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에는 그곳만의 정서가 있다. 간판, 차림표, 의자, 그릇, 음식 그리고 주인과 오랜 단골들까지. 곳곳의 요소들이 어우러져 하루아침에 꾸며낼 수 없는 세월의 내공을 자랑한다. 이처럼 희로애락을 머금고 삶의 내공을 지닌 한국 노인의 초상(肖像)에 주목한 이가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화가 아론 코스로우(Aaron Cossrow, 37)다. 그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그리며 켜켜이 쌓인 개인의 추억을 나누고, 그 속에서 가장 한국다운 문화를 발견해낸다.
15년 전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20대 청년 아론 코스로우는 영어 강사로 일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예술가의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방황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그림을 놓아본 적은 없었다. 벽화, 아크릴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자신의 진로를 끊임없이 고민해나갔다. 그는 한때 ‘소주킹’(Sojuking)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를 창작했는데, 독특한 그림체로 누리꾼들 사이에 알려지기도 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으니 기분 좋은 성과로 받아들일 만한데도, 아론 코스로우는 여전히 갈증을 느꼈다. 그는 한 단계 높은 도약을 위해 유화를 시작했다. 도통 그림 실력이 늘지 않아 좌절하는 나날도 많았지만, 차분히 자신을 수련해나갔다. 동시에 초상화 모델을 찾기 위해 서울 곳곳을 누비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의 눈에 흥미로운 피사체가 포착됐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자 첫 유화 작품의 주인공인 ‘신당동 대장장이’였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제겐 예술가로서 기회도 없었고, 기술도 부족했어요. 그러나 예술가가 자신의 길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죠. 유화를 처음 시작했을 땐 너무 어려웠어요. 몇 년을 해도 늘지 않아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다 포토샵으로 디지털 페인팅을 하면서 조금씩 갈피를 잡았고, 작품을 해도 좋겠다 싶었죠. 당시 모델이 필요했는데, 신당동 대장장이가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4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해온 장인이셨죠.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아내분께 대신 부탁드려 허락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첫 작품 이후 열흘에 한 명꼴로 새로운 인물을 그렸고,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곳곳에 어린 영감, 한국은 거대한 미술학교
아론 코스로우는 2021년 1년가량 그린 작품을 모아 첫 개인전 ‘얼굴을 보이다: UNMASKED’를 열었다. 같은 해 두 번째 전시 ‘초상화 2021: Portraits’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20여 점의 초상화 작품을 망라해 ‘탑골공원의 소년들: The Guys in the Park’로 관람객을 맞았다. 전시는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한 탑골공원 인근, 서울노인복지센터 내 탑골미술관에서 한 달간 진행됐다. 탑골공원에 모여 매일 장기 두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소년의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시를 안내한 실버 도슨트 최명락(70) 씨는 “아론이 ‘한국은 나에게 거대한 미술학교와 같았다’는 인상적인 말을 했다. 그만큼 한국에는 작품에 영감을 주는 요소가 많다는 거였다. 관객들도 그런 작가의 작품에 감탄하고 여운을 많이 느낀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이태원 거리의 구두닦이, 불광동의 목재상, 을지로4가의 점심식사 배달부, 그리고 탑골공원에서 장기 두는 노인들까지. 특유의 색감과 질감 덕분에 인물의 정서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정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또 사실적인 요소들의 묘사가 가득해 단조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그림의 대상을 포착하고 그려내는 과정에서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한 배경과 디테일이다. 아론 코스로우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하고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한 흥미로운 장소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인물일 때 모델로 선택하는 것 같아요. 제 작품에는 대략 100가지 디테일이 담겨 있다고 보는데요. 가령 ‘한남동에서의 치킨 파티’ 같은 그림을 보면 술자리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 테이블 위의 소주병, 껍질을 까놓은 귤과 옛날통닭까지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어우러지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세부적인 것들로 그림을 가득 채웠을 때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종종 제 작품을 본 분들이 어떤 공통된 경험을 말하거나 추억이 떠올랐다고 하는데, 그런 반응을 들을 때 가장 기쁩니다.”
사라져가는 장인들의 초상을 기록하다
그동안 한국에 살며 그가 흥미를 느낀 배경은 이태원, 인사동, 을지로, 종로 등이다. 특히 을지로에서는 꽤 의미 있는 작업도 진행했다. 바로 ‘을지로3가의 장인들’ 프로젝트다. 아론 코스로우는 최근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지역민들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고, 작품 중 가장 큰 사이즈의 대형 유화를 그렸다. 그림에는 총 23명의 을지로 장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작품이 완성됐을 때 그는 을지로 골목에서 팝업 전시를 열고 주인공들과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국적을 떠나 따뜻한 정을 나누고, 그들의 상황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기존 노동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게 너무 슬펐습니다. 저는 그런 개발이 진정한 개발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기존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파트를 들여놓는 게 과연 유익할까요? 프로젝트 당시 저는 100년 넘은 인쇄기를 보기도 했고, 수십 년 세월 숙련된 장인들도 만났습니다. 그런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도 없고, 돈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사실 역사라고 말하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그건 그들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그들은 아직 존재하잖아요. 나중에 진짜 역사로 남게 된다면,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며 이곳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되새겼으면 해요. 아마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특별함을 깨닫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 거리가 흔하디흔한 카페와 뷰티숍 등으로 뒤덮이는 순간, 과거의 활기찼던 문화를 그리워할 테죠.”
아론 코스로우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쌓여 세월이 묻어난 것들에 애착을 갖는다. 그런 요소들이야말로 가장 꾸밈없이 진실된 모습으로 짙은 아름다움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통해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정서를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모델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성실히 자신의 삶을 꾸려온 그들의 모습에서 그가 살아가야 할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제가 그려온 노인 대부분은 지난날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매일매일 신발을 고치는 구두수선공, 새벽부터 지하철 역사를 깨끗이 치우는 청소원,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식당 주인. 모두가 멋진 삶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며, 저 또한 좋은 삶을 위해 평생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곤 해요. 제가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삶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고 발전해서 더 많은 대중에게 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길 바랍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그에게 꼭 필요한 마중물이 있다. 바로 그림의 모델이 될 인물이다. 끝으로 그는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그리고 주인공이 될 한국의 어르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제 경우에는 작품 하나만으로 의미를 전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모두 아울러 종합적인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봐주시면 좋겠고, 그 속에서 공유되는 어떤 메시지가 전해지길 원하죠. 제가 만나온, 만나게 될 분들의 삶을 관통하는 ‘모두의 기억’을 포착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제가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이야기를 듣도록 허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제 작품 의뢰에 응해주시고 관대하게 대해주신 어르신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지금의 실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겐 여러분이 진정한 인생의 챔피언입니다.”
취재 협조 탑골미술관
사방 천지로 빛이 뿌려진 날들이다. 멈출 수 없는 일상은 늘 촘촘하다. 이럴 때 가뿐히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잘 찾아왔다고 스스로 흐뭇해지는 길 위에 서본다. 굳이 계획을 세우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가볍게 나서거나, 편안히 자동차 핸들을 돌려서 잠깐만 달리면 닿는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곳, 기분 좋게 훌쩍 길을 나설 수 있는 곳, 광교다.
수원은 당연히 익숙한 도시인데 같은 지역권의 광교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낯설지는 않은데 옆 도시에 비해 어쩐지 새것 느낌이다. 신상품이라는 뜻의 신조어, 이른바 신상 또는 ‘새삥’ 같달까. 수원이 18세기 조선의 신도시라면 수원시 영통구에 속하는 광교는 21세기에 조성된 또 다른 신도시다.
광교가 특별한 것은 도시의 녹지율이 41.7%에 달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그 안에 엄청난 넓이의 호수가 포함되어 있어 그야말로 쾌적한 주거 환경 속에 살아가는 걸 부러워할 만하다. 인구밀도도 국내 신도시 중에서 최저다. 광교라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호수공원이 도심을 따라 연결돼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산책 코스가 되고 있다. 도서관, 호수, 수목원, 박물관, 미술관, 감성 맛집까지 일상과 이어진다. 그들이 가꾸어나가는 도시의 건물과 건물을 잇는 정감 어린 골목길도 아름다운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초점을 문화 기능에 맞추어서인 듯하다.
독서 캠핑을 아시나요, 알싸한 숲속 도서관 책뜰
요즘 각기 다른 레저 활동의 이름으로 호캉스나 차박, 차크닉 등의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독서 캠핑 또는 북캉스라는 말도 생겨났다. 가을이면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호수를 둘러싼 고요한 숲속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어떨까. 광교푸른숲도서관에 가면 정말 이런 곳이 있다.
광교푸른숲도서관은 광교호수공원이라는 멋진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주제로 한 도서관이다. 푸른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비탈의 기울어진 숲 경사를 그대로 살렸다. 숲 사이에 입체감 있게 설계된 열린 공간 형태의 도서관은 외부와 내부 모두 예쁘다. 푸른숲도서관만으로도 충분한데, ‘푸른숲 책뜰’이라는 독서 캠핑장 콘셉트의 독서 힐링 공간이 특별하다.
도서관 옆의 경사진 숲길을 따라 걸어 오르는 길은 비밀스러운 정원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지막이 말하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다. 그 언덕 나무들 사이에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다섯 개 동의 독립적인 공간 ‘책뜰’이 앉혀졌다. 백리향, 산수국, 바람꽃, 물봉선, 금강초롱(장애인 우선 예약). 각 캐빈마다 붙여져 있는 이름은 광교호수공원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계절 꽃인데 시민들의 제안으로 지어졌다.
내부에 드니 초록 이끼로 덮인 굵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신비한 트리하우스 느낌이다. 책뜰 주변을 알싸한 숲 내음과 푸른 기운이 감싼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작은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3~4평 정도 공간에 편안한 의자 몇 개와 작은 테이블, 그 위엔 책 받침대 하나, 옆쪽으로 안내 자료와 책이 꽂힌 서가가 전부다. 창문을 열면 아담한 전용 테라스도 있다. 문을 닫으면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빈백 체어에 깊숙이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평온함이 온몸에 퍼진다. 이런 호사라니. 비로소 크게 숨을 쉬고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사계절 언제나 책을 읽든 숲멍을 하든 오롯하게 사치스러운 쉼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3시간의 이용 시간 동안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수 있다. 친구나 연인,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독서와 힐링의 시간을 나누기도 한다. 소풍 나온 만족감과 함께 충분한 사색과 쉼을 주는 3시간이다. 여기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책이 있는 정원 문화, 영흥수목원
빽빽한 빌딩과 아파트의 도심 속에 숲과 연결된 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숲속 산책로가 구현되었다. ‘더 살아 있는 정원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라는 의미를 갖고 정원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분수가 솟아오르는 온실 앞의 이국적인 풍경을 지나 아열대 식물을 주제로 꾸며진 온실에는 망고 열매가 매달려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수목원 입구의 책마루였다. 이 지역의 식물이나 정원 도구 전시실 등을 돌아보고 나면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진 마루에 그냥 앉아 책을 읽는다. 숲과 책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공간이다.
광교 도심을 한눈에, 프라이부르크 전망대
광교푸른숲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몇 걸음 숲으로 나가 산책길에 들어서면 도서관 뒤편으로 우뚝 선 탑이 보인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Freiburg Observatory). 세계적인 환경 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전망대와 같은 형태라고 한다. 환경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와 프라이부르크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의미를 더하는 전망대다.
건물 10층 정도인 33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광교 도심을 360도 조망할 수 있다. 각 층마다 카페, 전시관, 쉼터, 전망대가 이어진다.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으로 내려다보이는 원천호수와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압도적이다. 전망대 밑에는 ‘풀빛누리 광교 생태환경체험교육관’이 있어서 환경을 살피는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호수공원 주변 산책길에서는 자작나무 쉼터와 하늘정원, 수초섬 등 계절별로 변화하는 호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운치 있는 자연 생태 속으로, 신대호수
광교호수공원 중앙에 조성된 공원 산책로는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로 연결되어 있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였던 신대호수 쪽으로 걸어가면 금방 이어진다. 도심 속 호수공원을 잇는 순환 보행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누린다. 신대호수 쪽 수변 보행 데크에 들어서 둑방길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연꽃이 피어나고 뿔논병아리가 노니는 곳이 나타난다. 이처럼 습지식물과 야생 조류들이 살아 있는 생태계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안개 낀 이른 새벽의 몽환적 풍경과 해 질 무렵의 노을 풍경이 더없이 멋진 신대호수는 모든 시민의 생활 속 휴식 공간이다.
광교박물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실내에서 즐겨볼 만한 곳으로는 광교박물관이 있다. 광교의 역사와 도시 변천사를 알려주고 다양한 체험도 준비되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층에는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던 소강 민관식 님의 이야기와 올림픽을 비롯해 한국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유명 선수들의 기증품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광교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갤러리아 광교 옆 수원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다. 광교중앙역에서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전시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대부분 무료 관람이다.
광교푸른숲도서관 책뜰 이용 방법
대상 수원시도서관 관외대출회원(정회원) 이용 인원 최대 4명 운영시간 1회 09:30~12:30 2회 14:00~17:00 / 3시간 예약 신청 수원시도서관 홈페이지(www.suwonlib.go.kr) ‘푸른숲 책뜰’ 예약 기간 매월 1일 10시부터 선착순 이용료 1만 원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는 최대 규모인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 교통이 좋아야 하는 건 현대인의 주거 선택 시 중요 요소인데 여행지를 향한 여행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때로 먼 길 찾아가 고요히 만나는 여행지의 맛도 남다를 수 있지만 짧은 시간을 만들어 찾아온 사람들에겐 이럴 땐 반갑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니 두오모 성당이 기다린 듯 보이는 건 쾌재를 부르게 한다.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어로 대성당을 뜻한다.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대성당이 있는데 그중에 피렌체와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이 유명하다. 특히 오래전에 가 보았던 피렌체의 두오모는 그 독특함이 지금도 떠오른다. 어쩜 이다지도 문양이 정교하고 오묘한지 감탄스러웠다. 웅장하고 장대한 건물 곳곳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섬세함에 놀랐다.
피렌체 두오모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먼저 떠오르는 성당이다.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그리운 사람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명대사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본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영원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성지로 준세이와 아오이가 서른 살의 생일에 만나기로 했던 곳. 그러나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헤어진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되는 스틸컷의 효과가 크다. 만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피렌체에서 다시 그들은 서로 연결되었고 마음을 주고받았다.
여행자들도 두오모 성당 앞에서 영화처럼 나름대로의 무언가를 하는 것, 하다못해 혼자 배회를 하거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BGM이라도 듣는다. 우리들에게 그곳은 매체의 영향이 있는 곳이 되었다. 그 영화음악을 듣다 보면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만 두 연인의 풍경을 배경으로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첼로 연주곡이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걸 느낀다. 낮으면서도 풍부한 첼로음의 분위기가 수분을 머금은 듯한 피렌체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좋다. 준세이와 아오이가 어느 공원에서 첼로 연주 공연을 보면서 키스하던 장면도 함께 오버랩 된다. 그리고 느닷없는 일이지만 아오이 역의 진혜림이 다른 영화에서 조용한 반주로 이쁘게 불렀던 A lover's Concerto 도 연달아 떠오른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 아오이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갔을 때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영화와는 무관하게 대성당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 속의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화려한 외관과 내부 그림의 장엄함에 압도되어 시종일관 경이로움의 여행이었다. 지금과는 달랐을 그때의 촉촉하던 정서가 문득 그립다. 갑자기 피렌체의 풍경에 잠겨 그 도시를 걸어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밀라노의 두오모를 이야기하려고 시작했는데 슬그머니 피렌체의 두오모와 영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삼천포로 빠졌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엔 이번에 본 밀라노 두오모의 첨탑을 올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을 또다시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저 웃으며 그땐 밀라노의 두오모에서 피렌체의 두오모를 떠올렸고 영화 생각만 했었다 하면서 말이다. 두오모는 단순한 종교적 장소만이 아닌 지역민들에게 가장 중심적인 장소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시 건설할 때 두오모를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배치했다. 그래서 두오모를 바라보면서 밀라노와 피렌체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여행의 기억이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기에 때로 문득 이렇게 떠올려 보며 아릿해져 오는 걸 혼자 즐겨보는 것도 괜찮다.
연말의 두오모 광장은 이른 시간인데도 들뜬 사람들로 가득하다. 맞은편 노천카페의 노란 테이블엔 부부나 연인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침 햇살은 두오모 성당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앉아있는 그들을 비춘다. 때로 어딘가 지나치다가 우연히 만나던 안개 속 풍경에 멈춰 서기도 한다. 안개가 내게 스미는 촉촉함과 그 속에 파묻혀 더 머물고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엄청난 포스의 두오모 대성당의 광장과 따사로운 노천카페의 풍경이 아름다워 한참 동안 그 풍경 속의 풍경이 되어 보기도 한다.
성당 광장의 비둘기 떼들과 노니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바라본다. 일상을 떠나 있다는 묘한 일탈감과 생경한 도시의 인상이 절묘하게 배합되는 순간이다. 바로 그 옆으로 대형 아케이드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가가 아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비토리오 에마뉴엘리 2세 갈레리아 아케이드라는 이름이다. 웅장한 건물의 통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중앙을 십자로 가르며 사방의 건물의 연결하는 길이 이어지고 천정의 창 구조물이 예술 작품이다.
모르고 들어선다면 처음엔 백화점이나 일반적인 상가인 줄 알 수 있다. 그러나 들어서면서부터 고풍스러운 이곳엔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하는 프라다, 베르사체, 루이뷔통 등의 명품 샵이 우아한 무게감으로 쭉 입점해 있다. 고색창연함과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켠으론 피자와 젤라토를 한 입 먹느라 줄 서 있고, 기둥도 천정도 예술이구나 하며 바라보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두리번거리며 산책하듯 지나가려 해도 쉽지 않은 인파다. 골목도 자칫 길을 잃을 만큼 복잡하게 이리저리 길이 나 있다. 아케이드를 벗어나면 베르디의 푸치니를 초연했다는 스칼라 극장이 있지만 생각만큼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이 의미 있겠지만 그냥 쓰윽 보고 지나친다. 미술관이나 동상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정도로 볼거리가 널려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수백 년 된 건물들이면서도 정갈하고 도시적이다. 오래된 연말의 찬 기운과 함께 오전의 햇볕이 그 건물을 지나는 길에 그림자를 만들고 배회하던 그곳에 발걸음 소리를 남긴다. 지하철 입구나 거리 곳곳에 빨간색의 선명한 M자 폰트가 밀라노를 더욱 기억하게 할 것 같다.
구불구불 거듭 휘어지는 길, 조붓한 찻길을 따라 닻미술관을 찾아간다. 누굴까? 외진 야산 자락에 미술관을 만든 이. 자연에 심취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 대도시 근교도 아니고, 접근도 쉽지 않은 산중에 사립미술관을 열다니. 이는 모험일 수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우랴. 속된 말로 파리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외져서 오히려 호감을 살 수도 있겠다. 도시엔 없는 정적과 고독이,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이곳에 흔하게 있는 게 아닌가. 이윽고 길의 끝에 닿자 닻미술관 푯말이 보인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에 있다.
넓고 훤칠한 정원 안에 미술관이 있다. 정원 안이라 했지만 숲속에 있는 미술관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백마산이라 부르는 야산이 늘어뜨린 치맛자락에 폭신하게 안긴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너른 부지 자체가 산과 정원의 융합으로 이루어져 통째 아늑하다. 청신해서 생동한다. 게다가 계절은 봄. 부지깽이도 꽂아두면 싹이 튼다는 4월의 봄이다. 물오른 나무들의 몸엔 이미 튼 싹눈들. 설레어 곱살스레 하느작거리는 연둣빛 잎사귀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들은 작렬하듯 일제히 피어나 날 좀 보소, 아우성친다. 햇볕은 궁금한가? 그것은 유난히 풀꽃들 소담하게 핀 둔덕에 모여 앉아 있다. 풀꽃이 전하는 소식에 귀 기울이는 것 같다. 벌써 후루룩 떨어져 땅바닥에 누운 벚꽃들의 모습은 또 어떻고? 휘황한 장제(葬祭)를 닮아 애절하게 아름답다.
미술관에 왔으나 눈길과 발길은 이렇게 서정적인 정원 풍경에 오래 머문다. 이런 미술관, 아마도 드물지 싶다. 수려한 정원으로 일단 유혹하고 매혹한다. 수목과 화초들이 연출하는 예술과, 숲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내는 선율에 씻긴 마음은 샘물 한 바가지 퍼마신 양 개운하다.
나무들에 가려 감춰진 듯 살짝 보이는 입구를 찾아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간다. 건물의 양식도 분위기도 이채롭다. 지중해 휴양지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집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디귿(ㄷ)자를 닮았다. 건물 복판에 조성한 중정 좌우로 전시관과 카페 공간이 있다. 눈길을 붙잡는 건 역시 중정이다. 중정을 이룬 사물들마다 고풍스런 미감을 돋우고 있다. 고재와 고철로 만든 출입문, 빈티지 타일이 깔린 바닥, 처마를 떠받친 하얀 기둥들, 획일적이지 않은 의자와 탁자들의 낡음과 아름다움…. 한층 독특한 건 중심부에 팔각형 형태로 설치한 연못이다. 아주 작은 연못이라 연못다운 기능성에 착안하기보다 뭔가 상징적인 물웅덩이를 표상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여성성이라거나, 궁극의 자연성을.
중정 뜰에 앉아 만날 수 있는 풍경 중 빼어난 건 하늘의 동향이다. 지붕 없이 확 열린 상부의 사각 프레임으로 파란 하늘과 구름과 햇살이 들이친다. 닻미술관 건물은 이렇게 자연을 향해 열려 있다. 자연을 끌어들인다.
닻미술관은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2010년에 개관했다. 설립자는 사진작가이자 미술관 관장인 주상연. 그는 건축과 정원 조성에 따르는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 그가 미술관 설립에 나선 계기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트 인스튜어트’(Art Institute)에서 공부하면서였다고 한다. 유학을 통한 개안? 그는 국내에 있을 땐 착안하지 못했던 구상을 했다. 예술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것.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 삶과 예술과 자연, 이 셋의 소통과 유대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이러한 생각을 가슴에 담고 귀국한 그는 마침내 닻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사진 중심의 예술서적을 작가와 협업해 출간하는 닻프레스도 설립했다. 닻미술관과 닻프레스는 서로 손잡고 동행한다. 닻프레스의 출간 콘텐츠가 곧장 미술관 전시로 이어지면서 확장되는 게 아닌가. 닻프레스의 존재감은 해외에 더 또렷하게 부각됐다고 한다.
억지 꾸밈이 없는 야생정원
주상연 관장에게는 유학 중에 인연을 맺은 예술적 어머니가 있다. 미국의 사진가 린다 코너(Linda Coner)다. 코너는 하늘과 땅, 성과 속,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탐구와 질문을 사진 작업으로 하는 작가로, 주 관장의 삶과 사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미술관 설립의 배경을 이루는 정신적 에너지 역시 코너에게서 얻은 것 같다. 한편 주 관장은 자연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고요한 숲속에 미술관을 지은 걸 보면 이미 알 만한 일이지만, 그는 인생에 자연이 결부돼 있을 때 삶의 더 나은 지평이 열린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진작가로서, 미술관 운영자로서 자연이 발신하는 언어를 포착한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연과 예술이 주는 ‘무작위적 친절’이 공기처럼 세상에 미만하길, 그래 저마다의 삶에 창조성과 영성이 깃들길 바라서다.
전시실에선 국내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꼽히는 주명덕의 작품전 ‘풍경, 저 너머’가 펼쳐지고 있다.(6월 18일까지) 80대 고령에 접어든 주명덕은 아직도 암실에 들어박혀 사진 작업을 하는 열정의 화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과속 질주하는 세태에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진 작업을 고수하는 것에서도 뚝심과 지향이 드러난다. 평생 한국의 자연과 풍속과 문화유산을 흑백 기록사진에 담은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문명, 풍요, 공해 같은 개념과 상관없는 한국의 고유한 전통과 특색을 보존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회는 2021년 닻미술관의 기획전 ‘집’과 이어지는 주명덕의 두 번째 사진전이다. 기록사진으로 시작해 예술사진으로 확장된 후반기 작업에 속하는 세 가지 시리즈, 즉 ‘잃어버린 풍경’과 ‘장미’, 그리고 ‘사진 속의 추상’을 함께 엮어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피사체의 사실성을 포착하는 데 능란한 작가가 추상 이미지의 구축에도 유능함을 알려주는 전시회다. 다만 한 획을 쓱 그은 듯 간결한 이미지를 담은 주명덕의 추상사진엔 허무와 초탈이 실려 있다. 리얼리즘으로 도달할 수 없는 깊이와 높이를 보여주고 있으니, 마침내 그의 눈은 세상과 인간의 이면을 그윽하게 관조하나? 대가의 사진은 그렇다면 한 줄의 경전에 맞먹나?
본관 저 뒤편 프레임실에서는 ‘구름의 노래’전이 진행된다. 닻미술관이 소장한 사진작품 가운데 구름을 소재로 한 것들을 골라 걸었다. 구름이라는 이름의 자유로운 나그네를 저마다의 작풍으로 은유한 사진가 12인의 흑백사진이다.
전시실을 나와 다시 정원 숲길을 헐렁헐렁 산책한다. 억지 꾸밈이라곤 없는 야생정원이다. 가꾸는 건 가두는 것이다. 가만히 방목해둔 나무와 풀들은 저리도 무성하다.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 정원 길 한편에 오두막 한 채 있다. 은자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작은 집은 데이비드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 오두막의 실제 도면에 따라 지었다. 월든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치를 때 만들어 실내에 전시했던 걸 정원으로 옮겨놓았다. 소로는 말했다. ‘나의 직업은 산책가’라고. 산책이 직업? 이보다 좋은 직업이 있나? 대봐라, 더 나은 게 있거들랑.
주상연 닻미술관 관장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관 추구”
닻미술관의 정원은 아름답다. 인위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정원의 외곽은 야산 그대로를 다듬지 않고 원형 그대로 두어 야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의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주상연 관장은 정원 공간을 전체 콘셉트의 중심에 두고 숙고했던 것 같다. 유학차 미국에 살 때 만들었던 개인 정원에 관한 경험도 되살려 활용했다.
사람 드문 지방의 외진 산자락에 있는 미술관이다. 운영 문제를 고려한다면 아무나 쉽게 나설 여건은 아닌데?
“처음엔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산기슭에 이상한 지중해식 건물을 짓고 들어선 미술관이라니,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그런 의아심을 표시했다. 초기 수년간은 관람 인원도 극히 드물었다. 내가 산속에서 지금 뭐하고 있지? 이런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운영에 관한 어떤 전략적 대안을 가지고 개관한 게 아니라 힘든 점이 많았다. 다만 꾸준히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확신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가 잡혔다. 서서히 팬이 생기고 조력자들이 늘더라.”
닻미술관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고 보나?
“예술과 정원과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라는 점이 포인트라 생각한다. 보통 미술관은 화이트 큐브를 구성하지만 우리는 빛과 공기가 드나드는 건물을 지었다. 이 역시 장점이다.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관이라는 게 관람객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미술관들은 대부분 악전고투를 했다. 닻미술관은 여기에서 예외였단다. 팬데믹 국면에 오히려 방문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 바이러스조차 침투할 수 없는 숲속 미술관이라는 안전성이 거둔 뜻밖의 성과였다.
사진 전성시대랄까,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이들도 많아졌다.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풍속이지 않을까?
“사진을 쉽고 친숙한 매체로 대하는 현상은 긍정적이다. 반면 사진에 관한 인식이 얕아지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정말 좋은 사진을 만날 기회가 오히려 적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나 대중이나 디지털 사진에 편중된 점도 문제다. 해외에선 다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니까.”
현재 진행 중인 주명덕 사진전에 나온 추상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재능과 내공이 느껴져서.
“주명덕 선생이 그저 전통가옥이나 풍경을 찍는 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한결 다층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해왔다. 기록사진에서 더 깊이 들어간 관념적 사진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동양철학적 지향을 가진 걸로 보인다. 나에게는 큰 스승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뜻을 얻으면 말을 버린다!’ 선가의 법어 같지 않나?”
당신 역시 사진작가다. 어떤 작품 세계를 추구하지?
“자연에 대한 경외감, 영성에 관한 생각, 시간과 공간에 관한 성찰 등을 테마로 삼는다. 늘 잊지 않는 건, 예술의 치유력이 삶과 정신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고.”
여럿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이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편이 못 되다 보니 가능하면 이럴 땐 피하고 싶기도 하다. 혼자 혹은 동행 한 명쯤과 다니기 좋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은 어수선함이나 소음으로 피곤한 상황을 피하기 좋다. 혼자서 자기 속도대로 구경하고 한참씩 멈춰 있어도 뭐라 할 이 없으니 말이다. 동행이 있어도 각자 생각의 방향으로 돌아보고 나서 만나면 된다.
이번에 가본 안성의 한국조리박물관도 그렇게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조리박물관의 메인 전시관과 요리아트스쿨 교육장을 중심으로 주변의 너른 공원과 잘 정돈된 조경, 예쁜 카페와 식당까지 고루 잘 조성된 테마파크형 박물관이다. 서양요리 100년의 역사를 갖춘 한국조리박물관은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전시관은 국내 서양요리 역사, 조리인, 메뉴 레시피, 식문화 조리단체, 조리기구와 도구, 소스와 향신료, 커피·바리스타·와인·베이커리 등 8개 테마로 구성되었다. 공간 구획에 따라 준비된 각종 자료들이 생생한 역사를 전달한다. 찬찬히 돌아보며 만난 도구 하나하나, 맛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이나 작은 소스 하나까지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뜻깊은 관람이다. 이를 이루고자 한 걸음씩 심혈을 기울이며 나아간 이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총 부지 1만 평 정도의 테마파크형 박물관으로, 자연 속에서 관람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이번엔 조용히 혼자 전시장을 돌아보려던 생각을 바꿨다. 키오스크로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려는데 안내석에 계시던 분이 말을 건넨다. “해설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사실 해설을 들으며 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며 그냥 들어섰다. 그러다가 문득 이곳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제대로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해설사로 교육받으신 분답게 자신의 소개를 시작으로 친절한 안내와 꼼꼼한 설명으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찌나 성심성의껏 안내를 하시는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연륜이 돋보이는 분이었다. 안내를 마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안성시청 소속 문화관광해설사로서 현재 이곳 한국조리박물관에서 파견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문화해설사는 20명 정도인데 우리가 사는 지역을 위한 일이어서 다들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합니다. 이곳의 문화해설은 팀마다 다르지만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경우에 따라 세 시간 한 적도 있어요. 내가 즐거우면 관람객들도 즐겁고, 잘 따르도록 리드하는 능력도 생깁니다. 그런 즐거움이 날마다 여기로 나오게 합니다.”
맡은 일에 자부심이 넘치신다. 청산유수로 설명하는 내용도 귀에 잘 들어오고 구수하기까지 하다. 주어진 일이 즐겁다고 연신 말한다. 유용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전해진다.
“내가 7학년입니다, 하하하. 건강관리만 잘하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죠. 지금 하는 일이 대가 여부를 떠나서 보람이 큽니다. 문화 관련 일을 접하는 것도, 또 전시관 주변의 자연도 아름다워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행복한 일 아니겠어요?”
은퇴 후의 시간을 이렇게 보람찬 나날 속에 보내는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진심 어린 말이다. 시니어들의 일자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고령화 시대를 사는 시니어에겐 안정된 노후나 취미 생활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노후의 경제활동이나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필요하다.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말처럼 일이란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진취적인 삶이 행복을 유지해준다.
마침 한국조리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은 최수근 관장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경희대 교수를 은퇴한 최 관장은 여러 호텔 근무 경력도 지닌 식품학 박사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분이다. 특히 ‘소스의 대가’로 불리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요리 일을 열심히 하다가 더 공부하기 위해 파리 르코르동블루로 유학을 갔지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박물관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남프랑스 니스에 있는 개인박물관이었어요. 프랑스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셰프의 기념박물관에서 받은 감동을 오랜 꿈으로 간직해왔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방 관련 사업을 하는 이향천 대표를 만난 겁니다. 문화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인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셔서 한국 최초의 조리박물관 건립이 이루어졌습니다. 요리 분야 원로들이 귀한 자료들을 많이 주셨고 저 또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지금도 콘텐츠 발굴이나 행사 진행을 하고, 자문을 얻으며 공부합니다. 요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든 언제든 이곳에 찾아오시면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넓은 공원의 자연과 전시관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에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바쁜 와중에도 조리박물관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성의껏 이야기해주셨다. 일정 때문에 급히 이동하면서도 끝까지 예의를 다해 조리박물관의 의미를 전해주시는 마음이 와 닿았다.
한국조리박물관에 가면 근현대 요리와 조리의 방대한 자료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마주하게 된다. 조리계 원로들과 한국 조리명장들이 분야별 자문위원단으로 동참한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가득 만날 수 있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의 유명한 박물관이나 요리학교, 셰프들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며 진행해온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주방 제조업계의 이향천 대표와 한국 조리업계의 역사를 보존하고 재조명하려는 최수근 관장의 열정이 힘을 합친 결과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현재 한국조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대통령의 밥상’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요리사가 들려주는 대통령의 밥상 이야기와 청와대 요리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대통령의 식기가 역사 순으로 전시되었는데 이 또한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빈 만찬에 일본 도자회사의 그릇을 사용해왔다. 이를 본 육영수 여사가 한국 도자기를 주문 생산했고, 그 뒤로 국빈들에게 당당히 우리 그릇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가히 요리와 먹방의 시대다. 맛있는 요리를 나누고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이 근래의 일만은 아니다.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맛의 역사에 다가가 보는 시간이 알차다. 조리인들의 철학과 발자취를 돌아보며 흥미로운 요리 세계로 빠져볼 만하다. 안성 일죽면에 가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맛의 원천을 되새기는 시간을 만날 것이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서일농원 한국조리박물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서일농원이 있다. 볕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2000여 개의 장독대에서 우리의 장맛이 익어가는 옛 정서를 만끽해볼 만하다. 연못가를 지나 산책로를 걸으며 차분히 사색에 빠져보아도 좋을 듯하다. 코로나19 이후 닫혔던 문이 비로소 올해는 열린다고 한다.
죽주산성 죽산면 쪽으로 조금만 더 달려보자. 시원하게 죽주산성에 올라 봄바람을 맞아볼 일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확실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
‘치매 환자가 이해‧존중받고 기여할 수 있는 도시(cities), 타운(towns) 또는 마을(villages)로, 지역 주민은 치매에 대해 이해하고, 치매 노인은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자기주도적으로 살 수 있는 지역사회’. 영국 알츠하이머협회(Alzheimer’s Society)에서 ‘치매 친화 지역사회’(dementia-friendly community)에 대해 내린 정의다.
모든 노인이 거주하던 동네에서 계속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치매 노인에게 지역사회의 의미는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 길 리빙스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정신의학 교수는 2017년 연구에서 사회적 고립이 완전히 제거될 수 있다면 치매 사례가 5.9% 줄어들 수 있다고 계산했다. 해당 연구 결과를 소개한 KBS는 “결혼과 혈연으로 이어진 전통적 형태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성장과 노화에는 상호 간의 소통과 교류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영국은 치매 문제를 세계 최초로 국가적 안건(아젠다)로 설정한 나라다. 2009년 ‘국가치매전략’을 도입하고, 2012년에는 ‘치매 친화 지역사회’ 관련 정책을 시행했다. 치매 치료제 개발 투자, 치매에 대한 국민적 인식 개선, 치매 환자와 간병인의 여건 개선 등을 위한 노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국 지역사회에서는 치매 노인을 비롯한 고령자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기 앉으세요” 의자 내어주며 외출 장려
영국 노팅엄 시에서는 미국 뉴욕시와 맨체스터시의 유사한 프로젝트에서 착안한 ‘여기 앉으세요’(Take a seat) 캠페인을 열었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상점은 외부에 ‘우리는 고령 친화 상점입니다’(We are Age Friendly) 스티커를 부착한다. 노인은 부담 없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상점에서는 차나 커피, 물 한 잔을 제공하지만 구매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캠페인은 2015년 시작된 이후 노팅엄 내 28개 지역, 300개 이상의 사업장에서 운영되고 있다. 상점, 백화점, 건축 협회, 카페, 술집, 미용실 등 참여 업종이 다양하다. 고령친화적인 지역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실제 사례인 것이다.
이 캠페인은 외출한 노인이 앉아서 숨을 돌릴 곳을 마련하고, 노인에게 쉴 곳이 부족하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하게끔 하고자 시행됐다. 고립감이나 고독감을 느끼기 쉬운 노인에게 외출을 꺼리게 하는 요소를 줄여 외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노화개선센터’(Centre for Ageing Better)는 “기업이나 가게 주인으로서도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업장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인 캠페인”이라고 평가했다.
고령자가 기획하는 고령친화 문화 프로그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영국의 치매 친화 지역사회 정책’ 연구에 따르면 영국 치매 친화 지역사회 인증 프로그램은 민간이 주도하고 운영하며, 지역 정부의 참여와 인준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병‧의원, 거주시설이나 학교, 상점, 기업이나 은행, 여가문화시설 등 다양한 기관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역 내 은행 지점은 기억카페에서 치매 노인의 금융 관련 조치, 은행에서 운영하는 금융자산 보호 정책(규정) 등에 대해 홍보하는 식이다.
유명 축구팀의 연고지로 유명한 영국 맨체스터는 영국 내에서 고령친화도시 선두주자로 꼽힌다. 2010년 영국 도시로는 최초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령친화도시 국제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또한 노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 노화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기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생동감 있고 다양한 모습의 노인 사진을 사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전략은 연령 차별주의(ageism)를 약화하고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묘사를 바로 잡기 위해 쓰였다.
맨체스터시가 사용한 고령친화도시 전략 중 하나는 문화다. 50세 이상, 특히 사회적 고립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의한 고령 친화적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 챔피언’(Culture Champions) 봉사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150명 이상의 노인 자원봉사자들은 도시 전역에서 문화 대사로 활동한다.
이들은 동년배를 위한 활동을 구상하고 기획해 운영하거나 소속된 예술단체를 홍보하고, 단체 운영에 대해 조언을 하는 등의 활동을 펼친다. 노인을 위한 라이브 공연이나 디제잉이 준비된 ‘클럽의 밤’(Club Nights)이나 기타, 드럼, 키보드 등의 악기 레슨, 도시의 문화유산과 특색있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버스 투어 등 자체적인 행사나 축제를 계획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노인 인식 개선에 노력하는 미술관
맨체스터시의 고령친화적 문화 프로그램을 논할 때 휘트워스 갤러리(Whitworth Gallery)를 빼놓을 수 없다. 휘트워스 갤러리는 맨체스터 시의회가 주도하는 ‘고령친화도시 맨체스터’ 사업의 파트너다. 1889년 설립된 이후 19세기 맨체스터가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첫 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휘트워스 갤러리는 교육 및 사회 기관의 역할을 맡게 됐다. 2007년부터 맨체스터시의 노인들을 위해 보건‧복지 분야에 예술을 접목하는 ‘문화 제공 프로그램’(Cultural Offer programme)을 운영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인들과 함께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
휘트워스 갤러리의 프로그램은 2018년에는 주한영국문화원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문화접근성 향상 미술관 교육 워크숍’에서 영국의 우수 사례로 소개된 바 있다. 주한영국문화원의 ‘한‧영 참여예술 자료집’에 따르면, 갤러리의 예술 프로젝트 ‘비욘드 디멘시아’(Beyond Dementia)에 참여한 치매 환자들은 예술 작품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진 뒤 실제로 작품을 창작해냈다. 이 작품들은 전시회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
휘트워스 갤러리의 고령 친화 프로그램은 워크숍이나 예술 참여 프로젝트뿐 아니라 리서치, 간행물을 통해서도 이뤄졌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프로그램에 잘 참석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남성 노인의 문화 활동을 위한 핸드북’(Handbook for Cultural Engagement with Older Men)을 제작하거나, 치매 환자와 간병인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아트 센스’(Art Sense)를 개발하는 식이다.
에드 와츠 휘트워스 학습‧참여 팀장은 2018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아트 센스 앱에 대해 설명하며 “요양사들과의 면담이나 치매 환자와 대화하거나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좋은 도구임을 깨달아 이를 활용하고자 했다”라며 “젊을 때에 섬유 산업에 종사하던 노인이 아트 센스 앱을 실제로 활용해본 뒤 디지털 방식으로라도 섬유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 좋아했다”고 전했다.
늘 그곳에 있지만 보여주는 모습은 늘 다르다. 갈 때마다 바닷빛은 새롭고 숲은 바람결의 맛이 또 다르다. 섬 전체가 여행길이고 단 한 군데도 빠뜨릴 수 없는 천혜의 경관이다. 섬 속에 딸린 자그마한 섬들이 또한 볼거리이고, 유구한 세월이 담긴 생태 숲과 치유와 명상의 숲도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소소한 힐링 코스와 제주의 자연을 간 김에 모두 마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적당히 게으른 여행이 제맛이므로.
제주는 서부권과 동부권으로 나뉜다. 동서남북으로 빙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우왕좌왕할 수도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여유롭게 힐링하려면 동선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걷기 좋은 길을 다 욕심낼 일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다 먹을 수도 없다. 에너지를 막 쓸 나이도 아니고, 2~3일 정도 제주의 바람결 따라 몸을 옮긴다. 이번엔 제주 서쪽이다.
은빛 일렁임, 새별오름
제주 애월의 평화로를 달리다 보면 봉긋하게 삼각형으로 솟은 동산이 눈에 들어온다. ‘와~ 제주구나’ 이런 생각이 확 드는 순간이다. 얼핏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서 제주는 바다를 먼저 떠올릴 수 있으나, 이제는 이렇게 억새가 반짝이는 오름이나 둘레길이 제주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제주 서부 중산간 오름 지대의 저녁 하늘에 샛별처럼 외롭게 서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도 예쁜 새별오름이다. 해발 519.3m라고는 하나 경사를 겁낼 정도는 아니다. 굳이 정상까지 꼭 가야 할 일도 아니고. 오름길에 억새의 숲을 마음껏 누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산 위로 오르면 분화구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여럿임을 비로소 보게 된다. 멀리 한라산과 비양도도 볼 수 있으며 상쾌함의 절정이다. 탁 트인 새별오름의 전망과 바람결에 은빛 털북숭이처럼 일렁이는 억새 물결의 군무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오름에 올랐으니 잠깐 머무르면서 실컷 바람을 맞아야 제맛이다.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제주의 대표 축제인 들풀축제가 열리는 장소가 이곳 새별오름이다. 여행 기간이라면 꼭 경험해볼 만한 축제다.
제주의 건축 기행, 방주교회와 본태박물관
여행 중에 찾아가는 전시장은 유난히 행복감을 준다. 이런 여유로움이라니… 하면서 말이다. 그뿐 아니라 다니다 보면 비가 오거나 악천후를 만날 때가 없으란 법 없다.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이럴 때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이 설계한 방주교회, 실내와 실외가 각기 다른 공간이 아닌 함께 어우러지는 건축 예술의 멋을 보게 된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지어진 신비로운 건축물이다. 물 위로 교회가 떠 있고 노을이 담기기도 하는 시각적인 묘미를 보여준다. 이런 독특한 풍경으로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실내를 들여다보면 개인 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조용하고 신성한 시간 속의 여행이다. 교회 옆으로 수(水)·풍(風)·석(石) 뮤지엄, 포도호텔도 들러볼 만하다.
중문 위 중산간에 위치한 본래의 형태를 뜻하는 본태박물관, 건축의 철학자라 일컫는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건축이다. 제1전시관 한국 전통 수공예품, 제2전시관 현대 예술 작품 등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푹 빠진다. 공간들이 얽힌 듯 미로 속을 걷는 듯하다. 잠깐씩 길을 잃을 뻔했다. 파격적인 느낌의 공간과 복잡하게 연결된 길에서 알 수 없는 느낌에 빠져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 기왕이면 조금 공부하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으로 제주 동쪽 섭지코지의 글라스하우스와 유민미술관도 특별하다.
자연 친화적 건축 속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질 만하다. 저지리의 현대미술관과 공공수장고, 승효상 건축가의 추사관이나 미스터밀크, 정기용 건축가의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조민석 건축가의 오설록 티 뮤지엄 다도 체험관, 박현모 건축가가 지은 애월의 빵집 ‘버터 모닝’ 등. 제주 섬의 자연과 멋스럽게 어우러지는 다양한 건축물 덕분에 제주의 건축 기행이 따로 있을 정도다.
길에서 만난 평화 순례자의 교회, 명월국민학교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라는 순례자의 교회는 올레길 13코스에 위치한다. 덥거나 추울 때, 마음이 외로울 때 한경면 외딴집처럼 저편에 예쁜 교회가 보일 것이다. 신앙인이 아니라 해도 고개 숙여 좁은 문을 통과해 한 번쯤 쉬어갈 수 있도록 제주의 벌판에서 기다리는 듯하다. 여행 중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 3평 남짓의 작은 기도처에서 조용히 묵상에 잠겨 평안히 머물다 나올 수 있다.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잠시 기도하고 차분히 비워내고, 작음이 주는 커다란 느낌도 담아올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명된 지 오래지만 여기는 명월국민학교다. 이미 폐교한 지 30년이라고 했다. 명월리 마을회가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여행자들에게 그 옛날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장소로 만들어냈다. 삐걱대는 낡은 복도 바닥을 밟으며 걸어 들어간 교실은 아기자기한 소품 갤러리가 되었고, 색다른 분위기의 카페가 되었다. 너른 운동장에는 앞마당에서 뛰어놀듯 아이들은 자유롭고 어른들은 추억을 더듬는다. 이곳의 운영 수익은 마을에 환원되어 마을 발전 기금으로 쓰인다.
낙천 아홉굿마을의 의자공원
여러 가지 의자들로 공원을 이룬 곳, 예쁘고 신기하고 다양한 의자들이 무수하다. 앉아보거나 쉬기도 하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새 오래 머물게 된다. 올레길 13코스 중간 지점의 의자공원은 아홉 개의 샘이 있다 하여 아홉굿마을로 불리는 곳에 자리한다. 천 개가 넘는 의자에 앉아 바쁘거나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시간이다.
이윽고 한낮의 햇살이 옅어지며 뉘엿뉘엿 하루가 저물 때. 협재해수욕장을 옆으로 끼고 차귀도를 향해 달린다. 옛날 송나라 호종단이라는 사람이 제주 땅의 지맥을 끊기 시작했는데, 차귀도의 지맥과 수맥을 끊어놓고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 날쌘 독수리가 이들이 탄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섬이다.
저무는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이날따라 조금 이르게 해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조금 더 가야 하는데 3, 4분 정도 늦게 차귀도 해안에 들어선 까닭이다. 도중에 어디든 무조건 내려서 바닷가로 뛰어 내려갔더니 이미 중간쯤 해가 떨어지고 있다. 밤낚시에 몰두한 강태공은 낚싯줄을 던지고, 잔잔한 바다 위로 고깃배가 지나가는 풍경이다. 멈춰 서서 넋을 잃을 수밖에.
적당히 드리운 구름과 고요함 속으로 일몰이 진행되는 중이다. 하늘과 바다가 순간순간 달라진다.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이 바다에 닿을락 말락 한다.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숨죽여 보다가 오메가 현상을 이루는 경이로운 찰나를 맞는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제주의 차귀도에선 이런 벅찬 순간을 기대할 수 있다.
경기도 안산이냐, 서울 마포냐, 단원 김홍도의 고향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고증이 없어 미지수다. 그런데 단원이 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단서가 있다. 안산은 18세기 조선 예원(藝苑)의 총수였던 표암 강세황이 30여 년을 머문 고장이다. 표암의 시문집 ‘표암유고’에 단원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가령 ‘단원은 젖니를 갈 때부터 나의 집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일찍이 맺어진 표암과 단원의 사제 인연은 길게 이어졌다. 단원을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 일컬은 이도 표암이었다. 정황이 이러니 안산 사람들은 뿌듯하다. 안산의 풍토와 풍정이 표암의 가르침과 함께 단원을 거목으로 길러냈다고 보기에. 안산시가 김홍도미술관을 만든 연유가 완연하다.
김홍도미술관은 안산시 외곽 노적봉 기슭에 있다. 야산 치맛자락을 거머쥔 형국이다. 노적봉 산책과 미술 관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입지다. 건물은 모두 네 동. 현대미술전이 펼쳐지는 1•2관, 단원콘텐츠관인 3관, 그리고 아동들을 위한 상상미술공장으로 구성했다. 너른 뜰엔 조각 작품도 많다. 전체적으로 독특할 것 없는 구색이지만 미술 작품으로 얼마든지 활갯짓할 수 있는 공간이라 훤칠하다. 뒷산의 수목들은 제법 울창해 조연으로 손색없다. 산기(山氣)를 싣고 스쳐가는 청명한 바람과, 연달아 착륙하는 햇살의 대열도 도회를 벗어난 관람객에겐 반가운 작품이다. 미술관 입구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단원콘텐츠관으로 들어간다. 이렇다 할 꾸밈과 치레 없이 간결한 전시관이다. 김홍도미술관의 핵심 공간이다. 단원의 광활한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기획한 콘텐츠 전시가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년 김홍도, 노적봉에서 세상을 담다’전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안산에 있었던 단원이라는 이름의 숲과 서호(西湖) 바다를 모티브로 한 전람회로, 단원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안산의 옛 풍경을 상상해보게 하는 전시회다. 어물 장수나 고기잡이 풍속을 그린 단원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단원이 교유한 표암, 심사정, 최북의 작품도 있다. 단원의 예술 정신을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낸 애니메이션과 미디어아트도 등장해 볼거리를 확대했다. 안산의 고지도를 전시한 건 관객을 과거의 안산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일 테다.
흥미롭기론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다. 아집도? 아집은 아회(雅會)와 같은 말로 묵객들이 모여 시와 술을 나누며 노니는 야유회다. 그걸 그린 게 아집도다. 즉 ‘균와’라는 산골짝에 화가 여럿이 모여 소풍을 즐기는 광경을 그린 게 ‘균와아집도’다. 때는 1763년 4월. 봇물처럼 터진 춘색이 영롱해 어지러웠으리라. 봄꽃 필 때 묵객은 유난한 ‘심쿵’으로 설렌다. 산야에서 작당해 꽃과 더불어 한잔 아니 마실 수 없다. 모인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그림 상단 오른편에 쓰인 발문에 다 나온다. 보자.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 강세황이다. 그 곁엔 어린 김덕형이 있다. 담뱃대를 물고 앉은 이는 현재 심사정이다. 차건을 쓰고 바둑을 두는 이는 호생관 최북이며, 퉁소를 부는 사람은 단원 김홍도다.’
등장인물 모두 안산과 연이 깊었더란다. 다들 일세를 풍미한 거장이다. ‘균와아집도’는 조선 후기 묵객들의 놀이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원이 퉁소를 불고, 강세황이 거문고를 탔으니 고급스러운 피크닉이다. 일행이 한자리에 모여 그린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이채로워 우뚝하다. 학자이자 서화가인 허필이 쓴 발문의 귀띔에 따르면 그림의 전체 구도를 잡은 건 표암이다. 능란한 필치로 휘늘어진 솔과 옹골찬 바위를 그려 담황색을 입힌 건 심사정과 최북이다. 당시 19세였던 단원은 가는 붓을 날렵한 속필로 휘저어 인물들을 묘사했다. 10대 청년이던 단원이 대가들과 어울려 붓을 적셨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단원의 예술적 기량이 일찍부터 수승한 것이었음을 알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쉬운 건 전시장에 나온 작품 전부가 영인본이라는 점이다. 애초 단원의 진본 작품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으나 빗나갔다. 단원의 현존하는 그림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파악하기 어려운 개인 소장 작품을 빼더라도 300점이 넘는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이 다수를 소장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신선의 무리를 그린 ‘군선도 병풍’(群仙圖 屛風, 국보 제139호)을 소장했다. 안산시도 7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김홍도미술관이 2년마다 펼치는 진본 기획전을 통해 공개된다. 2021년엔 ‘표암과 단원’전을 열어 진본들을 전시했다. 진본 가운데 ‘공원춘효도’는 조선 후기 과거시험장의 풍속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료(史料)로 평가된다.
신기루처럼 미묘한 매화를 그려
단원 김홍도는 조선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이름을 들날린 화가다. 그의 돛을 밀어준 건 표암이었다. 인생의 눈을 트이게 하고 예술의 길을 열어준 이가 표암이었다. 단원을 궁중 화가로 천거한 이도 표암인데 단원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표암이 괜한 선심을 베풀었으랴. 그는 일찌감치 단원의 됨됨이와 천재성을 발견했다. 단원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용을 보았다. 표암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써 단원을 극찬했다.
‘단원의 화풍은 새로워 개벽을 이룰 정도다.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신기하다고 저마다 부르짖었다. 그림을 구하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단원이 잠을 자고 밥을 먹을 겨를이 없을 지경이다.’
나는 모자라 단원에 대해 아는 게 드물다. 그럼에도 김홍도미술관을 관람하며 그의 아우라가 허공에 감도는 것 같은 환(幻)을 느낀다. 전시작이 많지 않아 단원이 항해한 예술의 바다에 풍덩 빠졌다 나온 기분을 맛보긴 어렵다. 다만 단원의 옷깃에 살랑대는 실바람 한 오라기를 움켜쥔 느낌이다. 생각나는 건 언젠가 화첩에서 본 단원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가 불러일으킨 쓸쓸한 정취다.
주상관매라, 배 위에서 매화를 보다! 단원은 매화 마니아였다. 매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매화를 가슴에 담았으니 생애엔 매향이 난분분? 단원은 부끄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주상관매도’의 매화는 어이 아득한 허공에 떠 우련한가. 백일몽처럼, 신기루처럼 미묘한 매화를 그렸다. 천길 벼랑에 걸린 매화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엔 강물이 있지만, 뿌연 안개처럼 경계 없이 흐릿하게 그려 천하가 아득하다. 강기슭에 멈춘 조각배에 비스듬히 앉아 매화를 지켜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엔 우수가 실려 있다. 초연하다기보다 쓸쓸한 기색이 여실하다. 노경이란 외로워 매화마저 무상감을 돋운다는 걸까? 이 그림은 단원의 노년기 작품이다. 이상을 좇는 열정보다 허무의 성분이 커진 시절에 그렸다.
말년의 단원은 곤궁했다. 정조가 붕어하면서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됐다. 가세가 기울어 고달프게 살았다. 단원의 종신(終身)은 미스터리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전해오는 게 없다. 작품이야 불멸! 그가 그림 안에 가둔 자연과 인간사의 총량은 장강(長江)과 맞먹는다.
대중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전으로 전진
정미영 김홍도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와 입체파 창시자 피카소. 둘은 사제지간이었다. 마티스는 일찍이 피카소의 천재성을 읽어 지지와 조언을 했고, 피카소는 마티스를 평생 따랐다.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 이 조선의 커플 역시 사제지간으로, 예술적 동지로, 지음(知音)으로 평생 교유했다. 정미영 김홍도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의 얘기는 이렇다.
“복 중의 복은 인연 복이라 하는데, 단원이 표암 강세황을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으니까. 작품 하나를 완성하면 단원은 흔히 표암에게 먼저 보여줬고, 표암은 강평을 해주었다.”
단원이 표암으로부터 화풍의 영향도 받았나?
“단원이 그 누군가에게 화풍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흔적은 없는 걸로 알려졌다. 표암은 정신적 스승으로서 단원을 북돋았던 셈이다. 단원은 천재였다. 게다가 못 말릴 노력파였다. 부단한 노력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던 거다.”
단원은 풍속화가로 알려졌다. 그의 풍속화에 나타난 사회의식도 호감을 산다.
“안산시가 소장한 단원의 진본 7점 중 하나인 ‘공원춘효도’에도 사회의식이 드러난다. 과거제도에 만연한 부정행위를 풍자한 그림이니까. 단원의 풍속화는 30대 초반에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 그러나 단원의 작품 스펙트럼은 훨씬 드넓다.”
표암과 더불어 정조 임금 역시 막강한 스폰서 역할을 함으로써 단원의 순항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대체로 단원이 표암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됐다고 보더라. 그런데 단원의 출중한 재능을 알아본 정조가 대단한 후원을 했다.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단원이 주장하도록 하라’고 할 정도였다. 궁중 화가로서 단원은 일종의 공공그림을 그렸으나 퇴근 뒤엔 자기 그림을 그렸다. 단원의 집 문간엔 그림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루었다고 한다.”
단원의 성향을 알 만한 일화가 있다면?
“풍류에도 일가견 있는 단원이었다. 특히 매화 사랑이 지극했다. 언젠가 한번은 단원의 그림을 원하는 이가 찾아와 작품값으로 3000전을 내놓고 갔다. 단원은 그중 2000전으로 매화를 사고, 800전으로는 술을 사 친구들과 매화를 즐기며 대작했다. ‘매화음’(梅花飮)이라는 이름의 술자리였다. 결국 남은 돈은 200전뿐이었는데, 이걸로 쌀과 장작을 사 집에 들였으나 하루 땟거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인(中人, 양반과 평민의 중간 계급) 출신인 단원의 신분 상승 욕구도 정진의 발판이었던 것 같은데.
“선비가 되고 싶은 마음, 선비정신의 정상에 선 삶을 갈망하며 끝없이 노력했다. 말년에 그린 ‘포의풍류도’에 이와 같은 지향이 드러난다. 문방사우와 악기 등 갖가지 기물과 선비의 모습 등을 그린 작품이다.”
‘포의풍류도’에는 이런 화제를 붙였다.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집에 살지만,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시가나 읊조리며 살고자 한다.’ 단원의 유토피아가 구현된 그림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말년은 고단했다.
“정조가 별세하면서 단원의 고난이 시작됐다. 아들의 월사금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으니까. 그러나 선비다운 태도는 끝까지 지니고 살았다. 이게 단원의 빛나는 정신이지 않을까?”
인파와 소음이 들끓는 서울에서 조용한 휴식 공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편리와 매력도 많지만, 불편과 불안도 많은 게 도회다. 충분히 감정 이입할 만한 여가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점에 앉아 소주병을 쓰러뜨리는 걸로 위안을 삼는 게 고작이다. 대도시에 산다는 건 사실 부담스럽다. 뭐 좀 재미있는 곳이 없을까? 기대어 쉴 만한 언덕이 없을까? 이런 자문을 할 때 떠오르는 게 미술관이다. 수족관에 갇혀 주둥이를 뻐끔거리는 붕어처럼 따분한 일상에 재미와 생기를 부여하는 게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노원구 중계동 중계근린공원에 있다. 공원 안에 있어 초록을 입은 미술관이다. 초록의 향연까진 아니지만 공원 녹지에서 흘러나온 초록 물이 밴 양, 외관 곳곳이 풀빛으로 청신하다. 이 미술관은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반면 문화 인프라가 빈약한 서울 동북권의 건조한 공기를 보완하기 위해 세워졌다. 예술을 만나라고, 미술과 교제하라고, 그렇게 해서 지루한 일상에 고소한 양념 같은 별미를 가미하라고 개관했다.
미술관 건립 때엔 숙고가 많았다. 공원 한편에 정해진 부지에다 어떤 형태의 건축물을 지어 공원과 좋은 관계를 맺을지 고민했던 것. 수목들 늘어선 공원 풍경과 겉도는 형상의 미술관 건립만큼은 삼가야 했다. 그러잖아도 작은 공원의 면적만 축소시키는 역효과를 불러들일 수 있어서였다. 주민들의 쉼터인 기존 공원의 가치를 해치지 않을 아이디어 고안이 필요했다. 즉 독립된 개체가 아닌 공원의 일부로 녹아드는 건축이 요구됐던 거다. 이렇게 해서 동산 형태의 독특한 미술관 건물이 출현했다.
사실 북서울미술관은 특이한 생김새로 일단 한몫을 한다. 보고 또 보고. 시선이 저절로 간다. 무심코 지나치기 힘든 형상이다. 원래 여기에 있었던 언덕을 파고 들어간 묘한 건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애초 평지였던 지형에 상자를 중첩한 형태의 건물을 짓는 한편, 인위적으로 언덕을 만들어 외벽을 빙 둘렀다. 무감동한 수직 벽과 창이 있을 자리에 솜씨 좋게 언덕을 구현했다. 언덕엔 잔디를 심어 녹지대를 연출했다. 계단을 설치한 여러 갈래의 동선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언덕길은 자연스럽게 공원 산책로와 이어진다. 딱히 미술관에 볼 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미술관을 공원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공원은 미술관을 통해, 미술관은 공원을 통해 상호 증식한다.
서울시는 2013년 ‘건축상 대상’을 북서울미술관에 주었다. 수준 높은 디자인과 시공 완성도를 인정해서였다. 설계자는 건축가 한종률. 그는 ‘과거의 흔적과 미래가 공존하는 건물을, 자연 친화적 건축을 설계해 왠지 가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건축을 기술적 영역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얘기도 했다. 창의력과 사회에 대한 윤리를 갖춘 장인정신의 산물로 보라 했다. 말하자면 공공성을 지닌 예술 장르의 하나로 건축을 보는 눈을 주문한 셈이다.
미술 작품은 빤한 생각과 진부한 감상으로는 나올 수 없다. 뛰어난 작가의 세계관과 상상력은 중력을 거슬러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보이지 않는 걸 보여주고, 넘어설 수 없는 걸 넘어서는 게 미술이다. 창작으로 세상의 허구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게 작가다. 그들의 작품은 그래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한다. 또는 한계를 초월해 비상하는 우주선처럼 전위적이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을 모아둔 미술관 건물은 어딘가 좀 다르면 다를수록 구색이 맞는다. 세상의 배후에 관한 뉴스를 탑재하고 지상에 착륙한 소행성. 또는 감각의 제국. 미술관을 이렇게 읽으면 과한 공상일까. 아무려나, 미술관 건물은 밋밋하지 않을수록 미덕이다. 북서울미술관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을 덜 낡은 쪽으로 운행하려면
미술관 로비로 들어선다. 널찍한 공간이라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다소 휑하지만 조도를 낮춘 조명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일부 벽면의 창과 천창으로는 자연광이 들이친다. 하얀 칠을 입힌 벽과 층계 등 구조물들이 지닌 면과 선이 다양하게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기하학적 디자인 효과엔 방점을 찍을 만하다. 전시실은 1, 2층과 지하에 있다.
걸음을 옮겨 지하 1층에 있는 어린이갤러리로 내려간다. 이곳은 3개 층을 수직으로 개방해 천장 높이가 무려 17m다. 북서울미술관은 아이들을 중시한다. 아이들의 본성과 눈높이에 맞으면서 품격마저 구비한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인간인 아동들에게 미술 체험 기회를 부여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고 봐서다. 이번 가을, 어린이갤러리에선 ‘서도호와 아이들 : 아트랜드’전이 열렸다. 백남준, 이우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서도호는 두 딸과 함께 점토로 만든 ‘아트랜드’를 선보였다. 관람객으로 온 아이들은 이 ‘아트랜드’를 기반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아트랜드를 집단 창작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동식물이 사는 신비하고 복잡한 생태계를 저마다의 솜씨를 발휘해 하나하나 조형했다. 전시 기간이 끝날 쯤엔 귀엽고 아름다운 대형 설치 작품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신바람 났으리라. 관람객이자 공동 창작자로서 설치 작업에 나서는 일이 흔할까 보냐. 점토를 조몰락거려 미술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뚫고 올라오는 꽃처럼 활짝 피어난 건 상상력이었을 테다. 빙의와도 같은 도취의 순간도 경유했겠지. 어린이 특유의 선입견 없는 자유분방으로 즉흥과 충동과 날것의 감정을 표출하며 즐겼을 것이다. 이 아이들 속에서 훗날 피카소가 나올 수도 있다. 사람은 어쩌면 태어날 때 이미 예술가다. 성장하면서, 속세의 일원으로 각질을 두르면서 예술을 잃어갈 뿐이다. 그렇기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술 체험이 필요하다. 자유의지와 상상력의 보유 기간을 늘려 삶을 조금이나마 덜 낡은 쪽으로 운행할 수 있어서다.
미술관에서 누리는 휴식은 즐겁다. 싱겁고 머쓱한 일상에 의미와 재미를 붙여준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관점을 비트는, 가령 전복과 파격을 담은 콘텐츠에 관객은 흥미와 동요를 느낀다. 미술관들은 이를 고려해 전시기획에 나선다. 북서울미술관이 펼친 특별한 전람회가 많다. 2017년부터 매년 개최한 ‘유휴공간 프로젝트’ 역시 인상적이다.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하는 관습을 깨는 프로젝트다. 지하주차장 외진 벽면, 물품보관함 작은 창문, 카페 주방 등 뜻밖의 장소에 작품을 숨기듯 슬쩍 갖다놓았다. 무대와 배경을 뒤바꿨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걷어냈다. 삶에 도입해볼 만한 역설적 상황에 흥미가 동한다.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전으로 전진
백기영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북서울미술관은 미술을 좋아하는 주민들에게 보다 풍성한 향유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렇다면 미술을 낯설어하는 이들에겐? 미술관에 접근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제시해 포용한다. 이를테면 미술관에 큰 관심 없는 시니어들을 유도하기 위해 ‘청춘극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영화를 상영한 것. 영화 관람 후 자연스럽게 미술 전람회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백기영 운영부장의 얘기는 이렇다.
“‘청춘극장’의 인기가 꽤 높았다. 한 해에 1만 명 이상이 영화를 관람했다.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영화 관람과 미술 전시회 감상이 잘 연결되지는 않았다. 고민하고 있는 대목이다.”
젊은 층 관람에는 어떤 경향이 있나?
“과거보다 진지하게 관람하며 미술을 즐길 줄 아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미술관 체류 시간이 길어졌고, 미리 전시 작가 정보를 찾아 사전지식을 지닌 채 작품과 만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매우 긍정적인 추세 변화라 본다.”
그간 북서울미술관이 펼친 주요 전시회를 꼽는다면?
“2019년에 열린 ‘한국 근현대 명화전’을 꼽을 수 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 근현대 미술 대표 작가 30여 명의 작품을 전시해 성황을 이루었다.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빛 :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도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심혈을 기울인 전시회였다. 최고의 예산을 투입했으며, 3년여에 걸친 준비 기간을 갖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화 관람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한 전시회였다.”
북서울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에 딸린 미술관 중 하나로 2013년에 개관했다. 아직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는 관람객이 크게 늘었다. 클로드 모네, 윌리엄 터너, 제임스 터렐 등 거장 43인의 작품 다수를 보여준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의 성황은 물론, 양질의 기획전을 꾸준히 펼쳐 거둔 성과다.
어린이들이 공동 창작자로 참여한 ‘서도호와 아이들 : 아트랜드’전이 인상적이다. 어린이 미술 교육 콘텐츠를 가동하는 미술관은 많다. 그런데 ‘아트랜드’전은 새롭다.
“기존 어린이 프로그램은 다분히 소비적이고 획일적이다. ‘아트랜드’전은 아이들에게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부여했다. 미술관은 화가들의 작품을 구경하는 곳이라고만 알았던 아이들에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스펙터클과 기괴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 전체를 상상하며 코끼리를 만들어내는 식의 조형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발현된 창의성과 상상력이 그들의 삶을 움직이는 하나의 관습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서도호 작가에게도 이런 유형의 이벤트는 처음이라지?
“새로운 시도였고 성과는 커서 서도호 작가에게도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미술관으로서도 어린이 프로그램 기획의 전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더 있다. 해외 미술관에서 ‘아트랜드’전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아마도 이게 확산될 것 같다.”
아이들이 만든 설치 작품은 이제 어떻게 되나? 수장고로 들어가나?
“우리 미술관에 영구 소장하면 좋겠지. 그러나 영구적인 재료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고민 중이다. 안전한 소장이 가능한 특정 장소를 모색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출현한 팔복예술공장은 여느 문화 공간과 달라 새롭고 재미있다. 무의미하게 보였던 폐공장에 다양한 버전의 예술을 입혀 의미를 돋우었다. 퇴락을 거듭해 지붕조차 없이 골격만 남은 건물들은 그 자체로 예술품에 맞먹는다. 무너져가는 힘으로 간신히 지탱해온 사물들의 우중충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퇴적된 시간의 드라마틱한 웅얼거림이 있어 감흥을 야기한다. 변재선 기획운영팀장에 따르면 팔복예술공장은 아예 태어나지 못할 뻔한 상황을 경유했다.
“처음엔 폐공장을 싹 부수고 문화공원을 조성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 향유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 고민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다행히 후자가 채택되었다. 건물을 해체하기보다 활용해 동시대 예술의 창작과 실험을 할 수 있는 예술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재생사업 이전 폐공장 모습은 어땠나?
“거의 폐허였다. 처참했다. 일부 쓸 만한 건물은 산업체들이 빌려 쓰고 있었다.”
초기의 조성 과정에선 신중한 고려가 많았다지?
“서둘러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예술공장의 콘셉트를 설정하기 위해 지역 예술가들과 빈번하고 심도 있는 논의부터 선행했다.”
A동의 경우 빨간색으로 단장한 외관으로 인해 폐공장의 모습이 외려 감춰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변형을 더 자제했어야 하지 않을까?
“실용성과 기능성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보완을 했을 뿐이다. 가급적 원래 건물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게 총괄감독 황순우 건축가의 지향이었다. 페인트칠은 방수를 위해 불가피했다. 건물 내부 역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정도의 보완에 그쳤을 뿐이다.”
B동 구역이 인상적이다. 폐건물의 원형 그대로를 볼 수 있어서.
“1980년대 건물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관람객의 관심을 사는 공간이다. 골격만 남은 폐건물도 좋은 볼거리가 된다는 걸 인식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
B동 일원엔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예술을 놀이로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을 조성했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요즘 미술관들은 어린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환심을 끌어내기 위해 양질의 전시회를 기획하는 건 물론, 미술관 일부를 통째 예술 놀이터로 제공하는 것. 팔복예술공장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닌 셈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교육의 중요성과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북돋울 수 있는 게 예술이니까.”
개관 이후 4년이 흘렀다. 관람객은 늘어나고 있나?
“전시 작품 교체기를 제외하고 쉼 없이 전시회를 펼쳐왔다. 관람객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 이젠 팔복예술공장의 인지도도 매우 높아졌다. 우리는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입주 작가 공모 때 경쟁률이 17:1이나 된다.”
관람 포인트를 말한다면?
“A동으로 입장해서 전시 작품을 관람하고 카페 ‘써니’에서 휴식을 취한 뒤, B동과 외부 경관을 즐기는 게 좋겠다. 대왕참나무 등으로 조성한 정원을 거닐며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도 있고.”
변재선 팀장은 A동 카페에 설치한 대형 인형 ‘써니’를 팔복예술공장의 시그니처 조형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