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인 한가위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야속한 전염병으로 가족들 얼굴도 맘 편히 보지 못하고 있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으로 제한적으로나마 가족 모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가족 모임 인원 제한을 준수하고 시간별로 환기를 시키는 등 신경 쓸 것이 늘었다. 그래도 모처럼 손주 얼굴 볼 생각에 설레는 것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마음이다. 장보는 일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는 계절, 손주들 먹일 과일을 빼놓을 수 없다.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의 청과물 코너 앞에 섰다고 상상해보자. ‘백 가지 과일’에 견줄 정도로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어떤 과일을 골라 손주에게 줄 것인가.
중·고 학생은 오렌지·귤, 스물 넘었으면 망고
이때 감이나 배를 집었다면 다시 내려놓는 것이 좋겠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0 식품소비행태조사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감과 배는 연령별로 선호도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감을 좋아한다고 답한 20대는 0.5%인데 비해 70대 이상에서는 5.3%에 달했다. 배를 고른 20대는 4.2%였지만 60대는 9.2%의 선호도를 보였다.
청소년들은 오렌지나 귤 등을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 18세 이상의 청소년 가구원 622명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과일을 물었을 때도 귤이 12.5%로 2위를 차지했다. 오렌지와 귤은 스무살 넘긴 손주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20대는 오렌지 5.9%, 망고 3.4% 등 수입 과일에 대한 선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분석했다.
클래식 이즈 베스트, 모두에게 인기 높은 사과
그러나 오렌지도 20대는 5.9%, 중장년층인 60대는 2.9%로 선호도 차이가 제법 있는 편이다. 취향에 맞지 않는 새로운 과일에 도전하기 싫다면 보장된 선택지를 고르는 방법도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과일은 사과다.
전통 강호인 사과는 2020 식품소비행태조사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과일 1위로 뽑혔다. 선호도가 나이따라 갈리지도 않는다. 20대에서 70세 이상까지, 전 연령대에서 15% 안팎의 선택을 받았다. 청소년 역시 사과를 가장 선호하는 과일로 꼽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사과를 선호한다고 답한 청소년은 13.3%로, 지난해에 비해 선호 비중이 4.2%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게다가 사과는 가을 제철 과일이다. 추석이 있는 가을에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4월~10월이 제철인 오렌지나 풋귤 역시 청과물 코너를 가득 메우고 있다. 바다 건너 필리핀, 페루에서 온 망고도 그렇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센스 있는 선택이 명절 날 분위기를 더 화기애애하게 만들 수 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와 성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9월 가을에 야외에서 활동하면 진드기나 쥐를 통해 쓰쓰가무시병과 유행성출혈열 같은 가을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김시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9~11월 야외에서 진드기나 쥐를 통한 감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 “벌초나 등산을 포함해 밖에서 일을 할 때는 긴소매나 긴 바지를 입으며 피부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주 내 증상 발생 시 바로 병원 찾아야
쓰쓰가무시병은 얕은 풀밭에 사는 털진드기에 기생하는 오리엔티아 쓰쓰가무시균을 통해 발생한다. 외부 활동 후 1~3주인 잠복기가 지나 갑자기 오한이나 섭씨 40도에 가까운 고열과 두통 등이 나타난다. 이어 기침과 구토, 근육통, 복통, 인후염을 동반하며, 발진과 진드기에 물린 부위에 까만 괴사 딱지가 특별하게 생긴다. 대부분 진드기에 물린 지 모른 채 생활하다가 증상 발생으로 병원을 찾고서야 안다.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어 대부분 2주면 낫는다. 하지만 일부에게는 폐렴과 급성 신부전, 뇌수막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률이 30~60%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다.
또 다른 가을 감염병으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이 있다. 2009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신종감염병으로 SFTS 바이러스로 발생한다.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만 발생한다.
SFTS는 참진드기의 일종인 작은소피참진드기가 매개체로 추정된다. 또 일부는 환자의 체액과 혈액이 노출되는 과정에서 2차 감염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치료제와 예방백신이 없고, 치사율이 10~30%에 달할 정도로 높아 위험한 감염병이다.
보통 4~15일의 잠복기를 거쳐 섭씨 38도에서 40도에 이르는 고열과 혈소판 감소, 구토, 백혈구 감소 등을 동반한다. 중증에 일면 근육 떨림과 혼동, 혼수 등 신경계 증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가볍게 앓거나 자연적으로 낫는다.
한타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유행성출혈열은 들쥐의 타액과 소변, 분변이 마른 것이 공기에 떠다니며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신장의 염증과 급성 출혈을 유발해 ‘신증후군 출혈열’로도 부른다.
평균 2~3주의 잠복기를 거친 뒤 몸살이나 장염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일반 몸살이나 장염과 달리 피부 홍조와 점상 출혈, 결막 충혈 같은 증상을 나타낸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열기, 저혈압기, 소변량 감소, 소변량 증가, 회복기라는 5단계 과정을 보인다. 치사율이 2~7%로 알려져 있는데, 다행히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1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하면 95% 이상 항체가 만들어진다.
또 렙토스피라균에 감염된 쥐나 소, 돼지, 개의 소변에 노출돼 발생하는 렙토스피라증도 조심해야 한다. 렙토스피라증도 주로 9~11월에 발생한다. 고열과 근육통, 두통, 설사, 발진, 결막 충혈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나이가 많고 다른 질병이 있으면 야외활동 더 조심해야
쓰쓰가무시병과 유행성출혈열 같은 가을철 감염병을 예방하려면 진드기나 들쥐가 있는 풀밭에서의 야외활동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야외활동을 해야 한다면 진드기 기피제를 사용한다. 또 일상복 대신 작업복을 입어 감염 가능성을 줄인다. 소매와 바지 끝은 단단히 묶고, 토시와 장화를 이용하면 좋다. 풀밭에 앉을 때는 돗자리를 이용하고, 쓴 돗자리는 꼭 씻어서 햇볕에 말린다. 풀밭에 눕거나 옷을 벗어놓지 않도록 하고, 용변도 삼간다.
집에 돌아오면 야외활동 중에 입었던 옷을 털어서 세탁한다. 바로 샤워나 목욕을 하고 머리카락이나 귀 주변, 팔 아래, 허리, 무릎 뒤, 다리 사이 등에 진드기가 붙어 있지 않은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김시현 교수는 “야외활동 후 2주 정도 지나 갑작스러운 고열과 함께 구토나 설사, 복통 같은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병원을 찾아 검사와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고령자나 만성질환자는 감염되면 사망률이 높아지므로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큰 변화 중 하나가 비대면 교육이다. 화상을 통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접속하는 화상 교육이다. 초중고와 대학에서도 실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줌(Zoom)을 설치해 쉽게 접촉할 수 있다. 발표자가 리드하고 동시에 여러 수강생이 접속해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모든 교육 과정에서 보편화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실시간 동시 화상 통화로 출퇴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사는 이제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뉠 거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 예언한다.
어쨌든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가 지구는 한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에 보면 한 언어를 사용하던 인간들이 하느님과 같이 되고자 바벨탑을 쌓는 장면이 나온다. 신은 그 교만한 마음을 심판하기 위해 서로 언어가 다르게 흩어놓았고 결국 바벨탑이 무너진다. 생각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아 소통이 안 된 것이다. 바벨탑의 교훈은 인간의 교만한 마음에 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코로나19의 문제는 각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지구촌의 문제라는 걸 보여준다. 중국의 우환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중국 전역에 번지더니 주변국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먼 나라 이야기처럼 방관하던 나라들이 불과 몇 달도 안 되어 함께 몸살을 앓고 있다. 전 세계가 하나의 바이러스에 이렇게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다.
올해는 황사나 미세먼지로 고생한 기억이 별로 없다. 황사는 주로 중국이나 몽골의 건조, 황토 지대에서 바람에 실려 중국의 산업화 지역을 거치면서 규소나 납 등 중금속 물질의 농도를 높여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미세먼지는 공장이나 자동차 매연 등 석탄과 석유 등의 화석 연료가 연소할 때 배출 가스가 문제된다. 어찌되었든 코로나19로 차량 운행이 줄고 중국 해안지대 공장의 운영이 순탄치 않으면서 황사나 미세먼지가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의 환경오염 등 기후 위기 해결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틀림없다.
코로나19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청명한 가을하늘과 신선한 맑은 공기에 살맛 난다는 사람도 많다. 쉽게 끝나지 않겠지만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방식을 많이 변화시켰다. 마스크는 일상의 도구가 되었고, 수시로 손 씻기, 대면 접촉 최소화하기, 불필요한 회식이나 술잔 돌리기 등도 사라졌다. 비대면 교육인 온라인 강의가 확대됐고,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결국 현대 의학으로 머지않아 극복되겠지만, 코로나19가 준 교훈을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동안 인류는 산업화와 정보화 등 급속한 변화와 성장 속에 달려왔다. 지나친 경쟁으로 자연환경은 파괴되고 그에 따른 기후변화와 위기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감기나 독감처럼 우리 인류가 끌어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하루 신규 확진자 100명 선에서 관리되고 있지만, 유럽은 하루 수만 명씩의 확진자 발생으로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 당분간 해외여행도 어려울 것 같다. 비대면 소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정보통신의 발달 덕분이 아닌가 싶다.
‘테스 형은 알까?’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어쩔 수 없이 시간도, 교통비도 절약되니 비대면 교육으로 마음의 양식이나 채워야 할까보다.
■ 2020년 9월의 책
- 도서명: 진화한 마음
- 지은이: 전중환
- 출판사: 휴머니스트
왜 연인과 헤어진 후 남자는 ‘같이 못 잔 것’을 더 후회하고, 여자는 ‘같이 잔 것’을 더 후회할까? 가을이 되면 마음이 허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인연 중에서 ‘친구’를 더 챙기는 이유는?
이 책은 위와 같이 인간이 행동할 때 선택의 기준이 되는 ‘마음’에 대해 분석한 심리학 이야기다.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고 여겼던 ‘마음’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게끔 설계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기 위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진화’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했다.
그렇다고 진화심리학에 대한 입문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토대와 최신 연구 동향에 대해 주로 우리 주변의 상황을 사례로 들어 소개하고 있다. 생존, 짝짓기, 혈연, 집단생활, 폭력, 문화, 학습, 성격, 도덕, 정치, 정신장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진화의 관점에서 쉬우면서도 색다르게 설명한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진화심리학이 학문으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이어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다. 이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근원을 찾아간다. 모든 동물의 행동을 ‘유전자의 눈’ 관점에서 연구하는 사회생물학, 행동생태학 중에서 인간에 적용한 학문이 ‘진화 사회과학’이고, 이 ‘진화 사회과학’ 중 인간의 진화된 심리 기제를 강조하는 접근법이 ‘진화 심리학’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핵심을 “마음은 인류가 진화한 먼 과거의 환경에서 조상들이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 지제들의 묶음이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선택이 바로 유전자다. 마음의 복잡한 구조를 진화의 시각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다.
얼마 안 된 짧은 시간이지만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과학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과정에서 많은 오해가 있었다고 한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와 부정을 불식하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이 책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에 대한 이해와 통제를 위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학문과의 접촉이라는 의미 외에 자신과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길을 알게 해준다.
▶ 책 읽은 소감: 심리학은 왜 어려울까? 가장 큰 이유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옳고 그름의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새로운 관점에 대한 당위성과 주장을 반복적으로 한다.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례 언급은 많았으나 명쾌한 결론이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도 융이나 프로이트가 중심인 기존 심리학의 범주를 깨트리는 새로운 발상이 흥미로웠다. 최근의 학문 트렌드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 평점: 3.8 (5점 만점)
▶ 생각해보기
- 작가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며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반박했습니다. 유전학, 진화생물학, 행동생태학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론이 문학비평, 문화이론, 정신분석학 등에서는 핵심적인 이론으로 대접받고 있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했는데요. 이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p.177)
- 진화심리학자들은 마음을 공학처럼 연구해 마음이 어떻게 진화된 설계인지 가설을 세운 후, 마음이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한 설계상 특질에 대해 추론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새롭고 검증 가능한 예측을 끌어낸 후 그 예측을 실제로 검증하면서 새로운 발견에 이른다고 진화심리학은 이야기하는데요. 이런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접근법이 과연 학문의 진보인지, 사이비 과학의 그럴듯한 주장인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p.48)
- 저자는 ‘혐오와 편견’에 대해 말하면서 전혀 전염병을 옮길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 대해서도 편견이 쏟아지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화재경보기 원리’(smoke-detector principle)가 적용되는 경우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편견의 예로 든 노인, 장애인, 비만 외에 ‘화재경보기 원리’가 적용되는, 우리가 주의해야 할 편견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p.89)
- 샐러 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외부 자극을 주어 무의식적인 믿음을 심어주면 잠재적 혐오 유발 요인에 대한 혐오 반응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 경우 과잉 반응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도 왜곡된 사실이었는데요. 현대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는 ‘가짜뉴스’ 와 편향적인 매스미디어의 콘텐츠라 할 수 있습니다. 혼돈의 시대에 가능한 한 객관적인 가치관과 의견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개인과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p.92)
- 저자는 책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보이는 인간행동들의 이유(진화한 마음)는 어쩌다 우연히 행동한 대응으로 번식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p.380). 진화심리학은 원래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주장으로 어떤 현상을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진화한 이유를 찾아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학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지구에서 오직 인간만이 이기적인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해석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진화적 시각은 인간 본성을 한 발 떨어져서 차분히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든지 본성을 거역할 수 있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시나요? (pp.382~383)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전국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선포되었다. 당장 이달 말에 예정된 시누이 딸 결혼식이 걱정됐다. 하객 50인 이상이 모이는 실내 결혼식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시누이네는, 지난봄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식을 한 번 연기했다. 코로나19와 공존해 살면서 결혼식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다가 8월 말로 어렵게 날짜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외국에 사는 사돈댁과, 큰딸 부부가 결혼식 참석을 위해 귀국해 자가 격리 중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직계 가족만 모이는 스몰웨딩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이효리-이상순, 이나영-원빈이 작은 결혼식을 올리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스몰웨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결혼 당사자들은 형식보다는 의미를 살린 작은 결혼식을 선호했고, 역시 허례허식이 가득한 결혼식을 비판하며 자녀의 결혼식은 작은 결혼식으로 치르겠다는 부모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양가 의견을 맞춰야 하고, 예식장은 최소 보증인원을 요구하고, 그동안 뿌린 축의금이 생각나는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스몰웨딩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이 시국엔 작게 치르지 않으면 결혼식이 불가능하다. 화려한 화환이 끝없이 이어지는 결혼식장,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러 밀려드는 사람들과 연회장에 하객들이 꽉 들어찬 모습이 미풍양속처럼 여겨졌던 건 이젠 과거가 됐다. 우리 사회가 언제 쯤 안전해질지 미지수이니 봄에 미룬 결혼을 가을엔 할 수 있을까? 내년 봄은 과연 안전할까? 결혼식 날짜를 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코로나19의 소용돌이 속에 정신없이 맞이한 게 결혼식뿐일까?
우리 가족은 지난봄에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생사의 순간을 넘나들 때, 형제들은 장례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르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불편해진 탓도 있지만 우리끼리 슬프지 않게 아버지를 배웅하고 싶은 생각도 컸다. 이북에서 월남한 아버지가 이 땅에 이룬 직계가족 단 13명이 모여 가족장을 치렀다. 조문은 물론, 조화나 조의금도 일절 받지 않았다. 코로나19 초기여서, 기어코 조문을 해야 한다는 지인들과 전화기를 들고 입씨름을 하는 게 힘이 들었지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악을 틀어놓고 아버지 얘기를 주고받으며 가족끼리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조문을 받지 않는 간소한 장례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우리 가족들은 코로나19가 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간소 장례 예찬자가 되었다.
이젠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작게 하고 안전하게 치르는 게 일반화됐다. 인륜지대사를 정성을 다해 준비해야 하는 건 맞지만 코로나19 시대에는 작게 치르는 게 뉴노멀이 된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굳이 찾아가 축하를 해주는 것보다 ‘건강’과 ‘안전’을 빌어주는 게 지금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전염병 위험에 노출된 우리들이 이 땅에서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변화된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몬테네그로의 아드리아 해안 도시인 페트로바츠(Petrovac)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구석은 없다. 올리브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바닷가 마을. 신선한 공기, 푸르고 맑은 물빛, 모래와 조약돌이 어우러진 해변, 16세기에 만들어진 요새, 바다 앞쪽의 작은 섬 두 개가 전부인 해안 마을이지만 동유럽의 부유층들에게 사랑받는 휴양도시다. 영화,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 도시는 긴 여행에 지친 여행객의 마음을 매우 편하게 해준다. 낚싯대와 책 한 권이 꼭 필요한 곳이다.
푸른 아드리아 해안을 정원 삼은 해안 도시들
발칸 남동부 지역에 위치한 몬테네그로는 한국인에게는 낯설다. 크로아티아처럼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안선을 끼고, 해안으로부터 디나르알프스(Dinar Alps) 산맥이 가파르게 솟아올라 풍경의 장관을 보여주는 나라다. 풍치는 빼어나고 음식은 이탈리아 버금갈 정도로 맛있고 물가도 싼 나라인데도 크로아티아 뒷전인 것은 순전히 매스컴 영향 탓이다. 무분별하게 보여주는 영상매체를 스스로 걸러낼 수 있어야 수준 있는 사람이다. 몬테네그로는 우리나라 강원도 정도 크기로 유럽 내에서도 매우 작은 국가다. 좁은 땅에 로브첸(1749m), 오르엔(1894m), 두르미토르(2522m) 등의 고산이 90%나 차지하고 있어 매우 척박하다. 현지민들은 살기가 힘들겠지만 관광객에게는 최상의 여행지다. 고산을 지붕 삼고 푸른 아드리아 해안을 정원 삼은 해안 도시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영국 시인 바이런(1788~1824)은 몬테네그로를 ‘육지와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조우’라고 표현했다.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Podgorica)는 전쟁으로 온 도시가 폭격을 당했지만 아드리아 해안선은 완전히 다르다. 코토르 만을 따라 이어지는 293.5km 해안선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손꼽힌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와 경계에 있는 헤르체그노비(Herceg Novi)를 시작으로 페라스트(Perast), 티바트(Tivat), 리산(Risan), 코토르(Kotor)까지 그림 같은 해안 도시가 이어진다.
부드바와 바르 중간쯤에 있는 작은 해안 마을
그러나 아름다운 곳에는 늘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해안 도시의 풍치에 탄성을 내지르는 것도 잠시. 때때로 지나친 상흔을 보여주는 곳이 번잡한 관광지다. 긴 휴식을 취하고 싶었을 때 찾았던 곳이 페트로바츠다. 페트로바츠는 수도 포드고리차의 식당 직원에게 추천받은 곳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Hercegovina)에서 몬테네그로로 입성해 터미널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메인 요리를 두 개나 시켜 먹고 나서 영어를 잘하는 스태프에게 질문을 했다. “네가 좋아하는 도시를 추천해줄래?”라고 묻자 그는 메모지에 페트로바츠라는 지명을 써주었다. 지역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코토르를 도망치듯 떠나 ‘부드바(Budva)’에 점을 찍고 버스에 올라탔으나 목적지에서 내리지 못하고 ‘바르(Bar)’까지 가버렸다. 버스의 남자 안내원이 인파에 밀려 동양인 여자가 목적지를 꼭 알려 달라 했던 지명을 잊어버린 것이다. 바르에 도착한 버스의 여자 운전자는 말 안 해준 안내원보다 더 안달이 났다. 그녀는 페트로바츠까지 되돌아갈 수 있는 버스 편을 가르쳐주기만 했지 공짜표는 주지 않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너네 잘못이니 표 값 돌려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생각일 뿐이었다.
로마 때 별장을 지으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도시
페트로바츠는 부드바(17km)와 바르(21km) 중간 즈음에 있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관광객들로 온통 북적대던 인근 해안 도시에 비해 조용하고 정적이다. 이 도시는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서인 듀클랴(Duklja) 공국의 성직자 연대기(年代記, 연대순으로 역사적인 사상을 열거한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4세기, 로마시대 때 한 부부가 이곳의 크라스 메딘스키(Krsˇ Medinski)에 별장을 지으면서 사람이 정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증명해주는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로마시대의 모자이크 바닥을 욕조로 한 모자이크 조각이 세인트 일리야(Prophet Elijah) 교회 뒤에서 발견되었다. 원래의 지명은 라스트바(Lastva)였다가 20세기, 세르비아의 페타르 카라조르제비치(Petar Karađorđevic´, 1844~1921) 왕조 때부터 페트로바츠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마을 앞으로 나서면 600m 해안선을 가진 루치차 해변이 있다. 작아서 한눈에도 해안 주변은 다 보인다. 해안선 북쪽 오른쪽 끝에는 오래된 듯한 작은 요새가 있다. 반대편 해안에는 자그마한 소나무 산이 있고 바닷가 쪽으로는 가옥 몇 채가 있을 뿐, 해안 길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바다 앞쪽으로는 작은 섬 두 개가 있고 바위 섬 위에는 마치 ‘인형 집’ 같은 작은 교회가 있다.
영화 등 촬영지로 인기
우선 눈에 익은 듯한 북쪽 해안 끝 카스텔(Castel)로 다가선다. 작은 이 요새는 16세기 베네치아 통치 시절에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선원들의 작은 등대 역할을 했다. 요새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스트와 싸우고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기 하기 위한 작은 오벨리스크가 기둥처럼 솟아 있다. 요새 옆의 거대한 아트갤러리(Red Commune)는 베네치아 통치 시절에 만들어진 창고 겸 검역소다. 와인 등의 제품들을 보관했고 전염병이 돌면 환자의 숙박시설, 검역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유명한 건축가인 마르코 그레고비치(Marko Gregovic)가 19세기 후반 개조해 오늘에 이른다. 이 건물에는 1만5000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이 있고 연중 많은 연극, 예술, 음악 이벤트가 펼쳐진다.
특히 이곳 풍경이 낯익은 것은 영화 (레이첼 와이즈, 애드리언 브로디, 마크 버팔로 주연)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사기꾼 형제 중 동생(애드리언 브로디 분)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도망쳐온 곳이 바로 이곳. 레이첼 와이즈와의 사랑을 이루는 엔딩 장면도 이 요새와 레드 코뮌을 뒷배경으로 보여준다.
바닷가 앞에 있는 두 개의 작은 섬은 카티치와 스베타 네제리아(Katicˇ and Sveta Neđelja)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앙증맞은 이 섬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 정보부가 유고슬로비아 게릴라와 연락 교신하기 위해 주둔했다. 난파선 선원의 귀환을 기원하는 성 일요일이라는 작은 교회가 남아 있다. 교회의 종을 울리면 행운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흐르고 있지만 유람선을 타지 않으면 접근하기 어렵다. 이 도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구)유고슬라비아의 부유한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현재도 외부 관광객보다는 현지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카지노가 있는 멋진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원 없이 휴양을 즐기면 좋을 곳. 아침 햇살을 맞으며 요새 근처의 바에 앉아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책을 읽고 싶은 곳. 낚시를 즐긴다면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가 잡힌다면 한국식으로 회를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Travel Data
항공편 직항은 없다. 동유럽, 서유럽, 터키 등지에서 항공편으로 몬테네그로로 진입한다. 포드고리차 티바트 공항은 도심과 50km 거리에 있다. 육로로는 주로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그리스, 마케도니아, 코소보 등에서 접근할 수 있다.
현지 교통 기차보다는 버스가 편하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버스로 이용할 경우, 헤르체그노비를 거쳐 3시간 만에 코토르에 도착한다. 코토르에서 페트로바츠까지 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해상 편은 굉장히 불편하다. 인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코소보 등 형제 국가에서의 진입에도 엄격한 여권 검사 등 국경 통과 절차를 밟아야 한다.
화폐 공식 화폐는 ‘유로화’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저렴해 부담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언어문제 몬테네그로어와 라틴 문자,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관광지 대부분은 영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없다.
먹거리 도시 안쪽이나 바닷가 쪽에 레스토랑, 바, 카페가 있다.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바닷가 근처라서 해산물이 많다. 또 몬테네그로산 프로슈토 햄도 유명하다.
숙박정보 카지노가 있는 호텔 외에 가정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꽤 있다. 카지노 호텔은 30만원선이고 게스트하우스나 아파트는 5~6만원선에 이용 가능하다. 저렴한 호스텔은 없다.
날씨정보와 옷차림 몬테네그로는 해양성 기후로 여름이 길다. 9월은 물론 10월 낮에도 바닷가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습기가 없고 건조해서 여행하기 좋으나 낮에는 햇살이 따갑다. 10월의 평균온도는 20도 정도이니 가을 옷을 준비하면 된다. 겨울에는 9도 정도로 온도가 급강하한다.
치안정보 몬테네그로는 관광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치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대부분 안전한 편이나 관광지에서는 바가지 상술을 겪을 수 있으니 유의하길 바란다.
페트로바츠 관광 사이트 www.petrovac.org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한국인들은 매스컴 등의 영향으로 크로아티아 여행을 선호하지만 바로 인접해 있는 몬테네그로의 풍경은 크로아티아 버금간다. 크로아티아 여행과 함께 몬테네그로 여행 계획도 세워보자. 그리고 페트로바츠에만 머물지 말고 시간 배정을 잘해서 몬테네그로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해보자. 크로아티아부터 시작해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울치니(Ulcinj)를 벗어나 알바니아, 그리스까지 여행을 한다면 최고의 여행이 될 것이다. 렌트(www.montenegro-car-rent.com)를 하거나 유람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퇴임 후 예순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1만2000km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침대에서 죽느니 길에서 죽는 게 낫다”고 말한 그는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여행을 통해 꼼꼼히 기록했다. ‘나이 듦’은 생각하기에 따라 젊음보다 오히려 장점이 많을 수 있다. 속도를 늦춰 살고 여유 있게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이미 쓴 노트의 페이지는 되돌릴 수 없다. 아직 남아 있는 빈 여백에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쓰는 일, 지금 바로 시작하자.
이 글은 필자의 현장 경험을 가감 없이 반영한 ‘생생 정보’다.
여행지 선택, 어떻게 해야 하나?
전 세계의 유명인들이 망명국으로 선택한 곳은 유럽이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그들이 유럽을 정착지로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럽은 소도시별로 다양한 매력이 있다. 유럽 여행 좀 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여행지를 나라가 아닌 도시로 구분 짓는다. 다양한 ‘인문’을 접할 수 있는 것 이 유럽 여행의 큰 매력이다. 또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라서 운치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어느 계절이 여행하기 좋을까?
여행 갈 때는 좋은 계절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봄이 가장 좋다. 여름이나 가을도 무난하다. 유럽의 여름은 지중해성 기후라 한국보다 훨씬 뜨겁지만 대신 습도가 낮다. 더우면 바닷가 근처에서 머물며 해수욕을 즐기면 된다. 가을 단풍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으며, 겨울에는 설경을 감상할 목적이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북유럽 쪽의 겨울은 낮이 아주 짧다. 오후 3시쯤 해가 지기 때문에 관광할 시간이 너무 짧다. 겨울 여행은 긴긴 밤 속에서 보내는 날이 많을 수도 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굳이 타지에서 돈 써가면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비자 등 각 나라별로 주의해야 할 사항
유럽의 많은 나라가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을 맺었다. 솅겐조약은 180일 이내에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는 규정이다. 그래서 솅겐국 내에서 총 체류가 90일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한 달 체류는 문제되지 않는다. 참고로 유럽연합(EU)은 회원국 총 28개국에서 영국이 탈퇴(2016년)하면서 27개국이 되었다. 알기 쉽게 권역별로 정리하면, 서유럽권(프랑스, 이탈리아, 몰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동유럽권(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폴란드, 헝가리), 북유럽권(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발트 3국(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다.
숙소 구하기와 추천 사이트 소개
여행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박이다.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겠지만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독채를 빌려 쓰는 게 좋다. 외국에는 캠핑시설이 엄청 잘되어 있다. 자동차를 렌트해서 여행할 경우 캠핑장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외국의 시니어들은 값싼 호스텔을 많이 애용한다. 단, 호스텔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휴식을 취하기 힘들다. 숙박기간은 미리 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며칠 동안 지내보고 더 연장할 것인지는 그때 정해도 늦지 않다. 사람 마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 숙소를 서로 바꿔서 지내는 방법도 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하다. 이동을 많이 하지 않으면 경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추천할 수 있는 대표적 해외숙박사이트
에어비앤비www.airbnb.co.kr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kr
익스피디아www.expedia.co.kr
부킹닷컴www.booking.com
여행 경비 줄이는 방법
우리나라 환율을 기준해서 환율이 낮은 나라를 선택하면 된다. 참고로 동유럽이나 발트 3국은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 피서철의 유명 관광지를 피하는 것도 경비를 아끼는 방법이다. 환율이 낮은 나라라도 피서철에는 여행객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행태가 일상화되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선진국도 다르지 않다.
신용카드와 현금,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여행 중에 쓸 카드는 미리 만들어가는 게 좋다. 분실이 염려되겠지만 해외 현지인들이 한국에서 만든 카드를 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비상시에 쓸 현금은 옷 속이나 자신만 아는 비밀스러운 곳에 넣어둔다.
여행 가방은 최대한 간편하게 싸라
여행은 가볍게 해야 한다. 휴식을 하러 떠난 여행지에서 많이 가져간 짐 때문에 이런저런 부담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의 골목들은 한국과 달리 엄청나게 울퉁불퉁하다. 옛것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기에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부족한 물품은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실제로 의류 등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최악의 영어 실력, 여행지에서 괜찮을까?
각 나라별 언어를 익힐 시간은 없다. 영어만 할 줄 알면 어디선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최악이라면 짧고 간단하게 말하면 된다. 어린아이가 이해할 정도로 쉽게 언어를 구사하면 상대가 충분히 알아듣는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현지인들도 영어 실력은 나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영어를 못한다고 절대 고민하지 말라. 무엇보다 전 세계 공용어인 ‘제스처’가 있으니 여행에 있어 언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해본 적 없는 배낭여행, 어떻게 하나?
모든 일이 숙달되기까지는 누구나 초보 시절을 겪어야 한다. 처음부터 베테랑은 없다. 패키지여행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배낭여행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생하고 돈 많이 쓰는 여행을 왜 하는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배낭여행의 매력을 백번 설명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지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방법이 있다. 패키지여행을 자유여행으로 바꾸면 된다. 패키지여행을 가서 가이드 안내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일행들에서 빠져나와 자유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패키지여행 반 자유여행 반으로 구성된 이색적인 여행 프로그램들이 많다. 패키지여행이 온전한 배낭여행보다는 안전성을 보장해주니, 그렇게 몇 번 실행해보라. 어느새 배낭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여행자 보험, 반드시 들어야 하나?
여행자 보험은 3개월을 기준으로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지역 경찰서에 가서 확인서를 받아오면 된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험을 청구하면 의외로 황당할 때가 많다. 잃어버린 물건 가격에 상관없이 소정의 액수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건 변상은 기대 이상으로 박하지만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 또 현지에서 몸이 아플 경우 병원에 가는 데 도움을 준다.
강도를 만났을 때 대처법
여행지에서는 가끔 ‘강도’를 만나기도 한다. 특히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서는 강도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지의 도둑들은 혼자 행동하지 않고 대부분 두세 명이 함께 움직인다. 이들은 처음에는 ‘여행자’인 척하고 따라 붙는다. 그러고는 경찰이라고 하면서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이럴 때는 재빨리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제복을 입었는지 확인부터 하라. 말대꾸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그들의 허점을 먼저 공략하면 된다. “제복을 입지 않았군요?”라고 말하거나 ‘경찰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면 그들은 도망가기 바쁘다. 동양인들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푼돈’을 뜯으려는 자들이지 사람까지 해치려는 생각은 안 한다.
예방접종주사, 꼭 맞고 가야 하나?
예방접종을 하고 가면 훨씬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방주사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다. 특별히 ‘위험지역’이라는 보도가 없는 나라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 지역을 자주 이동하지 않는다면 전염병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아플 때 도움 받는 법
현지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 젊은 약사가 있는 곳을 선택하라. 나이든 약사는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해서 설명이 어렵다. 현지에서 병원에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픈 곳에 대해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치료를 안 해주는 병원도 있다. 이럴 때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도움을 받아라.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인터넷으로 찾으면 가능하다.
교통수단 이용 방법
여행지에서 이동은 필수다. 인터넷으로 미리 교통 정보를 알아보고 가겠지만 이 방법보다 유용한 것은 현지에 도착해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찾는 것이다. 친절한 가이드가 있는 곳도 있고 달랑 지도 한 장만 주는 곳도 있다. 상황에 따라 가이드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특히 어려운 지명은 발음이 어려워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으니 메모지에 써서 보여줘라. 그들은 전문가다. “싼 것을 원한다”고 말하면 2클래스를 알아서 척척 끊어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익숙해져도 직접 티켓 창구로 가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라. 자동기계를 잘못 이용하면 티켓 값을 순식간에 날릴 수 있다. 티켓을 발부받으면 정확한 날짜에 예약이 되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정확한 날짜가 아닌 ‘이틀 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들의 날짜 계산이 잘못될 수도 있다.
여권을 잊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여행 중에 여권은 생명줄과도 같다. 복사본을 준비해가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증명사진 두 장 정도는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여권을 잃어버리면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하는데, 큰 도시의 경찰서는 이런 과정이 훨씬 복잡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작은 파출소를 선택해서 신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고 후 그 나라의 수도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면 임시 여권을 만들어준다. 계획했던 여행 날짜만큼 충분히 머물 수 있다.
국세환급금(Tax Refund) 받는 요령은?
여행지에서 특산물을 살때는 ‘Tax Refund’가 표시된 현지 숍에서 사라. 물건을 구매했다고 말하면 영수증을 발급해준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영수증 발급을 안 해준다. 영수증은 모아놨다가 마지막으로 여행하는 나라 공항에서 제출하면 된다. 대부분은 자국의 영수증만 환급해준다. 다른 나라의 영수증은 ‘Tax Refund’ 바로 옆에 있는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푼돈이라도 아끼면 적지 않은 돈이 된다.
기타 주의해야 할 사항들
여행지에서는 늘 변수가 있다. 이럴 때는 벌어진 상황에 맞춰 계획을 빨리 바꿔야 한다. “끝까지 해볼 테야” 하는 고집이 더 큰 변수를 일으킬 수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에 한국에 비상연락책을 두어 명 구해놓는다. 현지에서 일이 생기면 필자의 블로그(www.sinhwada.com)에 댓글을 남겨도 된다. 인터넷의 세상은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고 가깝고 빠르다.
우리는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를 일컬어 ‘지음(知音)’이라 부른다. 중국 춘추시대 금(琴)의 명인인 백아(伯牙)가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고 나자 ‘파금절현(破琴絶絃)’, 즉 자신의 음악을 더는 이해해줄 마음의 친구가 사라져 버렸으므로 금을 부수고 줄을 끊어버린 뒤 다시는 금을 잡지 않았다는 고사이다.
이 고사에서 비롯된 지음이라는 단어는, 곧 자신을 어쩌면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해 주는 세상의 하나뿐인 친구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는 신하이자 친구였던 건안칠자(建安七子)를 전염병으로 잃자, ‘통지음지난우(痛知音之難遇: 지음을 다시 만날 수 없음에 애통하고...)’라 읊었고, 두보(杜甫)는 ‘이 사람 다시 볼 수 없으니, 장차 늙어 지음을 잃어 어찌할꼬(斯人不重見 將老失知音)’라 노래하였다.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은 ‘추풍유고음(秋風惟苦吟)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 즉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워 노래하노니,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지음이 없구나’라고 독백하였던 것이다.
중국 위진시대 서진(西晉)에 손초(孫楚)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에게는 왕제(王濟)라는 절친이 있었다. 재주는 있었으나 성격이 나빴던 손초를 유일하게 알아주었던 왕제는 당시 황제의 사위인 높은 지위에 있던 인물이었다. 손초는 내심 세상에 나가 출세를 하고 싶었으나 당시 유행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예를 따라 은거하겠다고 마음먹고 왕제에게 “이제 은거하여 자연에서 침석수류(枕石漱流: 흐르는 물로 이를 닦고 돌로 베개를 삼다)나 해야겠네”라고 말하려는 것을 잘못하여,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이를 닦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다)’라고 했다.
그러자 왕제가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고 돌로 이를 닦는 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하자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던 손초는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허유(許由)처럼)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연마하기 위함이라네”라고 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이후 왕제가 대중정(大中正)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그의 하급관리가 관리를 추천하는데, 손초를 평가할 때에 이르자 왕제가 “이 사람은 그대가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내가 하겠노라”며 직접 기록하길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 특별히 발군의 인재[天才英博 亮拔不群]”라고 써 주었다. 이 덕분에 손초는 후일 풍익태수(馮翊太守)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성격이 오만하고 고집이 세었던 손초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았으나 오직 왕제에게만은 진심으로 감복하고 존경하였는데, 아내가 죽어 상복을 벗을 때 즈음 자신의 마음을 적은 시를 왕제에게 보여주었다. 이를 본 왕제는 ‘시문이 정에서 생겨나는지, 아니면 정이 시문에서 생겨나는지 모르겠구나![未知文生於情 情生於文]’라며 감탄했다고 전한다.
위의 고사에서 전하는 ‘수석침류(漱石枕流)’는 이후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이기도 한다.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은 1906년 이름이 바뀌기 전 본래 이름이 수옥헌(漱玉軒)인데, 이 ‘수옥(漱玉)’이라는 단어의 원래 출전이 바로 수석침류로, 수석(漱石)을 수옥(漱玉)으로 바꾼 것이다.
나는 안경 대신에 콘택트렌즈를 착용하여 눈이 나쁘단 사실을 한동안 숨겨왔다. 우리 시절엔 여자가 안경을 쓰는 걸 터부시했었으니까. 예를 들어 택시기사도 안경 쓴 여자를 첫손님으로 받으면 온종일 재수가 없단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믿기나 할까? 맞선 보는 자리에 안경을 쓴 색싯감은 일순위로 딱지를 맞았다는 일화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근시의 원인은 아직도 잘 모른다는데, 대개 어두운 데서 책을 읽는다든가 눈에다 너무 가깝게 대고 본다든가 텔레비전 앞에 바투 앉아 시청을 한다든가 등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부르며 절대로 사주지 않았던 부모님 덕분에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텔레비전은 구경도 못하고 자란 내가 시력이 나빠진 데에는 억울한 사연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명백히 최루탄 탓이라 믿고 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이었는데 몇 정거장만 올라가면 고려대학교와 맞닿았다. 그 당시 대학교 근처에 산다는 건 곧바로 최루탄 세례를 받는다는 말과 같았다. 4·19와 5·16땐 아직 어려 엄마 품에 있었기에 세상이 아름답게만 느껴졌지 그렇게 매운바람이 불어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철이 들고 나서부터 봄은 최루탄 가스와 함께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학기가 되면 대학생들은 여지없이 교문 밖으로 뛰어나와 데모를 벌였고 데모를 진압하는 경찰이 최루탄을 투척하면 매캐한 연기가 온 동네를 뒤덮고 말았다. 그 겨자보다도 더 모질게 매운 최루탄 가스 앞에서 우리들은 비극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질질 흘리며 대학생들을 원망하곤 했다. 특히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셨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하다니…”
친구들과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다가 불발탄이 된 최루탄 조각이 땅속에서 불쑥불쑥 솟아나오면 그게 마치 수류탄이기라도 되는 듯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던 날도 많았다. 최루탄 가스가 눈이나 코, 피부로 들어가면 눈물과 콧물이 쏟아지며 심한 통증이 찾아온다. 어떤 땐 구토까지 일으키며, 피부가 온통 뒤집어지기도 했다. 일시적 실명현상까지 일으키는 최루탄 가스 세례를 해마다 받고도 내 시력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매운 환경 속에 성장한 나는 중학생이 되던 해부터 안경잡이로 살아야 하는 운명에 접어들었다. 안경 쓰기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대학생이 되면 절대 데모 따윈 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1978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세상은 정권에 대해 반발하는 국민정서가 정점에 올랐던 그 시기였다. 나라가 흔들바위에 올라앉은 것처럼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이듬해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으니 얼마나 흉흉한 시절인지 모른다. 내가 다니던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에는 붉은 글씨로 ‘독재 정권 물러나라’라는 대자보가 매일 새롭게 붙었다가 뒤돌아보면 어느새 떼어내고 없어지곤 했다. 교정 곳곳엔 날카로운 눈빛의 아저씨가 손에 워키토키 무전기를 들고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런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까봐 건물 뒤로 먼 길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늘 무언가 새로운 정보가 수군수군 퍼져나갔고 등사기로 민 조잡한 인쇄물이 나돌아 다녔다. 주로 ‘군사 정권을 타도하자’는 내용이었다. 캠퍼스 한곳에서 간헐적으로 데모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면 여지없이 삽시간에 경찰버스가 밀어닥쳐 마치 닭장을 탈출한 어린 닭을 잡아들이듯 한심하단 표정으로 여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싣고 떠났다.
정말 무서운 광경이었다. 나무 위에 유령처럼 숨어 있었던지 정보부 직원이 어느결에 나타나 군홧발로 잔디밭을 짓밟으며 데모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학이 지성과 아무 관계없는 치열한 전투 현장처럼 여겨졌다. 그러다가 부마(釜馬)사태가 발발한 1979년 가을 무렵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서울역 앞에 집결하기로 결정했다. 과 대표가 결연한 모습으로 더는 침묵할 수 없으므로 한 곳에 모여 구국의 결의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이 아마 서울에서 대학생들이 벌인 가장 큰 시위였을 것이다. 진압하는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 붙들려 옷이 찢어지거나 신발을 잃어버린 학생들이 대다수였고, 곤봉으로 얻어맞은 친구들도 많았고, 몇몇 학생은 결국 붙잡혀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때 만일 나도 친구들을 따라 서울역에 갔었더라면….’
그때 서울역에 가는 대신 나는 도서관으로 향하며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했다. 의과대학에 들어온 이유는 정치에 상관없이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려는 것인데 일일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참여하다 보면 언제 공부를 하겠어? 의사란 이념보다는 인간애를 중시하고 또 실천하는 직업이 아닌가? 구태여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대학생들이 세상을 바로잡을 테지…. 하지만 그건 치졸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고 사실 나는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어떤 교육을 받아왔던가? ‘국민교육헌장’을 제대로 못 외우면 손바닥을 대나무 회초리로 맞았고, 국어 시간엔 애국에 대한 표어를 짓고 미술 시간엔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자나 깨나 반공교육을 통해 공산주의를 무슨 괴물이거나 악마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단어는 뭐니뭐니 해도 ‘간첩’이었을 것이다. 강원도에 살던 이승복이란 아이가 무장공비를 향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저항하다가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몰살당했다는 뉴스는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하필 이승복은 나와 생년월일이 똑같은 1959년 12월 9일생이라서 결코 그 이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서울 한복판에도 무장공비가 출몰한다는 소식은 우리들 머리 위에 구름처럼 공포를 드리워 놓았다. 공포만큼 인간을 다스리기 편한 도구가 또 있을까? 청와대를 폭파하는 목적으로 남하했다는 간첩 김신조가 체포되었다는 속보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구름에서 비가 떨어지듯 하늘에서 불안감이 뚝뚝 떨어졌다.
대학생들이 데모를 벌이면 어른들은 그게 모두 북한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거라고 말했다. 그럴 땐 북한 공산당이라고 하지 않고 빨갱이라고 부르게 마련이었다. 그건 지금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대학생이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세상을 향해 감긴 눈이 떠지는 건 아니다. 일간 신문에 실리는 기사를 액면 그대로 믿었고,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던 평범한 여학생이 정권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다른 친구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서울역을 향해 뛰어가도 그건 지각없는 부화뇌동일 뿐이라 여겼다. 도서실에 두더지처럼 숨어 있던 나는 스스로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는 착한 딸이라고 믿었다. 그땐 그랬다. 덕분에 안기부에 끌려가는 일 없이 무사히 대학을 마치고 의사가 된 걸 안도해야 할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여러 가지로 평가해야겠지만 확실한 건 만일 내가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가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 서게 된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면, 그땐 절대로 데모대를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기적인 시선으로 개인의 안정만 도모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남미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권력과 억압에 대한 항거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역사가 아니란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칠레에는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짓밟힌 수많은 목숨이 스러져갔고 아르헨티나의 ‘추악한 전쟁’ 동안에는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수만 명의 실종자들이 있었다. 과테말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는 어쩌면 그렇게 우리나라의 모습과 닮았던지 소름이 끼쳤다. 대통령의 심복이 겪는 불행이 비정한 군부정치의 생리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또 로베르토 볼라뇨의 에는 멕시코시티의 대학에서 데모대가 진압 당할 때 화장실에 숨어서 13일을 연명한 우루과이 출신의 여대생 이야기가 나온다. 그건 실화를 가지고 만든 소설이어서 더욱 숨죽이며 읽게 되었다. 그녀는 나중에 ‘멕시코 시(詩)의 어머니’로 추앙받는다는 조금 심오한 내용이다.
또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 에는 여죄수에게 가하는 고문의 강도를 연구하며 강간을 저지르는 의사가 등장한다. 그 의사는 성적 고문을 하는 동안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들려주는 친절함을 베풀었다는데 이 희곡의 공간적 배경은 ‘칠레일 수도 있지만 오랜 독재 기간이 끝난 직후 민주정부가 들어선 경우라면 어느 나라도 무방하다.’라고 설정되어 있는 것만 봐도 독재란 전염병처럼 세상에 널리 퍼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민주화 투쟁을 하던 데모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반향이었던 것이고 그런 데모에 동참하지 않았던 나는 전 세계적으로 비겁한 인물이 된 셈이다.
그런 중에 칠레 태생의 천재적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가 어느 수상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양질의 글쓰기란 ‘암흑에 머리를 들이밀 줄 알고, 허공에서 뛰어내릴 줄도 알고, 문학이 기본적으로 위험한 일임을 알고 쓰는 글’이라고.
그게 비단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즉 암흑에 머리를 들이밀 줄 알고, 허공에서 뛰어내릴 줄도 알고, 기본적으로 인생이란 위험한 것이란 걸 알고 사는 삶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리라.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채 살아왔던가 보다.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안정과 자기 영달을 추구한다지만 내게 남은 세월엔 지난 부끄러움으로 더는 낯을 붉히지 않게 되길 소망한다.
△ 김애양(金愛洋) 은혜산부인과 원장·수필가
이화여대 의대 졸. 은혜산부인과(서울 강남구 역삼동) 운영. 1998년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5권 발간. 한국의사수필가협회를 결성해 모임을 주도하고, 해마다 ‘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을 통해 의대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