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는 모든 게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한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대 자녀, 혹은 회사의 막내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오래되고 낡은 것 등 한때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겨지던 중고 거래가 매력적인 쇼핑 창구이자 쏠쏠한 재테크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의 손을 탄 물건이라는 인식 때문에 알음알음 이용되곤 했지만, 최근 ‘N차 신상’(여러 차례 거래되더라도 신상품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나면서 이색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시즌이 바뀔 때마다 ‘신상’을 외치던 백화점조차 중고 거래소를 들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신상보다 개성·희소성
요즘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 거래 플랫폼이 MZ세대 사이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앱으로 꼽힌다. 그만큼 중고 거래 열풍이 뜨겁다. 지난해 3월 보험 관리 플랫폼 굿리치가 2030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3%가 중고 거래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 10명 중 8명이 중고 거래를 해본 셈이다.
이 같은 인기 요인으로 MZ세대만의 가치관이 중고 거래의 성격과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란 MZ세대는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취향을 탐색하는 데 거침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구매력을 따져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원하는 것은 많지만 잔고가 허락되지 않는 이들이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행위는 지지리 궁상이 아닌 ‘가심비’ 높은 선택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고 명품’ 거래가 활발하다.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턴백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20대 여성 절반 이상이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고 1년 이내 되파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온전한 소유보다는 순간의 경험과 개성 표현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희소성 높은 한정판 상품을 웃돈 붙여 사고파는 ‘리셀’(Resell)도 시장에서 막대한 거래액을 차지하고 있다. 나이키 등에서 선착순이나 래플(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출시하는 한정판 운동화가 대표적인 품목이다. 대부분 출시와 동시에 품절대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평균 10만~20만 원을 웃돌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시중에 풀린 수량이 적을수록 가치가 급등한다. 이에 운동화 마니아뿐 아니라 재테크를 목적으로 구매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도 많다.
한정판 모아놓은 ‘리셀숍’ 인기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위치한 브그즈트랩(BGZT랩)은 이 같은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 열풍을 타고 새롭게 떠오른 핫플레이스다. 번개장터에서 선보인 국내 최대 오프라인 리셀숍으로, 한정판 운동화를 전시·판매하는 곳이다.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1000명에 달해 입장을 위해 줄을 설 정도지만,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300여 종의 운동화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휘황찬란한 운동화로 가득 찬 벽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16족의 한정판 운동화를 모아놓은 ‘스니커즈 월’이다. 이곳에 자리한 운동화의 평균 가격은 약 150만 원. 바로 옆 ‘포디움 존’에는 국내에서 가장 희귀한 12켤레의 인기 운동화가 전시돼 있다. ‘나이키 덩크 SB 로우 스테이플 NYC 피존’(시세 약 7000만 원), ‘나이키 에어 조던1 하이 OG 디올’(시세 약 1250만 원) 등 자동차 한 대 가격을 호가하는 제품들이다. 가격은 신발 바닥에 부착된 QR코드로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한쪽에 마련된 ‘커뮤니티 존’이다. 한정판 스니커즈 전시 존과는 별도로, 중고물품 판매자가 물건을 로커에 넣어놓으면 구매자가 픽업해 갈 수 있는 곳이다. 번개장터 앱의 핵심 기능인 개인 간 중고 거래를 오프라인으로 끌어온 것이다.
곽호영 번개장터 패션·라이프스타일 사업팀장은 “이제는 구하기 힘든 물건을 찾거나 취향을 탐색하는 차원으로 중고 거래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며 “안전하고 편리한 거래 환경이 마련될수록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문물 더 알아보기
한정판 스니커즈는 어디서 들여오나? 주로 국내외 개인 컬렉터를 수소문하거나 비딩으로 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이키 슈크림 SB 덩크 로우 화이트 시멘트’를 가장 어렵게 소싱했다. 2002년 500족 한정판으로 발매된 제품인데, 출시한 지 19년이 지나 손상·변색된 것들이 많았다. 상태가 양호한 제품을 찾기 위해 세 달 넘게 비딩하고 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가치가 급등하는 스니커즈의 특징은?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나이키 ‘마스야드’는 지드래곤의 착용으로 화제가 되면서 가치가 높아졌다. 또 아디다스와 파트너십을 맺은 카녜이 웨스트가 과거 나이키와 협업한 ‘에어 이지’는 앞으로 나올 수 없는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점에서 그 희소성을 인정받았다.
가격이 결정되는 기준은? 대부분 가장 최근 거래된 가격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브그즈트랩은 국내외 각종 플랫폼의 한정판 스니커즈 거래 시세를 반영해 일주일 단위로 가격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도움 곽호영 번개장터 패션·라이프스타일 사업팀장
모두들 제 갈 곳으로 나간 후의 현관에 서서 이리저리 흩어진 신발들을 정리한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네 명이건만 좁은 현관에 신발들이 가득 차 있으니 볼 때마다 정리하지 않으면 가히 잔칫집 현관이다. 특히 작은아들은 매일 입는 옷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신발 때문에 갖가지 구두와 운동화들이 현관과 신발장으로 들락인다. 내가 현관 신발정리를 자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다행히 큰아이는 한두 켤레로 해결되기에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남편의 신발이 하나 더 늘었다. 출근할 때 신는 구두 두세 켤레와 운동이나 산책 나갈 때 신는 운동화가 전부였는데 낡아서 바꾸자 해놓고 미루고 미루다 최근 새 운동화를 샀다. 헌것은 버리자 했더니 비가 올 때 질척한 산길을 걸을 때 딱이라며 그냥 두라고 한다. 새로 장만한 운동화가 현관에 얌전히 놓여 있다.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애잔하다.
새 운동화가 마음에 드는지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신고 다닌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작은아들은 패션에 따라 바꿔 신는 고가의 운동화와 구두가 신발장에 넘쳐난다. 그런데 아들 운동화 반값도 안 되는 운동화 하나 겨우 사 신고 좋아라 하는 것이다. 물욕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남편은 물건을 살 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어야 구입한다. 본인을 위한 지출은 여간해서 하질 않는다. 그래서 가끔씩 답답할 때도 있는데 그 모습에서 가장의 무게도 느껴지고 그럴 때마다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남편의 양복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경기가 좋으면 아이들 옷, 자기 옷, 애견용품, 그다음으로 남편 옷을 산다는 내용이 있었다. 가장이라는 존재는 가족들을 뒷받침해주는 넉넉함이 DNA로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염치없이 해본다. 한 가정의 우선순위에서 스스로 밀려난 이 땅의 남편들이다. 그 가장의 모습을 오늘 아침 남편의 운동화에서 본다.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손관승(58) 전 iMBC 대표를 만났다. 전 MBC 베를린 특파원, 전 iMBC 대표이사,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온 그는 여러 개의 호칭을 갖고 있다. 스스로 부여한 현업(業)은 스토리 노마드, 즉 이야기 유목민이다. 강의와 강연, 기고와 저술을 하는 삶이다. 전반전은 수치와 가치를 추구한 2치의 삶이었다면 후반전은 브런치, 맘대로 시간을 쓰고 배울 수 있는 사치,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한발 먼저 호흡해야 하는 눈치, 3치의 삶이란다. 그의 3치의 삶에 1치를 덧붙이고 싶다. 재치! 고전의 인용과 고급 유머의 재치를 적재적소 활용하는 활용하는 그에게선 자유인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그는 거듭되는 사진 촬영 포즈 요청에도 ‘Sure’, ‘OK’를 연발하며 경쾌하게 응했다. 또 ‘흑모백모(黑毛白毛) 가리지 않고 아쉬운 중년의 머리숱이니 정수리 부분의 사진 촬영은 피해 달라’는 유머로 분위기를 경쾌하게 띄웠다. 퇴직 후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른바 전직의 ‘잉크’가 쏙 빠진 티가 역력했다.
메고 오신 백팩의 끈이 ‘나달나달’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닳았습니다. 바꾸지 않고 사용하시는 사연이 있으신지요.
“독일 속담에 ‘가방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퇴직할 때 직원들이 선물해준 것입니다. ‘그간 고생했으니 새로운 설레는 이야기를 담아 가져와달라’는 당부를 담아서요.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제가 일생 뜨겁게 일하던 열정, 후배와 동료들이 준 사랑 등 과거와 미래가 함께 담긴 가보예요. 그 직원들의 바람과 기대를 생각하면 열심히 뛰게 되지요. 중요한 자리에도 가능한 한 이 가방을 메고 간답니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빈티’ 가방을 ‘빈티지’ 가방으로 보면서 감동받더군요. 이 백팩과 운동화는 스토리 노마드로서의 프로 의식과 현장 의식을 잊지 않겠다, 허례허식을 버리겠다는 제 다짐이 담긴 인생 2막 필수 장비(?)입니다.”
퇴직 후 많은 사람이 조직의 후광, 즉 타이틀이 없어지는 상황에 멘붕이 되시더군요. 선생께선 어떠셨습니까.
“타이틀 앞에 전(前), ex라는 말이 붙는 것보다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죽어라 하고 치달린 인생이 A4 용지 발령장 하나로 흔들리지요. 자기 인생을 찾으려면 명함의 타이틀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과거는 선용 하면 자산이지만, 매달려 있으면 부채입니다. ‘내가 누군데’ 하며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실패합니다. 허세를 빼야 실세가 됩니다(허허). ex를 잊어야, 인생 전반전에서 exit해야 인생 후반전 진입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예전 CEO를 할 때도 늘 엑시트 플랜이 없는 프로젝트는 결재 보류했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직업에서 20년 이상 일했으면 나중에 어떻게 엑시트할지 상정해놓는 게 필요합니다.”
그는 “경영자는 수치(數値)가 나쁘면 수치(羞恥)를 당한다. 최고의 수치는 강판당하는 것, 그만두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경영자 시절 “매일 주가, 실적, 매출, 수익 등의 수치와 싸워야 했다”며 “나쁜 수치는 강판을 시키지만, 좋은 수치가 자리를 보호해주지는 않는 게 현실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그늘조차 위트를 담아 말하는 모습이 스토리 노마드다웠다.
조직에 있으면서 출구 전략을 미리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뭘 원하는지, 잘하는지 자신과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세월과 나이가 저절로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퇴직을 속절없이 당하느냐, 의지를 갖고 맞이하느냐는 차이가 큽니다. 코앞의 일이 급하다고 미루다 보면 늦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왔어도 자신과의 대화를 갖지 못한 사람은 퇴직 때 자괴감과 혼란을 느끼기 쉽습니다.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갑자기 멈추면 더 위험하고 부상도 크게 당하지 않습니까. 준비 없이 갑자기 조직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이 그와 같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책 없는 ‘퇴직’과 대책을 생각해둔 퇴직은 많이 다릅니다.”
그는 “지금의 50플러스 세대는 물심양면에서 퇴직 이후가 가장 준비되지 않은, 낀 세대”라며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대충 해도 잘살았어 하며 퇴직 이후를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선생께선 2013년 퇴직 후 괴테의 궤적을 따라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셨지요.
“과거에는 일에 미쳤지만, 이젠 한량이 되어 내가 미칠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심리스(seamless), 말 그대로 30년을 재봉틀 박음질하듯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에 완전 지쳤다고나 할까요. 번아웃(burn out)된 내 인생에 갭 이어(gap year), 안식년을 줘야겠다는 절박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혹자는 ‘먹고살 만한 게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어요. 대학 다니는 애들도 둘이나 있고요. 독일 여행 버킷리스트에 도전하느라 새 자리와 기회, 제안 등을 놓쳤지요. 하지만 리스크 없는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일, 내일’ 하며 미루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다 보면 ‘매일 책임질 일’은 계속 이어지고 평생 헤어나오질 못해요. 여행을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이 자유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요.”
그의 여행 궤적은 이라는 책으로 나왔고, 마법처럼 제2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퇴직 후 일반적 설계는 크게 버킷리스트의 로망형, 생활형 구직으로 크게 나뉘는데요. 각각의 유형에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인지요.
“첫째도 둘째도 자기탐색입니다. 버킷리스트를 남, 책, 영화에서 나온 대로 따라 하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맞춤 프로그램을 세워야 합니다. 속절없이 시간보내기를 하면 후회합니다. 계획을 세웠으면 도전해야 합니다. 못할 이유를 찾으면 백 가지도 더 나오게 마련입니다. 또 조급한 구직 역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더 갈증이 나는 이치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오랫동안 일할 커리어 로드맵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프리랜서로 2막을 시작하신 지 이제 3년 차에 접어드셨지요. 전반전과 후반전의 룰은 무엇이 다릅니까.
“인생 전반전은 남이 정해진 룰을 익히는 타율의 적응학습이라면, 후반전은 자기주도 학습이에요. 전반전이 패키지여행이라면 후반전은 자유여행이에요. 당연히 전술과 전략이 달라야 해요. 남이 보기 좋은 옷이 아니라 내게 어울리는 옷, 내게 맞는 신발을 고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요. 남의 답안지 훔쳐보면서 인생을 허비할 시간이 이젠 없어요. 또 주인공에서 벗어나 조연, 심지어는 카메오 역할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관점을 전환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다스리면 됩니다. 그러다 가끔 주인공 역할 맡게 되면 또 감사한 것이고요.”
인생 전반전은 앞서가기 위해 최고에 역점을 뒀더라도, 2막은 최적을 택해, 오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빛 좋은 개살구’보다 ‘뚝배기보다 장맛’의 내용, 즉 자기 적합성 여부를 따져야 멀리, 오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말하며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꼰대는 과거에 갇혀 있고, 어른은 미래를 향해 있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꼰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며 장광설만 늘어놓고 실천은 따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른은 매일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영광, 기억에 머물러 있으면 ‘옛날 타령’만 하게 됩니다.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을 해야 하는데 꼰대일수록 doing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입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배우려는 것, 그것이 조직 밖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결이자 어른으로 존경받는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직(職)과 업(業)은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직(職)은 조직에 있어야만 유지되는 직책, 직장이지요. 업은 남이 뺏을 수 없는 본인의 경쟁력, 경륜입니다. 퇴직 후의 대책 하면 흔히 경제적인 것과 이직을 위한 타이틀 등 유형자산만 생각합니다. 저는 업, 경험과 지혜의 노하우 등 무형자산을 준비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에도 종잣돈이 필요하듯, 인생 2막에 키워나갈 수 있는 종자 경험이 업입니다. 전문성, 네트워크, 경험 등의 총합인 내 일[業]이 없으면 내일(來日)은 없습니다.”
그는 “직은 동료들에 비해 뒤처졌지만 업의 힘을 베를린 특파원 시절에 길렀다”며 “혼자 지낸 고독력이 그 비결”이라고 털어놓았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마시는 술, 혼자 하는 여행. 웅덩이가 있어야 물이 고이는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이겨내야 창조적인 것들이 따라온다는 설명이다.
파워 스토리텔링을 강조하시는데요. 선생처럼 베를린 특파원, CEO, 교수 등 화려한 경력과 해외탐방의 이색 경험이 없는 분들도 가능합니까.
“내 이야기야말로 삶의 무궁무진한 무형자산이에요. 각각 자기의 파워스토리는 다 갖게 마련이지요. 스토리텔링이란 성공 스토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극복 스토리예요. 백퍼센트 성공담과 실패담은 재미와 의미가 없어요. 시련과 역경을 어떻게 이겨냈느냐 그것을 담아내는 반전에서 스토리의 파워가 나옵니다. 나를 스토리텔링할 줄 아는 게 경쟁력 있는 셀링포인트예요. 덕장, 지장보다 앞서는 게 운장이라고 하는데요. 그보다 상수가 담장(談將), 즉 스토리장이라고 농담하곤 합니다.”
그의 인생 2막을 열어준 비밀의 열쇠는 현직 시절 틈틈이 적어놓은 수첩이다. 이순신에게 남아 있던 ‘12척의 배’처럼 12권의 수첩이 그를 소생시켰다. 책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인생 2막의 시침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한다. 심지어는 영감을 얻은 식당의 영수증까지 노트에 꼼꼼히 붙여놓는다. 그것이 이야기의 보물창고가 된다.
이른바 ‘손빠’를 가지실 만큼 강연 및 저술로 프리랜서계에서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자신의 저서 에서 “100세 시대에 코끼리에 붙어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1인 기업가’처럼 강인한 벼룩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라”고 말한 바 있지요. 프리랜서가 명심해야 할 생존법은 무엇입니까.
“자유직업, 프리랜서의 다리는 조직인의 다리와 달라야 합니다. 뭍사람의 다리와 뱃사람의 다리가 다른 것처럼요. 뭍사람은 배를 타면 작은 파도의 출렁거림에도 일을 못합니다. 반면 뱃사람은 균형감각을 잡아 폭풍우 속에서도 일을 하지요. 프리랜서는 뱃사람처럼 심리적으로 굳건한 다리를 가져야 합니다. 고체가 돼선 안 되고 액체가 돼 늘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고요.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프리랜서력(力)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상대를 설레게 할 정도의 섹시한 제안 능력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기 위해 생자료를 가공자료로 바꿔 기획안을 만들고, 제안하고, 그러다 역제안을 만들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전직을 내세워 고위관계자와 직통하려 드는 것. 필패하게 돼 있다는 조언이다. 둘째는 상시 준비력이다. 언제 어떤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알파에 베타까지 덧붙여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준비력이다. 평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쉬는 날에도 일해야 하는 상시 근무체제와 같은 의미다. 셋째는 탄력 회복성이다. 숱하게 거절당하거나 좌절당할 일이 있어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다시 원점으로 회복하고 돌아봐 스스로를 성장시킬 계기로 삼는 능력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묻죠. 손 선생에게 현재 ‘성공’이란 어떤 의미인지요.
“마음 설레는 일을 갖는 것입니다. 쓰고 싶은 글거리가 줄줄이 머릿속을 채우고 맴돌 때의 희열, 그것 이상의 행복과 성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인터뷰 후 연거푸 제안서 미팅이 있다며 낡은 백팩, 아니 이야기 보따리를 메고 서둘러 일어섰다. 파란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정현종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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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