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등을 이용하는 ‘구독경제’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뿐 아니라 의식주부터 취미와 여가 등 삶의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다. 심심할 때 TV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 구독자 수로 인기를 가늠하는 구독 전성시대, 시니어가 알아두면 좋을 이색 서비스를 소개한다.
개인이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4가지가 있다. 일시불, 할부, 리스, 렌트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 구독 열풍이 자동차 시장까지 영역을 뻗치면서 새로운 구매 방식이 소비자의 시선을 끌고 있다. 넷플릭스를 보듯 자동차도 월 단위로 여러 사람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스펙트럼’과 기아자동차의 ‘기아플렉스’, 르노삼성의 ‘모빌라이즈’ 등 차량 구독 서비스가 연이어 등장하고 있지만, 본 기사에서는 시니어의 ‘최애차’인 아반떼와 그랜저를 보유한 ‘현대셀렉션’을 살펴보기로 한다.
차량 구독 서비스 ‘현대셀렉션’
지난해 4월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현대셀렉션은 매달 구독료를 내고 현대차 7종 중 원하는 차를 골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요금제는 베이직(59만 원), 스탠다드(75만 원), 프리미엄(99만 원) 세 가지로, 요금제에 따라 선택 가능한 차종 수가 다르다. 차종은 그랜저, 팰리세이드, 싼타페, 캘리그래피, 쏘나타, 투싼, 아반떼, 베뉴 등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현대셀렉션’ 앱을 다운받고, 회원 가입을 한 다음 요금제와 차종, 컬러, 옵션 등을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신청 완료 시 거주지 근처로 차량이 배송된다.
현대셀렉션의 구독료에는 차량 관리 비용과 보험료, 자동차세 등 부대비용이 포함돼 있어 운전자가 차량 관련 비용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 다만 렌터카와 같이 번호판의 기호가 하·허·호로 분류돼 해당 차량이 자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차량 대여가 대중화되고 번호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면서 문제시되지 않고 있다.
가격 면에서는 리스, 렌트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차종에 따라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예컨대 2021 그랜저 가솔린 2.5 모델을 보증금·선납금 없이 36개월간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렌트는 월 58만~70만 원, 리스는 52만~65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보증금과 선납금을 낼 경우 월 납입금은 더욱 저렴해진다. 반면 구독은 월 99만 원을 내야 그랜저를 탈 수 있다. 운영 방식이 렌트와 유사하면서 가격대는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현대셀렉션은 서비스 출시 1년 만에 구독자 수 1만 명을 돌파, 재구독률 97%를 유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장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차종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셀렉션의 경우 스탠다드 요금제는 월 1회, 프리미엄 요금제는 2회 차량 교체가 가능하다. 이를테면 근거리 외출을 할 때는 간편한 아반떼를 타고 다니다 자녀 결혼식엔 기품 있는 그랜저를, 차박 여행을 떠날 때는 거친 황무지에도 끄떡없는 팰리세이드를 몰 수 있다. 현역 시절 함께한 ‘애마’를 떠나보내고 인생 2막을 같이 달릴 신차를 찾고 있다면, 구매 전 차종별로 장기 시승을 해보며 장단점을 분석할 수도 있다.
요금제에 따라 사용자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스탠다드 요금제는 2명, 프리미엄 요금제는 3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간 차량을 공유할 경우 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김주원 현대셀렉션 책임매니저는 “그랜저를 타고 다니던 시니어 고객의 자녀가 아반떼 신형 모델에 관심을 보이자 차량을 교체해 시승시켜준 사례가 있다”라며 “본인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니즈를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차량 구독의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신청 방법도 간편하다. 별도의 서류 없이 앉은 자리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앱 화면도 직관적으로 구성돼 있어 모바일 기기가 낯선 시니어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김 매니저는 “차량을 이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도록 절차를 간편화했다”라며 “월 단위 렌트와 비교했을 때도 서비스나 차량의 품질, 청결 등에서 고객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헷갈리는 리스·렌트·구독 한눈에 이해하기
리스▶매달 일정 요금을 내는 대가로 리스사가 구매한 자동차를 빌리는 금융 상품이다. 기간 만료 시 인수·반납·재이용 등을 선택하는 ‘운용 리스’와 매입을 전제로 한 ‘금융 리스’로 나뉜다. 보험료를 개인이 납부하는 방식으로, 보험 경력이 유지된다. 일반 차량의 번호판을 사용한다.
렌트▶렌트사가 보유한 차량을 빌리는 임대 상품이다. 관리·보수 등 서비스까지 맡아서 처리해 유류 비용을 제외한 기타 제반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 다만 월 이용 금액에 보험료가 포함돼 있어 보험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허·호 번호판을 사용한다.
구독▶렌트와 유사하지만 월 단위로 계약이 갱신돼 신용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위약금이나 중도상환 없이 해지가 가능하다. 서비스에 따라 차종을 변경하거나 사용자를 추가할 수 있으며, 주행 거리에 제한이 없다.
내년부터 레이, 모닝, 쉐보레 스파크 등 경차에 대한 취득세 감면 한도가 최대 65만 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경차의 고급모델을 선택했을 때 소비자들이 일부 부담했던 취득세도 깎아주기로 했다. 이에 경차 활용이 높은 중장년층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장년층은 실속있는 준중형차나 경차, 전기차를 선택하는 추세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5월부터 2020년 4월까지 1년 동안 경차를 새차로 등록한 연령대에서 40대가 29%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50대로 26%였다. 60대도 15%나 됐다.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2020년 4월~2021년 5월 기준 아반떼를 가장 많이 산 세대는 50대로 나타났다. 또 지난 6월까지 출고된 5700대의 아이오닉5 소비층을 분석한 결과 50대가 31.1%로 가장 높았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경제성이 뛰어난 경차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실제 케이카에서 중고차 거래 트랜드를 분석한 결과 상반기 국산 베스트셀링카 10위권 내에 경차가 스파크, 올 뉴 모닝, 레이 등 총 4개 모델이 올랐다. 특히 올 뉴 모닝은 연령대별 베스트 5위권 내 모두 이름을 올려 모든 연령대에서 고르게 선호하는 모델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는 경차의 취득세 감면 내용을 담은 ‘2021년 지방세입 관계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안에 따르면 경차의 취득세 감면 혜택이 3년 연장되고, 감면 상한선은 기존 50만 원에서 65만 원으로 높아졌다.
현행 1000cc 미만 경차에 대해선 취득가액의 4%를 취득세로 부과하고 이 중 50만 원까지 감면해준다. 취득세를 내지 않으려면 판매가가 1250만 원 이하 모델을 사야 한다. 현재 기아자동차 레이와 모닝은 고급 모델이 1500만 원 이상이고, 한국지엠의 쉐보레 스파크도 최고급 모델은 취득세를 일부 부담해야 한다.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해 전기·수소·하이브리드 자동차 취득세 100% 감면도 유지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40만 원 한도)는 내년 말까지 1년간, 전기·수소차(140만 원 한도)는 2024년까지 3년간 혜택을 연장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경차의 판매가 상승 추세 등을 반영하고 보급률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취득세 감면 혜택을 확대했다”며 “경차 고급사양에도 취득세 전액 면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개정안을 오는 31일까지 20일간 입법 예고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9월 말까지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흔히 2030세대의 ‘생애 첫차’로 알려진 현대자동차 준중형 세단 아반떼가 최근에는 50대 액티브시니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랜저 같은 대형 세단을 많이 몰고 다니던 시니어들이 유지비 적고 실속 있는 아반떼에 눈을 돌린 셈이다.
20일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2020년 4월~2021년 5월 기준 아반떼를 가장 많이 산 세대가 50대로 나타났다. 아반떼 전체 구매 고객 중 26.9%가 50대로, 24.7%를 차지한 20대보다 많았다. 또 40대가 18.6%로 근소한 차이지만 30대 16.3%보다 더 높았다.
출시 전 사전 계약을 할 때만 해도 2030 세대의 비율이 조금 더 높았지만 실제 판매 시작 후에는 4050세대가 더 많이 아반떼를 구매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이들과 장거리 여행이나 레저를 즐기는 3040세대와 달리 5060세대는 상대적으로 짧은 이동 거리를 선호하며, 짐을 많이 싣거나 사람을 많이 태울 일도 적어 실속 있는 준중형차를 선택한다고 분석했다. 시니어들이 유지비가 많이 들고 덩치가 커서 운전하기 부담스러운 큰 차보다 기본 이상의 넉넉한 공간을 갖췄으면서도 운전하기에 편한 준중형차를 사며 실속을 챙긴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과거 다른 사람들 시선 때문에라도 대형 세단을 주로 찾던 중장년층이 젊은 감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며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즐기려는 액티브시니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출시된 아반떼 7세대는 월평균 8000대 가까이 팔리며 지난달까지 총 11만1643대가 팔렸다. 올해 누적으로는 3만4249대가 팔려 국내 승용차 중 그랜저(4만3347대)와 카니발(3만9605대)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편 아반떼 7세대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후측방 충돌 방지 등 고급 대형차 못지않은 첨단 편의 품목을 장착했다. 판매가는 1531만 원부터 시작해 쏘나타, 그랜저와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다.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구매력이 큰 소비자 연령대는 50~60대였다.
카이즈유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등록된 신차 88만7034대 중 50대 차주 비중이 28%로 가장 높았다. 60대까지 합치면 전체의 47%로 30~40대(45%)보다 높았다. 60대 이상 차주는 전년 대비 11.5% 늘어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그렇다면 시니어가 가장 선호한 자동차 모델은 무엇일까?
명불허전 그랜저
지난해 40~60대 중장년 소비자가 가장 많이 선택한 차종은 그랜저였다. 현대자동차의 준대형 세단인 그랜저는 지난해 14만6923대 판매되며 국산차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그중 50대 판매량이 3만6185대로 가장 높았고, 40대 2만8843대, 60대 1만9789로 뒤를 이었다.
중장년층의 준대형 세단 선호는 제네시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G80 역시 중장년 선호도가 높았다. 지난해 1만7183대 판매된 G80은 50대 판매량이 3964대로 1위였다. 이어 40대 2658대, 60대 2205대 순이었다.
업계는 2021년에도 중장년 소비자들이 그랜저를 가장 선호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올해 2분기에는 그랜저의 경쟁 모델인 기아 K7의 후속작 K8이 출시 예정이다. K8이 그랜저 선호도가 높은 시니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다운사이징’ 아반떼도 눈길
다음으로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자동차는 아반떼였다. 아반떼는 주로 20~30대가 선호하는 엔트리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의외로 중장년층 판매량이 더 높았다. 지난해 아반떼는 총 8만7357대 판매되어 국내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 그중 50대 판매량이 1만8117대로 가장 높았다. 60대 판매량까지 합치면 2만7006대로 전체 판매량의 30%였다.
아반떼는 준중형 차량으로, 준대형 차량인 그랜저와 체급 차이가 크다. 그런데도 그랜저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시니어 세대가 차량의 ‘다운사이징’을 선호하는 추세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시니어 세대 중 실용성과 운전 편의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차체가 작아 운전이 가볍고 주차도 편한 아반떼가 인기를 끈 것이다. 또 중장년 연령대로 접어들면서 생활 패턴이 달라져 장거리 운전보다는 동네 마실 같은 단거리 운전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점, ‘세컨카’로 장만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형차는 쏘나타와 K5 선호도 극명하게 엇갈려
중형차급에서는 쏘나타와 K5가 선전하는 가운데, 두 모델에 대한 중장년층의 선호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쏘나타 판매량은 60대에서 가장 높았다. 쏘나타는 지난해 6만8509대 판매되었는데, 그중 60대가 1만3162대로 판매량이 가장 많았다. 이어 50대 1만2619대, 40대 7230대 순으로 중장년에게서 인기를 끌었다. 반면 K5는 총 판매량 8만5589대 중 30대가 1만7417대로 가장 많았다. 50대 판매량은 1만2813대로, 20대 판매량 1만2559대와 비슷했다. 60대 판매량은 6866대로 쏘나타의 절반 수준이었다.
K5는 젊고 스포티한 이미지인 반면 쏘나타는 중후한 이미지를 강조해 중장년층의 선택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후 2시. 약속시간을 부득이하게 미뤄야겠다고 알려왔다. 겨우 10분 늦는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색을 표하는 이만의 전 장관은 근처 회의에 참석했다가 점심도 못 먹고 걸어오느라 늦은 것이었다. 그는 공공연하게 ‘BMW(Bus&Bicycle, Metro, Walk) 예찬론자’라고 말한다. 장관 재임 시절에도 전용차량 ‘에쿠스’를 반납하고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타고 다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질적 가치보다 사람을 아끼고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는 그다. 높은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해도 더욱 더 겸손해야 한다는 그다. 그런 그를 만든 어머니 이야기가 몹시도 궁금해졌다.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6살 꼬마 이만의의 집에 인민군들이 몰려왔다. “이승만을 내놔라.” 이승만이 그려진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기르던 소를 가지고 가버렸다. 앞산과 뒷산에서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지독히도 무서웠던 기억, 어머니의 품속에서 6·25전쟁을 견뎠다. 어머니는 굳세게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지만 삶은 녹록지 않았다. 보릿고개가 찾아왔다. 그는 어린 시절 기억에 각인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전남 담양 산골마을에서 살았는데, 다들 먹고사는 게 힘든 시절이었죠. 너무 먹을 게 없으니까 어머니는 들풀을 베어다 국을 끓였고 밀개떡을 해서 먹였죠. 그렇게 못 먹고 살다 보니까 위장도 약해졌죠. 어느 날 체했는데, 당시만 해도 근처에 병원이 없어 체를 내리는 곳에 가야 했어요. 어머니는 고무신이 벗겨지는데도 산을 뛰어넘어 가며 그곳에 도착했죠. 당시만 해도 별거 아닌 일로 죽어나가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어머니는 저를 살리려고 치열하게 사셨던 거죠.”
팔자 센 어머니의 인생
“실은 제가 넷째인데 장남이 됐어요. 어머니는 저 위로 세 아들을 어린 나이에 하늘로 보냈죠. 어머니는 팔자 센 여자의 인상을 줄까 봐 신경을 무척 쓰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넷째 녀석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셨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게 됐죠.”
어머니는 평생 많은 것을 잃고 살았다. 뱀띠 어머니는 범띠 아버지를 만나 무엇이건 재빠르게 완벽히 해내야 하는 긴장감으로 마음의 여유를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살포시 웃으시고는 금방 무뚝뚝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무엇보다 강한 모성애를 느끼곤 했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아버지가 싫어서 항상 어머니와 함께 안방에서 잠자는 아들을 살피느라 수면조차 부족했던 어머니는 이른 새벽녘, 동네 우물에서 그날의 ‘첫 물’을 길러오셨다. 부엌에 마련된 정화수 종지에 그 물을 채워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렸다. 달 밝은 밤에는 앞마당 한가운데에 물동이를 놓고 절을 하며 가족의 평안을 기원했다. 초등학생 이만의의 눈에 어머니의 기도는 사랑, 그 자체였다.
중·고등학교는 광주에 있는 가난한 이모님 댁에서 머물며 다녔다. 한 달에 두 번쯤 집에 가면 어머니는 무거운 곡식자루를 머리에 이고 시오리길을 걸어 큰 길이 나오면 지나가는 트럭을 세워 태워주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죠. 열심히 이 악물고 공부하며 최대한 검약하게 지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차마 참고서 사게 돈 달라는 말을 못해 교과서로 고 2까지 견뎠던 것은 홀로서기에 방부제 같은 효과를 냈죠.”
어머니의 고생이 가중된 것은 아버지께서 50대 후반에 도랑을 건너다 대퇴골 골절상을 입었는데, 그때 온전히 회복되지 않아 목발을 짚으신 이후였다. 거의 모든 일들을 홀로 해치우셔야 했다. 그야말로 과로에 지쳤을 텐데도 자식들 앞에서는 힘들다고 내색 한 번 안 하셨다.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그래서였을까. 60대에 접어들면서 담배와 커피를 즐기셨어요. 전 아버지의 끽연에 반감을 가졌던 아들이었지만, 어머니의 담배에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부여되더라고요. 쓰레기 소각장에서 전기를 뽑아내고 분출하는 배기가스라고나 할까. 그렇게 힘에 부친 삶을 담배 연기에 실어 내보내셨던 거라고 느껴졌어요.”
심은 만큼만 거두고 불쌍한 사람 편에 서라
어느 날 청년 이만의는 시골 친구들이 화투 치는 데 구경 갔다가 집으로 불려가서 혼이 났다. 그때 어머니는 “농민들처럼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게 훌륭한 사람이다. 심은 만큼만 거두어라”라고 강조하셨다. 노력 없이 좋은 결실을 원하는 것은 허황된 생각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지금의 이만의를 만든 중요한 지침이 됐다.
“돈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자세를 길렀던 것 같습니다. 내 힘으로 심어서 그만큼만 거두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죠. 명예나 지위를 통해 좋은 것을 원하거나 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건 어머니의 꾸지람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내부무 공무원으로 발령받았을 때도 평생 공직자로 가져야 할 자세를 강조했었다. “펜대를 굴려먹고 살아도, 항상 불쌍한 사람들의 편에 서라.” 당시 시골에서는 공무원들이 시골 사람들을 상대로 지도 단속을 했는데, 같은 내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곤 했다. 친절하고 따듯한 사람, 오만하고 강압적인 사람 등 구분이 명확했다. 어머니는 이만의가 앞만 보고 출세 가도를 달리는 공직자보다는 따듯한 사람으로 살아 나가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다.
“내 어머니는 평생 시골에서 사셨고 배움도 짧은 여인이셨죠. 하지만 몸소 가르쳐 주신 중요한 덕목은 잊힐 수가 없고 평생 가는 겁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자라났고, 어머니의 투박한 한마디에 교훈을 얻고 마음을 다잡고 살아가게 된 거죠.”
시장(市長) 어머니의 소박한 장례식장
어느덧 이만의의 직함은 시장으로 바뀐다. 전라남도 여천시 시장, 목포시 시장을 지내고 제주도 부시장, 광주시 부시장을 거쳤다. 그리고 국방대학교에 들어가 국장급 공무원 연수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7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시장 출신 공무원의 모친상이었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화환은 1개밖에 안 들어왔다.
“잘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뜻이었고, 그래서 소박하지만 정성껏 모셨죠. 조문객을 많이 받아서 체면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허세를 경계하라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의 소박함은 삶의 궤적과 동일했다. 아들이 잘돼서 잘난 척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환갑이나 칠순잔치도 마다했던 사람이다.
“제가 장관이 된 모습을 어머니가 못 보시고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한편으로 아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물론 장관이 됐어도 ‘애썼다’라는 말과 엷은 미소로 화답하셨겠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고생하신 만큼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 것을. 한평생 가난에 찌들면서도 모정의 도를 실천하신 어머니의 생각과 말씀은 여전히 제게 존재하고 있으니, 어머니는 오늘도 제 곁에 여전히 살아계신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머니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현 로하스코리아포럼 이사장은 오늘날 어머니가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개인이든, 국가든 행복해지려면 어머니라는 존재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혼율 증가 등으로 인해 그 가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얼마 전 예비군 총기사고 문제가 생긴 것도 결손 가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걱정은 더 많아졌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위대함이 사라지게 되면, 가정의 문제로 시작해 여러 사회적 문제로 번지게 되죠. 결국은 국가적 문제로 자리 잡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에 나와서 행복한 꿈을 그리며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무엇보다 강조돼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어머니의 소중함을 되찾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