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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우 작사가 "나조차도 감동 못할 가사, 그 누가 감동할까"
- 40년간 ‘종이학’, ‘날개 잃은 천사’, ‘아모르파티’ 등 1200여 곡의 주옥같은 노래를 탄생시켜온 이건우(60) 작사가. 여러 히트곡을 만든 그는 정작 “내가 쓴 가사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저 자신이 만나온 수많은 인연이 들려준 이야기를 녹이고 정리했을 뿐이라고. 개인이 아닌 대중의 언어를 담은 가사가 빛을 발했다는 의미일 테다. 그래서일까? 이건우의 가사는 평범한 일상 언어들의 부딪힘 속에서 공감과 위로의 노랫말로 경이롭게 배열된다. 그렇게 지난날 영감을 줬던 사람들과 가사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아 그는 첫 작품집 ‘아모르파티’를 펴냈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이건우가 작사하고 김연자가 불러 세대를 넘나들며 대박을 터뜨린 곡이다. 특히 “인생은 지금이야”,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등의 가사는 중장년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자신의 작사가 인생 40주년을 기념하는 도서에도 동명의 제목을 달았다. “인생의 콘셉트랄까? 그게 바로 ‘아모르파티’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그 제목을 썼다면 모호했겠지만, 제 책이다 보니 상징적으로 바로 와 닿는 게 있는 것 같아요. 60이라는 나이나, 40주년을 기념하는 제목으로도 잘 어울리고요.” 작사가 역시 글을 짓는 사람일진대, 40년을 활동하며 이제야 첫 책을 냈다니 좀 의외였다. 그러나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권, 그리고 지금이 딱 좋다고 말했다. “자기 분야에 몰입해도 모자랄 사람이 책을 내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게 별로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전부터 내 인생의 책은 단 한 권으로 끝내야겠다고 결심했죠. 왜 특별히 40주년에 출간했느냐 묻는다면, 30주년은 좀 덜 익은 것 같고, 50주년은 솔직히 그때까지 가사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느덧 40주년이 됐고, 이제는 제 노래를 한 번 정리해도 괜찮겠다 싶었죠.” “나는 천재 작사가가 아니다” 이건우는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유산슬(유재석)의 ‘합정역 5번 출구’를 작사하며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작신’(작사의 신)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로 그를 각인시킨 것이다. 식을 줄 모르는 인기 속에서 과거 그가 작사한 곡들이 자연스럽게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옛 노래의 가사를 보면 스스로도 ‘내가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지?’ 하며 감탄할 때가 있단다. “제가 쓴 가사가 좋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이 살아왔어요. 남의 떡이 더 커 보였죠. 그러다 요즘 제삼자의 눈으로 보니 남다르더라고요. 막 훌륭하다기보다는 ‘아, 40년 동안 나도 참 열심히 했구나’ 싶었죠.” 40년을 히트곡 메이커로 달려올 수 있었던 데에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우는 최근에서야 그것이 노력의 산물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예술가를 만드는 건 99%가 천재성이라 생각해왔어요. 언젠가 한 학생이 노래 부르는 걸 보고, 가수는 안 되겠다 판단한 적 있죠. 그러고 얼마 전 그 애를 다시 봤는데, 실력이 확 좋아진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아, 노력이 타고난 것을 이길 수 있구나. 돌아보니, 나 역시 타고난 사람이 아닌데 은연중에 천재성이 있다고 착각했던 거죠. 현재 작사가로 활동하는 데 내가 가진 천재성과 노력의 비율이 3대 7 정도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아마 나이가 들수록 노력의 비율이 점점 10에 가까워지겠죠. 아무리 천재라도 노력 없이 평생 창작할 순 없을 테니까요.” 그런 그가 가장 노력하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는 평소 주변 사람과의 평범한 대화 속에서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타인의 이야기를 쓴다고 하지만, 작사가의 인생철학도 가사에 꽤 투영되지 않았을까? 그는 결과적으로 쉽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가령 패티김 40주년을 기념해 쓴 ‘인연’처럼, 대부분의 곡은 가수가 정해지면 작업을 시작해요. 그러면 그 가수에게 어울리는 얘기가 주로 담기죠. 또, 시나 그림 같은 창작물과 다르게, 대중가요는 작곡가, 프로듀서, 편곡가 등 여러 명의 합작품이잖아요. 자기만족만으로 완성할 수 없죠. 물론 일부분 제 인생을 녹이기도 하지만, 오롯이 그것이 드러나긴 어렵습니다.” 중년의 플로리스트를 꿈꾸며 노래가 주는 힘은 ‘위로’와 ‘공감’일 것이다. 이건우 역시 이에 주안점을 두고 가사를 쓴다. 아울러 그는 여기에 한 가지가 요소가 더해져야 진정 ‘좋은 노래’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노래를 왜 들을까요? 저는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먼저 나를 위로해 달라, 그리고 내게 감동을 달라, 마지막으로 나를 생각하게 해 달라. 그중 앞의 두 가지를 노래에 담는 게 쉽지 않아요. 세 가지를 다 만족시키긴 아주 어렵다는 거죠. 그러나 생각거리까지 줘야 정말 좋은 노래고, 좋은 가사라고 봐요. 메시지가 중요하단 얘긴데, 그렇다고 노랫말이 무겁고 거창하면 안 되거든요. 가수가 부르기 편하게, 대중이 듣기 쉽게, 최대한 가사의 힘은 빼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노래는 대중에게 감동을 주지만,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작사가가 먼저 감동을 해야 한단다. 그래서인지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이건우를 가리켜 ‘먼저 (자신이) 감동하는 인간’이라 표현한 데에 대해 그는 당연한 얘기라며 수긍했다. “‘신이시여, 정말 제가 쓴 가사가 맞습니까? 정말 나 미친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쓴 가사를 보고 감동의 클라이맥스까지 가봐야 비로소 작품을 발표하는 거예요. 그 정도는 돼야 대중이 알아줄까 말까 하겠죠. 그런데 나조차도 흔들어놓지 못하는 가사를 내놓으면 과연 누가 그 노래를 듣고 감동을 할까요?” 이건우는 처음 비행기를 탔던 감격의 순간을 담아 ‘황홀한 고백’을 작사했다. 이후론 아무리 비행기를 타도 더 이상 그만한 가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경험이 선사하는 감동이 대단하다는 걸 알기에 늘 도전을 마다치 않는다.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라고 쓴 ‘아모르파티’의 가사처럼, 그는 가슴을 뛰게 할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꽃꽂이와 수화를 배울 거예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죠. 취미 정도가 아니라 준전문가가 될 정도로 해보려고요. 갑자기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유독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냈어요. 알다시피 인기는 한때잖아요. 내년쯤 잘 정리하고, 계획했던 일들을 해나갈 거예요. 예쁜 꽃을 잘 꽂아서 선물도 하고,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화로 노래를 전달하고 싶어요. 요즘은 그런 의미 있는 일로 누군가가 즐거워할 모습을 상상할 때 가장 설레고 가슴이 뜁니다.”
- 2020-11-2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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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토벤·펭수·총몇명' GS25 밸런타인 굿즈 탄생
- GS25가 2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화제의 캐릭터를 앞세운 프리미엄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내놓고 각종 이벤트를 준비했다. GS25의 밸런타인데이 컬래버 상품은 '발렌타인 펭수세트 3종', '발렌타인 총몇명 세트 2종', '발렌타인 메들리 세트 2종'을 비롯해 총 7종이다. 발렌타인펭수세트에는 귀여운 펭수의 이미지가 디자인됐고 다양한 초콜릿, 스낵 상품과 함께 펭수 스티커, 펭수 미니 등신대, 펭수 노트 등 펭수 관련 굿즈가 동봉됐다. 가격은 6000원에서 1만1900원이다. 총몇명–GS25 유튜브 콘텐츠 조회 수 220만 회 넘어 발렌타인 총몇명 세트는 유튜브 구독자 수 224만 명이 넘는 유명 애니메이션 유튜버 ‘총몇명’과 컬래버한 상품이다. 총몇명의 B급 감성과 독특한 그림체가 돋보이는 유명 캐릭터인 ‘나천재’, ’민모리’ 등의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이름표와 열쇠고리 등으로 만들어져 동봉됐다. 가격은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이다. 발렌타인 메들리 세트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박토벤으로 불린 트로트 작곡가 박현우, 작사가 이건우와 컬래버한 상품이다. 트로트 감성을 잘 살린 패키지 디자인에 자신의 사진을 이용해 재미있는 연출을 할 수 있는 포토 프레임 카드 등이 동봉됐다. 가격은 6000원에서 1만 원으로 컬래버 상품 수량은 발렌타인 펭수 세트 14만 개를 비롯해 총 25만 개가 GS25에서 판매된다. GS25는 컬래버 세트 상품 기획에 맞춰 펭수, 총몇명과 유튜브 콘텐츠를 각각 제작해 공개함으로써 온라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달 31일 선보인 GS25-펭수 유튜브 콘텐츠(펭력사무소-편의점 편)는 이달 4일 현재 13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난 3일 공개된 2편 콘텐츠(알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편)는 9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박토벤’ 박현우 작곡가도 GS25 30주년 기념 트로트 곡 ‘진심’을 온라인 채널을 통해 선보이며 인기몰이 중이다. 펭수 쿠션 증정, 참여형 기부 활동 등 이벤트 진행 GS25는 30주년을 기념해 밸런타인데이 이벤트도 준비했다. 오는 15일까지 차별화 세트 상품 7종을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GS앤포인트(GS&POINT)를 30배 적립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60여 종의 밸런타인데이 행사 상품을 구매한 고객이 GS앤포인트를 적립할 경우 적립 횟수에 따라 GS25의 모바일앱 나만의냉장고를 통해 펭수 쿠션 1만 개 등 총 2만5000개 경품을 증정한다. 또한 초콜릿 류를 구매하는 고객이 나만의냉장고앱에 생성된 스탬프를 누르면 기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 공헌 활동도 진행한다. 고객 참여를 통해 모금되는 금액 1000만 원은 전액 GS리테일이 부담하며 ‘빅이슈코리아’를 통해 전액 홈리스 도시락 지원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 2020-02-0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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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바쳐서’ 이룬 의리와 우정을 노래하다
- 1983년,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려오던 노래가 있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제목을 몰라도 “몸~ 바쳐서~ 몸 바쳐서~”라는 후렴구만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 노래, 바로 ‘논개’다. ‘논개’ 돌풍을 일으켰던 주인공 이동기(65)는 현재 2700여 명이 가입한 한국방송가수노동조합 위원장이다. 가수들을 위한 노동운동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올해로 14년째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무려 32년 만에 10집 앨범 타이틀곡 ‘약국집 딸’을 내놓았다. 지나간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기 위해, 일단 그가 처음 이름을 날린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1983년에 발표한 노래 ‘논개’는 4집 앨범에 실렸어요. 1집은 1978년에 나왔죠. 그런데 내 1집, 2집, 3집 앨범들에 관심이 많았던 임정수 지구레코드 사 대표가 서라벌레코드 사에 있던 나를 데려와서는 3년 전속으로 계약을 맺었어요.” 일단 계약을 했으니 노래를 만들어야 했던 이동기는 친하게 지내던 작사가 이건우에게 가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가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곡을 붙여 만든 곡이 바로 ‘논개’였다. 이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논개’에 대한 기대치가 전혀 없었다. 4집 앨범에 실린 11곡들 중 맨 뒤에 ‘논개’를 밀어 넣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10분도 안 걸려 만든 노래 ‘논개’ 4집 앨범을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처자식도 있었다. 3집 앨범까지 낸 6년 차 가수였지만 그는 그리 잘나가는 가수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4집을 들고 라디오 공개방송의 일인자였던 KBS 신광철 PD를 만난 사건으로 삶을 뒤바꾼다. “신광철 PD가 나한테 ‘그만해, 노래. 가서 농사나 지어’라고 말하더군요. 그분이 마음속으로 저를 아껴서 밀어줬는데 해도 해도 안 되니까 그리 말한 거였어요. ‘네가 백이 있냐, 돈이 있냐, 얼굴이 있냐. 그만해’라고 말하는데, 몇십 장 가져간 음반을 그 자리에서 떨구고 무지하게 울었어요. 그리고 ‘그래, 난 안될 거야’ 하고 포기했죠. 그러고선 곧바로 고향 음성으로 내려갔어요.” 4집을 가장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30대를 코앞에 두고 처자식까지 있었는데, 노골적인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자신의 처지가 그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그러나 얘기가 여기서 끝났으면 지금의 이동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 신 PD 옆에 있던 사람이 ‘이 사람아, 판 만들어 왔는데 울게 만들면 어떡해’ 하며 그를 나무랐고, 신 PD는 이동기가 놓고 간 4집 앨범에서 ‘논개’를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 그는 그 곡을 집중적으로 틀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TV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게 내 노래인 줄도 몰랐죠. 아무래도 이상했어요. 지구레코드 사에 6개월 만에 전화를 했더니 ‘너 빨리 올라와라, 노래 뜨고 있다’ 하더군요. 가봤더니 짐차에 내 앨범들이 막 실려 나가고 있더라고요.”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되다 이동기의 ‘논개’는 불같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한사코 TV 출연을 피했다. 외모에 자신이 없었고, 전에 발표한 노래들도 어느 정도 뜨다가 그가 TV에만 나가면 인기가 떨어졌던 걸 기억해서였다. 그러나 당시 MBC의 신종인 PD는 집요했다. “자기가 PD로 입봉하는 첫 프로그램인 ‘영 일레븐’에 내가 출연하면 좋겠다 하더군요. 피했지만 세 번째 찾아왔을 때 ‘대신 얼굴을 잡지 말고 멀리서 잡아라, 그 약속만 하면 나가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영 일레븐’에 출연했는데, 이 양반이 바스트만 잡은 거예요. ‘왜 약속을 어겼느냐’고 항의하러 갔죠. 그런데 방송국 가는 길에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보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세상이 바뀔 수 있나 싶었죠.(웃음)” 1985년, 망하다 ‘논개’가 대박 난 이후에도 그의 성공은 한동안 이어졌다. 다음 해인 1984년에 낸 5집에서는 ‘바보 바보’가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게 된 일이 터졌다. 그 일은 조영남과 관계가 있었다. “제가 당시 5대 도시 콘서트를 했는데 기획자에게 조영남 씨를 게스트로 추천했어요. 그때 인연이 되어 친해졌죠. 그런데 조영남 씨가 가사를 쓴 곡 중에 ‘숨겨진 노래’가 있었어요. 내가 그걸 듣고 완전히 반한 거예요. 그래서 1985년에 발표한 6집 앨범에 넣었죠.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어요. 나는 젊은 취향이었는데 그 노래는 성인가요였던 거예요. 나와는 안 맞았어요. 실패했죠. 그때부터 고전하기 시작했어요.” 6집 앨범이 잘 안된 것도 문제였지만 그는 ‘논개’의 인기에도 돈을 벌지는 못했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그 시절다운 일이었다. “대한민국 군부대가 정말 많았던 시대잖아요. 게다가 군사 정권이었고요. 아주 적은 돈을 주고 봉사 차원이라며 전방이고 후방이고 데리고 다녔어요.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바쁘긴 했는데 돈은 못 벌었죠. 그렇다고 안 돌면 방송 출연이 금지되니까 어쩔 수 없이 갔거든요. 기름 값도 없고 운전기사에게 돈 줄 형편도 못 됐어요.” 우연히 이루어진 일본 진출 9집 앨범을 낸 1987년, 돈은 못 벌면서 계속 실패한 그에게 앞날은 어둡기만 했다. 그때 홀리데이 인 서울 무대에서 공연을 하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와세다대학교를 나온 엘리트 재일교포 2세 출신의 야쿠자 두목이 그를 발견하고 일본에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나는 돈을 벌고 싶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 일본에 갔어요. 당시는 15일짜리 관광비자밖에 안 나오던 때였는데, 13일 만에 2000만 원을 벌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한 달에 겨우 300만 원을 받고 그것을 소속사와 나누던 때였는데….” 그래서 그는 4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한국에서는 꿈에도 생각 못한 액수의 돈을 벌었다. “일본에서도 ‘논개’가 유명했죠. 논개가 사연이 있잖아요? 노래를 부르기 전에 그 얘기를 먼저 했죠. 일본 사람들은 비록 논개가 임진왜란 때 일본 장군을 죽인 기생이지만 역사적 사연이 아름답다는 점을 높이 샀어요.” 가수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 오랜 일본 활동을 마치고 철수한 그는 한국에서 컴백을 위한 음반을 준비했다. 그런데 기획사를 하는 친구가 시장 환경이 안 좋으니 음반을 내지 말라고 조언했다. 작업을 멈춘 그는 그 후로도 앨범을 내려고 했지만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지 않아 계속 미뤄야만 했다. 그러던 중 2005년에 가수들을 위한 노동운동가로 변신한다. “우리나라 가수들은 참 사회적 약자예요. 당시 가수들의 권리와 권익을 대변하는 곳은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가수분과밖에 없었거든요. 방송국이 매년 그곳과 협상을 하긴 하지만 갑을관계가 강했죠. 부위원장 입장으로 협상에 참여할 때마다 일방적 양보를 요구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2005년에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위원장 이경호 씨를 만나게 됐어요. 알고 보니 연기자들은 이미 28년 전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방송사와 동등한 파트너십으로 일하고 있더라고요. 노동조합이 있으면 방송사가 가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갑을관계가 아니라 상생할 수 있으니 반드시 만들라고 강력하게 권하더군요.” 그는 그 말을 듣고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들을 만났다. 남진, 나훈아, 정훈희, 김도향, 김수희 등등 선배 가수들은 그의 설명을 듣더니 일리 있는 얘기라고 동의해줬다. 그래서 2005년 7월 1일 교원공제회관에서 300여 명이 모여 한국방송가수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그를 초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로부터 그는 14년간 위원장 활동을 해왔다. 가수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그가 볼 때 연기자들은 자기권리를 위해 수많은 투쟁을 했다. 노동조합이 중심이 돼서 모두가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그러나 가수들은 그렇지 못했다. “딱 한 번 2009년에 MBC에서 연기자들과 함께 연대 파업을 했어요.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했고 관철됐죠. 그러나 그 후에도 투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호소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는 가수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TV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안타까워한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정기적으로 가수들이 공연하는 쇼 프로그램이 없어요.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다 폐지했어요. 프로그램이 사라져도 그 시대의 대중가요는 꼭 히트하게 되어 있죠. 매체가 있든 없든 노래는 유행하는 거예요. 반드시 방송사 프로그램이 있어야 히트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는 방송사의 쇼 프로그램이 사라져야 가요계가 살아난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 가수들은 음원 저작권과 공연이 수입원인데 우리나라는 그걸 TV와 지역 행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니 음원과 티켓이 안 팔린다는 진단이다. TV에서 볼 수 없는 가수가 된 이유 사실 이동기가 새 앨범을 못 낸 이유에는 가수들의 권익과 관련한 문제들도 있다. “음반을 내놓으면 방송사 PD들 찾아다니며 PR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노조위원장이면서 그러고 다니면 조합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섭외가 들어오면 “얼마 줄 겁니까?” 하고 물어본 뒤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안 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레 TV에서 볼 수 없는 가수가 되었다. “히트곡은 달랑 ‘논개’밖에 없는데 그래도 되냐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래도 ‘이렇게라도 권리를 찾는 모습을 보여줘야 다른 가수들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어요. PD들에게도 그런 속내를 설명하니 존중해주더군요. 사실 일선에 있는 PD들은 저희들 출연료 처우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협상할 때는 PD들과 하는 게 아니라 방송국 노무 담당자들과 하니까 거기서 갭이 생기는 거죠.” 요즘은 자꾸 고향 생각이 난다 그렇게 불도저, ‘무데뽀 투쟁’의 화신이었던 이동기가 새 앨범을 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활동해온 위원장직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그는 새 노래 ‘약국집 딸’을 내놓은 가수로서 활동해야 한다. “열정과 사명감이 있는 후배에게 넘겨줘야죠. 한국방송가수노동조합 위원장직은 내년 5월 30일에 임기가 끝나요. 이번 앨범은 예전처럼 저돌적으로 PR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직까지 이동기가 가요계에서 노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진솔한 이야기를 내놓는 거죠. 히트와는 상관없이.” 그는 요즘 자꾸 고향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산속에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나머지 인생을 보내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담대함을 가진 동시에 굉장히 인간적이고 소탈한 뚝심으로 살아온 그는 이제 칩거의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처음 노동운동을 할 때는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났어요. 사나운 매파였죠. 그런데 나이를 먹고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다 보니 전략적 평화주의가 됐어요. 이제는 노사관계를 대화로 풀죠. 노동운동 초창기보다 지금 사람들이 더 많이 따라요.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어서 감격스럽죠.” 가수는 자기 노래를 닮는다고 했던가. 이동기는 사랑보다는 의리와 우정을 위해 ‘몸 바쳐서’ 살았다. 그가 몸을 바침으로써 조금 더 나아진 세상에서 가수들이 누릴 평화가 있길 기원해본다.
- 2019-11-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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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말고 레이디돌 모여라’
- 트로트 바람이 뜨겁다. 한동안 침체 됐던 트로트를 향한 대 국민적 관심을 끌어냈던 ‘미스트롯’은 시니어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트로트가 중장년층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은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트로트의 새로운 맛을 안기며,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음악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트롯가수 양성, 시니어모델 양성, 시니어뮤지컬 배우를 양성하고 있는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대표 차은선)가 시니어 여성6인조 세미트롯댄스그룹을 결성하기 위해 공개모집을 실시한다. ‘레이디돌’ 가수 공개모집 오디션 일자는 11월 29일(금) 오후 1시 남예종 아트홀에서 개최된다. 참가대상은 4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가수를 희망하고 음악적 감각이 있는 여성들이며, 접수기간은 10월 25일(금)부터 11월 26일(화)까지다. 접수는 남예종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공개모집 오디션에서는 MBC ‘놀면뭐하니’에서 유재석의 작사 멘토로 유명한 1200곡의 ‘히트곡제조기’ 이건우 작사가가 심사하며, 선발된 인원에 대해서는 데뷔의 길이 열린다. 남예종 관계자는 “이번 오디션 분야는 보컬, 댄스, 특기 등을 심사하며 최종합격자는 국내 최초 세미트롯댄스그룹으로 활동할 예정이며, 노래, 춤, 끼가 다분한 5060세대 여성들로 멤버를 구축한다”고 전했다. ‘레이디돌’ 제작자는 시니어뮤지컬 감독인 안수현 총감독이 진두지휘할 예정이며, 아모르 파티 작사가인 이건우 교수가 직접 곡을 선물할 예정이다. 안수현 총감독은 “이번 레이디돌 오디션에서 음악을 사랑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니어들의 도당찬 도전을 기대해본다”며 “활기차고 건강한 50대 꽃중년들의 예능의 꿈을 펼쳐보시라”고 말했다.
- 2019-11-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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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 36주년, 오늘도 무대를 불태우는 가수 정수라의 인생 해법
- 세월이 비켜간 듯한 목소리, 과거와 똑같은 외모. 30대 중반처럼 보이지만, 올해 그녀의 나이는 만56세. 믿기지 않는다. 절대 동안의 외모, 청아하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로 ‘난 너에게’, ‘내 사랑을 본 적이 있나요’, ‘환희’ 등을 히트시키며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군림했던 정수라가 바로 그녀다. 작년에 데뷔 3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치르고 올해 초 신곡 ‘업고! 업고!’를 발표한 후 활동 중인 그녀는 11월에 있을 공연을 준비하며 쉼 없이 바쁘게 살고 있었다. 여전한 카리스마와 놀라운 가창력으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오늘 현재를 철저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인생관, 그리고 가수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업고! 업고!’는 ‘업고 신나게 놀면서 우리 기운을 상승시키자’는 의미예요. 원래는 제목을 영어 그대로 ‘Up Go’(유피 고)로 하려 했는데 작사가 이건우 씨가 ‘영어로 하면 너무 아이돌 노래 같아서 우리 세대는 낯설 수 있으니까 한글로 가자’고 해서 그렇게 됐죠.” 정수라의 신곡 ‘업고! 업고!’를 들어보니 EDM(전자음악을 통칭하는 용어)이 가미된 남진의 노래를 정수라가 부르는 듯한 신나는 곡이었다. 정수라의 대표곡들이 워낙 듣는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노래가 많기에 그런 이미지와도 부합했다. “‘업고! 업고!’가 나오기 전에는 발라드곡을 발표했어요. 그런데 발라드보다는 힘찬 노래가 어울린다는 피드백이 오더군요. 물론 그런 반응들만 따라가는 건 아니지만, ‘환희’ 이후에 사람들을 업시킬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죠.” ‘아! 대한민국’으로 최고 인기가수 사실 대중이 아는 정수라는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청아한 창법이 특징인 가수다. 이런 이미지를 만든 노래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 들어봤을 ‘아! 대한민국’이다. 원래는 타이틀곡도 아니었고 음반에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전가요로 만들어진 노래였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공전의 히트를 치며 제2의 애국가라는 별명까지 갖게 됐다. 지금도 대학가와 운동 경기장을 가면 자주 듣는다. 젊은 사람들도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정수라인 걸 알면 놀라면서 신선하게 느끼지 않을까. “‘아! 대한민국’은 그 시대에 만들어야 했고 불러야 했던 노래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빵 뜬 거예요.(웃음) 정말 의외였어요. 그래서 정수라는 강하고 씩씩하고, 건전가요에 어울리는 가수라는 인상을 갖게 됐죠. 개인적으론 마음에 안 들어요. 덕분에 쎄 보인다는 말도 듣는데, 저 엄청 여려요.(웃음)” 엄혹한 시대에 숙명처럼 얽혀 슈퍼스타가 된 정수라였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 대한민국’의 대성공 이후로도 꾸준하게 히트곡을 발표하며 1980년대를 상징하는 가수가 됐다. 또 ‘가요톱10’에서 총 21번 1위를 기록하며 역대 세 번째로 1위를 많이 수상한 가수가 되었다. 1980년대에 우리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살았던 것이다. 다른 세대와의 소통도 필요해 정수라는 중학교 3학년 때 연예계 데뷔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독특한 목소리를 인정받은 그녀는 일찌감치 광고음악을 통해 대중과 만났다. 학교보다 스튜디오를 더 많이 다녔다는 그 시절, 그녀를 가수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은 ‘바람이었나’, ‘풀잎 이슬’ 등의 노래를 만들어준 작사가 박건호였다. 그 후로 36년간 연예계에서 활동한 그녀이지만, 젊은이들 위주의 프로그램이 많은 요즘 방송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다. 혹시 그녀도 대중에게 잊힌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을까? “무대 위에 올라가면 못 느껴요. 무대에서 내려와 일반 생활을 할 때, 내 연배들은 나를 알지만 그보다 연하인 사람들이 못 알아볼 때는 조금 느끼긴 하죠. 사실 저는 너무 숨어 있었어요. 예능도 안 하고 토크쇼도 안 하고. 카메라를 의식하는 방송울렁증이 있어서, 그리고 뻔한 게 싫어서 그랬죠. 그런데 요즘은 ‘내가 다른 세대와의 소통에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차피 오래 노래하려면 나를 아는 세대하고만 만날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와 어울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봐야 하지 않나?’ 하며 되묻긴 하죠.” 얘기를 좀 하다 보니 그녀에게서 가수는 물론 방송인으로서의 욕심 또한 느껴졌다. “‘불타는 청춘’에 나온 후에는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나를 만난다는 게 얘깃거리가 된 거죠.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나가고 싶어요. 요리 예능요? 내가 요리를 못해. 그것보다는 요리를 배워보는 게 좋겠어요.(웃음)” 노래 안 했으면 연기했을 것 예능 얘기를 하다 보니 천생 가수인 그녀가 만약 노래를 안 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했다. 그녀는 단숨에 ‘연기자’라고 대답했다. “연기를 하면 다양한 인생을 살 수 있잖아요. 저는 너무 단순해요. 56세이지만 나를 다 못 보여준 거 같아서요. 사람들은 저에 대해 무대 위에서의 파워풀한 느낌만 기억하는 것 같아요. 원래 제 성격은 천방지축이거든요. 이젠 다양한 내면을 드러내고 싶어요” 정수라는 (매니저에게) “너 영화 쪽에 아는 사람 좀 없니?” 하며 웃었다. 요즘 아이돌은 데뷔 전 연기 교육도 기본으로 받는다. 아이돌 가수생활을 발판으로 삼아 향후 연기자로서의 미래까지 염두에 두고 하는 준비다. “요즘 아이돌, 인정해야죠. 그런 가수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저도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시대를 만나게 된 거고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디제잉하는 친구와 조인해서 EDM을 하고 싶어요. 마돈나처럼, 그리고 인순이 선배가 조PD와 한 것처럼 말이죠. 일단 재밌잖아요.” 멀티플레이어 정수라의 욕심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가 멀티플레이어 욕심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득 가수 권인하가 최근 유튜브에 채널을 열어 독보적인 가창력을 뽐내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노래가 성공하려면 유튜브를 반드시 해야 한다. 가창력 하면 정수라도 결코 뒤지지 않는 가수인데 유튜브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유튜브는 와 닿질 않아요. 내가 걸어가는 길이 있는데 굳이 거기에 맞추다가 자칫 잘못하면 마이너스가 될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일단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게 중요하죠.” 뜻밖의 보수적인 면모가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녀의 그런 반응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젊었을 때 근거 없는 악성 루머에 오래 시달렸고, 곧 가수 데뷔 40주년이 될 만큼 오래 연예계에서 일했지만 아직도 방송울렁증이 있다. 그런 경험이 있는 그녀에게 무턱대고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여과 없이 노출하는 유튜브는 당연히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수로서의 재능을 생각해봤을 때 유튜브야말로 그녀에게 최적화된 포맷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녀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하루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젊게 보인다는 것은 저에게는 플러스죠. 필라테스를 6년째 하는 중이에요. ‘내가 힘들 때 뭐하고 있었더라?’ 생각해보니 운동을 하고 있었더라고요.(웃음) 땀 흘리는 게 좋아요” 정수라는 기본적으로 승부근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노래들이 그렇듯이, 그녀는 지난 몇 년 동안 인생에서 벌어졌던 어려웠던 일들을 하나씩 극복해냈다. “요즘 몇 년 동안 나 자신에게 ‘정말 대단한 정수라야’ 하며 스스로를 칭찬했어요. 저에게 내일은 없는 날짜이고, 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오늘이 가장 중요해요. 최선을 다하는 게 행복한 하루죠.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내 노래를 듣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아요. 저는 살면서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게 문제였죠. 바쁘게 주어진 일만 했고 세상 물정을 몰랐고 꼭두각시처럼 일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세상에 치이고 사람에 휘둘려서 힘들었어요. 나이가 드니 나를 잘 챙기면서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게 가장 행복한 일 같아요.” 아직 내려놓을 때가 아니더라 정수라의 롤 모델은 패티김, 남진, 조용필 등이다. 그들처럼 기억되는 게 그녀의 꿈이다. “제가 음악적 자질은 그분들에 비해 많이 모자라요. 더 열심히 해야 했어요. 그래서 롱런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선배님들이 롱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나이를 받아들이고, 정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멋진 가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스스로 ‘여기까지가 딱이다’ 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내려놓으려고 해요. 그런데 아직은 아닌 거 같아.(웃음)” 훌훌 털어버리고 살자 하는 그녀에게 요즘은 큰 고민이 없다. 오로지 곧 있을 11월 공연에만 신경 쓰고 있다.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공연 연출을 위한 팀을 선정했고 아이디어와 연출을 더해가며 준비 중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그녀에게는 앞서 말한 행복의 이유들이 된다. 89세 어머니, 언니, 오빠와 사는 그녀에게 힘들지 않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어, 참 철없이, 열심히 살고 있어요.(웃음)” 허공을 보며 꾹꾹 눌러 웃는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박건호 작사가 주제로 열린 ‘가요무대’ 대기실에서의 만남은 짧았지만 여운은 길었다.
- 2019-10-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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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르 파티(Amor Fati)
- 요즘 나이를 불문하고 유행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중견가수 김연자가 부르는 폴카 풍의 노래로 신나는 곡이라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는 클럽 등에서도 인기라는 것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에서 '아모르(Amore)'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파티’는 ‘파티(Party)'로 오해 할 수 있는데 파티는 ’Fate‘ 즉 운명을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주장했다고 한다. 아모르 파티는 운명에 대한 사랑, 즉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즉, 운명이란 타고 난 것이므로 운명을 바꾸려고 애써 봐야 소용없으니 운명대로 살면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건우, 신철이라는 사람이 작사했고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윤일상씨 작곡으로 되어 있다. 가사를 보면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중가요의 히트 요소를 고루 갖춘 노래인 것이다. 가사 중에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들을 살펴보면 ‘인생은 지금이야’,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는 요즘 한창 화두인 ‘카르페 디엠’과도 맞닿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에서 소개했듯이 ‘오늘을 즐겨라’는 뜻이다.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가사는 요즘 역시 화두인 ‘YOLO(You Only Live Once)’ 즉, 한 번뿐인 인생이니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의미가 있다. 카르페 디엠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자신에게 실망 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는 오늘의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위로가 되는 말이다. ‘노오력’이 노력해봐야 안되더라는 자조적인 말로 쓰이는 것을 보면 운명에 대해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는 요즘 젊은이들의 풍조를 그대로 나타낸 가사이다. 이러니 결혼 안하는 사람이 많고 저 출산으로 이어진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사는 시니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요즘 취업은 안 되고 따라서 결혼도 못하고 있는데 나이만 먹어간다고 푸념하는 젊은이들도 공감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다 보니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아직 청춘이라는 시니어들이 많다. 오승근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가 히트한 것도 같은 배경일 것이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라며 거울에 비친 늙은 모습에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인생’은 사랑, 이별과 함께 대중가요 3대 단골 주제이다. ‘인생’이라는 같은 제목만으로도 여러 가수가 부른 서로 다른 노래가 많다. 안치환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 주지 않았다’처럼 ‘인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 제목까지 확대해보면 인생 주제의 노래가 정말 많다. 인순이의 ‘인생’이라는 노래에서는 ‘인생이란 잠시 쉬어 가는 우리 여행 길’이라고 했다. 우리가 태어나서 한번뿐인 인생이라며 열심히 살았다. 이제 인순이의 ‘인생’ 가사에서 ‘황혼 빛에 물드는 노을처럼만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알 수 있는 거죠. 그게 바로 인생이란 걸’에서 이제 조용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다시 아모르 파티 가사에서 ‘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에 지나간 추억을 아름답게 추억하며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2017-09-27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