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멀지도 않다. 알고 보면 생각난 김에 떠나볼 수 있는 곳이다.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DMZ가 인접해 있고, 겸재 정선의 화폭에 담긴 폭포가 지금도 쏟아져 내린다. 아득한 옛날 후고구려의 궁예 이야기와 임꺽정의 무대였던 지역임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먼 곳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수도권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거리다. 다가갈수록 북녘을 눈앞에 둔 철원평야는 황금 들녘이다. 절벽에 매달린 한탄강 협곡의 주상절리길은 스릴 넘치게 아찔하다. 전쟁을 대비하고 군부대 포사격 훈련장이었던 땅엔 백만 송이가 넘는 평화의 꽃을 피워 올렸다. 이 땅의 최북단 철원의 풍성한 가을이 마냥 아름답다.
마음을 두드리는 평원의 가을
가을을 마음에 담기에 이 땅의 드넓은 평야만 한 곳이 있을까. 누렇게 물든 대자연과 넓은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철원 소이산은 다른 지역보다 가을이 먼저 시작된다. 새벽부터 분주히 달려서 도착한 소이산 주변으로 운무가 가득하다.
소이산은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이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금방 오를 것 같은 높이지만 제법 가파르다. 20여 분 숨차게 오른 소이산 전망대는 본래 군부대 주둔지였던 곳이다. 지금은 오르막 길목의 평화마루공원에서 공원과 지질 명소를 안내한다. 오래전의 미군 막사와 초소는 녹슨 채 허름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근처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인 봉수대오름길로 이어지는 코스도 보인다.
전망대에 오르자마자 펼쳐지는 경이로운 광경에 비로소 가을을 흠뻑 맞는다. 황금빛 너른 들녘의 놀라운 풍광이 전망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산야는 거대하다. 무한한 대지와 하늘, 철원 북쪽의 평강고원까지 두루 조망할 수 있도록 막힘없이 탁 트였다.
철원평야에 오름처럼 우뚝 솟은 소이산은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는 봉수대가 위치했던 곳이다. 철원의 역사와 함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소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철원평야 너머엔 비무장지대가 있다. 맑은 날에는 북한 주민들의 움직임도 보인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DMZ 건너편 철의 삼각지대를 미묘한 기분으로 바라본다. 분단이란 현실이 만들어낸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나는 지점이다.
최북단 철원은 가을이 일찍 찾아와 추수도 다른 지역보다 빠르다. 9월 초부터 시작해 10월이 되면 조생종 벼들은 일찌감치 수확을 끝낸다. 이미 추수를 한 논과 벼가 익은 상태에 따라 논마다 채도 대비가 다양하다. 끝없이 넓은 패턴의 선과 면의 들판은 한 편의 작품 같다.
철원평야에서 생산되는 오대쌀은 우리에게 유명하다. 무엇보다 용암 대지와 현무암의 풍화로 비옥한 토양을 자랑한다. 청정환경에서 생산되는 쌀의 질과 밥맛을 결정하는 천혜의 기후 조건 또한 으뜸이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에서 패하고 철원평야를 빼앗겨 김일성이 슬퍼했다는 게 괜한 얘기가 아닌 듯하다. 철원오대쌀은 지역 특산물로 국내 최초로 브랜드화한 이름이다.
소이산을 내려오는 길 양쪽으로 아침 이슬을 매달고 있는 가을 들꽃들이 예쁘다. 깊은 산속에서 피어나 유난히 색감이 선명하고 맑다. 쾌청한 숲길에서 절로 힐링된다. 소이산을 내려오니 막 운행이 시작된 모노레일이 지나가고 있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편치 않은 교통 약자라면 소이산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된다.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역에서 모노레일을 탑승하면 왕복 1.8km 거리다.
주변에 노동당사가 있어 가볼 만하다.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였으나 이후 전쟁의 크나큰 상흔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다.
평화의 꽃을 피워 올리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이 이슬뿐일까. 소이산 전망대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철원 고석정 꽃밭에선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강원도 북단에 이토록 넓은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니, 꽃 따라 봄가을로 여행 올 만하다. 입구에서부터 짙은 빨강과 다홍, 노랑으로 화려한 융단처럼 펼쳐진다. 꽃 이름이 촛불맨드라미다. 바로 옆으로 고향 마을에서 본 듯한 백일홍이 제각각의 색깔로 꽃밭 가득하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마음껏 즐기는 꽃마당이다.
꽃밭 넓이가 자그마치 23만 1000㎡라고 한다. 축구장 서른 개가 넘는 규모다.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도 한참 걸린다. 맨드라미를 시작으로 백일홍, 천일홍, 메밀꽃, 해바라기, 장미, 코스모스, 가우라, 버베나, 핑크뮬리, 댑싸리, 억새 등 종류별로 가을꽃이 활짝 피어 눈부시다. 봄 시즌에는 노란 유채꽃이나 수레국화, 안개초 등이 피어난다. 꽃길을 걷다 보면 때론 연못이 나타나고 넓은 잔디광장이 나온다. 어린 왕자 조형물이 있는 전망대와 풍차가 볼거리를 더하는데, 일몰 풍경과 꽃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편안하게 꽃구경을 하고 싶다면 꽃밭을 한 바퀴 도는 깡통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고석정 꽃밭은 애초에 군부대 포병 훈련장이었다. 과거 Y진지라 불리던 곳이 철원 지역의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변신했다. 포성이 울리던 허허벌판에 평화의 꽃을 피워 올렸다. 철원이 안보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무한히 넓은 꽃밭에서 계절별로 꽃의 물결을 볼 수 있다.
수직 벼랑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주상절리
철원의 주상절리는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위치한다. 화산이 폭발하고 분출한 마그마가 서서히 식으면서 현무암이 되었고, 강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협곡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바위들이 수직의 벼랑을 이룬 비경을 그동안은 배를 타고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아찔한 절벽에 선반처럼 매단 3.6km의 잔도(棧道)가 마련되었다. 일명 한탄강 하늘길로 불리는 잔도 덕분에 빼어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까이에서 생생히 만날 수 있다.
트레킹의 출발점은 두 군데다. 순담 게이트와 드르니마을 게이트가 있는데 대부분 순담매표소에서 출발한다. 참고로 드르니는 애초에 양지바른 마을에서 유래되었는데, 궁예가 고려 왕건으로부터 피신할 때 ‘들른’ 마을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전한다. 철원 여행을 하다 보면 유난히 궁예와 연관된 명칭을 자주 본다. ‘말등소’라는 소는 궁예가 왕건에게 쫓길 때 빠졌던 소(沼)로, 말이 너무 힘들어 똥을 쌌다 하여 말똥소라고도 한다. 트레킹을 마치고 시작점으로 다시 갈 경우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현재는 주말에만 운행한다.
잔도는 걷기에 따라 다르지만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나라에 잔도가 몇 군데 있지만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는 그 절정이다. 한탄강 협곡 절벽 20~30m 높이 벼랑길에 매달린 잔도를 걸으면서 깎아지른 수직 절벽의 위용에 놀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반원형 전망대는 아찔함의 최고점이다.
틈틈이 쉼터가 나타나니 잠깐씩 쉬면서 절경에 잠겨봐도 좋다. 쪽빛소쉼터, 맷돌랑쉼터, 돌단풍쉼터, 드르니쉼터 등 이름도 예쁘다. 자주 나타나는 13개의 출렁다리마다 지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생김새와 위치 등에 따라 돌개구멍교, 한여울교, 선돌교, 수평절리교, 단층교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잔도 위를 걷다 보면 신나고 짜릿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간이 허공을 걷듯 공포감이 드는 구간도 지나야 하고, 가파른 계단을 몇 번씩 만나게 된다. 나중에는 기진맥진할 수도 있으니 적당한 체력 조절이 필요하다. 감동과 스릴, 억겁이 빚어낸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철원 주상절리길이다.
지지난해엔가 가을에 갔던 연천은햇살이 바삭하고 고요했던 산하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번에 찾아간 봄날의 연천은 조금 달라진 기분이다. 충분히 봄날인데도 바람이 차서 자꾸만 옷깃을 여몄다. 더구나 휴전선과 가까운 최북단이라는 이유로 사진 한 장 담아보지 못한 채 느낌이 확연히 달랐던 봄바람을 맞으며 산을 내려왔다.
마침 전방 마을의 주민께서 안내해주신 덕에 고맙게도 최전방 마을을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 백학면이라는 연천의 최전방 마을은 아무리 둘러봐도 인적이 드물다. 마을 길 옆으로 자그마한 단층 지하에 백학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게 보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3.1 독립운동 시절에 몸과 마음을 바쳐 대항했던 이 지역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그들만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소중한 이야기다.
바로 맞은편 작은 광장에는 영웅정신계승마을이라는 탑이 우뚝하다. 그 옆으로 전장(戰場)에서 총을 잡는 대신 지게를 짊어진 민간인들의 활약을 새겨놓은 긴 설명이 있어서 꼼꼼히 읽어보았다.
호국보훈의 달, 최북단의 접경지역 연천을 가다
한국전쟁 당시 접전지역이 산악지형이었기 때문에 전투물품 운반에 어려움이 컸다. 이때 5시간씩 걸리는 험한 길을 민간인들이 45kg 정도의 포탄을 지게로 짊어지고 날라다준 덕분에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었다.
지게부대로 연인원 30만 명이 투입되었다 하니 주민이라면 누구나 지게를 짊어지고 날마다 나선 셈이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애국자들이다. 지게 모양이 영어의 A와 비슷하다 하여 미군들은 A부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탄약을 지어 나르는 이들을 보면서 유엔군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생명줄이며 전투의 절반은 이들의 공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복이나 총기도 지급되지 않았고 가파른 절벽을 걸어 다니느라 희생되신 분들도 적지 않았다 하니 마음이 못내 안타깝다.
다크 투어리즘의 증표, 레클리스 하사 이야기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지게부대 이야기 옆으로 숨은 영웅 레클리스(Reckless) 하사와 한국전쟁 이야기가 그림으로 남아있다. 레클리스는 전쟁 당시 군인이 아니라 군마(軍馬)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중에 포탄 운반용 말이 필요했다. 이때 미군들이 신설동 경마장에서 구입한 퇴역 경주마의 이름이 바로 ‘아침 해’였다. 미군들은 아침 해의 별명을 레클리스라고 지었다.
레클리스는 영리한 전투마로 미 해병들과 지내면서 우수한 전투병이 되어갔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통에 엄청난 양의 포탄을 짊어지고 옮기는 용기와 헌신은 전쟁 영웅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이 없을 때는 혼자서도 고지를 왕복했다고 한다. 병사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던 전우 레클리스는 정전협정 후 미국 버지니아 본부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하사관으로 진급시켰고 성대한 전역식으로 예우를 다했다고 전한다.
레클리스는 해외 유명 언론에서도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라이프 매거진’ 특집에서는 ‘세계 100대 영웅’에 선정되었다. 한국에서도 2013년 우리의 전쟁영웅 레클리스의 실물 크기 동상을 세워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게 했다. 이른바 연천 백학마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증표, 한국전쟁의 영웅 레클리스 동상이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북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고랑포구는 1930년대에 최고의 무역항으로 번창했다. 한국전쟁 때는 최대 격전지이기도 했고 휴전 후에도 통일 한국을 위한 접경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고랑포구 역사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실과 VR, AR 체험은 물론이고, 저잣거리와 카페테리아 등이 마련되어 있다.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는 옛 명성과 달리 역사공원 앞으로 임진강변의 강물만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백학면에서 들러볼 곳이 또 하나 있다. DMZ백학문화활용소라는 갤러리는 연천만의 지역적 특색도 있지만 전시물도 특별하다. 현재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백학역사박물관 유물 다시 보기’ 전시를 진행 중이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치열했던 전쟁과 그 상흔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다. 행사는 6월 30일까지다.
한탄강 주상절리 천혜의 지질 여행
연천은 한탄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상절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지질공원 투어도 있고, 힐링을 겸한 트레킹 코스도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주상절리라는 특이한 지질 구조는 화산 지형인 제주도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여러 군데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수직의 주상절리는 병풍처럼 독특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지질 명소다. 물결은 잔잔하고 봄볕은 화사한데 한두 명의 강태공이 낚싯줄을 던져놓고 하세월이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바람은 아직 차다.
주상절리 바로 위쪽으로 숭의전을 올라가 봐도 좋다. 홍살문 입구에서 찬 우물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들이켜고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조선시대에 고려의 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공신들의 제사를 지냈던 고려의 종묘인 숭의전이다. 주변으로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고 담장이나 기와에서 자라는 잡풀과 푸른 이끼가 세월을 말해준다.
한탄강 지질 명소 중에 연천 전곡리 유적은 이 땅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기록에 따르면 1977년 주한미군 그렉 보웬이 데이트를 하던 중 한국인 연인이 주워온 ‘이상한 돌’을 보고 전문가에게 조사를 요청해, 이곳이 중요한 유적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돌이 30만 년 전의 돌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라고 한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질 명소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곡선사박물관에는 그 옛날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유적공원이 형성돼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당시를 상상해볼 만하다. 넓은 잔디광장에서 다양한 조형물을 보면서 까마득한 옛 시간을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볼거리도 많고 공기도 맑아서 산책길이 더없이 즐겁다.
돌아가는 길에는 한탄강 인접 지류인 재인폭포(才人瀑布)를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물길 아래로 내려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구경하거나 길 옆 절벽 위에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주차장도 넓어졌고 넓은 캠핑장도 생겨났다. 전망대와 출렁다리가 이어졌으며, 데크를 따라 양옆으로 편리하게 내려갈 수 있다.
비가 많이 온 후에는 엄청난 수량이 쏟아지며 물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렇지 않을 때도 직선의 길쭉한 물기둥이 소리를 내며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폭포 이름이 재인인 것은 옛날에 줄타기를 잘하던 재인(才人)의 이름으로, 그에게는 예쁜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을 수령이 부인을 탐하여 재인에게 폭포에서 줄타기를 하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한 것이다. 부인은 수령의 코를 물고 폭포에서 자결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연천은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역이다. 길을 가다 보면 군부대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지만 인구밀도가 낮아 사방으로 한적하고 여유롭다. 울창한 산림자원도 풍부하고, 호로고루성이나 당포성, 은대리성 등 옛 성곽이 보여주는 오랜 세월의 이야기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지금껏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연천이어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앞다투어 봄꽃 개화 시기를 전하고 있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철쭉, 산수유, 수선화, 튤립... 그리고 벚꽃엔딩까지 친절한 안내가 줄을 잇는다. 그야말로 꽃철이다. 멀리 남녘 지방까지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의 기운을 맞을 수 있는 곳, 날마다 꽃이 피어나고 있는 수도권 부천의 꽃 이야기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정에 따른 변동으로 꽃 축제와 입장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필수다.)
부천 원미산 진달래 꽃동산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이런 시 한 소절이 아니어도 봄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진달래꽃이다. 부천 원미산(富川 遠美山)은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하다. 봄이 되면 원미산을 뒤덮는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만개한 꽃물결 속에 파묻혀 봄을 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초입에 세워진 김소월 님의 진달래꽃 시비(詩碑)를 지나 능선을 조금 오르다 보면 발아래로 저 멀리 부천 FC 스타디움이 보인다. 원미산 167m에 올라 정상의 원미정에서 내려다보는 부천 시가지와 종합운동장, 역동적인 축구장을 진달래 동산이 에워싸는 포인트에 서면 봄을 만끽하는 순간이 된다. 3월 중순경부터 약 한 달 남짓 만발한 진달래를 볼 수 있다.
♤가는 길: 지하철 7호선 부천 종합운동장 2번 출구로 나와서 500m 정도 거리에 있다. 참고로 1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우측 놀이동산을 끼고 부천 순환 둘레길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둘레길 걷기의 시작이 된다. 특히 1구간의 향토 유적 숲길은 운치 있다.
부천 자연생태공원 튤립 정원
사월과 오월 중순쯤까지 가장 화려한 색감으로 온 누리를 빛내주는 튤립을 볼 수 있는 곳, 부천 자연생태공원이다. 이곳은 부천식물원, 자연생태박물관, 부천 무릉도원 수목원, 농경유물전시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도 테마 정원과 유아 숲 체험관, 힐링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아이 어른 상관없이 다양한 볼거리가 가능한 문화휴식 공간이다. 코로나로 훌쩍 떠나지 못하는 수도권 시민들이 찾아드는 곳이기도 하다.
부천 무릉도원 수목원의 튤립은 고결하고 우아한 자태로 봄 햇살을 받으며 가장 강렬한 색감으로 최상의 멋을 보여준다.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튤립 꽃길을 걸으며 선명한 빨강, 노랑과 보라, 하양, 핑크 등의 화사한 꽃들을 들여다보는 행복은 오직 이때뿐이다. 이 무렵 담장 너머 목련은 이미 지는 중이고, 춘덕산에서는 부천을 상징하는 복사꽃 피는 마을답게 춘덕산 복사꽃 축제가 이어졌었다.
튤립 정원을 지나 나타나는 수목원은 편백 군락지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힐링의 숲이다. 천천히 걷거나 곳곳의 벤치에 앉아 봄의 정취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주상절리를 연상케 하는 폭포, 생태연못 쪽으로 가면 수생식물들과 시원하게 내뿜는 분수의 물바람을 맛볼 수 있다. 나비정원, 풍차, 귀여운 토끼나 공작새의 미니 동물원은 튤립을 보러 왔다가 자연 속의 풍경에 푹 빠지는 시간이 된다. 출구로 나가면 주변에 맛집도 즐비하다.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 660(춘의동)
7호선 까치울역 1번 출구에서 3분 정도 직진
내비게이션 명칭 검색 : 부천식물원 또는 자연생태박물관
☏부천 자연생태공원 공원 조성과(032-625-3502)로 연락
백만 송이 장미원의 화려한 봄날
해마다 오월이면 장미가 온 천지에 가득했던 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 올해도 여전히 피어나겠지만 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혹시라도 아쉬움에 찾아가 장미원 둘레 담장 너머로 먼발치의 장미꽃들을 바라볼 만도 하다. 돌아보면서 군데군데 나타나는 장미 터널과 예쁜 포토존이 행복감을 주는 장미원이다.
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은 부천시에서 1998년 150000여 그루의 장미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되었다. 장미 한 그루에서 7~10송이의 꽃이 피어나기에 백만 송이의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벚꽃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주변의 도당산이 에워싸고 장미를 비롯한 야생화 단지와 분수대, 체력장 등의 시설들이 갖추어진 장미꽃 테마공원이다. 오월과 칠월 사이에 절정을 이루는 백만 송이 장미를 풍성하게 볼 수 있다.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산 34
지하철 역곡역이나 까치울역에 내려 마을버스 013-3번
☏부천시청 공원관리과 공원관리 2팀(032-625-4854)
부천 상동호수공원의 꽃양귀비
계절별 꽃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상동호수공원. 그중에서 5~6월이면 붉은 꽃양귀비가 피어나 짙은 아름다움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준다. 부천시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공원으로 호수 근처로 나무 데크 길이 길게 연결되어 있어서 바람 쐬며 걷는 맛이 최고다. 또한 체육 시설과 놀이시설, 휴식 공간이 두루 잘 갖추어져 있어서 산책길에 한나절쯤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원이다.
꽃양귀비 정원에 들면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의 붉은 양귀비와 함께 청보리가 자라나고 있다. 두 가지의 어울림을 조화롭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혹시 코로나의 여파로 꽃밭 가까이 갈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촬영하려면 망원렌즈를 지참해야 한다. 멀리 꽃구경 가기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부천 상동호수공원은 수도권에서 쉽게 나설만한 곳이다.
♤지하철 7호선 삼산체육관역 1번, 5번 출구 역
경기 부천시 길주로 16 복사
부천 중앙공원 능소화 터널
한때는 능소화를 찾아서 저 아랫녘까지 가기도 했다. 이제는 길거리나 동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그 옛날 구중궁궐 속에서 다시 찾지 않는 임금이 하도 그리워 궁녀 소화는 날마다 임금의 발자국 소리에 오매불망 귀를 기울였다. 죽으면서도 담장 아래에 묻혀 님을 기다리겠다는 애절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궁녀 소화, 님의 발소리를 들으려 귀를 활짝 열어놓은 듯 피어난다. 기다림의 세월이 능소화로 곱게 다시 피어났다는 전설의 꽃이다.
부천 중앙공원에 가면 능소화가 터널을 이루어 피어난다. 6월 말부터 7월 중하순까지 흐드러지게 만개했다가 툭툭 떨어지며 진다. 꽃이 지는 모습도 볼만해서 능소화 터널 아래 낙화가 뿌려져 있을 때 다시 가기도 한다. 더위와 비바람에도 흐트러진 남루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꽃잎 하나씩 날리며 지는 게 아니고 미련 없이 꽃 한 송이 통째로 떨어뜨리는 게 능소화의 마지막 모습이다.
♤경기 부천시 중동 1177(부천 시청 뒤편)
색다른 여가를 즐기고 싶은 시니어에게 요트는 매우 낭만적이다. 하지만 초보자가 바로 입문하기에는 비용을 비롯해 제한점이 많다. 요트를 구입할 경우 각종 세금과 요트 관리비, 계류장 이용료 등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다. “요트는 살 때 한 번, 팔 때 한 번, 총 두 번의 즐거움을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 무턱대고 구입을 고려하기보다는 요트 체험하며 요트를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국내에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요트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꼽아봤다.
서울 현대요트 더리버
한강에 있는 더리버 마리나에서는 도심 속에서 휴양지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파티보트,카타마란 요트, 세일요트 등 요트 라인업이 다양하다. 종류가 다양한만큼 디너파티와 기념일 이벤트, 기업행사같이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저렴한 파티보트는 주간에는 2만 원, 야간에는 3만 원에 즐길 수 있다. 주간 운행은 30분, 야간 운행은 45분이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오후 9시에 마지막으로 출항한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일이니 월요일은 피해야 한다.
더리버는 한강반포지구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동작역 1번 출구로 나와 구름카페 엘리베이터를 타서 한강산책로로 가야 한다. 한강산책로에서 10~15분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구반포역에 내렸다면 2번 출구로 나와 지하도를 이용한다. 차량을 가지고 간다면 한강 유료주차장에 주차한다.
김포 아라마리나 해양아카데미
김포에 위치한 아라마리나는 요트 체험뿐 아니라 이론 교육, 실전 심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공마리나다. 해양레저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이자 체험장이다.
체험 프로그램은 매주 수,목,금요일에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운영한다. 수상안전교육, 카약, 수상자전거, 모터보트, 세일요트까지 배울 수 있다. 가격은 1인당 3만 원이다.
김포 아라마리나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과 인접해 있다. 지하철 9호선 개화역 1번 출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 내리면 된다. 김포골드라인을 이용한다면 고촌역 1번 출구 정류장에서도 버스를 타고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옆에 내린다.
자가용 이용자들은 아라마리나도 주차장에 주차한다. 주차장은 유료지만 요트조종면허면제교육, 수상레저, 요트스쿨 이용객에게는 50% 감면해 준다.
부산 요트홀릭
부산 요트홀릭에서 요트를 체험하면 부산 바다 한가운데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대형 카타마란 요트를 타고 부산 수영만 마리나에서 출발한다. 마린시티 마천루, 동백섬, 해운대와 광안리까지 도는 코스를 체험할 수 있다. 요트 탑승자에게는 맥주와 주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대인 3만 원, 소인 2만 원에 탑승할 수 있고, 영유아는 무료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며, 마지막 출항은 오후 9시다. 체험은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요트홀릭을 체험하고 싶다면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방문한다. 지하철 이용 시 2호선 동백역에서 하차해 3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정도 이동하면 된다. 버스 이용 시 307, 38, 115-1번 등 버스를 타고 부산문화여고 앞에서 내린 뒤 대우마리나 아파트 사이로 직진한다.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여수 푸른마리나 요트투어
여수 이순신 마리나에 위치한 푸른마리나 요트투어 프로그램은 드라마 ‘사랑의 온도’ 촬영으로도 유명하다. 1시간 코스 주간 운행, 2시간 30분 야간 운행 프로그램이 있다. 12인승 요트 탑승 시 주간은 4만 원, 야간은 5만 원이다. 45인승 카타마란 요트 주간 운행은 8만 원, 야간 운행은 10만 원이다.
특히 야간 세일링은 이순신 마리나에서 출발해 돌산대교, 종포해양공원, 하멜등대 등을 지나며 여수 밤바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프로그램에 선상 낚시 체험도 포함돼 있다. 럭셔리한 여행을 위해 다과와 와인도 제공한다.
여수 푸른마리나 요트투어는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 마리나에서 즐길 수 있다. 여수종합터미널에서 31,89,21번 등 버스를 이용해 시전삼거리에 하차한 다음 82,83번 버스를 타고 웅천지웰1차 아파트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웅천지웰1차 아파트에서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한다. 주차장은 무료다.
제주 그랑블루 요트
제주 그랑블루 요트에서 체험할 수 있는 요트는 국내 최초로 알루미늄으로 만든 요트다. 와인바, 샤워실, 침실이 갖춰진 카타마린 요트를 대인 6만 원, 소인 4만 원에 탈 수 있다.
대포항에서 출발해 주상절리를 관람한 다음 낚시 체험을 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돌고래를 만날 수도 있다. 세일링 체험과 식사까지 한 다음 다시 대포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낚시 체험, 세일링 체험은 기상 악화 시 생략될 수 있다.
운항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보통 일출 전 30분에서 일몰 전 30분까지 운항한다. 현지 날씨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전화로 문의하고 예약하는 것이 좋다.
그랑블루 요트투어를 하기 위해선 제주 서귀포시 대포동 제이엠그랑블루요트를 방문한다. 제주국제공항에서 600번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이동해 대포항 정류장에 내린 다음 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주차는 무료다.
로하스 연천이라고도 불린다. DMZ가 인접한 청정지역답게 때묻지 않은 가을 햇살이 바삭하다. 그 햇살에 덮인 자연은 렌즈에 필터를 한 겹 더 씌운 듯 깊이 있다. 연천은 구석기부터 고구려시대까지의 성(城)을 비롯한 유적이 가장 많은 곳이다. 순수한 자연을 누리며 오랜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가능하다. 경기 북부 연천의 가을 들녘, 마음이 풍성해지는 외출이다.
연천 지역에서 고구려 문화유산 흔적은 일상의 풍경이다. 자동차를 타고 연천의 들길을 달리다 보면 나지막한 민둥산처럼 보이는 성이 나타난다.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이다. 연천을 대표하는 고구려 문화유적이다. 임진강변의 높은 절벽 위에 흙을 쌓아 다지고 돌을 높이 올려 성벽을 이룬 천혜의 요새로서 지금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은 주상절리, 적의 방어기지이자 물자 이동의 상업적 지역이었던 고랑포구, 한탄강과 장진천이 만나는 은대리성의 숲 등 연천은 민통선과 가까운 전방 도시이지만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해바라기가 함께하는 호로고루성
꽃철마다 붐비는 곳이 있듯이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물결을 이룬 해바라기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온다. 호로고루성은 독특한 이름만으로도 솔깃한데 언제부터인가 고구려 성벽 아래 펼쳐진 해바라기 밭으로 사람들이 찾아든다. 이제는 북새통의 절정기가 지나고 한가하다. 이미 노란 꽃잎을 떨구고 씨를 내민 해바라기 밭 건너편으로 우뚝 솟아오른 호로고루성, 그 주변으로 한가롭게 오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린다.
성 위에 올라서 보면 낮게 흐르는 임진강과 연천의 산천이 따스한 가을볕에 덮여 있다. 흙과 돌을 이용해 토성과 석성의 이점을 결합한 축성술이 돋보이는 호로고루는 그 옛날 개성과 서울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연천과 개성 간의 거리는 30km 정도. 강 건너편의 개성이 보일 듯 말 듯하다. 든든한 주상절리를 믿고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은 물이 깊지 않아서 예로부터 육상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전해진다. 그 강을 옆에 둔 호로고루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해바라기 밭이 계절을 물씬 전한다. *사적 제467호
고랑포구의 추억
연천은 산을 돌아 들길과 강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호로고루성 들판을 건너 바로 근처의 고랑포구는 한국전쟁 이전엔 무역항으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었다. 전쟁 이후 그 명성은 사라졌지만 지난해 '고랑포구 역사공원'을 개관하면서 다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역사관 실내엔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의 옛 풍경을 재현해놓았고 체험실과 첨단의 콘텐츠를 설치 전시해서 찾아드는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특히 역사공원 앞마당에 들어서면 ‘레클리스’(Reckless)란 이름의 군마 동상이 눈길을 끈다. 그 앞으로 멀리 임진강변의 고랑포구를 바라보며 강물 따라 흘러간 역사를 그려본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무덤
고랑포구 역사관에 왔으니 바로 옆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신라 마지막 왕의 무덤 경순왕릉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경주나 개성 어디쯤에 있을 듯한 신라의 왕 무덤이 연천에? 하면서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위탁하고 개성에서 여생을 마친 후 경주로 운구되는 중 고려 조정에서 “왕의 구(軀)는 백 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하여 이곳 고랑포리 언덕에 장례를 모셨다고 한다. 민란이 염려되어 임진강도 못 건너고 연천에 머물게 된 비운의 왕릉이다. 경순왕릉은 소박하고 석물의 배치나 종류도 간소하다. 조선시대의 여느 왕릉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두른 산이 있어 제법 위엄 있다. 잠시 넓은 잔디밭과 숲 그늘을 거닐어본다. 역사 저편의 사연을 안고 연천 땅에 묻힌 경순왕의 고뇌를 경건하게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입구에 문화해설사가 상주해 있다.
고려 왕조의 역사가 깃든 숭의전(崇義殿)을 아시나요
고려 왕조의 위패가 봉안된 숭의전, 입구의 태조 왕건이 마셨다는 약수터 어수정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홍살문을 지나 5분쯤 천천히 길을 오른다. 마치 오래된 옛 길을 걷는 듯하다. 그 숲길에 간간이 밤이나 도토리가 툭툭 떨어져 떼구루루 구른다.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고려의 부흥을 이끈 옛 고려 왕조를 향한 충절이 깃든 곳으로 태조 왕건의 위패와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입구의 담장과 기와에서 자라는 푸른 이끼가 오랜 세월을 말해준다. 고려 왕실을 지켜준 550년 수령의 느티나무 숲 절벽 아래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우거진 숲 사이로 캠핑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사 유적이 자리 잡고 있는 힐링 숲, 그 아래 고즈넉하게 흐르는 임진강, 온통 정적만 감도는 경내 한쪽에서는 보도자료 영상을 촬영하는 팀이 보이기도 한다. 고요한 태곳적 숲의 사적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가을볕에 마음이 여유롭다. *평화누리길 1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언덕 강벽 위의 옛 진루, 사적 제468호 당포성
숭의전을 내려와 5분쯤 달리면 삼각형 절벽의 땅 위에 쌓은 당포성이 가을바람 속에 있다. 마치 호로고루성과 쌍둥이 성인 듯 흡사하다. 성의 생김새나 임진강을 옆에 두고 있는 주변 지형도 비슷하다. 나루 위에는 동벽과 전망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당개나루로 불렸다는 옛 포구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시대의 성(城)이 연천에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주상절리에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진 주상절리라는 자연적 성벽 위로 흙과 돌로 쌓아 올려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삼은 것이다. 성 위로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오롯하게 서 있다. 역사의 한 장면인 듯 바라보았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아름다움, 주상절리
멀리서 바라만 봐도 주상절리를 품은 임진강의 잔잔한 물결이 평화롭기만 하다. 화산활동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아 생겨난 기하학적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 그곳엔 긴 시간의 이야기가 켜켜이 스미어 있을 것이다. 천년 요새였던 그 강가에 강태공 한 명 세월을 낚으며 앉아 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은 마냥 다디달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듯 잡초와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는 주상절리 둑방길도 한적하다.
휴전선과 가까운 민통선 북방지역답게 연천은 철원, 포천 등과 함께 흔히들 말하는 군 전방지역이다. 그 들길과 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삼엄한 전방 군부대를 군데군데 지나치게 된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은 철조망 철책 따라 줄지어 걷는 군부대 장병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이 땅 최북단의 군부대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씩씩한 아들들을 한참 바라봤다. 고마운 청춘들.
DMZ와 인접해 있는 연천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임진강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풍부한 수자원과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한 생물 자원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구역이다. 또한 구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석기인들의 생활 흔적이 발견된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세계 고고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인정하는 지역이다.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 한탄강 하류에 위치한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을 품고 있는 재인폭포(才人瀑布)의 장관도 빠뜨릴 수 없다.
연천의 하루, 심신이 편안하다. 그 옛날 우리의 오천년 시간 속에서 고구려가 써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어낸 시간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에 연천의 시골 인심 한 보따리를 차에 실었다. 민통선 청정지역답게 맑은 물, 비옥한 토지에서 자란 각종 채소와 과일 등 다양한 농산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그 들녘엔 지금 가을이 풍성하다.
◇영화처럼 맛보기
기왕 연천에 갔으면 북쪽으로 조금 더 달려 군부대 앞의 망향비빔국수를 맛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이 국숫집은 연천에서 군생활을 했던 병사들이라면 거의가 다녀간 집이다. 그런 추억 때문에 일부러 먼 길 달려가 먹는 국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화 '강철비'에서 대한민국 외교안보수석과 북한 최정예 요원으로 분한 배우 곽도원과 정우성이 국수를 후루룩 맛있게 먹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국수 위에 올린 상추 한 잎은 '망향의 시그니처'로 불린다.
옛사람들은 유장한 강이기도, 깊은 계곡이기도,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폭포이기도, 때론 굽이치는 파도이기도 한, 그 물을 보면서도 그 뿌리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즉 “물을 보는 데도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봐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는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만사의 근본을 깨치려 애썼다지요. 깊어가는 가을 수천만 년 동안 강물에 쓸려 반들반들한 돌 위에 배 깔고 턱 괸 채 날로 짙푸르러지는 한탄강을 보며,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 강의 시원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과 함경남도 안변 사이 해발 590m의 추가령에서 발원한 한탄강. 현무암 평원이 갈라지며 만들어진 수십 m 높이의 협곡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데 총연장 140km 가운데 60km를 북녘에서 흐릅니다. 이어 남으로 내려와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연천 일대 80km를 굽이친 뒤 임진강과 합류합니다. 깎아지른 주상절리와 검은 현무암, 짙푸른 강물이 어우러진 한탄강에 가을이 오면 우리의 가을꽃들이 피어나 그 어떤 문인화도 흉내 내지 못할 무위자연의 산수화를 그려냅니다. 포천구절초, 산국, 개미취, 패랭이꽃, 투구꽃, 서덜취, 용담, 배초향, 미역취, 고마리, 가시여뀌, 강부추 등등.
특히 한반도 내륙의 유일한 ‘화산하천’으로 유난히 계곡이 깊고 휘돌아가는 곡선이 날카로운 한탄강에는 현무암뿐 아니라 유연하고 부드러운 화강암 바위가 많기로 유명한데, 억겁의 세월 이리저리 휘도는 물살에 마모되고 둥글어진 거대한 화강암 바위 틈새마다 해마다 4월 새로 돋았다가 11월이면 스러지는 가냘픈 풀꽃이 있어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강변에서 자란다고 강부추라 불리는 여러해살이풀인데, 불과 달포 전만 해도 장맛비와 폭우에 전초가 잠겼을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내닫는 급류에 수없이 이리저리 휩쓸렸을 텐데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보랏빛 꽃을 화사하게 피우니 참으로 대견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는산부추에서 한라부추까지 국내에서 자라는 27개 부추속 식물의 하나인데, 파 뿌리 모양의 비늘줄기를 땅속에 묻고 그 위로 쇠젓가락 정도 굵기의 꽃대를 20~50cm가량 곧추세운 뒤 9~10월 그 끝에 탁구공 모양의 자주색, 또는 드물게 흰색 꽃을 피웁니다. 이른바 산형 꽃차례라 불리는 둥근 꽃차례에는 적게는 10개에서 많게는 80개까지 꽃이 달립니다. 잎은 길이 10~40cm, 폭은 꽃대처럼 가늘어 2㎜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2~5개가 돌려나는 잎의 단면이 원통형이거나 뒷면이 다소 눌린 형태이며, 속은 비었으며 잎줄기는 없습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나오는 설명의 전부다. 2003년 최혁재 충북대학교 교수 등이 한탄강 강변에서 자라는 종이 지금까지 중국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Allium longistylum Baker로서, 기존에 명명했던 실부추나 한라부추와는 뚜렷이 구별된다며 강부추란 국명을 신청하는 논문을 발표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강부추는 이후 강원도 화천 북한강과 경기도 파주 임진강 주변은 물론, 충북 등지에서도 생육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호인들이 강부추를 보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은 강원도 철원의 직탕폭포와 송대소 등 한탄강 일대 명승지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의 방주’가 멈춘 곳은 해발 5000여m 높이의 아라라트 산이다. 노아는 비둘기를 이용해 세상으로 나올 때를 확인한 뒤 제단을 쌓고 첫 포도원을 가꾸는 등 새로운 삶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아라라트’라는 명칭은 ‘우라르투’(Urartu)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우라르투 왕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 국가 아시리아와 대적하기도 했으나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했다. 그 후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총독을 파견해 이 지역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라르투는 ‘아르메니아’(Armenia)로 불렸다. 이렇게 노아의 후손들이 지켜온 땅 아르메니아는 오랜 시간을 버텨오며 생긴 슬픔의 생채기를 처연한 바람의 아름다운 숨결로 들려주는 곳이다.
가장 오래된 도시 예레반의 품격
아르메니아는 한글보다 1000년 이상 앞서 만든 그들만의 고유문자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3분의 1 정도 되는 2만9000㎢ 면적에 해발 1000m가 넘는 산악지대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총인구는 300만 명.
이 중 35%인 106만 명이 수도 ‘예레반’(Yerevan)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어디서든 아라라트 산이 보인다.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이 산은 삶의 시작이자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될 아름다운 보금자리다. 그리고 영혼을 치유해주는 곳이다. 치유는 밝은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빛과 어둠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 시작되며 그런 곳에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수천 년의 슬픔을 덮어온, 자신들의 시작이자 끝인 아라라트 산을 언제나 보고 싶어 한다. ‘베르니사시 시장’ 한복판, 화가의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그림은 아라라트 산과 노아의 방주를 그렸다. 아르메니아에 입국할 때 출입국 심사대에서 여권에 찍어준 스탬프에도 아라라트 산을 의미하는 산 모양이 선명하다.
인간이 살아온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한 곳인 예레반은, 구 소련의 건축가 ‘알렉산더 타마니안’(Alexander Tamanyan)이 아르메니아가 소비에트 지배하에 있을 때 설계한 계획도시다. ‘공화국 광장’에서 ‘자유 광장’을 거쳐 ‘캐스케이드’에 이르는 시내 거리는 신고전주의풍 건물들로 장식해 마치 파리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여행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예레반은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아줄 것만 같은 분홍색 빛을 띤 도시다.
해외 유명 브랜드숍과 유럽풍 분위기의 레스토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길은 광장과 광장을 연결해준다. 노천카페에는 까맣고 짙은 눈썹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누군가를 하루 종일 그리워하는 것 같은 눈길로 지나가는 여행자를 바라본다. 원형 형태의 오페라 극장에서 흘러나오는, 체리빛 노을 색을 띤 바이올린의 흐느낌은 이방인의 발걸음을 잡는다. 수업시간을 기다리던 발레 아카데미의 청소년들은 수줍어하면서도 주차 요금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외부인을 위해 기꺼이 무언의 손길을 내민다. 국민소득이 낮은 국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문화적 품격이 돋보인다. 무엇을 흉내 낸 가벼움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온 그들만의 자연스러움과 자존감이 스며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르메니아에 다시 가고 싶어 하고, 예레반을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로 꼽는다.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아르메니아 국화는 ‘물망초’다. 6000년의 역사를 가진 그들에게는 20세기에도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 제국에 의해 행해진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이다. 오스만 제국에서 살고 있던 250만여 명의 아르메니아인들 중 150만여 명이 살해당했다. 이 참화는 1973년 유엔에 의해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규정됐다. 이어서 많은 나라가 공식적으로 제노사이드(genocide, 국민·인종·민족·종교의 차이 등으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로 인정했다. 이 역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건 야만과 폭력으로부터 우리와 후손들의 삶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레반의 서쪽 언덕에는 ‘제노사이드 추모 공원’이 있다. 아르메니아를 방문하는 다른 나라 정상들도 이 공원에 꼭 들러 기념식수를 한다. 추모탑 밑에는 절대로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365일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상처를 극복하는 길이 무조건적인 망각은 아니기에 물망초를 국화로 선택한 아르메니아의 아픔에 공감이 된다.
제노사이드 때 학살을 피한 난민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교포)를 형성했다. 현재 해외에 사는 아르메니아인은 800만 명으로 아르메니아 인구보다 많다. 해외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 상당수는 성공한 기업가들이다. 이들은 아르메니아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그 힘이 막강하다. 미국에서도 유대인만큼은 아니지만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가 정치,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동병상련일까. 미국 L.A. 글렌데일의 위안부 소녀상 건립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계 디아스포라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세계 최초 기독교 공인 국가
아르메니아인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아라라트 산. 그러나 현재 아르메니아인들은 갈 수 없다. 과거 스탈린이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를 억압하고 무력화하기 위해 이 산을 터키에 분할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아라라트 산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산자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코르 비랍’(Khor Virap)’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에는 지하 20m 깊이의 동굴이 있다.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그레고리’(St. Gregory)가 왕의 명을 거역해 13년 동안 갇혀 있던 곳이다. 그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왕의 병을 고치자 왕은 크게 감동해 기독교로 개종했다.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다. 이때가 301년. 로마보다 91년이나 빨랐다. 코르 비랍 수도원은 7세기 때 동굴 위에 세웠다.
아르메니아는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독교를 지켜왔다. 심지어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도 아르메니아의 정체성을 지켜주고 통일을 시킨 힘은 신앙이었다. 동방정교회, 서방 가톨릭, 개신교가 아닌 ‘아르메니아 사도회’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엄숙한 신앙에는 초기 기독교의 순수함과 절제, 소박함이 많이 남아 있다.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의 비중이 커진 주요 원인은 그들만의 고유문자로 성경을 번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원은 중요한 예술, 문학, 교육센터이자 ‘카트치카’(khatchkars, 십자가 문양을 판 돌비석)의 완성처가 됐다.
아르메니아에서 가볼 만한 여행지
에치미아진 (Echmiadzin)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중심지로 300년경에 세워진 아르메니아 최초의 교회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추정되는 창이 보관돼 있다.
가르니(Garni) 신전, 아자트(Azat) 계곡 헬레니즘시대에서 로마시대에 걸쳐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기 위해 이오니아 양식으로 세운 신전. 신전 밑 아자트 계곡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가 있다.
게하르트 수도원 (Geghard Monastery) 고대 아르메니아의 동굴 수도원으로 예수님을 찌른 창이 보관돼 있었다고 한다. 계곡의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
타테브 수도원(Tatev Monastery) 해발 2000m 높이에 위치한 수도원. 외부에서 침입을 하면 말발굽 소리에 기둥이 흔들렸다고 한다. 고즈넉한 풍광과 코카서스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세반 호수(Sevan Lake) 바다가 없는 아르메니아에서 유명한 호수. 해발 1900m에 위치한 이 호수는 물이 맑고 깨끗해 가재도 잡힐 정도라고. 세반 호수의 송어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사진에는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 이야기를 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화면 속에 있는 피사체 자체만으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화면 속의 피사체와 관련되는 화면에 보이지 않는 바깥의 이야기를 함께 엮는 방법이다.
앞의 사진을 예로 들어보자. 이 사진은 호명산(경기도 가평군 소재) 산행을 마친 후 귀가하기 위해 상천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중 역 앞 시골 마을에서 발견한 장면이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농가 앞에 고목이 된 감나무가 서 있고 굳어진 시멘트 부대 위에 고양이 한 마리 졸고 있다. 때마침 따사한 석양 빛줄기가 고양이를 비추고. 낡은 삽 한 자루가 한가롭게 농가 벽면에 세워졌다. 기자는 이 장면을 보는 순간 한 편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고양이 잠 깨울까 조심하며.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사용하던 삽자루를 벽면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새참으로 막걸리 한두 잔을 마신 후 툇마루에 누워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낮잠을 즐기고 있겠지. 한 줄기 석양의 따사한 빛줄기를 즐기며 함께 졸고 있는 고양이. 시골의 나른한 오후 풍경” 카메라로 한 편의 이야기를 그린 셈이다. 사진 화면 속의 피사체(고양이, 삽자루, 농가, 감나무, 석양 빛줄기 등)와 그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화면 바깥의 다른 장면을 상상하도록 했다.
또 하나의 사진(앞 사진 참조)을 예로 들어보자. 정년퇴직한 후 사진 취미에 몰입하여 나름의 독특한 사진을 만들고 있는 유병창(70세) 작가의 사진이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개인 전시회로 자신의 사진을 세상에 보여준 작가다.
이 사진은 제주도 주상절리를 촬영한 것의 극히 일부분이다. 화가가 그린 예술 작품을 연상케 한다. 하나의 수채화라 해도 좋을 듯. 유 작가는 화산으로 생긴 기묘한 그 모습만을 보지 않았다. 화면 속의 장면에서 지구 변화의 숱한 이야기도 담지 않았을까 싶다. 이 작품이 들어 있는 사진첩의 제목에서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
“The Echo from A Distant Time(먼 옛날의 메아리)”.
피사체를 통해 먼 옛날 우주의 소리를 느끼게 한다. 화면 바깥세상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처럼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복사하듯 찍을 수도 있으나 화면에 보여주는 피사체와 연결된 바깥의 이야기도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사진 역시 그림이나 조각 등과 같이 한 분야의 예술이기에 그렇다. 셔터 누르기에 앞서 그런 메시지를 생각해 보면 새로운 사진이 만들어질 것이다.
경원선 백마고지역 개통 후 기차를 타고 철원평야에 처음 갔다. 경원선의 종착역이자 출발역인 백마고지역은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철도역이며 2012년 개장되었다. 이 역은 한국전쟁 중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공방전을 기념하기 위해 역 이름으로 명명했다. 신탄리 고대산에서 멀리 내려다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철원군의 남부는 대체로 산지를 이루어 금학산ㆍ고대산 등이 있다.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이 군의 동부를 남북으로 흐르는데, 용암대지 위를 흐르면서 전형적인 유년기의 침식곡을 형성하였다. 하안에는 주상절리와 수직단애가 발달해 곳곳에 절경을 이루고, 역곡천이 군의 서부를 동서로 흐른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었다. 철원평야는 200~500m 높이의 분지이다. 영서 북부지방에 있는 이 평야는 삼남지방의 평야지대에 비하면 작지만 평야가 좁은 강원도 내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크다. 현무암이 풍화된 비옥한 토양은 농사에 적합하여 예로부터 철원 오대쌀이 유명하다.
철원평야에는 물이 부족하여 평지에 흙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다. 이곳은 날씨가 추워서 논농사 한 번으로 끝이다. 겨울철은 낱곡을 찾는 철새들의 천국이 된다. 이때쯤 월동작물 재배를 위하여 준비가 한창인 다른 들녘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밭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한가한 이국이었다.
차를 이용할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관광버스가 유일한 교통이동 수단이었다. 백마고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 안보관광을 하였다. 제2땅굴을 살폈다. 뭣 때문에 두더지처럼 바위를 뚫었나. 다음에 철원평화전망대에 올랐다. 철책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무장지대와 철원평야가 확연히 갈렸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에는 아무 것도 없어 황량하였다.
민통선 너머로 푸르른 숲이 무성하다. 새들이 날고 짐승도 마음대로 뛰노는 우리의 강토다. 저 멀리 ‘피의능선’이 역사를 말하고 있다. 관광해설사의 날마다 남과 북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의 혈투 설명에 가슴이 메었다. 수만 명 피를 흘리고 우리가 차지한 철원평야다.
철원군은 광복과 함께 38선 이북지역으로 들어갔다가 휴전이 성립되면서 철원읍 등은 수복되었으나 일부는 비무장지대로 또 다른 일부는 북한으로 나뉘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월정역을 둘러보았다. 통일대박을 꿈꾸던 곳이다. 하지만 월정역까지 복원공사가 중단되었다.
통일수도를 그려보았다. ‘한반도의 배꼽’ 이곳이 딱 좋은 장소다. 유라시아 철도를 개설하고 넓은 대륙으로 말을 달려보자. 갑갑한 가슴을 활짝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