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코스타델솔 지역에 자리한 라레세르바 클럽 골프 코스 소토그란데 (La Reserva Club Golf Course Sotogrande)는 스페인 13위, 유럽 85위에 랭크된 명문 골프 코스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소토그란데 지역은 전설적인 골프 코스의 본거지이며, 15개 골프 코스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라레세르바 클럽 소토그란데는 사방으로 펼쳐진 자연경관 속 언덕길에 새겨진 18홀의 챔피언십 코스로, 미국 건축가이자 코스 디자이너 카벨 B. 로빈슨(Cabell B. Robinson)이 2003년에 디자인했다. 2004년에 개장한 아라비안 스타일의 클럽하우스도 독특하다. 이 골프장은 말라가 국제공항에서 남서쪽으로 110km 떨어져 있으며, 스페인 1위 레알클럽 발데라마 골프 코스와는 불과 5km 이내에 위치한다. 소토그란데 호텔에서는 7km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우수하다.
소토그란데는 면적이 2500헥타르(25㎢)에 이르고 상주인구는 3000명 정도이며, 1964년에 개발되었다. 이곳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개인이 소유한 가장 큰 주거지 개발로 원래는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산로케시의 개방형 리조트 정착지로 변모했다. 1월과 2월의 평균온도는 아침 11℃, 오후에는 16℃로 쾌적한 날씨다.
라레세르바 클럽은 개별 주택과 게이트 커뮤니티, 챔피언십 골프장, 테니스 및 패들 클럽, 헬스 및 웰니스 시설, 승마 시설 등을 갖춘, 연간 행사 일정이 풍부한 독특한 레지던스 클럽이다. ‘The Beach’라는 새로운 비치클럽은 자체 레스토랑, 수상 스포츠, 키즈클럽, 랩 풀 및 트리트먼트 공간을 제공하며, 언덕에 모래사장과 스포츠 라군을 갖추고 있다.
골프 코스는 지중해와 안달루시아 산맥의 경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뷰를 자랑한다. 큰 그린, 완만하지만 도전적인 기복, 멋진 워터 해저드의 조화가 돋보인다. 코스는 넓고 광범위한 페어웨이가 펼쳐지며 다양한 티가 제공된다. 특히 일부 고지대에서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골프 라운드 중에는 두 병의 물이 제공되며, 무제한으로 추가 가능하다. 또한 간식으로 과일도 제공해 플레이어의 편의를 고려한다.
각 홀은 고유의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6번 홀과 8번 홀은 시그니처 홀로 평가된다. 6번 홀은 멋진 내리막 홀로, 그린 100m 오른쪽 앞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운 큰 연못이 인상적이다. 티에서 바라본 멋진 하얀 집들과 지중해 경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8번 홀은 내리막 오른쪽 도그레그 홀로, 페어웨이 너머 펼쳐지는 멋진 집들과 짙푸른 대서양 뷰가 매력적이다. 이 홀은 긴 호수로 인해 그린 주변이 물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그린을 형성한다.
15번 홀과 17번 홀은 코스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홀로, 다양한 장애물과 기복이 있는 매력적인 홀이다. 18번 홀은 오르막의 멋진 피날레 홀로, 장엄한 경관과 잘 조성된 벙커가 특징이다.
스페인에서의 골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유럽 골프 여행의 진정한 본거지로서 소토그란데 지역의 환상적인 코스들은 평생 한 번쯤 방문해볼 가치가 있는 곳임이 분명하다.
멕시코 로스카보스 지역에 위치한 디아만테컨트리클럽 듄스 코스는 멕시코 최고의 골프장이자 세계적인 골프 명소로 손꼽힌다. 2009년에 개장한 이 골프장은 데이비드 러브 3세의 독특한 설계로 모래언덕과 사막, 링크스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적인 경관을 제공한다. 파72, 7022야드 규모의 이 골프장은 거대한 사막을 연상케 하는 웅장함과 크고 복잡한 그린이 특징이다.
디아만테컨트리클럽은 ‘듄스 코스’와 타이거 우즈가 설계한 ‘엘카도날코스’, ‘오아시스쇼트 코스’를 포함해 총 48홀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모든 카트 길은 비가 와도 이동이 용이하도록 철도 침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골프장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낸다. 로스카보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하는 이 골프장은 골프 애호가 사이에 꼭 방문해야 할 명소로 유명하다.
사막 같은 모래언덕이 인상적
디아만테 듄스 코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골프장이다. 코스 곳곳에 자리 잡은 사막과 모래언덕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각 홀마다 제공하는 독특한 도전은 골퍼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바다와 연결되는 홀에서는 멕시코 해안선의 장엄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골프장에 대한 국제적인 인정과 평가도 높다. 세계적인 골프 잡지와 평론가들은 디아만테 듄스 코스를 세계 100대 코스 중 하나로 꼽으며 그 품질과 독창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골프 라운드를 넘어 문화적・자연적 가치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증거다.
코스는 거대한 사막을 연상케 한다. 그 규모가 웅장하고 광활하며, 그린은 매우 크고 높낮이의 기복이 있다.
고저 차로 코스 난이도 높아
12번 홀은 거대한 그린 뒤로 모래사장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13번 홀은 티 왼쪽으로 거대한 모래언덕이 압권이다. 그야말로 장엄한 포스에 모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7번 홀(파3, 175/130야드) 짧은 파3 홀이지만 주위가 온통 모래언덕으로 둘러싸여 듄스 코스의 완성을 보여준다. 그린의 높낮이도 심해 파를 하기가 쉽지 않다. 이 코스의 시그니처 홀이라 할 수 있다.
18번 홀(파5, 590/499야드) 페어웨이와 그린을 제외하고는 모두 짙은 회색과 모래언덕으로 가득하며 공포스러운 분위기까지 보여준다. 그린 60야드 앞부터는 수직에 가까운 오르막이라 최소 40~50야드는 더 봐야 하는 홀로 스리온이 쉽지 않다. 이 홀도 코스를 대표할 만하다.
이 골프장은 골프를 사랑하는 이에게 단순한 스포츠 활동을 넘어 자연과 예술, 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로스카보스 지역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이 골프장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은 골프 애호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라운드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2000년 5월 개장한 워터랜드 골프클럽(파72, 7065야드, 레귤러 티 6420야드)은 자연 속에서 힐링이 가능한 최고의 휴양 골프장이다. 난강(Nan River)의 본류와 지류가 코스 전체를 감싸고 도는, 그야말로 원더풀 랜드다. 설계가는 태국의 Dr. Suchon Charmpoonod다.
워터랜드는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핏사눌록 폼피람(Phitsanulok Phromphiram)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무덥지 않고 쾌적한 환경의 골프장이다. 1, 2월에도 연평균 기온이 26℃로 시원한 느낌이 든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북동쪽으로 차를 타고 5~6시간 정도 가야 하지만, 다양한 태국의 정취를 맛보면 지루함 없이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밤에 도착하기 때문에 풍경을 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태국은 북부지방을 제외하고는 가도 가도 평야가 지속된다. 드넓은 평야가 매우 독특하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코스는 평화롭지만 벙커는 ‘지옥’
골프장은 평지 코스이고 곳곳에 팜트리와 코코넛트리들이 있어 분위기가 멋스러우며, 휴식과 힐링을 위한 여유로운 라운드가 가능하다. 대부분 페어웨이가 넓지만, 일부 몇 개 홀은 매우 좁고 어려운 페어웨이를 가지고 있어 초보자는 물론 고수들도 정확한 에이밍을 통한 차분한 샷이 필요하다. 필자가 방문 라운드를 했던 9월 중순에는 그린 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었지만 스피드는 7.5피트 전후로 빠르지는 않았다. 벙커에는 일반 흙과 모래가 섞여 있어 정상적인 벙커 샷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골프장 측은 이곳의 토질이 모래를 그대로 삼켜버리는 형태여서 일반 모래를 담아두어도 오래 못 간다며 방법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골프장에 도착하자마자 난강(Nan River)을 건너가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섬은 약 30만 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 전체가 골프장과 리조트다. 모두 81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이 중 호텔 39개, 방갈로 18개, 샬럿(준방갈로) 11개, 딜럭스 룸 8개, 레벨 룸 5개로 구성되어 있다.
팜트리 어우러진 자연환경
1번 홀(파4, 325야드) 전면 물과 풀 해저드 180야드를 넘어야 안전하다. 첫 홀부터 시련이다. 티 샷 후 오른쪽으로 100미터 와서 80야드 물을 작은 배로 건넌다. 재미있다. 물을 건너는 작은 다리를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7번 홀(파3, 90야드) 왼쪽으로 난강의 본류가 길고 넓게 흐른다. 2011년 태국에 큰 홍수가 나서 코스 일부가 유실돼 원래 130야드였던 길이를 90야드로 줄였다. 그린 왼쪽은 5야드 정도밖에 여유가 없어 정확하게 그린 중앙의 오른쪽으로 공략해야 한다. 페어웨이 중간에 오른쪽으로 4번 홀 그린과 페어웨이가 붙어 있어 조금은 위험하기도 하고 정상적인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홀이다.
9번 홀(파4, 280야드) 200야드를 넘어야 하는 부담되는 홀이다. 전면에 120야드 길이의 난강 본류와 접하는 지류가 막아서고 있으며, 강을 넘어 바로 페어웨이 중앙에 벙커가 크게 있어 티 샷이 더욱 부담된다. 그린 앞, 그린 오른쪽, 그리고 그린 왼쪽까지 벙커가 길게 있다.
12번 홀(파3, 150야드) 허허벌판처럼 좌우 및 앞으로 탁 트인 홀이다. 뾰족하게 키가 큰 팜트리 25그루가 맨 위에 나뭇잎이 조금 달린 멋진 모습을 하고 그린 뒤에 서 있다. 마치 만국기들을 세워놓은 듯한 분위기다.
이곳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한국인을 위한 정성스럽고 맛깔스러운 식사다. 현지 한희원 사장은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 많은 한국인 골퍼들에게 찬사를 받는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6시간 정도 차로 이동하는 것이 부담되지만, 그만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힐링을 할 수 있어 장기 골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큰맘 먹고 시작한 한달살기. 정해진 시간에 정신없이 유명한 장소를 훑는 관광이 아닌, 느리고 여유로운 휴식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부지런히 살아온 이들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하루를 빈둥빈둥 보내는 게 영 익숙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제주 생활이 즐겁고 만족스러울까? 급할 건 없다. 우리에게는 30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한달살기는 단순한 여행과는 차이가 있다. 보통 한달살기를 앞둔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한 달 동안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동네 산책을 하다 말을 트게 된 아주머니에게 사는 이야기를 듣거나, 비를 피하려 우연히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메뉴에 없는 음료를 대접받는 등의 상황 말이다.
그러나 막상 제주 땅에 발을 딛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육지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 할 수 없는 일을 깨알같이 모두 즐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을 참고해 각종 정보를 샅샅이 뒤지게 되고, 고민과 갈등의 연속에 하루하루가 숙제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이상과는 다른 제주살이에 문득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한달살기가 아니라 그저 한 달간의 패키지 여행이 되는 셈이다. 한달살기에 대한 보상 심리를 바라기보다, ‘여행 테마’를 설정하고 제주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마음의 자유 선물하는 ‘책방 투어’
전자기기와 영상매체가 발달한 후로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버거운 사람들이 늘었다. 독서율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달살기를 명목으로 멀리했던 책을 다시 가까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주에는 소규모 독립 서점, 독특한 색깔을 가진 서점이 많다. 제주만의 지역 감성과 책방지기의 취향이 버무려져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책방 특유의 기분 좋은 종이 냄새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주는 아늑함은 덤이다.
바라나시 책골목_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횟집 거리 사이, 빈티지한 간판이 눈에 띈다. 내부로 들어서면 이국적인 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인도 서적과 세계문학 및 인문학 책이 즐비하다. 이곳은 제주 속 인도, ‘바라나시 책골목’이다. 바라나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도시다. 갠지스강 중류에 있는 바라나강과 아시강을 합쳐 붙인 지명으로, ‘신성한 물을 차지한다’는 뜻이 있다. 생애 한 번은 가봐야 할 도시로 꼽히며, 일부 여행객은 인도 여행의 필수 코스로 소개하기도 한다.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은 한국에서 인도의 정취를 느끼기 충분한 장소다. 책방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인도식 밀크티인 ‘차이’나 요구르트 ‘라씨’도 맛볼 수 있다.
만춘서점_야자수를 배경으로 한 아담한 흰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삼각형 구조의 내부로 매력을 더했다.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책들과 LP, 제주의 감성이 흐르는 소품이 가득하다. ‘만춘서점’ 책방지기는 출판·디자인 업계에서 일하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그래서인지 육지 사람이 그리는 제주의 장면을 더욱 잘 옮겨놓은 듯하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1인용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어 가기도 좋다.
소심한 책방_오름 다섯 개가 감싸고 있어 유독 고요한 제주의 동쪽 끝 마을, 종달리다. 좁은 골목 안쪽, 돌담 너머에 ‘소심한 책방’이 있다. 이곳은 각각 제주와 서울에 사는 두 사람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모아 만든 공간이다. 소설, 에세이, 여행 등 단행본부터 독립 출판물, 제주 특산품, 문구까지 다채롭게 구비했다. 낮에는 햇살이 가득 들어와 책방에 온도를 더해주고, 밤에는 노란 불빛이 다정하게 채워진다. 때로 소소한 전시나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주변에 들를 곳이 많은 관광 지역이 아닌데도 굳이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하나만 꼽기 어렵다.
책약방_‘책약방’은 초록 잎과 나무, 낮고 작은 집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무인으로 운영된다. 사람 대신 책이 지키고, 마을이 지킨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현관 옆에 걸린 작은 의자 위에는 운영자가 추천하는 ‘오늘의 그림책’이 놓여 있다. 비치된 그림 일기장과 100자짜리 작은 원고지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다. 릴레이처럼 이어진 글들을 읽다 보면, 책약방의 진짜 ‘약’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된다.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올레길은 제주도의 마을길, 해안도로, 숲속 오솔길 등 걷기 좋은 길들을 선정해 개발한 코스다. 2007년 9월 8일 제1코스(시흥초등학교~광치기해변, 총 15km)가 개발된 이래, 2012년 11월 제주해녀박물관~종달바당을 잇는 21코스가 개장하면서 올레길 코스는 제주도를 한 바퀴 빙 두르게 됐다. 현재는 제주도 내에 총 23개 코스가 있으며 우도, 가파도, 최근 확장된 추자도 코스를 포함하면 총 27개다. 각 코스는 길이가 대체로 15km이내이며, 평균 소요 시간은 5~6시간 정도다.
제주도 올레길을 한 코스씩 돌다 보면 도내의 모든 코스를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코스도 있어 차를 갖고 있지 않다면 동선과 숙소 계획을 맞춰 짜야 한다. 식사도 매번 사 먹을 수 없으니 간단하게 준비한다. 또한 올레길은 리본을 매달아 길을 안내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혼자 간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통상 날이 저무는 시간인 오후 6시 이후로는 드문드문 표시한 리본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길을 잃기 쉽다.
이런 사소한 단점을 보강한 ‘알파캠프’는 트레킹과 관련해 가이드, 교통, 식사, 숙소, 세탁 서비스 등을 모두 제공한다. 더불어 관광객이 한 달 동안 제주의 모든 올레길과 새로 생긴 하영올레길까지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토끼반과 거북이반 중 하나를 골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체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보통 중장년층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68세 이선이 씨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그 대신 올레길을 걸어볼 생각으로 알파캠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올레길 코스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숙소 예약도 번거로워 고민하던 차였다. 이 씨는 “차로 여행할 때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가까이 보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제주는 그저 우리나라의 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정겨운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알파캠프에는 제주 올레길 코스를 완주하는 ‘제주올레캠프’ 프로그램 외에도 오름이나 한라산, 4대 휴양림, 숲길 등을 다양하게 걷는 ‘제주여행캠프’, 다이어트 식단을 제공하는 ‘다이어트 캠프’, 오름 전문 캠프인 ‘제주계절캠프’ 등이 있다.
의미 있게, 친환경 한달살기
‘제주도’ 하면 많은 이들이 청정 자연을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해변에는 폐그물, 밧줄, 스티로폼, 플라스틱, 페트병, 장대 등 폐어구와 나무토막이 가득하다. 게다가 언제 번식했는지 모를 파래가 수면에 떠 있거나 바위나 모래사장에 널려 있어 볼썽사납다.
제주도는 수용력을 넘어서는 관광객의 유입으로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도는 1인당 폐기물 발생량을 전국 평균의 2배 이상, 관광객이 버리는 생활폐기물은 전체 발생량 가운데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일부 관광객은 제주를 지키기 위해 ‘쓰레기 없는 제주’를 여행 혹은 한달살기 테마로 설정한다. 제주에 있는 동안 최대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플로깅을 하는 식이다. 플로깅은 간단한 산책이나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혼자서 가고 싶은 장소를 지정해 환경 정화를 하거나, 제주 내 여러 봉사단체에서 진행하는 캠페인과 이벤트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나에게 맞는 여행 테마는?
후회 없을 제주도 한달살기를 위해서는 장소 위주로 계획을 짜기보다 나만의 큰 주제나 목표를 정하는 게 좋다. 우선 ‘왜 제주도에 가려고 하는지’를 고민해보자.
1 건강하게 한달살기 ‘하루 한 군데 오름 오르기’, ‘서핑·승마·스쿠버다이빙 등 레포츠 한 종목 배우기’, ‘한 달간 인스턴트식품 끊기’ 등으로 몸을 상쾌하게 만들 수 있다.
2 휴식하며 한달살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면 ‘매일 한 시간씩 바닷가에서 멍때리기’, ‘동네 반경 5km 안에서 생활해보기’, ‘7시간 이상 수면하기’ 등의 방법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3 습관 개선 한달살기 한 달 동안 ‘전자기기 없이 살기’, ‘부정적인 말 하지 않기’,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기’ 등을 시도해 나를 괴롭히는 습관을 개선해보는 건 어떨까.
1 바라나시 책골목 2 만춘서점 3 소심한 책방 4 책약방
인도네시아 빈탄섬에는 세 개의 그림 같은 코스가 있다. 세계 100대 코스에 오른 리아 빈탄, 아름다움으로 명성을 떨치는 라구나 빈탄, 그리고 오늘 소개할 빈탄 라군이다. 1996년에 개장한 빈탄 라군 골프장(Bintan Lagoon)은 빈탄의 세 개 골프장 중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그 다음해인 1997년에 라구나 빈탄이, 1998년에 리아 빈탄이 차례로 개장했다.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가 설계한 시 뷰(Sea View) 코스는 비교적 평탄하고 물을 많이 끼고 있는 아름다운 코스다. 이안 베이커(Ian Baker-Pinch)가 설계한 우드랜드(Woodlands) 코스는 거리는 비교적 짧지만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탓에 산세의 기복이 심해 어렵다. 주변의 리아 빈탄보다 더 난이도가 있다.
방문한 당시엔 수시로 장대비가 내리다가 거짓말같이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다른 빈탄의 골프장과 마찬가지로 코스 전체가 정글 속에 페어웨이와 그린을 앉혀놓은 듯하고 일부 홀은 바다를 접목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시 뷰 코스 1번 홀 좌측으로는 30여 개의 타석이 준비된 연습장이 있다. 캐디는 전체 70여 명이며 36홀 규모로는 많지 않은 수다.
빈탄 라군 골프장은 자체적으로 255명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싱가포르와 빈탄섬을 연결하는 왕복 페리를 하루에 두 차례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빈탄 라군은 잘 준비된 호텔과 다양한 먹거리가 큰 자랑이다. 일식당과 중식당은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다. 뷔페 식당인 FIESTA에서는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태국, 인도 등 7개 국가의 음식을 즐길 수 있으며, 한식도 단체 관광이나 골퍼들이 찾을 땐 어김없이 준비한다고 한다. 호텔 내의 미니 마트는 멀리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일상용품과 간식거리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413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은 4개의 레벨로 구분하여 고객의 취향과 가격대를 맞추었으며, 방 3~4개를 갖춘 25개 동의 빌라도 구비해 다양한 수요층을 흡수할 수 있다.
젊은 층을 겨냥한 나이트클럽이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MOJO CAFE가 아침 6부터 밤 11시까지 제빵류와 커피 등을 판매한다. TERAC라는 양식당은 맥주는 물론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거의 24시간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다.
이안 베이커의 우드랜드 코스
이안 베이커의 우드랜드 코스는 페어웨이도 평탄한 곳이 드물고 업앤드다운이 매우 심한 도전적인 코스라 할 수 있다. 페어웨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내리막 경사진 1번 홀처럼 많은 홀이 어려운 코스 레이아웃이다. 그리고 코스 전체가 무성하고 키가 큰 나무들로 페어웨이 주위를 꽉 채운다. 가히 정글 속에 앉혀놓은 페어웨이와 그린을 느낄 수 있다.
3번 홀(파4, 337m)은 티 샷 할 때 내리막 후 세컨드 샷은 다시 오르막인 우드랜드 코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린 앞쪽의 좌우와 왼쪽의 벙커가 홀을 어렵게 느끼게 만들었다.
6번 홀(파4, 315m)은 그린 앞에 두 개의 커다란 벙커가 나란히 있어 매우 부담스럽다. 내리막 홀로 그린 80m부터 그린 앞까지는 다시 오르막이다. 재미있으면서 어렵다.
8번 홀(파5, 444m)은 티 샷 할 때 내리막으로 그린 앞 8~40m 왼쪽의 9번 홀 티잉 그라운드 앞과 공유하는 호수가 위협적이다. 호수 옆 오른쪽에 있는 큰 나무 한 그루가 그린을 공략 할 때 부담스럽다. 그린 앞의 긴 벙커와 좌우 벙커도 위협적이다. 세컨드 샷이 짧으면 내리막에 걸려 어려워진다.
16번 홀(파5, 450m)은 내리막으로 멀리 좌우로 멋진 벙커가 무성하고 길게 이어지는 나무숲과 더불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전형적인 포레스트 스타일 홀이다. 세컨드 샷부터 오르막으로 우드랜드 코스의 모습을 잘 보여주면서 도전성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홀이다. 원숭이들이 종종 돌아다닌다.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시 뷰 코스
거장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코스로 전반 9홀은 이안 베이커가 설계한 우드랜드 코스만큼이나 울창한 수림을 갖고 있다. 후반 9홀은 울창한 수림과 물,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코스다. 특히 12번 홀은 바다와 리조트 그리고 그린이 잘 조화된 홀로 잭 니클라우스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9번 홀과 18번 홀의 절묘한 배치는 더욱 이를 뒷받침한다.
11번 홀(파5, 492m)은 멋진 내리막 홀로 페어웨이와 그린 뒤로 멀리 바다가 펼쳐진다. 그린 앞 140~150m에서 페어웨이를 가른 10m 폭 물길이 있어 세컨드 샷에 유의해야 한다.
12번 홀(파3, 142m)은 그린 뒤로 바다가 펼쳐지며 그린의 멋진 돌들이 바다와 조화롭고 아름답다. 홀 오른쪽으로는 멋진 바위들과 모래사장이 길게 이어지며 400여 개의 호텔과 페리 선착장과도 함께 펼쳐지는 멋진 홀이다.
18번 홀(파4, 361m)은 멋진 내리막으로 그린 앞 왼쪽에 100m 벙커와 해저드가 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그린 오른쪽 뒤 클럽하우스가 멋지다. 왼쪽은 9번 홀이 같은 모습으로 함께 병렬하고 있다. 멋진 대비가 돋보인다.
아름다운 인도네시아의 섬 빈탄에서의 4일간 라운드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기회가 되는 대로 나머지 두 코스도 소개할 예정이다. 아름다운 비치와 울창한 정글 속에 앉혀놓은 아름다운 골프장과 휴양처로, 숙박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과 서비스는 누구나 한 번쯤 와봐야 할 곳으로 추천하고 싶다.
기본만 하자. 수없이 하는 말이지만 정작 지켜지는 일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만큼 기본을 지키기도 어려운 세상일지 모른다. 그런 세상에서 기본을 지키는 이는 도리어 빛이 난다. 김진숙(71) 이사가 그렇다. 모래에 덮인 금이 시간 지나 점차 드러나듯, 나서서 설명하지 않아도 가치를 알아주는 이 말이다.
방송인 홍진경의 어머니 김진숙이 품질관리이사를 맡고 있는 주식회사 홍진경은 ‘더김치’를 비롯해 만두, 다시팩, 된장 등 양념류를 판매하는 식품 회사다. 대물림한 방식으로 담가 먹던 김치 판매를 시작으로 다른 상품들을 내놓으며 18년째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느님, 김치가 맛있어지게 도와주세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 김 이사는 1년 정도 김치를 판매한 적이 있다.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을 지인들에게만 조금씩 팔았던 건데, 이를 눈여겨본 딸 홍진경이 사업 제안을 해왔다. 아예 회사를 차리지 않겠냐는 본격적인 사업 제안이었다.
그는 강하게 반대했다. 망신당할까봐, 딸 이름에 먹칠하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선 나머지 한 달 정도 도망까지 다녔다. “우리 식구 먹는 거야 내가 한다지만 이걸 어떻게 대중 상대로 판매한다고 이러나 싶었어요. 대량으로 만든 김치가 우리 해 먹는 김치랑 같은 맛이 나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죠. 만약 맛이 제대로 나지 않으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나한테 그 어려운 걸 시키느냐고 거절했어요.”
딸은 포기하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쇼케이스라는 걸 해보자. 신사동에 있는 식당 하나를 빌려서 지인과 기자들을 초청하는 거야. 엄마가 찾아오는 사람들 대접할 배추김치랑 총각김치를 맛있게 만들어줘.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면 사업을 하고, 맛이 없다고 하면 내가 포기할게.” 김 이사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쇼케이스를 앞두고 김치를 담글 때 매일 기도드렸다. “하느님, 이 김치가 맛있게 익도록 도와주세요. 이거 정말 중요한 겁니다. 이게 잘돼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김치 담그느라 고생하는 주부들 수고도 덜어줄 수 있어요.”
신선한 재료, 굽히지 않는 원칙
행사 당일, 식당에는 돼지고기 수육과 조밥,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김치 본연의 맛을 느끼라고 새우젓은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목 축이는 데 필요한 직접 담근 식혜는 덤. 당시 쇼케이스를 위해 빌린 식당은 홍진경의 지인들로 북적거렸다. 엄정화, 최화정, 이영자 등 홍진경의 연예인 지인들부터 코미디언, 모델, 가수, 작곡가, 당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 잡지사 기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화정은 ‘어머니, 김치 맛이 살아 있어요’라고 했고, 이영자는 ‘엄마, 김치 진짜 맛있어’ 그랬죠.” 모인 사람들 전부 김치가 맛있다며 싸달라고 난리일 정도였다. 미리 소분해 포장해둔 김치를 한 봉지씩 챙겨 보냈고, 그 다음 날부터 신문이며 잡지에 ‘홍진경네 김치 맛있더라’는 기사가 잔뜩 실렸다.
2003년, 그는 결국 딸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서는 주문량을 채울 수 없으니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해내는 주문자위탁생산)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김치 10kg 기준으로 필요한 재료와 김치를 담그는 순서를 세세하게 설명한 레시피를 정리했다. 공장 측에 레시피를 전달하기로 한 미팅 전날 밤, 그는 딸을 불러 앉혀놓고 약속을 받아냈다.
“재료에 돈 쓰는 거 아까워하면 나는 이 일 못 한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집에서 하던 것처럼 좋은 재료로 만들 거고, 어느 공장 어느 사장님이 만들더라도 내가 써둔 이 레시피 그대로 만들어야 해. 그거 약속해야 엄마는 이 일 할 수 있어. 그랬더니 진경이가 눈을 딱 쳐다보면서 ‘엄마,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그러더라고요.”
처음 계약을 맺은 건 평택의 한 김치 공장이었다. 당시 레시피를 받아든 공장장은 “이거 대박날 수밖에 없겠다”고 했다. 만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조미료랑 설탕이 하나도 안 들어가. 그러니까 성공할 수밖에 없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역할 분담은 확실했다. 마케팅이나 회사를 경영하는 부분은 딸이 맡고, 재료부터 제품 품질 관리, 레시피 관련된 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공장과 배추밭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곤 했다. 비 내린 뒤 질척한 배추밭을 얼마나 걸었는지 엄지발톱이 빠진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에겐 영광의 상처일 뿐이었다. 딸의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인 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직원 수도 몇 명 안 되고 주문받은 물량도 적어 공장 한켠으로 물러나 직원들과 함께 조용히 김치를 버무렸다. 그러나 김 이사의 고집과 원칙이 통했는지, 하루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배가 넘는 양의 주문이 쏟아졌다. “지난주는 200kg, 이번 주는 300kg, 500kg 주문이 들어오더니 그 다음 주는 1000kg을 막 넘어갔어요. 1년 지난 뒤에는 우리 회사 김치부터 먼저 담그고, 그 공장에서 원래 담그던 김치를 자투리 시간으로 넘겨야 했죠.”
주문량이 많아졌어도 원칙은 그대로 유지됐다. 김 이사는 품질 관리를 위해 언제든 공장에 찾아와 김치에 쓰일 재료를 살펴볼 수 있고, 양념 맛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잎이 꺾이거나 푸른 이파리 많은 배추는 아예 쓰지 않고, 풀을 쑬 때도 무조건 국산 찹쌀만 고집했다. 배추 한 포기를 그냥 넘기지 않고 모든 배추에 양념이 고루 발리도록 했다. 다른 사업체 김치랑 섞이지 않게 철저히 관리해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았다.
김치의 질이 좋으니 주문이 폭주하는 건 당연한 일. 홈쇼핑에서 매진시킨 물량을 감당 못 하니 직접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직원들과 함께 김치를 담갔다. 방송에서 약속한 날짜까지 배송이 완료되지 않으면 소비자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거래하는 공장을 자주 바꾸지 않고 최대한 조율해 계약을 유지하는 이유도 김치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는 음식의 맛 역시 소비자와 기업 간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는 신뢰와 신용을 중요시한다. 소비자와의 약속, 직원과의 신뢰, 혹은 공장과의 신용.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려워도 “하던 대로 해요, 순리대로”
좋은 식재료를 판단하는 높은 기준, 재료의 맛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웰빙’ 조리법, 회사 직원들의 끈끈한 단합력. 더김치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서 매출은 계속 우상향 곡선만 그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치를 판매하는 회사가 몇 없었어요. 외국에 수출할 만큼 큰 회사랑 전체 판매량으로는 못 견줘도 그때 온라인 판매는 더김치가 1위였어요. 180억, 200억, 220억, 270억, 매출도 쭉쭉 올라갔어요. 주춤할 새가 없었죠.”
인기가 한풀 꺾인 건 3년 전쯤부터다. 연예인들이 직접 브랜드를 세워 판매하는 김치가 시중에 다양해지자 자연스레 매출 곡선이 꺾인 것이다. 다양한 회사,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제품들이 많아지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전에는 김 이사 혼자 혹은 딸 홍진경과 함께 홈쇼핑에 출연하는 일이 잦았지만, 최근 몇 년은 홈쇼핑에 베테랑 방송인 홍진경만 출연하고 있다. 타사 김치 매출을 따라잡기 위한 맞수다.
김 이사는 요즘 ‘혼자 홈쇼핑에 출연해도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방송 출연에 유튜브 콘텐츠 기획 및 촬영, 홈쇼핑 출연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을 걱정하는, 영락없는 엄마 마음이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기보단 하고 있는 식품에 집중하려고 해요. 하고 있는 걸 잘 지켜내자는 마음이 커요. 제품 하나 출시하기까지 레시피 정리하고 필요한 재료 하나하나 찾느라 몇 년은 걸리거든요.”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새로운 제품을 함께 내보자는 제안이 수없이 들어온다. 육수를 간편하게 우려낼 수 있는 ‘더다시팩’을 출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리 정해둔 출시일 이전에 경쟁사에서 비슷한 제품을 먼저 내버리는 허망한 일도 겪었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당황하고 힘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공정을 마무리했다. 예정대로 출시된 더다시팩은 좋은 재료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아 지금도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
“처음 매출 부진을 겪을 때 걱정한 건 사실이에요. 그때 아들이 ‘우리 순리대로 해요.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니까, 너무 남을 쫓아가려고 하지 말고 하던 대로.’ 말해줬는데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자식들에게 배운 기분이었죠.”
조용한 응원이 만든 빛나는 것들
유명 방송인의 엄마라고 다른 어머니와 뭐가 다를까. 그는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워낙 통통 튀는 성격인 딸이 어릴 때는 마음 놓을 새가 없었다. 하지만 딸을 지켜봐 온 엄마의 마음에는 언제나 신뢰가 굳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진경이 유튜브에서도 그랬어요. 누나가 갖고 있는 내공은 우리 가족들만 알고 있다고. 그게 정말 맞는 말이에요. 학교 공부는 안 했어도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하고 명석하거든요.”
TV 방송부터 넷플릭스 예능, 유튜브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딸을 보는 요즘은 감사하기만 하다. ‘우리 딸의 진가를 세상이 알아주는구나’ 싶어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든다.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유튜브 채널에 달리는 댓글도 전부 읽는다. 구독자 수만 100만 명을 넘길 만큼 인기 있는 데다 댓글엔 적재적소에 터지는 멘트, 짜임새 있는 영상 기획력 등 칭찬 일색이라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느님께 매일 기도했어요. 우리 아이에게 지혜를 주세요. 방송에서 빛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맡은 방송들 전부 다 빛나게 해주세요. 요즘은 딸이 그래요. ‘엄마가 맨날 기도했잖아. 그 기도대로 되고 있는 것 같아.’”
일이 바빠도 모녀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다. 딸이 출연한 방송 모니터링 후 칭찬은 필수다. 어느 부분이 좋았다고 콕 짚어주기도 하고, 재능은 항상 네 안에 있다며 북돋아주는 말도 한다. 아낌없는 응원이 홍진경과 라엘 모녀 특유의 솔직 당당한 매력을 자아냈다.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열었던 가족회의도 구김살 없는 성격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로 해결하는 시간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큰 소리를 내거나 험한 말 오가지 않고도 두 아이를 바르게 키워낼 수 있었다.
그는 엄마와 사업인으로서의 삶 중 무엇 하나 즐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힘든 때도 많았지만 매사에 즐겁게 임했다. 일하면서 항상 나 아닌 가족, 지인,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간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염원한다.
“배추나 무 농장에 가보면 일해주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그래요. 용돈벌이 하면서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저희는 좋은 재료 받아 좋은 음식 만들 수 있어 좋고, 어르신들은 일거리도 생기고 돈도 벌 수 있어 좋고. 아무리 돈 버는 기업이라도 저희만 잘 돼서는 안 되잖아요.”
그는 앞으로도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일상과 직업, 신앙을 굳이 구분하진 않는다. 무엇이든 기본에 충실해서, 지금 당장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시간 지나면 진가가 드러나는 사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부연하여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고개 끄덕이는 사람 말이다. 그가 키워낸 아이들이 그랬고, 담그는 김치가 그렇듯. 그가 소망하는 일을 이룰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한국의 서원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불현듯 떠난 여행길.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단연코 병산서원이었다. 안동 하회마을을 돌아보고 난 후, 병산서원을 향해 차를 몰았다. 지도에서 보면 낙동강의 물줄기는 S자로 흐른다. S자가 만든 골짜기 안에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나란히 있다. 하회마을을 투어하고 병산서원을 방문하면 꽉 찬 1일 코스로 손색이 없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6km 떨어진 거리에 있으니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불편하기 그지없다. 하회마을에서 곧장 갈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보니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서 내려 한참을 걷든지 아니면 다시 안동까지 가서 병산서원으로 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안동의 관광 구역을 묶어 투어 버스를 운행해보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운전하면서 온갖 아이디어로 안동 지역 관광을 증진하는 말의 향연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신장이 족히 190cm 정도는 되어 보이는 체격 좋은 외국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무거운 배낭 차림으로 포장도 안 된 도로를 걷고 있는 옆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잠깐, 저 친구 병산서원 가는 거 아닐까?” 우리 일행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고 길 한쪽에 차를 세우고 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Are you going to Byeong San?” 맞았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걸어오는 길이란다. 아직 4km도 넘게 남은 길이었다. 이 친구를 앞좌석에 태우고 병산서원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독일 청년이었다. 1년 전에 한국에 왔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 곳곳을 혼자서 돌아다닌다고 했다.
한국어도 거의 하지 못하는 독일 청년이 안동까지 혼자 여행 와서 걸어 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습하고 무더운 여름 날씨에 고생이 심해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 보니 어느새 병산서원 주차장이었다. 돌아갈 때도 태워줄 테니 편하게 서원을 관람하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한 후 독일 청년과 헤어졌다.
이제부터 병산서원을 차근차근 훑어볼 시간. 중장년층 세대의 병산서원에 대한 관심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3’에서 시작됐을 듯싶다. 유 교수는 “인문적·역사적 의의 말고 미술사적으로 말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으로 한국 건축사의 백미”라며 병산서원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아울러 “하회의 답사적 가치는 어떤 면에서는 하회마을보다 꽃뫼 뒤편 병산서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병산서원에 들어서자마자 만대루에 감탄한다. 다른 서원에서는 볼 수 없는, 200여 명은 함께 모여 강학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큰 망루다. 만대루를 떠받치고 있는 휘어진 모습 그대로의 기둥들과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까지 자연의 모습이 건축물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모래사장의 풍경과 낙동강 물줄기를 감싸 안은 산세들을 만대루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옛 서생들이 품었던 기개가 느껴진다.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며 공부할 수 있도록 대자연을 건축으로 끌어들인 한국 건축의 백미라는 유홍준 교수의 찬양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대루 밑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서면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있고 맞은편으로는 입교당이 있다. 입교당에 앉아 만대루가 들어선 서원의 앞쪽을 바라보면 산을 끼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대루 기둥 사이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인 듯해 잠시 말을 잃을 정도다.
병산서원 곳곳에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예로부터 선비, 유학자들이 서원 혹은 향교에 심었고 사찰에서도 많이 심었던 꽃나무다. 이 나무를 심는 데는, 1년에 한 번씩 나무껍질이 벗겨지는 배롱나무처럼 정진을 거듭해 심신을 수련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꽃이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가 너무 황홀하다. 가끔 수련에 지장이 되는 날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배롱나무 자태에 취하고 만대루 풍경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병산서원을 나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독일 청년이 의자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다 반겨준다. 우리가 떠나버린 건 아닌지 걱정한 모습이다. 오늘 밤 숙소를 물어보니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며 안동버스터미널에 내려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Of course!!” 병산서원의 황홀한 자태에 취한 저녁, 우리는 안동버스터미널에 눈동자 파란 외국인을 내려주며, 저 친구가 오늘을 평생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風岳書堂)을 모체로 건립됐다.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풍악서당의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왕이 크게 감동하여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하였다.
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가까이에 가호가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며, 차츰 시끄러워지면서 유림들이 모여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던 중에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 부친상을 당하시고 하회에 와 계실 때 그 일을 선생에게 문의하니, 서애 선생께서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권하게 되었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1575년(선조 8)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하였다. 1662년(현종 3)에 선생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공의 위패를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1863년(철종 14)에 조정으로부터 '병산서원'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려졌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중 하나다. 1978년 3월 31일에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병산서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췌)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서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산들산들 부는 자연의 바람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 사람들 북적이는 서울을 벗어나 쪽빛 하늘, 쪽빛 바다가 있는 청정지역에서 말이다. 간절히 원하면 길이 보인다 했던가? 지인에게서 지난 수요일 전화가 왔다.
“이번 주 주문진 아파트 비었는데 놀러가실래요?”
어이쿠 이게 웬 떡? 예정에 없던 주문진행 주말 나들이가 이뤄졌다. 주문진에 위치한 아파트는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직원 복지를 위해 구입해 펜션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몇 번 주말에 가겠다고 요청했는데 늘 대여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나보다.
6월 초 주말 스케줄이 빈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놀기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런 찬스가 아주 쏠쏠하다. 이렇게 해서 2박 3일 주문진 여행이 시작됐다. 사실 동해를 안 가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50대 중반을 넘겼으니 가 봐도 수십 번은 가봤을 곳이지만 그래도 일상을 떠나 바다를 보러 간다는 것 자체는 늘 설렘과 기대를 주는 아주 작은 행복 중 하나다. 특히 요즘과 같은 코로나 정국에서는 말이다.
나이 들면서 여행을 떠나니 여행지에서의 즐거움이 예전과 좀 달라진다. 광폭 행보로 이곳저곳 사진 찍기 바쁘게 움직이는 것보다 묵을 곳 정해놓고 동네 마실 다니듯 기웃거리며 보고 먹고 마시는 소소한 즐거움이 더 새롭다.
금요일 오후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주문진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장치찜을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문진수산시장 쪽으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수요미식회에서 소개한 장치찜을 먹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점심부터 굻고 왔다는 후배와 나는 부지런히 걸어 마지막 손님을 받고 한숨 돌리고 있던 월성식당에 무사히 터치다운했다.
닫으려는 문을, 서울에서 지금 막 내려왔다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며 읍소! 결국 주방일하는 남자 사장님에게 다시 앞치마를 두르게 하고 마침내 한 접시 수북한 장치찜을 맛봤다. 어라? 근데 이 장치라는 놈, 아구도 아닌 것이 장어도 아닌 것이 요상한 형태의 생선이었다. 살은 말랑말랑하고 적당한 기름기에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아구찜보다 기름지고 장어와는 달리 매콤해서 밥도둑이 따로 없다. 여기에 곰배령 생옥수수 막걸리까지 소박한 호사를 부리고 숙소로 갔다.
밤늦게 아파트에 도착해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이 들었다. 주위의 깊은 어둠 때문일까? 불면증 때문에 고생이라는 후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도시에 살아서 불면증일까? 늦은 저녁을 포식해서 잠이 쏟아진 걸까? 어찌됐든 오랜만에 자는 꿀잠이 도시에서도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아침부터 막국수
아파트가 위치한 주문진 소돌마을. 이른 아침부터 아파트 근처 곳곳에서 닭을 키우는지 여기저기서 닭이 우렁차게 울어댄다. 푹 자고 일어나 상쾌한 몸으로 한 바퀴 돌며 동네를 염탐해봤다. 멀지 않은 도로변에 깨끗하게 생긴 막국수 집이 눈에 띈다. 오픈시간을 확인하니 아침 8시부터 문을 연단다. 흠 아침부터 막국수 먹는 사람이 많나? 부지런히 숙소로 돌아와 나갈 채비를 하고 막국수 집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인데 벌써 막국수 먹으러 온 외지인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실내를 둘러보니 심상치가 않다. 어젯밤 주문진수산시장 인근 월성식당에서 먹었던 장치찜도 수요미식회에 나왔다는 정보를 갖고 찾아갔는데 아침부터 막국수 먹겠다는 가상한 용기를 예뻐하셨는지 이 집 막국수 맛 또한 환상이다.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드렸다. 심드렁한 주인아저씨 왈, “우리 집 맛집이여. 모르는가벼?”
이번 여행은 주문진에서만 머물기로 했다. 일단 차가 없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이 불편하기도 했고 몇 번씩 가본 곳들을 또 가려고 렌터카나 택시를 이용하기도 내키지 않았다. 오직 주문진 바닷가를 거닐고 산책하고 샛길, 오솔길, 큰길… 길이란 길은 다 걸어 다녔다. 시골 산길을 걷다 분위기 넘치는 돌계단이 있어 올라가 봤다. 계단을 오르자 양지바른 언덕에 고즈넉하게 단장돼 있는 누군가의 무덤이 나타났다. 뜻하지 않게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에게 잠깐 묵념을 하고 내려왔다. 묘역이 웅장하지 않지만 품위 있어 보였다. 후손의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졌다. 언덕 위 묘역에 잠드신 분보다 이렇듯 품격 있게 관리하는 후손이 더 대단해 보였다.
한참 돌아다닌 끝에 의외의 산책 코스를 발견했다. 주문진 바닷가 건너편 향호리에 위치한 호수 향호다. 향호는 강릉 경포대, 고성 송지호와 함께 강원도의 대표적인 석호라고 한다. 석호란 파도가 해변의 모래를 밀어 올려 둑을 쌓고 모래섬이 커지면서 바닷물이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길을 막아버려 생긴 호수다. 돌아갈 곳을 잃어버려 다시 그곳에 정착한 실향민 혹은 이민자 같다. 마치 내 신세 같다고나 할까? 바다 깊이가 얕고 밀물 썰물의 차이가 큰 서해안은 갯벌이 발달해 석호가 생기기 어렵지만 동해안을 끼고 있는 강원도와 함경도에는 큰 석호가 많단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포대가 가장 큰 석호 중 하나이며 향호는 주문진 바닷물이 돌아가지 못한 작은 석호다.
바람의 길, 트레킹 코스
향호를 지나는 트래킹 코스도 발견했다. 이른바 강릉 바우길 13구간 바람의 길이다. 이 길은 주문진 해변에서 시작해 산간으로 들어오는 고속도로 교각을 지나 향호 호수 제방을 따라 산길까지 15km 구간을 트레킹하는 코스다. 산길을 거닐며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어 바람의 길이라고 불린단다. 이름이 참 예쁘다.
강릉 바우길은 제주 올레길 성공에 자극받아 지난 2009년도부터 개발됐다고 한다. 바우는 바위를 의미하는 강원도 말로, 백두대간의 시작인 강원도의 트레킹 코스를 일컫는 용어로 정착됐다. 기존 산악 등산로와 연결돼 손쉽게 개발된 코스 외에도 바우길 개척대가 신설한 코스 등을 합해 현재는 총 19구간으로 확대됐다. 2010년에는 사단법인 강릉 바우길이 설립돼 스토리텔링과 코스 개발 등을 맡고 있다.
산에 난 오솔길 등산로를 걷는 즐거움도 있지만, 강릉 바우길 13구간 바람의 길에서 향호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에서 매력을 느낀다. 산책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호숫가 옆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호수를 노니는 물새들을 바라보며 갈대 숲길을 따라 걷다가 주문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흐르는 땀을 식힐 수 있다. 중간중간 설치한 등나무 쉼터 벤치에 앉아 동네 촌로가 가꿔놓은 정갈한 경작지에서 자라는 야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 집 뒷마당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편안함을 맛보게 된다. 등나무 벤치에 앉아 노래 한 곡을 듣고 일어났다. 이제 주문진 바닷가로 향할 참이다. 이른 아침 막국수 한 그릇으로 채운 배가 신호를 보낸다. 회는 언제 먹을 것이냐고. 주문진 바닷가를 향해 걸어가 본다.
관광객들이 모여 있는 주문진 바닷가에서 벗어나 소돌해변 쪽에서 들어가면 식객 허영만 화백의 백반기행에서 소개한 섭국 전문점 미경이네 횟집이 나온다. 메뉴를 찬찬히 살피다 일단 오늘은 회를 먹고 섭국은 내일 아침 식사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자연산 회와 소주 각 1병씩으로 운동의 피로를 적당히 풀었다. 부산스럽지 않은 여유로운 여행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이른 저녁의 술 한잔도….
바닷가를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해변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버스정류장 앞에 외국 여학생들이 까르르르 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해 버스정류장을 살펴보니 2017년 BTS가 발매했던 ‘봄날’ 앨범 재킷 사진을 촬영했던 향호 해변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세상에나!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구나. 우리 역시 라인업을 하고 쪽빛 바닷가를 배경으로 녹슨 버스정류장에서 인생 샷 한 컷을 건졌다.
아무 할일 없이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는 일은 인생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중대 사건이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면 몰라도 연령대별로 해야 하는 과업에 낙오하지 않고 패스하기 위해 우리는 늘 여유가 없었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바쁘게 살아야 했다. 지하철 환승 칸을 체크하며 바꿔 탈 때마다 종종걸음으로 옮겨 다녔고 버스로 환승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이제 인생의 숙제는 다 끝냈고 난 나의 길을 찾아 이길 저길 돌아다녀본다. 내게 맞는 길은 어디 있는지, 이 길은 맞는 길인지, 또 이 길은 어디로 맞닿을 길인지.
섭미역국은 모범생, 섭국은 깡패 같은 맛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마지막 할일 하나가 남았다. 섭국을 맛보는 일. 미각여행의 끝을 보고 말리라. 둘째 날 이른 아침 짐을 챙겨 일단 미경이네로 향했다. 아침 식사로 섭국을 맛보기 위해서다. 섭은 자연산 토종 홍합으로 옛날에 쌀이 귀하던 시절, 어민들이 채소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홍합을 듬뿍 넣어 끓이는 국에 이 채소를 넣고 매콤하고 알싸하게 끓여 먹었던 국이라고 한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장님이 서울 촌놈들을 대상으로 섭의 유래와 섭국 끓이는 법까지 일장 강의를 하신다. 강의가 끝난 후 섭국이 나왔다. 우리가 자주 먹는 국밥의 내용물이 홍합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해장에도 좋고 아침 식사 한 끼로도 충분했다.
그때 식사가 끝난 것을 본 사장님이 또 출동. 허영만 선생이 섭미역국은 모범생, 섭국은 깡패 같은 맛이라고 설명했다며 우리에게 맛이 어땠는지 물어보신다. 아! 집요한 사장님. 이래서 성공했구나. 우리 둘은 “알싸한 맛이 깡패 같아요“ 하고 대답해줬다. 매우 흡족해하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해안가 산책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걷다가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 가까이 가봤다. 도로변 나뭇가지에 나란히 꼬챙이에 꽂힌 오징어가 말라가고 있었다. 다리는 모두 잘린 채. 그 오징어 사이사이로 보이는 쪽빛 바다, 쪽빛 하늘…. 2박 3일 완벽한 힐링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뭔가 빠진 듯 내내 허전함이 느껴졌다. 뭐지? 이번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본다. 맨 마지막 사진. 다리 잘린 오징어. 그 사진을 보자 떠올랐다. 맞아! 주문진은 오징어였지? 다음 여행을 기약해본다.
햇볕이 쨍쨍 쪼이는 날 어느 날이고 제주도 성산포에 가거든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시집을 가지고 가라 한다.
‘아침 여섯 시 어느 동쪽에도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이생진 시인의 시집을 들고 볼가를 스치듯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벗 삼아 마음의 고향을 찾듯 성산포로 간다.
성산포는 제주를 수 십 차례 오고 가면서 끝없이 찾아드는 해안가다.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드라마틱한 자연의 변화를 펼쳐 보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가면 마음에 위안을 얻는 때문이다. 유난히 현실이 버겁다 싶으면 해안가에 앉아서 몇 시간을 머물다 오기도 하고 바쁜 일정에 짧은 시간밖에 낼 수 없어도 기어코 들러보아야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바닷가 화산 폭발에 의해 생성된 수성화산인 성산일출봉은 일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99개의 거대한 기암을 호위병처럼 거느린 동쪽 끝 태양이 떠오르는 자연이 만든 성의 모습은 정상에 올라야 보인다. 한 번쯤은 새벽잠을 깨워 해맞이를 해보기를 추천한다. 기기묘묘한 거석들과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 빙 둘러 천연 요새를 구축하고 있는 성산일출봉에 오르면 자연의 경이로움 아래 태양과 바다 그리고 제주의 모체인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이나 시각에 따라 오르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성산포를 온전히 느끼길 원하고, 위안을 얻고자 한다면 해안을 따라 느릿하게 걸으며 발자국을 남겨보자. 걷기의 시작은 이생진 시비거리다. 성산일출봉이 바라다 보이는 ‘시의 바다’에 멈춰 이생진 님의 시를 읽는다. 성산포를 유난히 사랑하는 시인, 이생진은 1978년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펴냈다. 성산포와 해, 바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을 사랑하였던 시인이 그려놓은 시의 길을 따라 봄날을 걷는다. 가을에는 갯쑥부쟁이와 해국이 해안절벽을 따라 피어 장관을 이룬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이는 잔디밭 길은 15년 전에는 참 한적한 곳이었다. 지금은 올레를 걷는 이나 성산일출봉의 새로운 모습을 보려는 이들로 꽤 북적거린다.
성산일출봉에 가까이 다가갔다 수마포해안 쪽으로 방향을 틀어 광치기해안으로 방향을 잡는다. 광치기해안은 원래 터진목이었다. 파도가 실어 나른 모래가 쌓이고 쌓여 육지와 가까워졌고 거기에 인간의 힘을 더하여 이어지게 되었다. 해안에서 바라보면 성산일출봉의 자태가 유난히 미끈하다.
마음이 유난히 울적할 때면 파도가 거센 해안가에 서보라. 광치기해안은 물때를 잘 맞춰서 썰물일 때 가는 것이 좋다. 물이 빠져 바다가 숨겨놓은 푸르른 암반지대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 숲 속 바위에 내려앉은 초록 이끼와 닮은 바다이끼가 돌빌레를 빼곡하게 덮고 있다. 바닥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물빛과 어우러져 가슴에 푸른 동심원을 그리듯 희망을 전한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봄바람은 파도를 어루만지고... 수평선 너머를 응시하는 여행자의 상념은 파도를 따라 밀려오고 밀려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수 천 년이 켜켜이 쌓인 해안에 서면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 선 듯 신비롭다.
광치기해안이 끝나면 섭지코지가 시작된다. 섭지코지는 좁은 땅 이란 뜻을 지닌 ‘섭지’와 바닷가에 불쑥 튀어나온 땅(곶)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인 ‘코지’가 합쳐진 지역명이다. 낮은 풀로 뒤덮인 나지막한 오름 자락에서 풀을 뜯는 말들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출렁이는 파도를 이불 삼아 성산일출봉이 누워있다. 길은 두 개로 갈리는데 왼쪽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초입에 있는 지역 해녀들이 운영하는 섭지해녀의 집은 겡이죽, 전복죽, 성게칼국수 등을 파는 음식점이다. 작은 게를 갈아 넣어 끓인 겡이죽이 별미다. 해녀의집에서 나와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불턱이 보인다. 제주의 해녀들은 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물에 들어가야 했고 이곳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서로를 다독였다. 불턱은 해녀들의 쉼 자리다.
굽이치는 해안선을 따라 파도가 부딪치는 길을 걸어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니 기암괴석과 등대가 있는 섭지코지의 진짜 코지가 나타난다. 등대에 올라 섭지코지의 매력을 한눈에 담은 후에 내쳐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였던 올인하우스까지 걸어간다. 현대적인 건물이 있어 분위기를 방해하는 느낌도 있지만 시커먼 바위 절벽 위의 데크를 따라 걷는 길은 충분히 이국적이다. 성산일출봉이 시야에 사라질 듯한 지점에서 걷기를 마무리한다.
이생진시비거리에서 시작한 성산포 걷기가 섭지코지 언덕에서 끝을 맺는다. 서 있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성산일출봉은 그동안 습관적으로 떠올렸던 성산일출봉의 모습과는 다르다. 언덕과 모래사장을 걸으며 바다에 취했고 이생진 시인의 시구를 떠올렸다. 잠깐 다녀가는 여행자가 아닌 성산일출봉과 동행이 되어 걷는 길에서 답답한 봄날에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