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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성한 가을을 닮은 꽃, 큰꿩의비름!
- 어느덧 9월입니다. 폭우와 폭염의 8월은 이제 지난 일입니다. 9월은 8월보다 단순히 숫자 하나를 더하는 달이 아닙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절기가 바뀌는 달입니다. 하늘은 나날이 높고 푸르러지고 오곡백과는 무르익어갑니다. 이즈음 천고마비의 가을을 닮은 듯 역시 하루가 다르게 싱그럽고 풍성하게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중부 이북의 높은 산 너럭바위 위에서 짙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짙은 홍자색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척박한 서식환경에도 넉넉하고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가을의 전령사’ 같은 야생 다육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큰꿩의비름입니다. 둥근잎꿩의비름과 자주꿩의비름, 새끼꿩의비름 등 국내에서 자라는 8종의 꿩의비름속 식물의 하나인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하순 하나둘 피기 시작해 10월 초까지 비교적 긴 기간 크고 화려한 꽃송이를 초가을의 선물로 내놓습니다. 키는 30~70cm로 비교적 큰 데다, 마주나거나 돌려나는 달걀 또는 주걱 모양의 잎과 줄기 또한 두툼한 다육질로 진화하는 등 전체적으로 몸집이 큰 편입니다. 잎과 줄기의 진화는 바위 겉 등 건조한 자연환경에서의 생존이 가능토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꽃차례 또한 커다란 편인데, 꽃잎과 꽃받침이 각각 5개인 별 모양의 작은 꽃이 수십, 수백 송이가 모여 평평한 쟁반 모양의 꽃다발을 만들며 줄기 끝에 달립니다. 이른바 하늘을 향해 둥글게 퍼진 산방상(繖房狀) 꽃차례인데, 가분수처럼 줄기에 비해 과도하게 커 바람이 조금만 거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해서 큰꿩의비름이 키나 몸집이 클 뿐 아니라, 여느 꿩의비름속 식물보다 꽃차례가 큰 데서 연유한 이름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처음 피었을 때 연분홍색이던 꽃 색은 가을이 깊어가면서 점점 더 짙은 홍자색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암갈색으로 여물어갑니다. 같은 돌나물과 꿩의비름속 식구인 둥근잎꿩의비름은 이름대로 동그란 잎 모양에서 쉽게 구별됩니다. 야생화 애호가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는 둥근잎꿩의비름은 주왕산 등 한정된 지역의 바위 절벽 등에서 줄기를 밑으로 늘어뜨린 채 맨 끝에서 짙은 홍자색 꽃을 피웁니다. 꿩의비름은 꽃 색이 희거나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색이고, 세잎꿩의비름은 백록색이며, 새끼꿩의비름은 황백색이어서 각각 차이가 납니다. 자주꿩의비름은 줄기가 붉은빛을 띠는 특징을, 그리고 키큰꿩의비름은 수술의 꽃밥이 황색인 특징을 보입니다. Where is it? “경기 이북에 나며 만주에 분포한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설명이다. 실제로는 서울·경기 지역은 물론 충청도 등 중·남부 지역에도 자생한다. 다만 야생화 동호인과 사진작가 등이 가장 많이, 그리고 긴 세월 동안 큰꿩의비름을 보기 위해 찾았던 자생지는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이다. 척박한 자연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성을 쌓은 커다란 바윗돌 사이사이에 뿌리를 내린 채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홍자색 꽃송이를 풍성하게 피우는 모습이 보면 볼수록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한 시인은 긴 원형의 성벽에 핀 큰꿩의비름이 광폭의 스크린에 비친 영화의 주인공 같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인기 자생지는 강화 석모도 해명산. 서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 너럭바위에서 군락을 이뤄 피어 있는 큰꿩의비름은 광활한 가을 하늘과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더없이 호쾌한 장관을 선사한다. 충남 서산의 가야산도 큰꿩의비름이 정상 일대 전망 좋은 곳에 뿌리를 내린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 2020-08-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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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산책] 통곡하고 싶은 계절, 사무치게 그리운 임을 닮은 꽃 '둥근잎꿩의비름'
-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불면의 고통을 겪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경북 청송으로 가라고 권합니다. 사통팔달 고속도로가 뚫린 요즘에도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왕복 2차선 지방도 등을 한 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 하지만 옛 도로변에 줄지어 늘어선 과수원, 과수원마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사과 향을 맡아보고, 또 주왕산 천길 바위 절벽 곳곳에서 진홍색으로 피어나는 둥근잎꿩의비름과 눈 맞춤 하는 사이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오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한 송이 야생화가 마음의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도 합니다. 자연의 힘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둥근잎꿩의비름. 매년 9~10월 줄기 끝에 우산 모양으로 빽빽하게 달리는 홍자색 꽃이 절벽 아래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환상적으로 아름답지만, 정작 십자 모양으로 마주 달리는 동그란 잎이 꽃 못지않게 예쁘고 개체의 특장을 말해준다고 해서 식물 이름의 앞자리(‘둥근잎’)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통곡하고 싶은 가을’이란 한 방송 진행자의 가을 찬사에 매료되어 있던 때 이 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곤 ‘통곡하고 싶은 야생화’라는 나만의 별칭으로 마음속에 저장했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척박한 바위 틈새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무엇을 자양분 삼아 짙 은 홍자색 꽃을 피워내는지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로웠습니다. 이름 그대로 잎이 둥글고 도톰한 게 수분을 다량 저장해 긴 가뭄도 충분히 견딜 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가뭄은 버틸 수 있으나 인간들의 어리석은 탐욕은 이겨내기가 쉽지 않아, 등산로 주변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는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처음 주왕산에서 발견된 뒤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줄 알았는데 이후 연해주 및 캄차카에도 같은 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인근 팔각산 등지서도 자생지가 확인되면서 2012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에서 해제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한 민간 식물원에서 종자를 따다 번식하는 데 성공해, 수천 포기를 주왕산에 인공 증식하기도 했습니다. 꿩의비름, 큰꿩의비름, 자주꿩의비름, 세잎꿩의비름이 같은 돌나물과의 비슷한 식물입니다. Where is it? 경북 청송의 주왕산과 영덕의 팔각산은 야생화 애호가들에겐 성지와 같은 자생지다. 주왕산의 경우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상의주차장을 출발해 대전사를 거쳐 제1폭포로 오르면서 등산로 양편 절벽에서 만날 수 있지만, 꽃과의 거리가 멀고 높아 사진 촬영은 쉽지 않다. 해서 처음부터 절골 코스를 택하는 게 낫다. 게다가 절골 코스의 경우 차로 2~3분 거리에 유명한 ‘주산지(注山池)’(사진)가 자리하고 있어 인근에서 숙박했거나 이른 새벽 도착한 경우, 본격적인 꽃 탐사에 앞서 주산지를 들르면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이어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 절골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골계곡으로 들어서면 된다. 5분 정도 오르면 왼편에 높고 장대한 절벽이 나타나는데,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둥근잎꿩의비름이 꽃만큼이나 예쁜 잎을 가지런히 늘어뜨린 채 홍자색 꽃을 피운 걸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 계곡이 끝나는 지점까지 1시간여를 천천히 걸으면서 절벽 곳곳을 살피면 된다. 경북 영덕의 팔각산도 꼭 가봐야 할 자생지. 영덕군 달산면 옥산리 옥계계곡유원지 관리사무소나 영덕산마루펜션을 내비게이션에 치고 가면 된다. 지금은 폐쇄된 관리사무소 옆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 철제 다리를 건너 20분 정도 팔각산을 오르다 오른쪽 산성계곡 쪽으로 빠지면 된다. 계곡 양편 절벽 여기저기 둥근잎꿩의비름이 풍성하게 꽃 피운 것을 만날 수 있다. 야생화 칼럼니스트 김인철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 산책(ickim.blog.seoul.co.kr)'을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푸른행복)을 펴냈다.
- 2014-11-18 0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