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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시향 파크 콘서트
★9월 21일 오후 7시
찾아가는 음악회가 열린다. 장소는 서울숲 가족마당. 얍 판 츠베덴이 지휘봉을 잡고 정재일, 규현과 협연한다. 공연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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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라이트 DDP 2024 가을
★9월 8일까지
미디어파사드 축제 ‘서울라이트’가 개막한다.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해 DDP 곡면을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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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무주반딧불축제
★9월 8일까지
생태를 테마로 문화 환경 예술 교육이 함께하는 축제다. 반딧불이 탐사, 전통문화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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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영암무화과축제
★9월 6일부터 8일까지
무화과의 본고장 영암에서 축제가 펼쳐진다. 제철을 맞은 무화과를 맛보고 구입할 수 있다.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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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 걷자 페스티벌
★9월 29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까지
DDP에서 출발해 흥인지문, 청와대 등을 지나 광화문광장에 도착하는 6km 코스로 펼쳐진다. 완주하면 한정한 기후동행카드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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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홍성남당항 대하축제
★10월 31일까지
‘대하’하면 떠오르는 홍성 남당리에서 열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대하 축제다. 장민호, 류지광 등 화려한 무대도 마련돼 있다.
는 노인 인식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에디터 조형애 디자인 유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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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은퇴 콘서트
★8월 27일부터 티켓 오픈
하반기 일정이 공개됐다. ‘라스트 콘서트’는 대전, 강릉, 안동, 진주, 광주, 대구, 부산에서 이어진다. 서울 일정은 추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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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수문장 위크
★8월 15일부터 20일까지
왕궁수문장 교대의식 및 숭례문 파수의식 특별행사인 ‘밤의 수문장 위크’가 열린다. 일주일간 야간 문화행사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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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독립축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과 자유,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는 축제가 개최된다. 독립군 전투 체험부터 개·폐막 공연까지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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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해바라기축제
★8월 15일까지
해발 800m에 자리 잡고 있는 산촌에서 축제가 열린다. 축구장 면적 9배가 넘는 6만6000㎡ 규모로 반려동물도 입장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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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공연예술제
★8월 6일부터 10일까지
예술가, 스태프, 관객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순수 공연예술 축제다. 23회 째를 맞는 올해는 ‘공정’이라는 주제로 꾸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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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디자인학교 참여자 모집
★8월 11일까지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중장년 시민을 대상으로 인생디자인학교 참여자 150명을 모집한다. 40~64세 서울시민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는 노인 인식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에디터 조형애 디자인 유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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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전국투어 콘서트
★7월 창원, 경산, 대전, 인천에서
‘라이브 황제’ 이승철의 콘서트가 계속된다. 3년 만에 발매한 신곡 ‘비가 와’ 발매 기념인 전국투어는 12월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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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서울광장
★잔디광장에서 7월 4일부터 28일까지
‘야외밤 도서관’이 찾아온다. 서울도서관이 큐레이션한 5000권의 테마도서를 자유롭게 빌려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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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숲 여름 수국 축제
★화담숲에서 8월 27일까지
생태수목원 화담숲이 여름 수국 축제를 진행한다. 100여 품종의 7만여 본의 다채로운 수국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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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치맥 페스티벌
★두류공원에서 7월 3일부터 7일까지
대한민국 치킨산업의 중심, 대구에서 치킨과 맥주를 테마로 한 페스티벌이 열린다. 맥주를 즐기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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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 동행 인문학 콘서트
★김혼비, 곽정은, 정재찬 무료 특강
7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인문학이 찾아온다. 싱잉볼 마음챙김 명상부터 명사 특강까지. 진행은 임지은 작가가 맡는다.
는 노인 인식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에디터 조형애 디자인 유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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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이찬원 콘서트
★첫 공연은 6월 8~9일 KSPO돔에서
이찬원이 전국투어에 오른다. 서울을 시작으로 인천, 안동, 수원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추가 지역은 순차적으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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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막국수닭갈비축제
★6월 18일부터 23일까지
춘천 대표 축제가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주차장 일원에서 열린다. 드론쇼, 인기가수 축하공연 등 풍성한 프로그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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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수제맥주&블루스 페스티벌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군산맥아로 만든 수제맥주와 국내외 블루스밴드의 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부산과 대구에서 또 다른 맥주 축제도 열리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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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밀 페스티벌
★6월 22일부터 23일까지
밀로 만든 음식을 먹고 밀 관련 체험을 할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 토크 콘서트엔 궤도, 썬킴 등 참석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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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여행가는 달 특별 할인
★6월 3일부터 30일까지
비수도권 지역의 숙박 시설을 2~3만 원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캠핑, 기차, 항공, 렌터카 할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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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인턴십 참여자 모집
★파트타임 신청 기간 6월 13일부터 28일까지
경험과 전문성이 있는 중장년의 경력 전환과 지속 가능 한 일 연계를 지원하는 서울시의 사업이다. 풀타임은 수시 모집 중!
는 노인 인식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에디터 조형애 디자인 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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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도쿄필 내한공연
★5월 7일, 11일 공연은 조성진과 협연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정명훈이 오랜 인연을 쌓아온 도쿄필하모닉과 내한한다. 19년 만의 정명훈X도쿄필 공식 내한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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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청보리밭축제
★4월 20일부터 5월 12일까지
21회째를 맞는 이번 청보리밭축제 주제는 ‘초록물결 음악노트’. 드넓은 청보리밭을 무대로 다양한 음악공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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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임영웅 콘서트
★5월 25~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임영웅의 티켓 파워가 다시 한번 입증됐다. 10만 석 전석 매진. 불법 거래 건은 사전 안내 없이 취소되니 암표 거래는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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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페스타
★5월 1~6일까지, 서울 곳곳에서
5월 초 서울이 축제로 물든다. 주제는 ‘인조이 올 댓 서울’. K-POP 콘서트부터 로드쇼, 삼겹살 파티, 플레이 게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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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우주항공축제
★5월 4일부터 6일까지
한국형 최초 발사체 나로호와 누리호의 실물체를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다. 같은 기간 노로도에서 청정수산물 축제도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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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다시, 봄’
★5월 8일부터 6월 7일까지
중년 여성들의 인생 2막을 그린 뮤지컬 ‘다시, 봄’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왕은숙, 문희경, 오성림, 예지원, 황석정 등 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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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녀장려금 제도
★신청은 5월 1일부터 31일까지
2024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신청을 5월 내내 받는다. 올해부터 소득 요건이 기존 3800만 원에서 4400만 원으로 완화됐다.
는 노인 인식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에디터 조형애 디자인 유영현
“그렇다면 인생을 바꿔야지!” 새벽 2시, 야근 후 돌아와 죽어도 농부가 되겠다는 남편의 아우성에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어제까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던 남편은 청바지를 입고 밭으로 향했다. 땅에 심은 건 포도나무였지만, 부부는 꿈을 심었노라 말한다. 그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남편은 뭐든 이뤄진다 하고, 아내는 뭐든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한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의 꿈은 자연히, 그리고 자연이 이뤄가리라는 것이다.
테루아(Terroir)는 프랑스어로 ‘땅’을 의미한다. 와인이 만들어진 땅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한다. 충주의 와이너리 ‘작은 알자스 레돔 테루아’(이하 작은 알자스)는 소설가 아내 신이현(57)과 농부 남편 도미니크 레몽 에으케(53)의 꿈을 심은 땅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직접 과일을 농사지어 ‘내추럴 와인’을 만든다. 작은 알자스에 도착했을 때, 부부는 ‘웰컴 드링크’처럼 내추럴 와인을 내왔다. 풋사과 시드르였다. ‘폭’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더니, ‘꼬르르르’ 미세한 탄산이 잔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 맛은 어떤가 하니, 마치 와인계의 평양냉면이라고 할까? 깔끔하면서도 은은하게 산뜻함이 감돌았다. 단순히 ‘맛있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걸맞은 단어를 고르던 차, 아내 신이현이 제대로 설명에 나섰다.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과일을 수확해 착즙한 뒤 필터링이나 살균 등을 거치지 않고 만든 와인입니다. 흔히 ‘맛있다’고 표현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이 준 그대로 발효해서 만든 거예요. 즉 그 과일이 자란 땅이나 한 해의 기후 등에 대한 솔직한 설명과 같죠. 가령 비옥하지 못한 땅에서 나온 와인은 심플한 맛이 나기도 하는데, 그 역시 나름의 개성으로 보는 거예요. 고로 세상에 맛없는 내추럴 와인은 없습니다. 과일이 자라던 땅과 나무, 바람과 햇볕을 느끼고 즐기면 그뿐이죠.”
열매가 좋아하는 날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술, 내추럴 와인을 한잔 마시는 것은 한 움큼의 땅을 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와인 맛이 다른 것은 땅이 다르기 때문이고, 땅이 다른 것은 땅마다 스며 있는 농부의 땀방울이 다름일 테다. 더군다나 오롯이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내추럴 와인의 경우엔 가히 그 땅에 농부의 철학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미니크는 어떤 농부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땅을 키우는 농부”라 일컬었다.
“농부는 나무만 키우는 게 아니라 땅도 함께 키워야 해요. 일반적으로 포도밭을 한다고 하면 포도가 주렁주렁 많이 열리고, 그것을 수확해 큰돈을 얻는 게 목적이겠죠.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다릅니다. 나무와 땅이 있다면, 우린 땅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당장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보다 땅을 살리는 기쁨이 더 크거든요. 그렇다 보니 농사짓는 방법도 다른 거죠.”
땅을 키우는 차별화된 농법으로 도미니크는 ‘생명역동농법’을 택했다. 생명역동농법이란 한마디로 우주의 기운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식물에 영향을 주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한 달력을 농사에 적극 반영한다. 꽃식물이나 잎식물, 열매식물 등 각기 다른 식물은 저마다 좋은 기운이 있는 날엔 활짝 생명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조용히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단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도미니크는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옮길 때 항상 별자리 달력을 펼쳐놓고 식물에게 좋은 날을 찾는다. 와인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가령 포도를 따거나 착즙할 때는 열매에게 좋은 날을 골라 작업한다. 씨를 뿌려 열매를 수확하고 내추럴 와인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인간은 ‘돕는 자’의 역할을 할 뿐 그밖의 모든 것은 자연의 힘에 맡긴다. 그 이름처럼 ‘내추럴’(Natural)하게 말이다. 애당초 땅에 그러한 철학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들의 삶에도 그러한 양식이 깃들었기에 가능했다. 혹자는 이런 부부를 보고 마치 물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 산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아내 신이현은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가령 농사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수확을 위해 인간의 손이 가장 덜 가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실제로는 초반에 아주 많은 손길이 필요해요. 농부의 상당한 노력을 투여해야만 결국 자연스럽게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는 시간이 찾아오죠. 물론 몸은 고단하고 힘들어요. 그런데도 자연에 맞춰 산다는 게 엄청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우리는 그냥 그게 좋더라고요.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이 나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그것을 목표로 삼으니 소소하지만 매 순간 성공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요.”
농업의 꽃 술, 농부의 손으로부터
부부는 매 순간 성공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정신승리라 하겠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 말이 진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타자로서 일련의 과정을 듣노라면 매 순간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위대한(?) 서막은 그들이 프랑스에서 한국에 오고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듯 포도농사와 와인 양조라면 프랑스의 여건이 더 나았을 테다. 농사에 관해선 고집스런 도미니크지만, 한국행을 택한 데에는 아내의 의견이 컸다. 사실 도미니크는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어느 땅이라도 좋다고 했지만 말이다.
“남편이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프랑스 남쪽으로 밭을 보러 다녔어요. 피레네산맥 근처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었는데, 비싸지도 않고 환경도 괜찮았죠. 그런데 제게는 너무나 낯설었어요.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포도 따는 외로운 동양 할머니로 늙어갈 걸 상상하니 그건 싫더라고요. 마침 한국에 포도 와인은 많지만 사과로 만든 시드르는 없길래, 도미니크에게 한국은 어떠냐고 권했죠. 그렇게 파리의 아파트를 팔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남편은 농사를 짓고 싶고, 아내는 한국에 살고 싶어 무작정 삶의 터전을 바꿨다. 한국의 땅값이 얼마인지, 양조장을 짓는 데 얼마가 들지, 생활비는 어떻게 벌지 등등 구체적인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원대한 꿈만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 망해도 좋다. 적어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겠지”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해 새 터를 잡기 위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에 찾아가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기도 했고, 공공기관에 도움도 요청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사과연구소도 가보고 포도작목반에도 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특히 과일을 직접 농사지어 와인을 만들겠다고 하자 반응은 더욱 냉랭했다. 근처에서 과일을 구입해 양조하는 것이 돈과 수고가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의 훈수가 더해질수록 도미니크의 철학은 되레 견고해졌다.
“농업의 꽃은 술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술은 농부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때문에 와이너리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기본이라고 봐요. 농부가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함, 즉 생존을 위한 것이죠. 그러나 농업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술은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액체니까요. 우리가 먹는 쌀, 밀 같은 농산물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그 농산물로 만든 술은 온전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술을 만드는 일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애처롭고도 숭고한 농부의 삶
아쉽지만 첫해 사과 농사는 망했다. 안타깝지만 두 번째 농사도 망했다. 그 후로도 장마, 가뭄, 병충해 등 고난은 계속됐다. 자연의 힘에 맞서기 위해 다른 농부들은 관수를 대고, 비닐을 깔고, 농약을 치기도 했지만, 내추럴 와인을 고집하는 도미니크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자연의 섭리대로 땅을 일궈온 것처럼, 야속할지언정 편법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쓰라린 경험은 고스란히 초보 농부에게 귀한 밑거름이 됐다.
“점점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흉년이든 풍년이든 자연이 주는 것을 우리가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또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건데, 그럴수록 나무가 깊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좋은 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땅이 좋고 뿌리가 깊이 나면 나무들도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거든요. 당장은 좀 힘들더라도 먼 훗날을 위해 그 토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온종일 땅과 씨름하는 도미니크를 보고 있노라면 아내는 뭉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처로운 마음마저 든다. 남편이야 꿈을 이루느라 그렇다 하지만, 소설가 신이현의 꿈이 ‘농부의 아내’는 아니었을 터. 그러나 한국 생활이 서툰 남편의 뒷바라지는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 됐다. 생명역동농법을 위해 소똥이며 꿀벌이며 안 구해본 것이 없고, 갖가지 서류 준비며 비즈니스며 고객 응대며 자신도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해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옳고 가치 있는 일임을 알기에 그녀는 오늘도 기꺼이 꿈의 조력자가 된다.
“도미니크가 만약 다른 일을 한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돕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뜻깊다는 걸 느꼈고, 때론 그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해요. 남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옆에서 보면 ‘아, 저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죠. 물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집안에서는 인정을 못 받는 것처럼 저도 바가지를 긁곤 해요. 그러고 나면 또 미안하고, 힘들어도 도와주게 되고. 사실 이 나이에 제게 새로운 꿈이랄 건 없지만, 차차 땅과 일이 안정되면 양조장을 떠나 조용한 곳에 가서 판타지 소설이나 써볼까 상상해봅니다.(웃음)”
포도밭에서 피어나는 예술
부부가 그리는 ‘작은 알자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물었다. 이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하자는 마음가짐 정도?
“시골에 산다고 하면 ‘힘들게 어떻게 사느냐’며 촌이 가진 소외감을 떠올리는 이도 있고, 전원주택 짓고 제2의 인생을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시골이 주는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는데, 우리 생각은 달라요. 가령 문화, 예술 이런 걸 왜 도시에서, 갤러리에서만 해야 한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양조장에서 ‘농부 요리사 예술가’라는 작은 축제를 열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예술가를 비롯해 마을분들도 오시고 함께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는데 활기가 넘쳤죠. 그렇게 밭은 수확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예술을 위한 창작의 장으로도 쓰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렇게 자연을 향유할 때 땅도 더 즐겁지 않을까요?”
작은 알자스의 첫 와인이 출시된 지 이제 5년 차. 아직 농부로서도 사업가로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부부는 서두르지 않는다. 와인 사업이 대박 나서 돈방석에 앉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에 그렇다. 그저 현재처럼 원하는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그뿐, 수익은 나중 몫이다. 그런데도 주변 이들은 흔히 “대박 나시라! 성공하시라”는 말로 그들을 재촉한다. 이에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응원은 사실 별 의미 없습니다. 이미 원하는 인생을 사는걸요. 어쩌면 남들 눈에는 불안해 보일지라도 지금이 나쁘지 않거든요. 그러니 제발 그런 걱정은 넣어두셨으면 해요.(웃음) 적어도 우리는 지금 후회 없이 꿈꾸고 있다 말할 수 있으니까요.”
●Exhibition
◇ 파올로 살바도르 개인전 : 새벽의 백일몽
일정 1월 29일까지 장소 일우스페이스
국제 미술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 파올로 살바도르(Paolo Salvador, 31)의 개인전 ‘새벽의 백일몽’(Ensueos en el amanecer)은 국내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다.
파올로 살바도르는 페루 출신 작가다. 그는 잉카 제국의 모태였던 케추아(Quechua) 부족의 후예로, 역사적 자부심이 강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강력한 모국주의 정서는 그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
살바도르의 작품에는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호한 생명체가 자주 등장한다. 고대 페루의 종교에서 사람과 동물은 동등한 존재이며, 페루 신화에도 사람과 신성한 동물이 상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살바도르의 작품에서도 사람과 동물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나는 동반자로 표현된다. 살바도르는 급격히 변모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페루의 토착성,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페루의 고대 신화와 설화에서 이미지를 끌어오되, 개인의 경험과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화풍을 창안했다. 서구 르네상스와 표현주의 같은 미술사를 수용하면서도 페루 전통문화와 결합하는 조형 언어를 천착했다. 고립, 고독, 몽상을 주제로 삼으면서 느슨한 붓 터치와 청과 적의 자극적인 색채를 통해 우화적인 서사를 만들어냈다.
◇ 알렉스 카츠 개인전 : Flowers 꽃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미국 출신 작가 알렉스 카츠(94)는 ‘세계 10대 화가’이자 ‘현대 초상회화 거장’으로 통한다. 이번 전시는 카츠의 작품 중에서도 꽃을 주제로 한 회화들을 특별히 조명한다. 이 꽃 시리즈는 이전에 소개된 적 없었던 작품들이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그린 것이기 때문.
카츠는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까지 아우르며, 한 장르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로 의의를 더한다.
●Book
◇ 인생을 바꾸는 100세 달력(이제경·일상이상)
100세 시대다. 이는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와 같이 20년 공부해 직장에서 30년 일하고 은퇴하는 ‘3단계 인생’(교육-일-은퇴)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이에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은 책을 통해 ‘골드 인생 2.0’을 제시한다.
‘골드 인생 2.0’은 건강한 체력과 정신으로 노후에도 스스로 경제활동이나 취미를 즐기면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지역과 글로벌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인의 사회책임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먼저, 이제경 원장은 80세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평생직장이 사라지므로 세 번은 은퇴하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하는 첫 번째 은퇴하기,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하는 두 번째 은퇴하기,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의 길을 걷는 세 번째 은퇴하기를 추천한다.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해 근로소득 외에 업무 관련 기타소득도 얻고,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해 사업소득 외에 금융과 부동산 등 자산소득도 얻고,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로 거듭나 사회가치 소득과 자산소득까지 얻으면 나뿐만 아니라 증손자까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과 여러 부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금융·부동산·미술품 투자 노하우, 합법적으로 세금 줄이는 방법 등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기대여명을 측정하고 ‘건강수명 늘리기’, ‘정신건강 챙기기’ 등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법,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한 인간관계 만드는 방법도 담았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드림디자인)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故) 표재명 교수. 그는 1978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로 1년간 현지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이미지의 엽서를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가족들이 그 엽서들을 모아 펴낸 책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
◇라디오 탐심(김형호·틈새책방)
강원도에서 방송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30대 초반부터 라디오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책에는 라디오와 관련된 에피소드 27가지가 담겼다. 라디오가 탄생과 성장, 전성기와 쇠퇴기를 거치는 동안 인간, 사회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얘기한다.
◇이까짓, 탈모 : 노 프라블럼 (대멀(김준석)·봄름)
천만 탈모 시대. 탈모는 이제 청년과 중년의 연결고리가 됐다. 15년 차 대머리 영화배우이자, 탈모인 대나무숲 채널 ‘대멀’의 주인장인 저자. 그는 탈모 고충부터 웃픈 가발 경험담 등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내 탈모인들에게 정보와 희망을 전달한다.
●Stage
◇엑스칼리버
일정 1월 29일 ~ 3월 13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김준수, 김성규, 이지훈, 에녹, 강태을, 신영숙, 장은아, 민영기, 손준호, 김소향, 케이 등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서울에서 단 6주간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아더 역 김준수, 랜슬럿 역 이지훈, 에녹, 강태을, 모르가나 역 신영숙, 장은아, 멀린 역 민영기, 손준호, 기네비어 역 최서연, 울프스탄 역 이상준, 엑터 역 이종문, 홍경수가 다시 한번 무대를 빛낸다. 여기에 아더 역 김성규와 기네비어 역 김소향, 러블리즈 출신 케이가 새롭게 합류해 기대를 더한다. ‘엑스칼리버’는 고대 영국을 지켜낸 신화 속 영웅 아더왕의 전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평범한 소년 ‘아더’가 성인이 되고 왕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아더가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엑스칼리버’는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 수많은 흥행작을 탄생시킨 EMK의 제작 노하우가 집약된 세 번째 오리지널 뮤지컬로 2019년 월드프리미어로 초연됐다.
◇라스트 세션
일정 1월 7일 ~ 3월 6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의 차기작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이다. 오영수는 신구와 함께 프로이트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이상윤과 전박찬은 루이스 역을 맡아 연기한다.
정신분석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이자 영문학자인 C. 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극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신에 대한 물음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면서도 재치 있는 논변을 쏟아낸다.
◇그때도 오늘
일정 1월 8일~2월 20일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
연출 민준호
출연 이희준, 김설진, 이시언, 차용학, 오의식, 박은석 등
연극 ‘그때도 오늘’은 네 가지 장소와 네 가지 시간을 가지고 총 여덟 명의 배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형식의 공연이다. 1920년대 광복 전의 모습, 1940년대 제주도, 1980년대 부산, 2020년대 최전방 등 총 네 가지 배경이 나온다. ‘그때’를 지금 ‘현재’로 여기며, 각자의 눈에 비친 미래를 확신하는 인물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의식, 박은석, 김설진은 2020년대의 은규, 1980년대의 주호, 1940년대의 사섭, 1920년대의 윤재 역의 남자1 배역을 맡는다. 이희준, 이시언, 차용학은 2020년대의 문석, 1980년대의 해동, 1940년대의 윤삼, 1920년대의 용진 역의 남자2 배역을 연기한다.
지난해부터 매년 6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만 65세 고령인구로 편입되고 있다. 이들은 노인이기를 거부하며 계속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노인으로 규정해 모두 은퇴시켜 골방으로 몰아넣는다. 뛰어난 역량을 갖춘 베이비부머도 예외는 아니다. 노인으로 편입되고 있는 베이비부머를 포함해 시니어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노년학 전문가인 한경혜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그 해법을 들어봤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그 나라에 대한 입국 비자를 받고 태어난다. 그런데 그 나라에 입국하기 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막상 입국하면 그때 비로소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당황하게 된다. 그 나라는 ‘노년기’라는 나라다.”
한경혜 교수는 베이비부머를 비롯해 많은 시니어들이 ‘노인’이라 불리게 됐을 때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로 노인을 타자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언급하면서, 메리 파이퍼의 ‘또 다른 나라’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설명했다.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워낙 부정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노인, 나이 듦과 거리두기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자신이 노인으로 분류되는 시점이 되면 뒤늦게 적응하기 시작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차별적 문화를 바꾸는 것이 베이비부머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한 교수는 노년학과 가족학 전문가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연구자다. 그는 “나이 듦은 개인의 내적 변화뿐 아니라 개인 간의 상호작용 과정”이라며 “나이가 들어 만 65세가 되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라 불리거나 분류되는 걸 거부한다”고 말했다. 실제 많은 노인들이 자신은 ‘저 노인네들’과 다르다는 언급을 자주 한다. 젊고 활기차게 살기를 희망하고, 그러기 위해서 운동하고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자신을 노인으로 대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노인이라는 나라에 이미 입국했고 이를 부정할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이 참석하는 모임에 가고 싶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상당히 높다. 놀라운 점은 노인들도 이렇게 대답한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특히 65세에서 75세에 이르는 프라임타임에 있는 초기 노인들은 노인으로 불리거나 묶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어떤 연령 집단보다 노인은 개인차 커
한경혜 교수는 “우리나라는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이어서 노인 집단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며 “그러다 보니 노인들과 자신을 경계 짓고, 중장년들도 노인이 아니라고 손사래 친다. 80 넘은 노인들도 자신만은 다른 노인들과 다르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노인을 위한 상품이 시장에 등장해도 실질 소비자인 노인들이 거부해 시니어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노인이기를 원하지 않으니 노인이라는 타이틀을 건 상품이 잘 팔릴 리 만무하다. 실제로 국내 시니어 시장은 10년 넘게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실질적인 성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마케팅을 위해 액티브 시니어나 오팔세대 같은 긍정적인 용어를 만들어 기존의 노인 이미지와 차별화해 시니어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 교수는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액티브 시니어와 오팔세대 같은 성공한 노인 집단이나 노년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마케팅 용어도 결국 한계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단순히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뿌리 깊다는 점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노인을 획일적인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노인 집단 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노인 집단 내에서도 젊은 노인, 고령 노인 등 연령에 따른 차이가 있고, 학력과 삶의 경험 등 수많은 차이점이 가져오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노인 집단은 다른 어떤 연령 집단보다 개인차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노인층이 적극적 소비자로서 스스로 드러내기를 주도한다면, 시니어 시장이 본격화되고 상당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노년학에서 대상으로 삼는 노인은 복지가 필요한 일반적인 시니어와 성공적인 노년을 만들어가는 액티브 시니어로 나뉜다. 한 교수는 “최근까지 노년학은 노년의 어려움, 노인 문제에 집중해서 연구되고 담론이 만들어진 경향이 있다”며 “높은 노인 빈곤률이나 황혼이혼 증가, 치매와 간병의 어려움 등 사회문제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더 커지고, 노인 인구 증가를 사회적 부담으로 보는 시각이 강화될 우려가 크다. 나이 듦의 긍정적 측면, 노인을 사회적 자원으로 활성화하는 방안 등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령 구분 사회를 세대 통합 사회로
그런데 이런 변화를 모색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시니어들에게 너무 폐쇄적이고, 기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다. 한경혜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가진 뛰어난 인적 자원을 생각하면 이들을 활용할 방법이 나와야 한다”며 “시니어들을 역(易)연령보다 기능적 연령으로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 연령에 따라 구분하는 사회를 이제는 연령 통합 사회, 세대 통합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어난 생일에 따라 달력이 결정하는 역연령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진 신체 연령이나 재능 등 실제 의미 있게 작동하는 기능적 연령으로 시니어를 개인마다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최근 노년기에 편입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가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베이비부머는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학력이 높다는 점에서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을 뿐 아니라 그 수도 많다.
한 교수는 “베이비부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집단이 함께 노년기에 진입해 생애 후반기 경로를 개척한다는 점에서 흔히 선구자라 불린다”며 “이들이 어떻게 노년기를 보내느냐가 노인, 노년에 대한 앞으로의 문화를 이끌 동인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또 그는 “전쟁 후 경제적 활성화가 이뤄지는 시기에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낸 베이비부머는 이런 면에서 운도 좋았고, 또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의 열매도 누린 집단”이라며 “액티브하지 못한 동년배들을 위해 시민의식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발전을 주도하며 사회경제적 과실을 따먹은 베이비부머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사회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시민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는 베이비부머 자신의 노년기 삶의 질, 행복과의 관련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한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신체적·사회적 변화는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직장과 자녀 등 평생을 바친 삶의 중요한 축이 노년의 삶에서는 빛이 바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려고 그렇게 애쓰며 살았나’, ‘내 삶의 보람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은퇴하고 나이를 먹었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진다”며 노년기 의식의 흐름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나이가 들면 노후 준비와 건강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다. 하지만 고령층으로 갈수록 삶의 의미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활동이 그 해답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한경혜 교수는 최근 오픈한 ‘노년학 제3의 공간’ 연구소를 중심으로 노인, 노년기에 대한 연구를 즐겁게 이어갈 예정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나 편견은 노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탓이라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탄탄한 연구를 통해 노인의 적확한 실상을 보여주려는 목적의식을 근저에 두고 있다. 한 교수와 그의 뜻을 이어받은 이들이 노년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 한국에서 노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그의 바람처럼 베이비부머가 적극적으로 시민 참여에 나서고 노인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꿔, 국내에서도 시니어 시장이 꽃 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경혜 교수는 최근 노년기에 편입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가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학력이 높은 액티브 시니어로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마치 숨어 있듯 조용히 자리 잡은 동네 책방을 발견하면 설렌다. 서점은 어디에나 있지만 동네 책방은 그렇지 않다. 어디에나 없어서 특별하다. 언제부터인가 여행 중에 들러볼 코스로 동네 책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여 거리의 당진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낡은 이층집이 포근하게 안고 있는 책방 ‘오래된 미래’를 만났다.
당진의 면천읍성은 ‘성안마을’로 불린다. 마을 입구로 들어가면 저 길목들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산책이 시작되면서 드는 생각은 ‘이 마을엔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가 있는 게 분명해’였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옛 마을을 그리워하며 찾아온 듯하다. 이용원이라는 간판을 단 이발소, 상호의 글자가 반쯤 떨어져나간 중국집, 전파상, 세탁소 등이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인적 드문 조용한 그 길을 따라 옛 면천초등학교의 천 년 넘은 은행나무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낡은 이층집이 눈에 들어온다.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다.
동네 책방의 꿈을 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두리번거리며 책장을 넘겨보기도 하고 한참을 서서 책을 읽어도 주인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아, 도중에 “어서 오세요”라고 눈인사를 했던가. 하던 일이 끝나가는 것 같아 다가가 말을 걸었더니 선한 웃음으로 맞는다. 책방 주인 지은숙 대표다.
그녀가 이 집을 처음 본 것은 아주 오래전이었다고 한다. 당진에 살면서 면천읍으로 가끔씩 놀러갔는데 그때마다 운명처럼 자꾸만 이 집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10여 년 전에 이 건물을 처음 봤어요. 면천에 놀러 가면 우연히 지나가다가도 늘 이 집이 제 눈에 확 띄었어요. 독특한 외양이었죠. ‘저 집에 책방을 차리면 참 좋겠다’ 했지만 쉽사리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찜하고 있었죠.”
‘자전거포’였던 이 집은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수년간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지 대표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하며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관심만 갖고 있다가 어느 날 시기적으로 맞아서 사들이게 되었다. 지은 지 60년이 넘은 낡은 집이었다. 손볼 데가 하도 많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골조는 그대로 살린 채 몇 달 동안 남편이 고치고 다듬었다. 그리고 드디어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를 만들어냈다.
책방 이름 ‘오래된 미래’는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책 제목에서 따왔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다크 사람들이 그 지역의 땅과 유대관계를 맺고 서로 협력 공생을 모색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지 대표는 책방을 열면서 면천이라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유의 가치를 염두에 둔 듯하다. 참 많이 고민했던 책방 이름이 정해지고 나니 의도에 맞게 착착 일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지인들의 시선은 달랐다. 책방이 있는 면천읍성이 유적지라 개발도 제한되고 어르신들만 사는 곳인데 왜 하필 그런 동네에 책방을 내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그녀는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시니어들이 뭔가를 시작하면 제2의 인생 ‘무엇’이라고들 하잖아요. 저 역시도 처음엔 책방을 차린다는 말을 섣불리 꺼내지 못했어요. 다들 걱정을 했으니까요. ‘돈 버는 일’을 해야지 다 늦은 나이에 무슨 ‘하고 싶은 일’을 하냐면서요. 더구나 여기서 책이 팔리겠냐고 했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책방 주인을 꿈꾸기도 한다. 지 대표도 책을 무척이나 좋아한 국문학도 출신. 한때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할 때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5~6년 동안 작은 책방 투어도 많이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면 책방을 검색하고 새로운 책방이 어디에 있나 들여다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간절히 원하면 마음을 담아보세요”
“꼭 해보고 싶으면 해봐야 알지 ‘이럴 거야, 저럴 거야’ 미루어 짐작만 하면 결과를 알 수 없잖아요. 뭐든 마음이 간절하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간절함이 용기를 갖게 하더라고요.”
예쁜 카페나 책방 여는 걸 꿈꾸면서 잘할 수 있을까 겁부터 났지만 그래도 꿈만 꾸지 말고 저질러봐야 진짜 그 과정을 아는 것이라고 지 대표는 경험자로서 말한다.
“‘내가 책방을 열면 손해 보는 게 뭐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죠. 크게 타격이 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큰 수익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요. 그렇지만 타격이 크다면 바로 멈춰야죠. 시니어 세대들이 버티거나 고집부리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상황에 따라선 포기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방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컸기에 결정을 못 내리고 망설이던 어느 날 꿈을 포기하게 될까봐 엉엉 울어버린 적도 있어요. 현실 속으로 들어가면 이런저런 상처도 받겠지만 내 마음을 담아 한다면 극복이 되지 않을까요?”
진솔하고 내밀한 이야기가 그녀의 과정을 짐작케 해줬다.
사람들은 묻는다. “책방 해서 돈 많이 벌어요?”라고. 지은숙 대표는 사실 수익을 찬찬히 따져보면 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얻는다고 말한다. 정말 책만 사러 오는 사람이 뭐 그리 많겠냐고 반문하며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 더 큰 기쁨이라고 했다.
‘동네’라는 지역사회에서 만나 함께 수업을 하고 뭔가를 같이 꾸려가는 것, 그런 게 너무 새롭고 에너지가 생기고 힘이 난단다. 예쁜 소품이나 달력을 하나 만들어 와서 책방 공간에 놓아주는 소소한 마음들이 그녀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면서 진달래꽃이 그려진 지도를 가리킨다. 이야기가 있는 면천 마을에 오신 분들이 읍성이나 책방만 쓰윽 보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 좋은 사람들과 마을지도를 만들어 면의 지원을 받아 배포했는데 그 결과물이 뿌듯하단다. ‘오래된 미래’는 어느덧 책만 파는 동네 책방이 아니라 지역문화의 가치까지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지 대표는 그 어엿한 입장을 무척 기꺼워한다.
“우리 동네를 사랑해요”
지은숙 대표는 ‘오래된 미래’가 일반 책방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문화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어 다행스럽고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시내 도서관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만들어 배달 강좌도 한다. 재능을 가진 분들이 주거지에서 가까운 책방을 통해 동네 주민들에게 강의를 하고, 작가와 함께 북 토크도 열고, 바느질·면천 역사 수업·독서모임·영화보기 등도 진행했다. 특히 책 만들기 수업을 통해 각자 책을 만들고 나름의 출판 기념도 하기에 이르렀다. 단지 책방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소통의 공간이 된 것이다.
‘오래된 미래’는 시골 마을의 책방이지만 책이 제법 많다. 책방지기의 책 욕심 때문이다. 처음에 책방을 연다고 하니까 다들 북 카페도 함께 내라는 조언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지 대표는 책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곳이 도서관은 아니므로 책을 읽으며 차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괜찮다 싶어 최소한의 음료를 준비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미래’의 모든 책은 제가 선택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비슷해서인지 반품하는 책들이 거의 없어요. 잘 모르는 책은 딱 한 권만 주문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책은 쌓아놓고 팝니다. 저는 일상적인 책들을 좋아해요. 특히 3~5권 정도 낸 작은 출판사의 책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는데 내용들이 너무 좋아요. 때로는 손님들이 이 책 괜찮다며 알려주기도 해요. 제가 다 알 수는 없으니 그런 말씀 해주시면 고맙죠.”
둘러보니 어쩐지 주인을 많이 닮은 것 같은 책방이다. 책방지기로서 애착이 가는 코너도 있을 듯싶었다.
“어른들의 이야기책이 있는 코너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얘기가 들어 있는 책은 다 구해서 갖다놓고 싶어요. 그림책 코너도 있는데 엄마들이 아이들이랑 오면 아이 책만 고르는 게 늘 마음에 걸려요. 엄마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을 편안히 골라 읽으면 좋겠어요.”
이층으로 올라가 보니 “이 편안한 공간을 그대에게 허하노라” 하는 것 같아 고마운 느낌이 확 든다. 한쪽 옆으로는 책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방이 열려 있다. 배 깔고 엎드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방이다. 천장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공간에는 둥근 탁자와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차 한 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거나 조용히 앉아 책 읽기 딱 좋아 보인다. 햇살 잘 드는 창 너머로 보이는 옛 면천초등학교와 면천 관아의 문루였던 풍락루(豊樂樓)가 고즈넉했다.
옆으로 이어진 옥상으로 나가면 면천 마을을 전망할 수 있다. 내려다보니 마을 사람들이 사는 다소곳한 가정집들이 보인다. 깨끗하게 빤 빨래가 빨랫줄에 나란히 걸려 가을볕에 뽀송뽀송 마르고 있었다. 마당 끝에는 북 스테이로 활용하는 방도 하나 있는데, 이 방을 이용하려면 자격이 있어야 한다. 면천에 머물면서 마을을 즐기고 책방을 이용해 쉼을 얻고자 하는 여자여야 한다. 식사 제공은 없는 단출한 조건이다. 그렇지만 아침이면 자기도 모르게 누룽지를 끓여다준다면서 지 대표는 또 하하하 웃는다.
동네 책방이 주는 또 다른 가치 ‘나눔’
그러고 보니 ‘오래된 미래’에는 오래된 책을 따로 구비해놓은 공간도 있다. 책방을 하다 보니 옛날 책들도 정겹고 애틋해 한쪽에 코너를 만들었단다.
“책의 가치는 읽는 사람이 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렇게 변한 책들도 데리고 살기로 했어요.”
이뿐만이 아니다. 책방 입구 벽면에는 세 칸의 ‘나눔 책장’이 있다. 여기에 놓인 책들은 팔지 않는다. 누구라도 마음껏 가져다 읽으면 된다. 간혹 자신이 다 읽은 책을 기증하고 싶거나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어 가져오면 경우에 따라 헌책 값을 계산해주기도 한다. 책방이라는 공간을 초월해 나눔의 의미를 공유하는 좋은 아이디어다.
요즘 동네 책방이 많이 생기기도 하고 또 사라지기도 한다. 무슨 이유일까 궁금했다.
“책방을 시작하는 이들의 계층 분포도가 의외로 넓어요. 젊은이들도 있고 퇴사한 중년이나 시니어들도 있지요. 그런데 젊은 분들은 대부분 임대를 얻어서 하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돼요. 시니어들은 저처럼 수년씩 고민해서 결정하거나, 또 사는 집에 딸린 공간을 이용하는 분이 많아요. 아무래도 젊은이들보다 임대료 부담에서 좀 더 자유롭죠. 그래서 오래가는 게 아닐까 싶네요.”
면천이라는 오래된 마을이 주는 고즈넉함, 그 분위기 속에 ‘오래된 미래’는 아주 잘 어우러져 있다. 지낼수록 점점 더 애착이 간다는 책방지기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동네 책방이 주는 가치가 충만한 시골 마을의 가만가만한 가을 한나절이 따스했다. 문은 연 지 아직 2년 남짓밖에 안 되어 서툴렀던 부분도 있었다. 그걸 조금씩 보완하면서 지금처럼 성장하고 싶은 게 그녀의 바람이란다. 지 대표는 밝게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그렇지만 책방을 하고 싶었던 오랜 꿈이 이루어져 지금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카자흐스탄 역시 먼 듯하면서도 가깝고, 낯선 것 같으면서도 친근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인천공항에서 카자흐스탄 국영 항공 에어아스타나를 타고 6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알마티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인 카자흐스탄의 경제문화관광 중심지다. 오랜 기간 소련의 지배 아래 있었던 탓에 카자흐스탄어 외에 러시아어도 사용한다. 130여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슬람교와 러시아정교를 믿지만 종교적 색채는 비교적 옅다. 음식과 풍경, 종교와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주변국의 장점을 관대하게 품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북적이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모든 것이 있는 곳. 한국인에겐 의병 홍범도 장군이 생애를 마친 곳이자 10만 고려인이 살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땅이다.
대자연과 유럽풍 시티라이프 체험
이륙한 지 얼마나 된 걸까. 창밖을 보니 하얗게 이어진 선이 보인다. 구름인 줄 알았더니 길이가 무려 2000km에 달한다는 톈산 산맥이다. 중국,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4개국에 걸쳐 있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비행기가 사뿐히 내려앉자, 병풍처럼 둘러싸인 만년설산 아래 녹색의 나무들과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포근히 안겨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알마티에서의 시간은 차분하면서도 평화롭게 흘러갈 것 같은 느낌이다.
알마티(Almaty)라는 지명은 사과를 뜻하는 ‘알마’와 할아버지를 의미하는 ‘아타’가 합쳐진 알마아타(Alma-Ata)에서 유래됐다. 그만큼 사과가 유명하다. 알마티의 가로수길이라 할 수 있는 아르바트 거리는 세련된 노천 카페들과 ‘스타벅스’, ‘망고’ 같은 글로벌 체인점들로 가득하다. 벤치와 분수대 주변에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이 모습이 보인다. 이밖에 대통령공원, 판필로프의 28인 기념비, 젠코프 러시아 정교회, 젤료니 바자르 재래시장, 알마티의 남산타워 콕토베 케이블카도 있다. 이들 구시가지에 있는 건물들은 역사에 비해 너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그 이유는 1887년과 1911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파손되어 재건축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차린 협곡’과 위구르족 마을
이튿날, 3시간여 차를 달려 차린 협곡으로 갔다. 도심을 벗어나자 차도 건물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 양쪽으로는 끝없는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었다. 양떼와 말들만 가끔 보이는 황량한 거리였다. 살짝 지루해질 무렵 점심을 먹을 겸 위구르족 마을에서 내렸다. 언젠가 가봤던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마을 모습과 닮아 있다. 세계는 이토록 신기하다. 어느 국경이든 그곳에는 교집합의 삶이 있고 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여행자는 마치 깨달음의 퍼즐을 푸는 듯한 신기함을 느낀다. 길가에 늘어선 가게에서는 하미과(노란색 껍질의 멜론)를 비롯한 과일과 빵을 팔고 있다. 골목 안은 양꼬치 샤슬릭 굽는 연기로 가득했다. 샤슬릭은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중국 신장 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으로, ‘꼬챙이’를 뜻하는 투르크어 ‘쉬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두툼하게 썬 양고기에 소금과 후추, 각종 향신료로 간을 한 후, 꼬치에 꽂아 숯불로 훈연한다. 특유의 풍미와 함께 씹을 때 느껴지는 풍부한 육즙이 일품이다. 다른 음식들도 대부분 맛있다. 우리나라 만두국과 비슷한 ‘펠메니’와 카자흐스탄의 대표 면 요리인 ‘라그만’으로 행복한 식사를 하고 난 뒤 보니 그제야 식당 안의 독특한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혼자 식사를 하는 촌로와 막걸리처럼 보이는 차를 마시는 호탕한 두 여인의 모습이 인상 깊어 양해를 구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세상 어떤 풍경보다 아름다운 건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현지인의 얼굴엔 그 나라의 역사와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방불케 하는 차린 협곡. 1500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인해 생겨난 계곡이다. 지질학적·생태학적 보호를 위해 200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입구에 도착하니 몸을 날려버릴 듯한 세찬 바람이 격한 환영을 한다. 협곡 아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 약 2km 트레킹을 했다. 황톳빛 기암괴석들과 ‘낙타가시’로 불리는 수풀 사이를 지났다. 닳고 닳은 관광지였다면 바위마다 이름을 붙이고도 남았을 터.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들과 핸드폰으로 추억을 담느라 바쁜 젊은이들의 모습이 풍경과 어우러지며 싱그럽게 다가왔다. 작심한 듯 트레킹 복장을 갖춘 유러피언들도 눈에 띄었다.
절벽 아랫길은 물론 윗길로도 트레킹이 가능하다니 아웃도어를 즐기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장소임에 틀림없다. 트레킹이 끝나는 지점엔 방갈로와 유르트(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쓰는 이동 가능한 주거 형태)가 갖춰진 에코파크리조트(Eco Park Resort)가 있어 숙식이 가능하다.
유르트에 머물면서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도 보고 동틀 무렵의 협곡도 산책하며 하루쯤 문명과 동떨어져 쉬어가고픈 곳이다.
침블락 스키리조트와 빅알마티 호수
알마티 시내에서 차량으로 30분 정도만 가면 닿을 수 있는 침블락 스키리조트에서는 사시사철 만년설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메데우 아이스링크를 지나 3단계에 걸쳐 케이블카를 나눠 타고 해발 3200m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구간 사이의 휴게소에는 간단한 먹을거리와 커피가 마련돼 있다. 전통 의상을 입고 독수리와 함께 사진을 찍는 등 다양한 즐거움도 체험할 수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곧 맞이할 겨울 시즌을 준비하느라 바빠 보였다. 정상에 올라 바에서 마신 맥주 한 잔의 맛이 잊히지 않는다. 문득 스키를 좋아해서 세계의 스키장을 찾아다니는 친구가 떠올랐다. 사진을 찍어 보내주니 당장 올겨울 스키 여행지로 찜했다는 답신이 온다. 11월에부터 4월까지 스키를 탈 수 있어 겨울이 짧은 스키 마니아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과 201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개최지로 선정될 만큼 자연설이 좋고, 별장부터 유르트까지 다양한 숙박 시설도 갖춰져 있다. 스키나 보드 장비 대여도 가능하다. 스키를 즐긴 후 근처 온천에서 몸을 녹인다면 이보다 좋은 휴식이 없을 것 같다.
침블락 스키리조트에서 내려와 한 시간 정도 이동해 도착한 곳은 빅알마티 호수. 가는 길은 대관령 고갯길처럼 꼬불꼬불했지만 눈부신 에메랄드 호수를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모습은 달력 속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아무데나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즐기는 가족과 연인들의 모습도 정겹다.
탐험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탐험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알마티 외 다른 도시들도 탐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