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향연처럼 즐길 수 있는 명소다. 물론 일부 다른 미술관들도 백남준의 작품을 여러 점, 또는 한두 점 소장하고 있다. 백남준 애호가들이 꽤 많은 것을 아는 미술관 운영자들은 백남준 특별관을 만드는 식으로 그의 작품을 예우한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생각하는 백남준은 어떤 인물일까?
“흔히 백남준을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라 부른다. 이는 어쩌면 좁은 범위의 관점이다. 그는 비디오아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탐구했던 작가다. 예술가이자 엔지니어에 그치지 않았다. 이미 생시에 철학자이자 사상가라는 평을 들었으니까. 그의 모토는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신념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광활한 다재와 박학다식으로 미래를 읽어 비디오아트를 선구적으로 창작, 시대의 전위에 섰던 셈이다.”
백남준의 작품을 한결 옹골차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만약 백남준이 아직 살아 있다면 오늘날의 미디어, 가령 유튜브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는 아무래도 더 재미있게, 더 기발하게 매체를 운영했을 테니까.”
1974년에 그는 ‘전자 초고속도로’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일찌감치 인터넷 세상이 도래할 걸 예견했던 걸까? 그렇다면 놀라운 예지력이다.
“이미 1960년대 말에 ‘모두가 아마추어 방송국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오늘날의 유튜브를 미리 예상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백남준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
“세상과 사람을 무척 사랑했다. 특히 사람들에게 다정한 면모를 수시로 드러냈다. 그의 작업 특성상 협업이 필요했는데, 협업자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전시 작품 가운데 단 한 점을 꼽아 관람을 권유한다면?
“굳이 꼽자면 ‘TV정원’이다. 자연에 예술을 접목한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이 지구의 생태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인공정원에 배치된 비디오아트로 인해 식물들은 더 생기를 띤다. 나무들의 초록 입자들이 비디오아트와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게 아닌가. 이 작품을 외국에서는 화분 위에 배치했다. 정원 형태의 화단을 조성한 건 우리 미술관이 유일하다.”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무슨 의미였을까?
“액면 그대로 예술이 사기라고 생각했을 리가. 예술의 힘에 대한 믿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촌철살인의 발언으로 해석하고 싶다. 백남준이 기상천외한 유머를 즐겨 구사했음을 고려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예술은 사기다’라는 발언을 두고 해석이 실로 분분했다. 그런데 그 발언 15년 뒤 백남준은 이렇게 밝혔다. “나를 포함한 예술가들이 눈속임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말한 사기라는 건 에고의 예술을 말한다. 나는 폼 잡는 예술은 하고 싶지 않다.” 결국 ‘예술은 사기’라는 극언은 치열한 자기검열의 언어였던 셈이다.
김성은이 공연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무대 안팎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내가 스텔라의 남편이요”라고 외치는 남자가 있다. 바로 그녀의 이탈리아 남편 카를로다. 대기실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예쁘다는 의미의 “Bella Bella”를 연발한다. 소프라노 Stella Kim 김성은의 목소리만큼 아름답고 특별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들여다봤다.
현재 유럽에서 프리마돈나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소프라노 Stella Kim의 한국명은 김성은이다.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극장에서 동양인 최초로 오페라 의 주인공인 질다 역을 멋지게 열연해서 유럽 현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스페인 비냐스 국제콩쿠르,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콩쿠르, 이탈리아 토티 달 몬테 국제콩쿠르, 스페인 아라갈 국제콩쿠르 등 유명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다.
스페인 황실 신년음악회에서는 플라시도 도밍고와 협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예술의전당에서 김성은 초청독창회가 음악평론가들과 애호가들의 찬사 속에 끝났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량 이봉규도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독특한 음색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김성은 공연을 놓칠 리가 만무하다. 그날 무대에서 뿜어내는 그녀만의 오묘하면서 섹시한 타고난 천상의 목소리를 접하고는 그녀가 왜 유럽에서 그토록 주목을 받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맑고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
나는 그동안 수많은 소프라노 공연을 국내외에서 감상했지만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목소리의 차이를 선명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저 고음의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들이 음색에 따라 각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점은 느꼈지만 이렇게 확연한 차이를 느껴보기는 김성은이 처음이다.
대중가요 가수로 말하자면, 전통적인 여가수들과 심수봉 목소리의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재즈 가수로 말하면 루이 암스트롱의 독특한 음색이 다른 재즈 가수들과 확연하게 다른 것처럼, 김성은의 목에서 흐느끼듯 터져 나오는 음색은 가히 독보적이다.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목소리다. 물론 비전문가로서 음악을 그저 즐기기만 했던 한량 이봉규의 평가이기에 음악평론가들이 내 글을 읽으면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즐겼던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느낀 점이다.
요즘은 문화평론가들이 정치평론을 하고 변호사나 의사들도 너도나도 TV에 나와 정치평론을 해대는 자유로운 세상이기에 나도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와의 운명적 만남
아름다운 프리마돈나를 사로잡은 사람은 아홉 살 연상의 이탈리아 심리상담사(psychology counselor) 카를로다. 올해로 벌써 결혼 20년 차. 그와의 인연도 오페라가 맺어주었다. 오페라 정극의 주인공을 뽑는 콩쿠르에서 1등(주역)에 뽑혀 이탈리아의 트레비조에서 40일간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에게 방을 내준 집주인이 카를로다. 당시에는 남자로 보이기보다는 거처할 집을 내준 키다리 아저씨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 후 약간의 세월이 흘러 다음번 이탈리아 공연 때 만났는데 카를로의 식구들이 따뜻하게 대해줘 강한 인상이 남았다. 인연이 되려니까 하늘도 도왔는지 이탈리아 공연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만날 기회도 늘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가 4년쯤 무르익어갈 무렵 그녀의 어머니가 이탈리아를 방문했는데 카를로의 인간미에 반해버렸다.
“왜 결혼 안 하냐? 카를로와 결혼하든지, 아니면 지금 깔끔하게 헤어져라!” 하고 압박을 해온 것이 결정적으로 통해 트레비조 대성당에서 1997년 결혼했다. 당시 김성은과 카를로의 결혼은 이탈리아에서 화제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남자와 동양인 프리마돈나의 결혼은 당시로서는 이탈리아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국제결혼의 장점을 물으니, “국제결혼 이전에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한 것이고, 이탈리아 남자와 한국 여자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결혼한 지 20년 됐고 이탈리아에서 생활한 지도 그 이상 되기 때문에 김성은은 국제결혼의 실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공연을 위해 가끔 한국에 오면 낯설고 어색할 때가 많단다. 이탈리아에도 고부간의 갈등이 있겠지만 시어머니는 그녀를 아주 사랑하고 예쁘게 봐준다. 외국 며느리라서 봐주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존경받는 오페라 가수가 내 며느리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서 그런 것 아닐까.
이탈리아도 점을 많이 본다니 놀랍다. 카를로가 김성은을 만나기 전 브라질 여의사와 사귀고 있을 때 점을 보았는데 점쟁이 왈 “너는 동양 여자랑 결혼한다”고 했단다. 카를로는 그 소리를 듣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그 후 그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고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동양 여인 김성은이 나타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콩깍지가 씌면 아무거나 마구 갖다 붙이면서 운명론자가 되어버리는 경향은 이탈리아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동양계의 귀하고 아름다운 프리마돈나의 마음을 훔치려고 지어낸 말인지 진실인지는 카를로만이 알 것이다. 카를로의 직업이 심리상담사이기에 합리적인 의심은 들지만 이 정도로 넘어가자!
‘범생’ 남편과의 찰떡궁합
프리마돈나라고 해서 한량 이봉규가 우아한 질문만 하고 보내줄 리가 없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데…”라는 도발적 말에 그녀는 웃으면서 “내 남편은 삼식이”란다.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범생이’라서 바람피울 줄도 모를걸요?” 남편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그 말을 믿어야지 어쩌겠나? 김성은이 공연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무대 안팎에서 호들갑 떨면서 “내가 스텔라의 남편이요”라고 외친단다. 대기실에 찾아와서는 이탈리아어로 예쁘다는 의미의 “Bella Bella”를 연발한다. 이탈리아에도 팔불출이 있기는 매한가지.
심지어 아내의 노래를 CD로 들을 때도 눈물을 펑펑 쏟는다고 하니 아까 김성은이 한 말을 믿기로 했다. 두 사람은 부부싸움을 할 때도 여느 부부와 다르다고 한다. 김성은이 “너는 왜 코가 삐뚤어졌니?” 하고 남편에게 시비를 걸면 카를로는 “너는 왜 코가 납작하니” 하며 응수한단다.
이탈리아 남자들의 코가 중간에 약간 휘어진 것을 지적하면서 놀리면 한국 여자들의 납작한 코를 얘기하며 맞받아친다고 하니 유치한 사랑싸움의 극치다. 그만큼 다정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말로 들렸다. 결혼생활이 오래되고 느긋해서 그런지 카를로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10년 살고 바꿔야 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더니, 이제는 “뭐든 다 해줄 수 있으니까 제발 이혼만 요구하지 마라!”고 어리광을 핀다고 한다.
그녀는 공연 등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도 다 이해해주면서 외조를 해주는 카를로가 늘 고맙다. 이탈리아 남자와 한국 남자의 차이를 묻자 “이탈리아 남자들은 가족 구성원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각자의 중요하고 개별적인 사생활을 존중해준다. 그렇게 자유를 얻는 대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 남자들은 권위적이긴 하지만 모든 책임을 감수한다. 간혹 힘들고 귀찮을 때는 한국 남자 같은 스타일에 의지하고픈 마음도 든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다시 태어나도 이 남자랑?
“다시 태어나도 이탈리아 남자랑 결혼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한국 남자랑 안 살아봐서 다음 생에는 꼭 한국 남자랑 살아보고 싶다”며 깔깔대고 웃는다. 그런데 그 눈가에 진심이 묻어나온다. 20년 넘게 이탈리아 남자와 외국에서 생활했으니 고국이 그리웠을 것 같다. 또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남자와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도 슬쩍 해봤으리라.
완벽한 결혼생활이 어디 있으랴. 김성은은 지금 행복하기에 다음 생의 바람을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만약 행복하지 않으면 당장 이혼하고 보따리 싸서 한국으로 날아올 것 같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한량 이봉규는 간파했다. 승부욕이 강하고 처절한 노력 끝에 유럽에서 성공한 프리마돈나가 되었는데 싫은 결혼을 참으면서 살 김성은이 아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지금 나름대로 만족한 결혼생활과 이탈리아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12세의 딸 알레그라의 사진을 보여준다. 기가 막히게 예쁘게 생겼다. 알레그라를 성악가로 키우고 싶은데 엄마를 안 닮아 노래를 못한다며 아쉬워한다. 그런데 펜싱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딸이 이탈리아 3개 도(道)의 12세 펜싱대회에서 2등을 했단다.
“제2의 김연아를 기대해보라! 얼굴도 예쁘니까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순간 세계적인 대스타가 될 것”이라고 부추기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프리마돈나 김성은도 별 수 없이 자식바보다. 52세의 소프라노는 대체로 은퇴할 나이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지금이 전성기다. 그 원동력은 가족의 사랑이 아닐까? 그녀는 말을 할 때도 마치 노래하는 것 같다. 고음의 목소리로 흥얼거린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오페라를 감상하는 느낌이어서 행복했다.
“이제 배우로서의 삶과 더불어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났습니다. 예쁘게 잘 살겠습니다.” 스타 배우 김하늘(38)이 3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 살 연하의 사업가와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한 말이다. “평생 존중하며 사랑하고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닌 ‘우리’를 위한 인생을 위해 살겠습니다.” 가수 가희(36)도 3월 26일 세 살 연상의 사업가 양준무씨와 미국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처럼 올해 들어 여자 스타들이 속속 결혼하고 있다. 탤런트 김유미(37)는 두 살 연하 배우 정우와 1월 16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결혼했다. 걸그룹 핑클 출신 연기자 이진(36)은 2월 20일 미국 하와이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여섯 살 연상의 미국 교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탤런트 황정음(31)은 2월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세 살 연상 프로골퍼 출신의 사업가 이영돈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또한, 스타 연기자 김정은(40)은 4월 29일 금융업에 종사하는 동갑내기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걸그룹 쥬얼리 출신 연기자 박정아(35)는 5월 15일 두 살 연하의 프로골퍼 전상우와 부부의 연을 맺을 계획이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시선을 모은다. 그중에서도 여자 스타의 웨딩드레스, 결혼사진, 신혼여행지, 결혼식 장소와 형태 등 결혼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높은 관심을 끈다. 오죽했으면 ‘여자 스타 결혼식은 스타 마케팅의 종합전시장’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여자 연예인의 배우자는 대중의 관심을 넘어 사회적인 화제가 된다. 한류가 거세지면서 우리 스타의 결혼은 외국 언론의 주요한 기사 아이템이 됐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식은 일반인의 소비와 라이프 트렌드를 이끌고 배우자관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그동안 여자 스타의 배우자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연예인 역시 일반인처럼 결혼 배우자가 매우 다양하지만,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위상의 변화와 함께 여자 연예인의 결혼 상대자도 크게 달라졌다.
대중문화 초창기였던 1900~1950년대에는 유교적 인식이 엄존해 연예인들의 사회적 위상이 낮았고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았다. 1900~1950년대 대중문화 초창기에는 여자 연예인과 일반인 결혼이 많았다. 또한, 백설희-황해, 전옥-강홍식, 황금심-고복수 커플처럼 상당히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동료 남자 연예인과 결혼했다.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고 TV 등 매스미디어가 본격 등장한 1960~1970년대에는 여자 스타의 배우자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스타들의 우상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 시기에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 상대는 매우 다양해졌다. 특히, 이 시기 눈길을 끈 것은 여자 스타와 재벌 혹은 중견기업 오너와의 결혼이었다.
영화배우 문희는 1971년 당시 한국일보 부사장이었던 故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과 결혼했고 영화배우 안인숙은 1975년 미도파백화점 사장이었던 대농그룹 박영일 전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또한, 펄시스터즈의 배인순은 1976년 최원석 동아그룹 전 회장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과 결혼한 스타 정윤희를 비롯해 황신혜, 고현정, 김희애, 김성령, 이요원, 최정윤, 박주미 등 여자 스타들이 재벌 혹은 중견기업 대표와 결혼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결혼했다 이혼한 고현정은 “결혼 당시 많은 사람이 재벌과의 만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됐고 사랑해 결혼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재벌이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일부 여자 연예인들이 재미교포 등 외국 교포와 결혼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물론 엄앵란-신성일, 윤복희-남진, 김지미-나훈아 커플처럼 동료 연예인끼리의 결혼 역시 성행했다.
대중문화 시장이 급성장하고 대학생이나 대학 졸업자의 연예계 진출이 두드러진 1980년대에는 연예인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이 시기 관심을 끈 여자 연예인의 배우자는 연예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결혼 후에도 연예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송사 PD, 영화감독 등 대중문화 분야 종사자였다. 원미경은 1987년 MBC 이창순 PD와, 양미경은 1988년 KBS 허성룡 PD와 결혼했다. 임예진 역시 드라마PD 최창욱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근래 들어서도 박성미-강제규 영화감독, 문소리-장준환 영화감독, 김민-이지호 영화감독처럼 여자 연기자와 영화감독의 결혼이 이어졌다.
원미경은 “결혼 후에도 연기를 계속하고 싶었어요. 연예계가 일반 직장과 성격이 크게 달라 배우자는 연예분야를 알았으면 했어요. (남편이) 드라마 PD라 연애할 때도 결혼 후에도 저를 많이 이해해주고 격려해줘요”라고 말했다.
대중매체가 급증하고 연예산업이 산업적 기틀을 갖추어 스타가 엄청난 이윤을 창출하는 주체로 떠오른 1990년대부터는 연예인을 발굴하고 육성, 관리하는 연예 기획사가 스타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연예 기획사 대표와 연예인의 결혼이 흔치 않은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1998년 가수 양수경과 예당컴퍼니 변두섭 회장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배우 신은경-김정수 커플처럼 1990년대부터는 연예기획사 대표, 연예인 매니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많아졌다.
또한, 1980년대 최미나-허정무, 최란-이충희 커플처럼 스포츠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이 등장하기 시작해 1990년대부터는 스포츠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연예인이 급증했다. 톱스타 최진실이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과 결혼한 것을 비롯해 이혜원-안정환, 김성은-정조국, 슈-임효성, 한혜진-기성용, 유하나-이용규 등이 여자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커플의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에는 여자 스타의 배우자 중 가장 많은 것이 연예인이다. 하희라는 1993년 최수종과 결혼했고, 신애라는 1995년 연기자 차인표를 배우자로 맞았다. 이후 유호정-이재룡, 채시라-김태욱, 고소영-장동건, 유진-기태영, 이효리-이상순, 원빈-이나영 커플처럼 수많은 여자 스타들이 동료 연예인과 결혼했다.
신애라는 “같은 드라마 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 연예계에서는 작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료 연예인과 사귀고 결혼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시선을 모은 스타 결혼식 중 하나가 최명길의 경우이다. 1995년 정치인 김한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후 흔치 않지만, 여자 연예인과 정치인의 결혼이 간간이 이어졌다. 심은하-지상욱, 황혜영-김경록 커플이 여자 연예인과 정치인의 만남으로 관심이 쏠렸다.
연예인이 청소년들의 직업 1순위로 부상하고 대중문화 산업이 만개한 2000년대 들어서는 여자 스타들의 배우자는 전문직 종사자에서부터 사업가, 스포츠 스타, 동료 연예인, 일반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졌다
염정아-정형외과 의사 허일, 한지혜-서울지검 검사 정혁준, 전도연-사업가 강시규, 이영애-사업가 정호영, 소유진-요식업 사업가 백종원, 차수연-연예기획사 판타지오 대표 나병준, 전지현-금융업 종사자 최준혁, 한혜진-프로축구선수 기성용, 김지우-셰프 레이먼 킴 커플에서 보듯 최근 들어서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 배우자의 스펙트럼은 사업가에서부터 전문직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어졌다.
2000년대 들어 한류가 거세지면서 외국 스타와 결혼하는 여자 스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해 등 중국 드라마에 출연한 채림은 2014년 중국 배우 가오쯔치(高梓淇)와 결혼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에서 드라마 회당 출연료로 1억원을 받는 스타로 부상한 추자현도 최근 올해 중국 배우 위쇼우광과 결혼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추자현은 예비신랑 위쇼우광(于曉光)에 대해 “힘들고 지칠 때 힘이 되어주고 연기자로서 발전을 도와주는 동료이자 연인이다. 중국인이라는 점이 결혼을 결정할 때 장애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여자 스타들의 결혼 배우자는 시대 상황과 연예인에 대한 인식과 위상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또한, 과거에는 여자 스타들이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하거나 인기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대부분의 여자 스타들이 결혼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제 결혼은 여배우의 인기의 무덤이 아니라 인기 상승 기폭제 역할까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