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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그렇구나!
- 최근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따라서 유행이다. 그런데 성만 한 인문학이 또 있을까?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고, 사랑을 나누고, 종족을 남기고, 늙고 죽어가는 이야기는 다 성에 있다. 성을 한자로는 ‘性’이라 표기하는데 어찌 이렇게 적확한 표현을 찾았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성은 그 사람의 본성을 뜻한다. ‘배정원의 성 인문학’은 역사, 예술, 사회 등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 속에서 성을 재미있게 풀어볼 것이다. 방 안에 두 남녀가 마주 앉아 있다. 이들은 얼핏 보기에도 이미 노년의 부부로 남자의 상투 튼 하얀 머리칼은 숱이 헐렁하고, 눈가에도 주름이 자글하다. 웬일인지 옷을 다 벗고 있는 남자의 몸은 흘러내린 가슴팍처럼 어깨랑 팔도 노쇠해 뼈가 드러나 보인다. 그럼에도 글을 읽는 선비는 아닌지라, 한평생 노동으로 다져졌을 몸은 비록 근육이 빠졌지만 팔이나 허벅지도 아주 기력이 없는 노인의 것은 아니다. 그 앞에 앉아 치마를 걷고 다리를 벌려 음부를 드러낸 여자는 그의 부인인 듯한데, 남편을 바라보는 눈길이나 입 모양이 뭐라 채근하는 듯하다. 남자는 비스듬히 앉아 자신의 성기를 들어 올리고 있는데, 기운이 왕성하지는 않지만 나름 발기력을 유지하고 있어 자신의 성기를 아내의 음부에 삽입하려는 중인가 보다. 젊은 남녀의 섹스처럼 뜨거운 열기가 피어나고 홍조가 얼굴에 담기고 흥미진진하지는 않아도, 나이 든 부부는 바야흐로 은근하게 방사를 시작하려는 모양새다. 그들이 앉아 있는 방 안은 아마도 화가가 자신의 의도를 쉽게 드러내고, 그리는 편의를 위해 사면의 벽이니 창문이니 방문을 생략해버린 탓에 휑하지만, 그들은 담과 촘촘한 나뭇가지로 가려진 둘만의 오붓한 공간에서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안전하다. 남자가 앉은 쪽으로는 담쟁이 같은 넝쿨식물이 벽을 따라 기어오르고 있고, 여인네 쪽의 대나무와 무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늘을 향한 나뭇가지를 통해 그들의 피어오르는 성욕과 남자의 식지 않은 성 능력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그림은 단원의 낙관인이 찍혀 있긴 해도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춘화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정제 최우석의 것이 유명하고 품격 있는데, 그중에서 나라의 화가였던 단원과 혜원의 춘화는 더욱 당시의 성 풍속을 거침없이 묘사했다. 자유로운 성 문화를 구가하던 고려까지와 달리 조선의 성 문화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부부유별, 남존여비의 엄격한 가치관이 자연스러운 성의 본능을 혹독하게 억압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도 양반 사대부의 경우 더 심했고 폐쇄적이었으며, 그 아래 계급인 평민과 상민은 양반보다는 규범에 덜 매이는 자연스러운 성 문화였을 것이다. 조선의 춘화는 명나라의 호색 문화가 도입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중국 춘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춘화가 상류사회의 성교 체위나 기교 등을 보여주는 노골적인 성애물이었다면, 조선의 춘화는 그림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문인화적인 격조와 동시에 서민적인 소박함, 음양 및 자연과 인간의 조화, 마치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는 풍속화적 성격을 띤다는 특징이 있다. 풍속화의 성격상 당시의 생활양식과 그 풍습 안에 녹아든 성생활의 일면이 조선시대 후기 유행했던 춘화에 해학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노골적인 모습으로 녹아 있다. 조선의 춘화는 지체 높은 양반들뿐 아니라 중인, 평민, 또 청년, 장년, 부부, 노년에 이르기까지를 대상으로 야외, 정원, 실내 등 여러 장소에서 벌어지는 정사를 사실적이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의 춘화는 중국의 도상이나 다른 화가가 그렸던 도상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위 그림도 조선 후기의 춘화에 여러 번 등장하는 주제다. 이 그림에서는 노쇠해져가는 노부부의 성생활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리고 있지만, 사실 성 능력은 나이보다는 건강과 깊은 연관이 있다. 특히 얼마나 건강관리를 잘하는지에 따라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살 수 있는 현대에서는 나이에 얽매여 자신의 성욕이나 흥분, 또 쾌감을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말에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성생활은 가능하다고 하는데, 사실 성생활은 건강관리를 잘하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하려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 또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과 놀이로, 애정의 표현으로 성생활을 계속하는 이들이 젊어 보일 뿐 아니라 수명도 길고, 암 등 중병에 걸릴 위험도 적으며, 심장마비 등의 사망률도 눈에 띄게 낮다. 그뿐 아니라 면역력이 높아져 잔병치레도 적고, 자존감이 유지되기 때문에 삶의 행복감이 높아진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70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독일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70이 넘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다가 갑자기 남자의 발기가 사라져버렸는데, 무안해진 남자가 여자에게 말한다. “80대가 되면 섹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아오?” 여자가 궁금해하자, 남자는 “여자가 밑에서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거요. 그러면 남자는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려야 한다오. 그러나 걱정 마오. 나는 아직 80세가 되려면 3년이나 남았다오”라고 말하며 둘이 마주 보고 웃는 장면. 섹스는 누가 누구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다. 또 이기고 지는 경기도 아니다. 특히 나이 든 이들의 섹스는 그냥 즐겁게 서로의 몸을 만지고 안고 키스하고 쓰다듬고 삽입도 하고, 어려우면 섹스토이도 사용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림 속 늙은 아내가 남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당신 양물이 일어났으니 얼른 한번 해봅시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무엇보다 자연스럽지 않은가!
- 2021-06-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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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춘화에서 발견한 시니어의 ‘性’
- 최근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따라서 유행이다. 그런데 성만 한 인문학이 또 있을까?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고, 사랑을 나누고, 종족을 남기고, 늙고 죽어가는 이야기는 다 성에 있다. 성을 한자로는 ‘性’이라 표기하는데 어찌 이렇게 적확한 표현을 찾았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성은 그 사람의 본성을 뜻한다. ‘배정원의 성 인문학’은 역사, 예술, 사회 등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 속에서 성을 재미있게 풀어볼 것이다. 성 인문학 첫 칼럼을 시작하면서 가져온 텍스트는 ‘사시장춘’(四時長春)이다! 굳이 풀이하자면 ‘사철, 언제나 봄빛 같아라’는 염원이 담긴 한국 춘화다. 춘화, 특히 섹스 장면을 그린 그림은 선사시대에도 있었다. 바위에, 벽에, 종이에, 천에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서양의 데카르트 이후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강조돼왔고 성의 암흑기 같은 중세를 거쳐왔지만, 종의 번식이 가장 중요한 생물로서의 인간에게서 ‘섹스’에 대한 관심이 식을 가능성은 결코 없다. 고려 때까지 그나마 성에 있어서 자유로웠다는 우리나라는 조선조에 이르러 성리학의 강력한 영향으로 성에 대해서도 빗장을 잠그기 시작했다. 조선조 중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금기가 많아졌고, 쉬쉬하게 되었지만, 추운 겨울 두텁고 완강한 얼음장 밑에서도 도도히 강물이 흐르듯 성은 그렇게 잠긴 자물쇠 구멍 속에서도 요동을 쳤다. 고려 말의 성적 일탈과 문란함 때문에 조선조는 분명한 선긋기를 했다. 신왕조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성에 대해 더욱 엄격했다는 해석도 있다. 고려 이전의 춘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신라의 토우나, 유적 터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음경 모형 등의 성물(性物)로 인해 우리는 그 시대의 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성은 본능이라 억누를수록 일탈과 변태가 많아진다. 그래서 성을 금기로 하는 나라와 시대일수록 더 문란한 성 문화가 기승을 부렸다. 우리나라 조선조의 춘화는 김홍도의 ‘운우도첩’(雲雨圖帖), 신윤복의 ‘건곤일회도첩’(乾坤一會圖帖), 최우석의 ‘운우도화첩’(雲雨圖畵帖)이 유명하고 많이 유통되었다. 조선조 후기에 성 장면이 많이 그려지고 유통되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중국의 춘화가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까지, 그리고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에 유행한 것과 같이 당시 경제적 성장으로 중산층이 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가 한몫했다는 해석이 많다. 또 성기에 대한 페티시즘을 추리할 정도로 성기를 과장되게 그리는 일본이나, 성교의 기교적인 행위를 많이 그렸던 중국과 달리 조선의 춘화는 문인화적 요소가 강하다는 특색이 있다. 그림에 성교 장면이 구체적이고 노골적이기보다는 당시의 풍속화 영향으로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표현이 많았다. 그림 하나에 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유추하고 해석할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어쨌든 ‘사시장춘’은 조선조의 유명한 혜원 신윤복이 그렸다는 그림이다. 춘화라기엔 약해 보이는, 그러나 자세히 볼수록 ‘그보다 야할 수 없는’ 그림이라 더 흥미롭다. 어떤 이는 국가의 도화원에 소속된 ‘나라 화가’ 신윤복이 이런 그림을 그렸을 리 없다고 하지만, 사대부들의 비밀스런 부탁을 받고 그렸을 수도 있고, 신윤복 개인의 관심과 욕구로부터 비롯된 그림일지도 모른다. 혹은 신윤복에게 그림을 배운 이들이 그의 화법을 흉내 내어 그렸는지도 모른다. 혜원의 낙관이 찍힌 그림이 많은 것을 보면 직접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이가 사람들의 가장 재미있는 일상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여종이 들려주는 방 안 ‘사정’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그림 속에는 한 어린 여종이 엉거주춤 서 있다. 술과 안주가 차려진 주안상을 들고 서 있는 소녀는 들어가는 중이 아니라 멈춰 서 있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고 우습다. 소녀가 들어가려던 방 앞 툇마루에는 두 벌의 비단 신발이 놓여 있는데, 가지런히 벗어놓은 분홍색 여자 신발 옆에 급히 벗어젖힌 듯한 남자의 신발이 흐트러져 있다. 무척 급하게 들어간 모양이다. 소녀가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방 안에서 들리는 어떤 기척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미 일을 시작한 듯싶다. 혹은 “아이… 으으 아아…” 교성이 난무하는 중이었다면 여종은 당황스러웠으리라. 호젓한 느낌의 방은 술집이거나 기방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단아한(?) 기둥 옆으로 뜬금없이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계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여자의 은밀한 음부 같은 모습이다.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방 안 여주인공의 상태를 짐작할 수가 있겠다. 또 왼쪽을 보니 싱싱하고 꼿꼿하게 하늘로 고개를 든 소나무 이파리들이 흡사 남자의 솟아오르는 정기처럼 그려져 있다. 이야기를 짐짓 꾸며보면, 사대부의 한 여인이 여종 아이를 불러 주안상을 들이라 하고 아이가 그것을 준비하는 새에 들이닥친 남자 주인공과 급하게 일을 치루는 중이다. 그걸 미처 모르고 주안상을 준비해 들고 온 어린 여종은 주안상을 들여야 할지 물려야 할지 모르겠는 데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이 떨리고 호기심이 동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림의 방 안에서 두 남녀가 어찌 정을 통하고 있는지 진행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방 밖의 사정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본 혹자는 방 밖에 흐드러지게 핀 작은 안개 빛의 꽃들을 가리키며 지금 남자 주인공이 사정 중임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 정도로 이 그림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시장춘’. 사계절이 늘 긴 봄 같으라는 축원을 독자 여러분께도 드리고 싶다. 사랑에 나이가 있을까? 새로운 2021년에는 다정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파트너와 긴 사랑을 나누시라!!
- 2021-01-15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