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가치 있는 생활에 대한 열망이 그의 귀촌을 부추겼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인생을 한번 획기적으로 바꿔보자는 욕심으로 부푼 건 아니었다. ‘느림의 미학’ 같은 걸 추구하며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즐기자는 쪽에 무게를 두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귀촌을 통해 가급적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똑떨어지게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싶었다. 그 용무란 서점 일이었다.
시골에서 서점을? 지지구재재구 노래하는 새들이야 지천이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라야 마을 원주민 몇몇에 불과한 후미진 산골에서? 이건 무인도에서 혼자 ‘전국노래자랑’을 공연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기획일 수 있다. 거북이를 끌고 산책하는 일처럼 요상한 이벤트이기도. 소비자들의 호응이 있고서야 생존이 가능한 게 서점 사업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김미자(59, ‘그림책 꽃밭’ 사장)에겐 남다른 속대중이 있었다. 믿는 구석이 다 있었던 거다. 그 믿음이란 오직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온 것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가늠하는 내공까지는 아닐망정, 적어도 서점에 관한 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으니 한바탕 제대로 붙어볼만한 게임으로 여겼던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그의 산골 서점은 놀랍게도 탕탕 잘나간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아동 그림책 관련 직업 활동을 했었다. 공공도서관과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했으니까. 그림책 커뮤니티를 만들어 동네 엄마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지속했으며, 그림책 카페를 7년간 운영한 경험도 있다. 머릿속에는 항상 시골 생각이 들어 있었다.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그림책과 시골살이를 아우를 수 있는 삶을 늘 꿈꾸었던 것이지.”
김미자가 남편과 함께 이 시골로 내려온 건 2017년. 아파트를 정리하고 남편의 퇴직금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고서였다. 흔히들 귀촌지를 결정하느라 진을 뺀다. 첫 단추부터 똘똘하게 끼우기 위해 해부학 교실의 연구원처럼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해 장소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는 지루한 물색의 과정을 싹둑 잘라냈다. 숲이 있는 시골이면 어디든 무슨 상관이랴, 그리 여겼다. 경륜과 자신감을 완비했으니 어디에 갖다놓아도 승산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리서치를 통해 몇 군데 시골 서점의 순항 분위기를 미리 눈치채기도 했다. 그는 지인이 소개한 경매 토지를 덜커덕 사들여 집을 지었다. 서점과 살림채, 그리고 북스테이 공간을 마련해 영업을 개시한 게 만 3년 전.
“처음 한동안은 손님이 오지 않았다. 날마다 매상과 마진을 계산하며 고민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덩달아 매출이 늘더라. 수익의 절반은 책 판매에서, 나머지 절반은 북스테이에서 발생한다. 이젠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는 날은 없다. 덕분에 부부 둘이 먹고사는 데엔 아무런 불편이 없지. 이쯤이면 노후 생계 대책으로 충분하기에 안도감과 만족을 느낀다.”
단기간에 자리 잡다니. 이 서점은 어떤 힘과 매력을 지녔기에?
“가급적 질적 수준을 높게! 풍경은 예쁘게! 그런 모토를 정하고 충실하게 구현한 결과물이다. 예전에 일본의 숲속 도서관들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감흥이 컸다. 모델로 삼을 만했지. 아무리 외진 시골이라도 구색과 내용이 충실하면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걸 확인했던 셈이다.”
도시에도 특별히 공들인 서점들이 있지만 흔히 불황을 면제받지 못하고 있다. 이곳의 자연경관이 유력한 재료라 봐야 할까?
“아동 그림책에 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자연과 생명에 관한 것이다. 시골 서점은 그 자연과 생명에 관한 아이들의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는 환경 여건으로 한몫을 할 수 있다. 나는 그림책에 나오는 자연을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과 함께 펄펄 뛰노는 아이들과 얘기하고 싶었다.”
숙박을 하거나 책을 구입하는 고객층은 어떤 이들인가?
“주 고객은 30~40대 부모와 아이들이다. 그림책 관련 각종 자격증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학습 차원에서 찾아오고, 시골 서점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방문한다.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선생님 손에 이끌려 찾아오는 당진시 일대의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아동들이다.”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기
다락을 구비한 책방 공간은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되 품격을 돋워 꾸몄다. 아이들의 구미에 어울리게. 엄마들의 호감을 살 수 있게. 그림책 일색의 도서들은 모두 5000여 권.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온 2000여 권과 새로 구입한 3000여 권을 합쳐 공간을 채웠다.
그림책을 좋아하던가? 게임에 사로잡힌 영혼들이 아닌가?
“아동들은 순식간에 알아차린다. 엄마가 왜 나를 책방에 데려왔나를. 그러고서 하는 말이 이렇다. 나, 책 안 봐! 오나가나 아이들은 휴대폰 게임에 몰입하는 거다.”
그럴 때면 어떤 처방을 사용하지?
“책이 싫으면 고양이하고 놀아! 마당에 나가 뛰어놀아! 그렇게 말해준다. 그러나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다.”
엄마들은 책이 싫다는 아이들을 왜 굳이 이곳에 데려올까? 책을 강요하면 자칫 책을 더 징그럽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든 책을 접하게 하려는 선한 의도에 무슨 결함이 있겠나? 그러나 엄마들의 방법엔 문제가 있다. 책을 학습이나 훈육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나는 늘 한다. 연령에 맞는 책을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나직이 읽어주라고 권한다. 아이들에겐 가르침보다 위로가 필요하니까.”
마을 풍경을 볼까? 딱히 빼어나거나 미묘한 설렘을 자아내는 풍치는 아니다. 변방의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농촌 마을이다. 야트막한 야산들이 강강술래를 하듯이 1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을 빙빙 감싸고돌아 푸근하다. 김미자는 이 평온한 풍경에 안심을 느끼는 것 같다. 쉽게 오를 수 있는 산과 숲이 있으니 불만이 있을 때면 애먼 남편에게 툴툴거리기보다 나무에게 하소연하는 것으로 해소하겠지. 그에겐 자연과 사계의 순환에 심취하는 버릇이 있다. 이는 자연과 동행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실 김미자의 귀촌은 자연에 가까이 가자는 목적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기. 그게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걸 깨달았던 모양이다.
자연이 좋다지만 날마다 산을 바라보다 보면 권태감이 밀려들기 십상이다. 거칠지만 생동하는 도시의 풍속도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다.
“권태를 느낄 겨를 없이 분주한 게 시골 생활이다. 하지만 문화적 충격과 자극이 하나도 없다는 건 큰 단점이지.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연이나 전시를 볼 수 없다는 건 너무도 아쉽다. 주변에 예술가라도 하나 산다면 해갈이 될 테지만.”
마을 원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나? 시골에도 지혜로운 이들이 있기 마련인데.
“시골 할머니들의 평온하고 깨끗한 삶의 태도에 느끼는 게 많다. 대체로 할머니들은 인간관계에서보다 땅에서 얻은 경험으로 인생을 사는 것 같더라. 그들은 아무리 노쇠했더라도 호미를 놓지 않는다. 죽기 직전까지 호미로 땅을 긁는다.”
도시의 노인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야생의 에너지. 시골 노인들에겐 그런 육화된 근성이 있다.
“맞다. 처신에 깨끗하고 이치에 밝은 할머니들과 사귈 수 있다는 건 시골 생활이 주는 값진 행복의 하나다.”
먹고살 정도만 벌고, 삶은 놀이로
시골이라고 눈 밝고 경우에 환한 이들이 흔할 리 없다. 도시든 시골이든 ‘삐딱이’ 그룹이 있어 활약을 하는 게 아닌가. 김미자도 초기 한동안 유별난 이웃에게 좀 시달렸지만 적절히 타협하며 사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포용했다. 보다 덜 소중한 것에 보다 더 소중한 걸 훼손하고 싶진 않았던 것일 텐데, 그에게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소박한 삶의 지속이다. 물구나무 선 세상을 뒤집을 힘이야 없지만, 최소한 자신만큼은 악다구니와 돈과 허영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것이다. 귀촌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는 예상은 딱 적중하진 않았다. 그러나 거둔 성과와 만족의 크기는 만만치 않다.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이 뭐냐면, 월든 숲에 살았던 소로, 그리고 헨리 니어링 부부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을 닮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안 되더라. 우선은 돈벌이를 하는 내가 돈에서 해방되기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도시 생활과 자본에 길들여진 남편과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귀촌으로 부부가 함께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것만도 어디인가?
“나는 오늘도 들에서 냉이를 캐왔다. 시골에 살며 산나물 채취로 식사를 한다는 것, 육식을 덜 하고, 덜 소비하고, 덜 욕심부린다는 것, 이건 뿌듯한 일이다.”
한때 암과 싸웠다지? 고통이 극심할 때면 어떤 생각을 하나?
“암! 무서웠다. 자주 권정생 선생을 생각하며 힘을 얻었다. 지극히 병약했지만 엄격한 절제로 삶을 완성한 선생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는 성찰의 습관도 그에게서 얻어왔다.”
심지어 가뭄에 타들어가는 벼를 바라보면서도 가여워 눈물을 흘렸던 권정생. 그는 성자가 아니었을까.
“평생 병고에 시달렸지만 강하고 꼿꼿한 분이었다. 한번은 외투를 사다드렸더니 고사하더라. 이미 있는 외투 하나로 충분하다며. 스콧 니어링도 소유에 무심해 옷 한 벌로 살았다. 그러니 어떻게 배우지 않을 수 있을까.”
터무니없는 무욕으로 살았던 고수들을 무슨 수로 따를까.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게 인간이다.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나?
“돈은 먹고살 정도만 벌고, 삶을 놀이로 즐기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다르다. 일에 치여 산다. 속엔 답답한 게 많지만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겉으로는 웃는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갖고 산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나를 맞춰 살고 있으니 크게 어긋난 건 아니다.”
인생을 깊이 읽고 있다는 안도감. ‘나’를 진정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속에 산다는 확신. 귀촌의 나날을 선용하고 있다는 자부심. 속세에서 흔히 맛보기 어려운 감흥들로 김미자는 기쁜 것이다. 표정은 근엄하지만, 내부는 햇살로 밝아 바야흐로 인생의 봄날을 다시 만난 셈?
김미자 씨가 주는 귀농 Tip
시골에서 작은 서점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함부로 덤벼들 일은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성향 하나만 믿고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 인문학적 소양과 실력, 그리고 예술적 눈썰미를 미리 갖추는 게 중요하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서기 전에 까먹어도 무방할 정도의 소자본으로 도시에 작은 북카페를 차려 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 장소 선정도 매우 중요하다. 가급적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을 찾자.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나 명소 인근도 잘만 하면 유망하다.
동화 작가 권정생(1937~2007) 선생에겐 남이 없었다. 사람은 물론, 보잘것없는 쇠뜨기풀이나 강아지 똥조차 그에겐 남이 아니었다. 모든 존재를 남으로 바라보지 않았기에, 남의 일이라는 것도 없었다. 남의 일도 내 일로 알아 남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삼았다. 가뭄이 길었던 어느 여름날. 벌겋게 타들어가는 벼를 바라보던 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저것들이 얼마나 목마를까?” 그런 중얼거림이 새 나왔고. 이런 눈, 이런 연민, 이런 삶의 태도가 어떻게 가능할까.
머리맡에 두고 지내는 책이 있다. 국립수목원장을 역임한 신준환(동양대·64) 교수가 쓴 ‘다시, 나무를 보다’다. 책 속에 별처럼 반짝이는 게 있어 영롱한 책이다. 이 멍청이에게 평소 잘 보이지 않던 걸 보게 하는 눈을 달아주는 책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나무는 커갈수록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간다. 나중에 엄청난 크기로 자라면 엄청난 적막을 이겨야 한다. 이런 적막은 묘한 울림을 자아내어 바람을 조금도 느끼지 못해도 가지 끝은 우주의 율동을 감지한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도 그만큼 내려앉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가도 그만큼 떨린다. 고요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성찰의 힘이다.”
자랄수록 점점 커지는 적막의 무게를 이겨야 하는 나무의 고독을 말하고 있다. 가볍지 않은 사유의 궤적이 보인다. 우리는 모두 지독한 고독의 대가. 나무에 감정이입을 하더라도 ‘나’의 고독만 도려내 읽기 쉽다. 적막한 숲에서 홀로 견디는 나무의 무참한 고독에까지 마음이 닿기는 쉽지 않다. 더 흔치 않은 건 나뭇가지 하나에 내려앉은 우주의 기미를 보는 눈이다. 그러나 신준환은 보고 있지 않은가. 나뭇가지가 ‘우주의 율동’을 감지하는 걸.
한 걸음 더 들어가 그는 그 ‘우주의 율동’의 양상을 통찰한다. 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가는 짧은 순간에 나뭇가지가 지어 보이는 몸짓의 관찰을 통해서다. ‘새가 내려앉으면 그만큼 내려앉고, 새가 날아가도 그만큼 떨리는’ 가지, 즉 새와 가지가 만나는 사소한 물리적 동향을 우주적 조응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미 ‘우주적 율동’을 감지한 나뭇가지는 제 몸에 앉은 새 한 마리가 ‘남’이 아님을 자각하고 새가 날아갈 때 몸을 떤다. 새가 떠나며 남긴 티끌만 한 온기에 전율한다. 이렇게 새와 가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채는 신준환의 촉수가 환해 눈부시다. 그는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된 ‘우주 패밀리’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리고 그걸 읽어내는 유심한 눈길은 ‘성찰의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닐까.
‘다시, 나무를 보다’는 ‘성찰의 서(書)’다. 사물의 속을 보지 못한 채 수박 껍데기만 핥는 단세포로 살지 않을 수 있는 길을 귀띔하는 책이다. 부엌에서 숟가락을 들고 “이것은 숟가락이다!” 외치는 식의 빤한 허세를 깨라 권유해오는 책이다.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구미에 맞는 책 내용에 동해서. 마침내 몇 차례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뒤 마주앉게 되었다.
“책 곳곳에서 나무를 유심히 관찰하는 당신의 눈길이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현미경과 망원경까지 달린 눈을 보는 것처럼.”
“새로운 눈으로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지 못했던 것까지 볼 수 있는 과학적 관찰도 필요하다. 내가 미친놈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양 정색을 하고 달려들어 보지 않으면 내가 나를 볼 수 없다.”
“그렇게 ‘나’를 관찰했더니 무엇이 보이던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 보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깊어질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며 살았는데도 벗어날 수 없더라고. 온갖 책을 읽어도 우물 안 개구리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뭘 몰랐던 것이지. 인간이란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이후 생각의 전환이 있었겠다.”
“우물 안 개구리들끼리 연결돼 함께 살면 해결될 문제라는 걸 알았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는 방식에 변화가 왔지. 흔히 ‘나’ 안에 인간이 존재하는 걸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은 관계 속에 존재한다. ‘나’와 ‘너’ 사이에 인간이 존재한다. 부처나 예수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다. 인간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자 과거와 다른 새로운 관계 형성이 가능해지더군.”
근본적으로 남의 말 듣지 않는 인간
외적으로는 좋은 사이로 보여도 내적으로는 불화하는 게 사람 관계다. 삶의 괴로움은 주로 이 대목에서 나온다. 불화의 정직한 해소가 쉽지 않아서다.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기보다 상대를 타박하며 교정하려 든다. “네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찔렀지, 내가 먼저 살자 옆구리 콕콕 찔렀냐?”는 식으로. 닭싸움처럼 뒤엉길 수밖에 없다.
신준환도 40대 때까지는 사람 또는 세상과의 관계에 혼선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갈구해온 자유나 사랑에 이르는 길 역시 훤히 보이는 게 없어 조바심쳤던 것 같다.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그 문제부터 화급히 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 수학과 철학, 물리학과 생태학을 공부했고, 산림학자인 그의 믿을 만한 동행인 나무에 관한 유심한 탐구를 거듭했다. 그 일체의 몰입을 그는 ‘성찰’의 과정으로 본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극을 받는 동물일 뿐이다. 따라서 관계의 상위 하위가 성립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저마다 우위에 서서 상대를 끌고 가려 하지. 이래서는 안 된다. 직장 동료든 아내든 친구든 하나의 세계로 인정해야 한다. 극과 극으로 다른 존재까지 그 자체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선의를 베풀면 되는 거다. 이럴 때 사랑을 중심에 둔 ‘관계’가 이루어지며, ‘너’와 ‘나’가 분리되지 않는 소통, 즉 ‘관계의 춤’을 추게 된다.”
“약육강식을 근본 축으로 돌아가는 인간사에서 그게 가능하겠나?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利他)로 살기가 쉽겠느냐는 말이다.”
“‘정글의 원칙’이나 약육강식을 믿지 마라.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알려진 동식물의 세계만 보더라도 약탈을 일삼는 게 아니라 서로 싸안아 공존하는 걸 알 수 있다. 또 모두가 긴밀한 연결 관계 속에서 생명을 지속한다. 가령, 사자가 버펄로를 잡아먹는 건 학살이 아니라 숭고한 지속의 과정이거든. 사자는 버펄로를 먹어 제 새끼를 키우며, 사자는 죽어 풀을 기르는 거름이 되는 게 아닌가. 버펄로는 그 풀을 뜯어먹고 제 새끼를 기르고. 한마디로 너 없이는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는 세계. 모든 게 그 세계 안에서 움직인다.”
누군가가 죽어줘야 나의 삶이 지속된다는 거. 자연에서 나온 인간이지만 먹고살기 위해 자연을 약탈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는 거. 이걸 흔히 골치 아픈 딜레마로 여기지만 신준환은 다르게 본다. 관점을 넓히면 딜레마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거다.
“부분적으로 갈라놓고 보면 무엇에건 좋고 나쁨이 있다. 반면, 일체를 연결해 바라보면 모순이 사라지고 우주만 남는다. 자연스러운 연결망 안에 조화로운 생물다양성이 내재한 걸 알 수 있다. 그걸 아는 게 ‘이치’를 아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에 따르면, 아득한 신화의 시대엔 인간과 동물이 실질적으로 구분되지 않았거니와 의사소통도 했다고 한다. 현대의 인간들은 동물과 좋은 사이가 아니다. 고라니 문제에서 보듯이 전전긍긍을 일삼기도 한다. 동식물과 자연은 인간에게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 보는가?”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고 인류의 지성도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저 자연의 움직임에 개입돼 있을 뿐 자연을 보호할 자격을 갖지도 못했다. 자연은 자연대로의 이치를 따라 스스로 그러할 따름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게 인간인 한 지속가능한 자연을 위한 어떤 겸손한 실천은 있어야 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큰 차원에서 보면 지속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다. 시공간 개념을 넓게 잡을 경우 지금의 둥그런 지구가 네모나 세모로 바뀔 수도 있다. 자연보호나 지속가능 같은 걸 따질 거 없다. 나의 날숨과 들숨이 이미 자연계와 연결돼 있다는 걸 기억해 자연과 가급적 좋은 관계를 맺고 살면 그만이다.”
“소피아(sophia)라는 이름의 로봇이 있다.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너는 누구냐고 묻자 ‘환경오염으로 망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온 소피아’라고 농담으로 응수하더군. 인공지능(AI)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인간과 똑같은 AI가 출현할 것을 겁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공연한 걱정이다. AI와 인간의 합체는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변한다. 유인원이 변한 게 인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의 인류가 다른 존재로 다시 진화할 수도 있는 거거든. 그 진화의 모습이 AI 로봇으로 드러나더라도 이상하거나 두렵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인류가 매우 기이한 종이긴 하지만 기계인간에게 제자리를 내줄 만큼 자비로울까? AI 로봇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로봇과 쌈박질을 하다 깨져 멸종할 수는 있겠지.”
“인간이 지금 할일은 좋은 생각과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잘 살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돈을 주지 마라. 돈을 많이 가지면 칼 맞아 죽을 수 있거든. 돈 대신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면 된다. 그러자면 마음을 지금 당장 잘 닦아야 한다.”
‘관계의 춤’으로 마음 보살펴야
마음. 결국 마음의 문제에 닿았다. 마음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게 다시없어 마음을 중심에 놓으면 세상의 모든 풍진과 미래가 난적처럼 어렵게만 보이진 않는다. 신준환이 말하듯 마음을 잘 닦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놈은 걸레로 닦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마음은 놈팡이를 닮아 자주 몸 밖으로 튀어나가 길길이 날뛴다. 또 게다가 선가(禪家)의 전언에 따르면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다. 없는 마음을 무슨 수로 닦나?
“마음을 닦아 도통하기는 어쩌면 아주 쉽다. 문을 딱 닫아걸고 나 하나만을 집요하게 살피면 도통할 게 아닌가. 그러나 이런 식의 도통은 문을 열자마자 부서지기 쉽다. 사람과의 관계가 없는 도통은 무의미할 수 있다는 얘기지. 내가 생각하는 마음 닦기는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존재와 연결돼 추는 ‘관계의 춤’으로 마음을 보살피자는 의미이니까.”
“요즘 당신을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은?”
“가끔 손주들을 만나 놀며 감동과 즐거움을 느낀다. 녀석들이 내 마음까지 읽더라고. 마치 영리한 반려견처럼. 까만 눈망울은 아예 우주적 블랙홀이더라.(웃음) 나의 모든 게 빨려들어간다.”
“최근 관심사는?”
“사랑이라는 화두다. 가까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다가가고자 한다. ‘관계의 춤’을 통해 사랑을 확장하고 싶은 것이지. 그러나 몸과 삶으로 잘 풀어내지 못하고 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미안함을 느낀다. 아직 부족해서다.”
그가 다시 ‘관계의 춤’을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중과 사랑이 넘치는 유대를 통해 좋은 삶,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 관계의 춤. 예수의 어법으로 말하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겠고, 불가의 전언을 빌리자면 자리이타(自利利他)라,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바로 그런 공공선(公共善)을 지향하며 살자는 의미일 게다.
이는 새로울 게 없는 언설일 수 있다. 그러나 신준환에겐 남다른 게 있다. 그의 논지는 유창하게 우주까지 뻗어 있지만 거기엔 모호하게 드리워진 신비나 추상이 없다. 세상을 오랫동안 유심히 바라보고 공부를 해온 사람다운 통찰이 있다. 이미 실천으로 살아가는 사람 특유의 리얼리티가 있다. 그는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고 낮춘다. 어쩌나, 나 같은 석두는?
(권)정생 형, 이렇게 이름을 부르니 사무치는 그리움이 온몸으로 밀려옵니다. 그리고 윤동주가 자주 쓰던 부끄러움이라는 어휘도 호출됩니다. 부끄럽다는 것은 치기 어린 나의 문학청년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문학청년의 객기만 있었지 형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형은 천방지축인 나와 우리 패거리들을 너그러이 대하셨지요. 그때는 형이 그냥 맘씨 좋은 동네 형인 줄만 알았습니다. 돌이켜보니 5월이면 형이 가신 지 12주기가 되네요. 형은 살아서 하느님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셨으니 지금은 하느님 곁에 계시겠지요. 형을 처음 만난 것이 20대 초반이었는데 저도 지금은 머리가 허연 할배가 되었습니다. 문학청년 시절 육사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생 신분으로 안동문학회 막내 회원이 되었습니다. 문화회관 다방에서 모임이 있어서 기다리는데 검정 고무신에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다방의 깔끔한 장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지요. 돌이켜보니 형은 평생 그런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작가나 시인이라면 예술가의 풍모가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형은 들에서 일하다가 잠시 장 보러 나온 사람 같았습니다. 현란한 말솜씨도 없고 작가다운 면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네 형이었습니다. 게다가 시골 교회에 종지기로 있다고 하니 실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외양으로만 사람을 보는 덜떨어진 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살아 계실 때는 부끄러워서 이런 고백도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씁니다.
첫 동화집 ‘강아지 똥’의 출판기념회가 시내 큰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우리 패거리는 낮술에 취해서 교회에 갔습니다. 문학을 한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기행을 일삼던 시절이었습니다. 축가를 부르는 순서에 우리 패거리 가운데 군에서 갓 제대한 친구가 자청해서 앞으로 나가 군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입술만은 돼도 가슴만은 안 돼요.” 이런 민망스런 가사가 있는 노래였습니다. 형은 그런 우리에게 이렇다저렇다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안동을 떠난 뒤 오래 형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형을 다시 알게 된 것은 ‘녹색평론’에서 나온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전개되는 문장을 읽으며 성자라는 어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행하는, 이웃과 타자에 대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강아지 똥’, ‘몽실 언니’, ‘한티재 하늘’ 등의 동화를 읽으며 나는 형이 지구상에서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지어준 방 한 칸 부엌 한 칸 오두막에 김 서방이란 이름의 강아지와 사실 때 오두막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소면 한 줌 삶아 그릇에 담고 까만 간장 한 종지 내놓고 “밥 먹시더” 하시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하고 싶었습니다. 형은 집에 먹을 게 있는데 왜 식당에 가느냐면서 그냥 집에서 먹자고 했습니다. 나는 “식당에 안 가면 식당 하는 사람은 뭐 먹고 사니껴?”라고 협박을 했고 마지못해 따라나선 형과 근처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지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 화를 내신 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늘 취해 사는 병호 형이 오두막에 찾아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술이 떨어지면 술도 마시지 않는 형을 보고 술 사오라고 못살게 굴었다지요.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신 형이 한마디하신 것이 지인들 사이에 전설처럼 남아 있습니다. “귀신은 병호 안 잡아가고 뭐하노?”
그때까지 나는 형이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형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갑자기 하늘로 가신 뒤였습니다. 적지 않은 인세가 들어왔지만 모두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자신은 겨우 의식주만 해결하신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 일을 할 때라서 상주 노릇을 한 것은 형도 아실 것입니다. 장례식에서 유언장을 읽을 때 각 지역에서 먼길 마다하지 않고 오신 손님들이 모두 울었습니다.
“죽거든 화장해서 빌뱅이 언덕에 뿌려 달라. 앞으로 나올 인세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젊은 시절에 병을 얻어 결혼하지 않고 병과 더불어 사신 것을 알았기에 우리들의 슬픔이 더 컸습니다.
장례식 준비로 모인 우리들은 유언대로 할지 무덤을 만들지에 대해 오랜 논의를 하다가 유언을 어기기로 했습니다. 사시던 집도 교육용으로 남겨두고 집 뒤 빌뱅이 언덕에 소박한 무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른 유언은 모두 지켰지만 형의 정신을 길이 남기기 위해 그리했으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장례 후에 형의 방을 정리하던 윤환이 10억 원이 든 보통예금 통장을 찾았습니다. 통장을 들고 농협에 가서 왜 보통예금으로 했느냐고 따지자 농협 직원이 형이 그리하라고 해서 그리했다고 했습니다. 이자로 돈을 늘리는 것이 죄악이라고 여긴 형의 뜻을 알고 다시 숙연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장 멀리 있는 원수까지를 사랑하라는 불가사의한 사랑의 폭을 말씀하셨습니다. 형도 그러합니다.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셨지요. 그래서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새 옷도 사 입으시고 연애도 하시기 바랍니다.
권서각 시인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눈물반응’, ‘쥐뿔의 노래’, 산문집으로 ‘그르이 우에니껴?’, 논저로 ‘이육사 문학과 저항정신’ 등이 있다. 본명 권석창. 환갑 이후에 쥐뿔도 모른다는 의미로 서각(鼠角)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산중에 눈이 내린다. 폭설이다. 천지가 마주 붙어 눈보라에 휘감긴다. 어렵사리 차를 몰아 찾아든 산간 고샅엔 오두막 한 채. 대문도 울도 없다. 사람이 살 만한 최소치의 사이즈를 구현한 이 갸륵한 건물은 원시적이거나 전위적이다. 한눈에 집주인의 의도가 짚이는 집이다. 욕심일랑 산 아래 고이 내려놓고 검박하게 살리라, 그런 내심이 읽힌다. 대한성공회 윤정현 신부(64)의 집이다. 그가 이 산중으로 귀촌한 건 3년 전.
귀촌 초기, 윤 신부는 자그만 중고 컨테이너를 산기슭에 앉혀 거기에 살았다. 그러나 불편이 컸단다. 여름엔 찜통처럼 더웠고, 겨울엔 냉장고처럼 차가워서였다. 그래 용한 꾀를 냈다. 컨테이너 뒷면에 흙벽을 쌓고 지붕을 얹은 두 평 반짜리 골방 하나를 지어 붙였던 것. 말하자면 철제 건조물과 흙집이 한 몸으로 붙은 복합건축이다. 이 흔치 않은 오두막 한 채로 그의 주거는 완성에 도달했다. 더 이상 늘리거나 꾸밀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일종의 절경이 펼쳐진다. 컨테이너 공간은 서재로, 골방은 거실 겸 침실로 쓰는데, 그저 소소한 생활도구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책과 옷가지들, 다구와 식기, 전기장판과 이불 한 채. 이게 그가 깃들어 사는 집 내부를 이룬 사물의 거의 전부다. 그러니 절경!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한 사람의 지향과 실천이 완연히 비친다. 자칫 욕망 쪽으로 흘러가는 머리를 쓰는 대신 몸을 주로 써 수행을 닮은 생활을 하자는 게 그의 귀촌 푯대. 쾌활한 언사를 구사하는 이 단구(短軀)의 사제는 흙집을 혼자 지었다. 한 달 여에 걸친 신역으로.
“주변에 널린 돌과 흙을 퍼 나르는 걸로 일에 착수했어요. 비용은 별로 들질 않습디다. 창문과 출입문을 가져오며 고물상에 치른 돈이 36만 원, 장작난로 구입에 30만 원, 시멘트나 각목, 연장, 못을 사는 데 들어간 얼마간의 비용 등, 총 80만 원을 들여 지었어요. 흙집의 탁월한 단열 효과, 그거 참 놀랍더라고요. 초기의 불편이 일거에 해결됐죠. 화장실은 없지만 삽 한 자루 들고 숲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에요.(웃음) 욕실도 없지만 가끔 읍내 목욕탕엘 가서 때를 벗기죠. 식수는 계곡물을 끌어다 탱크에 받아 쓰고.”
그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 뒤 성공회대학교 사목신학연구원에서 사제 양성 과정을 밟아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여러 곳의 교회에서 사목활동을 했으며, 영국 버밍엄대학교로 유학을 가 신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귀촌 직전까진 청주 수동교회 관할 사제직을 맡았다. 성공회 사제의 정년은 65세. 그는 정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귀촌을 위한 휴직을 신청했으며, 이것으로 교회의 일은 사실상 마감되었다. 성공회 사제는 은퇴 뒤 자력으로 여생을 꾸려야 한다. 연금이라는 게 없으며, 거처도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예순 나이에 접어들 즈음 그의 마음은 자연으로 쏠렸다. 이미 손에 쥔 게 별로 없는 삶이었지만 더욱 소박한 쪽으로 생활을 바꾸고 싶었더란다. 해서, 득달같이 나서 귀촌을 단행했다.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행복하다
“평생 하느님을 섬기며 살고 있지만 제게는 정신의 스승이 한 분 계십니다.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1981년 작고)이죠.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에 능통했던 다석 선생께선 기독교와 불교, 유교와 도교를 조화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웅대한 사상체계를 정립했어요. 저는 다석의 혜안을 빌려 서구 신학적 관점이 아닌 동양 신학적 관점으로 성서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종교와 종파와 교리를 뛰어넘어, 모든 인류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다석 사상을 공부하면서였죠.”
“박사 논문 주제도 다석사상이죠? 다석은 정인보, 이광수와 함께 194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통했죠.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다 은퇴한 뒤에는 농사를 지으며 제자들을 가르쳤어요. 유 신부님의 귀촌은 다석의 행장에 영향을 받은 선택?”
“삶을 돌아보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항상 저를 이끌었다는 걸 알겠습디다.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뭔가의 힘 말이죠. 순리나 무위자연의 흐름일 수도 있겠지. 다석 선생의 가르침 역시 길잡이였죠. 선생께선 농사를 자주 권장했어요. 농사짓는 사람이 예수라는 말도 늘 했어요.”
“농사의 정신을, 땅에 땀을 쏟는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말한 거겠죠?”
“그렇죠. 귀촌을 해 몸을 쓰는 노동을 하며 이거 참 좋구나, 하는 느낌을 자주 경험합니다. 우선은 몸이 건강해져요. 정신도 맑아지고, 영성에 대한 각성도 하게 돼요. 현재 닭과 산양을 치고, 소규모의 농사를 짓지만 향후 영성공동체랄까, 자율공동체로 가꿔나갈 참이에요. 이미 집 둘레의 임야 1만 평을 확보해뒀어요. 저의 뜻에 공감한 산주(山主)께서 좋은 가격에 땅을 넘겨준 덕분이죠.”
“자율공동체엔 어떤 사람들이 모이죠?”
“누구나 다! 내 안의 영성을 일깨울 실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영성공동체의 뜻에 동감하는 사람이라면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든 함께 살아가야죠. 공동체 참여자는 이곳의 너른 산림 한 곳에 농막이나 움집을 짓고, 공동 생산을 해 함께 나누는 생활을 하게 될 겁니다.”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극장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인부들이 지렁이가 나오자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정성스레 지렁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준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감성이란 아마도 영성적 에너지일 게다. 생명 모두에 깃든 존귀함을 의식하는 자는 이미 자신 안의 영성을 일깨운 존재일 테지. 그러나 때 묻히지 않고 생존할 방법이 있던가. 살길을 찾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서야 안 되겠지만, 내 안의 영성을 유리그릇처럼 투명하게 닦는 일은 우리네의 관심사 자체가 못된다. 산야에서, 야생에서 담백한 생활을 지속할 경우엔 문제가 달라지나?
“영성생활이란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게 아닙니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일에서 벗어나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 상생하자는 것, 개인의 자족만이 아니라 사회변혁까지도 실천하며 살아가자는 것, 그런 걸 위해서는 영성 회복이 필요하다 보는 거예요. 모두들 물신주의에 사로잡혀 무한경쟁을 벌이는 세태에서 과연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빈부 양극화만 날로 심해지는 것을…. 저는 말이죠, 적게 가지고 적게 쓰는 쪽으로 마음을 두는 게 훨씬 현명하다고 봐요. 이기심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키우는 게 행복과 만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봐요. 초목들의 동향과 동물들의 삶을 통해 세상에 적용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야생이란, 일테면 교실 같은 곳이죠.”
세상의 광기와 아귀다툼이 침범 못할 적막한 산중. 거기에 오두막을 짓고 홀로 들어앉았으니 완전한 고립 속에 있는 것 같지만 그의 희망과 실천은 사방으로 활달하게 열려 있다. 에피쿠로스는 인생의 목적을 쾌락 추구에 두었다. 욕망을 채우는 쾌락이 아니라, 욕망을 비우는, 비워서 마음의 고통을 몰아내는, 마침내 평안과 안락의 상태에 접어들어 단순 담박한 생활을 하는 게 에피쿠로스의 ‘쾌락’이다. 윤 신부가 추진하는 공동체란 어쩌면 ‘에피쿠로스 스쿨’이겠지. 육체와 욕망,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서 벗어난 삶이 행복을 데려다준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생은 한바탕의 ‘소풍’
집 밖엔 한파가 맵차지만 골방은 훈훈하다. 난로 속에서 관솔 내음을 솔솔 풍기며 타는 소나무 장작불이 열을 뿜어서다. 창문가엔 벚꽃 잎처럼 분분히 내리는 눈 풍경. 집 뒤편 언덕배기 닭장에선 오골계들이 세찬 눈발을 피하고 있고, 산마루에선 산양들이 전설처럼 눈을 흠뻑 뒤집어쓴 채 양양하게 뛰논다. 윤 신부는 닭들에게서 계란을 얻는다. 산양의 젖을 짜 우유 대용으로 먹는다. 자급자족이 그의 목표다. 산 아래 농부들과 물물교환을 통해 부족한 양식은 보충해나갈 계획이다.
“점차 농사 규모를 키우고, 작목 수효도 늘려나갈 작정이에요. 귀촌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그간에 터를 다듬고, 연못을 만들어 연(蓮)을 심거나 잉어를 넣어 길러왔어요. 이 산림엔 원래 공동묘지가 있었어요. 그걸 용케도 거의 다 이장시켰죠. 무덤이 많아 산 아래 토착민들조차 무섭다며 아예 접근하길 꺼린 땅이었는데, 보시다시피 이젠 달라졌죠. 수시로 드나들며 찬탄합니다.”
“사제란 세상에 빛을 보태는 존재겠죠. 그런데 말이죠, 성직자들은 늘 옳은 얘기, 반듯한 말만 하지만 정작 실천과는 먼 경우가 많다는 게 중론이에요. 동화작가 고(故) 권정생 선생은 본인이 크리스천이었지만 차라리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더 나은 사회가 됐을 거라는 얘길 했죠.”
“예수님이 가르친 핵심은 간단합니다. 하느님을 네 몸처럼 섬겨라,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요약하면 그 두 가지예요. 그러나 종교인들의 노력이 부족해요. 수행을 일삼는 수도원에서조차 이기심의 충돌이 잦아요.”
성공회 사제에게 결혼은 금기가 아니다. 윤 신부의 처자는 먼 곳에 따로 산다. 아내는 김포에서 미혼모의 자녀들을 돌보는 쉼터를 운영한다. 아내가 곁에 없으니 주야간에 외기러기처럼 외로울 것 같지만, 서로 자유롭게 선택한 길을 존중하며 지내는 것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인생이란 한바탕의 소풍이에요. 소풍을 잘 즐기는 나그네의 짐은 가벼워요. 이전의 편리를 다 버린 귀촌생활의 불편이 사실 한둘이 아니지만, 거꾸로 사는 인생 같지만, 자유로운 나그네로 살기 위해선 세태를 거스를 수밖에 없어요. 세태의 물살에 무기력하게 떠밀린 채 비문명적 야생생활을 누리거나 무소유를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니까.”
“인생은 육십부터라고들 하죠. 이건 맞는 말일까?”
“중생(重生), 즉 영적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나 동기부여가 되는 구호이니 썩 긍정적인 명제가 아닐까.”
“돈이나 욕망을 앞세우지 않고서도 행복을 누릴 방도를 슬슬 찾기 시작하는 게 시니어죠. 무소유까지야 어렵겠고, 각자 주어진 현실 여건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다고 보나요?”
“돈·권력·명예를 나만을 위해 쓰지 않고 남도 덩달아 이로운 쪽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죠. 돈이란 잘 쓰면 사랑이 되고,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면 평화의 초석이 되죠. 명예 역시 정의롭게 사용하면 상생의 힘이 될 테고.”
“당신은 사제예요. 천국은 어떤 곳이죠? 사후엔 무엇이 오죠?”
“마음을 비우고 애착과 집착을 다 놓을 수 있다면 죽음이 두려울 리 없겠죠. 모든 하루를 최고의 날로 산다면, 내일 죽어도 진정 여한이 없을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하느님 나라, 천국을 사는 겁니다. 사후?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 누구도 다녀온 사람이 없으니.”
집착도 후회도 슬픔도 없는 인생이라면 이미 성자이겠지. 그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과 같겠지. 그러나 과욕과 과속으로 어긋나기 쉬운 게 오늘 하루. 눈 쏟아지는 하오의 귀로에 어둠살이 내린다. 삶을 돌아보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항상 저를 이끌었다는 걸 알겠습디다.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뭔가의 힘 말이죠.
박원식 소설가 >>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제주 올렛길 서명숙? 요즘은 언니가 대센가?'
서명숙의 버스 광고판을 보고 드는 생각이다. 누구나 채무 의식이 하나쯤은 있으리라. 저자 역시 미처 못 마친 나머지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실존 인물 이야기를 담담하게 펼친다. 성인이 된 이후의 시간이라 그 시절이 문자화하는 것이 도리어 낯설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이지만 필자에겐 아직도 생생한 시간이다.
주인공 천영초 이하 등장인물 모두를 실명으로 적는다. 삶의 옹이를 뽀삽 없이 풀어간다. 눈 가까이에서 대형 슬라이드를 보는 듯 훅~ 빠져들어 단숨에 읽어낸다. 권정생의 ‘몽실언니’와 비운의 공녀 ‘덕혜옹주’가 겹치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누구에게나 시대가 주는 과제가 있다. 두렵든 어리석든 최소한 기억은 해야 한다. 행동까지는 못 가고 비록 머리와 가슴에서 머물지라도. 어느 날 잊었던 묵은 숙제를 꺼내보며 철 지난 자기검열을 한다.
‘누군가에게 언니였던 적이 있었는지? 그때 나는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 무엇을 원하고 애썼는지?’
흑백 무성영화 속 초점 없는 종이인형이 떠오른다. 생각과 시간이 각을 맟추지 못하면 내내 맘이 불편하다. 마음은 하늘에 있고, 발아래의 나날이 여의치 않을 때 삶이 리얼해진다. 안팎이 불안한 20대를 같이 보낸 동시대인으로 미안함이 밀려온다. 때늦은 자기검열을 하니 불완전 연소된 것들이 함께 떠오른다. 방황했던 진로 고민, 미성숙한 그와의 관계, 자신에 대한 불만과 회의 등. 삶이 무거운 데는 이유가 있다. 간간한 자반을 먹은 듯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물이 당긴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내 마음은 아직도 제3자다. 링 밖 관람자로 있으려 하는 마음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상처나 실패보다 더 힘든 것은 망설임이다. 허둥대며 흘려보낸 시간이 가장 무거웠음을 이제는 안다. 남은 생을 이끌 용기를 스스로에게 갈구해본다.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온몸으로 겪어서 얻은 지혜도 있으리라. 문득 100세 시대가 고맙다.
수많은 영초언니와 이름 모를 언니와 오빠들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는 때늦은 인사를 보낸다. 이제는 모두 평안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