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건축 문화에 새겨진 ‘다름’을 언급한 바 있다. 중국 건축의 지붕선(Roof line)에서는 ‘권력, 권세’가 묻어나고, 일본의 지붕선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한국 건축물에서는 ‘여유와 푸근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선(線)의 예술적 감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술가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를 들 수 있다. 그는 이 우주에 “직선(直線)은 없다”며 직선에 잠재된 ‘인위성’을 배격했다. 그런데 이러한 경구가 며칠 전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외친 독일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Luigi Colani, 1928~)에 의해 다시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조선일보, 2017.12.11.). 콜라니는 “자연은 각(角)을 만들지 않으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문화의 핵심 코드는 ‘직선’을 배제한, 그래서 ‘자연에 순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건물의 내부 공간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건축물에서 바닥은 형태와 넓이가 규격화된 ‘다다미[疊]’로 꾸며져 있다. 천장을 장식하는 서까래 또한 대패로 깎아 직선, 직각으로 가다듬었다. 그에 비해 한국 전통 가옥의 서까래는 비슷한 크기에, 별로 가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조금은 투박한 느낌마저 준다. 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바로 대구의 ‘도동서원(道東書院)’이다. 조선 전기의 유학자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을 배향한 도동서원의 서까래는 불균등한 나무가 나란히 붙어 있다. 마치 자연의 ‘숲’을 이루듯 말이다. 또한 대청마루의 바닥은 나무의 몸통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곡선의 미’를 한껏 자연스럽게 뽐내고 있는 것이다[사진].
일본을 대표하는 한 목재가구 공예가가 1930년대에 우리나라를 찾아왔을 때 겪은 일화가 전해온다. 한 목공소를 방문한 그는 목재를 다루는 목수(木手)의 모습을 보고 “왜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목재를 사용하느냐?”며 조금은 핀잔하듯 물었다. 그러자 목수는 “원래 나무는 비틀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반문하듯 대답했다고 한다. 예상 밖의 답변을 들은 일본 목재가구 장인(匠人)은 충격과 함께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일화다.
정원이나 건축 문화를 보면 한일 양국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정점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요컨대 일본이 깔끔하고 정리 정돈된 인공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반면, 우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포근한 미(美)를 추구한다.
주 이 글은 정원 및 건축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 코드가 상이하다는 점을 논한 것일 뿐 두 문화의 우열을 가리고자 함이 아니라는 걸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