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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나기, 우리에겐 모시옷이 있었다
- 본격적인 무더위가 몰려오고 있다. 충남 서천 여행 중에 마침 한산 모시관이 있어 들렀다. 예로부터 한산 모시는 정갈하면서도 우아한 맵시를 보여주는 한여름 최고의 전통 옷감이었다. 무더위를 이기게 해줄 간소하면서도 시원한 옷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요즘이지만 옛 어른들은 모시옷으로 더위를 잊었다. 산아래 멋진 한옥으로 단정하게 지어진 한산 모시관으로 들어가니 저절로 차분해졌다. 백제시대 때 모시풀을 처음으로 발견한 곳이 바로 이곳 건지산 기슭이었기 때문에 모시관을 이 땅에 지었다고 한다. 입구로 들어가니 뜰 한쪽 작은 밭에서 재배되고 있는 모시풀이 눈에 들어왔다.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심어놓은 듯했는데, 마치 깻잎과 흡사한 모양새였다. 모시풀은 습기가 많고 기온이 높은 곳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산 모시로 만들어진 품격 있는 역사 속 옷들을 보고 싶었다. 지하 1층에는 삼국⋅통일신라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시의 역사와 함께 시대별 전통 복식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신분과 관계없이 옛 조상들이 입었던 옷과 의복 재료로 다양하게 사용된 모시의 우수한 품질을 볼 수 있다. 1층에서는 한산 모시의 유래와 발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한산에서 모시가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전시된 글에는 “통일신라시대 한 노인이 약초를 캐기 위해 건지산에 올라가 처음으로 모시풀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하여 모시 짜기의 시초가 되었다고 구전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2층에서는 4000번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한산 모시의 제작 과정을 영상과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자연에서 채취한 동양의 5원색 백․청․황․적․흑의 천연염료로 만들어낸 우아하고 아름다운 옷들도 감상할 수 있다. 역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유네스코 인류무형무화유산으로 불릴 만하다. 전통관 안채에서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 모시 짜기 보유자 방연옥 선생의 시연을 보며 전통 공예의 섬세함과 인내의 작업 과정을 이해했다. 머리카락보다 가늘다는 모시올은 작업자들의 입술과 이로 뽑아낸다고 한다. 그렇게 뽑은 모시올을 모아 모시실을 만들고 그 모시실을 베틀에 올려 한 필을 만들어내는 데 무려 5개월이나 걸린다고 한다. 그 과정을 직접 보니 소중함과 특별함이 더했다. 베틀 앞에 앉아 베를 짜기까지의 많은 과정 중에 모시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모시 째기’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이[齒]를 사용하는데, 아랫니와 윗니로 태모시를 물어 쪼개다 보면 피가 나고 이가 깨지는 고통스러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에 골이 파지고 모시 째기가 수월해진단다. “길이 들어 몸에 푹 밴 버릇”일 때 흔히들 “이골이 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분들의‘이골이 나는’작업에서 생겨난 말이다. 한산 모시 홍보관에서는 모시로 만든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립 농산물품질관리원의 엄격한 품질 기준에 따라 유통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 믿음이 간다. 모시 전시관에서 연결된 육교 건너편에 한산모시 공예마을이 있어 넘어가 봤다. 1500년 전통의 한산 모시를 현대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모시옷 입기 체험, 미니베틀 체험, 천연염색, 부채 만들기, 모시 공예, 한산 모시식품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모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시간이다. 미리 예약하고 방문하면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모시옷은 더운 여름 특별한 경우에만 입거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옷이 되었다. 손이 많이 가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격도 아니어서 대중적이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직접 보고 듣고 살펴보니 한 번쯤 입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왕에게 진상했다는 한산 모시가 얼마나 시원하고 착용감이 좋은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결이 가늘고 고울 뿐 아니라 통풍까지 잘되는 우리의 여름옷이 바로 모시옷이다.
- 2020-06-2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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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라이프]연예인 부부는 어떻게 살까
-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연기자의 길을 함께 걷는 나와 집사람은 상반되는 점이 많아요. 감성적인 나는 화가 나면 속에서 무언가가 위로 끓어오르지만 이성적인 집사람은 그럴수록 감정을 아래로 가라앉혀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상반된 부분을 닮아가는 것도 꽤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아내의 연기하는 모습에 반해 결혼했지요. 46년 동안 부부로, 동료 연기자로 한길을 함께 걸어왔는데 참 행복합니다.” 중견 연기자 최불암(76)은 1970년 김민자(74)와 결혼해 46년 동안 부부로, 배우의 길을 함께 걷는 동료로 살아온 생활이 많이 행복하다고 했다. “한참 활동을 할 때는 서로의 연기와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저는 남편의 연기에 대해 엄격하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스타일이에요. 요즘에는 남편이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건강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되네요. 연기자라는 한길을 걸었기에 연기자로 일하면서도, 부부생활에서도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큰 어려움 없이 잘 살았어요.” 김민자 역시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 최불암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다. 근래 들어 최불암·김민자 부부처럼 연예인끼리 결혼하는 커플들이 늘고 있다. 교사, 의사, 변호사 등 같은 직업을 갖거나 식당, 농사 등 같은 일을 하는 부부들이 적지 않다. 같은 일을 할 때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소통도 잘돼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부부생활에서도 활력이 생긴다는 부부가 있다. 반면 서로를 너무 잘 알아 배우자에 대한 긴장감과 설렘이 사라지는 데다 일하는 능력과 수입의 편차 등으로 부부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다. 연예인은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대중매체의 조명이 잇따르기 때문에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매스미디어에 의해 구축된 이미지와 실제의 간극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드라마나 영화, 음악 등 작품마다 반응과 평가가 다르고 수입과 직결되는 인기는 매우 가변적이다. 일하는 활동량도 인기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곳’이 연예계이기에 소문과 스캔들이 상존한다. 배우나 가수라는 직업은 일반 직장과 전혀 달라 근무 형태가 매우 불규칙적이다. 이러한 특성을 가졌기에 배우, 가수, 예능인 등 연예인끼리 결혼한 부부들은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최불암·김민자 부부는 연기자라는 길을 함께 걸어 서로를 더 잘 이해해 생활면에서 많이 행복하고 배우로서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최불암·김민자 부부처럼 가수, 배우, 예능인 등 연예인의 길을 함께 걷는 부부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연예인 부부의 삶은 천양지차다. 연예인 부부마다 연예 활동과 가정생활에 큰 차이를 보인다.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이라 명명되며 수많은 대중매체와 대중의 관심 속에 결혼한 영화 스타 신성일(79)·엄앵란(80)부부는 결혼 이후 활동에서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신성일은 계속해서 영화 활동을 왕성하게 했지만, 엄앵란은 배우 활동을 중단하고 가사와 사업에 전념했다. 부부생활 역시 남편 신성일의 외도로 인해 1977년 별거 상태에 들어가 현재에도 신성일은 경북 영천에, 엄앵란은 서울에서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아간다. 엄앵란은 방송 등을 통해 “시댁에서 연예 활동을 반대했고 또한 가정을 책임져야 해서 결혼 이후 배우 활동을 접고 육아와 사업에 전념했다. 남편의 외도 등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내가 선택했으니까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 견디며 살았다. 남들은 신성일 씨가 워낙 매너가 좋고 잘해줘 ‘당신 좋겠다’고 하면 속으로 ‘웃기고 있네’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신성일씨는 남편으로서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연기자로서는 최고다. 같은 배우 입에서 봐도 그렇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저서 등에서 “아내 엄앵란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엄마이고 아내로서도 최고다. 여러 가지 일로 내가 많이 힘들게 했다. 배우 신성일이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내 덕분이다. 팬들을 실망하게 하는 이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1994년 방송된 드라마 남·녀 주연으로 나선 것이 인연이 돼 연인으로 발전해 1995년 결혼한 차인표(49)·신애라(47) 부부는 신성일·엄앵란 부부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차인표·신애라, 두 사람은 연예 활동은 물론 두 아이의 입양, 자선 활동, 종교생활에 이르기까지 함께하며 진정한 동반자의 삶을 살고 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는 작품 선택에서부터 아이들의 육아 방향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를 하며 결정한다. 신애라는 아이를 출산하고 두 아이를 입양하면서 육아, 가사, 그리고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스스로 작품 출연과 방송 활동을 줄였다. 반면 차인표는 결혼 이후에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신애라는 “아이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어 연예 활동을 제가 스스로 줄인 겁니다. 물론 좋은 작품이 섭외가 오면 출연했지요. 전 저보다 남편이 연기자로서 더 잘되는 것이 좋아요”라며 결혼 후 차인표 인기는 치솟고 자신의 인기가 낮아진 것에 대해 오히려 더 좋다고 했다. 신애라는 “결혼 여부를 떠나 차인표씨만큼 저와 잘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서로가 받아 줄 수 있는 단점과 서로가 기뻐할 만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고 남편 차인표에 대해 말했다. 차인표는 “당신은 옷장이었다. 문만 열면 필요한 옷이 있었다. 추울 땐 두꺼운 외투, 털장갑을 건네줬다. 무더운 날엔 시원하게 다니라고 모시옷을 내줬다. 나의 진실한 옷장이었다. 울면 울어주고, 기쁜 날 더 크게 웃어 주고 좋은 날 산책해 준 당신, 당신은 내가 있는 이유다”라고 신애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최수종(54)·하희라(47) 부부 역시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행보와 비슷하다. 최수종이 드라마 작품에 들어가면 하희라가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연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정생활뿐만 아니라 남편의 대본 리딩도 옆에서 도와준다. 최수종 역시 하희라가 드라마에 출연하면 촬영장을 찾아 식사나 커피 등을 챙기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특히 최수종 하희라, 두 사람 모두 연기대상을 거머쥘 정도로 연기파 배우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연기 스타일이나 캐릭터 분석법이 다르지만, 서로의 연기에 대해 무한 지지와 격려를 해 발전을 꾀한다. 최수종은 “작품 선택이나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내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편이다. 연기에 대해서는 무조건 격려를 해주는 편이다”고 했다. 예능인 부부 이봉원(53)·박미선(49)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연예인 부부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박미선과 이봉원은 1989년 ‘철없는 아내’라는 개그코너에 함께 출연한 것이 인연이 돼 연인으로 발전했고 1993년 결혼했다. 결혼 이전 박미선은 스탠딩 개그의 일인자로 활약하며 인기 높은 개그우먼으로, 이봉원은 슬랩스틱 코미디와 성대모사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개그스타로 군림했다. 결혼 후 아내 박미선은 개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시트콤과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MC로 활동영역을 넓히며 최고의 예능 스타로 부상했지만, 이봉원은 연예 활동보다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프로덕션, 요식업 등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봉원의 사업은 실패를 거듭했다. 박미선은 연예 활동을 하면서도 육아뿐만 아니라 이봉원 사업 뒷바라지, 망한 뒤 수습까지 다 했다. 이봉원은 결혼 후 자신보다 아내 박미선의 활동이 늘어나고 더 인기가 많아진 것에 대해 “전 아내의 인기가 높은 것에 박수를 보내요. 나 자신이 위축되거나 그러한 것은 없어요. 원래 개그맨을 키우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 제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결혼 후 아내의 도움으로 할 수 있었지요. 사업이 잘 안 돼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지요”라고 말했다. 물론 연예 활동과 가정생활이 순탄하지 못한 연예인 부부도 많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쇼윈도 연예인 부부에게는 연예 활동 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의 활동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가정생활에도 어려움을 초래한다. 쇼윈도 연예인 부부는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감정이 사라져 파경을 맞게 된다. “나는 당신을 작년보다 올해 더 사랑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구요,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사랑할 겁니다. 당신은 어느새 존경하는 내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있네요. 당신 옆에 오래 있을게요. 당신은 오래만 살아주세요.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할 수 있도록…” 차인표가 2001년 5월 24일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아내 신애라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이런 사랑과 배우자의 연예 활동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연예인 부부들의 행복한 동행은 지속될 것이다.
- 2016-07-29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