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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달산 기슭에 깃든 골목 이야기, 레트로 목포
- 한동안 한 달 살기나 일 년 살기가 유행처럼 퍼졌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주를 여행해도 일주일 살기라 하듯 하루이틀을 지내도 그 지역에 스며든 여행을 선호한다. 목포에 머물면서 요즘 새로운 여행 패턴인 짧게 살아보기를 경험했다. 목포의 골목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쪽문 옆을 지나고 작은 텃밭을 지나 그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2박 3일을 살았다. 1897년 목포항 개항 이후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은 지금껏 불변이다. 목포 유달산 중턱엔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그 거리를 걷다 보면 지금도 구슬픈 가락이 어디선가 들려오기도 한다. 잔잔한 바다 옆으로 갓바위가 전설을 품었고, 바닷가 마을의 저녁노을에 전율했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고하도 전망대를 거쳐 발밑으로 목포 원도심과 다도해를 짜릿하게 선사했고, 평화의 광장으로 몰려든 커플들은 밤바다에 넋을 잃는다. 목포 주변 섬 여행도 손쉽고, 해산물 노포 맛집도 지천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목포의 변화 역시 만만찮지만 빛바랜 듯 옛 발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는 목포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과 옥단이길의 레트로 정서 도시의 매력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유형무형의 것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목포는 예부터 예향이었다. 유달산을 중심으로 몇 갈래로 뻗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우리 근현대사를 이어나갔던 예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문학의 향기가 좁은 길마다 연결되어 있고, 화가의 집도 가수 이난영 일가의 전시관도 함께한다. 목포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는 대통령도 있고 유명 연예인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1930년대 초반부터 해방 무렵까지 목포에 살았던 옥단이를 빠뜨릴 수 없다. 옥단이는 이 지역 출신 차범석 작가의 작품 속 실존 인물이다. 옥단이길에 들어서면 물지게를 진 여성 캐릭터 안내판이 맞이한다. 척박했던 시절의 순박한 물지게꾼 옥단이. 목포 사람들의 허드레 물장수를 하며 좁다란 골목길 일대를 누볐던 밝고 당찬 여성이었다. 목포역에서부터 유달산 부근까지 오래된 옛집들 사이로 4.6km에 걸쳐 11개 골목의 옥단이길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처음엔 탐험하듯 걷던 길이 옥단이라는 이름의 정겨움으로 그저 푸근하다. 옥단이라는 인물을 문학 캐릭터로 세상에 내놓은 차범석 작가의 ‘작은 도서관’은 말 그대로 자그마하다. 작가의 오래된 잡지와 대본집, 희곡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도슨트가 없어도 누구나 들러서 조용히 책을 보고, QR 코드로 관광 해설과 목포 시민들의 목소리로 낭독한 오디오북을 들어볼 수 있다. 차범석 작은 도서관이 자리한 골목은 차범석길 27이다. 이 길 곳곳에서 수필가 김진섭, 문학평론가 김현, 극작가 김우진, 여성 문학을 대표하던 작가 박화성 등 문인들의 자취를 보여준다. 현재 예술인 골목이 있는 북교동은 지금의 목원동 일대지만 목포 사람들은 여전히 북교동이라 부른다. 골목 안에는 1970년대 감성을 소환하는 흑백사진 속의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도 여전히 건재하다. 개항과 함께 하루 품팔이를 하던 사람들의 계 모임으로 한때 성황을 이루었던 마인계터 골목, 그 옛날 노라노 패션학원으로 유명했던 건물이 미술관으로 재생된 모습도 보인다. 유달산 자락의 노적봉과 근대역사문화공간 북교동 예술인 골목 옆으로 조금 넓게 트인 길을 따라가 보자. 법정 스님과 고은 시인이 만났던 ‘목포 정광정혜원’을 지나게 된다. 김환기, 남농 허건, 박수근, 천경자 등 남도 출신 예술인들이 그려진 벽화가 쭉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면 곧바로 우뚝 솟은 유달산이다. 유달산을 빼고 목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떠오르는 노적봉이 언덕 위에서 맞아준다. 저편으로 목포 앞바다가 시원하다. 유달산을 내려가기 전에 들러볼 곳이 있다. 바로 옆 숲을 이룬 산 아래 1982년에 조성된 국내 최초의 야외 조각공원이다. 자연, 문화, 조각이라는 주제로 설치된 조각 작품들로, 국내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성 높은 외국 조각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의외로 찾는 사람이 적어 호젓하다. 노적봉과 조각공원을 뒤로하고 유달산 저쪽 아래로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비롯한 옛이야기들이 기다린다. 근대역사관 1, 2관과 일본영사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옛 모습 그대로다. 또한 전시관마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비인간적 야욕 및 잔인함을 증언하고 있다.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남긴 적산가옥과 일제 잔재들이 있고, 골목마다 아픈 역사의 상흔을 만나게 된다. 목포는 호남 곡창으로 일본인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발걸음하는 골목마다 일본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묻어 있다. 지금은 타임머신을 탄 듯 옛날이야기를 돌아보며 거니는 역사의 거리가 되었다. 알고 걸으면 더 재미있는 목포의 골목길은 역사와 함께하기에 더 의미 있다. 하늘이 가까운 보리마당로의 골목 이야기 유난히 낡은 풍경의 골목이 많은 목포다. 유달산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골목길이 감성을 품었다. 한때 넓은 보리밭이었고 보리타작을 주로 했다던 보리마당로는 현재의 서산동으로 지대가 높은 윗자락이다. 영화 ‘1987’에서 연희네 슈퍼로 알려진 서산동 골목은 좁기도 하지만 가파른 오르막이다. 영화 속에서는 연희(김태리)와 이한열(강동원)이 무심한 척 속 깊은 시국을 주고받고, 삼촌(유해진)은 조카에게 보안상 위험한 부탁을 하던 곳이다. 우리 모두에게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가 촬영된 골목이다. 이제는 인문도시 서산동 시화골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스러운 사진관이나 작은 미술관, 벽화가 그려진 오밀조밀한 골목 안의 자잘한 정서가 그곳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다닥다닥 붙은 골목 양옆의 담벼락 사이로 주민들이 지나가며 살짝 옆으로 비켜주기도 하는 게 자연스럽다. 좁은 골목을 오르내리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며 안부를 주고받으니 정겹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골목은 좁은 계단이었다가 누군가의 대문 앞이기도 하다. 가끔 고양이가 까무룩 졸다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다. 비탈진 마을을 오르다 보면 시선 끝엔 늘 하늘이다. 하늘이 가까운 동네다. 공간의 전환, 누스테이에서 살아본 2박 3일 유달산 자락에 앉힌 보리마당로의 너른 공터에서 골목에 이르니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던 마을 사람이 반겨준다. “여기는 내비게이션에 번지수보다는 한빛교회로 치는 게 가차워요. 거기가 주차하기도 좋으니께 글루 오믄 더 편치.” 뭐라도 도움이 되려는 마음이 진심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트렌드로 떠오른 말 중 하나가 ‘워케이션’이다. 워크(Work)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원하는 곳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머무름으로 업무와 그 지역을 충분히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목포 ‘누스테이’는 인구 소멸이 심화되는 지역에서 재생 건축을 통해 거주와 일이 가능토록 했다. 새벽 잠결에 나지막한 뱃고동 소리에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도심 재생 건축으로 생겨난 목포의 숙소 ‘누스테이’는 자신만의 시간을 담은 여유로운 워케이션이 가능하다. 골목 안 서늘하도록 정갈한 2층집에 모든 게 갖추어졌다. 쉼과 일이 진행되는 공간 1층, 계단참을 밟으며 올라간 2층에선 테라스의 푸른 식물들과 함께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에선 차를 마셔도 좋고, 캠프파이어가 가능한 루프톱에선 불멍의 시간이다. 동네의 따스함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속도대로 살며 크리에이티브한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 2023-12-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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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에 딱 맞는 한달살기 프로그램 찾는다면?
- 지역을 온전히 느끼며 소소한 일상을 만끽하는 여행, 한달살기가 인기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고, 숙박업체는 장기 임대 상품을 선보인다. 한달살기를 하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이번 기사를 참고해 계획을 세우고, 당장 떠나보자. 중장년 10명 중 8명은 ‘장기간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한달살기는 중장년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중 하나지만, 막상 떠나려니 어디에서, 어느 정도의 비용으로,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이들이 많다. 자유롭게 떠나도 되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이 익숙한 중장년이라면 프로그램으로 첫 한달살기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해 활동비를 받으며 한 달을 보낼 수도 있고, ‘작가로 한달살기’처럼 테마가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호텔에서 한달살기도 하나의 방법이 됐다. 조금 더 알찬 한달살기를 위해 입문이 되어줄 프로그램, 숙소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 한달살기 꿀팁이 가득한 도서까지 참고가 될 내용을 소개한다. ◆한달살기가 처음이라면 많은 중장년이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곳은 제주다. 하지만 제주 외에도 한달살기에 적합한 다양한 도시들이 있다. 어느 도시가 좋을지 모르겠다면, 한달살기를 지원해주는 각 지자체 프로그램을 참고해보자. ‘남도에서 한 달 여행하기’, ‘경남에서 한 달 여행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예산을 지원하다 보니 조건이 까다로울 수 있지만, 기회와 혜택을 생각하면 도전해볼 만하다. 각 지자체는 지역의 특색을 담은 명소나 특산품 혹은 농장 체험 등의 다양한 여행을 제안하는데, 만약 프로그램 신청이 어렵다면 지자체의 추천을 참고해 자유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달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면 3박 4일이나 일주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지자체별로 지원하는 예산 범위와 신청 조건, 신청 시기가 다르므로 미리 알아두면 좋다. 예산 지원은 사전 지급이 아닌 사후 정산이라는 점 참고하자. ◆마을과 깊게 교류하는 한달살기 지역 주민들과 교감하고 머무르는 지역에 깊이 녹아들고 싶다면 ‘마을 호텔’ 형태의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해보자. 한 건물에 라운지, 숙박, 헬스, 식사 등의 서비스가 모여 있는 호텔과 달리, 마을호텔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 기능을 한다. 마을 입구의 카페가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고, 마을의 맛집이 다이닝 역할을, 곳곳의 공방 등이 체험 서비스 역할을 한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곧 즐길 거리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관광형 한달살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한달살기를 찐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마을호텔은 어떨까. ㆍ공주 마을스테이 ‘제민천’ 공주 제민천은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마을호텔을 구성하고 있다. 한옥스테이 ‘봉황재’에서 시작하는 마을호텔의 프런트는 ‘가가상점’이 담당하고, 커뮤니티이자 로비 역할은 ‘반죽동247’ 카페가 하고 있다. 봉황재 외에도 ‘공주하숙마을’ 등의 고즈넉한 한옥스테이가 곳곳에 위치하며, 제민천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먹거리와 볼거리가 숨어 있다. ㆍ강원도 정선 ‘마을호텔 18번가’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마을호텔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한읍의 낙후된 폐광촌에 고한18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성했다. 빈집을 리모델링한 숙소에 머무르면 마을식당, 카페, 사진관, 이발관 등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은 로비 역할을 한다. 마을을 둘러보다 쉬어가도 좋고, 어르신에게 볼거리를 물어봐도 좋다. ㆍ군산 ‘후즈데어’ 군산 영화동에서는 ‘영화장’이라는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이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 한 ‘후즈데어’에서 마을호텔이 시작된다. 프런트 역할은 영화타운에 있는 미국 음식점 ‘럭키마케트’가 담당한다.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 LP바 ‘해무’, 청주바 ‘수복’ 등이 모여 있는 영화타운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유명한 군산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ㆍ서울 ‘서촌유희’ ‘서촌유희’는 오래된 한옥과 옛길의 흔적이 골목 곳곳에 녹아 있는 동네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연결하고, 걷기 좋은 골목과 장소를 제안한다. 서촌유희의 한옥 숙소는 휴식을 취하며 나를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책으로 미리 챙기는 한달살기 ‘꿀팁’〉 1_여행 말고 한달살기 저자 김은덕, 백종민 출판 어떤책 한달살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꿀팁이 가득하다. 특히 해외에서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다면 상황별·계절별 추천 도시들을 보고 나에게 맞는 나라를 찾아보자. 2_60대 부부의 피렌체와 토스카나,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 소도시 한 달 살기 저자 김영화 출판 바른북스 한 도시에 머무르며 주변 소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운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책. 대중교통을 이용해 유럽을 둘러볼 방법을 소개한다. 3_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 저자 배지영 출판 시공사 일하며 한달살기, 은퇴 후 한달살기, 반려동물과 한달살기 등 나의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우기 좋은 책. 국내에서 한달살기를 했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떠나고 싶어진다. ◆호텔에서 한달살기 ‘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라는 의미의 ‘호캉스’가 유행하더니 ‘한달살이’ 상품도 등장했다. 깔끔한 공간과 다양한 부대 서비스로 중장년에게 인기가 많다. 즐길거리가 많은 도심에서 일상을 만들어가는 한달살기를 하고 싶다면 호텔에서 머물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격은 천차만별. 롯데호텔이 내놓은 ‘한 번쯤 꿈꾸는 호텔에서의 삶’을 주제로 한 시그니엘 서울 한달살기는 1000만 원이 넘는다. 신라스테이, 포포인츠바이쉐라톤, 롯데시티호텔 등은 100만~200만 원대에 이용할 수 있다. 호텔별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르니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주제가 있는 한달살기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달살기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 19세 이상 60세 이하인 작가들의 한달살기를 지원하는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 한달살기’, 제주 시골집에서 보내는 어른의 방학 콘셉트의 ‘제주맥주 한달살기’, 다른 지역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살아보는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함께하는 ‘강원도관광재단 워케이션’, ‘제주 세화리 질그랭이 워케이션’ 등이 있다. 〈쉼이 되는 공간, 숙소 찾는 플랫폼〉 한달살기에서 중요한 건 머무르는 공간이자 생활을 하는 숙소다. 장기 숙박 상품을 모아둔 플랫폼에서 살고 싶은 숙소를 찾아보자. ㆍ미스터멘션 ‘쉼’을 제안하는 장기 숙박 플랫폼. 한달살기, 보름살기, 일주일살기에 맞춰 전국의 숙소를 볼 수 있다. 추천 숙소, 호텔, 프라이빗한 곳,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곳 등 다양한 테마가 다양하다. 개인이 숙소를 예약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이중 계약’, ‘당일 입실 거부’ 등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 100만 원까지 숙소 비용을 보장하는 안전거래제도가 있다. ㆍ호텔에삶 한달살기를 할 수 있는 호텔만 모았다. 저렴한 3성급부터 5성급 프리미엄까지 서울, 수도권, 경상, 제주에 있는 호텔 숙박 정보가 있다. 호텔을 예약하기 전 미리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매월 할인 프로모션도 있으니 원하는 도시의 호텔 가격을 비교해보고 합리적인 호텔 라이프를 즐겨보자. ㆍ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는 숙박 공유 서비스다. 전문 숙박업체가 아니라 개인이 제공하는 빈집을 빌리는 개념이기 때문에 공간 상태도 천차만별이고 숙박업체와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신 저렴한 숙소를 구할 수 있다. 장기 숙박이라면 할인 제안도 해볼 수 있다. 특히 해외는 에어비앤비가 활성화되어 있어 잘 둘러보면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숙소 선택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슈퍼호스트’가 제공하는 숙소 위주로 보고, 해당 숙소의 후기와 별점을 참고하는 게 좋다.
- 2022-07-1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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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화된 선진국 노인 주거 차이점은?
- 노인들이 안락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만족할 만한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어려운 숙제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의 난제에 부닥쳤던 해외 여러 나라는 노인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했을까? 지구촌의 다양한 노인 주거 형태를 살펴보자. 은퇴 후엔 거주지를 옮겨 다니기가 쉽지 않다. 질병, 노환 등 신체적으로 한계가 올수록 더욱 불편하다. 그래서 집을 고르는 기준의 변화와 새로운 거주 방식이 필요하다. 현재 병원과 시설의 상황은 만족도가 낮다. 2020년 노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거동이 불편해도 내 집에서 간병 관련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싶다’는 응답이 56.5%로 요양 시설 31.3%, 가족 합가·근거 거주 12.1%보다 많다. 초고령사회 초입에 선 지금, 혼자 생활하는 노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자택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 수도 급증할 전망이다.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 이동이 쉽지 않고 식사를 챙겨 먹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가족 중 누군가가 오랫동안 간병하거나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는 새로운 주거 대안을 선보이고 있다. 네덜란드의 노인 마을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외곽에 치매를 겪는 이들이 모여 사는 호헤베이크 마을이 있다. 중앙정부와 지역 기관들의 협조, 치매 요양 전문 간호사의 아이디어로 2009년 시작됐다. 1만 2000㎡ 규모에 영화관, 카페, 마트, 헬스장, 레스토랑, 미용실 등 웬만한 편의시설을 다 갖췄다. 거주 시설은 치매 환자 개인의 삶과 취향을 조사해 일곱 가지 인테리어로 지어 선택하도록 했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공방, 음악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클래식 감상실도 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250여 명의 간병인·의사·요양보호사·직원 등이 마을 곳곳에 상주한다. 이들은 평소 슈퍼마켓 직원이나 미용사 등으로 생활하다 환자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나선다. 마을 주민들은 함께 모여 요리하고, 사교 행사를 열고, 장도 본다. 치매 환자의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최대화하고 간병인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게 원칙이다. 정신이 흐릿하고, 손과 머리를 떨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어도 일반 요양원처럼 종일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된다. 치매 등급을 받은 입소자들은 개인 형편에 따라 한 달 최소 500유로(약 64만 원), 많게는 2500유로(약 322만 원)를 정부에 내면 된다. 덴마크 코하우징·일본 컬렉티브 하우스 코하우징(Co-housing)은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해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등으로 전파됐다. 공동생활 시설과 소규모 개인 주택으로 구성돼 사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협동 주거 형태다. 일반적으로 거주하게 될 입주민이 주체가 되어 그룹을 형성한 뒤 지방정부, 건축가, 은행 등과 협조해 설립한다. 그중 ‘시니어 코하우징’은 핵가족화와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시니어 코하우징은 ‘미드고즈그룹펜 코하우징’이다. 코펜하겐의 공영주택회사 라이예보에서 지은 560채의 아파트 중 5층 아파트 단지 4개 열을 개조해 만들었다. 대부분 1인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자기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층에 공동 거실, 식당, 회의실, 부엌, 창고가 있는 코먼하우스를 반드시 거쳐야 해서 서로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에는 코하우징과 유사하지만 약간 다른 세대 결합 주택, 컬렉티브 하우스(Collective House)가 있다. 도쿄 아리카와구에 위치한 ‘캉캉모리’는 노인 시설과 보육원이 함께 입주한 12층 건물의 2층과 3층에 있다. 이곳에는 유아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살고 있다. 공용 주방과 식당, 게스트룸 등이 있으며,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은 거주자들의 몫이다. 사람들은 일주일에 몇 번씩 공동 식사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한다. 공동 식사는 월 1회 당번제로 거주자 몇몇이 날을 정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일부를 공유하는 식이다. 아이들은 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노인들은 아이들 덕에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어 세대 교류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목할 만한 국내 노인 주거 형태 세 할머니의 유쾌한 동거, 노루목 향기 여주시 금사면. 이혜옥, 이경옥, 심재식 씨는 자신들이 마련한 공간에 ‘노루목 향기’라 이름 붙이고 5년째 함께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직장동료, 친구 사이인 이들은 요양원이나 복지 시설이 아닌 마을형 노인 생활공동체를 꿈꾼다. 마을 노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많은 이들과 즐겁게 사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노인과 청년이 서로 돌보는 청춘발산마을 광주광역시 서구 발산마을은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몇몇 노인만 남아 있었지만 2015년 도시재생사업으로 청년들이 다시 거주하게 됐다. 노인과 청년이 한데 모여 골목이웃회를 열고 거리 청소, 분리배출 등 마을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러운 이웃 문화가 만들어졌다. 또 할머니들이 폐품을 모아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거나, 청년들의 가게 일을 도움으로써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형성됐다.
- 2022-05-3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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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 예고도 없이 찾아든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멈춘 듯 움츠러들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다. 여전히 여행은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갑갑한 일상에 갇혀 있는 자신을 가끔씩 끄집어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결이 비단처럼 고운 바닷가 삼척을 대표하는 항구 정라진(汀羅津)은 말 그대로 비단처럼 잔잔하다. 그 수면 위로 비치는 바닷가 마을이 고요하다. 한때는 동해안 최대 항구이기도 했던 삼척항이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소박한 어촌 마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원도 지도에서 가장 아랫녘에 위치한 삼척, 한때는 동해를 대표하는 무역항이었다. 최고의 호황기였던 1970~80년대 수많은 어선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노가리와 대구, 정어리, 오징어가 풍년이었다. 그 무렵의 삼척항은 몰려든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는 밤새 잡아온 오징어 손질에 바빴고, 햇볕 좋은 나릿골 마을은 온통 오징어 건조장이었다. 그뿐 아니라 태백산지의 지하자원 덕에 시멘트 공장과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까지 들어서서 돈이 넘쳐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시멘트 공장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은 옛 영화가 사라진 소박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향수 어린 친근한 이름 정라항(汀羅港)은 여전히 어민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정라항은 삼척시에서 2km 정도 거리에 있다. 마을과 가까이 맞닿아 있어 바다를 바라보면서 비릿한 갯내음과 더불어 곰치국이나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거리에 들어서니 조용하다. 가끔씩 통통배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고, 어선의 깃발이 바람에 살랑대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활기찬 항구의 소란함이 다시 찾아오길 고대한다. 조용한 항구를 뒤로하고 입구의 말랑이슈퍼를 지나 나릿골 마을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 한적하다. 그 길로 좁다랗게 비탈진 골목이 미로처럼 쭉 이어진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눈비 내릴 때는 어떻게 다닐까 걱정될 정도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나릿골은 예전엔 층층이 골은 낮지만 물이 풍부해서 습기를 받은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나릿골에서 볼 수 없는 꽃이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리꽃처럼 정감 어린 감성 마을로 변모하는 중이다. 지나가는 담벼락에 듬성듬성 벽화가 그려져 있어 심심치 않다. 몇 년 전부터 정라항 주변 나릿골을 ‘오감이 피어나고 웃음이 번지며 걷고 싶은’ 감성 마을로 조성해 언덕 마을에 표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동해안 여행자들의 한 달 살기 등을 지원하기 위해 빈집 6채를 사들여 게스트 하우스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그 골목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숨차게 오르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 나릿골의 작은 집 4채 나릿골의 작은 집 4채를 삼척시로부터 지원받아 교육관 1동, 전시관 및 체험관 2동, 외부 작가가 거주할 작가의 집 1동으로 리모델링한 미술관이 언덕 끝에 기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시설 활용사업 일환으로 탄생한 문화 공간이다. 나릿골의 좁다란 골목길 걷기도 여행의 색다른 재미지만, 미술관을 편히 가려면 산등성이까지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차량 통행이 어려울 만큼 비좁았던 길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조금 넓어졌다. 걷기가 용이하지 않을 경우엔 택시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으니 누구나 가파른 그 언덕 끝까지 오를 수 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오르는 길에는 잘 가꾸어진 작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시설들이 소소하게 자리한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오면 작은 공원이 있을 뿐 주변 공터는 한산하고 깔끔하다. 요즘 많이 알려진 다른 벽화 마을처럼 예쁘거나 특이한 카페, 또는 포토존 같은 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원하건대 더 이상 부대시설을 늘리지 말고 지금의 단순함을 유지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하늘과 바다와 바람 속에서 머릿속이 청량해진다. 저 멀리로 정라항의 잔잔한 물결이 비단처럼 살랑거린다. 소박한 도시 삼척과 시멘트 공장을 감싸 안은 봉황산의 능선이 부드럽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처럼 보인다. 산언덕 드문드문 알록달록한 색감의 지붕들 사이로 그들의 애잔한 삶이 엿보이고, 텃밭에는 보송보송 파꽃이 피어났다. 미술관은 조붓한 골목길을 따라 몇 걸음 더 내려가야 한다. 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뉘 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바닷가 산동네, 그 올망졸망함이 문득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군데군데 빈집들이 보인다. 마실을 간 것일까. 나릿골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났을까.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정라항 그리go 작은 미술관’. 나릿골의 감성과 바닷가 마을이 만들어낸 멋진 소통의 공간. 1전시관과 2전시관은 하얀 담장을 두고 몇 걸음 떨어져 있으며, 앞면이 모두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어 바다와 마주한다. 그리고 전시 작가가 머물 수 있는 작가의 집이 전시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신선한 물빛 감성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더 멋질 것 같은 곳. 바이러스를 피해 방구석만 지키기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겨울이었다. 정라진 항구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향수 어린 그 시절의 그리움에 잠깐 젖어보는 것도 괜찮다. 해풍에 오징어가 말라가는 자연 속의 건강한 풍경으로 수분을 채우고 위로받는 하루, 기꺼이 만들어볼 일이다. 바닷길과 감성 마을 골목을 천천히 올라 다다른 작은 미술관에서 버석하던 일상에 감성을 채우고 에너지를 얻는다. 어디쯤엔가 와 있을 봄, 삼척항 호젓한 산등성이에 올라 바라보는 비단 물결 반짝이는 바다,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하루다. 주변 볼거리 여행 중에 잠시 휴식을 주는 곳, 죽서루 동해가 아우르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는 죽서루(竹西樓). 시간 여행하듯 삼척 읍성 성곽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난다. 누각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삼척시 서편으로 오십천(五十川)이 절벽 아래 흐른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는 삼척 시내에 있어서 삼척 주변을 여행 중이라면 잠시 들러 쉬어가기 딱 좋다. 죽서루는 송강 정철의 가사에 나오는 터이기도 하다. 평온한 마음의 휴식, 성내동 성당 삼척의 성내동 성당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천주교 발전사에 의미 있는 곳이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으며,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진 야고보 신부의 순교 기념비와 기념 건물을 볼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피살된 진 야고보 신부의 족적을 천천히 따라가 보자. 성전을 한 바퀴 돌면서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가지고 성당 주변 풍경에 잠겨보는 것도 특별하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도경리역 삼척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도경리역이 있다.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그곳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야 한다. 예전엔 아주 깊은 산골이었을 듯싶다. 삼척시와 동해시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두 도시는 이웃 마을처럼 아주 가깝다. 1939년에 지어진 도경리역은 현재 영동선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랜 역사(驛舍)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98호다. 일제강점기에 자원수탈의 도구로 역사나 터널을 만들었는데 이 역도 그중 하나다.
- 2021-03-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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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에서 한 걸음만 들어서면 숲이요, 계곡이다
- 도심 한복판에 청정 숲과 계곡이 숨겨져 있다. 회색빛 빌딩 속 푸른 오아시스 같은 그곳에는 가재와 버들치가 산다. 추사 김정희가 살았던 집터와 연못 터에서 옛 선비의 망중한을 그려 본다. 계곡의 원류를 찾아 세검정에서 거슬러 오르다 시작점은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세검정이다. 세검정은 조선 시대에 손꼽히는 경승지였다. 이름에 대해서는 몇 가지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곳에서 칼을 씻어 인조반정을 도모했다는 이야기와 실록이 완성되고 난 뒤 사관이 그동안 기록한 사초를 이곳에서 물로 씻었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과거에 세검정은 선비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였다. 많은 이들이 풍류를 즐기고 시원한 물소리를 감상하기 위해 찾았는데 특히 비 오는 날이면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보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다산 정약용 또한 비 오는 날이면 벗들과 함께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빼곡한 집들을 배경으로 겨우 연명하다시피 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백사골에 자리한 경치 좋은 산천 자하슈퍼를 기점으로 숨차게 오른다. 산허리를 가득 메운 집들, 그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좀체 숲이 나올 것 같지 않다고 중얼거리는 찰나에 삼각산 현통사가 나타난다. 주변에 널찍널찍한 바위와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다. 숲의 관문이다. 현통사 우측에 난 길을 한 걸음만 들어서면 숲이 시작된다. 작은 개울에 쌓아 올려진 것 치고는 꽤 높은 축대가 세워져 있어 예전에는 많은 물이 흘렀음을 유추할 수 있다. 개울가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시야가 트이는 넓은 공간에 다다른다. 백석동천(白石洞天)이다.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에 흰 돌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백석동천에는 추사 김정희의 별장터였다는 집터 흔적과 연못, 정자 터가 남아있다. 집터 맞은편 산 중턱의 흰 바위에는 월암(月巖)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계곡 위로 좀 더 걸어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에 백석동천이라는 이름자가 선명한 것을 볼 수 있다. 조선 최고의 예술인이 바로 이곳에서 숲의 향기에 취하고 물소리를 벗 삼아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으리란 상상은 주변을 바라보는 눈길을 더욱 세심하게 만든다. 계곡은 별서터와 두 마애각자를 포함하여 사적 제4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첩첩산중처럼 골이 깊지는 않으나 숲의 맛은 온전히 살아있다 백사실 계곡은 한양 도성 북서쪽 성벽 밖, 조선왕조의 주산인 북악산 작은 줄기와 이어져 있다. 출입금지였다가 2006년에야 개방되었고 그 이후로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있다. 계곡의 가장 큰 매력은 한 걸음만 들어왔을 뿐인데 도시라는 사막에서 마주친 오아시스처럼 물이 흐르고 초록이 넘실댄다는 것이다. 먼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이렇듯 도심 한가운데 짧은 나들이에서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면 이 또한 근사한 여행이 아닐까.
- 2020-05-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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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불의 도시 ‘바쿠’
- 신과 신화, 인간들의 이야기가 풍성한 코카서스 3국의 첫 번째 여행지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첫 여행지가 됐다. 먼저 한국엔 코카서스 3국으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다. 모스크바, 이스탄불, 카타르 혹은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국제공항을 경유해서 가야만 한다. 둘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적대국이기 때문에 두 나라 간 국경 통과가 불가능하다. 셋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운행한 침대열차 1등 칸에 타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아제르바이잔이 실크로드 서쪽 끝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세계에 몇 곳 없는 동서양 문화의 완충지대에서 출발해 유럽 문화의 변방을 향해 서쪽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기 때문에 ‘바쿠’라는 도시를 제대로 처음 본 것은 다음 날 아침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를 할 때였다. 흐린 하늘 옅은 구름 아래로 반듯하게 서 있는 황갈색 사각형 빌딩들, 민트색 둥근 아치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고풍스런 정취의 건물들이 창밖으로 보였다. 동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라는 거대한 캔버스가 희미한 푸른 잉크로 물들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여행이 시작됐음을 깨달았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 솟아 있는 바쿠의 상징, 플레임 타워(Flame Tower)도 눈에 들어왔다. 바쿠는 구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의 고건축과 현대 건축물들(플레임 타워,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사유의 길 12세기에 지어진 벽이 둘러싸고 있는 유서 깊은 ‘이체리 셰헤르’(Icheri Sheher)는 바쿠의 구도시다. 커다란 성문을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서니 오랜 세월 밟히고 마모되어 반짝이는 돌로 포장된 길이 열렸다. 서유럽의 도시처럼 위대한 건축물이나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광장은 아니다. 사람과 시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길들이 성 안에 그물망처럼 촘촘히 엮여 있다. 골목은 관광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사유의 길이 도시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큰길가 양쪽으로는 상점과 식당들이 죽 늘어서 있다. 그중 눈길을 끈 것은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 묵었다는 ‘카라반세라이’(Caravanserai)다. ‘물탄 카라반세라이’를 비롯해 16세기에 지어진 ‘부카라 카라반세라이’ 등 역사적 건축물들이 이곳이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 옛날 이토록 먼 길을 어떻게 이동해 여기까지 왔는지 상상이 안 되지만, 곳곳에 실크로드의 흔적들이 보인다. 시간이 흘러 그 카라반세라이는 기념품 판매점과 고급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바쿠의 중세를 만나다 바쿠의 구도시 중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12세기에 지어진 ‘메이든 타워’(Maiden Tower)다. ‘처녀의 망루’라는 뜻을 지녔다. 바쿠 왕의 딸 메이든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이곳에 감금당하자 탑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바쿠 왕이 감금한 여동생이 수치심으로 투신했다는 전설도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 성벽이 부서지거나 외부 세력에 정복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탑은 직경 16.5m, 높이 29.5m 규모의 원통형. 성벽의 두께는 5m나 된다. 탑 꼭대기는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탑 위에 올라서니 구시가지와 카스피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카스피해를 넘어온 바람의 숨결을 느끼면서 다음 일정을 위한 휴식을 가졌다.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다 도착한 곳은 ‘시르반샤 궁전’. 15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아제르바이잔 건축 양식의 진주로 불린다. 왕궁과 건물들이 균형감 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궁전으로 가는 골목을 걸을 때 어디선가, 신을 부르는 듯한 애절한 소리가 들렸다. 한여름의 열기 속에 길게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아잔’(이슬람 사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을 따라가 보니 이슬람 사원 ‘무하마드 모스크’(Muhammad Mosque)가 나타났다. 성의 바깥 서쪽에는 성곽길을 따라 바쿠에서 첫 번째로 조성된 ‘필라모니야 공원’(Filarmoniya Park)이 있다. 주변에는 노란색 건물의 ‘클래식 음악 전문 공연장’, ‘예술 박물관’, ‘음악 재단’이 있다. 클래식 음악 전문 공연장은 100년 전 유럽풍 스타일로 지어진 극장으로 운치를 더해준다. 오래된 성벽에 기대어 숲을 안고 있는 공원은 언제든 지친 여행자의 등을 쓰다듬어줄 것만 같다. 곳곳에서 공연을 하고, 한 레스토랑에서는 탱고 파티가 한창이다. 사랑에 취해, 춤에 취해 있던 커플이 카메라를 든 여행자를 보고 포즈를 취해준다. 계획에 없었던 장면들. 여행하면서 만나는 득템이다.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생의 피로를 씻어주는 경험이다. 예술을 존중하는 나라 아제르바이잔은 페르시아인을 중심으로 코카서스인과 튀르크족이 병합되는 과정을 거쳐 11세기에 셀주크 튀르크에게 정복당했다. 이때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크족에 동화돼 완전히 튀르크화됐다. 현재 아제르바이잔 언어의 80%는 터키어다. 그래서 터키와는 ‘한 민족 두 나라’로 불리고, 아제르바이잔 언어를 ‘아제르바이잔튀르크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아제르바이잔은 언어와 문자, 문학작품을 매우 존중한다. 도시 곳곳에 시인의 동상이 있다. 특히 성의 주 출입구인 동쪽 성문 밖에는 아제르바이잔의 국민 시인이자 신비주의자인 ‘니자미 간자비’(Nizami Ganjavi)의 동상이 세워진 기념 공원이 있다. 다섯 편의 서사시 ‘하므사’(Khamsa)를 발표하면서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시인이 됐다. 기념 공원 바로 앞에는 ‘니자미 문학 박물관’도 있다. 이슬람식 문양과 디자인을 주로 사용한 건물이다. 건물 2층에는 유명 문인 6명의 동상이 있다. 이들 동상 때문에 박물관은 마치 성전 같은 분위기다. 바쿠의 로데오 거리는 이 박물관 앞에서 시작된다. 바쿠의 현재로 들어가는 길이다. 가성비 좋은 고급 레스토랑과 블링블링한 카페, 유명 브랜드 숍들이 이어지는 보행자의 거리다. 저녁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나와 밤을 즐긴다. 이곳에서는 인종, 국적, 나이, 언어가 달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타인의 결을, 사물의 결을, 세상의 결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다른 영혼의 결을 안아줄 줄 안다. 이곳에는 여행자를 긴장하게 만드는 소매치기, 강도, 도둑질 같은 경직된 단어도 없었다. 바쿠의 속살들 구 소련 치하에 있었던 영향 때문인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 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젊은이는 많았다. 영어를 하든 못하든, 나이가 많든 적든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친절’이다. ‘28 May 광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한 아가씨가 도와줄 일 없냐고 먼저 물어왔다. 예약한 숙소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만난 할아버지는 200m 정도를 걸어 숙소 앞까지 우리를 데려다줬다. 이곳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코카서스 3국 중 아제르바이잔의 물가가 가장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2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커피 한 잔은 3.0AZN(약 2100원), 슈퍼에서 파는 와인은 4.0AZN(약 2800원)쯤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0.2AZN, 약 140원) 등 대중교통비는 놀랄 정도로 싸다. 전철은 2개 노선에 정류장도 많지 않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바쿠의 속살을 보려면 전철역에서 파는 충전식 바쿠 카드로 대중교통을 이용해봐야 한다. 바쿠의 로데오 거리 끝으로 지나가는 큰 대로를 건너면 카스피해를 끼고 바쿠만을 따라 엄청 길고, 넓은 공원이 펼쳐진다. 바로 ‘불바르 공원’(Bulvar Park)이다. 공원 한쪽 끝에서 반대쪽까지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카스피해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나뭇가지가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 공원 안에는 여객선 터미널, 요트 정박장, 대형 쇼핑몰, 국립 카페 박물관, 아즈네프 광장, 대형 회전 관람차인 ‘바쿠 아이’, 대규모 고급 호텔 등 새 시설들이 호화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첫눈에도 공원 조성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음이 짐작된다. 하지만 뭐가 문제일까? 바로 앞 바다에서 원유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 카스피해 보석에서 유럽 보석으로 카스피 해변과 근해에는 영화나 사진에서 많이 본 석유시추 시설이 곳곳에 있다. 지하를 뚫기만 하면 기름이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나 많이 매장돼 있는 석유를 처음 유럽으로 가져가 막대한 부를 쌓은 이가 있다. 바로 노벨상으로 유명한 스웨덴 사람 ‘노벨’의 형이다. 그가 이 지역에서 석유를 발굴하고 정유소, 송유관, 원유소 등을 개발해 바쿠의 석유산업이 발전했다. 바쿠의 경제기반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쿠 시는 1884년 비잔틴 양식으로 지은 ‘노벨형제석유사’(브라노벨)의 복지시설 건물을 ‘노벨 박물관’으로 바꿔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현재는 이곳에서 생산된 석유를 바쿠에서 시작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1769km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에 보내고 있다. 이 파이프라인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제이한 항구까지 이어진다. ‘Baku’, ‘Tbilisi’, ‘Ceyhan’ 세 도시의 약자를 따서 ‘BTC 파이프라인’이라 부른다.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원유가 BTC 파이프라인을 거쳐 지중해로 가고 이곳에서 다시 유럽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불바르 공원의 중심인 ‘무감 센터’(Mugam Center) 건너편에는 ‘업랜드 공원’ 정상까지 올라가는 푸니쿨라 승강장이 있다. 공원으로 올라가면 바쿠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에 보았던 플레임 타워가 보인다. 3개의 타오르는 불꽃 형상을 한 건물의 높이는 190m. 6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13년에 완공했다. LED조명을 설치한 건물 외곽은 형형색색의 불꽃을 보여주며 화려한 쇼를 한다. 이제 바쿠는 ‘바람의 도시’에서 ‘불의 도시’가 되었다. 그 랜드마크가 플레임 타워다. 타워 옆 바쿠만과 카스피해가 한눈에 보이는 공간에 ‘순교자의 길’이 있다. 우리나라의 현충원처럼 전쟁 때(주로 소련이 붕괴할 때 일어난 독립운동) 희생된 사람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공원 안에는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분쟁’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순교자의 탑’도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 옆에 추모 공간을 마련한 깊은 뜻을 헤아리며 카스피해와 바쿠의 야경을 감상했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의 정신 여행이 끝나면 바쿠는 어떤 도시로 기억될까? 아름답거나 시각적인 즐거움만 제공한 도시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신을 향해 인간이 엎드리는 곳, 자그마한 모스크가 있다. 바쿠의 현재를 상징하는 게 또 하나 있다. 여성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디자인한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Heydar Aliyev Center)다. 우리나라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그녀가 디자인했다. 그래서일까. 친숙한 느낌이다. 건물의 경이로운 비정형성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각형 건물이 가득한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바람에 흐르듯 우아하게 굽이치는 곡선이 숨통을 트이게 했다. 물결도 연상됐다. 멀리서 비탈진 광장의 초록과 물을 배경으로 놓고 봤을 때는 연체동물의 패각이 떠올랐다. 그 껍데기 집에 인간과 세계를 따스하게 감싸는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의 정신이 담겨 있는 듯했다.
- 2020-01-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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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아날로그 투어
- 유행이 돌고 돌아 올가을에 호피무늬가 대유행이라고 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치타 여사(라미란 역)가 즐겨 입던 호피무늬 옷을 거리에서 종종 보게 될 줄이야. 몇 해 전부터 불기 시작한 복고 열풍은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삶이 고달파서’라고 해석한다. 사람들이 옛것을 통해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세월은 고생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시키는 힘이 있으니. 세월을 비껴간 곳을 찾아 추억 여행을 떠나보자. 빈티지의 끝판왕, 을지로 인쇄소 골목 한국전쟁 이후 도시 재건에 필요한 모든 업종이 서울 을지로3가와 4가 일대에 자리 잡았다. 공구 골목, 도기·타일 골목, 재봉틀 골목, 조명 골목, 인쇄 골목 등이 거미줄 치듯 모여 거대한 산업단지를 이뤘다. 주변으로 고층 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서도 을지로는 여전히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동원집’의 감잣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1000원짜리 노가리 안주에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던 노가리 골목도 여전하다. 노가리 골목은 오히려 지금이 더 전성기인 것 같다. 후미진 인쇄소 골목에는 임대료가 저렴한 건물을 찾아 들어온 예술가와 젊은 창업자들이 정착하고 있다. 카페, 술집, 음식점도 많이 생겼다. 대부분 을지로 특유의 허름한 분위기를 부각해 건물을 꾸몄다. 카페 ‘커피한약방’과 양과자점 ‘혜민당’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개화기 때 차림으로 입장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촌스러운 색유리 창문, 100년 된 자개장,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 문, 전깃줄이 뒤엉켜 있는 골목 풍경이 내다보이는 2층 테라스마저 멋스럽게 보이니, 내 눈이 ‘복고깍지’를 쓴 것이 틀림없다. Tip 을지로 일대에 오구반점, 을지면옥, 통일집, 안성집, 양미옥, 을지다방 등 개점한 지 최소 30년 이상 된 노포들이 즐비하다. 노포 순례를 하며 추억을 곱씹어보는 것도 좋겠다. 세월의 사각지대 익선동 한옥마을 북촌과 서촌에 이어 익선동 한옥마을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익선동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조성된 이후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한옥이 잘 보존돼왔다. 전철 1·3·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3가역과 인사동, 운현궁, 창덕궁, 종묘 등 서울 명소가 코 닿을 거리에 있는데도 이 동네 시간만 1970~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골목 안에 오래된 식당과 한복집, 점집, 가정집 등 한옥 100여 채가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 익선동에 가보면, 상전벽해를 실감한다. 주택이 대부분 트렌디한 상가로 바뀌었다. 다행히 한옥 형태를 유지하고 내부만 개조해 익선동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옥인 ‘열두달’, ‘이태리총각’, ‘익선디미방’ 등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수플레팬케이크를 파는 복고풍 카페 ‘동백양과자점’이다. 평일에도 가게 앞으로 늘어선 줄이 엄청나다. 신생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는 중에도 익선동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전통찻집 ‘뜰안’, 익선동이 인기를 끄는 데 일조한 빈티지 카페 ‘식물’, 착한 맛집 ‘익선동121’, 담장 허문 가맥(가게 맥주)집 ‘거북이슈퍼’ 등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Tip 익선동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이 가깝다. 운현궁을 둘러보고, 고즈넉한 서순라길(종묘의 서쪽 담장길)을 산책한 뒤 종묘까지 둘러보면 알찬 도보 코스가 완성된다. 서울의 사교육 일번지였던 돈의문박물관마을 돈의문(서대문) 터 근처에 있던 새문안 동네는 몇 해 전 돈의문 뉴타운을 조성할 때 근린공원이 될 뻔한 동네였다. 서울시에서 헐지 않고, 도시 재생해 동네를 통째로 박물관으로 조성했다. 조선시대 한옥, 1930년대 일본식 주택, 1960년대 도시 한옥, 1970~80년대 슬래브집 등 각 시대상을 반영한 건축물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보존 가치가 있었던 것. 동네 역사도 흥미롭다. 1960년대에는 명문 중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집마다 과외방이 있었다. 1980년 과외 금지법이 시행된 뒤로는 동네의 90%가 식당으로 바뀌기도 했는데 당시 ‘문화칼국수’, ‘풍미추어탕’집이 유명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는 당시의 가옥 구조를 복원한 집 40채가 있으며 전시관, 연구실, 공예작가의 작업실 및 체험 공방으로 활용 중이다. 방문객은 그림 그리기, 와인 강좌, 쿠킹 클래스 등 40여 가지 프로그램을 선택해 체험해볼 수 있다. 이 중 마을 투어 프로그램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도슨트와 마을 골목길을 함께 돌면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건축 양식의 변화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루 두 차례, 무료로 30분 동안 진행되며, 신청은 돈의문박물관마을 홈페이지(www.dmvillage.info)에서 하면 된다. Tip 돈의문박물관마을 맞은편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이 있다. 서울 성곽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홍난파 가옥, 권율 장군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와 3·1운동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미국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딜쿠샤를 만날 수 있다. ‘그땐 그랬지’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에 ‘추억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1960~70년대 거리 풍경을 실감나게 재현해놓았다. 마치 촬영장 같은 분위기다. 창신사장(사진관), 근대화연쇄점, 장미의상실, 고향식당, 약속다방, 화개이발관, 고바우만화방, 인쇄소, 좋은소리사(레코드점) 등을 실물 크기로 짓고, 소품을 구색 맞춰 비치했다. 구멍가게 안에 진열된 과자, 음료수, 과일, 달걀, 아이스크림을 보며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부모님이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를 가장 부러워했다. 화개이발관에는 종로구 소격동에서 2007년까지 약 50년 동안 영업한 이발관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창신사장, 약속다방, 북촌국민학교는 내부 입장이 가능한 체험 공간으로 꾸몄다. 창신사장에서는 옛날 교복을 빌려 입고 옛날 사진관에서 사진 찍듯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다. 추억의 거리가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으로, 젊은 세대에게는 이색 체험 공간으로, 재미를 선사한다. Tip 국립민속박물관과 경복궁은 연결돼 있다. 단풍 고운 날, 고궁 산책과 더불어 추억의 거리를 거닐어보자.
- 2018-11-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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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국제영화제’에 가보니
-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9회를 맞이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던 ‘전주국제영화제’가 내 가슴 속에 들어온 건 지난해 전주시가 제작비를 지원한 ‘노무현입니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난 뒤였다. 전주시는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어지러웠던 정국 속에서도 이 영화의 제작을 지원함으로써 영화제가 표방하는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지켜주었다. 덕분에 어떤 간섭과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 있는 영화제로 국내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미국의 영화전문매체 ‘무비메이커’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25개 영화제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개막식 날, 영화제가 열리는 전주돔을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객리단길을 잠깐 걸었다. 세련되고 멋진 가게들이 전주돔 주변에 가득했다. 어디든 문을 열고 들어가 영화제 뒷얘기를 나누다 보면, 레드카펫을 걸었던 멋진 배우들을 평범한 옷차림을 한 이웃처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제 동료 기자들이 배우들과 마주친 곳은 가맥집(가게맥줏집)이었다고 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낭만을 더하는 ‘포장마차촌’이 있다면, ‘전주국제영화제’엔 안주가 놀랍도록 맛있는 ‘가맥집’이 있다. 숙소에서 잠만 자느라 밤새 이런 멋진 일이 일어나는 줄 몰랐던 나는 좀 아쉬웠다. 레드카펫 때문인지 개막식이 열리는 전주돔은 강렬하게 느껴졌다. 상업성을 띤 영화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른바 슈퍼스타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배우들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 그 자체가 진풍경이었다. 하얀 전주돔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잔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개막식 전 레드카펫 행사가 마련됐다. 영화제에 참가한 배우나 감독, 심사위원 혹은 관계자들이 속속 붉은 카펫 위를 걸었다. 관객들은 영화인이 등장할 때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했다. 유명 배우들뿐만 아니라 낯선 이름이 불려도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의 주연 배우 김상호 씨가 등장하자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영화인들의 다양한 포즈와 몸짓으로 레드카펫 행사는 50여 분 동안 뜨겁게 이어졌다. 이어 배우 김재원 씨와 채수빈 씨의 사회로 개막식이 진행됐고, 곧바로 개막작 상영에 들어갔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1970년대 간사이공항 근처 마을에서 곱창구이 집을 꾸려나가는 재일교포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이 싸우고 화해하며,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다.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 감독이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주인공들이 떠들썩하게 싸우고 상처 입고, 다시 사랑하는 과정을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보니 극장에서와는 또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전주돔에선 매일 저녁 7시 야외상영을 한다. 전주돔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영화제 기간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색다른 재미다. 특히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전주에 가면 영화뿐 아니라 전통문화가 가득한 도시에서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 등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도 좋다. 저녁에는 야시장이나 막걸리골목에서 축제에 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운이 맞아떨어진다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바로 옆자리에서 만날 수도 있다.
- 2018-05-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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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인물열전] 홍수환 말보다 더 유명해진 말 "그래 수환아, 대한 국민 만세다!"
- 신명철 스포티비뉴스 편집국장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서울 강남의 한 복싱 체육관이 건장한 중년 신사의 감격적인 포옹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복싱 올드 팬들이 추억의 일기장에서 꺼내들 만한, 그러나 얼굴은 많이 변한 두 복서가 또다시 만남의 기쁨을 함께했다. 주인공은 ‘4전 5기’ 신화 홍수환(66) 한국권투위원회 회장과 엑토르 카라스키야(56) 파나마 국회의원이다. 딱 10세 차이인 두 사람은 39년 전 링에서 맺은 인연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한국인 첫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의 영광은 김기수가 차지했지만 그의 경기 장면을 TV로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대부분의 스포츠 팬들은 김기수가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는 장면을 ‘대한뉴스’ 화면으로만 봐야 했다. 1960년대에는 TV 보급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흑백 TV 시절, 최고의 프로 복싱 스타는 단연 홍수환이다. 그의 복싱은 한마디로 스마트하면서 호쾌했다. 복싱 팬을 끌어들이는 마력도 있었다. 먼저 홍수환과 카라스키야의 인연부터 살펴보자. 두 사람은 1977년 11월 27일 WBA(세계복싱협회) 슈퍼 밴텀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다. 경기 장소가 파나마여서 홍수환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경기였다. 당시 홍수환은 27세의 베테랑 복서였고 카라스키야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11전 11KO승을 자랑하는 샛별 복서였다. 별명이 ‘지옥에서 온 악마’였으니 파나마 복싱 팬들이 그에게 건 기대는 미뤄 짐작할 만하다. 홍수환은 2라운드에서 네 번이나 다운되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섰고 마침내 3라운드에서 카라스키야를 KO로 눕히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마침 이 무렵에는 1라운드 3회 다운이면 자동 KO가 되는 규칙이 아니고, 무제한 다운제가 시행되었다. ‘4전 5기’의 신화가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후 카라스키야는 1978년 황복수와의 경기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뒤 38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당시에는 현역 복서였지만 이번에는 국회의원으로 한국에 왔다. 파나마 국회의 교통·통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 사이 두 사람은 1999년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파나마에서 만났고 17년 만에 한국에서 재회했다. “어머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일화와 관련된 내용도 재미있다. 홍수환은 1950년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스포츠인으로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서울 토박이다. 어렸을 때부터 골목대장 노릇을 도맡아 했지만 주먹이 세서 그랬던 건 아니다. 복싱에는 큰 관심도 없었다. 복싱은 아버지가 좋아했는데 홍수환이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타계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복싱경기장을 다녔던 홍수환은 그때부터 복싱 경기 포스터만 봐도 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한다. 특별한 홍보 수단이 없던 시절, 서울 시내 동네 담벼락에는 영화, 프로 레슬링, 프로 복싱 광고 포스터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지만 홍수환은 어렵게 글러브를 끼게 된다. 그러나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 그는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고 이 결정은 그의 복싱 인생에서 ‘신의 한 수’가 됐다. 그리고 홍수환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복싱 팬은 물론 거의 모든 국민이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4년 7월 3일, 당시에는 멀고 먼 나라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라디오로 중계방송된 홍수환의 승전보는 많은 복싱 팬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홍수환이 그곳에서 타이틀매치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골수 복싱 팬을 빼고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홍수환은 그날 더반에서 열린 WBA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전원 일치 판정으로 누르고 한국인 복서로는 김기수에 이어 두 번째로 프로 복싱 챔피언이 됐다. 프로 복싱에서 원정 온 도전자가 판정승을 한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홍수환은 그럴 만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경기 초반 아놀드 테일러를 3차례나 링에 쓰러뜨렸고 14회에서 승리에 쐐기를 박는 네 번째 다운을 빼앗았다. 세계 프로 복싱 관계자들은 아놀드 테일러가 마치 다른 복서처럼 경기를 했다고 평가했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홍수환이 뛰어난 복싱을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당시 홍수환은 현역 사병이었다. 그 무렵 서울 주변의 주요 부대에는 프로 복서 몇 명이 군 복무를 하면서 기량을 연마하고 있었다. 특별한 신분이 아니면 여권은 꿈도 못 꿨고 여권을 받아도 단수였던 시절 현역 군인이 외국에 가서 타이틀매치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기수의 타이틀매치가 열린 장충체육관으로 직접 갔을 정도로 복싱을 좋아했다. 챔피언에게 줄 개런티(달러) 문제까지 해결한 박정희 대통령은 그 시절 프로 복서들에게는 최고의 후원자였다. 1974년 청년 홍수환이 ‘약속의 땅’인 더반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도쿄, 홍콩, 스리랑카, 요하네스버그 등을 거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비행기를 여섯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그러나 홍수환은 이기겠다는 일념뿐이었고 결국 승리했다. 어떻게 경기를 치렀는지 제대로 되돌아볼 겨를도 없이 중계팀이 홍수환의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방송국 스튜디오에 나와 있던 어머니가 “수환아!”라고 부르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들려왔다. 이때 홍수환의 한마디가 오랜 기간 회자됐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런데 홍수환 말보다 더 유명해진 말이 있다. “그래 수환아, 대한 국민 만세다!” 홍수환의 어머니는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 국민’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 2016-12-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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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꽃보다 시댁’ 미치도록 아름다운 그리스 베스트 2곳
- 그리스는 아름다운 곳이 많은 나라다. 아테네 거리에서는 여신이 금방 환생한 듯한 아리따운 여성들이 활보한다. 특히 그리스 여행의 백미는 ‘섬’ 여행이다. 200개의 유인도 중에서도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산토리니’다. 그곳뿐 아니라 꼭 가봐야 할 곳은 ‘메테오라 수도원’이다. 그 아름답고 멋진 풍경은 시댁 어른들과 함께 떠난다 해도 모든 스트레스를 다 감싸 안아줄 것이다. 글·사진 이신화(on the camino의 저자, www.sinhwada.com) 화산섬 보트 투어는 유용한 패키지 TV 프로그램 에 소개되면서 광고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본 곳이 그리스다. 그리스의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산토리니(Santorini) 섬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신혼여행지로 큰 인기를 누리지만 이 섬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어느 누구하고 동행하더라도 상관없다. 단언컨대 ‘묵은 시름’이 많은 사람들이 동행해도 그 아름다운 풍치에 반해 스트레스를 다 녹여줄 것이다. 산토리니는 에게해 남쪽 그리스령 키클라데스 제도(Kykladhes Is.) 남쪽 끝에 있다. 아테네에서 235㎞ 떨어져 있으며 중심 마을인 피라(Fira)를 포함해 13개의 마을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산토리니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티라(Thira) 섬. 티라는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의 중간에 위치해서 두 문명과 교류하며 발전했던 키클라데스 문명의 중심지였다. 기원전 1500년경, 이곳에서 대규모 화산폭발이 일어났고 이후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1956년에도 화산폭발로 피라와 이아(Oia) 마을이 파괴된 적이 있다. 한때는 원형 섬이었는데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고 잘려나간 절벽 위에 하얀 집들이 들어섰다. 산토리니의 중심 도시는 피라다. 하지만 여행이란 ‘첫인상’이 참으로 중요하다. 피라 마을이 산토리니의 중심지라 해도 섬 끝의 이아 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움이 뒤떨어진다. 이럴 때는 먼저 ‘화산섬 보트 투어(Volcano Tour)’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 마을 여행사에서 티켓을 판매하는데 1일 코스를 이용하면 된다. 아티니오스 신항구나 피론(Firon) 구항구에서 배에 오르게 된다. 배는 가장 먼저 산토리니 서쪽에 있는 네아 카메니(Nea Kameni)와 팔레아 카메니를 간다. 나무 하나 없는 허허벌판의 척박한 화산섬의 돌멩이에는 아직도 지열이 남아 있다. 그다음 코스는 바닷속에서 용출되는 온천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것이다. 40도가 넘는 고온이다. 이어서 유인도인 티라시아(Thirasia) 섬에 다다른다. 배가 없으면 접근할 수 없는 작은 섬이지만 천혜의 매력을 갖춘 곳이다. 이 마을에서는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먹거나 마을까지 올라서 멋진 전경 사진을 찍으면 된다. 이때 당나귀(동키)를 타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화산섬 보트는 이아 마을을 잇는 항구에서 내릴 사람에게 선택권을 준다. 대신 저녁 8시에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어서 숙소로 이동하는 데 전혀 부담이 없다. 온통 캘린더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곳, 이아(Oia) 마을 이아 마을을 산토리니 첫 마을로 보게 된다면 ‘아, 정말 산토리니에 오길 잘했군’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내 몸을 조금만 움직여서 셔터를 누르면 캘린더 사진이 된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하얀색 집들. 미로처럼 나있는 좁은 길목에 피어난, 화사한 부겐빌레아 꽃이 눈 시리다. 앙증맞고 귀여운 숍들이 열지어 이어지는 곳. 지붕이 파란 곳은 그리스 정교회의 돔 지붕뿐이다. 하얀 교회의 파란색 돔과 에게해의 푸른 물빛이 어우러진 풍경에 넋을 잃는다. 발길은 내내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하다. 그나저나 이 섬의 건물들은 왜 하얀색일까? 건물 색채에 대한 사람들의 설명은 제각각이다. 외세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가 많다. 그리스가 외세에 점령당했을 때 국기 좌상단의 십자가 색을 따 외벽을 하얗게 칠했고, 파랑 바탕색으로 창틀을 장식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산토리니를 빛나게 하는 곳은 이아 마을이고 석양시간이 되면 굴라스 성채 쪽으로 몰려드는 인파로 인산인해가 된다. 이아 마을을 먼저 보고 난 후 피라 마을을 찾아보자. 피라 마을은 산토리니의 명동 격으로 테오토코플루(Theotokopoulou) 광장이 중심이다. 골목을 구경하거나 교회나 수도원, 고고학 박물관 등을 보면 된다. 또 절벽 아래 항구까지 566개의 지그재그 계단 길이 놓여 있는데 당나귀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 또 피라에서 10분 거리에 이메로비글리(Imerovigli) 마을이 있다. 산토리니에서 유일하게 언덕 위에 지어진 성채 마을로 스카로스(Skaros) 성까지 걸어보자.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동쪽 해변의 블랙, 레드, 화이트 비치를 따라 해안 드라이브를 즐겨보자. 블랙 비치라고 불리는 ‘카마리(Kamari)’는 해변 길이가 1㎞가 넘는 산토리니 대표 해변으로, 별칭처럼 온통 검은빛의 모래가 깔려 있다. 카마리 비치 인근에는 고대 티라 유적지가 있는데 메사 보우노 봉우리(369m) 꼭대기까지 트레킹하면 된다. 또 페리사(Perissa) 해변 근처에는 워터파크가 있다. 피라의 남단 아크로티리(Akrotiri)에는 선사 유적지가 있다. 에게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지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는 붉은 퇴적층이 침식되면서 만들어진 레드 비치와 화이트 비치가 있다. 기암 위에 세워진 수도원 6곳 메테오라(Meteora) 그리스 여행 중에서 메테오라를 빼놓는다면 여행의 재미 하나를 잃어버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라는 뜻으로 ‘하늘의 기둥(columns of the sky)’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유네스코는 이곳의 기묘한 자연경관과 경이로운 종교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해 1988년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했다. 칼람바카(Kalambaka) 마을에 도착하면 우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을 뒤로 거대한 암산이 산봉우리처럼 연이어진다. 400m 이상의 바위 봉우리들은 테살리아(Thessalia) 평원에 있는 페네아스(Peneas) 계곡과 칼람바카라는 작은 도시를 에워싸고 있다. 이 봉우리들은 약 6000년 전, 강에서 원추형으로 나타났다가 지진 활동으로 변형되면서 생긴 것으로 조사되었다. 메테오라의 기암들은 사암과 역암이 강물에 의해 침식되어 생겨난 거대한 암산이다. 그것보다 더 강렬한 것은 기암 위에 지어진 수도원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기암 봉우리에 건물을 지었을까? 이곳은 11세기부터 수도사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정치가 상당히 불안했던 14세기에 테살리아의 수도원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봉우리 위에 건축된 것이다. 성 아타나시우스가 최초로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전성기인 16세기에는 20여 개의 수도원이 있었다. 현재는 수도원 5곳과 수녀원 1곳이 남아 있는데, 2차 세계대전때 파손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최초로 창건되고 가장 큰 대메테오라 수도원, 바를라암 수도원, 암벽에 붙어 있는 모습인 로사노 수도원, 성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 가장 올라가기 힘든 트리니티 수도원(007시리즈 의 로케이션), 성 스테파노 수녀원 등이다. 현재 수도원에는 수사와 수녀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방문이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된다. 바위의 평균 높이는 300m, 가장 높은 것은 550m나 된다. 좁은 바위 꼭대기에 아찔하게 서 있는가 하면, 절벽 옆에 붙어 있는 형상이기도 하다. 분명코 바위 위에서 수도원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 저곳으로 훨훨 날아보고 싶다’고 말이다. Travel Tip! 항공편 한국에서 그리스 직항편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해 아테네로 들어가면 된다. 많은 이들이 터키 여행과 함께 그리스를 선택한다. 터키항공을 이용해 이스탄불을 거쳐 그리스 아테네로 들어간다. 인천~이스탄불 구간은 주 11회, 이스탄불~아테네 구간은 주 42회 운항한다. 음식정보 그리스의 일반 식당인 타베르나(Taverna)가 있다. 전통 음식으로는 수블라키(Souvlaki), 게미스타(Gemista), 무사카(Moussaka), 기로스(Gyro, 기로, 자이로, 지로스라고도 함) 등을 꼽는다. 수블라키는 흔한 꼬치구이라 말할 수 있다. 게미스타는 피망 등 야채에 고기와 밥을 넣어 만든 것으로 동양인 입맛에 잘 맞는다. 무사카는 야채와 고기를 볶아 화이트소스를 뿌려서 구운 것. 기로스는 피타 빵(Pita bread)에 바삭하게 구워진 고기를 잘라 넣고 소스, 야채를 넣어 케밥처럼 만든 요리다. 또 슈퍼 등지에서 간단하게 사 먹을 수 있는 돌마데스(Dolmades), 혹은 돌마스(Dolmas)가 있다. 일명 ‘포도잎 꼬마 쌈밥’으로 간단하게 요기하기에 좋다. 전통 술 그리스의 국민 술이라 일컬어지는 우조(Ouzo)와 메탁사(Metaxa)가 있다. 2006년부터 오직 그리스에서 생산되는 ‘우조’는 40도 이상의 독한 술로 미틸리니에서는 해마다 축제를 연다. 포도+아네스씨+각종 허브로 만든 이 술은 문어요리를 안주 삼아 함께 마신다. 숙박정보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kr) 사이트에서 순위를 확인하면 숙박 전문 인터넷 사이트로 연계가 가능하다. 가족 인원수가 많다면 메테오라에서 캠핑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통화정보 유로 사용 사용 전압 표준 전압 220V, 50㎐를 사용 인터넷 정보 대부분의 식당이나 숙소에서 인터넷이 잘된다. 치안정보 그리스는 비교적 치안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지하철역 등에서는 날치기나 소매치기 등을 유의해야 한다. 기타 여행지 미코노스, 델로스, 낙소스 섬을 비롯해 희랍인 조르바의 배경이 되었던 크레타 섬 여행도 해봄직하다. 그 외 델피, 테살로니키, 올림피아, 칼라마타, 코린토스, 티바스 등 갈 곳은 너무나 많다. 아테네 시내와 수니온 곶 여행도 좋다.
- 2016-03-08 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