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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개인화 시대 지나고 개성시대 오다
-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까까머리를 강요당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이른바 ‘탈개인화 시대’였다. 성장이 필요했던 시절 국부 통치 하를 살던 사람들은 가시적 통제를 받아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탈개인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군중 혹은 집단 속에서 때때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하는데 이 현상이 탈개인화다. 멋 부릴 수 없던 앞머리 1cm 수렁 고등학교 때는 ‘스포츠머리’라고 하여 앞머리 1cm가량 기르는 것이 허용됐다. 교문에 들어설 때마다 규율부가 하는 일이 머리 단속. 고학년이 되면 규율부와 친해져서 허용치를 약간 웃돌기도 했으나 그래 봤자 까까머리였다. 교련 선생이 불시 단속이라도 나서면 규정 위반한 학생의 머리 한가운데에 시원하게 바리캉(헤어클리퍼)으로 만든 고속도로(?)가 나는 참사가 빚어지곤 했다. 그 한풀이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장발이 유행했다. 하지만 군사독재 정권은 미니스커트와 함께 장발도 경범죄로 단속했다. 고등학교 시절 사대부고 여학생과 잠시 만난 적이 있다. 사대부고 학생은 긴 머리에 멋진 베레모까지 써서 세련의 극치를 달렸다. 짧은 머리 때문인지 나는 도무지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교복을 벗어 던지고 사복을 입어도 짧은 머리 때문인지 ‘미성년자’라고 이마에 쓰여 있는 것만 같았다. 짧아도 너무 짧은 머리카락 때문에 기운 빠졌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는 물론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못 가는 곳이 많았다. 장발 단속, 또 까까머리, 그리고 유니폼 시절 성년이 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군대에 입대하고 나니 또다시 까까머리가 됐다. 군복까지 입으니 힘을 못 썼다. 민간인과 군인이 같이 걸어가면 ‘사람 한 명과 군인 한 명이 간다’고 했다. 군인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 것이다. 가슴 뛰는 외출 때면 군복을 다려 입고 구두도 광을 있는 대로 내서 멋을 내고 나갔지만, 군인은 군인일 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군인에게는 머물지 않았다. 군대야말로 탈개인화 현상을 강요해야 하는 집단이었다. ‘조국 수호’라는 대 명제 아래 명령에 복종한다. 적과 대치했을 때 탈개인화가 안 되어 있으면 목숨 걸고 적과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건설회사에 다닐 때는 늘 청색 점퍼를 입었다. 회사에서 무상 지급해주는 유니폼이었지만 편했다. 건설 현장이 어디나 그렇듯이 해 뜨면 일하고 해가 져도 불 켜놓고 일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오직 일에만 몰두하라는 분위기였다.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가 가장 편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비군복을 입으면 정체감은 잠시 잊게 되고 만취에 무단 방뇨 정도의 웬만한 일탈은 사회적으로도 인정해주던 시절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유니폼을 입는 것은 탈개인화 현상의 대표적인 통제 수단이었다. 탈개인화와 멀어진 현재의 삶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유니폼으로 탈개인화를 강요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정체성을 유지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던 것, 학교에서 하지 말라던 것 다 무시하고 대중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면 거리낄 것이 없다. 모두 그런 사람들만 모이다 보니 개성이 너무 강해 의견 통합이 어렵다는 문제점에 봉착할 때가 있다. 모임 후 음식점 하나를 골라도 서로 입맛과 취향이 달라 음식점 하나 결정도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탈개인화 현상을 겪어 보지 않은 또래 여성은 의견 일치가 더 어렵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중·고교 학생의 교복과 두발 자유화를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시대의 요구사항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솔하는 교사들은 골머리 꽤 아플 것이다. 지나고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고 보니 통솔하는 입장에서 탈개인화가 일정 부분 좋은 부분이 있었구나 싶다.
- 2018-10-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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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교생의 두발 자유화 뉴스를 보고
- 서울시 교육청에서 중고교생 두발 자유화를 선언했다. 머리 길이 뿐 아니라 염색과 파마도 허용한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다. 단정한 학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온통 멋 부린 울긋불긋 패션을 보게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나는 약간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인지 학생은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좀 켕기는 구석이 있기도 하다. 우리 학창시절엔 귀밑머리 3cm 단발머리를 지켜야만 했다. 그걸 좀 길어 보이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애교머리도 살짝 내렸다. 그땐 그렇게 머리를 기르고 싶었으면서 지금 아이들이 마음대로 두발 자유화를 한다니까 언짢은 기분이 드니 이해 못 할 마음에 웃음이 난다. 우리 시절 중·고교 단발머리란? 아침 등교 시간. 교문에 길게 서서 우리를 감시하는 규율반 언니의 눈길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실 핀으로 앞머리를 고정하고 3cm보다 조금 긴 머리를 걸릴까봐 조마조마 눈치 보며 교정에 들어섰다. 재수 없으면 규율 반 선배에게 걸려 경고를 받거나 조금 잘리기도 했다. 그땐 왜 그렇게 머리를 기르고 싶었는지. 우리 학교에서 무용반 아이들은 단발 규율에서 제외였다. 머리를 길러 양 갈래로 땋는 것을 허용했다. 어찌나 긴 머리 무용반 친구들이 부러웠던지 결국 무용반에 들어갔다. 그런데 머리를 기르는 건 대외 무용경연대회에서 입상한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경연대회에 나가보지 못한 나는 머리를 기를 수가 없었던 슬픈 기억이 있다. 그렇게 중·고교 6년을 짧은 단발머리로 지내다 드디어 대학생이 되어서 한풀이를 했다. 긴 머리 전성시대 고교 졸업 후 결혼 전까지 머리를 한 번도 자르지 않고 길렀다. 허리까지 치렁치렁(?) 생머리를 고수했다. 한창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 스타일을 따라 하던 때라 앞가르마를 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다니는 게 즐겁고 자랑스러웠다. 보다 못한 엄마가 10cm 자를 때마다 용돈을 올려주겠다고 제의하셨다. 그래도 꿋꿋하게 머리를 길렀다. 오래된 앨범 속에서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온 사진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학창시절에 그렇게 머리가 기르고 싶었으니 요즘 아이들의 머리카락 자유도 이해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염색과 파마까지 허용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학부모의 여론도 걱정스러운 쪽으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단다. 특히나 파마나 염색비용이 매우 비싸다. 두발자율화가 허용되면 미용실에서 몇 십 만원하는 머리를 하는 학생도 생길 것이다. 학생 간에 위화감도 조성될 수 있다는 공론이다. 염색이나 파마약이 건강에 좋지 않다. 두발 자유화에 대한 의견이 많은 만큼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학생의 인권도 존중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내 의견으로 학창시절만큼은 머리 길이는 자유화해도 염색이나 파마 등으로 너무 어른스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어른 흉내를 내지 않아도 가장 예쁜 때가 바로 중·고교 시절이기 때문이다.
- 2018-10-0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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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멸감이 불러온 파국, <여교사>
- 김태용 감독 작품이다. 계약직 교사 효주 역으로 김하늘, 이사장 딸 혜영 역에 유인영, 남학생 재하 역으로 이원근이 주연으로 나온다. 스릴이 넘치고 심리전이 돋보이는 공포 영화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점도 흥미롭다. 효주는 계약직 교사로 정교사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장 딸 혜영이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성격까지 사근사근한 혜영은 학교 선배인 효주에게 다가서려 하지만, 속이 뒤집어져 불편한 효주는 혜영에게 못되게 군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체육관 뒤편에서 무용특기생 고교 3년인 재하와 혜영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혜영의 약점을 손에 쥔 효주는 혜영을 굴복시키고 재하마저 빼앗는다. 따로 발레 과외까지 시키며 재하를 자신의 남자로 만든다. 그러나 재하가 콩쿠르에 나간 날 객석에 혜영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재하는 혜영을 계속 만나고 있었다. 재하가 효주를 여자로 대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혜영의 사주이기도 했다. 둘 다 한 남자를 상대로 불륜을 저지른 것이므로 비긴 셈이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효주는 반대로 코너에 몰리게 된다. 그래도 혜영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려 했으나 혜영은 이미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했다며 더 이상 약점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효주는 혜영의 입김으로 재임용 명단에서도 제외된다. 결국 효주는 혜영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용서를 빈다. 혜영은 다시 승자가 되어 효주를 가지고 논다. 어차피 교직 생활을 오래할 생각도 없었고 곧 약혼해서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던 혜영은 재하는 미국 가기 전까지의 심심풀이 상대였다고 말한다. 혜영은 집에 찾아온 효주에게 이것저것 시키며 부려먹는다. 차 좀 끓이라고 시켜놓고 소파에 길게 누워 승자의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 효주는 끓는 물을 그대로 혜영의 얼굴에 붓는다. 마침 재하가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경악한다. 효주는 학교에 가서 여유를 즐긴다. 경찰차가 학교에 들이닥친다. 마지막 효주의 행동만 빼면 이 영화는 남자를 사이에 둔 여자의 질투, 가진 자에 대한 질투, 그리고 너무나 위험한 제자와의 불륜 등으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주는 심리극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남교사와 여자 제자 간의 불륜은 종종 기사에도 등장하지만, 여교사와 남자 제자 간의 불륜은 드문 예다. 옛날 같으면 사회적인 지탄 및 혹평을 받았을 만한 소재이지만,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이 정도의 영화 스토리는 무난하다. 우리 시니어들은 고등학생 시절 모두 까까머리였다. 이상하게도 기를 죽게 만드는 머리였다. 그런 모습으로 여교사와의 사랑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유화가 됐다. 영양 상태도 좋아 고등학생도 꽤 남성적인 매력을 보인다. 여교사들과 나이 차이는 있지만 서로가 매력적인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2017-05-26 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