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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만에 돌아오는 ‘레미제라블’… 10월 풍성한 문화소식
- ●Exhibition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일정 11월 7일까지 장소 광주비엔날레전시관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11월 7일까지 광주 시내 일원에서 열린다. 2005년 창설된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이하 디자인비엔날레)는 세계 40여 개국이 참여하는 등 세계적인 종합 디자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디자인비엔날레는 나건 홍익대 교수가 총감독을 맡았으며, ‘Meet Design’(디자인을 만나다)을 주제로 한다. 국내외 작품 2718점을 전시, 역대 최대 작품 수를 기록했다.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진행되는 본전시는 4개(테크놀로지·라이프스타일·컬처·비즈니스) 주제로 구성됐다. 1관 ‘테크놀로지’에서는 AI, IoT 가전 등 4차 산업 기술과 접목된 새로운 미래 디자인을 소개한다. 2관 ‘라이프스타일’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디자인으로 표현한 작품이 전시됐다. 3관 'K-컬처'에서는 K-조형, K-팝, K-뷰티, K-웹툰 등 다양한 주제와 관점의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4관 ‘비즈니스’는 디자인이 경제, 산업, 문화 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대전엑스포´93 : 과학 신화가 현실로 일정 11월 5일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 전시실 대전시와 서울역사박물관이 공동 기획했으며, 대덕특구 50주년 및 대전엑스포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에서는 당시 엑스포 준비 과정과 시대 배경을 소개한다. 대전엑스포 개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국내 첫 즉석식 복권, 행사장에서 직접 관람객과 소통했던 인공지능 이동 로봇 케어-투(CAIR-2)와 그 기술을 발전시킨 인간형 로봇 아미(AMI) 등을 만날 수 있다. 지난 30년간 과학 발전을 이루며 달라진 한국의 위상 또한 확인 가능하다.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대전 시민의 염원을 넘어 전 국민의 열렬한 응원이 담겼던 1993년 대전엑스포의 열기와 추억을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Stage ◇레미제라블 일정 10월 15일 ~ 11월 19일 장소 부산 드림씨어터 연출 크로스토퍼 키 출연 민우혁, 최재림, 김우형, 카이, 조정은, 린아 등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1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친다. 2013년 초연, 2015년 재연을 통해 약 60만 명의 누적 관객을 동원했고, 2013년 ‘제7회 더뮤지컬어워즈’ 5개 부문 수상,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 4개 부문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이번 세 번째 시즌은 무려 8년 만의 공연이다. 더욱이 제작사는 “1년여 동안 까다롭고 철저한 오디션을 거쳐 최고의 캐스팅을 완성했다”고 자신해 기대감을 높였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레미제라블’은 19세기 비참한 삶을 사는 소시민들이 프랑스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을 그린다. 부산 이후 서울, 대구로 무대를 이어간다. ◇마리 퀴리 일정 11월 24일 ~ 2024년 2월 18일 장소 서울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태형 출연 김소현, 이정화, 유리아가, 강혜인, 효은, 최지혜 등 2020년 초연과 재연을 거친 뮤지컬 ‘마리 퀴리’가 3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수상작으로, 최근 일본 라이선스 공연이 호평을 받았다. 10월 부산, 11월 대구(11~12일) 이후 서울에서 공연을 펼친다. 최초로 노벨상을 2회 수상한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마리 퀴리는 라듐을 발견해 명성을 얻지만 자신의 연구가 초래한 비극적인 진실을 목도한 후 고민에 빠진다. 마리 퀴리 역에 뮤지컬 배우 김소현이 캐스팅됐다. 오랜만에 무대에 복귀하는 그가 보여줄 연기가 기대를 모은다. ◇카페 쥬에네스 일정 11월 26일까지 장소 대학로 TOM(티오엠) 2관 연출 오인하 출연 차용학, 최정헌, 랑연, 조윤영, 이봉준 등 연극 ‘카페 쥬에네스’는 1920년대 말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제목의 ‘쥬에네스’는 프랑스어로 ‘청춘’(Jeunesse)이라는 뜻이다. 극에서는 애국과 매국을 강요받고 혹은 선택하며,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삶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의 희생과 그 속에 담긴 사랑을 이야기한다. 극본 및 연출은 배우 출신 오인하 작가가 맡았다. 연극 ‘B클래스’, ‘Memory in dream’(메모리 인 드림), ‘그때도 오늘’ 등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은 오인하 작가는 장르작에 처음 도전한다.
- 2023-10-0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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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담은 서툰 그림, 영화로 빛을 발하다
- 동화책 삽화처럼 알록달록한 그림과 아이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듯 담담한 내레이션은 5·18 민주화운동, 노인, 장애라는 주제를 훑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입버릇처럼 들먹이지만 정작 시선 주는 데는 박한 세상,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이는 시도가 빛날 수밖에. 영화 ‘양림동 소녀’가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영화제의 막이 내린 대한극장 한켠에서 임영희, 오재형 감독을 만났다. 기나긴 코로나 시국, 아들은 집에만 있느라 답답해하는 어머니에게 크레파스와 사인펜을 선물했다. 그림으로나마 답답함을 풀고 세상과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왼손으로 펜을 쥐었다.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로 이사 왔을 때의 기억들이 한 장, 두 장 그림이 되어 쌓였다. 미술을 전공한 아들은 삐뚤빼뚤한 그림에서 가능성을 엿봤고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왼손으로도 괜찮을까?” 자신 없어 하는 어머니를 아들은 꾸준히 격려하고 설득했다. 어머니의 생애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은 영화감독 아들의 오랜 꿈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7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그림을 그렸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촬영했다. 어머니의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고, 직접 연주한 배경음악을 삽입했다. 딸은 영어 자막을 위한 번역을, 아버지는 영화 타이틀 로고 제작을 맡았다. 분류는 다큐메이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글자 그대로 ‘독립영화’인 30분 08초 분량의 ‘양림동 소녀’는 이렇게 탄생했다. 빛나는 소녀 뒤엔 양림동이 있었다 영화는 온전히 어머니 임영희 씨의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졌다. 영화의 다른 요소는 모두 배제하고 그림으로만 밀고 나갔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영화도 어머니의 그림으로 승부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사건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유년 시절의 추억은 대체로 오래 기억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제가 광주에서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어요? 영광스러운 한때로, 또 트라우마를 남긴 끔찍한 순간으로 죽는 날까지 품고 갈 수밖에 없죠. 나이 들어 마주하게 된 장애인의 삶은 또 어떻고요. 남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쩌면 기억력이 이렇게 좋냐 묻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장면들만 영화에 담았을 뿐이에요.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순간이니 당연히 기억하는 거고요.” (임영희 감독)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임 감독이 생애 가장 주체적이던 시기의 배경이었다. 제목이 ‘진도 소녀’, ‘광주 소녀’가 아닌 ‘양림동 소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생지인 진도는 옛 추억거리가 있고, 어린 시절 광주로 이사 온 것도 맞다. 하지만 문인의 꿈을 키우던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지역은 양림동이다. 남편을 만난 곳, 아들 오재형 감독이 태어난 곳 또한 양림동이다. 정체성을 결정지은 순간이 거리에 즐비하다. 그중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임 감독에게 물었다. ‘보프룩 까페’를 드나들던 20대 시절을 꼽는 목소리에 망설임이 없었다. “보프룩 까페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시민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보’, 미국 여성학자 베티 프리단의 ‘프’, 폴란드 철학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룩’을 따온 별명이에요. 제가 지었죠. 실제 카페는 아니었고, 제가 20대 당시 동경하던 언니의 집이었어요. 당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여 저 여성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곤 했습니다. 보프룩 까페에는 언제나 뜨거운 커피와 사과 한 조각이 있었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어요. 제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었죠.” (임영희 감독) 그 밖에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학교에서 상을 받거나, 아버지와 남편이 옷을 만들어줬던 것 등. 떠올리면 즐거워지는 순간은 많다. 다만 영화에서 주가 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억이다. 임 감독은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밤중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5·18민주광장(구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이웃이 국가권력에 의해 죽임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와 남편 오정묵 씨는 황석영 작가의 집 2층 거실에서 담요를 둘러쓴 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테이프 녹음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웠으리라는 추측과 달리 임 감독은 영광이라 표현한다. 난리통에 누구 하나 싸우거나 도둑질하지 않았고, 서로를 챙기고 보살피는 ‘신성한 공동체’를 몸소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약자를 통합시킨 양림동 소녀의 이야기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의 기대대로 혹은 그 이상이다. ‘양림동 소녀’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상영 후 GV(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배우가 관객들과 갖는 대화)가 시작되기 전 기립박수를 받았다.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 전에는 2022년 제13회 광주 여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김영우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본심 심사위원은 “노인이라는 단어에 따라다니는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노인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변화, 태도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어르신이 직접 창작의 주체로 나서 기획, 촬영, 편집까지 맡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이 특히나 감동적이었다”는 심사평을 대표로 전했다. 두 감독이 스스로 평가하는 영화의 강점은 무엇일까. “어머니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하고 오른쪽 손을 쓰지 못하세요. 그래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셔야 했죠. 그 때문인지 선이 삐뚤빼뚤한데, 보통의 경우 약점이 되는 부분이 어머니의 그림과 영화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했어요. 이게 미술 전공자가 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죠. 무엇보다 작화가 수준급이었고요. 덕분에 영화의 장르를 애니메이션으로 결정했죠.” (오재형 감독) “요즘 세상은 약자를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으로 잘게 구분해 갈라내고 있죠. 그런데 ‘양림동 소녀’에는 이들 모두가 들어 있어요. 어린이 임영희, 청소년 임영희, 여성 임영희, 노인 임영희, 장애인 임영희의 모습으로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 거예요. 노인뿐 아니라 모든 약자를 대통합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가 아들의 도움을 받고,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만든 영화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 같네요.(웃음)” (임영희 감독) 귀여운 그림체와 담담하게 과거를 되짚는 목소리는 불행한 이 한 명 없는 동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생존 기록에 가깝다. 이 부조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여운을 느끼게 한다. 영화 제작자가 되면서 임 감독은 영화 한 편을 봐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풀이 죽어 있던 어린 시절의 임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옷을 지어줬던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을 다룬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사랑이 떠올라서’가 이유였다. ‘양림동 소녀’는 여성 인물이 사회의 갈등과 구조를 해결해나가는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실제 증언,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 작품은 남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 비극적 참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애도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죄책감을 느끼게끔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나이가 어리거나 심신 미약자라면 접하기 꺼려할 수 있다. 잔혹한 참상까지 담담하게 귀여운 그림으로 풀어낸 영화 ‘양림동 소녀’는 그 지점을 비껴간다. 덕분에 더 여운이 남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애 서사에 대한 갈증도 해소해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한 차례 이목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장애 극복으로 흐르면 편견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임 감독은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덤덤한 태도를 유지한다. 장애를 한계로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시인이자 화가인 자신이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으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점을 기뻐할 뿐이다. 이웃과 사회, 공동체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들 오재형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그의 어머니가 국가폭력, 장애의 관점에서 ‘생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단다. 자라면서 어머니의 생애를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그림을 매개로 하니 느껴지는 바가 달랐다는 것. 말로 전해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상흔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지금은 어머니의 생애가 앞으로 오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대상 수상작 감독이라면 으레 가질 법한 차기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두 감독 모두 고개를 저었다. 5월 18일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전남 순천시 ‘골목책방 서성이다’에서 영화 상영회 및 GV 행사를 소소히 가졌다. 아직 세상에 한 권뿐인 ‘양림동 소녀’ 그림책은 올해 안에 삽화 위주의 에세이로 정식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의 생애를 널리 알리는 데 굳이 영화 상영 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오 감독은 다음 일정이 잡히거든 연락드리겠다며 웃었다. 임영희 감독은 누룽지 같은 노년을 보내고 싶단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조각내는 세상이지만, 누렇게 눌어붙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노년을 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임 감독이 생의 마지막까지 지킬 가치는 단 하나다. ‘내가 이웃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는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여성과 장애인, 공동체 문화를 위한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섬초롱 꽃에/ 시원하고 달콤하게 왔어/ 고양이는 웃고/ 까치는 종종거려/ 물 마시는 산/ 춤추는 빗방울/ 나는 단비를 마시며/ 아침을 맞는다 ‘양림동 소녀’ 마지막 장면에서 임영희 감독이 낭독한 시로 글을 마무리한다. 임 감독의 이야기가 수많은 마음을 아침 단비처럼 시원하고 달콤하게 적실 수 있길 기원한다.
- 2023-06-0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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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4월 공연 추천 셋
- 2022년 기대작으로 꼽히는 뮤지컬들이 4월 베일을 벗는다. 먼저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등 화려한 스타 캐스팅을 자랑하는 ‘데스노트’가 돌아온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몬드’는 뮤지컬로 어떻게 재탄생했을지 기대를 모은다.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뮤지컬로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데스노트 일정 4월 1일 ~ 6월 26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동연 출연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케이, 장민제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으는 뮤지컬 ‘데스노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이름을 쓰면 죽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우면서, 전 세계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온 베일에 싸인 명탐정 ‘엘’(L)과 맞서게 된다. 두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갈등과 대결에 프랭크 와일드혼의 트렌디하고 팝스러운 넘버가 시너지를 더해 극적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번 시즌은 논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으로 무대의 완성도를 더한다. 아몬드 일정 4월 2일 ~ 5월 1일 장소 코엑스아티움 연출 김태형 출연 문태유, 홍승안, 이해준, 조환지, 임찬민, 송영미, 김선경, 오진영, 유보영, 김태한 등 뮤지컬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후 해외 20개국 출간, 국내 판매 90만 부를 돌파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는 동명의 소설(손원평 저)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월 뮤지컬 개막 소식이 알려진 후 2022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아몬드’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감정조절 역할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문제가 생겨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인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주변인들과 갈등을 겪고 화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광주 일정 4월 15일 ~ 5월 1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이지훈, 조휘, 정동화, 신성민, 문진아, 김나영, 효은, 최지혜 등 ‘광주’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광주를 평화의 땅으로 일궈낸 열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감동적인 서사와 ‘님을 위한 행진곡’, ‘투쟁가’ 등 웅장한 멜로디는 그날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광주’는 2020년 초연됐으며, 2년간 공연 횟수만 총 74회, 관람객 수는 2만 명이 넘는다. 미국 뉴욕 진출도 예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뮤지컬이자 아시아의 ‘레미제라블’로 극찬받고 있다.
- 2022-04-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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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처럼 화려해" 4월 문화 소식
- ●Exhibition ◇박래현, 사색세계 일정 4월 23일까지 장소 아트조선스페이스 “수많은 장벽에 부닥치고 가혹한 시련 앞에 몸부림치며 이를 넘길 수 있는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생존의 권리… 봄이라는 뽀얀 계절은 때때로 나를 이런 부질없는 사색세계에 몰아버린다.” 한국 근대 화단의 대표 여성 미술가 우향 박래현(1920~1976). 1959년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출품하며 에세이 ‘봄이면 생각나는 일, 삶과 마주 섰던 계절’을 함께 기고했다. 에세이의 한 구절인 ‘사색세계’가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됐다. 에세이에서 그녀는 지난 몇 년간의 봄을 상기하며 식민국가의 운명 속에서 마음의 어두운 흔적과 불안한 감정을 더듬어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의 봄은 아름다웠다고 술회했다. ‘박래현, 사색세계’ 전시는 ‘생동하다’,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1, 2부를 나누어 그녀의 작품세계를 돌아본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대대적인 회고전 이후 선보이는 첫 전시로, 초기 대작부터 대표적인 추상 연작, 그리고 미공개 작품까지 80여 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박래현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아내로,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화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보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그리고 여류라는 굴레를 넘어 한국화의 현대화를 개척한 박래현을 만나볼 수 있다. ◇사빈 모리츠 : RAGING MOON 일정 4월 24일까지 장소 갤러리 현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독일 여성 화가 사빈 모리츠(53)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사빈 모리츠는 개인과 집단의 기억, 그 기억으로부터 형성된 추상의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작가다. 독일 추상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부인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는 그녀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회화, 에칭 연작 등 50여 점을 소개한다. 동독에서 보낸 유년기의 경험과 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구상 작업을 하던 작가는 2015년부터 추상 회화로 ‘정신적 풍경’을 다뤘다. 과감한 붓질과 풍성한 색채로 완성된 매혹적인 추상의 이미지로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Book ◇백만장자와 승려(비보르 쿠마르 싱·다산초당) 사찰을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존경받는 승려와 고급 호텔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해온 백만장자가 있다. 백만장자는 물질의 정점에, 승려는 정신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극과 극인 두 사람이 호텔에서 21일간 함께 머물며 행복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간소한 삶은 성공으로 가는 첫 단계다”, “명상으로 머릿속을 정리하라”,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등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넘나든다. 백만장자와 승려가 서로 배우며 깨닫는 인생의 본질을 통해 독자는 ‘지금 행복한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비보르 쿠마르 싱은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산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인도의 전통 명문인 셔우드대학과 스리람상경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영국의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재무회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금융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는 물질적 풍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 있는 삶이 주는 정신적 행복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맞추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행복을 누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책은 인도에서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2개국에 판권이 팔릴 정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부자가 아니라서, 마음이 공허해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책이다. ◇울다가 웃었다(김영철·김영사) 대한민국 대표 라디오 DJ이자 코미디언, 김영철의 웃픈 휴먼 에세이다. 그는 “나의 명랑은 수없이 노력하고 연습한 결과”라고 고백하며 가족, 일상, 방송담을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깨달은 ‘웃음과 울음이 균형을 이룰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페스트의 밤(오르한 파묵·민음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5년간 매진해 써낸 신작. 코로나 이후 최초의 팬데믹 소설로 역사소설에 미스터리를 결합했다. 소설은 1901년 오스만제국의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며, 페스트로 인한 종교적·정치적 분열을 그린다. ◇쓸모 있는 음악책(마르쿠스 헨리크·웨일북) 저자는 독일에서 독창적인 음악 테라피를 통해 대중의 고민을 해결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왔다. 그는 음악을 제대로 들으면 더 나은 일상을 꾸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뇌 기능 활성, 창의력과 영감 자극 등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Stage ◇데스노트 일정 4월 1일 ~ 6월 26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동연 출연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케이, 장민제 등 ‘데스노트’는 2022년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뮤지컬로,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법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던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이름을 쓰면 죽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우면서, 전 세계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온 베일에 싸인 명탐정 ‘엘’(L)과 맞서게 된다. 각자의 정의를 위한 라이토와 엘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긴장감 넘치게 펼쳐진다. 두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갈등과 대결에 프랭크 와일드혼의 트렌디하고 팝스러운 넘버가 시너지를 더해 극적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번 시즌은 논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으로 작품의 고유한 매력과 더불어 더욱 긴장감 넘치는 연출, 디테일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무대로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여기에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케이, 장민제 등 역대급 라인업을 자랑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몬드 일정 4월 2일 ~ 5월 1일 장소 코엑스아티움 연출 김태형 출연 문태유, 홍승안, 이해준, 조환지, 임찬민, 송영미, 김선경, 오진영, 유보영, 김태한 등 뮤지컬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후 해외 20개국 출간, 국내 판매 90만 부를 돌파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는 동명의 소설(손원평 저)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월 뮤지컬 개막 소식이 알려진 후 2022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아몬드’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감정조절 역할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문제가 생겨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인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주변인들과 갈등을 겪고 화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광주 일정 4월 15일 ~ 5월 1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이지훈, 조휘, 정동화, 신성민, 문진아, 김나영, 효은, 최지혜 등 ‘광주’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광주를 평화의 땅으로 일궈낸 열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감동적인 서사와 ‘님을 위한 행진곡’, ‘투쟁가’ 등 웅장한 멜로디는 그날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광주’는 2020년 초연됐으며, 2년간 공연 횟수만 총 74회, 관람객 수는 2만 명이 넘는다. 미국 뉴욕 진출도 예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뮤지컬이자 아시아의 ‘레미제라블’로 극찬받고 있다.
- 2022-04-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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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살 시민의 동반자, 광주극장
- 광주 동구에 위치한 ‘충장로’는 옛 모습을 간직한 보기 드문 상권이다. 현대적으로 개발된 신도시가 각광받는 요즘, 충장로는 쇠퇴한 도심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광주 시내’ 하면 여전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충장로. 이곳에는 86년간 자리를 지킨 ‘광주극장’이 있다. 고화질 사진 대신 손그림 영화 포스터, 키오스크 대신 사람이 발권하는 매표소, 거대한 필름 영사기와 빨간색 벨벳 의자까지. 광주극장의 곳곳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자 예술영화전용관인 이곳 광주극장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광주극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독점한 지역 문화계 상황에 맞서 조선인의 자본으로 설립, 운영된 호남 지역 최초의 극장이다. 광주극장이 개관한 1935년 10월 1일은 광주의 인구가 10만 명이 넘어 광주읍에서 광주시로 승격한 날이기도 하다. 광주의 빛과 그림자를 동행해온 단관극장 그만큼 많은 광주시민의 축하 속에서 개관했으며, 광주의 성장과 민족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25년째 광주극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형수 이사는 “1930년대를 생각해보면 1250명 수용 규모의 극장 건물을 조선인이 세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냐”라며 “당시 광주극장은 광주의 랜드마크였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인이 설립한 극장들은 일본 영화를 주로 상영하던 것에 반해, 광주극장은 조선인을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당시 극장 외에 시민회관이나 공연장 등 문화를 향유할 공간이 없어 지역의 모든 문화행사는 광주극장에서 진행됐다. 영화는 물론이고 한국 고유의 창극, 국극 등의 공연을 비롯해 판소리, 연주회, 그리고 예술대학의 졸업발표회까지 이곳에서 열리며 광주 지역의 다채로운 문화공간으로 기능했다. 이외에도 일본인의 눈을 피해 조선인들끼리 응집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다양한 목적으로 집회의 장이 되기도 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 메달을 따온 선수들의 환영회도 암암리에 진행됐고, 해방되던 해에는 해방 축하대공연도 광주극장에서 열렸다. 김 이사는 “광주극장의 역사를 들어보면 극장이란 공간이 참 다이내믹하다”라며 “한 편의 영화와 같이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극장이다”라고 설명했다. 1968년 1월 큰 화재로 건물 전체가 전소되면서 광주극장은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TV가 보급되던 1960년대 후반, 극장 산업이 크게 주춤했던 터라 극장을 접으라는 주위의 만류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 광주극장을 운영하던 설립자의 아들 최동복 씨는 아버지의 유지를 저버릴 수 없다며 극장을 개축해 같은 해 10월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외관은 달라졌지만 더 튼튼한 건물을 세울 수 있었고, 1935년에 새긴 석각은 다행히 화재를 면해 건물 상단에 다시 세웠다. 이 석각은 광주극장의 상징이 되었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5월엔 광주의 아픔도 함께했다. 광주시민들은 그들에게 가해진 무차별 폭격을 피해 광주극장으로 숨어들었다. 해방 이후 벌어진 잔인한 사태에 광주극장은 다시 한번 시민들을 보호했다. 독립예술영화로 관객과 호흡 광주와 오랜 역사를 공유하며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해오던 광주극장은 2000년대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위기를 맞이했다. 기존의 단관극장과 달리 복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고, 첨단 시설로 영화 감상의 질을 제고하는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영화 산업의 성장과 함께 자본에 의해 극장이 운영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단관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고, 잘 만든 한국 영화들이 극장에서 대우받지 못하고 상영 기간마저 보장받지 못한 채 내려가는 경우도 다수였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광주극장은 2000년부터 광주에서 개봉되지 않은 영화를 골라 심야에 상영하는 ‘레이트쇼’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등 뛰어난 작품성에도 주목받지 못한 영화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독립영화의 유통이 어려워진 구조적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는 2003년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을 실시했고, 광주극장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선정되어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에서 극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여러 가지다. 김 이사는 “다채로운 영화를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독립예술영화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것 전부 극장의 역할이다”라며 “광주극장은 대중성은 부족해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극장이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상업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예술영화전용관은 보조금 없이 입장 수익만으로는 극장 유지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광주극장은 관람료도 매우 싼 편이다. 주말이면 1만 원이 훌쩍 넘는 멀티플렉스의 관람료에 비해, 광주극장의 관람료는 주말, 평일, 시간대에 상관없이 8000원이다. 65세 이상 노인은 5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 물가가 크게 오른 최근 10년 동안 변동이 없는 가격이다. 관객이 많은 편도 아니다. 하루 관객이 몇 명 정도 되냐는 질문에 김 이사는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활개를 치는 코로나 시국에도 극장에 발걸음해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라며 “독립예술영화를 통해 시민들의 취향과 생각을 공유하고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처럼 광주극장은 이곳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애정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광주극장은 입장 수익과 예술진흥위원회 사업 보조금, 그리고 440여 명의 후원자가 매달 1만 원 이상씩 기부하는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상영할 영화가 마땅히 없었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초창기와는 달리, 지금은 관객들도 다양한 영화를 보고자 하는 니즈가 있어 독립예술영화를 수입하는 배급사, 만드는 제작사도 다양화됐다. 광주극장은 이왕이면 멀티플렉스에서 소외된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매년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예술성을 인정받는 영화들이 나오는데 그런 영화들조차 생각보다 접근성 좋게 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광주극장은 이렇게 작품성이 뛰어남에도, 대중성이 떨어지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상영하고 있다. 광주극장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작년부터는 젊은 세대에게 광주극장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기념품을 제작·판매한다. 주로 광주극장에 애정을 가진 광주시민 작가들과 협업하여 광주극장의 역사를 아카이빙하고 옛 디자인을 활용해 스티커, 포스터, 에코백 등 기념품을 만들었다. 광주극장의 오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도 판매 중이다. 김 이사는 “극장의 미래를 위해서는 젊은 관객이 필요한데, 기념품은 이들에게 극장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극장의 역사가 쌓이니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정체성을 표출할 수 있어 좋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극장 옆 골목을 활용해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정체성도 확장했다. 흉흉했던 골목길에 광주의 극장들과 영화문화사를 볼 수 있는 ‘메모리 월’ 등을 설치해 문화와 역사가 있는 골목길로 탈바꿈하고, ‘영화가 흐르는 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골목이 정비되니 인문학 서점, 독립기획자들의 갤러리도 생겨났다. 김 이사는 “젊은 기획자들이 들어옴으로써 앞으로 더 특색 있는 문화기획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이런 문화자원들이 몰려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충장로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곳, 광주극장 한때는 광주의 자랑스러운 랜드마크였던 광주극장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건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누가 광주극장의 가치를 알아줄까’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광주시민들의 곁을 지켜오고 있다. 그 세월이 긴 만큼 소년·소녀 시절부터 40~50년 동안 광주극장을 애용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단골손님들도 극장을 찾는다. 이들에게 광주극장은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이 충장로 5가를 지키는 반가운 공간이다. 김 이사 역시 광주극장을 사랑하는 시민 중 한 명이다. 그는 사원으로 입사해 이사직에 오르기까지 25년을 광주극장과 함께하고 있다. 그 25년에는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며 극장이 위기에 처한 순간부터 예술영화전용관으로서 정체성을 키워오기까지 광주극장의 역사와 그의 청춘이 함께 맞물려 있다. 김 이사는 “일을 하면서 힘들 때는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극장에서 상영되는 많은 영화를 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내가 느낀 영화의 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라며 살짝 웃었다. 광주극장에 대해 알면 알수록 광주극장이라는 공간과 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들 간의 따뜻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의 끊임없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잔잔하게,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극장. 그리고 노후한 극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변함없는 애정으로 극장을 찾는 지역시민들. 이들의 호흡이 광주극장에 쌓인 오랜 시간을 함께 지켜가고 있다. 올해 86주년을 맞은 광주극장에 90주년, 100주년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 2021-12-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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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 인센티브, 어디까지 알아보셨나요?
- 경남 고성군은 매월 추첨을 통해 1000만 원 상당의 경품을 준다. 울산시와 대구시는 경품으로 건강검진권을 제공한다. 전남은 해남을 방문한 여행객에게 1인당 5만 원 여행상품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런 혜택은 어떤 사람들이 받을 수 있을까? 이들은 최근 국내 지방자치단체가 내놓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자를 위한 혜택이다. 7월부터 59세 이하 시니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을 맞는다. 6월 17일 기준 70세 이상 어르신 80%는 이미 1차 접종을 완료했다. 백신 접종 속도가 빨라지고 백신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정부와 전국 자치단체가 앞다투어 백신 인센티브를 내놓고 있다. 이미 2차 접종까지 마치고 14일이 지난 시니어나 곧 접종을 받게 될 시니어를 위해 다양한 백신 인센티브를 소개한다. 정부 정부는 지난 5월 26일 ‘예방접종 완료자 일상회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접종자가 가족 모임 인원에서 제외되는 혜택 외에도 공공시설에서 입장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두 차례 접종해야 하는 화이자·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1차 접종자도 해당한다. 6월부터 국립공원 생태탐방원 체험프로그램 입장료는 50%, 국립생태원·국립생물자원관 입장료를 30% 할인에, 국립 자연휴양림 입장료는 면제한다.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 별빛야행 같은 인기 문화재 관람 프로그램은 접종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 회차를 편성할 예정이다. 수도권 세종문화회관은 올해 진행하는 자체 공연과 전시에 대해 관람료를 최대 30%까지 할인한다. 연극 ‘완벽한 타인’ 등 이미 막을 올린 공연부터 연말 ‘송년음악회’까지 자체 공연과 전시를 대상으로 10~30% 할인한다.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내놓은 백신 인센티브는 아직 준비 중이다. 지난달 31일 서울시는 “지자체 차원에서 가능한 접종 인센티브 제공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자치구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내부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보영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지난 16일 서울시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백신 접종자를 상대로) 추가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에 할지를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시는 백신 1차 접종자가 에버랜드를 35%, 캐리비안 베이·한국민속촌를 40% 할인된 가격으로 자유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게 한다. 용인자연휴양림은 주차요금을 전액 면제하고, 노상주차장을 제외한 용인시 관내 23개 공영주차장에서도 이용료 20%를 할인한다. 경기도 수원시 소상공인들은 만 60세 이상 백신 접종자에게 음식값과 이용요금을 할인하는 ‘백신 인센티브’ 행사를 준비했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은 만 60세 이상 수원시민은 7∼8월 두 달간 음식값과 이용요금을 업소마다 자율적으로 정한 범위 내에서 할인받을 수 있다. 성남·파주·광명·안산시 역시 산하 체육·관광시설과 참여 의사를 밝힌 미용·외식업소 등에서 할인을 하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는 오는 12일부터 만 65세 이상 백신 접종자에게 광명동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65세 미만 접종자는 50% 할인된 가격에 입장할 수 있다. 광명시민은 중복할인도 받을 수 있다. 7월부터는 시민회관 기획공연 20% 감면, 기형도 문학관 입장객 기념품 증정, 광명극장 기획공연 우선 예약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강원도 강원도는 어르신들의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접종 우수마을을 포상하고, 접종을 완료한 어르신에게 유명 인기 가수의 트로트 콘서트 관람 기회를 준다. 가족단위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일부 해수욕장 코로나19 프리존을 운영하고, KTX 경강선 코로나19 프리존 연계 관광상품 등을 출시한다. 또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코킷리스트’) 공유 이벤트 등을 추진하기 위해 시·군 및 코레일과 협의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는 오죽헌시립박물관과 강릉통일공원 무료입장을 허용하고, 강릉시립예술단 공연 은 입장권을 50% 할인한다. 강릉시 관계자는 무료 급식, 재가 복지 서비스 대기자 발생 시 백신 접종자를 우선 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충청도와 대전광역시 대전시는 지난 14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한시적으로 각종 문화·체육시설 입장료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대전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오월드(동물원)와 프로축구 대전하나시티즌 홈경기 입장료 20% 할인받을 수 있다. 충남 서천군은 백신 인센티브용 특별 관광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했다. 7월 20일부터 백신 접종을 받은 여행객에게 공짜로 시티투어를 시켜주고, 단체 여행은 인원수에 따라 10~30% 할인한다. 특별 관광 프로그램 중 농촌 관광 프로그램에는 차량을 지원하는 등의 혜택과 관광기념품도 준비돼 있다. 전라도 전라북도에서는 일찌감치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전북도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전북 투어 패스’를 ‘1+1’ 체제로 특별판매한다. 투어 패스 카드 한 장으로 도내 모든 시·군의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주요 관광지에 입장 가능하며, 맛집·숙박·체험시설·주차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전북 진안군은 진안 군민에게 국민체육센터 입장료 80%와 골프연습장이용료 50%를 각각 할인한다. 전라북도 무주군 반디랜드 곤충박물관과 천문과학관, 부안군 청자 등은 입장료의 절반을 깎아준다. 전라북도 순창군 강천산군립공원과 전라북도 익산시 보석박물관은 아예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이 외에도 순창군은 8명 이상 단체 관광객에게 교통편과 체험·숙박비를 지원한다. 또 올해부터는 8명 이상 단체 관광객 익산역·남원역·광주송정역·순천역·광주공항 등 기차역과 공항까지 ‘힐링투어 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전세버스로 방문하는 관광객에게는 버스비 일부도 지원한다. 그 외 올해 처음으로 전주 한옥마을과 순창 강천산을 연계하는 ‘시티투어 버스’ 운영, 4명의 소규모 관광객에게는 1일 체험비 최대 1만 원, 숙박비 1인당 1만 원씩 지원할 예정이다. 전라북도 군산시는 7월부터 소상공인지원과 기간제 근로자 채용 시 접종자에게 가점을 준다. 평생학습관 프로그램 수강료도 할인 또는 면제해준다. 전라남도 여수시는 농기계 임대료를 추가로 할인해주고, 사회복지시설 내 노래교실 운영을 허용한다. 전라남도 해남군은 여행사와 함께 ‘백신 안심여행’ 상품을 개발했다. 7∼8월 동안 1박 2일 이상 해남을 찾는 접종 완료 관광객에게 1인당 5만 원의 특별 인센티브를 지원해, 기존 19~20만 원인 여행상품을 5만 원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상도와 주변 광역시 울산시의회사회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울산시민들에게 17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5차례 추첨을 통해 135명에게 건강검진권을 제공한다. 경품 참여 병원은 울산대병원, 동강병원, 중앙병원, 울산병원 등 13곳이다. 울산박물관은 오는 24일과 다음 달 1일 두 차례 진행하는 ‘제18회 전통문화 체험교실’에 백신 접종자만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대구시는 백신 접종자에게 ‘건강검진권’ 등 경품을 선물로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립부산과학관은 지난 8일부터 성인 기준 3000원인 상설전시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접종 확인서와 신분증을 매표소에 제시하면 무료입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부산시는 시립박물관·미술관의 무료관람에 이어 영화의 전당·문화회관 등에서도 관람료 할인을 검토하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엑스포대공원은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백신을 접종한 경북도민들에게 공원 입장료를 면제한다. 엑스포대공원 상설공연인 뮤지컬 용화향도 관람료를 20% 할인한다. 공연 ‘인피니티 플라잉’도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백신을 맞은 국민이면 거주지와 상관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은 전체 260개 마을 중 백신 사전예약률이 우수한 마을 10곳에 총 10억 원의 숙원사업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우수마을 경로당에는 사회복지협의회를 통해 100만 원 상당의 물품과 운영비를 지급한다. 또 접종을 마친 군민 중 매월 추첨을 통해 1000만 원 상당의 경품을 준다. 지급 대상과 방법, 형태는 군민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방침이다. 경상남도 하동군은 옛 경전선 북천역~양보역 레일바이크와 금남면 금오산 짚 와이어 탑승자에게 이용료 50%를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켄싱턴리조트와 비바체 리조트 이용자에게는 이번 달부터 향후 3개월간 숙박료 30%를 깎아준다. 이 외에 불교계가 제공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할인 혜택도 있다. 6월부터 전국 135개 사찰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참가비에서 2만 원을 할인한다. 접종자 당사자에 한해 선착순 1만 명에게 혜택이 제공된다.
- 2021-06-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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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은 인생 포기한 걸로 알지만
- 생활이란 우리가 자주 착각하는 것처럼 멍에가 아니라 사방으로 열린 활공장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향에 있다. 오체투지처럼 궁구하는 삶이 있으며, 경주마처럼 각축하는 삶이 있고, 바람의 사주를 받아 가뿐히 떠도는 삶이 있다. 연극인 최영환(49)은 아마도 바람과 동맹을 맺은 계열에 속할 것이다. 그는 한결 자유로운 삶을 원해 귀촌했다. 누군들 자유로운 삶을 갈구하지 않으랴. 단 한 번 주어진 생을 가급적 자유롭게 쓰고 가고자 하는 갈망. 이는 거의 가당찮은 꿈일망정 고달픈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과 탄력을 가져다준다. 인생이란 근본적으로 고(苦)라지. 그러나 고통 속에 나뒹굴 때라야 비로소 자유로운 지평을 절박하게 찾아 나서는 게 사람이다. 최영환이 그랬다. 요컨대 그는 삶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자유롭다고 믿었던 그간의 삶에 섞인 혼선에 몹시 식상했던 것 같다. ‘괴로운 자각’이라 할 만한 격렬한 회의가 우레처럼 그의 머리를 쳤던 모양이다. 그는 서울에 살며 연극판에서 땀 흘려 뛰었다. 극단 ‘죽죽’에 소속, 연기활동을 해왔다. 일찍이 열일곱 나이 때 연극에 입문했던 그는 1991년, ‘부산연극제’ 최연소 신인연기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배우로 나섰다. 이후 서울의 대학로를 근거로 삼아 20여 년간 연극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대차게 덤벼들어 긴 세월 비지땀을 쏟은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한 현실을 발견하고 남몰래 울상을 지었던 것 같다. ‘나, 연극배우 맞아? 이건 뭐 이룬 게 없질 않은가?’ 그는 아마도 그렇게 독백했을 게다. 그간 수없이 무대에 서서 대사를 읊조렸겠지만, 오직 자신에게만 들려준 그 독백의 톤은 연극이 아니라서 한결 절절했을 것이며, 번뇌의 산물이었기에 그 맛은 유감스럽게도 소태처럼 쓰디썼을 테지.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날마다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극활동을 해왔고, 딴에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점점 퇴행하고 있다는 회의가 몰려들었던 거죠. 딱히 스케줄 없는 날이 늘어났고, 그저 술이나 마시게 되고. 야, 이건 참 무의미한 생활이구나, 타성에 젖어 휩쓸려가고 있구나, 그런 자각으로 괴로웠지요. 연기자다운 활동의 미비와 열악한 생계 상황, 이중고가 있었던 겁니다.” 그는 새로운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황급히 활로를 찾아야 했다. 궁리 끝에 찾은 대안이 시골살이였다. 그즈음 마침 일단의 대학로 연극인들이 단양군의 농촌으로 귀농을 했다. 최영환도 거기에 합류했다. 적적하고 적막한 농촌에 연극판을 펼쳐 고독한 시골 사람들의 삶을 어기영차 북돋우고, 손수 농사까지 지어 생계를 해결함으로써 연극과 농사가 융합된 새로운 문화 공동체의 모델을 본때 있게 구축하겠다는 취지를 표방한 동아리였다. 독특한 패기에 찬 이 공동체에 동참한 최영환은 서울의 집과 단양을 오가며 지냈다. 즉 절반쯤 귀농한 상태로 3년여를 살아왔다. 그러다 성향이라는 게 맞질 않아 동아리를 탈퇴했단다. 그리곤 팍팍한 서울생활을 아예 싹 청산, 처자를 대동하고 단양군 영춘면 면 소재지로 본격적인 귀촌을 했다. 달랑 3000만 원 들고 귀촌 이후 2년이 흐른 현재, 그는 찻집을 운영하며 낯선 객지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용을 쓰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건 언제 어디서건 자유로운 영혼. 해서, 사방팔방으로 자신을 개방하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척척 받아들이기 위해 그간의 반백년 인생에서 쌓은 모든 재능을 쏟아 붓고 있다. 이번 여로의 종착만큼은 근사한 것이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게 귀촌생활이다. 또 그러나 최영환 역시 만만치 않은 인간이 보유할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을 터인즉, 이 사람이 펼쳐 보이는 귀촌생활의 양상이란 어쩌면 연극보다 흥미진진할지도. “이곳에 내려온 지 불과 2년이 지났지만 5년 이상이 지난 것처럼 친숙함을 느낍니다.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 결과죠. 서울은 머릿속에서 거의 지워졌어요. 전화통화량을 가만히 따져봤더니 서울 지인들과는 10%, 이곳 주민들과는 90%. 어느 사이에 그렇게 변해 있더라고요.” “별안간 대학로를 떠난 당신을 두고서 지인들이 아쉬워하지 않았어요? 연극 동네 특유의 동지 의식이라는 게 있을 텐데.” “웬 귀촌? 그러면서 다들 놀라는 눈치이던걸요. 아예 인생 포기한 걸로 알더라고요.(웃음) 사실, 연극인들의 이탈은 흔합니다. 대략 60% 정도가 중도에 분야를 바꿔 빠져나가죠. 경제문제 등 여러모로 한계 상황에 봉착해서.” “연극배우란 배고픈 직업이라고 알려졌죠. 유능한 데다 열정마저 겸비한 인재들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가는 건 참 섭섭한 현실이에요.” “이름난 배우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난감하기 마련이죠. 대리운전 기사를 하는 식으로 생활비를 벌며 버텼으나, 뭔가 확실한 타개책이 아니면 더 가혹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렇다면 시골에 가서 소박한 생활을 하자, 그런 작정을 했던 겁니다.” 혼자 살 때엔 그럭저럭 지냈더란다. 혼밥과 혼술도 홀가분한 자유의 증빙으로 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40대 중반, 좀 늦은 나이의 결혼으로 아이까지 얻은 뒤론 사정이 급박해졌다. 아자아자! 시골에서 나를 맘껏 풀어놓고 생활의 야전 속으로 들어가자! 그는 그리 자신과 담판을 짓고 귀촌했던 것이다. 연극이야 버릴 수 없는 동행. 미련 이상의 관습으로 삶에 이미 들러붙은 것이라서 이삿짐에 실려 함께 시골에 내려왔다. 연극 행위가 없는 삶은 식물인간처럼 절망적일 지경은 아닐지라도 좌우간 탁 놔버릴 수 없는 애착이 이미 깊었기에, 그는 귀촌의 나날을 연극을 위해서도 사용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어엿이 먹고 살 수 있는 생활 방편을 찾고, 덩달아 연극활동에도 새로운 피를 수혈하자는 것. 최영환의 귀촌 청사진엔 그 두 가지 목표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 오자마자 이웃들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무얼 하기 위해 귀촌했는가를 기탄없이 밝혔지요. 연극단체를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모두들 귀를 기울이더군요. 물론,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아하, 그 무슨 극단을 만들어 지원금이나 빼먹으려는 속셈 아니여? 그런 의심에 찬 소문들이 돌기도 했으니까.” “낯선 사람 하나가 시골에 등장한다는 건 시골이라는 무대 위에 배우 하나가 올라선 것과 같은 효과를 낳게 마련이죠. 모두가 그의 동태를 예의주시 감상하게 되니까. 감상 평론도 중구난방으로 무성하고요.” “통과 의례라는 게 있게 마련이죠. 면 소재지 상가 거리 복판에 찻집을 차리자 주변 상인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도 완연했어요.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영세한 상가에 경쟁자 하나가 출현했다고 본 거죠.” “다양한 자영업 중에 찻집을 선택한 건, 그게 가장 유망하다 판단해서?” “아내가 바리스타예요. 커피집이 적격이라 봤어요. 소자본으로 오픈할 수 있는 업종이기도 했고요. 저희는 달랑 3000만 원을 가지고 귀촌했는데, 가게를 차리고 셋집 주택을 얻는 데 다 썼지요. 찻집 운영으로 연 1500만 원 정도의 매상을 올립니다. 월세 나가지, 겨울 비수기엔 힘들지,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차차 호전될 거라 봐요.” 찻집엔 ‘꽃피는 커피’라는 상호가 걸려 있다. 아담하고 소박해서 정겹다. 가게 좌우로는 식당, 옷집, 식육점, 주점, 빵집 등속이 있고, 맞은편엔 하나로마트가 있다. 상업이 성행할 리 없는 고즈넉한 시골이지만 그나마 요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더라도 세 식구의 믿을 만한 호구지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해서, 최영환 부부는 찻집일 외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치운다. 가게는 한 사람이 지키면 되기에 나머지 한 사람은 일거리가 생기면 쪼르르 달려간다. 의외로 일거리가 많은 게 시골이란다. 주로 막노동이지만 최영환은 가리지 않고 일을 찾아 전전해왔다. 아로니아 가공공장에 단기 취업을 하기도 했다. 아내는 인근 사찰에서 총무 일도 봤다.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 절박한 진실이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 첫발 내딛은 ‘청춘극단’ 면 소재지의 하오 풍경은 나른하다. 부스스 마른 볏짚처럼 광택 없는 거리. 별 목적 없어 보이는 한가한 걸음새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를 드나드는 몇몇 아낙네들. 수족관처럼 조용한 정경이지만 스피커로 외쳐대는 물오징어 판매 차량이 등장하자 별안간 사람들이 북적이며 몰려든다. 최영환도 덩달아 바빠진다. 아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일을 참을 수 없어서다. 2년여 사이에 발휘한 사교성 덕분에 이미 그는 이 동네 사람 다 됐다. “제가 서울에서보다 더 바쁘게 삽니다. 이웃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사는 것이죠. 청년회나 탁구동호회 등 소소한 모임들에 참여하고 있으며 감투를 쓰기도 했어요. 시골의 배타성이나 텃세에 대해 많이 듣고 내려왔지만 여기는 다르더라고요. 상당히 개방적이고 우호적이에요.”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 이건 귀촌 성공 필살기 1칙이라 할 만하죠.” “제가 원래 가만히 있질 못하는 스타일입니다.(웃음) 체육대회나 축제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 춤을 신나게 추기도 했어요. 이웃과 어울려 살지 않고선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극단을 꾸려 키워나가기 위해서도 주민 속으로 파고드는 일이 필요해요. 부지런히 눈도장 찍으며 살아왔어요.” “서울의 연극단체들도 흔히 가시밭길을 걸어요. 도발적인 투지가 아니고선 시골 극단을 착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 아니겠어요? 현재 어떤 연극활동을 하고 있죠?” “겨우 첫발을 내딛은 단계입니다. 천천히 가되 충실히 기반을 다지고자 해요. 참여 인력은 이 지역 사람들로 영입할 생각이고, 우선은 제가 연기와 연출 등 모든 걸 도맡아 해나갈 참입니다. 구상과 포부는 크지만 재정 문제 등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요. 극단 이름은 ‘청춘극장’입니다. 올여름엔 낭독공연물 ‘절대사절’을 선보였지요.” “단원은 몇 명이나 되죠?” “저를 포함, 세 명입니다. 당분간은 2인극 정도 공연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단원 중 한 명은 제 아내이지요. 연극에 대한 아내의 열정이 은근히 대단해요. 작은 동네이지만 열심히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을 거라 굳게 믿으며 함께 노력하고 있지요. 일단은 생활 안정이 화급한 과제이지만, 부부가 공히 추구하는 가치 있는 일과 목표를 가지고 산다는 게 즐겁습니다.” 최영환은 대학로 극장에서 아내 이동순을 만났다. ‘관객모독’이라는 작품에 출연 중 관객으로 찾아온 이동순과 눈이 맞았던 것. 연극 애호가였던 이동순은 ‘관객모독’을 자그마치 100여 회나 관람했더란다. 그 바람에 극단 단원들의 환대를 받았는데, 유독 최영환에게 필이 꽂혔던 거다. 부부 사이엔 어여쁜 유치원생 딸 하나가 있다. 아내의 나이는 올해 33세로 최영환보다 열여섯 살 연하. 남녀의 가슴에 연정이 돋으면 술 취하듯 흥겨운 황홀이 밀려드는 법이니 그걸 사랑이라 한다. 여기엔 경계나 모순이 없어 나이 차 따위는 무의미하다. 세상을 보는 촉에선 세대 차가 있겠지만. “아내가 워낙 긍정적인 스타일이라서 매사 공감대가 넓은 편입니다. 다소 이견이 있어도 합리적이다 싶으면 곧바로 긍정하지요. 어! 그래? 해보지 뭐! 이게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뭐든 두려움 없이 해보자는 것, 하다하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것, 그런 낙관을 공유하며 사는 겁니다.” 오랫동안 스타 등극을 소망하며 연극배우로 진력했던 사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흥흥거리며 살아왔으나, 이제야 세상 무서운 걸 알겠노라’고 술회하는 남자. 그, 최영환은 여전한 물적 부실 앞에 서 있으나 훌훌 벗어던져야 할 껍질은 이미 벗어던졌다. ◇ 최영환이 주는 귀촌 Tip ◇ •이민보다 더 힘든 게 귀촌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목적 설정부터 정확하게 하자. 막연한 낭만이나 도피적 망상에 의한 귀촌은 절대 금물이다. •경관을 기준 삼아 귀촌 지역을 선택하는 건 위험하다. 충분한 사전답사와 원주민 접촉을 통해 지역의 인심과 풍토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소읍이나 면 소재지에서의 자영업은 그리 이상적이지 않다. 친척이나 동창 등 인맥 중심으로 고객이 형성되는 게 시골의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원주민과의 융화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누군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같이 거들어줄 수 있는 정도의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 2019-12-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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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성군 시골에 사는 윤태홍·이숙연 부부
- 어딜 가도 꽃잔치가 한창이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송이들 우르르 일으켜 세우는 봄의 힘. 그걸 청춘이라 부른다. 자연의 청춘은 연거푸 돌아온다. 인간의 청춘은 한 번 가면 끝이다. 조물주의 디자인이 애초에 그렇다. 청춘은 전생처럼 이미 아득하게 저물었다. 바야흐로 생애의 가을에 접어든 사람에겐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을을 절정으로 가늠하는 사람에겐 여전한 봄. 싱싱한 태도와 관점이 청춘의 사촌인 회춘(回春)을 데려다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생이란 흥미진진한 극장! 신을 발견했다. 새파랗던 청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어느새 어중간한 중늙은이로 변해버린 게 아닌가. 흉포한 세월의 간계에 부질없는 삿대질을 해대는 대신, 그는 올 것이 왔다는 투로 태연히 응하기로 했다. 과학교사였던 그에겐 매사 과학적 사고를 하는 버릇이 있다지. 어차피 거역할 수 없는 숙명엔 대번에 순응하자는 게 그의 과학적 인생관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인색한 조물주가 주입한 숙명에 짓눌리지 않는 길이라는 지론 또한 그의 과학이렷다. 윤 씨는 교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모종의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 모종의 일이란 반전 평화운동이나 조국의 통일운동 같은 웅장한 사업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내밀한 영혼과 관련됐을 수도 있을 그 모종의 일이란 귀촌이었다. 귀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더란다. 사실 그건 오크통에 숙성시킨 와인처럼 그가 오랫동안 무르익힌 숙원이었다. 적당한 때가 오면 시골에 들어가 살겠다는 포부. 귀촌으로 인생 가을을 회춘의 계절로 누리겠노라는 열망. 그는 포부와 열망 자체가 믿을 만한 길잡이인 걸 알아차리고 귀촌을 단행했다. 미련도 불안도 없이 사표를 던졌다. 마치 담 밖에서 부르는 연인의 음성에 이끌려 집을 나서는 사람처럼 스윽 도시를 벗어났다. “남들이 뜯어말리더라고요. 그 어중간한 나이에 시골 가서 무슨 재미를 보겠느냐, 웬 생고생을 자청하느냐, 그런 소리들을 했어요. 그러나 은퇴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왔던 저에겐 귀촌이 움직일 수 없는 답이자 길이었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귀촌에 매력을 느끼고 모색해왔으니까. 다만 타이밍을 기다렸을 뿐인데, 예순 나이에 접어들 즈음, 이제 때가 왔다, 더 미룰 수 없다, 그런 판단을 했죠.” “평생 생활고에 쫓기다 옥살이까지 했던 세르반테스. 그가 ‘돈키호테’를 써 성공한 게 예순 무렵이었죠.” “저의 꿈은 소박해요. 일테면,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싶다, 그런 거….” “선생께서 미리 간파한 귀촌의 매력 요소란 어떤 것들이죠?” “일단은 제 취향과 잘 맞을 거라 봤어요. 딱히 도시에 환멸 같은 걸 느끼진 않았지만, 마음은 자주 시골로 흘러갔어요. 텃밭을 가꾸고, 나무를 기르고, 앞산 뒷산을 산책하고, 그런 한적한 생활에 대한 선망이 많았어요. 생활비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점에도 호감을 느꼈어요. 시골의 싼 땅값도 매력 요소라 봤고요. 이래저래 귀촌으로 은퇴 이후 노년의 삶을 한결 생동감 넘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요.” “살터를 잡는 일부터 착수했겠죠?” “광주 인근 나주나 담양에 터전을 마련하려고 많이 돌아다녔지만 마땅치 않았어요. 우연히 이곳 이 마을을 발견한 건 행운입니다. 땅값도 쌌어요. 광주의 아파트 한 채 값이면 땅 사고 집짓고, 그럭저럭 충분하리라는 예상대로,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었죠.” 원주민보다 귀촌 가구가 더 많은 마을 귀촌을 작심한 이후 불과 반년 안짝 만에 집짓기까지 마치고 이사를 했다. 윤태홍 씨의 아내 이숙연(57) 씨가 동지애를 발휘해 한껏 조력한 성과였다지. 이 씨 역시 교사 출신이다. 영어를 가르쳤었다. 부부 교사였으니 연금을 합산하면 쏠쏠하리라. 부부가 보유한 나름의 물적 토대는 귀촌의 돛을 미는 순풍 역할을 했을 테다. 500여 평 부지를 사 번듯한 2층집을 짓는 데엔 처음의 예상대로 아파트 한 채 값이 들어갔단다. 이후 집 뒤편 산자락에 있는 묵정밭을 추가로 사들였다. 날 보러 와요, 라고 어여삐 노래한다. 윤 씨네 집 둘레에 피어난 봄꽃들이 말이다. 봄 아니고 꽃 아니더라도 헌칠한 마을이다. 높고 낮은 산들이 어깨를 겯고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한바탕 춤을 추어대는 그 복판에, 혹은 꽃잎들 환하게 벌어진 그 안통 화심(花心) 부위에 마을이 들어앉았다. 저 아래 초록빛 호수 위로는 아지랑이 아롱거린다. 전쟁이 터지더라도 감쪽같이 무사할 듯 외진 맛이 있는 반면, 볕 바른 양달 일색이라 으슥한 구석 없이 포근하다. 대를 이은 농투성이로 살았던 원주민들은 대부분 도시로 흩어져 나갔다. 바야흐로 귀촌·귀농 전성시대라 해야 하나. 지금 이 마을을 이룬 24가구 중 70%가 도시에서 유입된 귀촌 가구들이라는 게 아닌가. 어떤 이들이지? “저와 같은 퇴직자들, 자영업을 하다 들어온 사람, 예술인, 광주로 출퇴근하는 건설업자 등 다양합니다. 원주민보다 외지인이 더 많아 텃세, 그런 건 없어요. 원주민들 자체가 순후하지만, 다들 편하게 어울려 지냅니다.” “이사 뒤 가장 먼저 공들여 한 일은 무엇이었죠?” “제가 소나무를 무척 좋아합니다. 광주 아파트에 살 때도 화분에 소나무를 길렀어요. 소나무를 바라보면 왜 즐거움이 샘솟을까, 그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그놈들을 애호했어요. 정원 둘레에 소나무를 심어 가꾸고 싶다는 염원은 사실 귀촌 동기에 속합니다. 해서, 공들여 소나무부터 심기 시작했어요.” “소나무로 뜰을 둘렀으니 솔향이 은은할 테고, 달빛이 솔가지를 타고 흐를 테고, 수시로 운치를 즐기시겠다.” “소나무뿐일까. 모든 자연 환경이 아름답죠. 그러나 제가 풍경을 즐기는 일에 능하진 못합니다. 낭만적인 성향의 인물은 전혀 아니라서.(웃음)” “그럼 어떤 성향?” “흠. 원만한 성품이랄까? 눈앞에 주어진 일에 단순하게 매달리는 기질이고요, 부지런히 내가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성격이기도 하죠. 딱히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찾아 열심히 매달리곤 했어요. 귀촌 이후 아로니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도 그런 성격 탓이죠.” 윤 씨는 800평 규모의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다. 이왕에 사들인 널따란 묵정밭을 그냥 놀리기란 대지의 여신에게 결례되는 일이거니와, 시골의 적막 속에 찻물이나 마시며 도 닦는 사람처럼 고요하게 눌러앉아 지내기란 고문처럼 고역스러워서였겠지. “농원을 보여주실래요?”라고 부탁하자 나른하던 그의 표정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강박과 속박 없이 맘껏 즐기는 일상 4월의 아로니아나무들은 미처 깨어나지 못해 둔하다. 윤 씨 홀로 살뜰한 눈매로 나무의 싹눈을 이리 쳐다보고 저리 들여다보고, 마치 현미경으로 박테리아균의 신비한 동향을 살피듯 진지하다. 귀촌 1년 만에 농부로 변신한 그는 3년여가 더 흐른 현재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텃밭농사도 그렇고 농사라는 거 진짜 재미있습디다. 아로니아 농사에 관한 한 별로 어려울 것도 없더라고요. 워낙 강한 작물이라서요. 병충해에 강하거든요. 극단적으로 농약 살포를 자제하더라도 농사를 망치진 않아요.” “수익성은?” “하향세가 뚜렷해요. 재배 농가가 급증해서죠. 재작년엔 20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지만 작년엔 반 토막 났어요. 작물 전환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체리나 굵은 대추로 바꿀까 해요.” “선생은 과학을 전공했어요. 농사에도 과학을 적용하시나?” “농사도 응용과학이지 않겠어요? 그 점에서 제겐 농사가 유리하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고집스럽게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없는 처신, 그리고 자기합리화입니다. 그런 쓸모없는 것들을 경계하고, 과학적인 사고에 따른 주도면밀함과 준비성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고 봐요. 자랑은 아니지만, 제게 몸에 밴 과학적 실천은 있다고 봅니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다탁에 마주앉는다. 그의 아내가 주방에서 다과를 가져와 탁자에 놓고 원래의 자리였던 저편 의자에 다시 앉는다. 말수가 드물다. 그림자처럼 조용한 거동. 묵언수행을 하는 도류처럼, 식물처럼, 시종을 일관해서 고요하다. 말보다 내밀한 침묵의 웅변이란 게 있겠지. 세상에서 할 말을 이미 다해버렸거나, 말이 아닌 은근한 눈빛으로 부부애를 나누기에 숙달됐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부부간에 언쟁이라도 있었나? 흔하디흔한 게 부부싸움이지 않던가. 그러나 윤 씨 말하길, “우리에겐 그 흔한 부부싸움이 아예 없다”고 한다. “부부싸움이 되질 않아요. 왜냐? 집사람이 전혀 대꾸를 안 하거든요.(웃음)” “저런! 남편을 숫제 포기하셨을까?” “대꾸를 하거나 제동을 걸어봤자 먹히지 않아서겠죠. 때로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섭섭한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천성이 그래요. 소리 없이 남편을 도와주고 믿어주고 챙겨주고, 숨 쉬는 공기처럼 제겐 고마운 존재죠. 제가 그걸 모를 정도의 멍청이는 아닙니다.(웃음)” “귀촌이라는 급격히 바뀐 환경에 남편은 빠르게 적응하는 반면, 아내는 적응이 더딘 경우가 드물지 않죠.” “배려가 필요하겠죠. 상대의 성향을 존중하는 자세 말이죠. 저는 제법 활달한 편입니다. 외부 활동이 잦아요. 반면 아내는 이웃의 단짝 친구와 어울리거나, 집에서 혼자 조용히 머무는 걸 즐겨요. 그런 아내를 위해 도서관엘 자주 들러 소설책들을 빌려다 줍니다.” 배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메마른 공유지를 적시는 단비. 윤 씨의 성정은 담백함이 넘쳐 무색무취에 가깝다. 그러나 아내에게 쓰는 마음은 나긋하거나 촉촉하겠지. 부부가 불화하고서도, 아내를 고려하지 않고서도, 시골생활을 무사히 누릴 묘한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귀촌 4년 차. 윤 씨는 더 바빠졌다. 오라는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아졌다. 그는 이걸 생동하는 삶의 징표로 본다. “제가 일찌감치 서예와 사진에 열을 냈어요. 이젠 꽤 조예가 생기고 동호인 모임들에도 빠지질 않아요. 귀촌 공부도 여전합니다. 이미 예전에 집짓기 학교나 각종 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섭렵했지만 지금도 열심히 찾아다녀요. 한문 고전 강독 모임에도 참여해요. 때론 몸이 둘이라도 부족할 지경이에요. 귀촌에 만족합니다. 강박과 속박 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비로소 맘껏 즐기며 사니까. 이보다 나은 삶이 어디 있을꼬.” 귀촌으로 자유를 얻었다는 얘기다. 상처가 없는 지평, 자유를.
- 2018-05-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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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딩 뮤지컬 ‘1946 화순’, 화순 탄광촌 사건을 통해 4·3 사건을 기억하다
- 제주에서 4·3 사건이 발생한 지 올해로 70년이 됐다. 이를 맞아 제주시는 2018년을 제주 방문의 해로 지정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스탠딩뮤지컬 ‘1946 화순’(극단 경험과 상상/작·연출 류성)의 제주 초청 공연이다. 1946년 전라남도 화순 탄광촌에서 벌어진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으로 4·3 사건과 흡사한 부분이 매우 많다. 광복 이후 미군정 치하에서 벌어진 양민 학살.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이들의 섬 제주. 공연장 객석에서 간간이 눈물 훔치는 소리가 들린다. 70년 세월이 지났어도 슬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건국 역사에서 잊어서는 안 될 상처 2월 말,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주최로 제주특별자치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스탠딩뮤지컬 ‘1946 화순’이 공연됐다. 이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 4대 탄광 중 한 곳이던 화순탄광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조명한 역사 팩션 드라마다. 탄광을 관리하던 일본군이 퇴각하고 탄광 노동자들은 자치위원회를 결성해 탄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본 소유였던 탄광을 관리하기 위해 미군정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자치위원회를 불법으로 규정 해산시키기에 이른다. 미군정이 탄광을 관리하자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식량난에 시달린다. 미군정은 탄광 소장을 교체하고 노조를 위협해 노조 간부 3명과 100여 명의 노동자를 해고한다.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은 광주에서 개최된 8·15 1주기 기념식 참석차 길을 나선 화순탄광 노동자들을 탱크와 비행기를 동원해 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바로 ‘1946 화순’이다. 제주 4·3 사건의 축소판이자 1년 앞서 일어난 화순탄광 사건을 통해 제주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알리는 자리가 됐다. 가슴 뜨거웠던 100분, 감동으로 하나 되다 하루 2회 공연된 ‘1946 화순’은 말 그대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나눠주는 배지와 공연 포스터를 받아가는 등 제주 시민들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관객이 꽉 들어차고 공연이 시작되자 일제히 조용해진다. 노래 사이사이 박수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눈물을 훔치는 소리도 새어나온다. 공연 내내 여전히 아픈 기억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잊을 수 없는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무대 위에 선 모든 배우가 주인공 2015년 9월 초연된 ‘1946 화순’은 배우와 스태프의 재능 기부로 탄생해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무대에 코러스로 참여하고 있는 배우의 대부분이 대학로 연극계 주역들이다. 이들의 개런티만 따져도 금액이 상당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큰 대가 없이 제주 공연에 참여했다고. ‘1946 화순’은 2016년 ‘화순탄광사건 70주년’을 맞이해 광주·전남 3000여 명의 노동자를 위한 공연을 하기도 했으며, 광화문 광장 대규모 공연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재조명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의 홍보는 화순을 본 관객들이 담당했다. 빠른 입소문으로 공연 초 ‘전 회, 전 석 초과 매진’을 기록했고 관객 요청으로 앙코르 공연을 이어나갔다. 창작 초연 최초로 ‘유료객석 점유율 120%’, 소극장 뮤지컬 사상 최대 규모인 60여 명의 배우 참여라는 경이로운 행보를 보여준 ‘1946 화순’은 연극인들의 순수가 살아있는 한 감동을 주며 오래가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제주 4·3 사건’ 제주라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제주 4·3 사건이다. 이 사건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빨갱이 폭동으로 간주돼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1947년에 발생해 1년여 동안 벌어진 제주 4·3 사건은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최악의 양민학살 사건이다. 4·3 사건에 관한 자료를 보고 이해한 결론이 그렇다. 한 살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잡아 죽였다는 증언도 있다. 당시 30만 명도 안 되는 제주 땅에서 3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제주 사람들과 만나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4·3 사건 이야기. 그들의 슬픔은 해가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제주여행을 준비하는 독자가 있다면 4·3 평화공원에 가보기를 권한다. 올해 제주 방문의 해는 ‘4·3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뜻하게 반기는 제주 사람들의 웃음 뒤에는 가족을 잃은 상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2018-04-0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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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 탄 기적의 지휘자’
- 요즘 손목이 아프다. 병원에 갔더니, 갑자기 너무 과도하게 사용해서 엄지로 이어지는 힘줄에 염증이 생겼단다.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에도 불편함이 몰려왔다. 세안을 하거나 머리를 감는 일조차 수월치가 않으니 짜증이 나고 우울했다. 다 나을 때까지 그저 손을 쉬게 해야 한다는 처방전, 손끝 하나 까딱 안 하고 우아하게 살 방법 없을까. 그러는 필자에게 그는 무언의 일침을 가했다. 웬 엄살이더냐고! 엊그제 그를 만났다. 연초록 나뭇잎이 눈부시던 남산자락의 국립극장, KB하늘 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 지휘봉을 힘차게 휘젓고 있던 정상일씨는 더욱 밝아진 표정에 유머도 늘었다. “장애인이 되니 좋은 게 참 많더라구요, 대통령이나 그 어떤 높은 사람이 와도 앉아 있을 수 있잖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어 좌중을 웃음 짓게 했다. 현재 세한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5년 전 11층 난간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당시 담당의사는 살아 난 것만도 기적이라고 했다고 한다. “며칠째 사경을 헤매고 의식불명일 때 내 손을 놓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눈을 떴고, 세상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워낙 중증이어서 앉을 가능성도 희박했었죠. 모두가 이제 정상일은 회생불가라고 했답니다.” 그는 다시 태어남에 감사하며 일 년에 걸쳐 열 번 이상의 대수술을 받은 후에 기적적으로 휠체어에 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소식을 듣고 필자가 처음 병문안을 했을 때가 사고 후 일 년이 지났을 즈음이다. 그는 폐활량이 일반인의 40% 밖에 안 되어 호흡이 가쁜 상태였고, 대화가 단답식처럼 짧게 끊어가며 힘겹게 이어갔다. 생리적 현상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에는 특수 장치가 달려있어 일정 시간이 되면 간병인이 인위적으로 처리를 해주었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과 삶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이후 ‘휠체어 탄 기적의 지휘자’로 불리며 2014년에 자신의 이름인 ‘정상일‘의 이니셜로 CSI퓨전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이어 2016년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로만 구성된 ‘대한민국 휠체어 합창단’을 창단해 벌써 오스트리아와 로마까지 공연을 다녀오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30여명의 휠체어단원을 이끌고 첫 번째 해외 공연을 다녀왔는데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있었습니다. 아주 심했지요. 귀국하자 바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은 없어요.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지금은 기립형휠체어로 바꾸어 몸놀림이 훨씬 자유로워져서 욕창도 재발되지 않는다고 한다. 올 여름에는 모스크바로 공연을 떠날 예정이고, 가을에는 미국의 카네기홀까지 진출할 예정이라니 그의 용기와 거침없는 추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는 연주회 준비를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100여명의 합창단원을 이끌고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연습을 해오고 있다. 단원 중에는 멀리 광주광역시, 경남 양산, 심지어 미국 뉴욕에서 오는 명예회원도 있다고 하니 그들의 열정 또한 대단하다. 이번 연주회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노래를 불러 이목을 집중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이남현씨다. 사고로 목신경이 끊어져 전신마비 장애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해 ‘기적을 노래하는 바퀴달린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남현씨처럼 하반신 마비 중증 장애인들로 구성된 단원들은 호흡하기도 힘들다는데, 그들이 이뤄내는 하모니가 너무 아름다워 듣는 내내 감동이 밀려왔다. 일반인들보다 몇십 배 더 노력했을 시간들이 짐작이 미루어 되고도 남았다. 마지막 앵콜 곡으로 대중가요인 ‘무조건’을 부르며 이번 음악회의 화려한 막을 내렸다. 이곡을 선곡한 것은 대한민국 어디든, 세계 어느 곳이든 휠체어 합창단을 불러주면 무조건 달려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란다. “ 제가 장애인이 되고서야 장애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문턱하나 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이제 남은 생, 그들을 위해 이 한 몸 아낌없이 봉사하고 싶습니다. 다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부단체에서 우리 합창단에게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외공연이나 국내 무료공연을 다닐 때 모두 자비로 진행해왔습니다. 앞으로 우리 휠체어합창단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익에도 한 몫 하고 싶은 소망입니다.” 그의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 다음 목표는 평창동계올림픽이란다. 올림픽 개막식 때 100명의 휠체어합창단원이 무대에 올라 당당히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꿈이라고. 그럼으로써 전 세계 모든 장애인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그의 행보는 오늘도 거침이 없어 보인다.
- 2017-05-26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