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뉴욕 911 메모리얼파크, 체르노빌 원전사고 지역 등은 연간 수백만 명이 다녀가는 세계적인 명소다. 같은 장소라도 눈으로만 보는 관광에 치중하기보다는 비극의 역사를 조명하고 마음에 되새긴다면 다크 투어리즘의 교훈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우리 역사와 연관됐거나 인접한 지역이라면 그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난다. 이에 착안한 해외 다크 투어리즘 스폿 두 곳을 소개한다.
[1] 독일: 베를린,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다
분단의 상처를 지녔다는 점에서 독일은 한국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그런 독일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조물이 바로 ‘베를린 장벽’이다. 이 베를린 장벽 동쪽에 조성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는 1990년 전 세계 예술가들이 참여한 100여 점의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얼핏 보면 장난스러운 그림들 같지만 저마다 아픔과 희망, 평화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관광객들은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그림 속 포즈를 따라 하는 등(특히 ‘형제의 키스’가 유명하다) 야외 갤러리를 즐긴다. 다만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반달리즘의 영향도 적지 않아, 2009년부터는 복원과 보존을 위한 작업을 병행 중이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멀지 않은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에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유대인 대학살 추모공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을 기리는 공간으로, 추모의 의미로 각기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 비석 2700여 개를 조성했다. 미로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비석 위에 걸터앉거나 눕는 등 자유로운 모습이다. 경건함과는 거리가 먼 행동으로 보이지만, 오랜 시간 머물며 역사를 되새기게끔 몇몇 비석의 단을 의도적으로 낮췄다고 한다. 때문에 (무덤도 아닐뿐더러) 에티켓에는 어긋나지 않는다고. 그밖에도 독일은 ‘발길 닿는 곳곳이 다크 투어리즘 스폿’이라 할 정도로, 거리마다 역사를 기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소가 즐비하다.
[2] 일본: 나가사키, 원폭의 잔해로부터 참상과 마주하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이나 피복 중심지를 뜻하는 용어다. 최근에는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그라운드 제로’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원폭) 피복 지점을 가리키면서였다. 당시 1945년 8월 12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일본은 9월 2일 정식 항복했다. 전쟁은 종료됐지만, 원폭으로 인한 고통과 상흔은 오래 남았다. 그 참상을 기록하고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바로 나가사키 원폭낙하중심지공원과 평화공원 그리고 원폭자료관이다.
원폭낙하중심지공원 한쪽에는 피복 당시 지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고열로 녹아내린 유리병이나 식기 등이 눈에 띈다. 인근 원폭자료관에는 폭격 당시 피해를 실감케 하는 자료들이 보관돼 있다. 공원과 자료관 사이에는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도 보인다. 당시 사망한 조선인은 1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낙하중심지의 북쪽 언덕에는 평화공원이 조성됐다. 전쟁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세계 평화를 위한 소망이 담겼다. 한편 한국인으로서는 원폭을 계기로 해방과 독립을 맞았기에, 참상의 잔해를 마주할 때 마음이 불편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을 잘 소화하고 곱씹어보는 과정도 중요하다.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시공간을 넘어 다크 투어리즘이 주는 교훈이다.
유형별 해외 다크 투어리즘 스폿
ㆍ전쟁 일본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미국 게티즈버그 국립군사공원, 베트남전쟁박물관, 태국 칸차나부리 국립묘지, 하와이 USS 애리조나 국립기념관 등
ㆍ항쟁·학살 체코 바츨라프 광장, 사이판 만세절벽, 캄보디아 투올슬랭 대학살박물관, 중국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아르메니아 인종학살추모관 등
ㆍ노동 역사 세네갈 고레섬, 노르웨이 산업노동자박물관, 영국 셀라필드 원자력단지, 프랑스 노르파드칼레 광산,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소금광산 등
ㆍ재난·재해 일본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파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 지역, 미국 시애틀 언더그라운드 투어, 아일랜드 타이타닉 벨파스트 박물관 등
ㆍ격리·수용 싱가포르 창이교도소와 박물관, 미국 알카트라즈 감옥,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 호주 교도소 유적,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벤섬 등
어느 날 저녁, 독일 친구와 자동차로 송파 지역 올림픽대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와~우, 와~우”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자동차 속도를 줄이라고 했다. 주변엔 빌딩도 없고 캄캄하기만 했다. 친구는 자동차 앞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금 탄성을 질렀다. 그곳엔 대형 조각 예술품이 마치 깊은 산 한가운데서 환하게 조명을 받은 듯 우뚝 서 있었다. 바로 올림픽공원 입구에 세워진 ‘세계평화의 문(World Peace Gate)’이었다.
1970년대에 해외 생활을 하다 귀국해 ‘삼일빌딩’을 처음 봤을 때의 일이다. 어느 건축가의 작품인지 궁금해 알아보니 건축가 김중업(金重業, 1922~1988)의 것이었다. 일반적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특이한 모양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을 설계한 바로 그분. 그런데 그 명성에 비해 ‘프랑스 대사관’에 대한 대중적 평판은 마치 상여(喪輿)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꽤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더욱더 선생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국내 건축가 1세대에 속하는 선생은 1941년 일본 요코하마공고(橫浜高工) 건축과를 졸업한 후, 1949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1952년 프랑스 파리로 옮겨 1956년까지 세계적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 연구소에서 일했다. 귀국한 뒤에는 홍익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로드아일랜드 건축대학에서 교직을 맡으며 왕성한 건축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선생의 경력에서 눈여겨볼 것은 바로 ‘르 코르뷔지에’다. 프랑스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자랑하는 르 코르뷔지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그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은 훗날 거의 예외 없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였다. 그중 하나가 도쿄의 우에노(上野) 국립서양미술관 건물이다.
그러나 ‘르 코르뷔지에’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1955년에 지어 세상을 놀라게 한 프랑스 동부의 롱샹(Ronchamp) 성당이다. 대형 조각 예술품과도 같은 성당 건물은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밑그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중업 선생의 작품에서 스승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삼일로 빌딩은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가로 함께 참여한 뉴욕의 유엔본부 빌딩과 유전인자를 공유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제자 김중업과 스승 르 코르뷔지에의 아름다운 연결 고리라고나 할까.
1986년 아시아 올림픽 대회 개최 즈음에 세워진 ‘세계평화의 문’은 선생의 마지막 작품이다.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이고, 서양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정취가 뿜어 나온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門’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다. ‘세계평화의 문’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그 예술성과 과감한 크기에서 발산하는 독보적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런 예술작품이 우리 생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필자는 자랑스럽고 한편으론 행복하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사랑해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세계인의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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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前 회장, 간송미술재단 이사.
Bravo My Life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 B는 정체성과 장점을 말하는 Brand, M은 부의 원천이자 수단인 Money, L은 생활과 문화를 아우르는 Life입니다. 하지만 B는 삶의 균형을 꾀하는 Balance일 수 있고 M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Manner일 수 있으며 L은 지켜야 할 원칙, 그리고 시(詩)를 뜻하는 Line일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이 칼럼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글입니다.
2015년 을미년(乙未年), 양의 해입니다. 십간(十干) 중에서 갑과 을이 상징하는 색이 푸른색이고 미는 곧 양이니 갑오년 푸른 말의 해에 이어 을미년은 푸른 양의 해입니다. 갑오년은 청마의 해라고 불렀지만 청양은 왠지 좀 어색합니다.
두 갑자(120년) 전인 1895년의 우리나라는 망국의 비극으로 치달아 가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을미년 4월 17일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더니 1주일 만에 동학혁명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이 처형됐고, 10월 8일에는 명성황후가 일제 순사와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 경천동지할 비극을 겪을 일은 이제 없겠지만,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혼란과 격변의 상황인 것은 지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나라든 개인이든 슬기로운 목표 설정, 목표 달성을 위한 정밀한 설계, 그 설계를 현실화할 수 있는 추진력과 일관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점은 어느 해인들 다를 리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1년과 장래의 삶을 위해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합니다. 푸른색은 성실·신앙·희망·믿음·신성함·책임 등을 상징하는 색이라니 신년 설계의 의미가 더욱 큽니다. 푸르다는 단어가 들어간 말은 청사(靑史), 청사진, 청산(靑山), 청신호, 청운의 꿈, 청춘 등 모두 뜻이 좋습니다. 서울교대의 정문 이름은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 따온 청람문입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청출어람에도 이렇게 靑(푸를 청)이 들어 있습니다.
羊(양 양)이라는 한자는 상서롭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자가 들어간 말은 대부분 뜻이 좋습니다. 美(아름다울 미)는 양이 크다는 글자입니다. 祥(상서로울 상), 善(착할 선) 敾(글 잘 쓸 선) 膳(반찬 선) 繕(기울 선) 犧牲(희생), 이렇게 羊은 여러 단어에 들어 있습니다. 특히 羊과 我(나 아)로 이루어진 義(옳을 의)는 1)양(재화)이 나에게(모든 이에게) 고루 나눠져야 도리이며 사회정의라는 뜻 2)양을 남들에게 먼저 먹게 하고 나는 나중에 먹는 게 도리라는 뜻, 이 두 가지로 풀이됩니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거나 망양보뢰(亡羊補牢),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거나 다기망양(多岐亡羊), 길이 너무 많아 잃은 양을 찾기 어렵다는 말은 강조하려는 메시지가 각각 다르지만 재산과 양식으로서의 양의 중요성을 잘 알려줍니다. 을미년에 잊지 말아야 할 사자성어들입니다.
이제 설계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設(설)은 베풀다, 도모하다, 일을 벌이다, 세우다, 計(계)는 셈하다, 계산하다, 헤아리다 이런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計가 없는 設은 공허하며 設이 없는 計는 무의미합니다. 건축을 예로 들면 건축주로부터 여러 조건을 의뢰받아 설계가 시작됩니다. 건축설계 과정은 일반적으로 기획설계, 계획설계, 기본설계, 실시설계, 설계감리로 나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가 나 자신이며 설계자도 나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건축주의 요구와 설계자의 능력은 내가 가장 잘 압니다. 내 삶의 건축설계 감리자도 당연히 나 자신입니다.
사람은 일이관지(一以貫之) 수구초심(首丘初心) 초심일관(初心一貫), 처음 먹은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감리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자’에는 공자가 60세가 되기까지 60번이나 생각을 고쳤다고 씌어 있습니다. 정확하고 종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걸맞은 설계를 하여 일관성 있게 추진하되 수시로 점검 수정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1월이라는 영어의 January는 야누스라는 로마 신의 이름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야누스는 앞도 보고 뒤도 보면서 성곽과 문을 지키는 두 얼굴의 신입니다. 하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인격자는 아니며 같은 얼굴로 과거와 미래, 또는 출입문의 안팎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1월은 그렇게 지난해를 돌아보고 앞날을 보며 설계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알면 알수록 그 지혜가 놀라운 인디언들은 1월을 어떻게 불렀을까? 그들은 정말 시인입니다. 여러 부족의 말 중에서 눈에 띄는 걸 꼽아 봅니다.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 바람 속 영혼들처럼 눈이 흩날리는 달, 해에게 눈 녹일 힘이 없는 달, 짐승들이 살 빠지는 달입니다. 그리고 1월은 ‘인사하는 달’입니다.
일본에서는 1월을 무츠키(睦月), 서로 왕래하며 화목하게 사는 달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1월 7일은 진지츠(人日), 이른바 사람의 날입니다. 일곱 가지 새싹을 넣은 죽에 따뜻한 맑은 장국 ‘스이모노(吸物)’를 먹으며 1년간의 무병건강을 기원하는 날입니다. 1월 1일이 로마교황청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인 것도 1월의 의미를 살리려는 취지일 것입니다(이와 별도로 유엔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은 9월 21일).
서양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New Year's resolution’을 정리합니다. 새해 설계라는 뜻이지요. 결단, 굳은 다짐을 뜻하는 resolution은 해결하다, 결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resolve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결심을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까지 하는 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새해 결심이나 설계는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결심을 하는 사람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목표에 도달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一生之計在於幼(일생지계재어유) 一日之計在於晨(일일지계재어신) 一年之計在於春(일년지계재어춘)이라고 합니다.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세우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우며 1년의 계획은 봄에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공자가 말했다는 삼계(三計)인데,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게 없고,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이 없고,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거둘) 게 없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1월은 나이로 보면 어릴 때이고 시간으로는 새벽이며 계절의 시작으로는 봄입니다. 羊과 我의 조합인 義에 담긴 양보와 배려의 메시지를 잊지 않으면서 의미 있고 현실적인 설계를 꼼꼼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복 많이 지으십시오.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