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구름, 강물과 바람소리, 햇살, 새들의 합주, 강변 단애, 그리고 숲 사이 오솔길. 있을 게 다 있다. 언제나 거기에 있어온, 본래 그러한 채로 있는, 자연스러운 자연의 저 완전한 충만. 그래서 아름답고, 그렇기에 신성하고, 그럴 수밖에 없도록 진실하다. 사람 안엔 결핍된 수려한 맑음과 밝음으로, 그지없이 온전한 자연다운 푸른 아우라를 뿜으며 순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는 청렴(淸廉, integrity)은 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결백(潔白, purity) 역시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정한 일과 욕심이 없음을 말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언제나 필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나 역시 그러한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기에 성실히 노력하고 싶어진다.
청백(淸白, upri
필자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건축 문화에 새겨진 ‘다름’을 언급한 바 있다. 중국 건축의 지붕선(Roof line)에서는 ‘권력, 권세’가 묻어나고, 일본의 지붕선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한국 건축물에서는 ‘여유와 푸근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선(線)의 예술적 감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술가로 오스트리아
1.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2.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
매달 시니어의 제2인생과 직결된 새로운 직업을 소개해온 이 코너가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맞이해 새해 각오와 어울릴 만한 주제를 준비했다. 바로 특정한 직업이 아닌 ‘창업’이다. 취미활동이나 공부를 통해 익숙해진 일 혹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세우는 것. 창업은 시니어에게는 거창한 일로 여겨지지만, 벤처나 스타트업이
연극 연출가 김정숙(金貞淑·56)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녀를 존경해”, “멋있어”, “사랑해”.
‘김정숙’이란 이름이 거론되면 하나같이 천사를 만난 경험담(?)을 쏟아내곤 했다. 한 번쯤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기회가 없었다. 새뮤얼 베케트의 연극 에서 끝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씨처럼. 만나보자.
예전 같으면 대한늬우스에 나올 만
여백서원(如白書院)의 주인장 전영애(全英愛·65) 서울대 교수에게 “정말 나이가 안 들어 보이신다”라고 말하자 “철이 안 들어서”라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온다. 어쩌면 이 각박하게만 보이는 세상에, 서원이라는 고풍스러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철이 안 든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철이 안 든 게 아니라 자신이 올바른 길이라고
대전의 보문산(寶文山) 사정(沙亭)공원에는 시비(詩碑)들이 있어, 언제 가도 느리고 깊은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의 이란 시가 발길을 붙잡는다.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가슴에 꽂히는 구절을 새기며 추수 김관식(秋水 金冠植·1934~1980)의 를 읽는다. ‘저는 항상 꽃잎처럼 겹겹이 에워싸인 마음의 푸
이재준(아호 송유재)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7년 늦가을부터 종로구 관철동의 고서점 ‘통문관’을 드나들었다. 한문 시간에 설악산인(雪嶽山人) 김종권(한학자1917~1987) 선생님의 강의가 너무 감명 깊어 교무실로 자주 찾아뵈었더니 “학교 도서관에는 관련 책들이 별로 없으니 가까운 ‘통문관’에 가서 나 등을 찾아 읽어보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