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남의 아름다움을 이뤄주고, 남의 추함을 이뤄주지 않으나, 소인은 이와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
-‘논어’ 안연편
필자가 오늘 소개할 세 사람은 바로 군자(君子)가 추구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늘 자기를 살펴 고치고, 그동안 해온 업(業)을 배움과 덕으로 더욱 널리 펼치는 모습이 지극히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된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어느결에 새 마음이 헌 마음이 되었습니다. 다져 먹었던 결심과 각오는 흔들리고, 마음에 새겼던 약속은 또 다른 변명과 구실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영웅호걸 찾기 힘든 시절, 업을 이어 승화시킴으로써 세상에 나누는 여장부(女丈夫) 세 사람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대설 내리는 날, 구둣방에서
혹독한 한파가 몇 날 며칠 계속되더니 드디어 큰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날 이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남편 등산화 수선을 맡기러 평소 눈여겨보던 답십리 사거리 구둣방을 찾은 것입니다. 하필이면 대설로 천지 분간도 안 되는 날을 잡았지 뭡니까. 교차로 신호등이 바뀌기 무섭게 잰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저만치 백열등 알전구가 노란 불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휴, 다행이다. 속으로 안심하며 드르륵 가게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사장님?” 인사를 건넵니다.
이곳은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구두 수선집입니다. 40년 가까이 해온 이 일의 진짜 주인은 남자 사장님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여자분이 가게에 종종 보이더니 아예 사장님 자리를 꿰찼네요.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조심스레 여쭤보았습니다.
“사장님이 바뀌셨나요? 남자 어르신은 이제 안 보이시네요. 어디 편찮으신가요?”
대답을 듣지 못해 민망해진 필자는 더는 묻지 못하고 본론을 꺼냈습니다. 등산화 바닥이 많이 망가져서 고칠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요.
세상 뜬 남편 대신 업을 이어 붙이며
“한 3년 됐어요.”
낡은 신발 바닥을 잘라내고, 덧대고, 기우고, 못질로 신발 몸체와 단단히 연결시키는 과정을 빨려들듯 지켜보느라 처음에는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 대꾸도 않는 제게 그녀는 다시, “칠십도 안 된 남편, 담낭암과 황달로 3년 전에 보냈어요. 그이 생전에 어깨너머 배운 것과 밖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걸로 닫았던 가게 문 다시 열었어요.”
왜 맨손으로 작업하시느냐 물으니 장갑을 끼면 감각이 무뎌져 정교함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손톱 밑이며 손바닥과 손등까지 시커멓게 변한 손이 마치 ‘뻬빠’(사포) 같습니다. 거친 자신의 몸을 문대어 운동화며 구두며 장화며 부드럽고 매끄럽게 하니까요.
신발 바닥 덧대는 여자
요즘엔 서방 알기를 개떡같이 아는 세상이 되어서인지 몰라도 남편 구두 반짝반짝 닦아 현관에 대령은커녕 벗어놓은 신발 걷어차거나 밟지 않으면 다행이라고들 합니다. (이 말은 제 뒤에 앵클부츠 한 짝을 들고 온 초로의 여자분이 필자에게 요즘 젊은 것들 흉보며 한 말입니다.) 필자 역시 별다르지 않아서 먼지투성이 남편 신발을 꺼내놓자니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고요. 한데 구둣방 여주인은 험하고 더러운 데며 온갖 곳을 돌아다녔을 등산화를 소중히 안고 구석구석 매만지고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를 헤매고 다녔는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왜 관리는 제때 안 했는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자그맣고 여린 손으로 낡고 더러워진 신발을 귀한 물건인 양 정성스레 대하는 그녀 머리 뒤로 후광이 퍼지는 듯 마음이 짜르르해졌습니다. 아프고 상처 난 마음, 억울함과 분노로 막히고 뭉친 마음에 반창고 붙인다고 다니는 필자는 그날 비좁은 구둣방에서 숨고 싶어질 만큼 작아졌습니다.
숟가락 장단에 희로애락 담아
‘찐찐찐찐 찐이야 완전 찐이야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
나무 숟가락 두 개를 한 손에 쥐고 유행가 따라 장단을 맞추며 춤추는 이복자 숟가락난타협회 대표. 실용음악 재즈피아노를 전공하고 음악치료 석사과정을 공부한 이 대표는 일평생 음악학원을 하며 생업을 이어오다, 환갑이 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습니다. 이 대표는 평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도 형편이 되지 않아 아예 시도하지 못하거나, 배우는 과정이 어려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에 일상에서 흔히 쓰는 도구를 악기 삼아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해 즐길 수 있도록 악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단순명료하게 만들었습니다. 세모, 네모, 별, 화살표, 이렇게 딱 네 개 기호만으로 만든 그녀만의 악보는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별도 볼 수 있고, 세모, 네모 다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갈증을 쉬운 악보와 도구로 풀어준 이 대표는 숟가락 난타를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위기가 가져온 인생 반전
이 대표는 숟가락난타협회를 만들어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대면, 비대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강사 양성과 공연에 열중했습니다. 그 공로로 2021년 제40회 스승의 날 기념 ‘한국강사신문이 선정한 제1회 대한민국 명강사 12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숟가락 난타 강사이자 음악가로 활동하며 자신이 양성한 제자들이 전국 방방곡곡 숟가락 난타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힐링·음악치료 분야에서 수상한 만큼 그 정성과 열정을 인정받은 셈이지요.
어쩌면 코로나19는 이 대표에게 인생 2막을 열어준 전화위복의 불씨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면 수업 중심이던 음악학원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모든 활동이 멈췄을 때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접하며 활로를 모색할 수 있었으니까요. 30년이 훌쩍 넘도록 운영해온 음악학원을 딸에게 물려준 이 대표는 ‘내 삶의 주인공’으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노후에 펼칠 로망으로 간직했던 꿈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음악 분야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악기와 음악을 쉽게 접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을 더 늦기 전에 펼치게 되었지요. 오랜 궁리 끝에 ‘세상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배워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바로 숟가락 난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악기 가운데 관객 호응이 가장 좋은 점도 함께 즐기기 안성맞춤이고요.
마음 장단 맞추기는 참 어려워요
흥과 끼라면 지구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민족은 악기가 있건 없건 가락과 장단에 맞춰 잘 놀 줄 압니다. 쿵짜락 쿵짝 삐약삐약. 왕년에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춤춰보셨습니까. 지역마다 독특한 장단이 있습니다. 장단 맞추기 쉬울까요? 즐겁고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해 숟가락 난타를 개발해 전국을 다니며 장단 맞추기를 가르쳐온 이 대표에게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인간관계에서 부딪히는 갈등이라고 합니다. 어제 막역한 친구였다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적이 되어 자신을 공격해오는 경우는 정말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네요. 평생 음악학원에서 십대 안팎 어린 교육생들만 상대하다 숟가락 들고 만나는 어른들은 영판 달랐으니까요. 스스로 마음 단련하는 법을 익히느라 고생도 했지만, 숟가락 두드리며 가슴속 진심이 상대에게 전해져서 서로 위안이 되는 따뜻함을 나누었으면 하는 게 이 대표의 바람입니다. 밥 먹던 숟가락이 이제는 신명과 즐거움을 먹고 그 행복을 베풀게 되었습니다.
높이 말고 낮게, 예술을 나누는 천사
하프 소리는 사람이 듣기에 가장 좋은 음파를 낸다고 합니다. 서툰 연주도 신경을 긁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할까요. 초보자가 연주해도 아름답게 들린다는 게 하프가 지닌 강점이라네요.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그런 게 아닐까요. 하늘에서만 연주할 것 같은 고상하기 그지없는 하프를 지상으로 가져와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배우고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이가 바로 안영숙 한국하프교육협회 회장입니다. 사실 회장보다 교수라는 호칭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안 회장은 한국에서 하프 연주자, 일명 하피스트 1세대로 불리는 유학생 1호입니다.
악기 제작자로 변신한 하피스트
하프 대중화라는 목표에는 우리 국민의 마음이 정서적으로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안 회장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하프는 이동과 보관이 너무 불편할 뿐 아니라 실제 연주할 때도 불편을 넘어 고통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정말 까다롭고 비싼 악기입니다. 이런데도 그동안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걸 이상하다고 느낀 안 회장은 자신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용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주변의 무관심과 싸늘한 시선을 뒤로하고 결국 목공학교를 5년이나 다니면서 사서 고생을 한 끝에 미니 하프 ‘줄리’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그녀의 노고는 속속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10일 제1회 줄리 하프 국제 콩쿠르 본선을 한국영상대학교에서 열어, 초등부에서 실버 부문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하며 하프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12월 21일에는 ‘2022 한국 소비자 베스트 브랜드 대상’ 악기 개발 및 하프 교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직접 만든 소형 하프로 하프 대중화와 악기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안영숙 회장. 줄리 하프는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악기 수출뿐 아니라 교육센터를 통해 누구나 쉽게 하프에 접근해 즐길 수 있도록 저변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충남 공주시 단골 철물점에서 직접 고른 철사줄을 매어 하프를 손보던 안 회장은 가게에서 즉석 연주를 합니다. 오드리 헵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연주했던 ‘문 리버’(Moon River)가 그녀의 손을 타고 계룡산까지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오늘도 헌 구두 하나 꺼내며
옆 사람 표정과 눈빛에 상처 입고, 가족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폐부 깊이 찌르는 송곳이 되어 아플 때. 이런 날이면 필자는 신발장을 기웃거립니다. 뭐 고칠 것 없을까 공연히 이 신 저 신 꺼내놓습니다. 오늘은 아들 구두 손볼 차례입니다. 새 신 바닥 앞뒤로 미리 고무창을 덧대면 발바닥도 덜 아프고, 우툴두툴 고무 요철이 미끄럼도 막아주고, 신발 수명도 늘려준다고 하니 일석삼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둣방에 미리 오신 옆자리 손님은 자기 것과 딸내미 롱부츠까지 바닥 창을 덧대달라는 주문을 하네요. 구두처럼 우리 마음에도 다치기 전, 아프기 전 미리 반창고 하나씩 붙여보실까요.
민화는 정통 회화를 모방해 생활공간을 장식할 목적이나 민속적 관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는 실용화다. 이러한 민화의 개념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그 역사는 매우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민화란 조선시대 후기 서민층의 무명작가들이 그린 그림들을 말한다.
도자기, 족자, 병풍, 부적류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한 민화는 그린 이와 쓰임새를 생각하면 당연히 일반 민중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친숙한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자 어느 순간 민화는 우리 곁에서 멀어지게 됐다. 그리고 떨어져 있었던 만큼 지금은 낯설고 어려운 그림처럼 느껴지게 됐다. 이러한 장벽을 작가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민화는 기본적으로 행복한 그림이에요. 그리고 오방색을 기본으로 화려하게 표현해 색채가 강하죠. 그래서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무엇보다도 민화는 의미를 지닌 그림이다.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됐기 때문에 저마다의 소망이나 목적이 숨어 있을 수밖에 없다.
“민화를 가르칠 때는 민화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가르칠 때 하나하나 설명해줍니다. 호랑이 그림에는 주술의 의미가 들어 있고, 씨가 많은 것들은 다산을 뜻한다는 식으로요.”
이 작가는 아이들을 지도할 때 기존의 민화와 똑같이 그리는 걸 지양한다. 대신 그림에 쓰일 소재들이 가진 뜻을 설명해주고 원하는 대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저는 그림은 느낀 대로 편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인 표현 기법은 알려줘야 하죠. 그렇게 해서 한두 명이라도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심성이 고와지고 감수성이 좋아진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화실 갈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작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가 진심으로 전통 미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열정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 궁금했다.
“그동안 제가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게 아니라 취미로 해서 즐겁게 오래할 수 있었다고 봐요. 요즘도 토요일마다 화실을 가는데, 그날이 제일 즐거워요. 그렇게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건강이 중요하죠. 체력을 위해 주말에는 등산을 하고 학교 출근해서 조회 시간 이전에 직원들과 40분 정도 산책을 해요. 강권하지 않는데도 다들 적극 참여합니다.”
그녀가 현재까지 만든 작품은 80~90점 정도 된다고 한다. 상당한 숫자다. 병풍도 소품도 많이 만들었는데, 그리기 시작한 지 5년 정도는 기존 작품을 많이 재현했다. 그 후로는 창작에 매진했고, 지금은 재현과 창작의 균형을 맞추는 중이란다.
“요즘은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있어요.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을 이용한 마블링 기법으로 창작을 시도하고 있죠. 물론 민화의 기본은 유지하면서요. 정년퇴임할 즈음에는 개인전을 해볼까 합니다.”
제2인생 설계는 은퇴 10년 전부터
이 작가는 제2의 인생을 민화와 함께하려고 마음먹었다. 은퇴 후에도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센터 등을 통해 꾸준히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은 큰 걸음의 시작이다. 돈을 벌기보다는 재능을 기부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직장에서나 정년을 맞이했지 인생은 계속되어야 함을 여실히 보여줄 계획이다. 아울러 제2의 인생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의 인생 설계는 최소 은퇴하기 10년 전부터 해야 한다고 봐요. 할 수 있는 일, 친구 관계, 사회 기여, 재력, 시간 등을 꾸준히 조금씩 준비해야겠죠. 제가 처음에 민화를 그릴 때는 남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느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들 부러워해요.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학교에서도 리더십이 잘 발휘되고, 교육청에서 좋은 평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부족한 거야 항상 많죠. 그러니 늘 공부하며 노력해야 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그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민화 작업의 낯선 마블링 기법 시도도 그러한 성향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많은 선생님이 힘들어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변하며 자신부터 바뀐 현실에 맞추려 노력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오는 지금, 어쩌면 그녀가 민화라는 우리의 옛것을 통해 보여주는 활력과 제2의 인생을 꿈꾸는 희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민화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친숙한 이미지들이 있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호랑이,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 무속에서 나오는 작은 신들을 그린 그림들 등등 평자에 따라선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그림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대 민화 작가들의 손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돼오던 민화는 최근 미술에 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금 주목받는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민화는 주로 화가가 아닌 일반 민화 작가들이 그려왔다. 지난해 전국민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자 민화를 그려온 이복자(60) 작가다. 그녀를 만나 민화를 통해 얻은 삶의) 의미와 제2의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강원도 영월군이 주최하고 조선민화박물관이 주관한 제22회 김삿갓문화제 전국민화공모전 대상은 ‘현역’ 교장선생님인 이복자 작가에게 돌아갔다. 그녀가 내놓은 작품은 8쪽 병풍으로 구성된 ‘평양감사향연도’.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소장한 작자 미상의 동명 작품을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민화에 속하긴 해도 우리가 흔히 민화 하면 떠올리는 소품이 아니다.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하는 연회를 소재로 하고 있고 8쪽 병풍으로 구성된 만큼 규모가 꽤 크다. 심지어 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라 관련 자료도 변변찮았다. 당연히 이복자 작가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작품이 완성된 뒤 6개월 동안 안과를 다녀야 했을 정도다. 그러나 안구 질환과 함께 얻은 공모전 대상이라는 결실은 그녀가 민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느새 13년, 대작을 완성하다
이 작가는 서울교육대학교와 인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즉 천생 작가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고, 스스로도 그 꿈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대학교 때는 채색화의 대가인 이숙자 선생님께 사사했어요. 대학원에서는 동양화를 공부했죠. 그때 한지공예도 배웠는데, 거기에 민화를 그리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리고 2007년 박수학 선생님의 인사동 전시회에 갔다가 ‘궁모란도’를 보고 홀딱 반했죠. 배워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때부터 제자가 된 지 13년이 되었죠. 지금도 스승이신 박 선생님 인사동 화실에 나가고 있어요.”
2019년 서울 남명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후에도 그녀는 뼛속까지 민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을 작가이기 전에 교육자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사람들이 전통 미술을 너무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거듭 말했다.
“우리나라 전통 미술이 상당히 중요하고 교육 과정에서도 강조는 하는데 잘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부족해요. 아이들도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건 알지만 못 배우고 있어서 제가 열심히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요즘 한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우리 민화도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겁게 감상하는 날들이 오면 좋겠어요. 최근 홍콩에서 우리 민화를 소개했는데 강의가 성황리에 끝났고 민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예요. 제가 초창기에 작업할 때보다 관심이 높아졌고 전국의 다양한 평생교육센터에도 강의가 많이 개설됐죠. 저도 민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교육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이 작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민화에 대해 가르쳐왔다. 2009년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 집필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민화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 수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감으로 지낼 때는 고학년들에게 민화를 지도했다.
민화를 가르치는 열정 교장선생님
“교장이 되면서 두 가지 모토를 생각했어요. 하나는 전교생에게 수업을 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선생님들에게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주는 것이었어요.”
그 다짐대로 이 작가는 고학년들에게는 민화를 가르치고 저학년들에게는 그림책을 읽어준다. 아이들과 감성을 나누고 공감하기 위해 직접 수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지은 교내 미래관에 갤러리를 열었다. 원래 설계에는 없었으나 그녀가 교육청을 설득해 만든 것이다. 단순한 갤러리가 아닌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감상 교육을 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또한 선생님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철저하게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모임이라서 어떠한 인위적 강요도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가 꿈인 그녀는 학교가 시각적으로도 예쁘고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목표를 위해 식물 재배와 시설 개량 등을 하면서 학교를 계속 가꿔나가고 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학교로 들어가면서 느낀 밝은 분위기는 그 때문이지 싶었다. 그야말로 에너지가 넘치는 삶이다.
“선생님들과 하는 미술 동아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활동해요. 거기서 배운 걸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도 하고요. 학부모 참여도 계획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학교 바깥에서의 전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싱글 남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8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 모여 난타 연습과 스포츠 댄스를 배운다. 강남시니어플라자 대표 싱글 모임인 회원 중 8명. 11월 말에 있을 플라자 내 교육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난타 공연을 할 예정이다. 싱글들의 모임이라 그럴까? 생기가 넘친다. 왠지 모를 자연스러움에 나이까지 잊게 만든다. 그렇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탐색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말이다. 격 있는 싱글들이 모인 김에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당신들의 속내, 지금 연애가 하고 싶습니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속사정
난타 소모임의 반장격인 이복자씨를 제일 먼저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들어봤다. 초등교사로 은퇴한 이복자씨는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무용을 공부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도 무용학교 입시 안무가로 젊은 시절 제법 잘나갔다. 스포츠 댄서로서도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하는 이복자씨. 그랬던 그녀는 재작년 황혼이혼을 했다. 작년 9월부터는 싱글의 몸으로 봄빛클럽 회원이 됐다. 지금은 나름의 재능을 살려 회원들에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이복자 황혼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남편의 술버릇 때문이었죠. 젊을 때는 교사라서 못하고, 아들 결혼식에 빈자리를 만들기 싫었습니다. 결국 이혼했어요.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호주로 떠났는데 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어요. 자존심상 주위에 혼자된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봄빛클럽을 알게 됐습니다. 법적으로 혼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상담도 받은 뒤 회원이 되면 싱글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건전하고 나 또한 싱글이니까 마음놓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봄빛클럽 안에 최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말 그대로 탐색 중이다. 그녀에게는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이복자 남자 경제력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연금으로도 두 명 충분히 살 수 있거든요. 마음이 맞고 편한 상대를 만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분에게 당신이 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뭐 어때요? 여자라도 마음에 들면 말하는 게 맞죠. 말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웃음)?
하나, 둘 회원들이 모이고 왁자하게 웃음꽃이 폈다
난타 모임은 발표회를 위해 급조된 모임이다. 이곳에 모인 회원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매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진 촬영을 위해 테이블 주위에 회원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봄빛클럽 단장이었던 이활주씨와 난타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이영조·최연서·현정원·김순섬씨. 그리고 이복자씨의 댄스스포츠 파트너인 박노용씨도 나오지 않은 회원을 대신에 자리를 채웠다. 이날 모인 사람 중 유일하게 가정이 있는 남자다.
본격적으로 싱글 남녀와 대화를 열다
싱글이신데 젊었을 때와 지금 이성을 만나는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영조젊을 때는 좀 화끈하잖아요. 그런데 나이든 사람들의 만남은 하루하루 만나면서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거죠. 서로가 함께 있으면서 취미를 공유하고 같이 모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복자 모여서 떠들면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외로움도 해소하는 거죠.
최연서 젊었을 때의 연애는 쓰나미 같은 것이고, 지금의 연애는 밀물 같아요. 이 나이에는 쓰나미처럼 사랑할 수 없어요.
Q.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최연서 우리 생각은 시시때때로 바뀌어야 맞잖아요? 다른 사람 보면 또 바뀌고 그래야죠. 우린 싱글이니까요.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만 좋아할 수가 있어요(웃음)?
이복자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마음이 맞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요?
Q. 주로 어디서 만나시나요?
이영조사람이 그리울 때 저는 주로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집에 볼 만한 영화도 많고, 노래방 기계도 있어요. 그런데 전부 다 모여 먹고 마시다 보면 같이 영화 보고, 노래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음에 영화 볼 때는 몇 사람만 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때 갑자기 최연서씨가 이영조씨와 이복자씨가 함께 영화 을 봤다는 얘기를 꺼낸다. 야한 장면이 나오는데 둘이 괜찮았냐며 소녀처럼 묻는다.
이복자 문제는 그런 거를 같이 봐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는 거 아냐? 이제 완전히 고목이 됐나봐. 지금 연서씨가 얘기하니까 그런 게 있었나보다 하지. 이제는 그런 장면을 봐도 감정이 막 생기고 그런 게 없더라고요.
Q.댄스스포츠 같은 거 하다 보면 찌릿한 느낌 없나요?
최연서 그럴 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겠죠. 그런데 친구 사이로 생각하는데다가 배우는 데 집중해서 그런지 잘 몰라요, 그런 거.
이복자 지금은 댄스스포츠를 배우고들 있으니까 배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라도 더 배워서 안 잃어버리려고 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잘하나 못하나 그거에만 신경을 쓰지 남녀라는 느낌이 없어요.
이영조 지금 자꾸 내용을 그런 쪽으로 몰고 가는 거 아닌가요?
수줍어서인지 즐거워서인지 다들 박장대소한다. 격조 있는 싱글들이 만났으니 뭔가 있을 거 같다고 느꼈다.
이활주 우리가 만나봐야 한 달에 번개까지 해서 한두 번 만나요. 좀 얘기하다가 식사하고 노래방 가고,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니까 따로 시간 내서 한잔 더, 혹은 차라도 한잔 이런 걸 못 해요. 지금 그것을 파악하는 중이지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됐어요.
Q.솔직히 말해보셔요, 다들 연애는 하고 싶으세요?
최연서 좋은 친구는 만들고 싶죠.
김순섬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Q. 얘기가 잘 통할 때 연애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신가요?
이영조 희망사항이죠. 문제는 생각하는 이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서 혹시 남녀가 불이 붙으면 이 모임에 나올까요(웃음)? 관둡니다. 그건 분명해요.
이복자 자기들끼리 만나야 하니까.
이영조 맞아요.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둘이 만나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Q. 혹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헤어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김순섬 다시 들어오지는 않겠지. 자존심이 있는데 헤어졌다고 들어오나?
이활주 사실 예를 들어 “나 누구하고 만난다”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어요. 시치미 떼고 다시 오면 오는 거죠.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모임 회원 중 많게는 몇 사람 혹은 한두 사람은 서로 신상 탐색을 위해 밖에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Q. 이 모임은 싱글 모임인데 다른 모임과 차이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이복자 제 친구들 중에는 싱글이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하고 모임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바삐 집으로 가요. 남편 밥 챙겨주러요. 집안일이 그렇게 딱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같은 싱글들은 집에 빨리 가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여기는 싱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위화감은 없어요.
Q. 싱글 모임을 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요?
김순섬 다른 내 친구들은 싱글이 아니니까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못 만나요. 그런데 여기는 내가 전화하면 만날 수 있어요. 요즘 다른 친구들한테 자랑해요. 너희들 없어도 요새 나는 잘 놀고 있다고요(웃음).
Q. 같이 갔던 장소 중에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나요?
현정원 춘천 갔을 때도 재밌었고, 대하도 먹으러 갔었어요. 11월에는 충남 태안에 천리포수목원으로 2박 3일 계획하고 있어요. 봄빛클럽에서 희망하는 사람들만 갑니다.
솔직하지 못한 싱글 남녀들의 머뭇거림에 이날 객원 멤버로 참여한 무용실 원장 박노용씨가 한마디한다.
박노용 너무 생각이 깊어요. 만나는 거 자체는 흥미롭고 좋은데 열지 못하는 거죠. 가정이 있는 제가 느끼기에도 몇 가지 장단점이 느껴집니다. 자유로운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좋아 보이기도 하네요. 각자에게 주는 감정이 참 세밀합니다. 그런데 젊음이 떠나서 그런가 들이대는 게 부족해요(웃음).
이활주 그 말이 맞을 거예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돼요. 가족의 눈 등 일단 다른 사람들의 눈이요. 좋아하는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알아가면서 좋은 감정을 만들 수도 있으련만.
최연서 자신에게도 신중해야 하고 남들도 생각해야 하고 젊었을 때랑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복자 나이 들어보니 감정은 뒷전이고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가리게 되니까 빨리 뭐가 안 이뤄지는 거죠.
박노용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따뜻한 친구는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싱글 모임이 좋은 거 같아요.
최연서 누군가 말하기를, 이성 친구는 딱 보고 1분 내로 결정하라더군요. 단 지성과 양심 중에 양심 쪽을 택하라고 하더군요.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은 만남이 달라요.
시니어 싱글 남녀. 이들도 결국은 진짜 사랑을 만나고 싶고, 지금까지의 삶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을 표현하고 내세울 수 없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마음이 시니어들이 사랑을 생각하는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