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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품에 안긴 에메랄드빛 천국 ‘몰타’
- 이름 그대로 ‘땅 한가운데’에 바다가 있다는 의미를 지닌 지중해.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한가운데 라임스톤 보석이 박힌 것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몰타(Malta)’다. 코발트빛과 에메랄드빛의 바다에 풍덩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면 부드러운 라임스톤의 세계가 펼쳐진다. 복잡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니멀리즘의 미학! 지중해는 수없이 들어본 이름이지만 몰타는 생소하다. 고작해야 제주도의 6분의 1 크기, 인구도 45만 명밖에 안 되는 나라. 이 작은 섬나라에 발을 딛는 순간, “이곳을 모른 채 살았다면 참으로 억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 섬인 몰타와 고조, 아프리카와 가장 가까운 어촌 마을 마샬슬록까지, 지중해의 진수를 만나고 싶다면 몰타로 떠나보자. 164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독특한 역사 시칠리아 섬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고요히 앉은 몰타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떠있는 탓에 영어를 공용어로 쓰게 될 줄은 생각 못했던 것 같다. 1800년부터 무려 164년 동안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64년에 독립한 몰타에는 정치·문화적으로 영국의 전통과 시스템이 많이 남아 있다.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공용어로 쓰기 때문에 여행할 때 어려움이 없으며, 한국의 어학 연수생들이 많이 찾는 나라이기도 하다. ‘월드워Z’나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한 몰타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이 나라만 찾는 여행자보다는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을 여행할 때 거처 가는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몰타의 국민 96%는 가톨릭 신자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성당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지인들의 여유로움 가득한 미소는 여행자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하다. 몰타가 바다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는 탓일까? 국민들이 보수적 성향이 강하며 가족 간 유대도 끈끈해 이혼율이 낮다고 한다. 치안과 위생도 잘되어 있다. 정직하고 깨끗한 국민성은 유럽 내에서도 손꼽을 정도다. 복지도 확실해서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눈만 마주쳐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 노부부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해가 지는 쪽을 말없이 바라보는 평화로운 모습은 몰타가 어떤 나라인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의 영화도 있지만 몰타는 이 세상에 노인을 위한 나라도 있으니 한번 와서 살아보지 않겠냐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중세로 떠나는 시간여행, 발레타와 음디나 몰타의 수도이자 7000년 역사를 지닌 요새도시 발레타는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역사지구인 동시에 유럽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수도다. 도시 전체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몰타’라는 국가명은 6개 섬 중 대표 섬인 몰타에서 따왔다. 몰타는 수도 발레타가 있는 가장 큰 섬 몰타와 고조 섬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섬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발레타는 행정과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성 요한 대성당과 몰타 기사단장 궁전, 국립고고학박물관이 유명하다. 아름다운 건축물들 사이에선 아방가르드 예술에서부터 전통적인 교회 연회에 이르기까지 연일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보석가게들, 로맨틱한 카페와 레스토랑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옛 수도인 음디나는 중세시대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 노블시티(novel city)로 불리는데, 오늘날에는 몰타의 최고 부유층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중세와 바로크시대의 건축물이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는 골목길들은 작은 자동차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다. 이런 도시 구조는 적들이 쏜 화살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말도 빨리 달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상 어느 것 하나에도 이유 없는 것이 없다. 밤이면 정적에 가까울 만큼 조용하고 절제된 분위기를 풍겨 ‘침묵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고즈넉한 휴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좋다. 블루와 라임스톤이 조화된 미니멀리즘 도시 몰타는 크게 두 가지 색깔로 표현할 수 있다. 하나는 블루와 에메랄드빛 바다이며, 또 하나는 구시가지를 기억나게 하는 부드러운 라임스톤색이다. 두 가지 컬러로 세상을 보여주는 몰타는 단조롭다기보다 정갈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미로 가득한 고조 섬에 비해 몰타 섬은 좀 더 현대적이라고 말하지만 인공미 가득한 세상에서 온 여행자의 눈엔 고조 섬도 몰타 섬도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크리스마스가 임박한 몰타의 풍경. 산타클로스 인형이 건물에 대롱대롱 매달려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그 모습만으로도 이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낙천적인지를 알겠다. 매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진지하고 투쟁적인 나라에서 온 여행자는 벽에 매달린 산타클로스 인형을 보며 삶이 매사 그렇게 진지하고 투쟁적일 필요가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몰타의 과거 흔적이 남아 있는 고조 섬 고조 섬은 ‘칼립소의 섬’으로도 불린다. ‘칼립소’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인데, 오디세우스가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7년을 머물렀던 동굴이 고조 섬 북쪽에 있다 한다. 몰타 섬에서 40분이면 닿는 고조 섬. 그곳으로 가는 페리 안에서 만난 아이들의 쾌활한 웃음은 여행자의 피로를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맑고 눈부셨다. 그 순간 여행자의 나라에 사는 아이들의 그늘지고 지친 표정이 떠올라 한없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고조선이라는 이름을 연상시키는 고조 섬에는 이름과 어울리게도(어울리는) 선사시대 유적지 간티야 거석사원이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7세기 고조 섬의 주도(主都)였던 빅토리아 요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작은 성당과 성채(城砦), 아기자기한 카페와 와이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몰타 섬과는 또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한다. 고조 섬 북쪽에 있는 간티야 거석사원은 기원전 3600년에서 3000년경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100년이나 앞선 것이라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가 얼마나 강대국 우선으로 순위를 매기며 살고 세계 곳곳에 있는지 깨닫게 됐다. 그동안 원조로 알려진 것이 사실은 원조가 아니었다. 알고 보면 역사가 더 깊고 가치 있는 진짜들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몰타도 그중 하나다. 현지인들의 삶의 향기가 느껴지는 마샤슬록 어촌 마을 몰타 최대의 어촌 마을 마샤슬록은 15~16세기에 터키군과 나폴리군이 격전을 벌인 곳이라한다. 알록달록한 무지갯빛의 몰타 전통 배 ‘루츠(Luzz)’가 코발트빛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예쁜 그림엽서를 보는 듯하다. 건물 사이의 네모난 틈새로 보이는 바다가 액자 속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매주 일요일에 최대 수산시장인 선데이마켓이 열린다. 앤티크 상품을 파는 벼룩시장도 인기다.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고조 섬 사람들이 만든 와인에 취해본다. 떠나기 하루 전날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부둣가로 나갔다. 몇 시간이나 우두커니 앉아 사람들이 낚시그물을 걷어 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 ‘저들은 원래 어부이지 않았는가? 이곳이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이 나라 어부들의 모습에서는 삶의 고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다시 바다로 눈길을 돌린다. 바다 속이 훤히 보일 만큼 맑게 출렁이는 바다가 어느새 여행자의 마음을 보석처럼 반짝이게 한다. Travel Tip 몰타로 가는 직항은 없다. 보통 두바이를 경유해서 가는데 중간에 키프로스를 경유하기도 한다. 이때 대기시간은 대략 한 시간이다.
- 2018-11-1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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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와인 최고의 재료는 자긍심이죠”
- 와인은 역사상 인류가 가장 오래 즐긴 술로 꼽힌다. 최근에는 미국의 사우스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이 학술지를 통해 시칠리아 동굴에서 6000년 된 와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가설보다 3000년이나 앞선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우리 조상들도 일찍부터 와인과 접해왔다. 사료에는 중국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사위로 삼은 고려 충렬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본격적으로 국내에 와인이 소개된 것은 조선 후기 선교사들을 통해서다. 그런데 오랜 인연에 반해 실생활 속에서 왜 우리 와인은 찾아보기 어려울까. 충북 영동의 한 와이너리를 찾아 우리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국산 와인은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곳 이외에 전북 무주와 경기 포천에도 많은 와이너리가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국내 와이너리는 150여 곳 이상 될 것이라고 업계에선 추산하고 있다. 충북 영동의 대표적 와이너리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컨츄리와인은 3대째 와인을 만들어오고 있는 와이너리다. 컨츄리와인의 시작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컨츄리와인의 대표 김덕현(金德賢·34)씨의 할아버지인 김문환(金文煥)씨는 일제강점기 미크로네시아로 강제 징용을 떠나게 된다. 한때 스페인의 영토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 그곳에서 김문환씨는 스페인 병사와 친분을 쌓게 되고 포도와 와인의 매력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해방 이후 고향인 영동으로 돌아와 포도농사와 포도로 가양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1965년이다. 그리고 그 뜻을 2대 김마정(金摩廷·63)씨가 이어받아 2010년 개인농가로는 최초로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해 본격적인 와인 생산에 나서게 된다. 현재는 3대인 김덕현씨가 생산과 판매 모두를 책임지고 있다. 한국의 와이너리가 살아가는 법 2대 김마정씨가 혼자 공부해 와인 제조에 뛰어든 독학파라면 3대 김덕현 대표는 정통 학구파라 할 수 있다. 미대를 졸업하고 업계에서 활약하던 디자이너였던 김 대표는 2009년 직장을 그만두고 와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국내 와인스쿨을 통해 기초를 닦은 후 대학 와인발효·식음료서비스학과에서 다시 공부했다. 소믈리에 자격증도 받았다. 이후 프랑스 보르도부터 LA 나파 밸리, 호주 바로사 밸리 등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그 국가들 중 컨츄리와인은 어디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까. 의외의 답이 나온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 와인시장의 80% 정도는 자국산 와인이에요. 그만큼 와인의 품질도 높고, 소비자들도 일본 와인을 인정해주죠. 자국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또 스시와 같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본 음식의 파트너로 세계시장에 많이 소개되어서 국제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에 반해 우리는 와인시장의 95% 이상이 수입 와인이에요. 국산 와인에 대한 평가도 아직은 낮은 편이고요.” 국산 와인이 외산과 경쟁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높은 주세(酒稅)에 있다. 수입 와인은 FTA로 인해 관세가 사라져 저가로 유통이 가능하지만, 국산 와인의 경우 ‘전통주’에 속해 높은 주세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반면에 전통주의 범주에 속한 만큼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 바로 온라인 판매의 허용이다. 그동안 전통주는 우체국 등 제한된 곳에서만 온라인 판매가 가능했다. 하지만 국세청 고시 및 주세사무처리규정 개정안이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온라인 판매가 허용됐다. 실제로 컨츄리와인 역시 포털 쇼핑몰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면서 우리 와인의 주 고객층이 많이 낮아졌어요. 그간 와서 사가시거나 주문해주시는 분들의 연령은 40~50대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면서 20~30대 고객이 늘었어요. 입소문을 타서인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홍대나 강남에서 저희 와인이 식당을 통해 소개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국산 와인 깔끔한 과일 향이 특징 김 대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특징을 깔끔한 과일 향으로 정의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표적 포도 품종으로는 캠벨 얼리(Cambel Early)가 있어요. 가장 재배가 많이 되는 품종인데, 과일 향이 무척 강해요. 가볍지만 깔끔한 맛이라서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어요. 가벼운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고 평가받죠.” 국내 대표 품종인 캠벨 얼리는 수입 와인과 국산 와인 맛의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요소로 지목된다. 수입 와인에서 많이 쓰이는 품종은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피노 누아(Pinot Noir), 시라(Syrah), 메를로(Merlot) 등이 있는데 캠벨보다 타닌 성분이 많아 무겁고 떫은 느낌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오히려 이런 맛의 와인 재료로는 국내에서는 포도(캠벨)보다는 산머루가 꼽힌다. “캠벨과 산머루 와인 모두 또 하나의 특징을 갖는데 바로 단기숙성에 적합하다는 것이에요. 수입 와인에 비교하자면 갓 만들어진 와인을 즐기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에 가깝죠. 우리 와인으로 장기숙성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여러 소믈리에분들이나 와인 애호가분들과 평가를 한 결과 장기숙성엔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컨츄리와인이 1년산과 2년산만 판매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김 대표는 수입 와인에 비해 갖고 있는 경쟁력으로 안전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꼽았다. 와인 역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인 만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와이너리의 경우 첨가물에 대단히 관대한 편이에요. 특히 저가 와인일수록 그렇습니다. 와인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화방지제나 보존제를 많이 쓰죠. 우리 와인의 경우 이런 첨가물을 넣지 않으려고 멸균 작업을 별도로 진행합니다. 파스퇴르 살균법이라고도 불리는 저온 살균법으로 변질을 막고 있어요. 또 포도를 선별하는 과정에서도 철저히 선별하고요. 최종적으로 병입될 때까지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다 보니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어요. 대량생산 방식과는 거리가 있죠. 그래도 우리의 고집을 알아주시는 애호가들이 꾸준히 찾아주셔서 자긍심을 갖고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산 와인의 역사는?▲▲ 우리가 직접 와인을 만든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포도를 으깨어 설탕과 소주를 부어 가양주(家釀酒)로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공식적인 최초 와인의 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포도가 아니라 사과였다. 1967년에 파라다이스 주식회사가 출시한 ‘애플와인 파라다이스’가 그것. 사과의 고장 대구에 공장을 차려놓고 12도의 사과주를 생산한 것이 시작이다. 포도주로는 1968년 주식회사 한국 산토리가 생산한 선리프트 와인·로제 와인·팸포트 와인이 꼽힌다. 이후 한국 산토리는 해태주조로 매각됐다. 1977년에는 토종 기술과 포도로 만든 ‘마주앙’(구 동양맥주·현 롯데주류)이 나오면서 한국 와인 역사에 새 장이 열린다. 1970년대에 정부가 식량 부족을 이유로 곡주보다는 과일주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쳐 한때 와인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수입 와인이 소개되면서 국내 와인의 위세는 갈수록 떨어졌다.
- 2017-10-1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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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즈 여행
- 말이 씨가 된다고 8년 전에 친구들과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한 크루즈 여행을 친구 3가족과 같이 6월 초에 다녀왔다. 8년 이상 적금을 들어 준비한 것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처음에는 알래스카로 가기로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서지중해로 변경되어 10일 동안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비행기로 가서 배로 제노아, 로마, 시칠리아섬, 몰타, 스페인의 팔마 드 마요르카, 발렌시아, 프랑스 마르세이유를 여행했다. 하나 여행사를 통해 갔는데 10명이상이 안 되면 어렵다는 것을 힘들게 부탁해서 6명이 갔다. 돌아와서 만난 지인에 의하면 현지로 가서 크루즈 선박사와 직접 거래하면 좀 저렴할 것이라고 하니 의향이 있는 분은 알아보기 바란다. 승객과 승무원을 합쳐 5,000명이 탑승한 14만톤급 배 프리지오사는 아파트 17층 높이로 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운행되었다. 전날 과제를 처리한다고 밤을 새웠고 6월 초에 있는 많은 약속과 행사를 포기했다. 다른 일정과 겹쳐 많은 대가를 치르며 다녀 온 셈이다. 배에는 숙박시설, 식당, 공연장, 수영장 등 모든 시설이 있어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배에 있을 때는 잠을 줄이고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여 춤 배우고 공연 보며 수영하고 헬쓰하며 수시로 식사하고 차 마시는 등 세상일을 잊고 자유롭게 보내는 호사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돌아 올 때가 되니 너무 힘들어 병이 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10일 이상 크루즈 여행은 무리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밤새 배로 가다가 기항지에 도착하면 현지 투어를 다녔다. 크루즈 여행은 배에서 숙식이 가능하고 시간을 경제적으로 활용하여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여 미국과 유럽에서는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같이 간 친구들도 일정조정으로 힘들어 했지만 다들 잘 다녀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즐겼다. 어느새 회갑을 맞이한 친구들과 남은 삶은 여유롭고 품위있게 살자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70세까지 5년마다 다른 곳으로 크루즈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목표를 정하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두고 볼 일이다.
- 2016-08-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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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라벤더 향기 진동하는 달마티아의 섬 ‘흐바르’
- 크로아티아 흐바르(Hvar)는 유명 여행전문잡지에 ‘세계에서 아름다운 섬’으로 자주 손꼽힐 이유가 충분하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자주 찾았던 곳이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과 일반인의 여행 시각이 뭐가 다를까? 그저 살아생전 찾아가봐야 할 섬이 흐바르다. 이 섬의 아름다움은 그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표현해 낼 수 없다. 진한 라벤더 향기 머금은 스타리 그라드의 골목길 스플리트에서 배를 타고 2시간 거리. 여객선은 200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흐바르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 섬으로 다가선다. 한눈에도 볼 수 있는 작은 섬이 눈 앞으로 스르르 다가선다. 선착장에 멈춘 거대한 배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내린다. 하선한 관광객과 다시 배를 타고 이 섬을 나가려는 인파로 복잡한 선착장 주변에 라벤더 향기를 가득 담은 난전 두어 개가 펼쳐져 있다. 라벤더의 강한 향기가 코 끝을 ‘훅’ 자극한다. 즉석에서 갈아주는 주스 파는 곳으로 다가간다. 햇살 좋은 섬에서 자란 과일 주스는 맛이 참 좋다. 피자 한쪽을 사서 미처 먹지 못한 ‘아점’도 먹는다. 그러는 사이 북적대던 사람들은 섬 어디론가 흩어져 갔다. 돌아갈 배편을 미리 구입하고 천천히 섬 안으로 발을 옮긴다. 해안 길(riva)을 피해 일부러 민가가 있는 계단으로 올라선다. 해묵은 느낌이 가득한 골목길엔 치즈 빛 담 벽과 반질반질한 돌이 이어진다. 골목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좁은 골목길에서 앙증맞은 숍, 여행사, 호스텔 등의 간판들을 만난다. 강한 향내를 풍기며 유혹하는 라벤더 가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게는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금발 생머리의 날씬한 판매원을 닮은 듯 예쁘고 현혹적이다. 라벤더 오일, 건제품들은 예뻐서 꼭 사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흐바르에 라벤더 가게가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이 섬은 ‘라벤더 섬’으로 불릴 만큼 라벤더 재배가 성행한다. 5월이면 온 섬은 라벤더 꽃과 향이 코끝을 간지를 것이다. 수녀가 만드는 알로에 레이스와 하니발 루치치 동상 골목길에서 11세기 베네딕트회 수도원(Benedictine Monastery)을 만난다. 그저 유럽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수도원이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지만 이 수도원은 ‘알로에 레이스(Aloe Lacemaking Skill)’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알로에 화분 하나가 놓여 있고 건물에는 레이스 그림을 새긴 팻말이 있다. 유럽 마을마다 흔히 볼 수 있는 레이스 공예지만 흐바르는 색다르다. 크로아티아에는 3가지 서로 다른 레이스 공예 전통이 전해지고 있다. 아드리아해 연안의 파그(Pag) 마을에서 전하는 ‘니들포인트 레이스 공예(Needle Point Lacemaking Skill)’, 크로아티아 북부의 레포글라바(Lepoglava)에 전하는 ‘보빈 레이스 공예(Bobbin Lacemaking Skill)’, 그리고 달마티아(Dalamatia) 연안의 흐바르 섬에서 전승되는 ‘알로에 레이스 공예(Aloe Lacemaking Skill)’다. ‘알로에 레이스’는 흐바르에 거주하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수녀들만 만든다. 생 알로에 잎의 심에서 나오는 얇은 흰색 실을 이용해 보드지 뒤에서 망이나 다른 패턴을 짠다. 이렇게 완성된 레이스 작품은 흐바르 지방을 상징한다. 이 수도원 앞에는 르네상스기의 위대한 작가인 하니발 루치치(Hanibal Lucic)의 동상이 있다. 15~16세기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작가인 하니발 루치치(1485~1553)는 ‘로비냐’ 라는 서사시를 썼다. 멀지 않은 곳에 르네상스의 시인 페타르 헤크토로비치(Petar Hektorovi?, 1487~1572)의 요새와 트브르달리(Tvrdalj) 성의 안내 팻말이 붙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그는 이곳에서 나고 죽었다. 그는 어부의 노래를 수집했고, 기행담 등을 친구와 서신으로 대화를 즐겼다. 그가 기록한 해상 및 동물원 용어들은 크로아티아어 표준 언어에 통합되었다. 요새와 성은 직접 설계했는데 현재는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스타리 그라드 랜드마크 스테판 광장엔 그리스 흔적이 골목을 비껴나면 흐바르 타운의 중심지인 넓은 스테판 광장이 얼굴을 내민다. ‘U’자 모양의 항구가 있는 이 광장에는 성 스테판(St. Stephen's) 대성당이 있고 1612년에 지어진 유럽 최초의 시민극장 등 유적지가 몰려 있다. 한눈에 봐도 스타리 그라드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오래된 건물들에선 어김없이 레스토랑, 와인바 등이 성업 중이다. 이 광장은 흐바르에 그리스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으로 아드리아 해안 달마티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스타리 그라드에 처음 사람이 정착한 때는 그리스 시대다. 그리스가 아드리아해까지 영역을 확장한 시기는 고대 시칠리아 시라쿠사(Siracusa)의 독재자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세(재위 BC 405~BC 367)때부터다. 그는 384년, 일리리아인의 도움으로 비스(Vis) 섬을 정복해 첫 번째 식민지를 세웠다. 10년 뒤, 디오니시우스와 동맹을 맺은 에게해의 파로스 섬 거주민들이 섬을 정복해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현재 남은 요새, 고대 석담, 건물 골조, 돌로 만든 작은 대피소 등이 그리스 시대의 흔적들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토지 구획 체계인 ‘코라(chora)’는 24세기 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BC 4세기 중반, 시라쿠사 제국이 몰락했고 BC 5~BC 6세기 경 일리리아인의 독립 공국이 되었다. 일리리아인들은 요새를 재사용하고, 여기에 새로운 요새를 구축하면서 번성했다.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왕이 되어 통치하면서 권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에 의해 식민지화한다. 그때 파리아(Pharia, Faria)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고, 아우구스투스(Augustus)와 티베리우스(Tiberius) 통치 기간에는 자치도시(municipium)의 지위를 획득했다. 몇몇 로마식 무덤이 만들어지고, 물탱크가 축조되기도 했다. 파리아는 그리스 시대보다는 좀 더 작은 경계로 다시 요새화했다. 이후 12세기에는 기독교 주교의 관할권 아래 있었고, 13세기 중반부터는 베네치아인들에게 정복 당해 1797년까지 정치적인 통제를 당했다. 베네치아 왕국 시대(14~16세기) 때 교통, 군사상 요지로서 번영했다. 15세기부터 교역 중심지 항구로서의 부흥기를 맞이했는데, 당시의 지역명은 캄포 산 스테파니(Campo San Stephani)였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말, 포도나무 뿌리를 썩게 만드는 필록세라(phylloxera) 병이 돌면서 이 섬의 경제는 흔들거렸다. 많은 농부들이 농지를 포기했고 20세기에는 이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포도를 경작하던 남부 마을들은 부분적으로 사라지고, 토지와 도로 대장 체계도 관리 부족으로 명맥만 유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에는 새로운 위협에 맞닥뜨렸다. 집단농장과 농업의 기계화가 그 원인. 그래도 지금은 다시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조금씩 떠난 농부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흐바르 요새는 천국의 자리 흐바르 스타리 그라드의 백미는 흐바르 요새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전망이다. 스페인 요새, 베네치아 요새(Spanjola Fortica, Spanol Fortress)라고 불린다. 스테판 광장에서 북쪽의 산 언덕으로 오르면 된다. 오르는 길목의 모습은 타운과 엇비슷한 골목이다. 돌길을 따라 이어진 주변 화단에는 알로에와 사보텐 선인장이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10여분 걸음 끝에 만나는 요새는 중세 때, 오스만 투르크 족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요새 안 박물관에는 부서진 유적들이 있지만 딱히 볼만한 것은 없다. 대신 앞이 환하게 트인 성벽에서 바라보는 발밑 풍경에 넋이 빠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치를 누군들 반하지 않겠는가? 흐바르 타운과 쪽빛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조망하면서 위치를 가늠해 본다. 흐바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브라치(Bra?)섬과, 비스(Vis) 해협을 사이에 두고 비스와, 코르출라(Kor?ula) 해협을 사이에 두고 코르출라와, 네레트바(Neretva) 해협을 사이에 두고 펠제샤츠(Pelje?ac)섬과 마주 보고 있다. 풍광만으로 흐바르 사랑이 가슴 속 깊숙히 채워지는 곳. 더 이상 말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오를 때 무겁던 발걸음은 몇십 배 가벼워져 하산한다. 다시 선착장을 기점으로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물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쪽빛 바다에는 물놀이 즐기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이 울려퍼진다. 생선 굽는 냄새에 코끝을 킁킁대며 굴 전문 식당, 와인숍을 한가하게 기웃거리다가 만난 프란체스코(Franciscan) 수도원. 15세기에 코르출라 출신의 유명 석공 가문이 건설했다고 한다. 바다를 정원 삼은 작은 수도원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포인트를 주고 있다. 수도원 내부는 박물관으로 이용되는데, 특히 마테오 이그놀리의 ‘최후의 만찬’ 등이 눈여겨 볼 그림들이다. 겨우 하루였지만 흐바르의 눈 시리게 아름다운 풍광과 코끝을 파고드는 라벤더 향기는 아직도 가슴 속에 선연하게 박혀 있다. TRAVEL TIP! 항공편 크로아티아로 바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일단 유럽의 주요 도시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헝가리 부다페스트, 슬로베니아 루블라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등의 국제선을 이용해 자그레브 공항으로 갈 수 있다. 근교 도시에서는 버스나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필자는 슬로베니아에서 열차로 이동했다. 배편 스플리트에서 페리를 이용하면 된다. 페리는 스플리트 항구, 타운 버스 터미널 맞은편에서 일반 페리가 매일 3회 출발한다. 쾌속선은 1시간 5분 정도 소요되지만 보편적으로 2시간 정도 예상하면 된다. 단 시기에 따라서 페리 스케줄이 다를 수 있다. 정확한 스케줄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는 게 좋다. 날씨에 따라 출발이 결정되므로 여유있게 여행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여행시기 라벤더가 피어나는 5월과 6월 가장 아름답고 한가롭다. 여름 피서철에는 사람이 많아져서 배편, 숙박 이용하기가 불편해진다. 와인 크로아티아의 2대 와인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남쪽은 적포도주, 스타리 그라드와 젤사 사이 중앙 평원은 백포도주 산지다. 먹거리 해물 스파게티와 신선한 새우요리, 그릴에 구운 생선구이 등 바닷가라서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바닷가 옆이나 스테판 광장 쪽에 식당이 많으며 아시안 음식점도 있다. 또 골목 속에 박혀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나 선술집(konoer)들도 많다. 특산물 흐바르는 라벤더의 섬이다. 난전은 물론 골목에 가게들이 있다. 화폐 쿠나(HRK) 전압 220V, 50Hz(공통) 크로아티아 추천 여행 코스 수도 자그레브를 시작해서 플리트비체-시베니크-자다르-트로기르-스플리트-흐바르-두브로브니크 순으로 여행을 즐기면 된다. 여행 유의점 크로아티아는 한국인이 가보고 싶은 여행지 1위란다. 현지에서도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일부에서는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짐 값은 당연히 받고 택시기사의 바가지 상흔도 아주 흔하다. 국내 여행사 상품이 여러 군데 나와 있으니 패키지를 이용해도 좋을 듯하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 2016-04-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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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참 걸을만 하구나 PART4]'마음 따라 길 따라… 즐거움은 덩달아' - 65세부터 10년간 지구 반 바퀴를 걸은 황안나씨
- 800km 국토종단, 4200km 국내 해안 일주, 24시간 밤새 100km를 걷는 울트라 걷기 등 젊은이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을 65세가 넘어서 이뤄낸 도보여행가 황안나(본명:황경화(黃慶花)·76)씨. 그녀는 국내뿐만 아니라 산티아고, 네팔, 홍콩, 몽골, 부탄, 동티베트, 베트남, 아이슬란드, 시칠리아 등 50개 국의 길을 밟았다. 지리산 종주도 벌써 여덟 번 했고, 오지여행도 숱하게 다녀왔다. 나이를 두고 우려하는 이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비록 나이는 적지 않지만 뜨겁게 갈망하는 것이 있고 그것들을 내 두 발로 해낼 수 있으니 이만하면 젊지 않은가?”라고. 황씨는 춘천사범학교를 나와 20세부터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을 7년 앞두고 제2 인생을 위해 과감하게 퇴직했다. 퇴직 후,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은 건강이었다. 건강검진 결과 고지혈증에 악성 빈혈 등 의사가 식단까지 짜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던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 의사는 운동을 권했고, 그때부터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씨는 TV 브라운관에 펼쳐진 땅끝마을의 풍경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드넓은 양파밭과 청보리순, 붉은 황토가 햇살에 반짝이는 그곳을 ‘한번 걸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땅끝마을이라는 그 단어도 무척이나 아득하게 느껴졌죠. 그때 마침, 제가 다니던 산악회에서 광주 무등산을 오른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산에서 내려와 터미널로 가서 땅끝마을로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순전히 그 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걷기를 시작했고, 그 일이 계기가 돼 국토종단과 해안 일주에 도전했죠. 내 모든 시작과 도전은 65세부터였어요.” 장기 도보여행에 필요한 다섯 가지 그녀가 혼자 장기 도보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제일 걱정한 것은 ‘체력’이다. 그리고 체력과 함께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은 체력은 있는데 시간이나 경비가 부족하죠. 나이 든 사람들은 시간과 경비는 있지만 체력이나 용기가 부족하고요. 한 달에서 길게는 몇 개월씩 다니는 장기 여행이기 때문에 가족의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4개월 해안 일주를 하는 데 700만원 정도 들었는데, 보통 할머니가 그만한 돈을 쓰기란 쉽지 않잖아요. 작정하고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퇴직하고 3년 동안 뒷산을 운동 삼아 다닌 덕에 체력도 단련돼 있었죠. 남편에게 내 계획을 이야기하니까 그이는 단순히 ‘해도 된다’ 정도가 아니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어요. 그렇게 체력, 시간, 경비, 그리고 가족의 이해까지 모두 해결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더라고요. 용기를 갖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여러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왜 혼자 떠나느냐”이다. 그녀는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를 갖춘 동행자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모두 갖춘 사람이라도 서로의 체력 정도나 관심사가 달라 나만을 위한 자유 여행을 즐기기 어렵다고 말한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나는 조금 더 걷고 싶은데 상대에 맞추느라 나아가지 못할 때도 있고, 사진을 찍고 싶은데도 마음대로 멈출 수 없어요. 남편이나 동생들이랑 가면 좋은 숙소에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걷기는 뒷전이 되어버려요. 그러면 즐겁고 편안하지만 단순히 관광에 그치고 말죠. 혼자 걸으면 힘들고 외롭고 막막하지만 그 절박함을 안고 걷는 길에서 느끼는 게 참 많아요.” 그녀는 외로움이 몰려올 때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기장에 남아 있던 문구를 떠올린다. ‘자유로우려면 외로워야 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나 홀로 도보 여행’ 목적지는 정하지만, 목표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그녀는 꼭 정상을 가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가다가 힘들면 되돌아오면 된다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하고 싶은 걸 그냥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럽다고. “남들이 못할 거라고 말린다고 해서 ‘나는 꼭 성공할 테다’ 하는 마음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가서 못하나 보자’라고 생각해요. 그냥 포기하는 것보다는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확인해보는 편이 낫잖아요. 망설이고 주저할 시간에 그냥 하는 게 남는 거죠.” 그녀는 길 위에서 잊지 못할 추억도 쌓고, 건강도 챙기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지만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정말 잡초처럼 험한 인생을 견디며 살아왔어요. 아마 걷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노년을 맞았다면 마음이 아주 괴로웠을 것 같아요. 지난날의 아픔과 걱정 등을 모두 길 위에서 치유했기 때문에 지금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 걷다 보면 마음도 편해지고, 집착이나 욕심도 다 내려놓게 되죠. 자연히 자기 성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다이어트를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걷는 내내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길 위에서 그녀의 주특기는 바로 ‘멍 때리기’라고. 근심 없이 머리가 텅 빈 상태로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아주 편안해진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아야 할 것은 바로 ‘끈기’다. “도전해서 꼭 이루리라는 욕심은 없지만, 끈기 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도전한 것은 대부분 해낼 수 있었죠. 머리가 가자고 하면 몸은 자연히 따라가게 돼 있거든요. 도보여행을 하다보면 소나기를 맞을 때도 있어요. 비에 홀딱 젖고 나면 대개 의욕을 잃거나 힘들어하죠. 그럴 때면 저는 이렇게 외치며 한 발짝 더 내딛죠.” “젖은 옷이 마를 때까지!”
- 2016-04-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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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on giorno(본 조르노) 시칠리아!
- 벌어지는 입을 닫을 수 없다. 피곤한 하루를 마친 태양. 잠에 들려는 듯 바다 속으로 사라지며 물결을 빨갛게 물들인다. 그 순간 잡념은 사라지고 도시에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다. 어떤 이들은 그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어떤 이들은 아무 방해도 받기 싫다는 듯 멍하니 그 장관을 음미한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 이탈리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시칠리아. 영화 대부, 시네마 천국, 그랑블루 등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될 만큼 그 자연 풍광과 도시의 모습이 아름답다. 독일 문학의 상징 괴테도 말했다.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서는 이탈리아를 봤다고 말할 수 없다.” ◇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시칠리아 안에서도 괴테가 세계 최고도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은 곳이 있다. 북부에 위치한 팔레르모다. 영화 ‘대부’의 배경으로 유명한 이 곳에는 ‘4개의 모서리’를 뜻하는 콰트로 콴티(Quattro Canti)와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이 있다. 콰트로 콴티는 예술작품으로 꾸민 3층 건물 4채를 말한다. 1층은 사계절 여신들의 조각상이 있는 분수, 2층은 시칠리아를 지배한 왕들, 3층에는 성녀의 모습이 담긴 조각상이 있어 콰트로 콴티만의 세련미를 느낄 수 있다. 1184년 팔레르모 대주교에 의해 세워진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에서는 다양한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성당은 팔레르모를 지배한 여려 세력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섞여있다. 외부는 고딕 양식, 남쪽 현관은 카탈로니아 양식, 돔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혼합돼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내부에 있는 왕들의 무덤과 보물을 구경하는 것도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을 즐기는 색다른 요소다. ◇ 시네마천국의 배경 ‘체팔루’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주인공 토토가 데이트를 하던 낭만적인 해변 마을을 기억하는가. 유럽 왕족과 유명 인사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체팔루다. 이러한 명성에 걸맞게 건물과 해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그 속에 있는 사람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만들어준다.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 보다는 작지만 그보다 화려한 모자이크가 있는 체팔루 두오모 성당과 페스카라 문도 으뜸이지만, 무엇보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절경을 빼놓고 체팔루를 얘기 할 수 없다. 해안가 따라 이어진 다소 이탈리아 정서의 소박하고 낡은 건물과 고즈넉한 해변이 드넓은 바다와 조화를 이뤄 보는 이들의 혼을 빼놓는다. 한 폭의 그림. 환상적인 도시. 그 이상의 수식어를 더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체팔루다. ◇ 시칠리아 최고의 휴양지 ‘타오르미나’ 시칠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휴양지 타오르미나. 영화 ‘그랑블루’ 배경지이기도 하다. 타오르미나 절벽 위에 세워진 그리스극장은 이 도시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기원전 3세기 때 지어진 이 야외극장은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여름에는 발레나 음악회 등이 열려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기자기한 상점이 들어서 있는 움베르토 1세 거리는 저녁이 되면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예쁜 도자기와 기념품, 장식품을 전시하는 상점이 많아 유쾌함 넘치는 곳이다. ◇ 아르키메데스의 고향 ‘시라쿠사’ 거리 자체가 중후한 멋을 뽐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두오모 광장, 아레투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강의 신’ 알페오스가 샘에 뛰어들어 스스로 강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아레투사의 샘, 1만6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리스 극장부터 검투경기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로마원형 경기장까지. 이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고대 그리고 최고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 시라쿠사다. 거리의 야경이 유난히 빛나는 시라쿠사는 낭만과 역사가 공존한다. ◇ 유럽 최대의 활화산이 있는 ‘에트나’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에트나산(3350m). 기원전 2700년부터 화산활동을 한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화산답게 최근까지 그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불의 신’ 불카누스의 대장간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에트나 화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 됐다. 투어2000에서는 시칠리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8박 9일 일정의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 여름 지중해의 보배, 시칠리아의 낭만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지. 사진 : 투어2000 / 문의 : 투어2000(02-2021-2000)
- 2014-07-17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