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춘화에서 발견한 시니어의 ‘性’

기사입력 2021-01-15 09:42 기사수정 2021-01-15 16:03

[배정원의 성 인문학]

최근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따라서 유행이다. 그런데 성만 한 인문학이 또 있을까?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고, 사랑을 나누고, 종족을 남기고, 늙고 죽어가는 이야기는 다 성에 있다. 성을 한자로는 ‘性’이라 표기하는데 어찌 이렇게 적확한 표현을 찾았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성은 그 사람의 본성을 뜻한다. ‘배정원의 성 인문학’은 역사, 예술, 사회 등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 속에서 성을 재미있게 풀어볼 것이다.

<행복한 성문화센터 대표ㆍ대한성학회장ㆍ보건학 박사ㆍ유튜브 배정원TV>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성 인문학 첫 칼럼을 시작하면서 가져온 텍스트는 ‘사시장춘’(四時長春)이다! 굳이 풀이하자면 ‘사철, 언제나 봄빛 같아라’는 염원이 담긴 한국 춘화다.

춘화, 특히 섹스 장면을 그린 그림은 선사시대에도 있었다. 바위에, 벽에, 종이에, 천에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서양의 데카르트 이후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강조돼왔고 성의 암흑기 같은 중세를 거쳐왔지만, 종의 번식이 가장 중요한 생물로서의 인간에게서 ‘섹스’에 대한 관심이 식을 가능성은 결코 없다.

고려 때까지 그나마 성에 있어서 자유로웠다는 우리나라는 조선조에 이르러 성리학의 강력한 영향으로 성에 대해서도 빗장을 잠그기 시작했다. 조선조 중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금기가 많아졌고, 쉬쉬하게 되었지만, 추운 겨울 두텁고 완강한 얼음장 밑에서도 도도히 강물이 흐르듯 성은 그렇게 잠긴 자물쇠 구멍 속에서도 요동을 쳤다. 고려 말의 성적 일탈과 문란함 때문에 조선조는 분명한 선긋기를 했다. 신왕조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성에 대해 더욱 엄격했다는 해석도 있다.

고려 이전의 춘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신라의 토우나, 유적 터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음경 모형 등의 성물(性物)로 인해 우리는 그 시대의 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성은 본능이라 억누를수록 일탈과 변태가 많아진다. 그래서 성을 금기로 하는 나라와 시대일수록 더 문란한 성 문화가 기승을 부렸다. 우리나라 조선조의 춘화는 김홍도의 ‘운우도첩’(雲雨圖帖), 신윤복의 ‘건곤일회도첩’(乾坤一會圖帖), 최우석의 ‘운우도화첩’(雲雨圖畵帖)이 유명하고 많이 유통되었다.

조선조 후기에 성 장면이 많이 그려지고 유통되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중국의 춘화가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까지, 그리고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에 유행한 것과 같이 당시 경제적 성장으로 중산층이 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가 한몫했다는 해석이 많다.

또 성기에 대한 페티시즘을 추리할 정도로 성기를 과장되게 그리는 일본이나, 성교의 기교적인 행위를 많이 그렸던 중국과 달리 조선의 춘화는 문인화적 요소가 강하다는 특색이 있다. 그림에 성교 장면이 구체적이고 노골적이기보다는 당시의 풍속화 영향으로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표현이 많았다. 그림 하나에 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유추하고 해석할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어쨌든 ‘사시장춘’은 조선조의 유명한 혜원 신윤복이 그렸다는 그림이다. 춘화라기엔 약해 보이는, 그러나 자세히 볼수록 ‘그보다 야할 수 없는’ 그림이라 더 흥미롭다. 어떤 이는 국가의 도화원에 소속된 ‘나라 화가’ 신윤복이 이런 그림을 그렸을 리 없다고 하지만, 사대부들의 비밀스런 부탁을 받고 그렸을 수도 있고, 신윤복 개인의 관심과 욕구로부터 비롯된 그림일지도 모른다.

혹은 신윤복에게 그림을 배운 이들이 그의 화법을 흉내 내어 그렸는지도 모른다. 혜원의 낙관이 찍힌 그림이 많은 것을 보면 직접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이가 사람들의 가장 재미있는 일상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신윤복의 ‘사시장춘’, 27.2x15㎝(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윤복의 ‘사시장춘’, 27.2x15㎝(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종이 들려주는 방 안 ‘사정’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그림 속에는 한 어린 여종이 엉거주춤 서 있다. 술과 안주가 차려진 주안상을 들고 서 있는 소녀는 들어가는 중이 아니라 멈춰 서 있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고 우습다.

소녀가 들어가려던 방 앞 툇마루에는 두 벌의 비단 신발이 놓여 있는데, 가지런히 벗어놓은 분홍색 여자 신발 옆에 급히 벗어젖힌 듯한 남자의 신발이 흐트러져 있다. 무척 급하게 들어간 모양이다.

소녀가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방 안에서 들리는 어떤 기척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미 일을 시작한 듯싶다. 혹은 “아이… 으으 아아…” 교성이 난무하는 중이었다면 여종은 당황스러웠으리라. 호젓한 느낌의 방은 술집이거나 기방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단아한(?) 기둥 옆으로 뜬금없이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계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여자의 은밀한 음부 같은 모습이다.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방 안 여주인공의 상태를 짐작할 수가 있겠다. 또 왼쪽을 보니 싱싱하고 꼿꼿하게 하늘로 고개를 든 소나무 이파리들이 흡사 남자의 솟아오르는 정기처럼 그려져 있다.

이야기를 짐짓 꾸며보면, 사대부의 한 여인이 여종 아이를 불러 주안상을 들이라 하고 아이가 그것을 준비하는 새에 들이닥친 남자 주인공과 급하게 일을 치루는 중이다. 그걸 미처 모르고 주안상을 준비해 들고 온 어린 여종은 주안상을 들여야 할지 물려야 할지 모르겠는 데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이 떨리고 호기심이 동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림의 방 안에서 두 남녀가 어찌 정을 통하고 있는지 진행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방 밖의 사정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본 혹자는 방 밖에 흐드러지게 핀 작은 안개 빛의 꽃들을 가리키며 지금 남자 주인공이 사정 중임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 정도로 이 그림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시장춘’. 사계절이 늘 긴 봄 같으라는 축원을 독자 여러분께도 드리고 싶다. 사랑에 나이가 있을까? 새로운 2021년에는 다정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파트너와 긴 사랑을 나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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