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 벚꽃이 만개했다. 우리 동네 가로수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조명이라도 밝혀 놓은 듯 세상이 환하다. 온 땅이 기지개를 켜듯 기운이 살아난다. 강원도 산불의 주범이었던 강풍에도 아직은 세상을 떠날 의사가 없는 듯 벚꽃들은 완강히 가지에 달라 붙어있다. 봄은 힘이 세다. 꽃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그러나 봄은 곧 퇴장한다. 꽃들도 끈질긴 생명력을 때가 되면 미련없이 버린다. 가야 할 시간이 되면 봄바람에 흩날리며 장렬히 산화할 것이다. 그 모습은 결코 추하지 않다. 이형기 시인은 를 이렇게 노래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식물도 이렇게 있어야 할 때는 모진 외풍에도 의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역할이 끝나면 미련 없이 물러나거늘.. . 그래서 그 모습은 비장하게 아름답거늘... . 어째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그리도 떠날 때를 모르고 미적거리다가 망신을 당하고야 마는지...
얼마 전 TV 토크쇼에서 배철수를 만났다. 젊은 시절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송골매의 배철수가 화사한 은발과 맑은 얼굴을 하고 등장했다. 여기에 뜬금없이 배철수를 소환한 것은 본받을만한 그의 삶의 철학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넘치는 환호를 받으면 몹시 불편하단다. 가진 것보다 조금 못하게 평가받을 때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소박하지만, 요즘 세태에서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최근 허세의 아이콘으로 세상을 주름잡던 한 청년이 이카로스처럼 한없이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상 이치의 엄정함을 새삼 절감한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계영배’도 떠오르는 요즘이다. 술잔의 구조가 70% 이상을 따르면 아래로 새 버리게 되어 있어 욕심을 버리라고 절제를 가르치는 술잔이다. 행복은 욕심으로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절제 속에 행복의 실마리가 보인다. 이형기는 그것을 이렇게 노래한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그렇다. 가야 할 때 가는 것이 축복이다.
무너지고 있는 그 연예인 뿐만 아니라 떠나야 할 때를 모르고 구질구질하게 자리에 매달려 있는 ‘벼슬 높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이다.
한밤중에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큰일이 일어났다고 직감했다. 아들이 술이 취해 경찰의 도움을 받아 집에 왔는데 아버님이 야단 좀 쳐달라는 내용이었다.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아들을 보고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며느리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이 밤중에 시아버지인 내게 고자질하려고 전화를 했을까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경찰의 도움으로 퍽치기를 당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다니 다행이다 싶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날 아들을 호출했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느냐고 이유를 물었다. 술이 센 직장 상사가 강권하는 바람에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 마시다가 취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직장 상사가 술을 권하기도 했겠지만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승부욕이 있어 술자리에서는 술로 이겨보려 한다. 나도 젊은 시절 누가 더 센지 한번 붙어보자며 독기를 품으며 술을 마신 적이 있다. 한때의 오기였다.
술을 너무 마시면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삼킨다는 말이 있다. 아들에게 술을 적당히 마시라는 의미로 계영배(戒盈杯)의 이야기를 해줬다. 계영배는 강원도 홍천 사람 우명옥이 만들었는데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다. 과음을 막기 위해 술이 일정 이상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절주배(節酒杯)를 그가 만들게 된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며 술의 해악을 깨닫도록 했다.
우명옥은 뛰어난 도공 실력으로 궁궐의 자기를 만드는 광주분원에 발탁되어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면서 명성을 올렸다. 그러자 그의 기술을 시기한 동료들이 술집으로 끌고 다니며 그를 타락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도공에게 생명인 손이 떨리는 수전증까지 앓게 된다. 스승도 그를 내치자 자신의 방탕한 삶을 뉘우치면서 술을 끊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계영배를 만들었다. 이 술잔은 조선시대 후기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의 손에 들어갔다. 임상옥은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시대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 이 술잔이 깨졌을 때 우명옥의 목숨도 끊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술을 경계하기 위해 늘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소설가 현진건이 쓴 ‘술 권하는 사회’라는 작품에도 술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가 누가 술을 권했냐고 묻자 남편은 “부조리한 사회가 술을 권한다”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은 말 상대가 되지 않는 아내를 뿌리치며 비틀거리며 또다시 술을 마시러 나가버린다. 사회가 술을 권한다 해도 술 마신 사람의 건강만 나빠진다. 술은 간에도 치명타를 입히지만 관절도 병들게 한다. 술을 이기는 천하장사는 없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장수하는 걸 나는 못 봤다.
술은 적당히 마셔야 삶의 윤활유가 된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히 오가는 술잔은 뇌를 기분 좋게 해 대화도 풍성하게 하고 친밀도도 높여준다. 문제는 적당한 기준을 늘 넘어선다는 데 있다. 술을 마시다 보면 분위기에 들떠 과음을 하는 것이다. 또 술에 취하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도 하게 된다. 참을성이 약해져 갑자기 욱하면서 사고를 치기도 한다. 술에서 깬 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다. 이 모두가 술의 해악이다. 직장에서 평소 얌전하고 일도 착실히 하던 사람이 술자리에서 상사에게 대들어 그동안 쌓아온 점수를 다 까먹는 것을 보기도 한다. 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도 많다. 그러니 술을 마실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계영배를 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