 1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