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멈춘 듯하지만 바람결에 흐르는 숲의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과 뚝 떨어진 듯한 고요함은 적적하기까지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 깃든 한낮의 햇살은 방문객에게 여유로움까지 준다.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며 숲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온전히 자연에 맡기는 시간으로 이보다 편안한 곳이 있을지. 치유 인자가 가득한 편백 숲길과 삼나무 숲속을 내어주던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나선다. 그렇다고 보통 5시간 이상 마냥 걷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서귀포 치유의 숲은 무리하지 않고 꼬닥꼬닥(천천히를 뜻하는 제주어) 걸으며 숲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남짓이면 편백과 삼나무의 피톤치드를 받으며 숲의 기운을 온몸 가득 담을 수 있다.
숲길은 총 11km 길이로 10개의 테마 길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약 1.9km의 ‘가멍오멍숲길’에서 나머지 9개의 길이 뻗어나간다. 그 길에 쉼터인 쉼팡이 군데군데 있어서 편백 의자에서 쉴 수도 있다. 피톤치드와 테르핀, 음이온 등이 발산되는 환경에 쉬면서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산림치유지도사의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예약만 하면 풍부한 숲 이야기와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약은 입장료만 내고 자유롭게 숲길을 걸으며 산책하는 느영나영 힐링숲 탐방 예약과, 해설사와 동행하는 세 시간 정도의 궤영숯굴보멍 코스 예약으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 바람이 불고 있어서 숲길로 가면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숲속에 야자매트가 쭉 깔려 있어서 걷기 편할 겁니다. 천천히 15분쯤 걸으면 쉼팡이 나옵니다. 편백나무 숲인데 그쯤에서 쉬어가는 게 좋아요.” 산림치유지도사의 말이다.
큰길 옆의 숲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가멍숲길이다. 중간쯤 가면 가베또롱숲길, 가멍오멍숲길이 나타난다. 요즘 길이 난 곳이라면 걷기 시합이라도 하는 양 그저 열심히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걷다가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간간이 쉬어가는 게 좋다고 일러준다. 60년 된 편백나무 숲 쉼팡의 긴 편백나무 의자에 몸을 맡기고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계속 오르다 보면 가뿐하다는 뜻의 가베또롱숲길을 지난다. 걸으면서 드러나는 숲의 풍광에 감탄사를 멈출 수 없다. 숲속에선 맑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깐 멈추어 두리번거리다 다시 걷다 보면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울타리 담인 잣성길을 옆에 끼고 지나는 숲길이 나타난다. 벤조롱 치유숲길은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상쾌하고 산뜻하다는 뜻의 길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각기 다른 숲을 걷는 듯한 느낌은 치유의 숲이 주는 매력이다. 각 숲길은 0.6~2km 내외의 길이로 조성되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숲길은 대체로 완만해서 오르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노약자는 물론이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들의 나들이로도 문제없다. 잠수하던 해녀가 내뱉는 숨소리라 하는 숨비소리 치유숲길을 지나 오고생이길엔 돌이 많아서 더러 불편할 수도 있다. 오고생이는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의 제주어로 돌길을 밟는 발걸음마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역시 제주답다는 생각이 든다. 돌길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고즈넉함이 보존된 오고생이 치유숲길을 나서면 눈앞에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원시림의 숲과 하늘과 바람과 햇살만으로 가득 찬 풍경, 청명하다. 숨통이 트이는 게 느껴진다.
이어서 가멍오멍숲길을 다 만나고 엄부랑숲길(‘엄청난, 큰’이라는 뜻)을 지나 힐링센터까지 가면서 100년 된 거대한 편백과 삼나무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잘생긴 삼나무 숲의 위용이 압도한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찬 숲이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길을 걸으며 오감을 열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하다. 이쯤에서 비로소 숲의 신비로움에 스며든 자신을 보게 된다. 순수한 자연 속에서 그 숲의 신령스러움에 감싸이는 듯한 기분이다. 피톤치드를 만끽하며 자연이 주는 위안으로 뭉클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숲 쪽으로는 군데군데 작은 오솔길이 있어서 숲속으로 들어가 파묻혀봐도 좋을 듯하다. 옆으로는 2km 정도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다 오른 곳에 산도록(‘시원한’이란 의미의 제주어) 치유숲길이 있다. 숲속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참여자들의 맨발 족욕이나 산림교육도 이루어지는 곳이다. 명상과 복식호흡을 하며 차분한 시간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산책로에는 치유의 샘이 흐르고, 숲길 쪽으로 한참 걸으며 시오름 정상에 올라 한라산을 볼 수도 있다. 상쾌함의 최고조다. 경관 좋은 하늘바라기 숲길을 걸어보는 여유도 가져볼 만하다. 그러고는 아무 데나 멍하니 걸터앉아 숲이 일렁이며 내는 바람 소리에 고단했던 세상의 먼지들이 씻겨나가는 듯한 경험을 할 것이다.
숲길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소록 숲 주변에 자리 잡은 힐링센터는 주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건강측정을 하거나 다담(茶啖)을 나누며 마무리하는 공간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때때로 개장이 불확실하므로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자리한 치유의 숲은 해발 320~760m에 위치한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높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국영목장이었던 이곳에 100년 전쯤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 엄부랑 숲에는 사람이 살았던 집터가 있다. 그들마저 떠난 후 척박했던 삶의 흔적이 사라지고 덤불과 숲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런 숲의 생태계를 그대로 보전해 지금은 편백과 삼나무 군락으로 치유의 숲이 되었다.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과 조류, 야생동물들과 나무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산림의 환경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복합 휴양형 치유 공간인 셈이다. 하루 적정한 탐방객 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무장애 데크 시설 덕분에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열린 관광지’로도 지정되었다.
차롱 바구니에 담긴 제주의 로컬푸드
숲을 내려오면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차롱밥상이 기다린다. 차롱은 제주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하던 제주의 전통 바구니다. 주로 밭에 나갈 때나 제사음식 담을 때 통풍이 잘 되어 신선하게 음식을 보관하던 용도였다.
차롱 도시락은 호근마을 주민들이 숲과 마을의 상생을 꿈꾸며 프로그램에 접목했다.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당일 만든 도시락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각자 배정된 힐링하우스의 편백 테이블에 차롱치유밥상이 차려져 있다. 즉석에서 담아주는 따끈한 국과 김치, 그리고 동고량이라는 밥 차롱 바구니에는 한라산 표고버섯전, 빙떡, 브로콜리, 채소와 과일꽂이, 톳 주먹밥, 곰치 쌈밥, 고구마 등 푸짐하면서도 정성 가득 담긴 건강한 음식이 가득 차 있다. 제주의 음식문화와 향토의 맛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산 4
•문의처: 064-760-3067
•운영시간: 평일 매일 08:00~17:00 (하절기) 4~10월 18시, 매일 09:00~16:00 (동절기) 11~3월 17시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산림치유 프로그램: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차롱치유밥상: 3일 전 예약해야 가능. 1인용 차롱치유밥상 이용금액은 1만 7000원. 계절이나 식재료 또는 행사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다. 064-760-3067〜8
현미와 섞인 녹차 티백이 ‘녹차’로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동네 빵집에 가도 로즈메리부터 재스민, 루이보스 등 다양한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바야흐로 기호식품의 시대, 다반사(茶飯事)의 전성기다. 그러나 이 많은 차 중에 우리 차의 향과 맛을 지닌 게 얼마나 될까. 30여 년 전 지리산에 들어가 산야초를 공부하며 우리 차의 고유한 향취를 개발하고 전파하는 데 매진한 전문희(57) 씨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줄 것이다. 지리산 산청에서 만난 차의 달인에게 우리 차와 차 문화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차 문화의 새로운 전기가 열리는 분위기다. 지자체마다 차와 관련한 행사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고 사람들도 좋은 차를 찾아 여기저기 물색하고 다닌다. 시니어 세대의 문화가 점점 고급화, 다양화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차를 마신다는 의미
그런데 다도(茶道)라 하면 사람들은 일본을, 그리고 차의 원산지라 하면 중국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차 대신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신다. 이런 와중에 우리 차의 미학을 찾아 보급하는 데 삶을 바친 사람이 있다. 바로 산야초 전문가 전문희 씨. 그녀가 우리 차의 우수성과 차 문화를 제대로 전파하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간 지 벌써 30여 년이 된다. 요즘도 그녀는 전국 각지에서 알음알음 자신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에게 산야초 차의 깊은 맛과 멋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산야초 차란 어떤 차일까? 그녀는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바로 ‘산야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꿔 부르게 된 이유를 “약초는 아픈 사람이나 먹는 약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다도’라는 말보다는 ‘다담’(茶談)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이 차는 어디에 좋은가요?”
전문희 씨가 ‘건강을 위한 산야초 연구회’를 이끌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녀에게 이러한 질문은, 몸에 좋은 것은 일단 먹고 보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에서 나온 조급증으로 다가온다. 약도 아닌 차 한 잔 마신다고 당장 몸에 어떤 효험이 나타난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무조건 몸에 좋다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싶어 나름 답변을 준비해놨다.
“인간의 몸은 콩나물시루와 같습니다. 위에서 아무리 물을 부어도 밑으로 다 빠져나가고 남는 게 없죠. 그러나 보십시오. 콩나물은 자라 올라오지 않습니까? 차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차를 마시면 당장은 다 오줌으로 빠져나가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 오줌과 함께 우리 몸에 있는 노폐물도 배출이 돼요. 그리고 피는 그만큼 깨끗해집니다. 피가 깨끗해지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뿐하죠. 이것을 생활화해야만 우리 몸은 병균이 서식할 수 없는 건강한 상태가 유지됩니다.”
좋은 차를 마신다는 것
전 씨는 식물마다 약성과 성질이 다르므로 자기 체질을 확실히 알고 그에 맞는 차를 마시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깊이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니 처음 접하는 이는 일단 동글동글하게 가는 것이 맞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혈액순환이 잘되면 피부가 좋아지고 얼굴이 맑아져서 노화가 덜 와요. 그러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표정이 예뻐지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거죠. 차를 마신다는 건 내 마음을 맑게 하는 것과 같아요.”
그녀의 모습은 이미 차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차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이끈다”는 그녀의 말이 와 닿았다.
그런데 다도의 정신처럼 느껴지는 이 설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도라 할 때 떠올리는 격식과 절차와는 거리가 있었다. 아니, 되레 그런 것들에 대한 반박에 가까웠다.
“누구나 다반사로 숭늉 마시듯 하라”
“좋은 차를 마시면 스스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돌볼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니 차를 마시면 소통이 없을 수 없겠지요. 차 맛은 그 차가 내게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어떻게 만든 것인지, 누구와 함께하는지, 마실 때의 분위기와 기분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전 씨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도라고 할 때 치르는 복잡한 과정들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소위 차 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소모하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차가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에 담긴 역설과 일맥상통한다.
원래 다반사라는 단어는 한자 뜻대로 ‘차 마시듯이 늘 있는 예삿일’을 말한다. 과거에는 그런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차 마시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나마 남은 차 문화는 중국 차와 커피가 잠식한 우리네 차 문화의 현실이 안타깝단다. 그래서 그녀는 번잡함과 불필요한 의식을 치우고 어떤 수단으로든 좋은 차를 가까이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너무 바빠서 차 생활에 몰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텀블러도 좋고 담을 용기라도 좋아요. 차를 우려서 들고 다니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차인이 아닙니다. 차 생활의 일상화가 중요해요. 하루에 물을 2ℓ씩 마셔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 수분 보충을 차로 한다고 생각하면 삶이 바뀔 거예요. 찻물의 빛깔을 바라보고 차 향을 맡으며 차 맛을 혀끝에서 음미할 때 우리는 하루의 피로에서 놓여나고 마음의 평안함을 찾을 수 있어요.”
그릇을 따지고 격식을 차리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는 육체의 피로와 함께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피로해소제보다 차 마시기를 권한다.
“다도는 예의와 격식을 상당히 중시하지요. 하지만 차를 그렇게 어렵게 마실 필요는 없어요. 편안하게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다담 문화’가 더 보편적이고 서민적이지요. 너무 격식 따지지 말고 깊은 산에서 나는 깨끗한 산야초를 차로 달여서 그냥 물 마시듯 자주 마시면 건강에 좋아요.”
자연에서 채취한 차가 좋은 차
차를 생활화하는 것은 멋도 중요하지만 멋은 나중 일이라는 그녀의 차 문화관은 실학적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내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게 우선이라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설명이었다. 사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그녀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녀가 지리산에서 살게 된 것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됐다. 젊은 시절 통기타 가수, 모델, 인테리어 사업가로 활동하던 중 어머니가 암 말기 선고를 받자 서울 생활을 접고 지리산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리고 직접 채취한 각종 산야초로 자연치료법과 한방요법을 병행해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머니를 3년 넘게 병구완했다. “차를 마시면 자연에 대한 감사함이 저절로 든다”는 그녀의 철학은 철저히 체험에서 비롯된 깨달음이었다.
“차를 마신다는 건 약성과 각종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 물질을 섭취하는 겁니다. 그러니 차에서 제초제나 농약 잔류물이 나오면 안 되는 게 당연하죠. 자연에서 채취한 것이어야 좋은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 좋은 차를 잘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싼 차라면 무조건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인스턴트 차만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산야초 문화의 최전선에서 수십 년째 활동하고 있는 그녀가 안타까워하는 현실이다.
“제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지리산에 머물러 산야초 대중화에 투신한 참뜻에는 ‘중국 차와 커피를 덜 마시자’는 의미가 있어요.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자는 거죠. 너무 커피만 마셔대는 문화는 우려스러워요. 그러나 하루에 커피는 한두 잔 마시되, 나머지 수분 보충은 우리 차로 하자. 그렇게 질 좋은 수분 섭취를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차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전 씨가 우리 차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차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는 병을 고치는 도구이지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주체는 오롯이 자기 자신이다.
“평소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합니다. 차를 마셔 당장 몸이 좋아져 무슨 병이 낫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죠. 생활은 건강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이어가면서 차만으로 건강해지기를 바란다면 그것 역시 지나친 욕심이고요. 차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녀가 일궈낸 ‘백초차’가 있다. 백초차는 말 그대로 100가지 산야초로 만든 차다. 오염이 없는 청정하고 깊은 산중에서 채취한 새순만을 녹차 같은 방법으로 덖어서 만든다. 100가지 식물의 약성이 섞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성분이 상승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혹시 그중 어느 식물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독성을 중화하는 작용도 한다고 한다.
100여 가지 새순으로 만는 ‘백초차’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선생은 “그녀가 정성들여 만든 백초차를 우려 마시면서 이것은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을 통째로 내 몸에 모시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백초차의 주요 원료는 가시오갈피나무, 산복숭아나무, 소나무, 산뽕나무, 두충나무, 고로쇠나무 등의 어린 잎사귀와 다래, 으름덩굴, 칡, 찔레, 인동초, 복분자, 하수오, 두릅 등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무들의 새순이다. 이름을 모르는 나무라도 뾰족이 올라온 새순은 무엇이든 다 채취한다. 산속에서 자라는 야생 차나무의 새순도 백초차에 빠져서는 안 될 재료다. 물론 안전은 필수다. 그녀는 이 새순들을 채취하면서 직접 씹어서 맛을 보며 독성 여부도 체크한다.
“혀끝에 아릿한 맛이 느껴지면 약성이 강한 식물이죠. 나중에 차를 마시다 채취하면서 씹었던 맛이 그대로 차에 살아 있음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나무에 깃들어 있던 모든 기운이 차 한 잔에 담긴 듯하거든요.”
3~5월에 채취한 100여 가지의 새순은 덖어서 모아두었다가 6월이 되면 전부 섞어 백초차를 만든다. 봄이 오기도 전에 산과 들로 뛰어다녔던 시간들이 모두 녹아 있는 차가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다. 마셔본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진다며 효험을 검증해줬다. 특히 오랫동안 차를 마셔온 스님들은 백초차에 자연의 기가 충만하다며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바로 알아차린다고 한다.
차를 매개로 한 자연과의 교감
“누구나 나이가 들면 건강 문제가 절실해집니다. 생활이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건강을 잃고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되죠. 건강을 잃고서야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좇아 다닙니다. 그런데 좋은 차를 마시면 자신의 몸이 보내는 경고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제대로 돌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그녀는 차를 접하기로 마음먹으면, 산과 들에 와서 직접 채집하고 욕심 부리지 말고 만들어보고 교감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차 문화의 발전이란 단순히 차에만 고착되는 게 아니라 차를 매개로 한 생활의 변화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교육에서도 그와 같은 과정이 꼭 들어간다고 한다. 직접 채집하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향을 느끼며 집에 와서는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행복해질 수 있는, 그 잊기 힘든 시간이야말로 차가 삶과 연결됨으로써 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잘 덖은 차는 우려냈을 때 산야초 본래의 색깔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처음 마셨을 때는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만, 오래 음미하고 있으면 달큰한 것 같기도 하고 시큼한 것 같기도 한 독특한 맛이 느껴지죠.”
그녀는 차를 덖을 때 구증구포(九蒸九曝)를 고집한다.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비는 전통 제다법이다. 산야초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건조시킨 뒤엔 살청(殺靑)을 한다.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 넣고, 나무주걱으로 쉼 없이 휘젓고 뒤집기를 반복한다. 엽록소의 산화효소를 파괴해 차의 변질을 막고, 맛과 색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다.
“처음 딸 때의 찻잎 향과 아홉 번 덖은 손의 차향이 같아야 제대로 된 차입니다. 구증구포로 만든 차는 몇 번을 우려내도 첫맛을 잃지 않습니다.”
차 문화는 생활 밀착이 중요
그녀는 “옷차림, 도구, 공간 등 고급스러움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연에서 채취한 질 좋은 차를 감사하면서 먹는 것이며 각자의 생활환경에 맞춰 차를 일상적으로 마셔야 한다”고 말한다. 차가 생활과 밀착해 음용돼야 한국의 차 문화가 될 수 있음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말하는 올곧은 소리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한국의 차 문화가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자연스러움을 갖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팽주(차를 다려 내는 사람)인 그녀로부터 건네진 차에서 우러나는 향을 맡으며 그런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다인(茶人)을 만나고서야 차는 예이고 덕이고, 도이며 소통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주는 백초차를 마시니 자연에게 무한한 감사함이 절로 들게 하는 웅숭깊은 가르침이 향기로 퍼졌다.
지난 4월의 첫 번째 금요일은 아내와 오랜만에 저녁 데이트 하는 날이었다.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창극 흥보씨( Mr. Heungbo)를 함께 보러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녹색의 푸름과 꽃들로 봄이 무르익어가는 아름다운 장충단 공원길을 걸었다. 장충단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민씨가 영면한지 5년 후 고종은 장충단을 꾸며 을미사변 때 순직한 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매년 봄 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단골식당이 된 ‘다담에뜰’에서 식사와 차를 한잔하고 손을 잡고 걸어서 달오름에 올랐다. 다담이란 불가에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내어놓는 다과라는 뜻이다.
서양에 오페라가 있다면 우리에게 창극이 있다. 판소리가 한 명의 소리꾼이 북장단에 맞추어 노래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극음악이라면 창극은 여러 명의 소리꾼들이 역할을 나누어 노래하고 연기하면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극음악이다. 지난해 해오름에서 창극 향연을 처음 함께 본 후 아내와 나는 창극을 좋아하게 됐다.
창극 흥보씨는 한 마디로 우리의 전통 흥부전(흥부가)을 집으로 치면 대들보와 기둥만 남기고 완전히 현대판 흥부전으로 바꾼 새로운 창작이었다. 우리 내외가 창극에 대해서는 문외한 이었지만 아내도 아주 재미있게 잘 봤다고 만족할 정도로 좋았다. 흥보씨의 새로운 버전으로 창작 스토리를 소개하면 대략 아래와 같은 것들이 예상을 불허하는 것들이었다.
첫째 흥보와 놀보의 아버지 연생원은 아이를 갖지 못해 흥보는 길에서 주워와 길렀다. 가문이 흥하라고 흥보, 아내가 바람을 피워 뒤늦게 출산한 놀보는 귀한 자식이라 놀랍다는 의미로 놀보라 이름 지었다. 이런 출생의 비밀로 시작된 이야기는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시작 하였다. 흥보가 형, 놀보가 아우였으나 착한 흥보는 아우를 위해 계약서 작성을 통해 형과 아우를 바꾸어 생활하는 부분도 연출가의 기획이다.
둘째 강남의 제비는 오늘날 바람둥이 제비로 묘사하고 제비가 갖다 준 씨앗은 박 씨보다 찬란한 구슬 같은 씨앗이었다. 호랑이가 말을 하고, 우주인이 나타나고 흥보의 처로 등장하는 이소연의 가난타령, 제비 유태평양의 제비 노정기, 무대장치, 보리수 나무의 등장이 특이하였다. 그럼에도 무대장치의 핵심은 칼, 몽둥이, 톱의 기능을 한 부채였다. 그 씨앗이 물질적인 부를 갖다 주는 것이 아닌 정신적인 안정을 갖다 주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이 오늘날 물질보다 정신문명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 같았다.
셋째 창극을 관통하는 줄거리는 통상 전래 판소리와 같이 권선징악이다. 그래서 현대적인 노래와 춤을 삽입하여도 관객들에게 친근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극 전체를 흐르는 비움의 철학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가난하더라도 바른 생활을 하는 흥보가 원래 형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스토리다.
마지막으로 창극 흥보씨가 재미있는 창작극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점은 흥보와 놀보 역을 맡은 두 주인공의 뛰어난 연기, 예측을 불허하는 극본 과 연출, 캐릭터에 맞게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연기해준 전 단원들, 그리고 우주의 신비스러움과 판소리의 맛을 살리면서도 젊음과 경쾌함을 선물한 음악 감독의 합작의 결과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서양음악과 춤을 차용하여 창극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극이었다.
이런 훌륭한 창극단이 있는 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창극이 서양의 오페라처럼 세계화로 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았다.
(흥부를 흥보로 놀부를 놀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정확한 정설은 아직 없는 것 같아 기획자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연등이 꺼지기도 전 이른 아침 여명이 찾아왔다. 얼마 만에 보는 경이로운 풍경인가. 고요한 산사에서의 아침은 그 자체가 보약이요 힐링이다.
“뒤돌아보면 참 미련하게 살았다”라는 말이 절로 나는 곳, 내려놓을수록 많은 것을 가져가게 되는 곳,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진정한 나를 찾게 되는 곳, 이곳은 산사(山寺)다.
여행은 충전이다. 그러나 바리바리 싸들고 떠나, 먹고 취하고 즐기다 보면 오히려 충전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모처럼 만의 여행에서 얻은 건 피로와 스트레스뿐이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사찰이다. “불교에 입문할 것도 아닌데 웬 사찰이냐”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요즘은 사찰의 기능도 다양해졌다.
일상에 찌든 사람, 정서적 안정이 필요한 사람, 삶의 여유가 없는 사람, 힐링이 필요한 사람,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정기간 사찰에 머물며 사찰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가 여행의 새 트렌드로 떠올랐다.
워킹 산행 중 무심코 지나쳤거나 잠시 쉬어갔던 산사가 이젠 여행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굳이 산사가 아니라도 좋다. 도심 한복판 사찰에서도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곳이 많다.
그렇다고 무작정 사찰로 떠나는 것은 금물이다. 템플스테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비결이다.
우선 떠날 준비가 됐다면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사찰부터 찾아보자.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홈페이지(templestay.com)에서는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사찰과 신청방법, 일정 등 템플스테이 관련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홈페이지에서 템플스테이 정보를 제공하는 전국 사찰은 66개로 봉은사(서울 강남구), 화계사(서울 강북구), 묘각사(서울 종로구) 등 서울에만 9개의 사찰이 있다.
사찰에서 수련복을 지급(어린이 제외)하기 때문에 준비물은 의외로 많지 않다. 개인 세면도구와 따뜻한 옷, 운동화 등만 준비하면 된다. 그밖에 귀중품과 현금 등은 가급적 준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찰마다 특색 있는 프로그램도 많다. 서울 은평구의 진관사는 음식 맛있기로 유명하다. 특히 콩잎 김치에 된장찌개를 비벼 먹는 진관사 밥은 불교 신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다.
KBS 드라마 ‘세종대왕(2008)’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이곳은 실제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집현전 학자들의 비밀 연구소로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진관사 요리에는 오신채(五辛菜·매운 맛을 내는 다섯 가지 채소)가 없어 깔끔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1박2일 코스에 참가하면 참선과 다담, 발우공양(평상시 승려들의 식사), 예불, 108배 등 기본 코스와 함께 사찰 음식 체험, 연꽃 만들기, 전통 떡 만들기 등 다양한 코스가 함께 들어간다.
경기 양주시의 육지장사에는 살 빼는 프로그램이 있다. ‘다이어트 템플스테이’로도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2박3일 일정으로 거품 뺀 공양과 사과, 당근을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시며 강도 높은 허리 운동, 108배 등이 이어져 바쁜 사찰체험이 진행된다.
충남 서산의 서광사에서는 바둑두며 깨달음을 얻는다. 매월 2주·4주째 10명 이상 멤버로 진행한다. 보통 2박3일 코스로 탁본, 공양 등 기본 프로그램에 바둑대회가 포함된다. 바둑 수련관 시설은 첨단시설을 갖췄다. 72명이 한꺼번에 둘 수 있는 공간에 디지털계시기까지 달려 있어 바둑 애호가들에게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