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 인구 중 80세 이상은 10명 중 1명이다. 65세 이상은 곧 3명 중 1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시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이 글에서는 정년퇴직 후 경험이 없는 분야인 수제 맥주 회사를 창업한 일본의 65세 쓰카코시 씨 이야기를 소개한다.
도전의 시작 : No Play No Error
37년간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60세에 교장직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쓰카코시 토시노리(塚越敏典) 씨. 퇴직 후 첫 1년 동안은 미술관에서 주 4일 근무하며 생활했는데, 어느 날부터 평범한 일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단다.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도전한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질문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무언가 흔적을 남겼는가?’였다. 60년 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남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질문은 ‘평생을 살아온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였다.
“저는 유키시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평생 교사로 근무하며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시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키시는 일본 술, 배, 토마토, 포도 등으로 유명해요. 일본 술은 오래된 경쟁 업체가 많아서 이 지역 과일을 활용한 맥주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친구의 권유로 참가한 양조 체험 투어에서 처음으로 맥주 제조를 접한 쓰카코시 씨는 자신이 만든 맥주를 지인들에게 시음해보게 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는 고향인 유키시에서 수제 맥주를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역 활성화에도 공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쓰노미야시에 있는 맥주 공장에서 세 달 동안 양조법을 배운 뒤 2019년 수제 맥주 회사 ‘유키 맥주’를 창업했다.
지역 특산물 담은 유키 맥주
인구 약 5만 명의 유키시는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이바라키현 서쪽의 작은 도시다. 유키시에서 쓰카코시 씨가 만드는 유키 맥주의 특징은 뭘까?
“과일의 특징을 살린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많아요. 예를 들어 배 원료를 사용한 맥주와 사과 원료를 사용한 맥주 등 계절에 따라 출시되는 제품도 있습니다. 우리의 대표 상품 브랜드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가장 인기 있는 I.P.A 맥주가 있어요. 인디아 페일 에일인데요. 홉 함량이 풍부해 쓴맛이 강하며 알코올 도수도 높습니다. 두 번째는 쓰무기 에일이라고 하는데, 유키시에서 유명한 유키 명주를 활용한 고유 맥주입니다. 명주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서 만든 천인데, 고치를 만드는 누에는 뽕잎만 먹지요. 쓰무기 에일은 이 뽕나무 열매(오디) 원료를 사용해 오직 이곳에서만 생산됩니다. 세 번째 KISS ALE라는 맥주는 오야마시의 딸기 농장에서 재배한 스카이베리 원료를 사용하여 만든 인기 있는 맥주입니다.”
새로운 도전에도 자금은 필요하기 마련이다. 매일 손익을 따지는 엄격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가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창업 자금은 퇴직금과 은행 대출을 활용했고,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플랫폼에서 다수의 개인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통해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초기 목표 금액은 100만 엔이었지만 실제로는 175만 엔을 모았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가르쳐온 수많은 제자들로부터 후원을 받았으리라 예상했는데, 역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전의 어려움과 성취의 즐거움
경영 경험이 한 번도 없었음에도 제2의 커리어로 창업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사람 관리가 가장 어려웠어요. 이전에도 항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지만, 사장으로서 직원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을 고용하고 직접 관리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일부 직원을 고용해봤는데, 내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때도 있어서 그들과의 협업을 종료해야 했습니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인사관리가 가장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듯이, 깊은 물 속은 들여다볼 수 있어도 사람 마음은 좀처럼 알기 어렵다. 적합하지 않은 인재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이른바 ‘미스 매칭’을 겪는 기업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맥주 회사를 창업해 좋았던 점은 뭐가 있는지 물었다. 쓰카코시 씨는 교직원 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늘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 학교에서 가르치던 경제나 세금 관련 내용을 현장에서 적용해보며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점도 좋단다. 이론보다 실무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했다.
유키 맥주에서 만드는 수제 맥주 12종은 각각 330ml 병당 600엔(약 5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대기업에서 만드는 맥주의 약 3배 가격이다. 아무래도 수제 맥주는 소량 생산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어떤 판매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특별한 전략은 없지만, 대기업 제품과 차별화되는 ‘수제 맥주’만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맛이 좋으면 반드시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SNS와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어요. 아직 서툰 부분도 있지만요….”
지역에 기여하는 삶
유키 맥주는 지난해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이 됐다. 개인사업자로 일할 때는 수익이 조금 나기도 했지만,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설비를 늘리고 창고를 만드는 등 투자를 해 대출 부담이 늘어난 상태다. 쓰카코시 씨는 매달 상환해야 할 대출금을 생각하면 잠을 이루기도 힘들 만큼 압박을 받지만,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니 잘 헤쳐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쓰카코시 씨를 교사 시절부터 알고 지낸 학부모와 제자들이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정년퇴직하면 교육과는 다른 분야에서 일해보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제자들과 지역 주민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지금까지 유키 맥주를 4년 동안 운영해올 수 있었던 건 결국 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보답하고자 쓰카코시 씨는 매일 아침 지역에서 쓰레기 수거 봉사활동을 한다. 쓰레기를 줍다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을 마주칠 때면 “너희들 나중에 성인이 되면 반드시 유키 맥주를 마셔야 한다!”고 외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교장직을 맡은 경험이 있기에 아이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것도 그가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정년 전에는 항상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요즘은 혼자서 종일 일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껴요. 늘 라디오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대화할 기회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아침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잠시나마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하루를 더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누가 저에게 부탁을 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예요.”
쓰카코시 씨는 유키 맥주가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바란다. 손자가 성장해 자신의 사진을 공장 벽에 걸어두고 “이 사람이 창업자고 나는 3대째야”라고 말해주면 좋겠단다. 할머니·할아버지가 된 노년층이라면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장면이다. 내가 하던 일을 손자·손녀가 이어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결합해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꾸려나간다면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쓰카코시 씨는 수제 맥주 양조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전하고 있다. 맥주를 양조하며 느낀 창의적인 즐거움과 사회적인 만족감이 삶을 채워준다. 그는 노후에도 변화와 도전을 통해 뜻깊은 인생을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노 플레이 노 에러!’ 아무것도 하지 않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내가 존재했다는 걸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창업으로 회사를 세우는 길을 택했습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가치를 남길 수 있을 거예요. ‘예순이 지났는데, 앞으로 뭘 하겠어?’가 아니라 ‘앞으로 40년이나 남았네’라며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실천과 도전의 중요성’을 가르친 그는 현장에서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는 롤모델이 되기를 자청했다. 정년퇴직 후에도 ‘노 플레이 노 에러’ 정신으로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의 삶을 통해 지역사회 주민들과 소통하며 사회에서 만족감을 찾아 기여하는 삶이 의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50~60대 샐러리맨이 정년퇴직 후에 1인 창업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년 후 기존 기업에 재고용되는 경우 월급과 직위가 대폭 낮아지고 단순 업무로 인해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 1인 창업을 하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소규모로 시작하니 리스크를 줄이고 평생 동안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창업할 때 동료나 후배에게 함께 일하자고 권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신중해야 한다. 성공하면 이익 분배로 갈등이 생기고, 실패하면 책임을 떠넘기며 헤어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년 후 창업은 혼자 개척해 나가는 것이 철칙이라고 조언한다.
그렇기에 쓰카코시 씨의 유키 맥주 창업기는 100세 시대에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는 이야기다. 정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성장하는 삶의 가치를 더 많은 분들이 나누기를 기대한다.
소맥이 진리로 통하는 한국 주류 시장에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뛰어든 이대로 댄싱사이더 컴퍼니 대표를 만났다. 그는 양조장에서 사이더라는 술을 만들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를 전파하고자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이대로 대표는 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냈다. 그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창업을 했다. 크래프트(수제) 사이더 브랜드 ‘다운이스트 사이더’다. 사이더는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사과의 달콤함, 탄산의 상쾌함, 높지 않은 알코올로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10년 이후 전역에서 크래프트 사이더 붐이 일었고, 사이더 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지금은 많은 이들이 즐기는 주류가 됐다. 친구들의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며 이 대표는 사이더 시장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사이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왜 한국에서는 아무도 만들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국내에는 ‘사이더’라는 주류 카테고리조차 없었죠. 사과와인을 만드는 분들은 있었지만, 사과 맛이 진하면서 청량감도 좋은 대중적인 사이더를 만드는 곳은 없었어요.”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금융권에서 일하면서도 이 대표는 사이더 시장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열정만 가지고 창업을 한 게 아니라 5년이라는 시간을 공들여 고민하고 시장을 조사했다. 2013년 즈음만 하더라도 다양한 주류 규제와 주세법 때문에 국내에서는 크래프트 주류 시장이 성장하기 어려웠다. 2016년 이후 수제 맥주에 대한 규제가 개선되면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늘기 시작했다. 사이더가 우리나라에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한 이 대표는 공동창업자 구성모 이사와 함께 2018년 충주에서 댄싱사이더를 창업했다.
사과 혁명을 꿈꾸다
이대로 대표는 소맥 위주의 우리나라 주류 시장에 애플사이더로 일으킬 ‘사과 혁명’을 꿈꿨다.
댄싱사이더 컴퍼니 직원들은 직함 대신 서로를 ‘선수’라고 부른다. 소비자는 ‘댄서’다. 이 대표는 선수가 만든 사이더의 매력에 댄서가 자신의 방식대로 춤추며 즐긴다는 의미를 ‘댄싱사이더’라는 회사 이름에 담았다. 그의 말처럼 사이더를 즐기는 데 정답은 없다. ‘Drink Different’라는 댄싱사이더의 슬로건처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유롭게 춤추며 즐기면 된다.
“춤이라는 장르는 정답이 없잖아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요. 경직된 회식 자리에서 소맥만 마시는 우리 술 문화를 외국의 파티 문화처럼 편하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강압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시고 싶은 술을 내가 원하는 만큼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죠.”
댄싱사이더의 양조장은 충북 충주에 있다. 충주는 사과가 맛있기로 유명하지만 물이 좋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원물의 퀄리티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충주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사과 품종의 70%는 ‘부사’다. 해외에서는 디저트로 사용하는 사과로 그만큼 당도가 좋아 설탕이나 인공 재료를 넣지 않고도 사과 본연의 단맛을 구현할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나라 주세법상 사이더는 ‘과실주’에 속한다. 이 대표는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사과를 아끼지 않았다. 제일 처음 선보인 ‘스윗마마’와 ‘댄싱파파’는 330ml 한 병에 사과가 2개나 들어간다. 최근 새로 개발한 사과 증류주 ‘댄싱22’는 375ml인데 여기에는 7개의 사과가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농산물을 제품에 녹여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사이더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까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런 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댄싱사이더 제품이 해외의 사이더와는 다른 ‘한국적인’ 사이더라고 말한다.
“해외 사례를 많이 공부했고 탐방했어요. 우리나라에서 나는 사과와 농산물을 원물로 사용하는 우리만의 강점은 무엇일지 고민했죠. 해외의 맛을 그대로 낸다면 과연 한국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면서 국산 농산물 특징을 살리는 맛에 더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댄싱사이더의 8개 제품은 뉴욕, 미시간, 영국, 일본, 한국 등 5개 국제 사이더 품평회의 총 2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맛과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한국적인 사이더의 맛을 구현하고자 했기에 더 값진 결과다.
‘사업이 아니라 운동을 시작하라’
‘창업의 시대, 브루독 이야기’라는 책의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사업을 시작하는 주된 목적이 돈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이대로 대표는 “회사의 바이블 같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댄싱컴퍼니에 합류하는 모든 직원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
“재미있는 비즈니스 책이지만, 성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철학이 다 나와 있어요. 크래프트 주류 회사로서 이 책에서 말하는 기본과 반대로 간다면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한 이유는 우리 회사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니 참고해달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 점을 지적해달라는 마음이에요.”
브루독은 2010년 스코틀랜드에서 탄생한 수제 맥주 회사다. 2명이 설립한 회사지만, 크래프트 맥주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580명의 직원을 이끄는 회사로 성장했다. 전 세계에 바를 열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 브루독의 사명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맥주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맥주 문화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대로 대표는 이런 브루독의 철학이 말하는 ‘본질’과 ‘가치’에 공감한다. ‘한국적인 맛과 멋에 집중한 유일무이한 애플사이더 브랜드로서 대한민국 애플사이더 혁명을 일으키는 데 앞장선다’는 가치를 세우고 국내 사이더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한국에 없던 것이면서도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회사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이익을 내야 하지만, 이익이 회사의 목적, 즉 존재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미션은 대한민국에서 사이더 고객을 계속 유치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주류를 생산하는 제조회사이기에 제품의 품질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저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댄싱사이더의 브랜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이대로 대표는 댄싱사이더의 양조팀이 발효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창업 후 3년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앞만 보고 달리면서 재미있게 일했다. 창업 5년 차인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외형적으로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진 경제 상황은 댄싱사이더도 피해가지 못했다. 자생하는 힘을 키우고 싶어 투자를 받기보다 스스로 시장을 헤쳐온 그다. 매년 성장하다 창업 후 첫 고비를 겪고 있다. 이 대표는 “돌아보니 그동안 운과 타이밍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댄싱사이더는 소주나 맥주처럼 대중적인 주류를 만드는 회사가 아님에도 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동안 외형적으로 성장해왔다면 앞으로는 밀도를 높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댄싱사이더를 시작할 때 가진 목표, 꿈, 비전이 있는데,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결정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현재에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직원이 늘어나고 회사도 커지면서 무게감을 더욱 느끼고 있어요. 최근에는 처음으로 외부 투자도 받았습니다. 다음 단계로 올라서려면 질적인 성장 없이는 힘든 것 같아요.”
이 대표는 댄싱사이더의 가치를 실행하기 위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잘 다져둔 땅에 집짓기를 잘하려면 기초를 잘 올려야 하는데, 지금이 그 시기라고 생각한다. 국내 사이더 시장의 개척자로서 때로는 누군가 함께 경쟁하며 시장을 넓혀갔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그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다. 이 대표에게 금융권에서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는 없냐고 묻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와닿는 시기”라는 답을 내놨다.
“지금 편하면 나중에 힘들고, 지금 힘들면 나중에 편하더라고요. 언제 힘들고 언제 편할 거냐의 문제 같아요. 국내외 성공 사례들을 보면 최소 10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지금 잘하고 있는 회사들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렸죠. 처음부터 장기전이라 생각하고 뛰어들었어요. 단지 가만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미래 도약을 위해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건강기능식품으로 각종 영양소를 보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과대광고, 잘못된 정보에 속거나 몸 상태에 맞지 않는 제품을 무턱대고 구매하기도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건강기능식품, 현명하게 소비하기 위해 알아야 할 ‘약 이야기’를 담았다.
Q 건강기능식품으로 오해하는 일반식품은 무엇일까?
A 크릴오일은 식용 유지를 캡슐 형태로 제조해 어유나 기타가공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방을 녹이는 오일’, ‘혈관 청소부’ 같은 표현으로 마치 혈행 관리, 면역 기능, 항산화 등에 지대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제품은 모두 기능성이 입증되지 않은 일반식품이다. 최근 건강 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진 타트체리 제품도 마찬가지. 수면 유도, 통증 완화, 염증 제거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광고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허위·과대 광고다. 유사한 형태인 클렌즈주스도 영양학적으로 과채주스와 차별성이 없고 과학적으로 다이어트와 디톡스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 건강기능식품은 제품 앞면에 ‘건강기능식품’ 마크가 표기돼 있으므로 제품 정보를 확인하면 알 수 있다.
Q 영양·기능 정보 속 ‘도움을 줄 수 있음’과 ‘도움을 줌’은 어떤 차이가 있나?
A 건강기능식품의 영양·기능 정보를 보면 ‘에 필요’, ‘에 도움을 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에 필요’는 영양소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함이고, ‘에 도움을 줌’과 ‘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은 특정 생리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둘에는 차이가 있다. ‘에 도움을 줌’은 식약처가 1등급 생리활성 기능성 원료로 인정한 것이다. 해당 기능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비교적 확실하다는 증거다. ‘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은 1등급보다는 과학적 근거가 약해 2등급으로 분류된 기능성 원료에 표기된다. 등급은 원료나 성분의 종류에 매겨지기 때문에 제품이 1등급, 2등급이라는 뜻은 아니다. 같은 원료, 성분이라면 같은 등급으로 표시된다.
Q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보조제, 부작용은 없나?
A 현재 식약처가 다이어트 보조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인정한 성분은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HCA), 공액리놀레산(CLA, 녹차 추출물·키토산)이다. 개별인정형 기능성 원료로는 L-카르니틴 타르트레이트, 보이차 추출물, 레몬밤 추출물 혼합분말, 와일드망고 종자 추출물, 그린커피빈 추출물, 풋사과 추출물 애플페논, 히비스커스 등 복합추출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성분은 가르시니아다. 탄수화물 흡수를 막아 지방으로 전환되는 데 필요한 지방 전환 효소를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가르시니아를 섭취한다고 해서 먹은 탄수화물이 사라지는 건 아닌 데다, 부작용이 따르기도 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횡문근융해증, 황달, 위장관 통증, 설사, 수면장애 등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당뇨, 고지혈증을 앓고 있거나 심장과 간이 약한 사람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같은 연구 결과 가르시니아 복용 후 급성간염, 간부전 등의 간 손상을 겪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급성심근염·심장빈맥이 나타난 경우도 있다.
Q 탈모에 효과 있다는 영양제, 먹을지 말지 고민이라면?
A 탈모의 경우 사람마다 원인이 다르고 남성형, 여성형, 휴지기, 원형 등 종류가 많기 때문에 영양제를 먹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유튜브 채널 ‘근알의’를 운영하는 김연휘 닥터에비던스 대표는 “최근 비오틴, 맥주 효모 등이 탈모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떠돌고 있지만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전했다. 특히 남성형 탈모는 호르몬으로 인해 생기는 질환이기 때문에 영양제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잘못된 정보로 치료를 지체하기보다 병원을 방문해 본인의 상태를 진단하는 편이 좋다.
Q 기한 지난 약, 어떻게 처분해야 하나?
A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은 표기된 기한이 지나면 효능·효과를 믿을 수 없다. 눈으로 보기에 모양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성분이 변질됐을 가능성이 있다. 기한이 지났다면 폐기하는 것이 좋지만, 무턱대고 하수구나 변기에 흘려버리거나 일반 쓰레기로 배출하면 환경을 오염시킨다. 오래된 약은 근처 약국에 설치된 폐의약품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 다만 제품 그대로가 아니라 알약은 알약끼리 한 통에 모아서, 액상은 큰 병에 모아서 갖다주는 것을 권장한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요즘 50대 이후 연령에서 옛 애인 찾기가 유행이란 소리는 들었지만 내가 그 대상이 될 줄이야. 내가 그의, 그가 나의 옛 애인이라고? 콧방귀 나올 소리 아닌가. 개 풀 뜯는 소리 작작하라지. 그와 나는 연인이 아니라 약혼한 사이였으니까. 아련하고 쌉싸름한 추억의 대상은 고사하고 악연도 그런 악연이 없었던 사람들끼리 세월 지났다고 관계를 미화해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 작자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시도를 하는가. 폭력적일 만큼 일방적이던 태도가 20년이 지나도 그대로라면 이번에는 내 쪽에서 모지락스럽게 멱살을 틀어쥐고 따져볼 기회가 온 건가? 찾으려고 들면 바로 찾을 수 있으련만 옛 애인 찾기 운운하며 접근해온 것이 장난스럽게 들려 더 불쾌하다. 무엇보다 이제 와서 날 찾아 뭘 어쩔 거라고.
상견례 날의 비극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님을 모시는 상견례 날. 가뜩이나 해 짧은 겨울철, 시간을 저녁으로 잡은 것부터가 불행의 서막이었을까.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그날도 오후 4시경부터 내리던 눈이 약속 시간인 7시가 가까워올 무렵에는 제법 쌓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점심에 친구들에게서 축하 술을 몇 잔 받았다는 그가 염려되어, 그의 직장으로 내가 가서 함께 상견례 장소로 가기로 했다. 내 차를 그의 회사 주차장에 세워두고 그의 차로 같이 가면 눈길 운전에도 다소 안심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날 만약 각자 따로 이동했더라면, 그가 낮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눈이 오지 않았더라면, 아니 차라리 폭설이 쏟아져서 약속이 취소되었더라면, 다 관두고 애초 그와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게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긋지긋하고 질긴, 죽어야 끝이 날 만약에 게임. 만약에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뜬금없는 연락은 얼마나 잔인한가.
“운전할 수 있겠어? 내가 할까?”
“무슨 소리야, 얼마 안 마셨어. 그리고 지금은 다 깼어. 자기가 구태여 온다고 하길래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라고 한 거지, 나 때문에 올 필요는 없었어.”
아닌 게 아니라 그에게서 술 냄새는 거의 맡을 수 없었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설마 낮에 퍼마셨을 리는 없잖은가.
퇴근길 차량들이 도로로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다. 그날 나는 마사지도 받고 미용실에도 가느라 오전 근무만 했기 때문에 퇴근 풍경이 낯설고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모습처럼. 그날 이후 실제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눈길 안전 운전 당부와 도심 정체 구간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 또한 눈발처럼 쏟아졌다.
“똑같은 소리 짜증 나. 웬 호들갑이야. 별로 많이 오지도 않는데.”
거칠게 라디오를 끄더니 반복되는 기상 방송에 대한 반감처럼 그가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순간 충격으로 어찔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탓인가? 적당히 마실 일이지, 다른 날도 아니고 상견례 자리에 나오실 어른들께 경솔하고 무례한 태도 아냐? 신경이 예민해진 나도 슬며시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눈 내리는 퇴근길과 맞물렸으니 혹여 늦는다고 해도 양해를 구할 수 있으리라, 차라리 함께 이동하는 것이 잘된 일’이라 생각됐다. 둘이 같이 늦으면 양가 중 어느 한쪽이 불쾌할 일도 없을 테니까.
내 기억은 거기서 더 나가지 못한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눈을 뜬 곳은 상견례장이 아닌 대형 종합병원. 우리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박았고, 놀라운 것은 사흘이 지나서야 내가 눈을 떴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3일간 내 인생이 장애자의 길로 방향을 트는 동안 경미한 부상을 입고 응급처치를 받은 그는 곧장 귀가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불구로 만든 그, 입을 열다
내 두 다리의 감각이 사라지듯이 그렇게 그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고, 20년이 지난 엊그제 옛 애인을 찾겠다며 뜬금없는 연락이 왔으니…. 처음에는 당장 만날 것처럼 굴더니 며칠 후에 이메일을 보내왔다.
“경애 씨,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인지요.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요즘 같은 세상에 알려고만 들면,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쯤이야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알 수도 있지만 경애 씨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무슨 염치로, 무슨 면목으로 경애 씨 앞에 나타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야 실토하지만, 그날 우리의 상견례 날 점심에 친구 녀석들과 술을 마셨던 게 아니었어요. 하필 그날 헤어진 여자가 찾아왔더라고요. 3년 동안 만났던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났던 여자였지요. 경애 씨도 그 여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테지만, 자세히 묻지 않길래 나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지요.
나와 헤어지자마자 다른 남자와 결혼한 걸 보면 나를 만나고 있을 때 이미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선 그 남자, 그러니까 남편과 바로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혼인신고도 하기 전이었다며. 그날 나를 찾아왔을 때는 결별한 지 반년이 흐른 후였지요. 이혼 사유는,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 이혼이랄 것도 없지만, 남편이 지독한 마마보이였다나 봐요.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하루는 남편의 샤워 후 벗은 몸을 시어머니가 버젓이 닦고 있더래요. 남편과 시어머니 두 사람 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너무나 익숙한 표정으로. 기겁을 하고는 그날로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를 다시 받아주면 안 되겠냐고 합디다. 하필 우리의 상견례 날에. 많이 혼란스럽고 번민이 되더군요. 내가 아무 미련이 없었다면 속된 생각으로 ‘날 버리고 가더니 쌤통이다, 고소하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더라고요.
버림받았다는 마음에 그간 친구처럼 지내던 경애 씨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서둘러 약혼할 때만 해도 그 사람에게 복수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데 막상 혼자 되어 다시 나타나니 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그저 연민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었던 거죠. 그만큼 저의 미련이 컸던 거겠죠.
그날은 우선 돌려보냈습니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여운을 남긴 채. 그러고는 정신이 아득하니 혼미해졌지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우니 겨우 두 잔 마신 맥주의 취기마저 올라왔고, 그렇게 그날 기어이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과거 여자에게로 잠적한 이유
20년 전 그날에 버금가는 충격이 전신에 번졌다. 파혼 후 그의 소식을 애써 외면해왔기에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고 후 나는 하반신 마비의 불구자가 되었기에 어차피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었으니, 그가 도망가버린 것에 대해서도 혼자 삭여야 했다.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속내와 사정을 감추고 있었다니! 결국 과거의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중상을 당한 나를 버린 후 찾아오지 않았다는 건가.
이틀 후 두 번째 메일을 받았다.
“경애 씨, 엊그제 메일을 받고 많이 놀라셨지요? 이래저래 나는 경애 씨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겠지요. 경애 씨의 일상을 다시 흔들고 있으니까요. 이미 내다 버린 가증스러운 놈을 쓰레기장에서 다시 집어 든 느낌이겠지요. 이런 파렴치한 나를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없으니 경애 씨의 용서를 구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바로 그 여자에게로 갔습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경애 씨가 그날 다친 것이 마치 내가 그 사람에게 가도 좋다는 운명의 허락처럼 느껴졌습니다. 장애자가 된 경애 씨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을 테고, 무엇보다 나는 그 사람을 더 사랑했으니까요.”
여기까지 읽는데 부아가 치밀었다. 만약 우편 편지로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북북 찢어버렸을 것이다. 이 자식이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20년 전에도 나를 조롱하더니 또 나를 갖고 노는 저의가 뭐야? 옛 애인 찾기 사이트를 뒤적여 나를 찾아내 기껏 한다는 소리가….
분노로 울렁대는 가슴을 꾹꾹 누르며 메일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날의 사고는 전적으로 제 책임임을 통감합니다. 머리를 조아려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 후 경애 씨의 다리가 되어 평생 죗값을 치러도 모자랄 판에 그대로 도망쳐버렸으니 천벌 받을 짓이었지요. 그런데 정말 천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실은 제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경애 씨처럼 하반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3년 만에. 그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오늘 메일을 드립니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지만 왠지 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 입으로 직접 하는 것이 제게는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아내의 발과 다리가 되어 삽니다. 경애 씨에게 했어야 할 일을 지금의 제 아내에게 하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어떤가요? 이제 좀 속이 시원하신가요? 복수를, 원수를 갚은 것 같은가요?”
머릿속이 안개로 자욱해졌다. 무슨 이런 장난 같은 일이….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은 정녕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것인가. 그건 그렇고 왜 하필 옛 애인 찾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나를 찾았던 걸까.
“경애 씨의 근황을 미리 좀 파악할 수 있을까 해서였어요. 특별히 다른 뜻은 없었어요. 미리 좀 알게 된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되레 결례가 되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드네요. 이래저래 죄송합니다.” 내 속을 읽은 듯이 메일이 날아들었다.
연달아 받은 세 통의 메일, 이제 내가 답신을 보내야 할 차례인가. 나는 무슨 말을 그에게 할 수 있을까. 지금 내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아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지역을 온전히 느끼며 소소한 일상을 만끽하는 여행, 한달살기가 인기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고, 숙박업체는 장기 임대 상품을 선보인다. 한달살기를 하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이번 기사를 참고해 계획을 세우고, 당장 떠나보자.
중장년 10명 중 8명은 ‘장기간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한달살기는 중장년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중 하나지만, 막상 떠나려니 어디에서, 어느 정도의 비용으로,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이들이 많다. 자유롭게 떠나도 되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이 익숙한 중장년이라면 프로그램으로 첫 한달살기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해 활동비를 받으며 한 달을 보낼 수도 있고, ‘작가로 한달살기’처럼 테마가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호텔에서 한달살기도 하나의 방법이 됐다. 조금 더 알찬 한달살기를 위해 입문이 되어줄 프로그램, 숙소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 한달살기 꿀팁이 가득한 도서까지 참고가 될 내용을 소개한다.
◆한달살기가 처음이라면
많은 중장년이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곳은 제주다. 하지만 제주 외에도 한달살기에 적합한 다양한 도시들이 있다. 어느 도시가 좋을지 모르겠다면, 한달살기를 지원해주는 각 지자체 프로그램을 참고해보자. ‘남도에서 한 달 여행하기’, ‘경남에서 한 달 여행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예산을 지원하다 보니 조건이 까다로울 수 있지만, 기회와 혜택을 생각하면 도전해볼 만하다. 각 지자체는 지역의 특색을 담은 명소나 특산품 혹은 농장 체험 등의 다양한 여행을 제안하는데, 만약 프로그램 신청이 어렵다면 지자체의 추천을 참고해 자유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달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면 3박 4일이나 일주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지자체별로 지원하는 예산 범위와 신청 조건, 신청 시기가 다르므로 미리 알아두면 좋다. 예산 지원은 사전 지급이 아닌 사후 정산이라는 점 참고하자.
◆마을과 깊게 교류하는 한달살기
지역 주민들과 교감하고 머무르는 지역에 깊이 녹아들고 싶다면 ‘마을 호텔’ 형태의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해보자. 한 건물에 라운지, 숙박, 헬스, 식사 등의 서비스가 모여 있는 호텔과 달리, 마을호텔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 기능을 한다. 마을 입구의 카페가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고, 마을의 맛집이 다이닝 역할을, 곳곳의 공방 등이 체험 서비스 역할을 한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곧 즐길 거리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관광형 한달살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한달살기를 찐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마을호텔은 어떨까.
ㆍ공주 마을스테이 ‘제민천’ 공주 제민천은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마을호텔을 구성하고 있다. 한옥스테이 ‘봉황재’에서 시작하는 마을호텔의 프런트는 ‘가가상점’이 담당하고, 커뮤니티이자 로비 역할은 ‘반죽동247’ 카페가 하고 있다. 봉황재 외에도 ‘공주하숙마을’ 등의 고즈넉한 한옥스테이가 곳곳에 위치하며, 제민천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먹거리와 볼거리가 숨어 있다.
ㆍ강원도 정선 ‘마을호텔 18번가’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마을호텔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한읍의 낙후된 폐광촌에 고한18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성했다. 빈집을 리모델링한 숙소에 머무르면 마을식당, 카페, 사진관, 이발관 등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은 로비 역할을 한다. 마을을 둘러보다 쉬어가도 좋고, 어르신에게 볼거리를 물어봐도 좋다.
ㆍ군산 ‘후즈데어’ 군산 영화동에서는 ‘영화장’이라는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이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 한 ‘후즈데어’에서 마을호텔이 시작된다. 프런트 역할은 영화타운에 있는 미국 음식점 ‘럭키마케트’가 담당한다.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 LP바 ‘해무’, 청주바 ‘수복’ 등이 모여 있는 영화타운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유명한 군산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ㆍ서울 ‘서촌유희’ ‘서촌유희’는 오래된 한옥과 옛길의 흔적이 골목 곳곳에 녹아 있는 동네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연결하고, 걷기 좋은 골목과 장소를 제안한다. 서촌유희의 한옥 숙소는 휴식을 취하며 나를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책으로 미리 챙기는 한달살기 ‘꿀팁’〉
1_여행 말고 한달살기
저자 김은덕, 백종민 출판 어떤책
한달살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꿀팁이 가득하다. 특히 해외에서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다면 상황별·계절별 추천 도시들을 보고 나에게 맞는 나라를 찾아보자.
2_60대 부부의 피렌체와 토스카나,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 소도시 한 달 살기
저자 김영화 출판 바른북스
한 도시에 머무르며 주변 소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운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책. 대중교통을 이용해 유럽을 둘러볼 방법을 소개한다.
3_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
저자 배지영 출판 시공사
일하며 한달살기, 은퇴 후 한달살기, 반려동물과 한달살기 등 나의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우기 좋은 책. 국내에서 한달살기를 했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떠나고 싶어진다.
◆호텔에서 한달살기
‘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라는 의미의 ‘호캉스’가 유행하더니 ‘한달살이’ 상품도 등장했다. 깔끔한 공간과 다양한 부대 서비스로 중장년에게 인기가 많다. 즐길거리가 많은 도심에서 일상을 만들어가는 한달살기를 하고 싶다면 호텔에서 머물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격은 천차만별. 롯데호텔이 내놓은 ‘한 번쯤 꿈꾸는 호텔에서의 삶’을 주제로 한 시그니엘 서울 한달살기는 1000만 원이 넘는다. 신라스테이, 포포인츠바이쉐라톤, 롯데시티호텔 등은 100만~200만 원대에 이용할 수 있다. 호텔별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르니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주제가 있는 한달살기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달살기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 19세 이상 60세 이하인 작가들의 한달살기를 지원하는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 한달살기’, 제주 시골집에서 보내는 어른의 방학 콘셉트의 ‘제주맥주 한달살기’, 다른 지역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살아보는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함께하는 ‘강원도관광재단 워케이션’, ‘제주 세화리 질그랭이 워케이션’ 등이 있다.
〈쉼이 되는 공간, 숙소 찾는 플랫폼〉
한달살기에서 중요한 건 머무르는 공간이자 생활을 하는 숙소다. 장기 숙박 상품을 모아둔 플랫폼에서 살고 싶은 숙소를 찾아보자.
ㆍ미스터멘션 ‘쉼’을 제안하는 장기 숙박 플랫폼. 한달살기, 보름살기, 일주일살기에 맞춰 전국의 숙소를 볼 수 있다. 추천 숙소, 호텔, 프라이빗한 곳,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곳 등 다양한 테마가 다양하다. 개인이 숙소를 예약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이중 계약’, ‘당일 입실 거부’ 등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 100만 원까지 숙소 비용을 보장하는 안전거래제도가 있다.
ㆍ호텔에삶 한달살기를 할 수 있는 호텔만 모았다. 저렴한 3성급부터 5성급 프리미엄까지 서울, 수도권, 경상, 제주에 있는 호텔 숙박 정보가 있다. 호텔을 예약하기 전 미리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매월 할인 프로모션도 있으니 원하는 도시의 호텔 가격을 비교해보고 합리적인 호텔 라이프를 즐겨보자.
ㆍ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는 숙박 공유 서비스다. 전문 숙박업체가 아니라 개인이 제공하는 빈집을 빌리는 개념이기 때문에 공간 상태도 천차만별이고 숙박업체와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신 저렴한 숙소를 구할 수 있다. 장기 숙박이라면 할인 제안도 해볼 수 있다. 특히 해외는 에어비앤비가 활성화되어 있어 잘 둘러보면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숙소 선택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슈퍼호스트’가 제공하는 숙소 위주로 보고, 해당 숙소의 후기와 별점을 참고하는 게 좋다.
공기가 슬슬 눅진해지는 봄의 끝, 압구정의 한 사무실을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뽀얀 빛깔의 전통주를 투명한 잔에 쪼르륵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을 머금은 인사와 술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덤이다. 더워진 날씨 탓인지, 톡 쏘는 술의 시원함 덕인지 이지민 대표가 권한 ‘웰컴 드링크’는 특히 달큰했다.
이지민 대표는 전통주 안내서 역할을 하는 ‘대동여주(酒)도’를 운영하고 있다. 페이스북, 유튜브, 네이버 카페,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리술 이야기를 전한다. 영상제작자 남편과 홍보 영상도 만든다. 만화로 명주를 알리고, 전통주 칵테일 레시피와 더불어 곁들일 안주를 추천하는 등 콘텐츠도 다양하다. 특유의 감각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술을 재밌게 소개할 뿐 아니라 식음 분야 인사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전문성도 잡았다.
특히 2016년 ‘우리술 릴레이 샷’을 기획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표창을 받았다. 셰프, 소믈리에, 방송인까지 각계각층 유명 인사들이 전통주를 선보이고 마신 뒤 다음 사람을 지목하는 방식의 영상 캠페인으로, 당시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만찬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리셉션 만찬 때 세계 정상 건배주 등 굵직한 국가 행사에 자문을 맡기도 했다.
진흙 속에 묻힌 진주(酒)
주류계에서 뾰족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그도 처음엔 전통주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LG 와인사업부에 근무하던 시절, 전통주 유통 사업을 하던 동료의 권유로 우연히 양조장을 방문한 후 문득 깨달았단다. 우리술을 알려야겠다고 말이다. 명인들과 교감하고 좋은 우리술을 경험해보니 고유의 문화, 역사 등은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홍보나 마케팅이 취약해 어려움을 겪는 걸 보니 소명 의식이 생긴 것이다.
“명인이 운영하는 곳인데도 현장이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술에 얽힌 이야기나 만드는 과정을 엮어 홍보하면 술을 만드는 사람도, 사 마시는 사람도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첨가물을 넣지 않고 순수하게 좋은 재료로만 빚은 전통주가 정말 많거든요. 희석식 소주, 감미료 탄 막걸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명주요. 레드·화이트·로즈와인, 위스키처럼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외국 술과 달리 우리술은 감, 사과, 달래, 비파, 무화과, 밤, 들국화 등 재료부터 정말 다채로워요. 어울리는 음식도 다 다르고요.”
‘우리술’ 권하는 사회
두 달을 고민한 끝에 2014년,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동여주도라는 문패를 달았다. 산천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좋은 술을 만들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양조장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다는 취지와 부합해서다. 정보조차 없는 양조장이 대부분이라 초기에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발로 뛰며 명인들을 직접 만났다. 언론에 나온 기사와 직접 제작한 영상 등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신뢰를 쌓았다. 그 덕에 이 대표는 전통주 업계에서 떠오르는 유명 인사가 됐다. 이제 사무실 냉장고에는 홍보 명목으로 받은 각종 전통주가 가득 채워져 있다.
그는 하루빨리 우리 농산물로 만든 증류주로 회식하고, 퇴근 후 가족과 식사할 때 맥주가 아닌 막걸리를 곁들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한국에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문화가 다른 나라보다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알코올 맛이 많이 나는 공장 술을 한데 섞어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기보다 음식과 술의 풍미를 살려 음미하는 게 더 즐겁지 않을까요. 음주법이 바뀌어야 우리술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갈 거예요. 앞으로 국가 기관이나 지자체와 더 많이 협업할 예정이에요. 사람들이 꾸준히 우리 술이 ‘당기도록’ 잘 안내해야죠.”
계절, 날씨, 노을, 함께하는 사람, 생각나는 음식에 따라 어울리는 술이 다르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의 도움을 받아 중장년층이 겪을 법한 상황에 곁들일 술을 준비했다. 취향대로 골라 마음껏 즐겨보시라.
1. 젊은 사원들과의 회식,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술
요즘 젊은 친구들은 한창 유행하거나, 구하기 어렵거나, 이색적인 느낌의 술을 좋아합니다.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를 권한다면, 젊은 사원들에게 존경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을 것 같네요. 곧 편의점에서 판매한다고 하니 기회를 노려보시길 바랍니다. 크기로 어필한다면 1.5L짜리 ‘한산소곡주 생주’ 됫병을 꺼내도 좋아요. 배상면주가의 ‘오매락퍽’도 추천합니다. 술 마시기 전에 토기를 퍽퍽 깨는 재미가 있어 회식 분위기를 업(Up)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2. 은퇴한 남편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술
인생 2막이라. 노후와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은 기본이요, 젊을 때의 패기와는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지요. 양조장 대표님 중에도 본업을 뒤로하고 양조의 길을 걷는 분이 많은데, 맹개술도가의 박성호 대표님이 떠오르네요. 잘나가는 IT(정보기술) 기업인이던 그는 돌연 안동으로 내려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외딴 섬에 농산물을 심고 땅을 일궈 맹개마을을 꾸렸어요. 지난해 농업인의 날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직접 지은 유기농 밀로 만든 ‘진맥소주’는 안동을 대표할 만한 증류식 소주입니다. 은퇴한 남편의 미래를 응원하는 술로 딱 맞죠.
3.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마음 달래기 좋은 술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을 시커먼 놈(?)에게 보낸다고 생각하면 잠을 못 이룰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위가 나타나도 탐탁지 않을 수밖에요. 하지만 딸이 짝을 만나지 못하고 평생 혼자 산다고 상상해보면? 그것도 정말 답답할 노릇이지요. 딸을 보낸다고 생각하기보다 새로운 식구를 맞았다고 생각하면 좀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요. 충북 영동 도란원의 ‘샤토미소 웨딩 자두 와인’은 안남락 대표가 딸의 결혼을 기념해 출시한 와인입니다. 사랑스러운 연한 오렌지 빛깔을 띠며, 자두의 달콤함과 새콤함이 어우러져 상큼한 매력을 선사하죠.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맛보면 좋은 술입니다.
4. 오랜 벗과 편한 자리에 제격인 술
오랜 벗과는 격식을 차릴 필요 없이 세상 누구보다 편하게 만날 수 있고, 속 이야기를 훌훌 털어놓게 되죠. 편안하게 껄껄껄 웃으며 꿀꺽꿀꺽 마실 수 있는 술이 제격입니다.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 남태령 옛길에 위치한 과천도가의 ‘관악산생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6도, 용량은 1L로 부담은 적고 용량은 많아 느슨한 자리에서 술술 마셔도 좋겠습니다. 담백한 맛으로 산행 뒤에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인 술이며, 잔에 졸졸 따라 건배하고 원샷 하기에도 깔끔한 양입니다.
5. 오랜만에 놀러 온 자식 부부에게 대접할 만한 술
사위 또는 며느리가 함께한다면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수밖에 없죠. 좋은 음식도 맛보여주고 싶고, 귀한 술을 준비해 자리를 빛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담은 술이 필요한 상황이네요. 한국을 대표하는 포도 품종인 청수로 만든 와인은 이런 자리를 빛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입 품종에서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화이트와인인 데다, 한국 음식과의 어울림이 아주 좋기 때문이죠. 경북 경산의 와이너리 비노캐슬에서 만드는 ‘비노페스티바’는 전문가들이 손꼽는 와인입니다. 100% 청수로 만들었으며, 생선, 갑각류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킹크랩이나 대게를 쪄서 함께 내면 어린 부부가 하트를 뿅뿅 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6. 가족과의 여름휴가, 더위를 날릴 수 있는 술
다가오는 여름, 맥주나 스파클링와인이 아닌 뭔가 새로운 술을 찾는 분들을 위해 막걸리를 하나 추천합니다.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 청포도, 샤인머스캣으로 빚은 ‘써머 딜라이트’입니다. 대동여주도와 같이 양조장이 협업해서 만든 제품이에요. 구멍떡으로 빚은 삼양주라 그 자체로 향이 좋고 단맛이 도는데, 포도를 넣어 더욱 진하고 상쾌합니다. 얼음을 넣어 차가워진 술을 테라스에 다 함께 앉아 즐기면 여름 칵테일로 사랑받는 모히토보다 싱그러운 맛을 느낄 수 있지요.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건강은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환경·유전 등의 요소가 얽혀 분명한 원인을 알기조차 힘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나의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려 한다. 하지만 아픈 몸은 그저 다른 몸일 뿐, 우리의 탓이 아니다.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는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꼬집으며 잘 아플 권리, ‘질병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철인’이라 불리던 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람시계가 울린 지 한참을 지나도 여전히 몸은 이불 속이었다. 낮에도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겨우 맥주 한잔에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곤 했다. 2009년 팔레스타인으로 3개월간 현장 활동을 다녀온 뒤부터였다. 이유 없는 어지럼증에 하혈도 이어졌다. 1년 가까이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원인 불명이었다. 수십만 원을 들인 종합건강검진에서 발견한 병명은 갑상선암. 다른 암에 비해서는 가벼운 축에 속하기도 하고, 검사 결과로 볼 때 암세포가 아직 몸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겪어왔던 이상 증세와 갑상선암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오진이 아닐까 의심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온라인 환우회 사이트를 참고하고, 도서관과 서점에서 책을 찾았다. 의사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만 보고, 총체적인 몸을 살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병원에서 증세별로 지정해준 정기 검진을 병행하되 한의원과 대체요법사에게 지도받은 대로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생활 습관도 개선했다. 인스턴트 음식은 물론 튀긴 음식, 밀가루, 설탕, 백미를 완전히 끊었다. 현기증이 심하지 않은 날은 아침마다 집 앞 산길을 걸었다. 컴퓨터 쓸 일이 있을 때면 하루 네 시간 이하로 제한했고, 잠들기 전 스트레칭과 족욕을 했다. 일상이 온통 질병에 묶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왜 이런 질병이 왔을까’ 자책하고, 생활 습관과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을 추적했다.
건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거의 3년을 극진하고 엄격하게 몸을 돌봤지만 회복 속도는 생각보다 더뎠다.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조 대표는 건강한 몸의 눈이 아니라, 아픈 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우리 사회가 아픈 몸을 배제하는 ‘건강 중심 사회’였던 거다. 그는 조금씩 우리나라가 질병을 대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는 건강을 추구해야 할 선(善)으로, 질병을 퇴치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한다. 게다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힘들어도 튼튼한 몸과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며 강요하기도 한다. 질병을 얻는 것은 관리의 실패요, 질병은 싸워 이겨야 하는 대상이라 반드시 완치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다.
“알고 보면 우리는 쉽게 아플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과중한 노동, 열악한 생활환경, 오염된 식자재, 안전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화학 제품 등. 누군가는 그저 허약하게 태어나요. 그럼에도 관리 소홀로 건강을 망쳤다고 환자를 비난하기도 하죠. 병에 걸리면 그 사람의 모든 과거가 줄줄이 심판대에 오르게 돼요. 훈계는 덤이고요.”
조 대표는 국가와 자본이 건강 중심 사회를 부추긴다고 설명했다. “아픈 몸이 잘못됐다고 규정하고, 병을 이겨내야 한다며 개인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사회는 잘못됐어요. 물론 국가 입장에서는 개인의 건강이 곧 국력이라고 믿죠. 일꾼이 많아야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으니까요. 건강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아픈 몸을 얼른 회복하게끔 힘쓰자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노동자 스스로 일정 수준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세뇌하는 거예요. 이는 1960~70년대부터 시작된 ‘할 수 있다’ 문화가 이어져온 거라고 봐요.”
의료 산업과 헬스 산업은 질병을 가진 몸은 자기관리에 실패한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예컨대 건강 정보를 알려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특정 상품을 광고한다. 그걸 본 시청자들은 ‘아픈 사람이 이걸 먹고 나았다더라’, ‘항산화 작용을 통해 젊어지는 효과가 있다더라’고 하며 더 건강해지려고 상당한 돈을 쓰는 식이다.
“특히 중장년층이 건강 정보 프로그램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인간의 몸 상태는 대부분 사회적인 요인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말이죠. 폐암 같은 경우에는 담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판명됐어요. 다른 암들은 추론만 존재할 뿐, 정확히 입증된 건 없어요. 결국 불가항력이라는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은 노니나 블루베리를 챙겨 먹으면 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어요. 또 어딘가 아프면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고, 건강식품을 부지런히 챙겨 먹지 않아서라는 의식의 흐름이 여전히 존재하죠.”
잘 아플 권리, 질병권
조 대표는 저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도 건강해야만 하는 사회의 이면을 강조하고 아픈 이들이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도록 ‘질병권’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건강권은 건강을 중심에 놓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지에 초점을 둔다면, 질병권은 만성적으로 아픈 몸으로도 온전히 잘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만성질환자의 당당한 사회활동을 보장할 권리’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람은 질병을 받아들이고 겪을 충분한 시간과 환경이 필요해요.”
덧붙여 그는 ‘아픈 몸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시설이 젊은 성인 남성의 기준에 맞춰져 있어 노인, 장애인, 아이가 불편함을 겪는 상황이 종종 발생해서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없어지고 건강을 잃어가는 건 자연의 순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노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요. 건강 약자들을 위한 사회 제도와 환경이 제대로 구성돼 있지 않아서겠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약한 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훨씬 안정적이고 편하게 살 수 있어요. 지하철을 타면 들리는 음성 안내는 사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것이지만, 시각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용하잖아요. 무인 주문 기계나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는 ‘셀프 서비스’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거예요. 이 사회가 애초에 그들에게 불편하게 설계됐죠. 기계 자체나 셀프 서비스라는 글씨만 봐도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니까요. 노인이어서, 장애인이어서 기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다른 몸들’ 위한 배려 가이드
1 정체성 존중해주기
아픈 사람이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그도 사회적인 지위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당연히 있다. 그러나 계속 병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면 어떨까? ‘아픈 몸’이라는 범위에 제한하지 않고 그 사람을 존중해주는 것이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다.
2 알고 있는 건강 정보 강요하지 않기
당사자에게는 수많은 인간관계가 있다. 모임에 나갈 때마다 지인들이 제각기 정보를 쏟아낸다면 만남 자체가 지치기 십상이다. 무조건 조언하기보다 ‘내 지인도 너와 같은 증세가 있다는데, 한번 들어볼래?’라며 동의를 구해보자. 아무리 고급 정보라도 당연히 그 사람이 좋아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3 “노력하면 반드시 건강해질 수 있어”, “빨리 나으세요” 하지 않기
응원하는 의미로 사용했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내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인가?’라며 자책하게 만들 수도 있다.
4 하지 말라는 ‘훈수’보다 같이 하자고 ‘제안’하기
“밀가루 줄이고 채소 위주로 먹어야지”라든가, “집에만 있지 말고 환기도 시키고 좀 움직여” 등의 훈수보다 “기분 전환도 할 겸 한강에 같이 바람 쐬러 갈래?”나 “너 괜찮으면 우리 탭댄스 배워볼까?”처럼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좋은 선택지를 골라 함께 해주는 편이 훨씬 좋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과거에 알지 못했던 다양한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와인이 각광받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홈술과 혼술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데, 주류 중에서도 특히 와인 소비가 괄목할 정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와인 수입액이 전년 대비 27% 가까이 증가했다. 그 결과 와인은 20%가량 수입이 줄어든 맥주로부터 수입 주류 1위 자리를 넘겨받았다. 올해 와인의 수입 증가폭은 작년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와인의 인기를 코로나19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규모가 큰 와인 수입사들이 저렴한 와인을 마트나 편의점을 통해 대량으로 공급함으로써 와인 대중화에 기여했고, 와인의 매력인 감각적인 즐거움과 다양성, 그리고 웰빙에 대한 관심이 근본적인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와인을 글라스에 따르자 화려한 꽃향기가 피어났다. 난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시즈쿠처럼 어느 순간 장미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입안에 넣자 싱싱한 산딸기를 비롯한 과일 맛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어 달콤하고 부드럽게 입안을 조여주는 타닌(떫은맛)과 정교하게 짠 교토(京都)의 직물처럼 복잡하고 우아하며 섬세한 맛에 혀가 매료됐다. 그리고 어질어질할 정도로 오래 이어지는 여운까지…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작가 아기 다다시가 1985년 빈티지의 DRC 에세조(Echezeaux) 와인을 마시고 느낀 바를 ‘와인의 기쁨’이라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와인을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해 이보다 멋지게 표현한 것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우리는 보통 ‘맛있다’는 짧은 찬사로 와인의 맛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하지 않는가.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자 칼 둔커(Karl Duncker)는 와인과 연관해서 아주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어떤 객체(object)인가 아니면 그 객체가 주는 즐거움(pleasure)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즐거움이 무엇이고, 즐거움이 객체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무엇인가를 즐긴다’ 혹은 ‘무엇을 추구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객체의 세 가지 단계(level) 중 하나를 적시하는 것이라며, 와인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와인, 와인을 마시는 것(Drinking of the wine), 와인을 마실 때의 감각적 경험(Sensory experience in drinking wine)이 와인이라는 객체의 세 가지 단계다. 와인은 객체 그 자체이고, 와인을 마시는 것은 객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이며, 와인을 마실 때의 감각적 경험은 객체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얻는 경험이다. 와인과 와인을 마시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fact)인 반면, 와인을 마실 때의 감각적 경험은 주관적이다. 와인과 와인을 마시는 것은 즐거움의 수단 혹은 원천이고, 와인을 마실 때의 감각적 경험이 즐거움이다.”
심리학자 둔커의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는 와인을 ‘감각적 경험이라는 즐거움의 수단 혹은 원천’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와인이 감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알코올 음료라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와인 애호가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와인 애호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와인이 맛있다’라는 표현보다 훨씬 근사하고 유식해 보인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생긴다. 와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감각적 즐거움에 국한되는가?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와인을 마셔서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행복한 경험에는 와인의 감각적 즐거움(sensory pleasure) 이외에 감정적인 즐거움(emotional pleasure)과 사회적인 즐거움(social pleasure)도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즐거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와인에 대한 지식 때문에 와인을 마시는 것이 더욱 즐거워질 때 혹은 그러한 지식을 갖춘 사람의 설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실 때 우리는 지적인 즐거움(intellectual pleasure)도 가질 수 있다. 종교의식에서 와인을 사용할 때 와인 애호가는 정신적인 즐거움(spiritual pleasure)도 갖게 될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티에리 타옹(Thierry Tahon)은 ‘와인의 철학’에서 와인을 분석하는 즐거움과 분석한 것을 말하는 즐거움에 대해 말한다. “대담한, 영감에 찬 코멘트들이 쏟아지면서 아주 재미난 순간이 되기도 한다”고 경험을 들려준다. 즐거움의 종류 중에서 인지의 즐거움(cognitive pleasure)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분석하는 즐거움은 사실 와인 경험이 적은 초보자에게는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와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뽐내고 과시하는 수단으로 와인을 전락시키는 누군가 때문에 참기 힘든 괴로운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경험은 주관적이라는 사실과, 와인에 대해 느낀 것을 말할 때 와인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반드시 구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러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알드 달(Roald Dahl)이 쓴 책 ‘맛’에서 소개하는 와인에 대한 분석은 주관적이고, 와인 전문가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흥미롭다.
“조신한 포도주로군. 약간 수줍어하고 망설이는 듯하지만 어쨌든 아주 조신해.” “명랑한 포도주로군. 자비롭고 명랑해. 약간 외설적인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명랑해.” “아주 재미있고 귀여운 포도주로군. 상냥하고 우아하고, 뒷맛은 거의 여성적이네.”
이와 같이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럴수록 와인과 더불어 사는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진다. 또 어떠한 즐거움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와인의 냄새로 인해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어느 냄새를 맡는 순간 과거의 일이 갑자기 떠오르는 경험을 한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에는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먹다가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 작가의 이름을 딴 ‘프루스트 현상’이라는 용어가 유래한다. 냄새를 통해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는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는 와인을 마실 때 코를 아주 활동적으로 만들고, 후각적인 경험을 즐긴다. 그래서 프루스트 현상은 어쩌면 와인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와인 전문가들이 냄새를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으로 자주 언급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와인 전문가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Essential Winetasting’이라는 책에서 “후각은 미각이 주는 육체적인 만족감에 대한 지적인 전주곡으로서 사람, 장소, 상황과 감정 등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와인 전문가 제이미 구드(Jamie Goode)는 ‘와인 테이스팅의 과학’에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냄새의 힘”에 대해 말한다.
위대한 와인 애호가였던 헤르만 헤세는 1905년에 발표한 수필 ‘와인연구’(Weinstudien)에서 “와인은 내게 컬러가 아니라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유아 시절로 돌려보내는 와인도 있고, 학창 시절이나 여행, 사랑의 경험, 우정 등을 회상시키는 와인도 있다”고 강조했다. 1919년에 출판된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서는 와인을 ‘갖가지 추억을 여는 열쇠’라고 정의했다. ‘프루스트 현상’보다는 ‘헤세 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헤세는 자신의 문학 작품에서 와인 한잔 마시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나는 와인을 마실 때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는 경험을 자주 한다. 숙성되어 페트롤 향을 물씬 풍기는 리슬링 와인을 마실 때, 오토바이를 탄 아버지 등에 매달려 논과 밭을 지나고 야산을 넘어 할아버지 산소에 가던 한식과 추석의 날들이 생각난다. 리치 향이 특징인 게뷔르츠트라미너 와인을 마실 때면, 가족과 함께 살던 독일 도시 부퍼탈에서 암스테르담에 당일치기로 놀러 가던 날 네덜란드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리치로 만든 디저트를 먹고 좋아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프랑스 와인 산지 루시옹에서 그르나슈 그리로 만든 짠맛이 아주 강한 화이트 와인을 마셨을 때, 칠레의 와인 산지 레이다 밸리에서 스테파노 간돌리니(Stefano Gandolini)라는 와인메이커가 만든 짠맛의 소비뇽 블랑을 마셨을 때, 나는 부모님과 처음으로 해수욕장에 갔던 1970년대의 어느 날을 그리워했다.
와인에 대한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와인을 마시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티에리 타옹은 와인을 마시기 전에 ‘상상하는 즐거움’, ‘욕망하는 즐거움’을 가져보라고 권유한다. 이러한 즐거움도 참으로 중요하다. 오늘 저녁 가족과 함께 먹을 음식에 잘 어울릴 만한 와인을 마트에서 장바구니에 담으며 저녁 식사 시간을 기대하는 마음과, 와인 잔에 따른 와인을 바라보며 이 와인은 어떤 향과 맛을 선사할지 궁금해하는 짧은 순간을 상상해보라. 시인 황지우는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통해 기다림의 숨겨진 의미, 즉 능동적인 기다림에 대해 알려주고, 티에리 타옹은 와인을 마시기 전의 능동적인 기다림, 즉 와인을 마시는 다가올 시간을 상상하는 즐거움과 욕망하는 즐거움을 느껴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와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향과 맛에 의한 감각적 즐거움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함으로써 와인 애호가로서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보자.
드문드문 작은 마을을 몇 번 지나고 앞뒤가 온통 논밭인 가을 들판을 지난다. 간간이 길가엔 노송이 세월 속에 서 있고, 그 산하에서 나고 자란 추사 김정희 생가, 윤봉길 의사 유적지, 수덕사 가는 길 표지판이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한적하기만 한 너른 들길을 휘돌다 보면 간간이 사과밭이 나타난다. 지금 예산사과농장의 와이너리에서는 사과와인이 숙성되고 있다.
예산사과와인으로 알려진 은성농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입구에서부터 기다란 포도밭 길을 달리는 유럽 다큐 영화 같은 느낌을 잠깐 맛보게 한다. 포도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맛의 은은하고 상큼한 사과와인을 만들어내는 사과 와이너리. 푸릇푸릇한 연둣빛 사과와 이미 붉은빛으로 감싼 큼지막한 사과가 과수원에 줄지어 선 나무에서 과육의 풍부함을 내뿜는다.
사과와 블루베리로 와인과 소주를 만드는 양조장, 사과농원의 커다란 지하에는 와이너리가 자리 잡았고, 건물 안에는 와이너리 투어를 위한 준비가 잘 갖추어져 있다. 1층에는 카페 레스토랑과 교육 세미나실, 체험장과 전시실, 위층에는 단체 손님들이 이용 가능한 게스트하우스를 갖춘 이른바 유럽 스타일 와이너리다.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사과 과수원은 약 3ha라고 한다. 기계가 드나들며 사과농사를 돕고, 햇빛을 많이 받아 일조량을 충족해야 해서 밭고랑이 제법 넓은데 이 또한 유럽식이라고 한다.
“브랜디의 경우 원료가 과일이고 포도인데, 이곳은 사과니까 이건 사과로 만든 증류주입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는 사과발효주를 증류해서 칼바도스를 만들어냈죠. 엄밀히 말하면 칼바도스를 만드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읽은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 언급되어 회자되었던 ‘칼바도스’(Calvados)를 여기서 듣는다. 소설 속 외과의사 라빅과 무명 여배우 조앙 마두가 서로를 마주 보면서도 고독하게 마시던 술 칼바도스, 예산의 와이너리에 와서 책을 읽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단번에 떠올린다. 와인 갤러리 앞에서 소환되는 그 시절 풍경과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따사롭던 그 시간 속으로 데려다주다니, 오늘 하루가 그래서 또 행복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술 내음이 진하게 풍겨온다. 발효실, 증류실, 숙성 창고… 와이너리 입구에서부터 여러 군데의 작업 공간을 거치면서 사과와인의 개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준 김유근 매니저가 덧붙인다.
“작년에는 백종원 씨와 협업해서 추사백이라는 소주를 만들었습니다. 제품의 투명함과 백종원 씨의 백, 그리고 ‘가을 추(秋), 이야기 사(史)’. 착즙한 사과를 가당 후 30일 동안 발효시켜 감압 방식 증류기로 저온 증류한 것입니다. 사과 향이 상큼하게 살아 있고 활용도도 높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예산은 명필 서화가 추사 김정희가 나고 자란 곳이며, 가을 사과의 함축적인 의미도 포함하여 ‘추사’라는 와인 이름이 세상에 나온 거죠.”
낯선 이름의 외국 브랜드가 난무하는 틈에서 예산사과와인의 자부심이 크다. 특히 코로나19 이전 방문자 중엔 외국인의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주말이면 주한 미군 가족이나 외국인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은 것은 한국에서 한국만의 와인을 맛보고 싶은 단순하고도 당연한 이유에서였다. 진정한 소믈리에라면 이미 알려진 맛의 유명 브랜드보다는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와인 맛의 독창성을 찾는 것이 지당하다. 이 땅에서 깔끔하게 증류 발효해낸 국내산 와인 맛을 우리는 잘 아는지.
숙성실에서 가득 익어가는 오크통 양면에는 주종, 용량, 날짜 외에도 각각의 특징을 적은 표시가 붙어 있다. 그중에는 개인적인 이름으로 숙성되고 있는 오크통도 여럿 눈에 들어온다. 요즘 요식업계의 대표주자 백종원 씨의 ‘맛있는 술이 익어갑니다. 완벽한 사과술을 기대하면서’라고 쓰인 통이 있고, 만화가 허영만 씨의 귀여운 그림과 함께 ‘3년 후 이 술통은 내 꺼’라고 쓰인 오크통도 보인다.
1층 와인 바에서 분주히 일하던 정제민(54) 대표를 만났다.
“와이너리를 시작한 지는 10년 되었습니다. 캐나다엔 대학교에 양조학과가 있어요. 거기서 12년 살면서 와인 공부도 하고 돌아와 10년 정도 술 제조업을 해보니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걸 느껴요. 해외 살 때 와인 만드는 곳에 돌아다녀 보면 와이너리는 술 공장이 아니고 관광산업입니다.”
이야기하는 중에도 업무상 전화나 방문 문의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그러면서 요즘 변화해가는 추세를 이야기해준다.
“우리나라도 원료와 지역 중심의 술 생산으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지역사회와 연계해 스토리텔링이 있는 술 소비를 하자, 그런 추세잖아요. 그래서 뭘 먹어도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으로 먹으려 하죠. 왜냐하면 자기가 먹고 마신 것들을 SNS에 올려야 하니까요. 그런 변화가 생긴 거죠. 지금 전통주 취급하는 곳에서는 사과로 만든 증류주가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입니다. 싼 소주에 길들여졌다가 이처럼 깔끔하고 상큼한 맛, 젊은 친구들이 가는 주점에서 많이 찾고 있죠.”
조금씩 따라주는 와인을 맛본다는 핑계로 나도 모르게 다 마셔버렸다. 예산사과와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추사애플와인, 그리고 추사백. 와인 맛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스와인의 서늘한 짜릿함에, 그리고 토닉워터를 넣은 부드럽고 시원한 애플토닉 한 모금으로 나른한 오후에 기분이 산뜻해진다.
오래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달리던 중 유명한 와이너리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아이스와인이란 걸 맛보았다. 와인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와인이 입안에 착 감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이스와인은 첫 모금부터 맛과 향, 입안의 찬 느낌, 그리고 적당한 취기가 기분 좋았다. 알코올 12%에 예산사과 83%의 멋스럽게 길쭉한 사과와인 한 병 사온 것이 우리 집 냉장고 안에 있다는 것 또한 괜히 기분 좋다.
아이스와인은 차가운 와인이란 말이 아니라 겨울 무렵 겨울바람 맞은 언 포도를 따서 해동 전에 만든 와인으로, 풍미와 당도가 높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는 아이스와인이 아닌 아이스와인 스타일이라고 한다. 아이스와인과 아이스와인 스타일로 나눌 수 있는데, 한국은 기후적으로 겨울에 언 포도를 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이스와인 제조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원료 처리 방법은 다르지만 제조 공정은 똑같은 것이 아이스와인 스타일이다.
“아이스와인은 국내에도 이미 있었죠. 한국에서 나는 과일로 만드는 술 시장이 크진 않습니다. 게다가 수입하는 와인은 늘어나는데 일반 농가는 영세한 상황이죠. 영동, 영천, 문경 등 전국의 과일로 술을 만드는데 원료의 한계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복분자주가 가장 많고, 산머루, 포도 순이지만 외국에선 포도가 압도적이죠.”
한국와인생산협회 회장이기도 한 정제민 대표는 국내 와인 시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대한민국 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사과와인 ‘추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세계적 품질 평가 기관인 ‘몽드 셀렉션’에서는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사과를 발효한 한국 와인으로서 자긍심이 크다.
“와인은 문화상품입니다. 참이슬이냐 처음처럼이냐, 어느 대기업 맥주가 좋으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요즘은 전통주 바람도 불고 있고 마시는 사람들이 술의 스토리에 관심이 많죠. 와이너리 투어도 그래서 필요해요. 시원하게 다 보여주고, 직접 체험도 하며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이런 건 히스토리가 쌓이고 여러 대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대를 이어가는 가업이어야 합니다. 우리 아들도 캐나다에서 와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요즘 각 지역별로 로컬 푸드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두드러진다. 예산사과와인은 로컬 푸드이면서 이 땅에서 만들어낸 와인이기도 하다. 풍부한 일조량과 천혜의 기온 덕에 사과 맛이 아주 좋은 청정 예산의 풍미 그윽한 추사애플와인. 대를 이어 축적될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익어갈 와인 맛이 기대된다. 예산사과와인이라는 지역성을 강조한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떠올려지는 술이 대대로 뿌리내릴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