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통 ‘영동식당’
서대전네거리역 인근, ‘맛동네길’이라 불리는 계백로와 계룡로 사이 전문음식특화거리에는 오랜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닭볶음탕을 비롯한 염소전골, 토끼탕 등 몸보신 메뉴로 사랑받는 ‘영동식당’은 대전광역시 인증 ‘모범음식점’, ‘3대·30년 전통업소’ 등의 타이틀로 믿음을 더하는 곳이다. 맛집들이 늘어선 큰길가가 아닌 좁은 골목길 안쪽에 자리 잡은 가게에는 뜨내기손님보다는 오랜 단골이 주를 이룬다. 정겹고 한적해 보이지만 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이들로 종종 줄을 서기도 한단다. 어머니 정원자(77) 여사에 이어 영동식당의 맛을 책임지고 있는 김대흠(56) 씨는 오래 기다리는 손님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때문에 맛집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와도 고사하곤 한다는 그다.
“방송을 타고 나면 갑자기 사람들이 확 몰려와 단골손님들이 불편해지는 상황이 벌어져요. 닭볶음탕 국물 반주 삼아 드시는 분이 많은데, 그분들도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고, 밖에 있는 손님들도 오래 기다려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애써 방송으로 사람을 끌어모으기보다는, 맛있게 드신 분들이 입소문 내주시면 그게 가장 고맙고 기분 좋은 것 같아요.”
단골 중에는 매번 다른 사람을 데려와 닭볶음탕을 맛보이는 이도 있단다. 누군가에게 식당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는 건 늘 그 맛과 서비스가 실망스럽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주인장 역시 변함없는 맛과 친절한 응대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것이 가게의 장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프랜차이즈의 경우엔 어디든 일정한 맛과 서비스를 기대하고 가는데, 대개 그런 기본을 지키지 않는 곳들은 금방 문을 닫게 돼 있죠. 우리처럼 작은 가게라고 다르지 않아요. 옛 맛을 잘 지켜내고, 언제나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오래되고 유명한 가게라도 자칫 기본을 잊고 방심하면 안 돼요. 손님 마음이 돌아서는 건 한순간이니까요.”
영동식당의 닭볶음탕은 푸짐한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인데, 제철 나물이나 김치 등 다양한 반찬도 인심 좋게 내놓는다. 몇 해 전 닭볶음탕의 주재료인 감자 값이 폭등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격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땐 정말 빚 안 진 것만도 다행이지, 거의 남는 게 없이 장사했어요. 그런데 재룟값이 싸졌다고 가격을 내리지는 않잖아요. 그럼 비쌀 때도 가격을 올리지 말아야죠. 어떤 집은 대신 양을 줄이거나 재료를 덜 넣어주는데, 그러면 맛이 변하니 절대 안 되고요.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해도 지금껏 버텨온 뚝심으로 변함없는 맛을 지킬 겁니다.”
대전1호선 서대전네거리역 4번 출구 도보 4분
주소 대전시 중구 계룡로874번길 27-9
영업시간 11:00~22:00
대표메뉴 닭볶음탕, 염소전골, 토끼탕
※본 기획 취재는 (사)한국잡지협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중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엄홍길(嚴弘吉·59) 대장은 ‘신들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정복이 그의 꿈이었다고 말한다. 꿈을 위해 목숨까지 건 남자, 엄홍길 대장을 만났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해발 8000m 이상의 봉우리 중 독립된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는 총 14개. 히말라야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이 14개 봉우리를 통틀어 ‘8000m 14좌’ 또는 ‘히말라야 14좌’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이 뒷동산 올라가듯 히말라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 히말라야도 그저 그런, 높고 추운 산에 불과했겠지만, 순순히 정상을 내어주지 않는 히말라야는 실패를 마약으로 삼는 자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엄홍길 대장은 14좌를 오르는 대가로 동상에 걸린 엄지발가락 한 마디를 잘라냈다. 또 등반 중 사고로 부러진 발목은 뼈가 그대로 굳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구부러지지 않는다. 죽음의 경계도 수없이 넘나들었지만 그는 등반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말렸어요. 근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제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기분이었죠. 우리가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처럼 저도 산이 그곳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매년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위해 수백, 수천 명의 산악인이 산 4000~5000m 부근에 설치된 등산기지, 베이스캠프에 모여든다.
“베이스캠프에선 닭볶음탕, 김치찌개, 냉면 등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다 해먹을 수 있어요. 주방장도 있는걸요. 다만 산속이다 보니 수산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짐을 꾸릴 때 간고등어, 홍어, 조기 같은 생선을 챙겨가죠. 양이 한정적이다 보니 생선 먹는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에요. 아껴먹어야 하죠.(웃음)”
비 오는 날엔 막걸리에 전, 스키장 정상에선 따끈한 라면 국물, 운동 후엔 시원한 맥주가 당긴다면 영하 20~30℃를 웃도는 베이스캠프에서는 어떤 음식이 가장 꿀맛일까. ‘그’ 음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엄홍길 대장의 얼굴이 미소로 번졌다.
“홍어찜! 홍어 냄새가 코를 찌르잖아요. 근데 그 산속에서 먹는 홍어찜은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어요.(웃음) 홍어찜 한 젓가락 입에 딱 넣으면 햐…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도는데 아주 황홀한 맛이죠.”
먹는 이야기까지 들어보면 히말라야도 참 살 만한 동네(?)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리얼’ 히말라야 등반은 베이스캠프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엄 대장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마치 지뢰밭을 걷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눈사태,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크레바스, 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낙빙 등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상을 오르는 내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장 두려웠다.
“눈사태에 휩쓸려서 눈에 파묻히면 운 좋으면 사는 거고 나쁘면 죽는 거예요. 얕으면 파내면 되지만 큰 얼음덩어리에 갇히면 파낼 수도 없거든요. 히든 크레바스는 눈이 살짝 덮여 있어서 잘 안 보여요. 거기에 발을 잘못 디디면 깊이를 알 수 없는 틈 사이로 추락할 수도 있어요. 이 중 어느 하나도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아요. 마치 죽음과 줄다리기를 하는 기분이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산
높이 8092m의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다. 산 이름은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이지만 온화한 느낌과는 다르게 예측 불허의 기상과 난코스로 악명이 높다. 엄 대장도 이곳에서 네 번의 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도는 기상악화로 실패. 이듬해 봄, 그는 다시 장비를 꾸렸다. 세 번째 도전이었다.
“고개를 들었는데 앞에 있어야 할 셰르파가 사라진 거예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요. 히든 크레바스를 보지 못하고 빠진 거죠. 깊지는 않았는데 V자 모양이라 떨어질 때 턱을 찧었나봐요. 숨을 희미하게 내쉬고 있었는데 구조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어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동료의 죽음은 언제 겪어도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일 년을 다시 기다려 네 번째 등반길에 올랐다. 그의 간절한 마음이 산에도 와 닿은 걸까, 7600m까지는 순조롭게 오를 수 있었다. 정상까지 400여 m를 남겨둔 상황, 마치 손만 뻗으면 정상에 닿을 것만 같은 거리였다. 그때 앞서가던 대원이 실수로 경사면에서 미끄러져버렸다.
“그 친구한테 묶여 있던 로프가 제 옆으로 후루루루룩 지나가는 거예요.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로프를 낚아챘죠. 가속도가 붙으니깐 두꺼운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타들어 가. 놓자니 놓을 수 없고 잡자니 잡히지 않고. 근데 어느 순간 몸이 붕 뜨는 거예요. 로프 끝자락이 제 오른발 발목을 낚아챈 거죠. 정신을 차려보니깐 눈에 제가 처박혀 있더라고요. 발목이 180도 돌아가서 뒤꿈치가 앞에 있는 상태로.”
목숨은 건졌지만 달랑거리는 발목을 끌고 4500m까지 내려가야 구조용 헬기를 탈 수 있었다. 빙벽에서는 줄과 한 발에만 의지한 채, 그리고 평지에서는 기어기어 내려가는데 꼬박 2박 3일이 걸렸다.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발목을 현지에서는 수술할 수 없어 급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발목에 쇠 핀 두 개를 박아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의사가 앞으로 등반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죠. 5개월 동안 재활 치료를 하고 삼각산 백운봉에 올라갔어요. 그때 든 생각이 ‘이젠 포기해야겠다’가 아니라 ‘조금만 열심히 치료하면 곧 산을 탈 수 있겠다’였어요. 그리고 10개월 만에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아갔죠. 다들 저보고 정신 나갔다고 했어요.(웃음)”
멀쩡한 몸으로도 네 번이나 실패한 안나푸르나를 쇠 핀을 박은 채로 올랐다. 발목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뼛속을 타고 전해졌지만 죽은 동료의 목표까지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8092m,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안나푸르나 정상에 도착했다.
“엉엉 울었어요. 행복해서가 아니라 너무 서러워서. 하늘로 가버린 동료 생각, 지난날들의 여정. 막 소리 질렀어요. ‘결국 이렇게 받아주실 거면서 왜 그런 고통을 주시고 동료까지 데려가시고,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하면서요.”
엄 대장과 안나푸르나의 지독했던 인연은 이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뒤따라오던 여성 대원 지현옥 씨와 셰르파 한 명이 하산 도중 실종된 것이다. 밤새도록 무전을 기다려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안나푸르나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렇게 그 둘은 안나푸르나 꼭대기에서 영영 내려오지 못했다.
엄 대장은 14좌를 모두 오르고 위성봉인 얄룽캉(8505m)에 이어 로체샤르(8400m)까지 올라 2007년 16좌 완등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열여덟 번의 실패가 있었고 열 명의 동료를 잃었다.
제2의 16좌를 향하여
“저는 살아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얼음산 속 어딘가에 냉동인간으로 잠들어 있어야 정상이죠. 산꼭대기만 보고 살았던 제가 어느 순간 산 아래가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아이가 보이더라고요. ‘아, 산이 나를 살려 보낸 이유가 바로 이거구나. 산이 나에게 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살라는 뜻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8년 그는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하고 히말라야 아이들을 위해 학교 짓는 일을 시작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엄홍길휴먼재단에서 현재까지 완공한 학교는 총 14개, 2018년 11월엔 15번째 학교가 완공될 예정이다.
“제가 16좌에 올랐기 때문에 16개 학교를 짓는 게 목표예요. 16번째 학교는 하나의 학교가 아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체육관이 있는 종합 교육 타운으로 만들고 싶어요. 여력이 된다면 대학교까지.(웃음) 제 인생을 8000m 산이라고 하면 지금 7000m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이제 가장 힘든 구간이 남아 있는 거죠. 16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비로소 하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교직생활 33년 동안 많은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는 필자와 감성이 잘 통해 따르는 제자들이 여럿 있는데 희영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제자다.
1997년 4월, 필자를 무한히 감동시킨 제자는 바로 희영이다. 햇님이 사랑스런 4월 하순 무렵이었다. 손에 꽃을 한아름 안고 희영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니 희영이가 웬일이니? 그 바쁜 고3 학생이."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밖을 내다보니 꽃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문득 꽃을 좋아하는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그래서요. 조금 있으면 꽃이 질 거잖아요. 꽃이 지기 전에 선생님께 예쁜 들꽃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입시공부를 하고 있던, 일분일초가 아쉬운 고3 제자가 하던 공부를 뒤로 하고 필자를 위해 만든 꽃다발이라니…. 그것은 마음으로 만들어진 꽃다발이었다. 수줍게 꽃다발을 내미는 19세 소녀의 예쁜 얼굴은 살포시 웃고 있었다. 흰색, 분홍색, 노랑, 보라 등 다양한 색상의 꽤나 묵직한 꽃다발을 받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냉이꽃, 라일락, 아이리스, 배꽃, 애기씨꽃, 살구꽃, 민들레꽃, 제비꽃 등 완전 봄꽃의 향연이었다. 일반 꽃다발과 꽃의 구성이 많이 다른,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희영이표 꽃다발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예쁠 수가!"
꽃들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찾아 다녔을까! 필자를 위해 값진 시간을 내준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기에 코허리가 시큰했고 가슴에 기쁨의 물결이 넘실댔다. 이제까지 받아본 꽃다발 중 단연 으뜸인 이 꽃다발은 필자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는 최고의 소중하고 향긋한 꽃다발이다.
요리는 사랑이고 정성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요리는 예술이 된다.
2년 전 우리 집에 찾아온 희영이에게 필자는 닭볶음탕과 주꾸미볶음 등을 정성껏 만들어 대접했다. 필자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 희영이를 집으로 불렀다. 필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직접 만든 음식부터 먹이고 싶어 한다. 음식 맛은 정직하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쓰고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면 맛있게 되어 있다. 필자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제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향긋한 국화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서양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한 희영이는 그동안 플로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같은 관악구에 살고 있어 올봄에는 맛있는 상추를 한 보따리 갖다 주었다. 주말농장에서 무농약으로 직접 키운 로메인이라는 상추는 아삭아삭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희영이가 필자에게 준 것들은 항상 최고였다. 학창 시절에 갖다 준 배 맛도 잊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삭아삭 달콤한 즙이 가득 찬, 완전 꿀맛이었던 그렇게 큰 배는 처음 보았다. 과수원집 딸인 희영이는 아마도 제일 좋고 맛있는 것을 필자에게 가져다주지 않았을까 싶다.
희영이가 갖다 준 상추를 마트나 백화점, 재래시장 등 여러 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다. 배도 그렇게 맛있는 배는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들이 사랑스러운 제자 희영이가 필자에게 준 아주 소중한 선물들이었다.
닭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냄비에 넣고 감자, 양파, 당근 등을 양념장과 버무려 자박하게 끓여 먹는 닭볶음탕. 졸이면 졸일수록 맛있어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잘 발라낸 닭고기를 국물에 촉촉하게 적신 다음 입으로 가져가면 밥 한 공기는 거뜬하다. 종로 골목에서 닭볶음탕으로 5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계림’을 소개한다.
종로3가역에서 10여 분 걸으면 세운상가 옆으로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오래된 밥집과 여관들을 지나다 보면 ‘계림 닭도리탕 원조’라고 써진 간판을 찾을 수 있다. 동대문에 닭칼국수 골목이 있다면 이곳은 1980년대까지 닭볶음탕 골목으로 불렸다.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둘 문을 닫고 사라졌지만 ‘계림’은 차별화된 조리법으로 살아남았다. 50여 년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계림. 지금도 저녁에는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만큼 그 인기가 대단하다.
닭고기, ‘마늘 폭탄’에 빠지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나오는 닭볶음탕(2만2000원, 2인 기준)은 이곳의 유일한 메뉴다. 닭발과 닭 냄새를 잡아주는 엄나무, 각종 채소를 넣고 4시간 정도 육수를 우려낸다. 여기에 양념을 풀고 닭을 넣어 주문 전에 미리 한 번 끓여낸다. 손님상에 올리기 바로 전 마지막으로 감자, 파, 밀떡, 마늘을 넣는다. 이때 소복하게 올라간 간 마늘이 계림만의 맛을 내어주는 인기비결이다. 덕분에(?) ‘마늘 폭탄 닭볶음탕’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닭볶음탕 맛을 좌우하는 마늘에 특별히 신경 쓴다. 전남 해남에서 생산된 마늘만 사용하는데 미리 갈아둘 경우 노린내가 나기 때문에 당일 필요한 양만큼만 갈아 둔다. 하루에 사용하는 양만 해도 10kg이 넘는다. 보기만 해도 알싸함이 느껴지지만, 뜨거운 육수와 어우러지면서 국물을 시원하고 담백하게 해준다. 마늘 향이 주변으로 퍼질 때쯤 잘 익은 밀떡이 국물 위로 떠오른다. 주인장은 “10분 정도 끓이면 떡이 익어서 올라온다. 떡을 먼저 먹으면서 술도 한잔하고 얘기도 나누다 보면 국물이 졸아 닭볶음탕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닭고기에 양념이 잘 스며들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밀떡을 먹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주인장의 귀띔이다.
마무리는 볶음밥 또는 칼국수
닭볶음탕만으로는 아쉽다면 건더기를 다 먹고 난 국물과 어울리는 볶음밥 또는 칼국수를 시켜 먹자. 그야말로 완벽한 마무리다.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나는 볶음밥엔 김 가루와 콩나물이 잔뜩 들어간다. 불에 살짝 태워 양은냄비에 들러붙은 밥알을 긁어먹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다. 단 손님이 많은 저녁 시간엔 볶음밥 주문이 불가능하다. 그 대신 칼국수를 넣어 먹을 수 있으니 아쉬워 말자. 쫄깃한 면발과 잘 졸여진 국물의 조화는 볶음밥 부럽지 않은 맛이니 말이다.
주소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4길 39
예약 및 문의 02-2263-6658
운영시간 11:30~21:50, 일요일 휴무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아래 신조어 중 몇 개나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무지개매너
□ -보스
□쟈갑다
□연어하다
□취존
□돋다
□낭낭하다
□그린라이트
□쿠크
□고나리
무지개매너: 무지개+매너처럼 보여 매너가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무지+개+매너의 합성어로서 매너가 전혀 없는 사람을 말한다.
A 커피 사서 나오자마자 어깨빵 당해서 다 쏟았어.
B 사과도 없이 그냥 갔어? 완전 무지개매너네!
-보스: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애잔보스, 아련보스, 예민보스 등이 있다.
A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상한 거로 꼬투리 잡는 거 있지?
B 뭘 잘못 먹었나, 완전 예민보스네.
쟈갑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로 차갑다, 단호하다는 의미다.
A 전 남친한테 연락해봤어?
B 응. 근데 차단했더라고. 너란 남자… 쟈갑다 쟈가워.
연어하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읽지 않아 밀린 메신저를 처음부터 정독한다는 의미다.
A 너희 지금 무슨 얘기 중이야? 알아들을 수가 없네.
B 어제 메신저로 말했던 거잖아. 아직 안 읽은 거야? 연어하고 와!
취존: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의 줄임말로 개인적 취향을 이해해달라는 의미다.
A 삼겹살에 마요네즈 찍어 먹어봤어? 진짜 맛있어.
B 취존은 하겠다만 그렇게는 못 먹겠다.
돋다: ‘소름이 돋다’의 줄임말이다.
A 눈만 감았다 떴을 뿐인데 연휴가 다 지났더라고. 돋는다, 돋아.
B 진짜 돋네…. 나도 그래.
낭낭하다: 배달 앱에 한 사용자가 자장면을 시키면서 “양 좀 낭낭하게…(생략)”라는 후기를 작성하면서 유행한 단어. 음식의 양을 넉넉하게 달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A 닭볶음탕 네 개 주세요. 감자도 낭낭하게 넣어주시고요~
B 우리 가게 살림 거덜 나겠네~
그린라이트: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을 경우 나타내는 청신호의 의미다.
A 저번에 소개팅한 그 사람이랑 잘돼가고 있어?
B 응. 아직까진 그린라이트야.
쿠크: 잘 부서지는 과자 ‘쿠쿠다스’에서 유래된 말로 쉽게 부서지고 상처받는 상태를 뜻한다.
A 저번에 낸 보고서 상사한테 완전 지적당하고 왔어.
B 쿠크 심장 괜찮아? 단 거 먹고 힘내.
고나리: ‘관리’를 빠르게 타이핑하다 ‘고나리’로 오타가 나면서 생긴 단어. 지나치게 지적하거나 잔소리하는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A 이래라저래라 아주 고나리질로는 세계 1등일 거야.
B 고나리질로는 이길 자가 없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