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예정됐던 외국인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이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범사업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한국에 입국해 서울에서 배정된 가정에 출퇴근하는 방식이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제안했다. 이후 서울시와 고용부가 협의 후 지난해 12월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지연됐다. 시범사업은 심층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규모인 100명으로 서울시에서 운영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과 관련한 사안은 다음달 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3개가 구성되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구체적 현안들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정책방향은 이달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현재 돌봄서비스 인력의 수급 불균형과 비용 부담 증가는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돌봄서비스 인력난 완화를 위해 내국인 노동자의 종사를 유도하는 것은 처우 개선 등으로 비용 부담이 되레 늘어날 가능성이 크고, ICT, 로봇 등의 첨단 기술은 적기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봤다. 외국인 노동자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인력도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받는 외국인 근로자의 최저임금 문제와 이들 인력에 대한 관리 방안이다. 입국 후 타 업종으로 이탈한다던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보고서는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 방식으로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과 고용허가제 확대와 돌봄서비스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우회하기 위한 사적 계약 방식은 사용자가 ‘입주’를 제공하지 않으면 숙소와 관리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보고서는 사용자조합이 설립돼 공동숙소를 설립하는 대안을 제시했으나, 결국 관리 공백을 완전히 해결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사적계약 방식은 많은 돌봄 인력이 필요한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 등에서는 접근 불가능한 방법이라는 것도 문제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노동계의 반발이 커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에도 최저임금 업종별, 지역별 차등 논의가 있었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이정식 장관은 27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수용성 높은 결론을 낼 것”이라며 돌파를 선언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당장 노인 돌봄 인력 수급에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다 줄 지는 미지수다. 당장 시범사업에도 직장 경력을 유지하며 육아 부담을 지고 있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부모, 임산부 등이 우선 이용 대상으로 선정됐다. 시범사업 서비스 제공기관 모집 공고에는 가사서비스를 가구 구성원의 보호‧양육의 경우 만 12세 이하 아동 대상 육아 관련 서비스를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노인 돌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생을 같이 가는 사람이죠.”
박건우 교수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치매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단다.
박건우 교수는 치매·파킨슨병·소뇌위축증 분야의 권위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신경과 전문의를 모두 취득하고 치매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돌보고 있다. 치매 예방과 조기 발견,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과 가족 치유에 앞장선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인의 가치’를 보존해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인의 가치는 무엇인가
박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신경·뇌·심리를 공부하는 의사들과 함께 고려대학교에 지혜과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인지장애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노인의 가치란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다.
“2000년대 당시에도 지금처럼 노인 인구가 증가해 고령화사회가 된다, 연금도 건강보험 재정도 고갈된다, 이런 말이 계속 나왔어요. 환갑을 맞아 잔치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가는 자체가 마치 사회에 재앙이 되는 것처럼 묘사돼요. 그러니 나이 들어 뭐하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나이 드는 게 부끄러워지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왜 건강하게 살려고 할까요? 나이 들어 건강한 내 자신이 사회에서 재앙이라니 모순 아니에요? 저는 의사인데 환자를 열심히 살려서 건강하게 만들었더니, 사회의 재앙을 양산하는 꼴이 된 거예요.”
과거에 우리는 왜 환갑을 축하했을까. 노인이 된다는 건 축복일까, 재앙일까.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 박 교수는 수많은 인지장애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이 듦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가 노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이 들면서 더 나아지는 능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은 무슨 일이 생기면 포털 사이트에 묻지만, 예전에는 큰일이 생기면 동네 어른한테 물어봤어요. 어른에게 무언가 묻는다는 건, 그의 경험에 기반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물어보는 거거든요. 현대에 와서 속도나 효율을 중요시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결국 삶이 무너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옛 마을 어른의 그 경험을 우리는 ‘지혜’라고 정의하자 했죠.”
사람의 정신·인지 활동이 건강하게 지속되면 그 사람이 건강한 경험을 누적하게 되고, 그가 겪은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사회에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축적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경험을 존경하는 사회가 된다면, 사회도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려면 건강한 지혜가 필요하니까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성숙을 이끄는 여러 방법을 연구했다. 지혜과학연구소의 탄생 이유다.
지혜가 없어지는 병, 치매
박건우 교수는 치매를 ‘지혜가 없어지는 병’이라고 했다. 운동 능력이나 정신 능력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혜 능력이 사라져 어리석은 상태가 되는 것이 치매라고 봤다. 박 교수는 치매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운동과 관계’라고 했다.
“뇌는 자극이 들어왔을 때 반응하는 기관이에요. 집 안에 멍하게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운동을 하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한 일원이 되도록 지속시켜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결속력과 치매에 대한 내성이 강력해야 사회가 치매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의술의 발달은 심장·폐 등 신체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뇌는 바꿀 수 없다. 따라서 박 교수는 뇌를 오래도록 건강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뇌를 오래 쓰면 치매나 인지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치매는 자극을 받았을 때 좀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죽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내가 알던 반응이 아니라고 해서 치매 노인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치매라는 질병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져요. 85세가 넘으면 3명 중 1명이 치매 환자가 됩니다. 그저 다르다고만 볼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치매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치매 환자가 지혜를 유지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건우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을 걱정했다. 치매 환자가 카페나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도록 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돕는 일본 사례가 종종 언급되는데, 그는 이마저도 지역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면 힘들다고 봤다. “가족으로 묶인 관계가 혈연, 지역으로 묶인 관계가 지연인데, 가족은 해체되고 지역도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박 교수는 ‘우리’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는 것을 걱정했다.
“기댈 수 있는 사람과 오래 함께 사는 게 참 중요합니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데요. 치매뿐 아니라 어떤 질병이든 혼자 살 때 병의 진행이 더 빨라집니다.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가 엄청난 차이를 가져와요. 뇌세포도 그렇거든요. 여러 가지로 붙어 있어야 떨어지지 않는데 결속력이 약해지면 금방 끊어져요. 우리 동네, 우리 가족이라는 개념이 점차 약해지니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도 점차 줄어들고 있죠.”
박건우 교수는 그래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결국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휴먼 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질병이 있더라도 존엄성을 가지고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의사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문자로 ‘선생님 약 주세요’라고 하는 게 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그저 약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에요. 스러져가는 환자의 삶을 함께 가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진찰하면서 주고받는 대화가 있어야 하는데, 서로가 반응하지 않으면 치료가 되지 않아요.”
치매 환자는 기억을 점차 잃어가기에 언젠가는 깨어지는 관계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관계는 더 오래 가더라는 걸 오랜 경험으로 깨달았다. 병원을 방문한 보호자들이 “다 못 알아보는데 그래도 선생님은 알아보세요”라고 할 때, 역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 이상 병원을 방문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환자에게 주간보호센터라도 꼭 다니시라 당부한다.
기억이 잘린 사람
치매안심센터가 생기면서 치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치매라는 병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박건우 교수는 치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볼게요. 사고로 다리가 잘렸다고 합시다. 그 사람의 걸음걸이는 어떨까요? 많이 다르겠죠. 우리는 다리가 잘린 사람의 걸음을 보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치매 환자는 기억이 잘린 사람이에요. 치매 환자에게는 ‘집이 어디세요?’라고 한마디 물어봐 주는 것이 절뚝거리는 사람을 부축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말 한마디가 치매 환자의 행동을 정말 많이 바꿔요. 기억의 어느 한 부분을 찔러줌으로써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이 돌아오는 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무섭고 이상하다고 치매 환자를 도우려 하지 않아요.”
박 교수는 치매에 걸려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특히 120세까지 사는 시대가 되면 치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질병이 된다고 했다. 에이즈가 과거에는 사망하는 병인 줄 알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만성병처럼 취급되듯, 치매 역시 이른 시일 내에 만성병이 될 거라고 본다.
“배회하는 치매 환자를 만나면 경찰서에 꼭 인계해주세요. 치매안심센터에서 발부한 배회 인식표(보통 옷깃 안쪽에 붙어 있다)나 지문으로 환자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치매안심센터에 꼭 가보세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스스로 혹은 가족의 치매가 의심될 때 이를 숨기려 하지 말고 병원에 꼭 들르시길 당부합니다. 치매의 원인에 따라 치료되는 것도 있고, 오랫동안 관리해야 하는 것이 있고, 계속 나빠지는 것도 있습니다. 원인을 알면 대책을 세울 수 있는데, ‘병원에 가도 해주는 게 없다더라’며 진료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또한 그는 요양 시설에서 생활하는 치매 환자들의 행동장애를 질병 증상 중 하나로 이해해주길 당부했다. 논란이 되는 치매 환자의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병의 증상일 수 있다는 것.
“파킨슨 환자의 경우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증가하는 약물을 복용하는데, 이때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이런 경우는 약을 잘 조절하면 됩니다. 치매 환자는 본능을 눌러주는 뇌피질의 능력이 점차 없어집니다. 그러니 아이처럼 자신의 욕망과 본능을 그대로 이야기하게 돼요. 욕을 하기도 하고 바지를 내리기도 하죠. 그런데 이 환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동인지는 조금 살펴봐야 합니다. 치매 환자의 성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은 것 같아요.”
노인을 존중하는 사회
지혜과학연구소가 생긴 지 20년이 넘었지만 안타깝게도 노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박 교수는 노인이 설 자리가 더욱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요즘은 사회의 방향성을 어른이 아니라 AI에게 묻잖아요. 나이 든 사람들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판단하는데, 오히려 그런 AI나 로봇이 생산성을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요즘 시대의 노인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장기를 겪은 사람들이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의 70대는 부모를 부양했던 세대다. 5060세대는 유례없는 부를 쌓았다. 박건우 교수는 노인이 될 세대가 어떤 생활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가 영향을 받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노인은 은퇴 후에 재산을 물려주고 빈털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노인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요즘이기에, 경제력마저 없어지면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 취급할 걸 잘 알기에, 무조건 자식에게 부를 이전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거라 본다. 그렇기에 더더욱 노인들이 지혜를 더 오래 유지하고, 그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우리는 120세를 사는 시대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개척자 입장에서는 참 힘들지만, 언젠가는 라이프사이클이 120년인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시대가 올 거예요. 오래 사는 건 성공했고,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관건이죠. 건강한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젊은 세대라면 앞으로 4명 중 1명이 노인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예요. 그러니 지금부터 노인에 대한 가치관을 잘 갖춰야 해요.”
박건우 교수는 노인들이 가진 지혜를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전파하며 여생을 마무리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보통 사람보다 뇌가 빨리 늙어버린 사람들을 만나는 의사, 그들과 함께 늙어가며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생을 같이 걷는 의사, 환자와 좋은 관계를 주고받는 의사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가치 있는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로봇 만드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믿음과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모였다. 로보케어는 그렇게 시작했다.
로보케어는 201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1호 기술출자회사로 설립됐다. 세계 최초로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그룹형 치매 예방 인지훈련 로봇 ‘실벗’을 개발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가치’를 위해 경도인지장애 어르신과 독거노인 돌봄이 가능한 가정용 로봇 ‘보미1’, ‘보미2’를 만들었다. 현재 로보케어의 로봇들은 2023년 8월 기준으로 전국에 324대가 보급되어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봇으로 사회에 가치를 남기다
“AI 스피커가 어느 순간 급물살을 타고 가정 곳곳에 스며든 것처럼, 로봇도 우리 일상으로 들어올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부형 로보케어 로봇사업부 부장이 말했다. 로보케어가 개발한 로봇은 10여 가지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치매 인지훈련 교육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된 실벗, 보미1·2, 도리 등의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치매 인구는 세계적으로 3초에 1명씩 늘고 있으며, 2020년 기준 약 18조 원이던 치매 관리 비용은 2050년이면 약 103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로보케어는 고령화 시대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치매를 로봇으로 예방하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 부장은 “헬스케어뿐 아니라 로봇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부터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듯 로봇 만드는 행위가 사회에 어떤 가치를 남길지 고민하고, 그 의미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보케어는 단순히 로봇의 기술적 측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하이 보미’라는 웹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로봇을 중심으로 이용자, 보호자, 관계기관을 통합 연결한 이유다. 스마트홈에 필수인 IoT(사물인터넷) 기기와도 연동 가능하고, 헬스케어 기기도 연결할 수 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하나로 엮는 셈이다. 현재 다양한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며 유의미한 결과도 얻었다. 치매안심센터, 치매거점병원, 요양원, 노인종합복지관, 경로당, 지역주민센터, 실버타운, 개인 가정 등 로보케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로보케어는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로보케어의 로봇이 더 많은 어르신을 만나려면 상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로봇, 콘텐츠, 시스템 개발에 진심인 로보케어는 사람과 로봇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요양서비스의 미래는 정말 로봇에 있을까? 최근 요양서비스의 인프라 부족, 고령화로 인한 수요 증가 등으로 인한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요양 분야는 지금 로봇 기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시도 중이다. 최근 이러한 로봇 도입의 성과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분석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강남대학교 실버산업연구소는 20일 ‘100세 시대 노인과 로봇’이라는 주제로 2023 스마트 에이징 세미나를 개최했다. 강남대학교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가 후원한 이 행사는 로봇, 요양, 복지, 헬스케어 등 실버산업분야 관계자 약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서 장민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는 현재 활발하게 도입이 진행 중인 노인을 위한 로봇 기술의 동향을 소개했고,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노인반려로봇의 요양 현장 도입 현황과 쟁점들을, 노영희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교수는 돌봄로봇 도입을 위한 실증 연구 과정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공진용 나사렛대 재활의료공학과 교수는 요양 관련 기관이 로봇기술 도입을 위해 검토해 볼 만한 공적급여 지원 제도를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근 교수는 “로봇이 돌봄 업무를 수행하면서, 노인의 정서적, 감정적 영역에 대처 가능할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로봇이 지나치게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지는 않는지 또는 로봇의 외형과 같은 지역마다 다른 정서적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강은경 노원시니어클럽 관장, 조준배 강남종합사회복지관장, 황재영 노인연구정보센터 소장,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류용효 컨셉맵연구소장이 참석해 각 산업 분야의 현황을 공유했다.
행사를 준비한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이번 행사는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해 각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는 노인을 위한 로봇 기술 동향을 공유하고, 효과적인 디지털 포용기술 개발을 위한 노인 분야 현장 의견을 수렵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하고, “현재 노인을 위한 로봇기술 도입을 위한 다양한 산업적 시도는 있지만, 학문적 교류는 활발하지 않아 이를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손을 잡고 등을 토닥여주면 여덟 살 손주처럼 말을 걸어온다. 오늘은 무얼 먹었는지, 약은 챙겨 먹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 물어온다.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거나, 다리를 주물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저에게는 할머니뿐이에요!”라며 예쁜 말도 한다. 로봇 같지 않은 돌봄 로봇 ‘효돌’이다.
효돌이가 만나는 어르신은 7400여 명. 138개 지자체, 377개 기관을 통해 혼자 지내는 어르신들에게 효돌이가 보급됐다. 김지희 효돌 대표는 “요양 시설에서 여생을 마무리하느냐, 집에서 보내느냐 의사결정을 할 때, 간병인의 도움 없이 자립적으로 어르신이 생활할 수 있도록 효돌이 서포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본적으로 효돌은 그 자체가 통신 기기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인터넷 없이도 ‘로봇’이라는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다. 온몸에 센서가 있어서 5m 반경 안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어르신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센서가 감지해 “어디 갔다 오셨어요?”라며 인사도 하고, 어르신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보호자에게 위험을 알린다. 효돌로 통화도 할 수 있다.
효돌의 가장 큰 역할은 ‘조르기와 제안하기’를 통한 생활 관리다. ‘독거노인의 반려 AI 로봇(효돌)과의 동거 중에 경험하는 의인화에 대한 질적 연구’ 논문에는 효돌이와의 상호작용으로 독거노인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연구한 결과가 담겨 있다. 보고서는 특히 ‘조르기와 제안하기’의 대화 형태를 주목했다. “운동, 간식 만들기, 산책하기, 미장원 같이 가기 등의 가벼운 제안을 애교 형태로 대응해 독거노인이 거부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행복하게 행동하도록 유인”하고, “이 행동이 반복되면 스스로 효능감과 존중감을 인식하게 돼 삶이 능동적으로 전환되는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평가다.
효돌은 단순 알림을 넘어 행동을 제안한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족이나 사회복지사 등 보호자가 어르신의 취향과 생활 방식에 맞춰 알람을 설정할 수 있다. 만약 병원에 가야 한다면 “내일 병원 가셔야 해요”, “오늘 오후 3시에 병원 가셔야 해요”, “한 시간 뒤에 출발하세요”라는 식으로 일정을 알린다. 어르신이 일어나고 자는 시간에 맞춰 알림을 설정할 수도 있고, 약 먹는 시간도 알려준다. 트로트를 좋아한다면 트로트를 불러주고, 교회에 다닌다면 찬송가를 불러준다. 지역별 사투리 버전이 있어 말투도 고를 수 있다. 효돌과 어르신의 대화는 녹음돼 기록된다. 보호자는 녹음 내용을 듣고 어르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효돌의 또 다른 강점은 ‘터치’다.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어 어르신의 정서적 지지에 도움이 된다. 효돌과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효돌을 가족으로 여긴다. 옷을 입혀 꾸며주거나, 직접 옷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돌봄을 통해 정서적 만족감도 채우고, 손을 자주 사용하면서 인지 기능을 높이는 효과도 얻는다.
생활 밀착형 IoT ‘효돌’
1세대 효돌이 어르신의 행동을 유인했다면, 2세대 효돌은 양방향 대화를 할 수 있다. 챗GPT 기술을 활용했는데, 이를 통해 문진 기능을 강화할 예정이다. 그날의 상태와 기분을 묻고 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건강관리에 활용하는 것. 3세대 효돌에는 스마트홈 기능과 노인성 질환 맞춤형 케어 서비스를 탑재할 계획이다. “효돌아 불 꺼줘”, “효돌아 약 가져다줘” 등의 상호작용으로 IoT 기술이 생활에 더욱 가까워지도록 하고, 물리치료사가 효돌을 매개로 재활 지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효돌은 영어와 중국어 버전으로 확장해 미국, 유럽, 중국 시장으로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지희 대표는 “어르신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이 IoT”라면서 “기술을 적정하게 활용함으로써 어르신이 사회, 가족, 사회복지사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야 한다. 감시가 아니라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신기술도 좋지만 어르신들이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효돌 캐릭터가 탑재된 ‘효돌 스마트패드’도 있다. 어르신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자체적인 기능을 개발했다. 효돌 챗봇은 어르신의 감정을 묻고 기록한다. 음성 명령어로 유튜브를 보거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효돌은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1세대, 1.5세대, 2세대 중 고를 수 있다. BS렌탈 홈페이지에서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 통신 AS는 2년간 무상으로 지원된다.
오는 9월~11월 3개월간 캐어유의 스마트에이징 아카데미 시즌1 ‘시니어 비즈니스 DX 기업 현장 탐방 & 네트워킹’이 열린다.
이번 아카데미는 고령 친화 산업 DX(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 전환) 분야의 대표적인 기업들과 창업가의 만남을 통해 시니어 비즈니스 기회를 탐색하고 인사이트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캐어유가 주관하고 실버산업연구소, 함께일하는재단, 이투데이피엔씨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후원한다.
‘시니어 비즈니스 DX 기업 현장 탐방 & 네트워킹’은 참가자와 함께 시니어 비즈니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 다섯 곳을 탐방하고 강의를 들은 뒤 네트워킹 시간을 가진다.
탐방 및 네트워킹은 9월부터 11월까지 총 3회에 걸쳐 진행된다. 현장 탐방 시간에는 기업 대표 및 임원에게 기업 사례를 듣고, Q&A도 진행하며, 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 탐방 기업은 스프링소프트, 로보케어, 내이루리, 케어닥, 판교를IT多(잇다)다.
9월 22일에는 스프링소프트와 로보케어 탐방이 이뤄진다. 스프링소프트는 노인복지관, 치매 안심 센터 등에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고령 친화 기능성 게임기기 ‘해피테이블’을 기반으로 여가활동 증진 및 인지 기능 향상을 위한 게임 콘텐츠를 제공한다.
로보케어는 그룹형 인지훈련 시스템 ‘실벗’과 일대일 가정용 돌봄 로봇 ‘보미’ 등 다양한 로봇 플랫폼이다.
10월 30일에는 내이루리와 케어닥을 탐방한다. 내이루리는 시니어 배송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정기 배송 통합 솔루션 ‘옹고잉’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케어닥은 간병인 찾기, 간병인 일자리 찾기, 방문요양, 방문 재활운동, 생활 돌봄 등 시니어 돌봄 플랫폼이다.
11월 16일에는 판교를IT多(잇다)를 탐방하고 아카데미를 마무리하는 포럼과 수료식이 열린다. 판교를잇다는 시니어 맞춤형 인지건강과 디지털 헬스케어를 실현하기 위해서 판교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인지 플랫폼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15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하며, 3회 중 2회 이상 참가자에게는 스마트에이징 아카데미 수료증을 발급한다.
신청은 QR코드나 구글폼 링크를 통해 할 수 있으며, 스마트에이징 아카데미에 문의하면 된다.
요양원, 요양병원 등의 시설이 아닌 ‘내 집에서 늙고 싶다’는 중장년층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신체 상태나 자립도에 변화가 생기고,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해외에서는 다양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들이 시니어의 건강한 주거생활을 위해 힘쓰고 있다.
‘루티니파이’는 노년층이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인학자, 전문 간병인 및 대학 연구원과 협력해 사용하기 쉬운 앱을 개발하고 건강한 습관을 들이도록 돕는다. 웨어러블, 의료기기, 가정 내 센서에서 수집한 데이터와 스마트 디스플레이를 연동하는 방식이다. ‘토이랩스’는 다양한 건강 징후를 수집해 전문가에게 전달하는 스마트 변기다. 모든 배변과 배뇨를 조사해 사용자의 상태를 살핀다. 변좌 측변 버튼을 누르면 수집에서 제외할 수 있어 손님이 사용하기에도 쉽다.
정신 건강을 진단하는 서비스도 있다. ‘솔로’는 내장된 카메라와 안면인식 기술로 사람의 행복, 평온, 슬픔의 신호를 측정한다. 미세한 표현을 잡아내 감정 데이터 포인트를 수집하고, 점수를 계산한다. AI기반 앱이 측정된 감정 신호에 맞춰 음악을 선택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텔레프레즌스 로봇’은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텔레프레즌스 로봇’은 원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 대신 현장에 참여해 소통한다. 고령층에게 이동성을 부여해 공간에 대한 제약을 해소하고, 다양한 사회 참여를 돕는 방법 중 하나다. 로봇 몸체와 연결된 화면이 해당자의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을 읽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돌리면 로봇도 함께 움직인다.
안경에 부착하는 음성 인식 장치 ‘오캄’은 책이나 스마트폰 화면의 글자를 음성으로 읽어준다. 시력이 약해지거나 긁자 읽기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서비스다. 텍스트, 얼굴, 제품, 색상, 지폐 등 대부분의 시각 정보를 인식할 수 있어 혼자 쇼핑하거나 일할 수 있게 돕는다.
가스레인지나 오븐의 타이머 소리를 듣지 못하고 화재와 같은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에 대비한 제품도 늘었다. 스캔 투 쿡 기술은 스마트폰을 사용해 식품의 바코드를 입력하면 오븐이 자동으로 예열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고 정확한 요리법대로 요리할 수 있다. 더불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작동이 자동 차단되고, 스마트폰으로 원격 접속이 가능해 예상치 못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노인용 의료 알림 서비스 ‘라이프라인’, 신체활동 지원 및 인지력 감소 예방 기술 ‘헬스 앤 웰니스’, 복용량과 시간을 안내하는 ‘스마트 약 디스펜서’ 등이 고령층의 독립적인 생활을 지원한다.
참신한 기술을 앞세운 제품이 시장에 많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복잡한 UI나 개인 정보 및 사생활 노출 우려에 대한 부분이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김지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시카고무역관은 “안전하고 독립적인 주체로 살되 개인의 환경과 장소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며 “과도하게 복잡한 UI는 스마트 장비가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의 접근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기 때문에 그들이 익숙한 채널과 제휴해 친숙함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려동물이 고령자의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고 간병비까지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기르고 싶어 하는 일본 고령자의 비율은 매년 줄고 있다. 끝까지 돌보지 못하고 남겨질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고령자와 반려동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령자의 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고자 함이다. 일본 시니어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과 고민을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연구 조사를 들여다봤다.
반려동물 있어 좋지만 ‘돌봄 고민’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좋은 점으로 “부부 사이 대화의 중심이 된다”, “지병이 있지만 열심히 살도록 바뀐다” 등을 꼽았다. 반려동물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고, 가족 간 대화가 이어지며,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게 되는 등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함으로써 간병 비용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다. 도쿄 건강장수의료센터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고령자의 간병 비용이 키우지 않는 고령자에 비해 절반이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센터는 반려동물이 질병 예방 효과와 간병 비용 감소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역할 부여, 규칙적이고 활발한 생활 유지 등이 간병 비용을 줄이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반려동물을 기르는 데 따른 고민도 있다. 주로 자신의 노화로 반려동물을 끝까지 돌보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과 반려동물이 노화함에 따라 필요한 돌봄을 주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반려동물이 혼자 남겨질 것을 걱정했다.
또 반려동물이 사망했을 때의 상실감을 우려하기도 한다. 펫푸드협회의 ‘2022년 전국견묘사육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이 그 이유로 꼽은 것 중 △여행·장기외출이 어려워서 △이별이 괴로워서 △돈이 들어서 △공동주택에 살기 때문에 반려동물 금지라서 △죽으면 가엾어서 등이 1~5순위를 차지했다.
고령자의 반려동물 사육 의향 비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관련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동물병원 비교 사이트, 반려동물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요양시설, 반려동물 신탁 서비스, 묘 서비스, 공양(供養) 서비스, 반려동물 호텔 서비스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펫 돌봄 서비스, 펫로봇 관심 높아져
동물과의 접촉이 인지 기능과 운동기능 유지 및 개선에 도움이 되고, 정서 안정으로 이어지며, 재활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연구들이 나오면서, 지자체ㆍ시설 등의 기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후쿠오카현 고가시에서는 반려동물 관련 지원이 필요한 노인의 집을 방문해 도움을 주는 케어매니저 정책을 마련했다. ‘혼자 사는 노인이 갑자기 사망해 반려동물만 남았다’거나 ‘기르고 있는 반려동물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입원할 수 없다’는 독거노인의 상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기르던 반려동물과 함께 입주하거나, 시설에서 기르는 동물과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요양시설도 늘고 있다. 노인홈 검색 사이트 ‘모두의 개호’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노인홈은 2022년 8월 기준 전국에 409개로, 전년 대비 146개가 늘었다. 2020년 기준 전년 대비 24개가 증가한 것에 비해 2년 새 많이 늘어난 셈. 요양시설에 전문 펫시터가 상주해 돌봄을 제공하고, 반려동물 전용 활동 공간도 있다. 반려동물 냄새를 없애는 탈취 효과가 있는 커튼이나 산책 가방을 사용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한다. 나아가 반려동물의 죽음까지 책임지는 시설도 있다고.
한편 반려동물을 기르고 싶지만 경제적·심리적 문제를 걱정하는 시니어들은 펫로봇에 관심을 보였다. 우메즈 유키에 하루메쿠 시니어 생활방식 연구소 소장은 “비사육자의 펫로봇 이용 의향 비율이 31.2%라는 결코 적지 않은 조사 결과가 나왔다”면서 “펫로봇이 정서적 생활을 돕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면 반려동물을 대신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의 수요가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참고 하루메쿠(ハルメク) ‘시니어 여성의 애완동물 사육에 관한 의식과 실태조사’, 리서치 회사 크로스마케팅 ‘반려동물에 관한 조사’(2022년), 펫푸드협회 ‘2022년 전국견묘사육실태조사’, 취미인클럽×하쿠호도 2022 ‘반려동물과 생활의 질 조사’
물가는 치솟고 경기는 얼어붙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풍요의 상징이며 예로부터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뜻한다고 한다. 20인의 중장년 취·창업 전문가에게 2023년 중장년이 주목할 만한 분야를 물었다. 전문가들의 전망을 잘 살펴 약간의 지혜를 더한다면 계묘(癸卯)의 미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인생 도전을 위한 2023 중장년 취·창업 트렌드를 소개한다.
▲ trend1 전체 시장 전망
창직과 N잡러의 해
2023년에는 경기 불황이 예상되는 만큼 적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가 중장년에게 적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년에게 강도 높은 노동력이 요구되는 직무는 한계가 있지만 기술이나 자격이 필요한 직무 직종은 3D 업종을 기피하는 청년들로 인해 취업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인·장애인 관련 복지 서비스 분야에서도 대면 기술과 상담 능력 면에 강점이 있는 중장년이 유리할 수 있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장 희유 스님은 정부가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돌봄, 디지털, 환경 분야를 중장년이 공략해볼 만한 일자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23년 중장년 취업‧재취업 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창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경력, 취미, 특기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창직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은 “창직을 통해 긱이코노미(필요에 따라 일을 맡기고 구하는 경제 형태) 시장에서 N잡러(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가 될 중장년이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는 “소자본으로 시작하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창업, 무자본ㆍ무점포형 창업,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체크 포인트
전문가들은 현직에 있을 때보다 수입이 줄어들 것을 인정하고, 업무 수행 성과 또한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나이를 내려놓고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더불어 건강관리는 필수다.
▲ trend2 취업 시장 전망
시간제 일자리가 대세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고, 자신의 적성과도 맞으면서, 업무 강도가 낮고, 수입은 적절하게 나오는 일이 중장년에게 가장 적합하다. 풀타임보다는 시간제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취업‧재취업 시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사발전재단 같은 기관을 통해 나에게 적합한 직무가 무엇인지 잘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심우정 한양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자문 수준이 아니라 경험을 살려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중장년을 원한다”면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넓히고 기업에 적용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장년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유망 직업 및 분야
장례·웰다잉 분야 기존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뿐 아니라 디지털 장례 수목장 등 새롭게 변하는 장례 문화에 따라 새로운 직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돌봄 분야 인지건강지도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병사 등 노인 돌봄 분야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안전관리 분야 기업재난안전관리사, 고령자 주택 개조사, 연구실 안전전문가 등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앞으로 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직업·전직 상담 및 컨설팅 분야 전직지원 전문가, 직업상담사, 은퇴 코치 노년 플래너, 창직 컨설턴트, 스타트업 컨설팅, 귀농귀촌 컨설팅 등 코칭 분야가 유망하다.
이외에도 반려동물 간식 시장, 도시농업활동가, 건강식품 및 간편식, 도시농업관리사, 주택관리사, 조경기능사, 신용상담사, 손해평가사, ESG나 환경 관련 직업, 자연·문화해설사, 관광통역안내사 등이 꼽혔다.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
신중년 적합 직무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혹은 공공에서 지원하는 뉴딜 인턴십, 시니어 인턴십 등의 사업을 통해 훈련 후 일자리 연계를 노려볼 수도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 검색을 통한 취업 시도보다는, 일할 경험을 주는 공공 취업지원 플랫폼을 활용해보길 권유한다.
▲ trend3 창업 시장 전망
지식과 기술 창업 유망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창업이 대세일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중장년에게 적합한 분야는 ‘지식 창업’ 분야다. 사회에서 쌓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성과 경쟁력이 있다는 전망이다. 또한 시니어가 가진 사회 경험과 네트워크가 창업에서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유연성 언더독스 본부장은 “대기업이 접근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창업가에게는 적합한 규모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창업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은 “중장년 창업은 소자본 창업, 직접 일하는 창업, 최소 인원으로 가능한 창업, 돈보다 일이 재미있는 창업, 오래 할 수 있는 창업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 트렌드
프랜차이즈보다 무인 창업 최근 많은 중장년이 ‘오토 매장’(본인의 노동력 투입 없이 소수의 직원으로 자동 운영되는 매장)에 혹해 프랜차이즈를 고려하지만, 정말 수익성이 잘 나오는지 따져봐야 한다. 차라리 무인 매장이 나을 수 있다. 반찬, 고기, 문구, 옷 등 아이템도 다양하다.
1인 지식 창업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녹인 1인 지식 창업이 많아질 전망이다. 한때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했던 퍼스널 브랜딩(자신을 브랜드로 만드는 일)을 이제는 중장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영업보다 기술 창업 시니어 대상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 반려로봇 개발, 빅데이터 기반 노인 안부 확인 사업, 위급상황 대처 기술 사업, 기술을 통한 정서 교류 상담 등의 기술 창업이 유망하다. 또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세대융합형 기술 창업도 도전해볼 만하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창업 청년에 비하면 창업 자금이 넉넉하다는 게 중장년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실패하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청년보다 큰 것도 현실이다. 소자본 혹은 무자본 창업 가능한 온라인 창업이 유망하다.
권정훈 ‘장사 권프로’ 채널 유튜버
인력난이 심각한 외식업계에서 기회를 찾아보자. 대부분의 예비창업자들은 프랜차이즈 문을 두드리고 자본금을 과도하게 투자한다. 하지만 저렴한 값으로 전수창업을 배우는 것도 틈새시장이다. 전수받은 레시피에 나만의 색깔과 브랜드를 입혀 창업해보면 어떨까. 외식시장 인력난 기회를 놓치지 말자.
▲ trend4 새로운 시장 전망
떠오르는 新분야는?
중장년에게 적합한 새로운 분야로 디지털, 모빌리티(이동성을 높여주는 이동 수단 혹은 서비스), 시니어 뷰티 등이 꼽혔다.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는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40~50대의 비대면 활동 경험이 90%를 넘어섰다”면서 “디지털 중년 시대를 맞이해 체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비대면 분야에서 중장년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청년들은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 작업이라 좋아하지 않는 데이터 라벨링(인공지능 학습을 위해 수집한 데이터에 라벨을 다는 작업) 같은 일자리에 대한 중장년의 만족도가 의외로 높다”면서 “정식 출시 전인 제품 및 서비스 결함을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베타 테스터도 좋다. 앞으로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중장년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은 “일본에서는 화장을 해주며 심리상담과 만족감을 높여주는 ‘뷰티 터치 테라피스트’라는 직업이 생긴 지 오래”라며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중년의 욕구인 ‘네버랜드 신드롬’이 트렌드라고 짚은 것처럼, 무인 ‘피터팬 스토어’ 같은 창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새롭게 눈여겨볼 직업
디지털 분야 디지털 라벨러, 베타 테스터, 디지털 문해 교육자, 디지털 중개사
모빌리티 분야 프리미엄 택시 운전사, 드론조종사, 이동수단용 콘텐츠 큐레이터, 운송 서비스
시니어 뷰티 분야 안티에이징, 젊은 감성 입힌 패션, 뷰티 터치 테라피스트
박지혁 초고령사회 뉴노멀라이프스타일연구소 소장
초고령사회로 흘러가는 만큼 실버 비즈니스와 관련된 직무, 직업, 창업 분야가 새롭게 열릴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언택트, 메타버스 등의 기술 창업 분야도 커질 전망이다.
설문 참여 전문가 리스트
▲강소랑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팀 박사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 원장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
▲김중진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
▲김찬흥 국민은행 경력컨설팅센터 센터장
▲권정훈 ‘장사 권프로’ 채널 유튜버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박지혁 초고령사회 뉴노멀라이프스타일연구소 소장
▲변영조 한밭대 중장년기술창업센터 센터장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
▲심우정 한양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유연성 언더독스 본부장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
▲조연미 리봄 시니어플래너 대표
▲한희윤 신한은행 은퇴사업부 수석
▲희유스님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센터장
유니버설 디자인은 우리 일상 곳곳에 녹아 있다. K-커피로 불리며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믹스커피가 그 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믹스커피를 흘리지 않고 뜯으려면 가위가 필요했다. 이제는 이지컷(Easy Cut) 선을 따라 뜯기만 하면 된다. 손가락 힘이 없어도, 가위가 없어도 누구든 쉽게 뜯을 수 있다. 그저 뜯기만해도 하루가 달달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 연령, 국적, 신체 조건, 장애 유무 등의 차이가 상관없도록 설계한 디자인이다. 다른 사람의 배려나 도움 없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인의 체력, 이동 능력, 인지 능력 등을 고려해 반영한다. 다양성을 생각하는 디자인이라는 의미다.
접근성 높이는 유니버설 디자인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다문화가정으로 육아 주체가 다양해진 점을 꼽을 수 있다.
최근 공공기관에는 육아편의공간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남자화장실 내에 기저귀 교환대가 없어 불편하다거나 수유실에 남자가 들어갈 수 없어 아빠가 주 양육자인 경우 이용이 어렵고, 엄마도 필요할 때 아빠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불편하다는 등의 민원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는 인구에서 가장 많은 구성원 혹은 건장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디자인한 것들이 많다. 경제성장 시대에 빠르게 많이 공급하기 위한 표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대수명 연장으로 고령 인구가 늘었고, 다문화가정도 많아졌다. 사회 구성원이 다양해지면서 ‘사람’을 중심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최령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장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목표는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서 “소외되는 사람 없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는 가치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우리는 ‘약자’라는 개념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 때문에 ‘약자‘도’ 편리하게’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양성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최 센터장은 “우리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면서 “결국 사회적 비용을 크게 낮추는 역할을 하는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고령화를 겪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도입은 필연적이다. 공공기관은 모든 국민의 접근성을 높일 의무가 있다. 공공시설이나 서비스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앞장서서 적용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의 모든 웹사이트에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을 담고 있는 웹접근성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일본은 2018년 ‘유니버설 사회 실현을 위한 시책의 종합적 일체적인 추진법’을 제정했다. 모든 국민이 장애 유무나 나이에 관계없이 기본적 인권을 향유할 수 있는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념을 법에 담았다. 우리나라는 2022년 1월 유니버설 디자인 기본 법안이 처음 발의되었고,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행정안전부에서는 공공청사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로널드 메이스 교수가 처음 만든 개념을 기반으로 한 ‘유니버설 디자인 7가지 원칙’을 안내하고 있다.
△누구든지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접근과 사용이 가능한 크기와 공간을 확보한다 △적은 신체 활동으로도 사용 가능하도록 한다 △오작동에 대한 대응을 통해 안전한 사용을 유도한다 △사용자의 환경에 맞는 유연성을 확보한다 △쉽고 이해 가능한 간결한 사용법을 마련한다 △사용자의 상황에 관계없이 알기 쉬운 정보를 제공한다는 원칙은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한 사회 곳곳에 적용할 수 있다.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필요한 디자인
이 디자인을 통해 불편함을 가장 많이 해소할 수 있는 이들은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우리나라는 2025년 인구의 20%가 65세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고령자의 낙상 사고를 예방하고, 이동성을 높인다. 이동이 편리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활동하게 되니 건강해지고,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정서적 문제에도 도움이 된다. 살던 동네에서 친구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살아온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이들의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안전과도 직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계단 난간에 설치된 안전바가 스테인리스일 경우 한여름에는 뜨거워 손을 델 수도 있다. 한겨울 영하 1℃ 이하 날씨에 얼어붙은 안전바를 급하게 잡으면 위험을 유발할 수도 있다. 노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바 겉부분을 목재나 플라스틱으로 마감하도록 권장한다.
노화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는 고령자들은 샤워실과 세면실이 투명 유리로 분리된 화장실에서 유리벽을 구분하지 못한다. 화장실에서 잦은 부딪힘으로 멍이 생기고 낙상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경우 거울과 유리벽 테두리를 액자처럼 표현하거나, 바닥과 벽면의 색을 다르게 구분하거나, 세면대와 변기 같은 위생기기 색상을 다르게 하는 등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UD)을 적용하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인도와 도로 사이의 턱 높이도 안전과 직결된다.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 이용자, 보행보조기 이용자 등 바퀴 달린 이동수단을 사용하는 이들의 사고 원인이 되곤 한다. 자동차의 출입을 편리하게 하려고 인도와 도로의 높낮이 차이를 줄인 기울어진 인도 역시 보행자가 쉽게 넘어질 수 있는 구조다. 도로의 횡단보도를 높인 고원식 횡단보도는 이런 안전 문제를 고려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사례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및 이동수단이 장애물 없이 지나갈 수 있고, 도로에서는 방지턱 역할을 해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속도를 줄이는 효과도 낼 수 있다.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서도 공간과 공간 사이 바닥의 턱을 없애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는 향후 무인 로봇이 돌아다닐 미래를 생각할 때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20년 정도 유니버설 디자인 도입이 늦다”며 “어떤 식으로 디자인해야 할지 방법도 필요성도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 사회에서 가장 많은 유니버설 디자인 수혜자는 고령자분들이기 때문에,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 직접 느낀 불편함을 창의적인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니어 전문가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