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가 구리시 아치울에서 투병 끝에 타계한 뒤 13번째 봄날이 찾아왔다. 구리시에서는 올해도 그를 추모하는 낭독 공연을 열었다. 박완서 작가를 기리고 그의 문학을 잊지 않기 위해, 구리아트홀이 생기기 전 시청 한편에서부터 시작한 공연이 어느덧 12회 차를 맞았다.
구리아트홀 코스모스 대극장 앞은 공연 30분 전부터 중장년 관객들로 북적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포스터 앞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관객들은 대극장 1층은 물론이고 2층까지 객석을 가득 채웠다. 공연은 영상, 노래, 연주, 연기, 낭독까지 다채롭게 구성됐다. 관객들은 웃기도 울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하며 공연을 즐겼다. 한 관객은 무대가 끝나자 “낭독 공연은 처음 보는데 색다르네”라고 평하기도 했다.
설교하지 않는, 그러나 여운 주는 동화
자전거를 갖고 달리면서 맛본 공포와 함께 까닭 모를 쾌감을 회상한다. 마치 참았던 오줌을 내갈길 때처럼 무거운 억압이 갑자기 풀리면서 전신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그 상쾌한 해방감. 한번 맛보면 도저히 잊힐 것 같지 않은 그 짙은 쾌감. 아 나는 도둑질을 하면서 죄책감보다 쾌감을 더 짙게 느꼈던 것이다.
-‘자전거 도둑’ 中
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의 동화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 수남의 독백이다. 토실하니 붉은 볼과 깨끗한 눈을 가진, 청계천 세운상가 뒷길 전기용품 도매상의 열여섯 살 꼬마 점원 수남이. 꼬마의 고백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전거 도둑’은 1979년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 들어 있던 작품이다. 이 중 아이들이 읽을 만한 것을 모아 1999년 다시 펴낼 때 책의 표제가 됐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기에 한 번쯤 읽어봤을 내용이다.
박완서 작가는 소설, 수필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썼지만, 동화에 특히 애정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이야기꾼 할머니로 남고 싶었기 때문에 동화를 집필할 때는 특히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어느 한 작품을 꼽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화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쓰기 마련인데, 그는 동화를 통해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어른들도 읽었으면 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는 ‘자전거 도둑’을 오히려 어른을 위한 동화 같다고 했다.
이날 낭독 공연 사회를 맡은 최지애 소설가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16세에 이미 깨달은 수남이가 2024년 우리 곁에 있다면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텐데, 분명 좋은 어른으로 반듯한 삶을 살았으리라 믿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책 ‘박완서의 말’을 인용해 “박완서 작가님은 문학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고민하고 갈등했지만,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 동화는 참 드물다. 작품을 읽고 오래도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박완서 문학의 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 따라 걷는 길
1년에 한 번 열리는 낭독 공연 외에도 언제든 박완서 작가를 추모할 방법이 있다. ‘박완서 자료실’에서 그의 문장을 음미해보는 것이다. 자료실은 구리시 인창도서관 2층에 있다. 구리시 아치울에서 생을 마감한 박완서 작가의 발자취를 담은 공간이다.
자료실 입구에는 박 작가의 작품을 필사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다. ‘박완서 필사’ 코너를 지나 자료실로 가는 길 벽면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마치 그의 삶을 따라가듯 걸으며 자료실로 들어서면 그의 등단작 ‘나목’부터 소설, 수필, 동화, 문학상 수상 작품 등 분야별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자료실 운영 시간 10:00~16:00)
올해는 ‘리멤버, 박완서’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주 토·일요일 하루에 네 번(가족 대상 : 10시·14시, 일반 대상 : 11시·15시)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박완서 작가의 주요 작품과 일생을 연결 지어 해설한다. 주제는 △소녀,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여자, 박완서 : 나목 △엄마, 박완서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노인, 박완서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네 가지다. 해설 프로그램은 박완서 자료실에서 진행되며, 구리시 문화예술과(031-550-2565)로 전화 예약을 하거나 구리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호원숙 작가
딱 알맞은 사랑 주신 어머니를 그리며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는 책 ‘박완서의 말’을 엮으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리워지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책을 펼치면 살아 계실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 생생한 목소리로 들릴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매년 열리는 박완서 작가 추모 낭독 공연에 참석하며 호 작가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번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에도 참석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작품과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을 맞이하는 작가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올리지 못했던 한 번을 제외하고 1주기부터 매년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구리시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공연은 작품 ‘자전거 도둑’이 동화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합니다. 어머니가 첫 손주를 보았을 때 쓴 작품이죠. 그야말로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자전거 도둑’에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머니를 보며 좋은 어른의 역할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머니는 어른으로서 상대에게 알맞은 사랑을 주신 분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었죠.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 사랑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북돋아주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거든요. 넘치도록 사랑을 붓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아셨죠.
2023년 ‘어른의 부재’가 트렌드 키워드로 꼽혔어요. 그래서인지 박완서 작가님이 더 그립습니다. 그만큼 좋은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 쇼츠라는 게 유행이라면서요? 저도 어떤 짧은 메시지를 보면 ‘어머 진짜 옳은 소리다’ 싶은데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휴대폰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누구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필요한 걸 배우면 좋겠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 배울 게 많아요. 사실 70세가 다 된 제 나이에도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이 옳고 그른가 망설이거나 쉽게 판단이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용기 내어 사랑을 주고, 받은 사랑에 책임지며 살면 좋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그런 것들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문학 작품 속에서도 어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영상과 달리 작품 속 인물을 보며 생각하고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어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요즘 고전을 봐요. 전에 읽었던 건데도 다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이런 게 있었구나!’ 싶어요. 그 시절 작가와 책을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며 대화하는 거죠. 어머니 작품 중에서는 ‘미망’을 추천하고 싶어요. 구한말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로, 할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지만 미래 주역이 될 손녀에게 꿈을 심어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그냥 꿈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해요. 딱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사랑이요.
“송골매 콘서트 다녀왔어.”
“오! 티켓은 어떻게 구해서?”
“○○이 아줌마 딸이 예매해줬어.”
엄마는 늘 누구네 딸, 아들 도움을 받아 공연을 보러 다녔다. 보고 싶은 콘서트가 있으면 넌지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 후딱 예매해주고선 구시렁댔다. “오픈 될 때 이야기하지! 지금 좋은 자리 없어. 예매 되게 쉬운데… 할 줄 알면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얼마나 좋아.”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소외 현상은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알려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몰라서 못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예약 필수인 취미를 즐기는 어르신을 만났다. 그는 아들, 딸,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예약을 한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사이트는 이미 전 타임 예약 마감. 가능하면 더 많이 예약하고 싶다는 분께 말했다. “예약 방법이 그렇게 어렵지가 않아요. 그걸 좀 천천히, 체계적으로 알려주면 좋을 텐데요.”
어르신은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우리 세대는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웃음)
방법은 배워요. 하지만 실전에선 안 되는걸요. 조금만 버벅대도 예약 끝이에요. 시간 되자마자 눌러야 하는데 그게 나이 들면 잘 안됩니다. 당황해서 다른 거 눌러버리고…” 주변에서 자조 섞인 이야기가 쏟아졌다.
“맞아, 맞아. 난 저번에 취소 버튼 눌렀잖아.”
다시 어르신이 말했다. “인터넷 시대니까 최적의 방법이라고 하겠지만, 우리한테는 여전히 장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순발력이 없잖아요.”
지난 명절, 엄마는 이문세 콘서트 이야길 스치듯 했다. 그는 엄마의 최애 가수. 군말 않고 얼른 예매 사이트를 열었다. ○○이 아줌마와 좋은 시간 보내길…!
한낮인데도 바다 위에 띄워진 고깃배는 정지화면처럼 가만히 멈춰 있다. 바위섬 저편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선을 고정한 채 바다를 향한 낚시꾼의 뒷모습이 한가롭다. 물때에 맞춰 바닷길이 열리면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서 당도하는 작은 섬의 기적을 날마다 마주한다.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그저 적요하기만 한 카페는 감성을 품었다.
섬이라는 음절이 전하는 서정성은 쓸쓸함과 평온함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섬 안으로 찾아드는 자발적 고립이 주는 진정한 휴식, 더 볼 것 없다. 섬의 군락 고군산군도로 떠난다.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다섯 개의 섬이 내륙과 다리로 연결된 고군산군도는 새만금방조제를 관통하며 섬으로 향한다. 시원하게 뚫린 30km가 넘는 방조제 도로가 바다를 가로질렀다. 길목마다 전망대와 쉼터가 마련돼 있고, 그중에 해넘이 휴게소는 신비로운 일출과 일몰을 보여주는 곳이다. 고군산군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고즈넉한 섬마을 야미도의 평온함도 스쳐 지나간다. 고군산군도에 닿기 전부터 가슴 확 뚫리는 풍광이 반기는 새만금방조제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다도해 절경을 한눈에, 신시도
전북 군산시 남서쪽에 위치한 고군산군도는 6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 군산의 섬 무리’라는 뜻의 고군산군도는 그 옛날 중국 사신 서긍이 고려 방문기를 남긴 견문록 ‘고려도경’에서 무리 지어 있는 섬을 보며 ‘바다 위의 성’이라고 표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천혜의 경관과 생태자원으로 고군산 8경으로 불리며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중에 가장 먼저 신시도에 닿는다. 새만금방조제와 곧바로 연결된 고군산군도의 관문이며, 군도 중에서 큰 규모에 속하는 섬이다. 섬을 둘러싼 199봉에서 월령봉과 대각산으로 이어지는 신시도 산행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코스라서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 계절이 무르익을 때면 고운 단풍이 달빛 그림자와 함께 바다에 비친다는 월영단풍은 고군산 8경에 속한다.
섬 속의 국립신시도자연휴양림은 우리나라 최초로 바닷가에 지어진 친환경 휴양림으로 매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숙박과 상관없이 입장료만 내면 휴양림 주변 탐방이 가능해서 평소에도 산책이나 트레킹을 위한 방문객들이 찾아든다. 산책로를 걸으며 만나는 달맞이 화원이나 전망대를 지나면서 마주하는 숲과 탁 트인 바다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온 이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상쾌한 공기 속에서 내다보는 저 멀리 고군산대교의 주탑과 섬들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원시적 풍광과 SNS 감성 품은 무녀도
신시도에서 곧바로 무녀도로 건너오면 따스한 섬마을 풍광이 맞아준다. 섬에 들면서 무녀도라는 지명이 혹시 김동리 소설 ‘무녀도’와 관련 있을까 생각했지만 섬 이름의 유래는 따로 있었다. 섬의 형태가 마치 장구와 술잔을 놓고 춤을 추는 무당의 모습처럼 보여 무녀도라 불렸다고 한다.
무녀도에서는 단연 쥐똥섬이 볼거리다. 섬마을 앞바다 저편으로 몇 걸음도 안 된다. 물때에 따라 바닷길이 열리면 질펀한 갯벌 사이로 섬까지 걸어가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련하다. 쥐똥섬 해안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으면 나타나는 똥섬 역시 독특하다. 약 9000만 년 전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무녀도의 똥섬은 시간이 만들어낸 지질구조를 보여준다. 똥섬을 옆에 두고 자리 잡은 펜션 아래로 연결된 데크를 따라 걸어가면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근래 들어 사람들이 무녀도를 찾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섬 앞에 시선을 끄는 노란 버스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스쿨버스를 개조한 것이다. 무녀 2구 마을버스라는 버스 카페는 서해 오션뷰가 끝내준다. 청량한 바다와 푸른 하늘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섬 풍광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답다. 이뿐 아니라 젊은 층에게 무녀도가 핫플로 소문난 데는 이국적인 버스 옆에 자리한 방탄소년단의 RM 벽화도 한몫한다. 오래된 바닷가 마을의 원시적 풍광과 함께하는 무녀도는 지금 SNS 감성이 풀풀 나는 매력 또한 품고 있다.
신선이 노닐던 섬에서 한나절, 선유도
무녀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선유도다. 예전부터 고군산군도의 섬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섬이다. 섬 북단의 봉우리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 선유도다. 이름조차 신선이 놀던 섬이라는 선유도(仙遊島)는 군도의 중심 섬이다.
겨울 끝자락인데도 해변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선유 8경 중 하나로 고운 모래가 10리나 깔려 있어서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불리는 해변 너머로 망주봉이 듬직하다. 그 옛날 억울하게 유배된 충신이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유래가 깃든,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3호인 망주봉이 물이 빠져나간 갯벌을 내려다보고 있다. 여름철엔 망주봉에서 떨어지는 빗줄기가 폭포수가 되어 시원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석양이 지는 바다가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선유낙조(仙遊落照)는 선유 8경의 으뜸이다. 요즘은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다 위에서 즐기는 짚라인이나 전기 스쿠터와 자전거, 섬 투어를 위한 유람선, 도보 산책이나 갯벌 체험 등의 재미거리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주변에 옥돌해수욕장의 선유봉 등산길과 명품 데크길도 찾아볼 만하다.
아니 온 듯 다녀가시오, 장자도와 대장봉
이제 선유도 맞은편의 장자도를 가기 위해 장자대교 위를 달려간다. 장자도는 대장도를 가기 위한 길목인데 장자도의 호떡마을이 유명해서 오가는 여행자들의 손에 호떡 하나씩 들린 걸 쉽게 본다. 장자도에 딸린 대장도는 선유도나 무녀도에 비해 작은 섬이지만 오밀조밀한 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섬 깊숙이에서 맛보는 자발적 고립의 행복을 누려볼 만한 포인트다.
고군산군도에 들어섰다면 대장도의 대장봉을 빼놓을 수 없다. 오르는 코스는 두 군데 길이 있는데, 우측 장자할머니 바위 쪽 계단길이 수월한 편이다. 비밀의 정원처럼 좁은 숲속을 걷는 듯하다가 정자 쉼터에 앉아 잠깐씩 숨을 고르고 올라야 한다. 해발 140m 정도지만 절대 만만치 않다. 정자 쉼터 기둥에 쓰인 ‘아니 온 듯 다녀가시오’ 글귀를 보면서 잠시 쉬었다가 구불길과 무섭게 경사진 계단을 다시 올라야 한다. 숲길 옆으로 바다를 향한 할머니바위는 아기를 업은 여자가 밥상을 든 모습이라고 한다.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남편이 급제하여 돌아오자 아내는 정성을 다해 상을 차려 내왔건만 남편이 데려온 소실을 보게 되었고, 서운한 마음에 그대로 굳어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숨차게 가파른 길을 오르고 섬에 담긴 이야기를 마주한다. 아시아의 숨은 명소로 CNN에서도 소개했던 고군산군도의 대장봉이다. 이윽고 마주하는 잔잔한 서해의 아스라한 섬 무리들이 자아내는 기운을 선사받는다. 땀을 식히면서 일몰 속에 잠긴 신비로운 섬 무리를 바라볼 수 있다면 더없는 행운이다.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우러진 다도해의 평화로운 풍광에 차분하게 압도당하는 순간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전국 어디서든 배달이 가능하고, 택시도 부르고, 기차 예약도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많은 어르신들이 이런 기술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누구든 4차 산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더풀플랫폼이 만들어진 계기다.
원더풀플랫폼은 어르신 돌봄 서비스를 만드는 플랫폼 회사다. 원하는 종류의 디바이스를 선택해 원더풀플랫폼의 ‘다솜K’를 탑재하면 된다. 다솜은 순우리말로 사랑을 뜻한다. 꼭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어떤 기기에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솜이를 사용하는 전국 어르신은 약 1만 명. 2023년 10월 기준 94개 지자체와 147개 기관에 보급된 다솜이를 더 많은 어르신이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더풀플랫폼의 목표다.
어르신의 말벗 ‘다솜이’
다솜이는 ‘다솜K’를 부르는 애칭이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어르신들을 위해 특화된 것이 ‘말벗 기능’이다. “보통 구글 등의 음성 명령 서비스는 기기를 부르는 ‘명령어’가 필요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대답하는 것에서 끝나는데요. 다솜이는 대답 후 다른 질문을 덧붙이기 때문에 정말 대화하듯 말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또 사용자가 부르지 않아도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한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다른 주제를 물어보기도 합니다.” 정진현 원더풀플랫폼 국내영업팀 팀장은 다솜을 만들 때 ‘대화’에 강점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다솜의 또 다른 특징은 학습한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다섯 살 손자가 있다는 걸 언급했다면, 기억해두었다가 다른 대화를 할 때도 적용한다. 어르신들의 어눌한 말투나 사투리도 학습한다. 따라서 대화를 많이 하면 할수록 다솜이는 똑똑해지고 고도화된다. 누가 다솜이와 대화를 했느냐에 따라 집집마다 다솜이의 성격이 달라진다. 쓰면 쓸수록 사람처럼 진화하는, 말 그대로 ‘말벗’이 된다. 말벗 기능은 챗GPT가 오픈되기 전부터 개발하던 것으로, 이제 5년 차가 됐다. 최근에는 챗GPT도 결합해 기능을 좀 더 다양화했다.
보고 듣는 기능도 있다. 젊은이들이야 유튜브에 검색해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원하는 콘텐츠를 검색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다솜이에게 “쫛쫛 검색해줘, 쫛쫛 노래 틀어줘”라고 말하면 된다. 음식 레시피가 궁금하면 “김치찌개 끓이는 법 알려줘”라고 하면 영상을 찾아 재생해준다. 정 팀장은 “요즘 시대에 나오는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여드린 셈”이라면서 “무엇이든 말로 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2023년 10월 기준 다솜이를 통해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기능은 콘텐츠 재생, 날씨 정보, 화상통화다.
건강관리도 다솜이로
현재 다솜이는 지자체,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등을 통해 주로 보급되고 있다. 지자체에서 대상자를 선정하면 원더풀플랫폼에서 다솜이가 탑재된 디바이스를 댁에 방문해 설치해드리고 사용 방법을 알려준다. 원더풀플랫폼은 관리자 페이지에 대화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저장한다. 어떤 어르신이 다솜이와의 대화 중에 “오늘 다리가 아프네”라고 말하고 며칠간 이런 대화가 반복될 경우 어르신을 방문할 생활지도사나 간호사에게 ‘아픈 부위 1순위 다리’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면 어르신을 방문할 때 “어르신 요즘 다리가 많이 아프시다면서요?”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또한 자주 말하는 단어를 기록하는데, 만약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자주 보인다면, 정서적 케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관리자가 확인할 수 있다.
알림 기능도 있다. 휴대폰 전용 앱을 이용하면 다솜이가 ‘어르신 오늘 보건소 방문하셔야 하는 날이에요’라는 일상 알림이나 재난 문자 등을 읽어준다. 지방의 경우 태풍이 불고 천둥이 치면 마을 방송 확성기 소리가 묻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자체의 요청을 받아 기능을 개발했다. 다솜이에게 ‘도와줘’, ‘살려줘’라고 말하면 원더풀플랫폼에서 24시간 운영하는 관제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응급 기능도 있다. 직원이 상황을 파악한 후 필요한 경우 119에 대신 신고해준다.
병원에서도 다솜이를 활용하고 있다. 큰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한 환자에게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 간호사들이 귀가 후 주의사항이나 해야 할 것들을 다솜이를 통해 알릴 수 있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을 때 긴급 호출을 요청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정신건강센터에서도 다솜이 이용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원더풀플랫폼이 집중하는 것은 ‘스마트 빌리지’ 사업이다. 지자체에서는 움직임이 있는 휴머노이드형 로봇을 복지관을 비롯해 어르신들이 자주 방문하는 장소에 보급할 계획을 갖고 있다. 원더풀플랫폼은 각 기관에 있는 로봇과 집 안의 로봇을 연결하고자 한다. 몸이 불편해 경로당에 나가지 못해도 경로당에 나와 있는 어르신들과 소통할 수 있고, 경로당끼리 노래방 대회 등 교류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4차 산업 시대에 효과적인 기능의 혜택을 어르신들도 함께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솜이에게 ‘치약이 떨어졌다’고 말하면 치약을 대신 주문해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르신 곧 치약이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 주문해드릴까요?’라고 물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엽전으로 떡볶이를 사 먹고, 방 탈출을 즐기고, 시장 재료로 만든 밀키트를 사 간다. MZ세대부터 중장년까지 전 세대가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전통시장은 더이상 장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온갖 제품과 식재료가 즐비한 좌판 사이를 헤치며 소소한 체험을 즐기는 곳이다.
◇경동시장
“오래된 공간을 활용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느낌을 줘요.” 미국 시민권자 앨리스 김(40대) 씨가 말했다. 외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오면 경동시장을 꼭 들른단다. 함께 온 칭 리(대만, 40대) 씨는 방금 체험을 마치고 받은 친환경 화분을 들고 있다. 이제 옛 극장 분위기를 살린 스타벅스 경동1960점으로 가 시간을 보낼 참이란다.
1958년 창업한 LG전자가 1960년에 문을 연 경동시장을 활성화하고자 만든 금성전파사는 열자마자 입소문을 타 하루 3000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오픈 1년 남짓 되었지만 여전히 인기가 많다. 금성전파사 직원은 “MZ세대가 전통시장을 더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과거를 추억하는 중장년 관광객도 많이 온다”고 했다. 다양한 체험을 즐기고 싶다면 경동시장으로 가보자.
※금성전파사 체험 운영시간 11:00~19:00
(고민탈출은 사전 예약해야 이용 가능)
◇수유시장
“수유시장의 식재료로 당일 생산, 당일 판매해서 ‘당당한셰프’예요. 가족이 즐기기 좋은, 술 안주하기 좋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메뉴들을 개발했죠. 1년 남짓 됐는데 아주 인기가 좋습니다.” 김대원 당당한셰프 사무국장이 설명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할머니가 밀키트를 고르고 있었다.
수유시장 내 당당한셰프 오프라인 매장에는 냉장 밀키트 4종과 냉동 밀키트 6종이 준비돼 있다.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도록 양을 늘린 꽈배기 핫도그도 있다. 하루에 얼마나 팔리는지 묻자 김 사무국장은 ‘영업비밀’ 이라며 웃었다. 밀키트는 쿠팡이츠, 네이버동네시장 장보기, 놀장 등 온라인에서도 구매 가능하다. 하지만 시장을 직접 방문해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한껏 즐긴 뒤, 마음에 드는 밀키트를 양손에 들고 전통시장의 신선함을 집까지 가져가 보는 건 어떨까.
※당당한셰프 오프라인 매장 운영시간 09:00~18:00
◇통인시장
“엄마, 엽전 주세요! 제가 낼래요!” 가족들이 엽전을 들고 통인시장 곳곳을 누빈다. 커플, 친구들과 놀러 온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한 상인은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고 말했다. 경복궁 근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통인시장 내 ‘도시락카페’에서는 1만 원을 내면 엽전 20개와 빈 도시락을 준다.
엽전은 가맹 가게에서만 쓸 수 있다. 가맹점에는 통(通)이라는 글씨와 함께 엽전 모양의 간판이 입구에 달려 있다. 카페에서 QR코드로 지도를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만두 4냥, 떡볶이 4냥, 김밥 2냥이다. 길거리 음식뿐인가. 연잎밥, 구절판도 있다. 도시락을 채웠다면 카페로 돌아와 음식을 즐기면 된다. 남은 엽전은 환불받을 수 있다. 카페에서는 컵라면, 음료 등도 엽전으로 구매 가능하다. 수저는 무상 제공. 전자레인지도 비치돼 있다. 엽전을 들고 시장의 정취를 물씬 느껴보자.
※엽전·도시락카페 이용시간 11:00~15:00 (주말·공휴일은 16시까지)
매주 월요일·셋째 주 일요일 휴무
오롯한 섬이었다. 세상의 변화로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뭍이 되어 자동차로 이어진다. 전북 부안의 계화도를 향해 달리는 새벽길에 정적만 가득하다. 도로 양옆의 들판은 어둠 속에서 박하 향기보다 짙은 기운을 뿜어내고, 새해의 쨍한 새벽 공기는 차창에 서릿발을 만들어낸다. 어스레한 불빛 저편으로 광활한 농경지와 갈대숲이 함께하고 물 빠진 갯벌도 드러난다.
광복 이후 최대의 간척 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는 계화도(界火島). 한때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식량 자급을 위한 1호 간척공사로 인접한 부안군 동진면과 방조제로 연결되었다. 바닷가에 둑을 쌓고 고인 물을 빼내니 섬은 곡창지대로 변했다. 농경지 조성이 활기를 띠고 쌀이 생산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의 계화미(米)를 브랜드화하기도 했다. 계화마을은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각종 조류가 서식하고, 겨울철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겨울을 지내기도 한다. 여전히 계화도라 불리는 섬마을에서 이제는 빼어난 운치의 새해 해맞이를 한다.
계화마을은 여느 시골과 다름없이 소박하다. 들어서자마자 바다를 막은 둑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소나무 행렬이 잔잔한 반영을 이루며 맞는다. 간척지와 마을 사이의 좁고 긴 물길의 계화조류지는 1km에 이르는 방풍림 소나무를 품었다. 언제나 온갖 철새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검푸른 새벽하늘의 구름과 수면 위로는 물결의 잔상이 신비롭다. 마을을 마주 보는 방죽의 고요함으로 차분해진다.
차츰 주변의 어둠이 옅어지고 이윽고 하늘 저편으로 불그스레한 기운이 번진다. 해 뜨기 직전의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살짝 바람이 불면서 잔잔하던 수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숨죽이며 정지된 시선은 생동감 있는 자연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짧은 순간 고요한 세상을 뒤덮은 매직이다. 단조로운 듯 반듯한 제방 위 소나무 사이를 헤치고 세상을 일깨우는 아침 해의 운치는 계화리 작은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바다 수평선 위에서 솟아오르는 동해의 일출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렇게 장엄한 해맞이를 하고 새로운 하루가 우리 모두에게 왔다.
눈부신 겨울 서정, 변산해수욕장
해돋이의 위엄으로 얻은 에너지를 장착하고 아침 햇살 반짝이는 해안길을 달린다. 조금 전 일출의 여운을 지닌 채 만난 변산해수욕장은 온 누리가 환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에서는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것은 노을밖에 없네’라고 했건만, 하루를 시작하면서부터 일출의 장엄함을 이미 보여주었고, 밀물과 썰물의 변산해수욕장 앞에선 희고 고운 모래가 눈앞에 펼쳐진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하늘을 실컷 볼 수 있는 철 지난 바닷가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두 눈에 꾹꾹 담는다. 송림으로 둘러싸인 백사장과 조화를 이루며 평온하게 휴식의 시간을 안겨주는 여름과는 다른 매력을 풍기는 겨울 바다다.
아득한 전설 속으로, 채석강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물속에 잠겨서 지금에 이르렀다. 파도에 씻기고 기온과 압력의 변화에 따라 형성된 비경을 변산 격포리에 가면 마주 보게 된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채석강’이다.
자연이 만들어온 억겁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 흔히 공룡을 떠올린다. 지질학적으로 공룡 시대보다는 비교적 짧은 약 7000만 년 전부터 형성되어온 채석강의 퇴적암이다. 지금도 암석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자연 속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켜켜이 쌓이고 겹겹이 맞물린 퇴적암 앞에 서면 그동안 자연이 이끌어온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변화무쌍한 파도의 침식을 받으며 쌓아 올린 퇴적암층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문득 아득한 전설 속의 인물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물이 가득 차오른 채석강은 층층의 아찔한 해안 절벽과 먼 바다의 풍경으로 아련하다. 이윽고 물이 빠져나가고 드러난 바닥의 넓은 암반 위로 간간이 파도가 훑다 가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그 위로 온전히 드러낸 채석강의 비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들과 분주히 해식동굴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오간다. 외변산을 대표하는 명승지다. 참고로 격포항 물때를 확인하고 간조 시간 1~2시간 전후로 방문하는 게 좋다.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절집, 내소사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 현판의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약 600m에 이르는 사철 푸른 전나무 숲길이 사랑받는 내소사. 마치 절 마당에 닿을 때까지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마련된 듯한 전나무 숲길이다. 명품 치유의 숲길로도 알려져 있다. 침엽수 특유의 맑고 그윽한 향이 경건함과 마음의 안정을 주는 통과의례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소사는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기세 좋게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과, 일주문 앞과 천왕문 뒤의 당산나무인 천년의 느티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 목적이 되기도 한다. 전나무 숲이 끝나면 벚나무길과 요사채 옆의 보리수와 산수유, 그리고 피안교부터 천왕문 가는 길의 단풍터널이 또한 그렇다. 계절마다 은은하게 자연 속에 푹 잠긴 내소사는 특히 눈 내린 설경 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으뜸이다.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는 우리가 보아야 할 곳 중에 내소사를 꼽았다. 자연을 닮은 모습이 조화를 잘 이룬 사찰이라고 했다. 특히 대웅보전의 솟을연꽃살문은 현존하는 사찰의 꽃살문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수백 년을 견뎌낸 나뭇결이 자연 그대로의 색감을 보여주어 눈여겨볼 만하다.
내소사 안에서는 무엇이든 자연스럽다. 절 마당에서 둘러보는 능가산의 산세가 낯선 느낌 없이 편안하다. 무채색의 사찰 색감이 고고하고 정갈하다. 도회인들에게 주는 한적함으로 유달리 힐링을 얻는다. 복잡한 세상에서 수습되지 못한 마음이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이곳에 오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절 이름(來蘇) 때문인지 새해 들어 찾아가 보기에 걸맞은 절집이다.
곰소염전의 겨울
염전의 소금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봄부터 가을까지다. 변산반도를 돌아보면서 철이 지났다고 곰소염전을 안 보고 갈 수는 없다. 요즘 후쿠시마 원전 방류 문제로 소금 이야기가 분분한데, 천혜의 땅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곰소염전은 겨울이 되어 쉬는 중이다. 한때 전통 소금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궁(宮)에 진상까지 했다는 곰소염전이다. 지금은 퇴락하여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품질은 최상으로 평가받는다. 군데군데 염부들이 염전을 손질하고 정리하는 모습이 보이고, 건너편 산이 염전 속으로 들어와 반영을 이룬다. 부근의 곰소항으로 가면 곰소젓갈단지에서 질 좋은 젓갈을 구입하고, 감칠맛 나는 젓갈정식을 맛볼 수 있다.
자연의 집, 변산반도 생태탐방원에서 머물다
채석강에서 자동차로 5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변산반도 생태탐방원은 국립공원공단의 체류형 생태관광 시설이다. 숙소 창밖으로 서해의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호젓한 자연 속 숙소에서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고, 노을이나 별을 볼 수도 있다. 2023년 7월에 개원해서 내부 시설이나 집기 등이 깔끔하고, 저렴한 이용료까지 금상첨화다. 숙소를 보유한 본관 건물과 언덕 위 자연의 집이라는 독채 객실의 풍광이나 환경 또한 수준급이다. ‘숲나들e’에서 예약하는 전국 자연휴양림과는 달리 이곳은 국립공원 생태탐방원 홈페이지에서 매월 1일 예약이 시작된다. 생태 프로그램을 필수로 예약해야만 객실 예약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최근 고령자의 고립을 막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간호 혹은 케어 서비스가 아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마치 손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학생들이 일상을 돕는 서비스다.
일본의 고령자들은 손주와 소통하며 디지털을 배운다. 소통을 위한 방법으로 직접 만나는 이들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들이 꽤 늘었다. 하루메쿠 생활방식 시니어 연구소(ハルメク 生きかた上手研究所)의 '시니어 여성과 손주의 관계에 관한 의식과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을 활용한 소통이 늘고 있다.
'직접 만난다'는 응답이 99.2%로 가장 많았지만 '전화'가 77.1%, 'LINE'과 '메일'이 57.5%, 'zoom 등의 온라인 통화'가 52.3%로 이어졌다.(복수응답) 이전 조사와 비교하면 'LINE'과 '메일'은 10.5% 늘었고, '온라인 통화'도 20.5% 증가했다.
손주와 소통하면서 손주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는 시니어는 56.4%, 손주에게 배우는 시니어는 42.6%였다. 손주에게 배우는 내용으로는 최근 학교 교육과 지식(34.7%), 게임(30.5%), 애니메이션과 만화(30.5%), 스마트폰이나 PC 사용법(20.9%) 순이었다. 손주로부터 디지털 관련 정보를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주가 없는 고령자는 어떨까? 손주의 역할을 하는 대학생이 방문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플랫폼이 있다. 2020년 창업한 이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못토메이토’(もっとメイト)다.
손주 세대의 ‘친구 서비스’
베스트 파트너(best partner)라는 의미의 ‘못토메이토’는 2020년 ‘짝궁 서비스’를 선보였다. 손주 뻘 되는 대학생들이 독거 고령자의 ‘친구’가 되어주는 서비스다. 못토메이토를 운영하는 미하루(MIHARU)의 아카기마도카(赤木円香) 대표는 고령자의 고독감을 해소해주고,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기존에 있는 가사 대행 혹은 간호 서비스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해소하고 싶었단다.
못토메이토의 친구들은 고령자를 방문해 이야기 파트너, 스마트폰 강의, 외출 동행, 필요 서류 작성, 집안 정리, 쇼핑 지원, 온라인 예약 대행 등을 돕는다. 서비스 기본요금은 시간당 5500엔(약 5만 원)이다. 시간을 연장하면 추가 비용을 낸다. 비용이 적지 않지만, 재 신청률은 90%에 이른다.
못토메이토 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면접 통과율은 17%에 불과하다고. 면접에 통과하고도 미하루가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행동지침 이해, 호스피탈리티 연수, 업무 연수를 마친 뒤 3회의 동행 연수를 마쳐야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친구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은 견습생부터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로 직위를 부여받고, 수준에 따라 기본요금의 30~40%를 받아간다.
친구는 고객 진료기록 카드를 가지고 방문하는데, 카드에는 대화 소재 140여 개 문항이 적혀있고, 방문마다 3~4개의 문항 답변을 채워야 한다. 미하루는 이 정보를 데이터화해서 고객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령자의 고민과 가치관을 누적해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미하루의 ‘못토메이토’는 닛케이에서 발간하는 잡지에서 ‘미래의 시장을 만드는 100대 기업’(2023)으로 선정됐다. 또한 여러 투자자로부터 6000만 엔의 투자를 받았다.
간호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고령자들은 ‘간호 인력’이 집으로 와 돌봄을 받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마도카 대표가 미하루를 창업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나 가족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고립되지 않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 못토메이토의 사명이다.
마도카 대표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자 3600만 명 중 절반은 노화에 의해 신체 능력 저하를 느끼는 프레일(frail) 단계에 있지만, 핵가족화로 인해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이들이 많다”면서 “간호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립하고 있기에 건강, 경제력, 거처, 자존심 네 가지를 유지하면서 고령자의 건강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프레일 단계의 고령자 지원이 부족한 만큼 못토메이토가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미국 손주와 노인의 우정 '파파'
손주뻘인 대학생과 고령자를 매칭해 고령자를 돌보는 플랫폼이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파파'(PaPa)라는 플랫폼이 2017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파파에서 노인과 매칭 된 대학생은 노인과 병원에 동행하거나, 가사를 돕거나, 디지털 기술을 가르쳐준다.
파파를 만든 대표 앤드류파커는 '고령자의 주변에 있고, 동료가 되어주는 존재'로서 대학생들이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서비스를 출시한 이유는 고령자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일본 매체들이 못토메이토를 조명한 것은 미국처럼 일본에도 이런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앤드류 파커 대표는 고령화가 많이 진전된 일본에서 기회를 봤다고 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는 만큼, 일본의 정부나 지자체 기관과 협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단양은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북도다. 하지만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동쪽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남쪽으로 경상북도 예천군과 문경시, 서쪽으로 충청북도 제천시와 접해 있어서 주변과 연계한 여행을 계획할 때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단양의 자연은 짓누르던 일상의 무게를 날려버리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단양의 깊은 산과 계곡이 주는 힐링이 더할 나위 없다. 계절이 바뀌어가는 자연 속에서 한시름 내려놓고 푹 쉴 수 있는 푸근함 그 자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가게 주인이나 지나가는 분들 모두 선량하고 친절해서,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인 듯 느끼게 해주었다.
태풍, 시루섬의 기적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나 순항만 이어질 수 있을까. 지난여름의 장마와 더위, 그리고 무시무시한 태풍은 평온했던 일상을 바꿔놓고 사라졌다. 이처럼 해마다 맞닥뜨리는 장마와 태풍으로 무수한 아픔이 기억 속에 남겨진다. 1972년 8월 이곳 단양의 남한강 유역에 위치한 시루섬 마을에도 태풍이 강타했다.
당시 25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던 시루섬을 삼킨 태풍 ‘베티’. 남한강의 갑작스러운 범람이 시작되자 마을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빗줄기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모두 피신했다. 높이 6m, 지름 5m짜리 물탱크에 올라선 마을 주민은 198명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로 팔짱을 낀 채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고립된 상태로 14시간을 버텼다. 이때 엄마가 안고 있던 백일이 지난 아기가 압박에 못 이겨 끝내 숨을 거뒀다. 사람들이 동요하면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 처지여서 혼자만 슬픔을 삼키던 아기 엄마의 이야기를 시루섬은 기억한다.
어쩌면 살아남기 어려울 수도 있었던 14시간의 절박한 사투였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서로 손을 잡고 버텨낸 협동·단결·인내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단양군에서는 시루섬의 기적을 콘텐츠화했다. 이제는 시루섬의 차분해진 자연 속에서 되짚어보는 안타까운 이야기와 함께 현재를 본다. 부근에 이끼터널과 수양개빛터널, 잔도길과 만천하스카이워크가 있다. 느림보 강물 길을 따라 천천히 돌아보며 조용히 자연을 즐겨볼 산책 코스다.
신선이 노닐던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이어서 단양 8경 중 제1경인 하선암, 제2경인 중선암, 제3경인 상선암을 돌아볼 차례다. 자동차로 달리면 바로바로 이어져 있어서 느긋하게 단양의 비경을 구경할 수 있다. 조약돌 탑이 즐비한 하선암 계곡의 느릿한 물 흐름을 바라보는 여행자들이 마냥 여유롭기만 하다. 출렁다리가 이어져 있는 중선암 숲은 고요하다. 출렁다리 앞 벤치에 앉아 가게 주인과 단양의 자연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하기도 하고 중선암을 찾는 이들과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참 쉴 수도 있으니, 이 아니 느긋할 수가.
중선암에서 상선암으로 가는 길목에 특이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 길 옆으로 소형 동물 옹벽 탈출 시설이다. 도로 건설 등으로 많은 소형 동물이 측구 등에 빠져 죽기도 한다. 이때 소형 동물의 탈출이 어려워, 배수관에 경사로를 설치하여 소형 동물의 탈출을 도와주는 시설이다. 도로를 횡단하는 동물이 높은 옹벽에 막혀 탈출하지 못해 로드킬당한 모습을 가끔 본 적 있다. 이렇게 섬세하고 친절한 인공 구조물이라니, 고마울 따름이다.
상선암 계곡에서 마을로 오르면 집집마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가 빨갛게 잘 마르고 있다. 이런 태양초라면 김치도 맛있고 어떤 요리든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옆 마당의 평상에 고사리, 다래순, 오미자 진액, 취나물 등을 소쿠리에 담아놓고 가격을 적어놓았다. 3000원, 5000원… 이른바 무인 상점이다. 시골 분들의 정성이 담긴 식재료 맛은 남다를 듯하다. 지나던 마을 어르신이 앞산을 바라보면서 예부터 신선이 머물렀다는 전설의 상선암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신다. 덕분에 단양의 산천에 얽힌 구수한 이야기도 듣는다. 자신이 사는 곳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들려줄 수 있는 자부심은 매우 멋지다.
오랜 시간 속의 풍경, 사인암
단원 김홍도가 이곳 겹겹의 격자무늬인 사인암을 그리려고 붓을 잡고 1년여를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절경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배경을 이룬다. 사인암은 약 50m 높이의 멋진 바위 아래 남조천이라는 못이 함께하고 있어서,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 안에 들어가서 물장구도 치고 물고기도 잡는다. 거기에 산 정상의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단양 8경 중 4경에 속한다.
바로 옆으로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 청련암을 둘러보아야 한다. 청련암은 사인암과 맞닿은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속리산의 말사다. 팔작지붕 구조의 극락 칠성각이 차분히 맞는다. 무엇보다 사인암 뒤편 암반지대 사이의 삼성각이 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계단 옆으로 많은 이들의 염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단양 도담삼봉(島潭三峰)의 풍류
단양 여행 중이라면 도담삼봉은 기본 코스인 양 당연히 들를 곳으로 생각한다. 많이 알려져 있고 몇 번씩 보았던 곳이어도 단양 시내에서 가까워 다시 한번 들러보지 않을 수 없다. 남한강이 휘도는 곳에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반영을 이루어 그 형상만으로도 눈에 담아둘 만하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이곳을 사랑했다 하니, 옛 시절의 풍류도 떠올려본다. 도담삼봉 하류의 석문까지 돌아보고, 여유롭다면 유람선과 모터보트의 즐거움도 챙겨보자.
참고로 단양팔경은 단양군의 8군데 명승지로, 단양을 중심으로 12km 내외에 모두 자리 잡고 있다.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사인암, 구담봉, 옥순봉, 도담삼봉, 석문이다.
구경(九景)시장의 마늘 맛 이야기
숙소로 가는 길에 단양 구경시장을 지나칠 수 없다. 단양팔경에 이은 아홉 번째 볼거리라는 뜻의 구경(九景)시장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오간다. 구경시장은 상가건물형의 중형 시장으로, 장날은 매월 1일과 6일이다. 길 건너 맞은편에 주차장이 있다. 시장 근처에 드니 마늘 냄새가 확 풍긴다. 마늘로 유명한 단양임을 절로 실감한다. 입구부터 마늘이 주렁주렁, 마늘순대, 마늘만두, 마늘닭강정, 마늘빵, 마늘전병 등 끝도 없는 마늘 먹거리다. 몇 군데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이루고 있다.
숙소, 소선암 자연휴양림으로
자연휴양림은 각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PC나 모바일 앱으로 ‘숲나들e’ 사이트에서 예약 가능하다. 비용이 대체로 저렴해 매월 예약창이 열리면 재빨리 예약해야 한다. 각기 차이는 있지만 신청 시 경쟁률이 높다.
단양 선암계곡 가장자리에 자리한 소선암 자연휴양림은 숲속의 집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산중이어서 숙소로 들어가는 길이 마치 속세를 벗어나는 기분이다. 자연의 풍경 속에 잠겨 마음껏 몸에 생기를 집어넣을 기회다.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은 자연스럽게 숲 놀이터와 물놀이장이 된다. 휴양림 안에 두악산 등산로가 연결되었고, 유아숲체험관과 목재체험관도 있다. 숲 내부의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며 평온하게 이곳에서만 시간을 보내도 문제없다.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으며 고요한 숲에 푹 잠겼다.
글자를 쓰는 게 아닌 그린다고 말하는 사람. 한글 디자이너 이용제(51)의 이야기다. 활자를 연구하고 그려온 지도 어언 30년. 절반인 15년은 계원예술대학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 그에게 활자는 생활이자 인생이며, 존재의 이유다. 50이 되던 해 탄생시킨 글꼴 ‘천명’처럼 한글을 그리고, 이를 알리는 일을 하늘의 뜻으로 여기며 자연인 이용제의 삶도 그려나가고 있다.
이용제 교수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재학 시절부터 글꼴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한글 디자인 분야는 불모지와 같았다. 사람들은 별다른 인식 없이 문서 프로그램에 깔린 서체들을 사용했고, 폰트 파일을 자유롭게 주고받았다. 한글 디자인에 관한 교과서 같은 서적도 거의 없었고, 전문 정보도 찾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기생 중 한글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은 이 교수뿐이었다니, 개척자의 길을 택한 셈이다. 수십 년간 한눈팔지 않고 정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둔해서인 것 같다. 좋아하는 걸 하면 주변을 잘 안 보는 편”이라고 답했다. 한편 주변은 꽤 달라졌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무료 폰트·나눔 글꼴의 등장으로 유료 폰트, 즉 돈을 내고 글꼴을 사용한다는 인식이 높아진 점이다. 그밖에 이 교수가 체감하는 변화는 무엇일까?
“참 안 변한 것 같기도 한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꽤 많이 변했더라고요. 일단 글꼴 제작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개인도 폰트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거죠. 덕분에 완성도에 신경 쓴 개성 넘치는 폰트들이 다양하게 탄생한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는 저작권, 정확하게는 글꼴 사용료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다는 겁니다. 예전엔 ‘폰트를 왜 돈 주고 쓰냐’라고들 했다면, 요즘엔 ‘폰트를 막 썼다간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겠구나’ 여기는 것 같아요. 유통 측면에서 보면 전에는 패키지 형태 구매로 가격 부담이 있었지만, 요즘은 필요한 글꼴만 월 구독 형태로도 판매하죠. 그런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공공재와 같은 활자, 그 본질은 ‘쓰임’
이렇듯 기분 좋은 변화에 이 교수도 일조했을 테다. 한글 디자인에 대해서라면 대학 강단 이외에도 전국 팔도를 누비며 알리고자 했고, 관련 내용을 담은 단행본과 잡지 출판, 온라인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한 콘텐츠 공유까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모습에는 열정이라는 단어가 맞춤해 보이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에게 열정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듯해요. 어떤 강한 에너지를 발휘한다기보다는 그냥 좋아서 계속하고 있거든요. 물론 초반에는 재미있어서 좋아했는데, 이제는 이 일이 소중하고 중요해서 좋은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힘들고 괴로운 시기도 있었죠. 선배들이 ‘밥은 먹고사냐’고 인사치레할 정도로 열악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유로, 내가 힘들다고 방치할 수는 없었어요. 좋아서 이어왔지만 계속 이 길을 걷다 보니 책임감이라는 게 생기더군요. 후배들이, 학생들이 ‘저 한글 디자이너 될래요’ 했을 때 그들이 먹고살 토대는 내가 마련해줘야죠.”
아직 그가 활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바람’체를 만들 당시 텀블벅 펀딩을 통해 글꼴 제작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대개 펀딩은 후원금을 목표로 하지만, 그보다는 한글 디자이너들의 노고와 처한 환경을 알리기 위함이 더 컸다. 실제 글꼴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적게는 6개월에서 1년이 걸리고, 이를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작업까지 포함하면 평생에 걸친 작업이 될 때도 있다. 게다가 영어의 경우 대소문자만 고려해 52자만 디자인하면 되지만,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지는 한글은 최소 2350자에서 많게는 1만 자 이상 그려야 한다. 때론 폰트 제작비로 큰 금액을 제시받기도 하지만, 완성도를 갖출 시간 확보가 어렵다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공들이는 작업에서 그가 가장 염두에 두는 건 바로 활자의 쓰임이다. 그게 곧 활자의 본질과 같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글자와 활자는 좀 다르죠. 활자는 인쇄를 위한 거니까요. 그런 활자 디자인에서 쓰임을 빼면 만들 이유가 없어요. 활자를 통해 어떤 글을 인쇄한다는 건 그게 지식이든 정보든 다수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함이잖아요. 단순히 보관이나 기록의 용도라면 필사본이나 복사본을 제작하면 되죠. 활자의 본질은 필사의 한계를 넘어서 대량으로 인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공공재라고 봐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 쓰임을 절대 배제할 수 없어요.”
좋은 글꼴, 가독성만 보지 말아야
쓰임을 고민하며 탄생시킨 글꼴들.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떤 점을 고려해 선택해야 할까? 앞서 이 교수가 언급했듯 읽을거리를 염두에 둔 활자이기에 흔히 가독성을 따질 때가 많다. 가끔 가독성이 높아야 좋은 글꼴이라 평하기도 하는데, 이 교수는 다소 협소한 견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가독성처럼 활자의 기능적인 부분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좋겠어요. 가령 어떤 매체나 대상에 적합한 가독성을 갖춘 글꼴만 논한다면, 대한민국에 폰트 50개 정도만 있으면 돼요. 그럼에도 우리는 왜 자꾸 새로운 폰트를 만드는 걸까요? 그건 한글 디자인도 문화이기 때문이죠. 오랜 역사 속에서 비슷한 서사의 소설이 계속 나오고 같은 장르의 노래가 계속 나오는 것처럼, 활자도 마찬가지예요. 가령 과거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옛 글자체가 있듯, 현재를 반영하는 새 글꼴도 필요한 거죠. 한글 디자인도 결국 창작인데, 문화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면 창작은 존재할 수 없어요.”
또 한 가지 사용자들이 살펴볼 부분은 ‘활자의 인상’이라 말했다. 즉 특정 글꼴을 썼을 때 나타나는 분위기나 느낌이다. 같은 글자라도 어떤 글꼴을 쓰느냐에 따라 장르와 메시지가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다시 창작자의 입장으로 돌아오면, 이러한 활자의 인상을 감안해 글꼴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때론 창작자의 생각과 의식이 간접적으로 담기기도 한다. 이 교수가 만든 ‘생명’체도 그중 하나다.
“창작자마다 다르긴 하지만, 저는 이름을 먼저 생각하고 글자를 그리는 편이에요. 그렇게 큰 틀과 방향을 마련해두고 인상을 신경 쓰며 작업합니다. ‘생명’ 같은 경우 사실 처음 떠올린 건 ‘맑은 물’이었어요. ‘그냥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 같은 글자체였으면 좋겠다. 물은 바닷물도 있고 강물도 있고 냇물도 있지만, 이건 계곡 상류에서 어떤 돌 위에 똑똑 떨어지는, 부드럽지만 단단한 느낌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만들었죠. 그러던 중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이후 ‘생명’이라 바꾸게 됐어요. 우리는 ‘생명’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너무 쉽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죠.”
이용제를 한글 디자이너로 대중에 알린 건 ‘바람’체다. 가수 아이유의 ‘꽃갈피’ 앨범에 쓰이기도 했는데,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세로쓰기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세로쓰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는 주로 가로쓰기를 하고, 의뢰받는 작업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의심이 들더군요. 가로쓰기에 좋은 서체가 세로쓰기에도 좋을까? 가로쓰기 글꼴의 장점과 특징이 세로쓰기에도 적용될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탐구하고 알게 된 것들을 통해 확인해보기로 한 거죠. 이후로는 모든 작업을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로 구분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세분화에 세분화를 거쳐 진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공이 더 들 수밖에 없었죠. 누군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제 눈에 달리 보이기 시작한 걸 외면하고 이전과 똑같이 작업할 순 없었어요. 창작자에게 그런 계기를 마련해준 ‘꽃길’체가 제 인생의 전환점과도 같습니다. 그게 세로쓰기 글꼴의 첫걸음이었으니까요.”
‘존재’의 탄생, 올해부터 다시 시작
‘꽃길’체는 그 이름처럼 이 교수의 삶에 새로운 꽃길을 내어준 듯 보였다. 이름 붙이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는 그는 중년 이후 고민이나 깨달음 등을 글꼴명에 반영하게 됐단다. 그 시작은 ‘존재’였다.
“예전엔 정말 작업 벌레였어요. 하루는 아내가 ‘당신 머릿속에 가족은 있냐’고 하는데, 그 말이 되게 마음 아프더라고요. 당시 어머니께서도 건강이 좋지 않으실 때였거든요. 그동안 교육자로, 창작자로 이용제는 그럭저럭 열심히 살았는데, 한 가정의 자연인 이용제는 빵점이었던 거죠. 그렇게 나를 되돌아보고 고민하며 ‘존재’를 작업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50세가 되던 해에 ‘천명’을 그렸어요. 흔히 쉰을 지천명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착안한 것이죠. 그 뒤에는 ‘해’(楷)를 작업했는데, 모범이라는 뜻의 한자예요. 쭉 엮어보면 ‘내 존재의 이유는 모범이 되는 활자체를 제시하는 것, 그것이 나의 천명’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더군요. 한글 디자이너로서의 목표를 묻는다면 그것이라 할 수 있겠어요.”
앞으로의 여생도 창작자의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는 이 교수다. 그는 특별히 올해를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아 ‘초(初)해’로 삼았다. 중년 이후 찾아온 고민들이 정리되고, 존재의 이유를 깨닫고 나니 뭔가 다시 출발점에 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지금껏 해온 활동을 60세 정도까지는 이어가려고 해요. 그 이후로는 직업인이나 사회인으로서의 이용제는 조금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물론 작업인, 창작자로서의 이용제는 계속될 거예요. 그건 죽을 때까지 남을 제 모습이라고 봐야죠. 계속 활자를 작업해보니 삶과 비슷한 부분이 많더군요. 활자가 존재하는 이유, 내가 존재하는 이유, 맥이 닿은 부분도 있고요. 완성된 활자를 고쳐가며 더 완벽해지게끔 노력하고, 그 쓰임과 시대에 따라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내듯 저 또한 그렇게 다듬어지고 변화해가며 성장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가오는 한글날. 한글 디자이너에게 명절과도 같은 날일 테다. 이미 빼곡한 스케줄로 쉴 틈 없는 10월이 예약된 이 교수다. 그는 한글날을 맞아 한 가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동안 한글날을 대하는 대중의 시각을 보면, 한글을 한국어와 혼동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글을 문자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음성 언어를 표기하는 하나의 도구처럼 여기는 거죠. 한글 디자이너로서 그 부분이 참 아쉽습니다. 한글은 굉장히 뛰어난 창작의 결과인데, 애초에 창작자인 세종대왕이 누가 언제 어떻게 쓸 것이냐, 즉 쓰임을 염두에 뒀기에 가능했다고 보거든요. 저 또한 그런 세종대왕의 마음과 정신을 새기려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창작자만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의미가 없죠. 제가 만든 글꼴이 사용하는 사람, 우리 사회와 문화, 나아가 자연에도 도움이 됐으면 해요. 그게 바로 ‘좋은 글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9월을 맞아 지역별 가을 축제와 함께 다채로운 체험 부스를 곳곳에서 운영한다. 휴양림 인근 9월 행사와 더불어 시니어 전용 우선예약 추첨 가능한 휴양림 목록을 정리해봤다.
경기도 양평군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은 아세안 10개국 전통가옥을 주제로 조성된 휴양림으로, 이국적인 외관으로 눈길을 끈다. 휴양림 주변에서는 9월 24일부터 25일까지 양일간 ‘2023 양주 천일홍 축제’를 벌일 예정이다. 대규모의 천일홍 군락지 외에도 핑크뮬리, 댑싸리, 가우리 등 50여 종 꽃들의 향연이 기대된다. 행사기간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에서는 베트남 전통 장난감 ‘쭈온쭈온’ 만들기 체험과 아세안 10개국 문화를 소개할 예정이다.
홍삼 특구로 알려진 전라북도 진안군에서는 9월 22일부터 9월 24일까지 마이산 북부 일원(마이돈테마공원)에서 ‘2023 진안홍삼 축제’가 진행된다. 행사 기간 내 국립운장산자연휴양림에서는 노약자 대상 숲나들e 예약 방법 안내와 휴양림 소개, 산림문화 프로그램 홍보하고, 국민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규제혁신 현장지원센터를 운영한다.
2019년 4월 무의대교 개통으로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아진 무의도 국립무의도자연휴양림에서는 지역 상생 및 관광 활성화를 위한 갯벌 체험행사를 마련한다. 9월 2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약 1개월간 진행되며, 포내어촌체험마을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휴양림 이용고객들은 갯벌 체험 할인권(30%)을 받아볼 수 있다.
휴양림 방문을 희망한다면 ‘숲나들e’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신청해야 한다. 인기기 많은 곳은 금세 예약이 차기 때문에 관심 가는 곳이 있다면 서두르는 편이 좋다. 휴양림 중에는 65세 이상 시니어(실버)를 대상으로 우선예약 추첨제를 진행하는 곳들도 있다. 실버전용 우선예약 추첨제를 이용하려면, 주민등록상 나이가 만 65세 이상이라야 한다. 매달 4일 오전 9시부터 8일 오후 6시까지, 실버전용 전화번호(1800-9448)로 직접 신청할 수 있다. 당첨자는 매달 당첨자 발표 매달 13일 오전 10시 숲나들e 공지사항 및 알림톡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