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골프관광협회(KGTA 회장 박병환)가 중국 상하이 란하이 골프클럽과 손잡고, 부킹 및 여행상품 서비스를 시작한다.
란하이GC는 포레스트, 링크스 코스 각 18홀씩 총 36홀 골프장과 24실 규모의 호텔을 갖춘 종합 골프 리조트 단지다. 특히 링크스코스는 영국의 ‘Top100골프코스닷컴’이 2020년 아시아 5위로 선정한 중국 최고의 명문 골프코스다. 한국 골프코스 중 사우스케이프가 3위, 제주 나인 브릿지는 6위로 아시아 10대 골프장으로 선정됐다.
란하이GC는 미국 프로골프협회로부터 중국에선 처음으로 PGA 브랜드 사용 허가도 받아 오는 6월 ‘PGA안잉 골프클럽’으로 재탄생한다.
KGTA는 영국 데스티네이션골프 한국 대표부로 외국 골퍼의 한국골프 라운드, 한국 골퍼들의 해외골프 라운드를 위한 플랫폼 구축을 목적으로 2022년 창설됐다.
KGTA 박병환 회장은 지난 5월 12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란하이GC 고위 관계자들과 잇따라 모임을 갖고, 한국 골퍼들의 란하이GC 이용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모임에는 한국의 골프여행사, 미디어, 의료계 대표 등과 란하이골프장 대표, 미국PGA 중국대표 등이 참석, 의견을 나눴다.
양측은 이 기간 한국인 대상 부킹서비스 개방, 객실 이용 등을 포함한 여행상품 개발 판매 등에 합의했다. 란하이GC는 회원 전용 골프장으로, 지금까지 비회원 대상 부킹서비스, 시설 이용이 거의 불가능했다.
박 회장은 “지금까지 중국 골프여행은 옌타이, 웨이하이, 칭다오의 산둥지역 골프와 겨울철 광저우, 하이난 골프가 대부분으로 중저가의 비교적 저렴한 것이 특징이었다”며 “이번 모임을 통해 그린피 등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중국 경제의 심장부인 상하이 안에서 아시아 최고수준의 명문 골프코스인 란하이GC 링크스코스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04년에 개장한 상하이 서산 국제골프장(파72, 6831야드)은 상하이 송강 서산 국가관광리조트 지역에 위치하며, 호수 공원 주변에 있는 프라이빗 개인회원 전용 골프장이다. 공원 전체 면적의 77% 골프 코스다.
해마다 총상금 1000만 달러의 아시아 최고 상금액으로 HSBC챔피언십이 열리는 골프장이다. 골프장에는 중식당과 양식 레스토랑, 와인바, 시가바, 다기능 홀, 커피숍, 골프숍, VIP룸 등이 있다. 상하이시 중심에서 30km 거리이며, 홍차오공항에서는 10km로 편리한 교통 여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한국인에게 뜻깊은 골프장이기도 하다. 2006년 11월 양용은 프로가 유럽프로골프투어(EPGA) HSBC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우승을 차지했던 곳이다.
중국 최고 명문 상하이 서산골프장
상하이 서산골프장은 전체 200여 개 별장이 있으며, 회원 수는 748명이고 한국인 회원은 한때 80여 명이었으나 현재는 20명 정도라고 한다. 회원권은 280만 위안(약 5억 원)이며, 두 명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명 회원권은 500만 위안(약 9억 원)이다.
페어웨이와 그린은 모두 최고급 잔디 벤트그라스를 사용했으며, 중국에서도 특히 관리가 잘된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장은 열대우림을 능가하는 빼곡한 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이루는 공원풍 코스로, 일 년 내내 밝은 녹색을 띠는 향장나무가 전체 나무 중 70% 이상을 차지한다.
평상시 그린 스피드는 9.5 정도이며 주말에는 10.6을 유지하지만, 대회 기간에는 PGA 요구 스피드인 12.2를 유지한다고 한다. 2017년 4월 27일 필자가 라운드한 날에는 전날 비가 와서 7.5 정도로 느렸으며, 기온은 11~21℃였다. HSBC챔피언십 대회 기간 총 4일간 3만 5000명 정도의 관중이 찾는다고 한다. 전체 캐디는 110명이며, 하루에 적정 인원 이외에는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골프장에 도착하니 클럽하우스 입구가 단정히 닫혀 있었으며, 로커룸에 들어가 지정 장소를 열면 수건, 슬리퍼, 비닐가방 등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물이 많고 나무가 빼곡하며, 멋진 별장들이 잘 어우러진 계획적인 골프장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맑은 물과 울창한 숲 인상적
첫 홀부터 검은색 큰 고니들이 페어웨이에서 한가로이 거닐며 반갑게 맞아준다. 고니는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는다고 한다. 잘 관리된 코스에서 자연과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첫 홀을 시작했다. 10번 홀 그린 뒤와 11번 홀 페어웨이 중간 오른쪽으로 사슴(鹿)이 10여 마리 있다. 자연에 더 가깝게 구성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4번 홀(파3, 175야드) 그린 뒤로 천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멋지게 서 있다. 전체 70%를 차지하는 향장나무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은행나무 두 그루는 각각 암수로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8번 홀(파5, 584야드) 160야드를 넘으면 페어웨이 왼쪽부터 작은 개울물이 다시 진행되면서 페어웨이의 하얀 벙커 3개와 멋진 조화를 보여준다. 티 샷 후 건너가는 오른쪽의 멋진 다리도 인상적이다. 그린 앞에서 10야드 폭의 물길이 가로막고 있어서 스리온이 쉽지 않다. 이 물길은 멋진 바위들과 함께 분위기를 한껏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11번 홀부터 15번 홀까지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20야드에서 40야드 폭의 물길이 흐르며 작은 섬을 둘러싸고 있다. 작은 섬에는 20여 개의 크고 작은 멋진 별장들이 길게 이어져있어 이탈리아 베니스 수로를 연상케 한다.
16번 홀 페어웨이 오른쪽과 17번 홀(파3, 179야드) 앞 깊고 큰 계곡 해저드가 그린 앞과 오른쪽까지 이어지는 위협적인 홀이다. 긴 파3 홀로 4개의 큰 하얀 벙커들이 그린 삼면을 에워싸고 있어 티 샷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린 오른쪽 뒤로 종탑이 멋지다. 가장 도전적인 홀이다.
이날은 특별히 싱가포르 출신의 골프장 관리 전문가인 로저(Roger) 총지배인과 점심을 함께하면서 골프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직접 골프장 곳곳을 소개해주는 등 뜻밖의 환대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해준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인도네시아에는 아름다운 골프클럽이 많다. 이번에 소개할 자카르타에 인접한 땅그랑(Tangerang) 지역의 모던골프클럽(Modern GC)도 그중 하나다. 인도네시아관광청 초청으로 방문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곳이다. 자카르타는 1200만 명이 살고 있는 매우 넓은 도시다. 인근 땅그랑, 보고르, 반테 등까지 더해 우리의 수도권으로 생각하면 인구 2000만 명이 넘어간다. 이곳에 60여 개의 골프장이 집중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약 160개의 골프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에 개장한 모던골프장(파72, 6311m, 레귤러 5863m, 티 박스 4개)은 브리티시오픈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한 호주 출신의 피터 톰슨(Peter Thomson)이 설계했다.
쉬워 보이지만 곳곳에 함정 많아
기자가 라운드해본 코스 중 가장 평탄한 코스였다. 그러나 공이 떨어질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앞에 턱을 높이 치켜든 작은 벙커들이 기다리고 있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코스가 심술을 부리는 듯하다. 일단 벙커에 들어가면 탈출이 쉽지 않다. 좁고 턱이 높은 벙커이기 때문이다. 그린 주변 역시 3~4개의 벙커들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니 만만히 보았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코스 동선이 매우 효율적이다. 그린 옆에서 바로 다음 홀과 연결되는 곳이 많아, 시내 중심에 자리한 위치 특성상 좁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레이아웃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린 스피드는 9~9.5피트로 매우 빠르다. 자카르타 주변의 코스들은 모두 9피트를 넘기고 있었다. 그린의 기복은 거의 없다(50%). 페어웨이 양쪽으로 무성한 나무들이 줄지어 있으며, 다양한 나무군과 야자수가 곳곳에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라운드를 즐긴다. 주말 평균 260명이 방문한다고 하니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붐빈다. 한국인 방문객은 30% 선이라고 한다. 주말 아침 9시 현재 10번 홀 티 박스에 7~8개 팀이 대기 중이다.
도심형 정원을 연상케 하는 아늑함
캐디들의 옷이 밝고 다양한 점이 특이하다. 캐디들은 모두 블루, 그린, 오렌지, 핑크 등 4가지 다양한 색의 옷을 매일 교대로 입는다고 한다. 어쩐지 매일 다른 색을 입고 있어 매우 의아했다. 항상 한 가지 색의 같은 캐디복만 입는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이 점은 높은 서비스 정신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곳의 캐디는 대부분 여성이며, 180명의 여성 캐디와 30명의 남성 캐디로 구성되어 있다.
벙커 연습장, 연습 그린, 칩샷 그린 등이 모두 잘 갖춰져 있으며, 천연 잔디 타석도 준비되어 있다. 타석은 20개 미만이다. 홀 티 박스 근처 곳곳에 캐디의 의무인 디보트 수리나 그린 수리 등을 캐디에게 상기시켜달라는 표지판이 사진·그림과 함께 있다. 더운 지방이어서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캐디들 성향 때문인 것 같다. 아무래도 손님이 이야기하면 캐디가 어려워할 것이라 생각한 게 아닐까.
카트는 안 타도 되지만 주말 오전은 필수라고 한다. 이곳 캐디들은 한결같이 일본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한국 사람들은 좀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못된 편견이지만 실상이 그렇다. 그 이유는 주말 오전에는 대부분 일본 사람이 많다고 한다. 40% 이상이 일본 사람이다. 그런데 오후에는 60% 가깝게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혹시 오후에는 카트를 타지 않아도 되어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오전에 한국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은 매우 신기했다. 다음 날 다른 골프장에 갔을 때도 캐디들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거의 오후에만 라운드를 하는 듯하다.
열대 식물 가득한 아름다움 돋보여
전체 코스는 코코넛트리, 팜트리, 그리고 부겐필(Bukenfil) 꽃이 조화를 이루며 친근한 정원식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캐디는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지만 대부분 못하고 영어도 잘 안 통하는 어려움이 있다. 미팅룸, 샤워 시설, 배드민턴 코트, 4개의 실내 테니스 코트, 대규모 헬스장, 에어로빅장, 야외 수영장, 작은 축구장, 농구장 및 결혼식장까지 대규모 설비를 갖춘 보기 드문 훌륭한 코스였다.
7번 홀(파4, 383m) : 티 박스 왼쪽의 호수에서 시원한 분수가 뿜어나오며 더위를 잊게 해준다. 왼쪽 도그레그로 길게 호수가 이어지고, 훅은 물속, 너무 오른쪽이면 거리 손실이 있다. 페어웨이 왼쪽을 따라 야자수가 운치를 더한다.
14번 홀(파5, 484m) : 티 박스 오른쪽 13번 홀 그린과 공유하는 평화로운 작은 호수가 분수를 뿜어내며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페어웨이에 턱이 있는 벙커들이 일렬로 학익진 편대로 자리해 부담을 준다. 180~220m에 널브러져 있으며, 일단 벙커에 들어가면 벙커들이 작고 둥글며 턱이 높아 탈출하기 어렵다. 그린 주변 역시 높은 턱을 벌리고 있는 벙커들이 공을 기다린다.
18번 홀(파5, 474m) : 역시 14번 홀처럼 페어웨이 중간에 벙커들이 병렬로 널려 있다. 페어웨이 왼쪽에 골프장 오너의 주택이 있으며, 큰 호수가 평화롭게 자리해 있다. 연습장도 있다. 그린 앞 60m 지점에 페어웨이를 가르는 물길이 있다. 여지없이 그린 앞과 주변에 턱 높은 벙커들, 그린 뒤 왼쪽 클럽하우스 오른쪽으로 방갈로가 나타난다.
느닷없이 맥주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좀 싱거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군요. 술꾼치고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나 싶어서죠. 애주가 중에서도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주나 와인 등 다른 술은 좋아하면서 딱히 맥주는 즐기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술의 청탁을 그리 가리지 않는 저도 한때 맥주를 멀리했는데 해외에서는 와인에 빠져 있을 때 그랬고 국내에서는 맥주가 맛이 없을 때 그랬었죠.
조직문화의 일환으로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밤 칵테일, 코리안 칵테일)나 소맥(소주 칵테일, 심플, 오로라, 레인보, 선라이즈 등등)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맥주가 좋아서 마시는 것과는 다른 거죠. 맛나게 잘 만든 칵테일이라면 몰라도 소주 칵테일은 되도록 멀리합니다.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올리는 장점은 있지만 술맛으로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기 때문이죠.
무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철이나 운동 또는 일로 땀을 많이 흘린 후, 마실거리로 맥주만큼 당기는 술은 없을 거예요. 전통주인 막걸리도 좋지만 아무 때고 막걸리를 마시자고 할 수는 없죠. 빈대떡 등 부침류나, 도토리묵 같은 무침류, 그도 아니면 김치 몇 조각이라도 앞에 놓여 있어야 막걸리를 마실 기분이 납니다. 매콤하거나 걸쭉한 전통 먹거리와 어울리는 게 시큼털털한 막걸리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외래주인 맥주가 걸쭉한 안주나 한식차림에 맞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안주에 어떤 술이 ‘맞다’, ‘안 맞다’를 잘라서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선택할 안주가 많다면 술 먼저 정하고 안주를 고르는 것이 애주가들에게는 더 익숙하겠지요.
음식과의 어울림을 따지는 데는 와인이 맥주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하겠습니다. 술과 음식의 조화(매칭, matching)를 진지하게 따지는 프랑스인들이 그런 매칭(Vins et Mets)의 전통을 만들어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맥주 종류도 많고 브랜드도 많아 어떤 맥주에 어떤 안주가 어울린다는 설명이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미식가나 애주가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만 고객의 눈을 끌기 위한 판매 전략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건 제가 아직 진정한 맥주 마니아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술과 안주의 매칭은 많이 마셔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 아닐까요(술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리오!).
지금, 맥주전쟁이 한창입니다. 대형마트에 가보면 새로운 우리 맥주 브랜드에 온갖 수입 맥주들이 가세해 진열대가 현란할 정도입니다. 눈이 즐거울 소비자들에게 맥주의 매력을 한껏 높이는 동시에 맥주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볼 수 있게도 해줍니다. 근래 ‘테라(Terra)’라는 국산 브랜드가 나와 엄청난 속도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데 7월 기준으로 출시 3개월 만에 1억 병이 나갔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클라우드(Kloud)가 나와 한동안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지요. 이런 판에 수입 맥주들이 자유롭게 들어오고 있으니 가히 ‘맥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 하겠습니다.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맥주전쟁도 이따금 정치·외교의 바람을 타게 돼 있죠. 전장(戰場)을 들여다보면, 현해탄의 파고가 이처럼 높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금의 맥주시장이 일깨워주고 있는 셈이지요. 수입 맥주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일본 맥주가 전달에 비해 45%나 떨어진 것입니다. 그새 맥주 강국 벨기에가 1위를 차지하고 미국 맥주가 2위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맥주 애호가들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갔다지만 열혈팬들은 여전히 27%의 점유율을 지켜주고 있다네요. 현해탄의 파고가 다시 낮아지면 옛 팬들이 되돌아올지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상황이죠. 맥주 브랜드의 다양한 입맛에 길들여지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군요.
벨기에 맥주가 1위를 차지한 것은 라거(lager)와는 다른 에일(ale) 맥주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맥주 기호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거죠. 에일을 주로 하는 수제맥주(craft beer)에 대한 기호도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데 점유율은 아직 전체 5조 원 시장의 1.3%에 불과하다지요. 연평균 40%의 그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오래전 영국에 체류할 때 펍(pub)에 가서 맥주 달라고 하면 그냥 에일을 가져왔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캠퍼스에도 맥주 카운터 같은 게 있는데 머그나 파인트에 받아와 잔디에 비스듬히 누워서 즐겨 마시던 불그스름한 에일의 추억이 생생하네요. 그래서 지금도 에일 맥주를 더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수제맥주는 브루어리(brewery), 즉 양조장과 판매장이 한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형 양조장이 거느리는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도 늘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웬만한 큰 도시에는 길에 수제맥주 간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까요. 길에 나가서 수제맥주집이 안 보이면 큰 식당이나 골프클럽 같은 데로 들어가 신선한 생맥주(draft beer)를 시켜 마실 수도 있지요. 생맥주는 병이나 캔이 아닌 캐스크(cask)에서 직접 받아내므로 양조 과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사치(?)가 있지요. 게다가 “맥주는 글라스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Bier muss im Glas wachsen)”는 말도 있으니 기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맥주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세계 맥주시장이 워낙 커서 우리나라 맥주의 점유율을 따져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빠르게 질이 향상되고 있다지만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던 우리 맥주를 생각하면 수출이 되기나 할까 싶군요.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랍니다. 우리나라 맥주 수출은 2010년부터 소주를 제치고 주류 수출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20만 톤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판매액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는데 해외에서 우리나라 맥주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주로 향수에 젖은 동포들과 케이 컬처를 업고 늘어나는 한식당들이 아닐까 싶네요. 맥아(麥芽)나 홉(hop) 등 맥주 원재료에서 취약하긴 해도 머지않아 우리의 제조기술이 올라 훨씬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해야겠죠.
맥주는 거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기원전 2500여 년쯤 이집트 피라미드 공사 인부들이 맥주를 마시던 당시의 유적이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렇다고 이집트가 맥주 제조의 시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곡물이 비에 젖어 자연발효가 이루어지는 순간 맥주가 탄생했다고 본다면 농경시대에 들어 세계 곳곳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물 대신 에일 맥주를 늘 비치해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일은 발효 온도가 높은 효모를 사용함으로써 윗부분[上面]에서 발효가 되도록 한 것이고 라거는 발효 온도가 낮은 효모를 사용해 아랫부분[下面]에서 발효가 되도록 한 차이가 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에일과 라거는 향미나 목넘김이 상당히 다르다 하겠습니다.
1561년에 독일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는 ‘맥주순수령(German Beer Purity Law, 麥酒純粹令)’을 공포했는데 맥주는 물, 홉, 보리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다른 원료가 들어간 맥주에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바람에 밀맥주 제조는 면세 지역인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지요. 빌헬름 4세를 취향 면에서 맥주 정통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법령으로 인해 독일이 유럽 내 맥주 제조의 주도권을 쥐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지금도 어떤 독일 맥주 브랜드는 이 영(令)에 따라 주조했음을 밝히고 있죠).
독일과 경쟁이 될 만한 체코의 맥주가 뜨기 시작한 것은, 1842년 플젠(Plzen)에서 제조된 황금색의 필스너 라거가 나오면서입니다. 당시 새로이 등장한 투명 유리잔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시장을 휩쓸다가 독일로 역수출된 것이 필스너인데 대표 브랜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은 원조 필스너란 뜻으로 체코의 자존심을 지키는 한 축이죠. 맥주의 본방을 독일로 치더라도 맥주 강국이 의외로 체코라는 사실이 흥미롭군요. 체코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43ℓ로 24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하네요. 체코 다음은 오스트리아(106ℓ), 독일(104.2ℓ), 미국(74.8ℓ)의 순이고요.
스텔라 아르투아, 벨기에産
맥주에 대한 취향은 계속 변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기본적인 취향이 있다고 해도 여러 가지 브랜드를 접하다 보면 기왕의 취향과 다른 맥주들을 찾게 되지요. 언젠가 브뤼셀에 들렀을 때 미술관 옆 큰 광장에서 친구와 함께 마시던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생맥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 양조장이 1366년에 세워졌다 하니 연도만으로도 애호가들의 갈망을 채워주기에 족하다고 하겠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스텔라 아르투아를 멀리할 수 없답니다. 10여 년 전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Positano)에서 옥빛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마시던 페로니(Peroni)의 완벽한 블론드 빛깔과 가뿐한 그 맛에 매혹되어 요즘도 이태원의 유명 피자집에 가면 찾아서 마신답니다. 마드리드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어느 광장에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맥줏집(Cervezaria)이 있는데 굳이 그 집을 찾아 헤밍웨이가 와서 앉곤 했다는, 창가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에스트레야(Estrella) 생맥주를 주문해 마셔보기도 했죠.
에스트레야, 스페인 바르셀로나産
지금까지 유럽 맥주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유럽 밖의 맥주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수입량 2위를 자랑하는 미국산 맥주 브랜드도 다양합니다. 버드와이저를 비롯해 밀러, 쿠어스 등. 미국 하면 무엇보다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떠오르죠. 오래전 뉴욕의 시(Shea) 스타디움에서 메츠와 양키스 게임을 보러 갔을 때 남들 하는 대로 종이컵에 든 버드와이저 생맥주를 사 마셨는데 솔직히 맛있다는 인상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후 미국 맥주 하면 도매금으로 ‘별로’라는 판정을 내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는 광고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미켈롭(Michelob)이란 브랜드를 즐겨 마신 적도 있습니다. 100만 달러짜리 목소리를 타고 멋진 블론드의 여인이 춤추듯 걸어가는 장면이라 아마도 거기에 정신을 빼앗겼던 것 같기도 합니다.
라거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보리와 홉의 사용량을 줄이고 옥수수나 쌀 등을 섞어 단가를 낮추면서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 것도 미국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죠. 저는 맥주의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지만 위스키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보리가 아닌 다른 재료들을 써서 버본이나 테네시 위스키 등으로 변화를 이뤄낸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국 중의 대국인 중국의 칭따오(Tsingtao, 청도) 맥주를 잠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불공정한 일이겠죠. 사실 중국 식당에서는 칭따오 외에 다른 맥주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칭따오가 언제부터 유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요릿집에서 드러나게 눈에 띄는 맥주가 칭따오 아니겠습니까. 칭따오 맥주는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중화요리에 얹혀서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칭따오 맥주는 19세기 말 삼국간섭(三國干涉)으로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 산둥반도에서 독일 기술자들이 맥주공장을 지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높은 기술 전승 혜택으로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누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맥주 원료는 물, 맥아, 홉 그리고 효모인데 무엇보다 우선 물이 좋아야 좋은 맥주가 나오겠지요. 아무리 물이 좋아도 좋은 맥아가 없고 좋은 홉이 나지 않는다면 훌륭한 맥주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홉은 덩굴식물의 꽃인데 종류에 따라 레몬이나 포도, 솔잎, 재스민 같은 다양한 아로마를 가미해주죠. 말하자면 맥주의 향신료라고 할 수 있는데 홉이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물은 정제해서 만들 수도 있다지만 좋은 맥아나 홉은 수입해 와야 합니다. 그러니 제조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데 원가절감을 하다 보면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할 만하죠. 아무튼 우리 스스로 근사한 맥주를 만들 때까지 다양한 수입 맥주가 들어와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채워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관 대사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 대사를 지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저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다. 현재 제주도 국제교류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라산 자락의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는 등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
삶에서 행복을 충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 한다. 그것을 다하며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중견 여행사 ‘베스트래블’을 경영하는 음식·여행 칼럼니스트 주영욱 대표(57)가 그이다. 이외에도 사진가, 팟캐스트 DJ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노는 게 일이다. 그의 별명은 문화 유목민,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다. 한마디로 노는 사람이다.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을 일해온 그는 2013년 52세의 나이에 여행사를 창업, 인생 2막을 ‘문화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뛰는 사람에서 ‘튀는 사람, 노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영욱 대표는 여행, 음식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사진 모두 전문가 수준의 취미를 갖고 있다. 57세, 보통 사람은 이제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할 때다. 그는 하나씩 실행해나가며 지워나가느라 오히려 홀쭉하다. 고교 시절부터 꿈꿨던 DJ의 꿈은 팟캐스트 활동으로, 음식 칼럼을 쓰고 싶다는 꿈은 중앙일간지 연재를 통해 실현했다. 이외에도 가상역사소설, 공상과학소설로 저술을 준비하는 등, 그의 꿈은 산지사방 전 분야에 걸쳐 뻗쳐 있고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그는 왼쪽 팔목에 ‘매버릭’(Maverick, 개성이 강한 사람)이란 문신을 새겼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대 젊은이들처럼 멋부리기 유행을 타서도, 폭력배처럼 위협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버릭, 말 그대로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편견과 습관에 갇혀 살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이고 자유선언이다. 그는 “세상의 터부 내지 스스로의 금기를 깬 느낌 때문인지 시원했다”며 “세상에 길들여져 탈색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의미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단식과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비우는 것도 본질과 개성을 찾기 위한 일환이다. 그는 비우고 내려놓고 편견의 곁가지를 쳐내야 핵심에 집중해 생생해진다고 말한다. 삶이나 몸이나 생각이나, 심지어 음식의 맛도….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간 일하며 미국, 일본, 프랑스 글로벌리서치 사의 한국법인 CEO를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52세의 나이에 이종 분야 창업을 하신 게 특이합니다.
“경영상 이견으로 외국 회사 한국법인 CEO를 그만두고 됐어요. 20대 때부터 몸담아온 마케팅 리서치 일을 다시 할까도 생각했어요. 마케팅 리서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 본질에 집중하는 일이거든요. 제 성격의 완벽주의랑 맞아 신나게 일했어요. 25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스스로 타성이 느껴지더군요. 현재의 삶에 그럭저럭 안주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아직 젊은데 작은 성공에 취해서 한 달에 보름씩 골프를 쳐가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불안하기도 했고요. 재미가 제 삶의 중요 요소예요. 좋게 말하면 글로벌 마인드, 나쁘게 말하면 역마살이라고나 할까요. 익숙한 길보다 가지 않은 길, 새롭게 흥분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던지고 싶었어요.”
주 대표께서 생각하는 여행의 재미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해줘요. 이분법적 사고에서 절로 벗어나게 한다고나 할까. 여행 가면 늘 낯선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룰을 따르고 새롭게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제 성격에 맞아요.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봐요. 추하다vs아름답다, 옳다vs그르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게 해줘요. 편견을 깨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지요.”
그는 인도 여행을 갔을 때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초라한 행색의 인도인이 자기 배를 타달라고 호객 행위를 심하게 하더란 것.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에서 넘어져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그가 다가오기에 또 호객 행위를 하러 온다고 생각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고. 알고 보니 약을 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매번 시시각각 깨닫는다고 털어놓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 사업을 하는 것은 별개인데요. 창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고품격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하잖아요. 저는 그게 여행 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400회 이상 해외 여행한 경험이 있으니 그런 기획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여행 계획을 짜면 모두들 즐거워하며 ‘이런 프로그램은 여행사도 못 짠다. 너, 나중에 여행사 차려라’ 하고 농담할 정도였거든요. 두 번째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여행업은 미래 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 판단했지요. 세 번째는 인맥에 대한 자신감이었지요. 제가 온갖 모임의 총무, 회장을 맡아 마당발이었거든요. 아는 VIP들만 모객해도 걱정 없겠다 생각했지요. 금방 착각임을 깨달았습니다만….”
즐기던 여행을 막상 사업으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일과 취미는 전혀 달라요. 지금까지 여행사를 하며 실제 고객은 모르는 분들을 개척한 거예요. 아는 사람과 도와주는 사람은 전혀 별개예요. 처음엔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그게 인지상정이에요. 나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친분보다 전문성을 갖고 냉정하게 판단하거든요. 인생 2막, 새로 도전하면서 과거 인맥을 바탕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적극 말려요. 사업은 아는 사람 믿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기본인데도 잊기 쉬워요.”
그는 “내가 여행상품 기획은 잘하니 호텔, 항공료 절감 등 원가 관련 문제 같은 부족한 실무 요소는 남을 통해 보완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실수였다”며 “사장이 큰 그림 보며 해야 할 일을 직원이 대신 해줄 수는 없더라”고 말했다. 만일 창업 초기로 돌아간다면 여행 가이드를 하든, 자격증을 따든, 직원을 하든 현장에서 밑바닥 경험을 1~2년 반드시 해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자신은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해놓고 시작해서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그가 히트를 친 것은 고품격 테마여행 중국 장강삼협 크루즈 관광상품 출시다. 동종 상품의 3~4배 가격으로 고품격의 명품패키지를 기획한 게 먹힌 것이다. 2016년 그는 여행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해외여행자와 서비스 제공자(여행사/랜드사/가이드/해외교민/유학생 등)를 직접 연결시키는 맞춤형 여행 도움 플랫폼 ‘티비스켓’을 창업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주 대표는 “얼핏 마케팅 리서치 경력이 여행업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케팅 리서치의 본질은 옥석을 가려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이는 여행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직관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끌리기보다 호기심의 본질과 원인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 대표와 대화를 하며 특이한 모습을 발견했다. 인생의 우선순위로 재미를 이야기하고, 본인도 재미있게 살지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거나 유머가 넘치는 편은 아니었다.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정리를 해서 설명하고 단어의 정의를 내린 후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방법으로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나라 상위 2%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 회장을 지냈다.
음식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시지요. 일간지에 연재도 하셨고 ‘이야기가 있는 맛집’이라는 책까지 내셨습니다. 일반 음식 칼럼과는 달리 식당 셰프, 사장의 인생 사연을 곁들이는 게 특색이더군요. 잘되는 식당의 비결은 무엇이던가요.
간단히 말하면 기본에 충실한 식당입니다. 말은 쉬운데 오래 유지하긴 어려워요. 이런저런 핑곗거리와 유혹 때문에 넘어가기 쉽거든요. 유명한 집과 맛 좋은 집은 달라요. 진정한 맛집의 음식에선 주인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져요. 손님을 지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에 자부심을 가진… 결국 음식은 재료맛, 손맛, 칼맛의 조합이거든요. 주인의 정성이 깃든 음식은 첫맛, 중간맛, 끝맛이 일관되게 같아요. 단맛이나 자극적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은 첫입엔 당기지만 끝맛이 좋지 않아요.”
주 대표는 ‘맛집을 고르는 비결’로 2가지를 귀띔해줬다. 사장이 직접 요리하는 곳, 오랜 전통을 가진 곳, 이 두 기준으로 고르면 틀림없다는 것.
요즘 상(上)남자는 상(床)남자, 상 차리는 남자란 농담도 있더군요. 집에서 요리를 잘 하십니까.
“한동안 열심히 배웠지요. 내 손으로 메뉴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의욕이 넘쳐 비싼 칼이랑 파스타 냄비만 잔뜩 사놓고선 그만뒀어요. 손이 입을 못 따라가 중년 남자의 작심삼일 셰프놀이에 그쳤지요.(웃음) 애들이 먹지 않으니 요리할 마음이 없어지더군요. 그냥저냥 요리는 재미있는데 뒷정리 설거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내의 고마움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요리를 배우겠다는 동년 친구들에게 충고해주는 게 있습니다. 음식 맛은 고가의 장비랑 상관없으니 비싼 그릇과 도구는 사지 말라고요. 고급 골프채를 새로 샀다고 골프 스코어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해주지요.”
음식 칼럼니스트가 꼽는 최고의 음식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하는 음식은 아내가 해준 김치찌개입니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돼지고기 넉넉하게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먹으면 마음이 순식간에 풀려요. 나의 소울 푸드라고나 할까요. 밖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지친 와중에서 집밥 해주는 정성을 알기에 일절 불평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반찬투정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답니다. 음식은 입보다 마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소박한 집밥 한 끼가 어느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최근 아프리카 여행 때는 가수 휘성 씨 뮤직비디오 촬영도 하셨다면서요. 산악자전거 타기, 사진가, 종횡무진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여행 전문 케이블 TV를 만들고 싶어요. 경영자로서 저는 수치에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닙니다. 선한 영향,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업이 자리가 잡히면 직원들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파트너 관계로 경영하고 싶어요. 좋은 음식이 그렇듯 뒷맛이 좋고 오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김치찌개같이 질리지 않고 따뜻한 사람으로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핸드폰을 꺼내 자신이 DJ로 활동하는 맛집탐방 팟캐스트를 들려주었다. 촉촉한 7080의 감성 어린 목소리로 사연을 곁들여 맛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음에 만날 때 그가 얼마나 더 ‘홀쭉해진’ 버킷리스트를 갖고 나타날지 궁금해졌다. 그때 같이 먹을 추천 식당도….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규슈(九州) 지방. 그중 오이타 현의 벳푸(別府) 시는 예로부터 온천 여관, 온천 욕장으로 번창해 1950년 국제관광온천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한마디로 온천 천국의 도시. 현재 300여 개의 온천이 있다. 시영온천에서는 단돈 1000원의 입장료만 내면 전통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매일 온천욕으로 건강 다지고 심심하면 인근 유후인 시로 나들이 떠나는 재미. 한 달이 후딱 지나간다.
글·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On the Camino’ 저자, www.sinhwada.com)
국제 온천관광도시, 벳푸 시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로 이동하는 일본 여행은 특별하다. 좁은 의자에 앉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비행기 안보다 백번 낫다. 후쿠오카 하카타 항에 내려 텐진에서 점심만 먹고 바로 벳푸 시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두 시간 정도 달려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면 벳푸 시내에 이른다. 뜨거운 온천 열기로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연기가 가득하다. 벳푸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실컷 온천욕을 하기 위함이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온천은 츠루미다케 산(1375m)과 약 4km 북쪽에 떨어져 있는 가란다케 산(또는 유황산, 1045m)의 화산 동쪽에 집중되어 있다. 2800개 이상의 원천수가 자연용출되며, 용출량은 일본에서 1위다. 처음부터 온천도시로서 명성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100℃가 넘는 고온의 용출수에 목욕은커녕 빨래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화탕지옥(火湯地獄)’의 땅이었다. 이 재앙의 도시를 명품 온천도시로 만든 이가 아부라야 쿠마하치(油屋熊八, 1863~1935)다. 그는 ‘산은 후지, 바다는 세토나이, 온천은 벳푸’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벳푸를 온천도시로 부상시켰다. 벳푸 역 앞 광장에는 ‘벳푸 관광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의 동상이 있다.
300여 개의 온천 천국, 10분 온천욕으로 힐링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목욕용품부터 챙겨 다케가와라 온천(竹瓦温泉)으로 향한다. 벳푸의 300여 개 온천 중에서 내로라하는 시영온천이다. 벳푸 만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온천은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메이지 시대인 1879년, 한 어부는 해안 근처에서 솟아나는 자연용출장에 간소한 오두막을 지었다. 지붕에 대나무를 얹었다 해서 ‘다케가와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1938년에는 중국의 호화로운 기와지붕으로 장식해 재건립했다. 이 건축물은 2004년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고, 2009년에는 근대화 산업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온천이 생긴 지는 139년의 세월이 흘렀다. 건축물도 8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어 전통의 향기가 폴폴 난다. 입장료는 단 100엔. 간드러지는 목소리의 여자 스태프는 일본식 영어를 구사하면서 이것저것 알려준다. 수건이 필요하냐? 모래찜질은 안 하냐? 신발보관장 코인은 나중에 돌려받는다 등등. 린스 하나만 달랑 사 들고 안으로 들어선다.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는 실내 인테리어다. 윤기 나는 나무 바닥과 목욕 후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무 테이블. 로비는 천장이 높아 시원하다.
탕 입구는 두 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쪽은 모래, 한쪽은 40℃가 넘는 뜨거운 물이 용출되는 자연탕이다. 2층에서 탈의하고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옴팍한 곳에 우물보다 약간 큰 탕이 있다. 찬물을 쓸 수 있는 수도꼭지도 있다. 온천욕 하는 사람들 중에 한국인은 없고 대부분 일본 관광객 또는 동네 할머니들이다. 그들의 목욕 방법을 슬쩍 눈여겨본다. 일단 뜨거운 물에 들어가기 전, 바가지로 물을 퍼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다. 그리고 두어 번 탕 속에 몸을 담근 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간다. 길어야 10여 분 정도. 일본 목욕 문화는 10분씩 3회를 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식 목욕법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일본의 온천욕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그래도 온천수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온도가 높아서인지 몸이 금방 개운해진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옛 유곽 거리를 만난다. 옛날 옛적 전국의 한량들을 불러 모았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곳. 일본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작은 선술집에 들러 구운 닭요리를 안주 삼아 사케를 마신다. 그 재미가 묘하다.
이색 순례, 간나와 지옥 온천
벳푸 여행 코스에 지옥 온천 순례를 빼면 안 된다. 벳푸 핫토(別府 八湯) 중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간나와(鉄輪) 온천 단지. ‘지옥 온천’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그곳을 찾은 날 주룩주룩 비가 많이도 내렸다. 여러 형태의 ‘지옥’ 중 일본 국가 지정명소로 채택된 세 곳(바다지옥, 백야지옥, 소용돌이지옥)이 있다.
가장 인기 있다는 바다지옥만 둘러본다. 지옥 온천 중에서 가장 큰 열탕을 갖고 있는 곳이다. 약 1200년 전부터 지하 300m에서 뜨거운 증기와 흙탕물이 분출되고 있다. 200℃라니 말만 들어도 지옥에 온 느낌이다. 그저 구경하고 산책하는 것이 전부.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족욕장뿐이다. 탁한 물에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집어넣는다. 생각보다 뜨겁지 않다. 비가 내려 운치는 좋다. 관광객 특수를 누리기 위해 만들어진 특산품 코너로 간다. 수많은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온천 증기로 만든 간장을 넣어 맛을 낸 푸딩을 사 먹는다. 흑설탕 맛이 나는 푸딩이 별미다.
‘오래된 마을’로 꾸민 ‘새 마을’
벳푸에서 유후인(由布院)으로 간다. 25km 떨어져 있고 버스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일본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 1위이고 60% 이상이 한국인 관광객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유후인을 배경으로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제작했다. 유후인 기차역 앞으로 난 유노쓰보 거리(湯の坪街道)의 첫 느낌이 참 좋다. 아기자기한 숍들이 길 양쪽으로 이어진다. 마치 유럽의 소도시에 온 듯하다.
유후인을 명물로 만든 사람은 1955년 유후인 초대 정장(町長, 우리나라의 면장)을 지낸 이와오 히데카즈(岩男額一). 당시 36세였던 그는 마을재건위원회를 결성해 본격적인 온천 개발을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서는 건물 높이는 11m를 넘지 못하게 했다. 마을 어디에서나 유후다케 산(1584m)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호텔, 골프장 같은 대형 레저시설은 불허했고 60실 이하의 료칸(旅館)만 허가했다. 음식도 유후인에서 생산한 재료로만 만들어 판매하도록 했다. 단체 관광객도 받지 않았다. 그 후 ‘오래된 마을’처럼 꾸민 ‘새 마을’은 엄청난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다.
긴린코 호수도 보고 온천욕도 하고
유후인 역에서 긴린코 호수(金鱗湖)까지는 약 1.5km. 호수까지 걷는 동안 ‘재즈 카페’에서 맛있는 컬럼비아 산 커피를 마신다. 금상을 받았다는 크로켓도 너무 맛있어 두 개나 사먹는다. 크지 않은 긴린코 호수는 차가운 물, 뜨거운 물이 용출되어 만들어졌다. 호수는 아침이면 안개와 이슬을 만든다. 호수 앞쪽으로는 아름다운 미술관 건물이 들어앉아 있다. 하지만 단체 관광객 때문에 어수선하다.
호수를 빨리 벗어나 누루카와 온천(ぬるかわ溫泉)으로 간다. 유후인은 벳푸, 구사쓰에 이어 일본에서 세 번째로 용출량이 많은 도시다. 누루카와 온천은 벳푸의 시영온천보다는 비싸지만 유후인에서는 가장 저렴하다. 샴푸와 보디용품도 있다. 남탕과 여탕은 나누어져 있지만 말이 들릴 정도로 가깝다. 야외 온천탕 중간에 돌이 놓여 있고 칸막이도 만들었다. 울창한 숲은 담 역할을 한다.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 료칸에서 머물지 못한 여행객들은 이것만으로 일본식 전통 온천을 체험한다. 훌륭한 일본 가정식까지 먹고 벳푸 시로 되돌아온다. 벳푸나 유후인이나 훌륭한 여행지다. 벳푸 시에서 장기숙박하면서 원 없이 온천욕을 하고 심심해지면 유후인으로 나들이나 하면서 푹 쉴 날은 언제 또 올까?
한때 올림픽 선수가 되고 싶었던 신중년들이 그런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경기대회가 미국에서
열린다. 눈요기만 하는 관광보다는 세계 각지에서 온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풍물도 즐기고 싶은 신중년이라면 참가해 볼만한 대회다.
올해로 30회째를 맞이하는 ‘헌츠먼 세계 시니어 경기대회(The Huntsman World Senior Games)’. 미국 서부 유타주 세인트조지(St. George)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시니어 올림픽으로 자리를 잡았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보다는 ‘더 건강하게, 더 즐겁게, 더 친밀하게’를 지향하는 것이 올림픽과 다른 점이다. 물론 참가 자격 제한이 있다. 50세 이상이라야 참가가 가능하다. 그 대신 예선전은 없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경기에 참가하고 경기하다 보면 메달을 딸 수도 있다. 못 따면 또 어떤가? 연금을 받는 것도 아니니. 올림픽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은가? 선수로 뛰지 않고 그냥 응원단이나 관람객으로 참가해도 선수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딕시주립대학의 한센스타디움에서 개최되는 개막식은 올림픽을 방불케 한다. 세계 20여개 국가와 미국 50개 주에서 온 선수들이 출신 국가와 지역의 특색을 살린 복장과 깃발을 들고 입장을 하면 세인트조지 시민들은 관중석에서 환영의 함성을 지른다. 성화 봉송과 점화, 선수 선서와 매스게임, 그리고 불꽃놀이로 이어지는 화려한 개막식의 분위기에 젖다보면 국가대표선수가 된 느낌이 들게 된다. 부부가 손잡고 함께 개막식에 참석하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흐뭇해진다.
개막식에 이은 연주회에서는 축제 분위기를 더욱 만끽할 수 있다. 지난해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브리티시 인베이션 트리뷰트 밴드와 더 몽키스 밴드의 공연은 압권이었다. 각국의 선수들과 동반자들은 가슴 깊숙이 숨겨 두었던 열정을 마음껏 분출하면서 몸을 흔들고 괴성을 질렀다. 경기 후 열리는 디너와 댄스파티도 잊을 수 없는 행사다. 각국 선수들과 어울려 춤을 추다보면 새로운 추억과 로맨스가 마음깊이 남게 된다.
10월 3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열리는 올해 경기는 모두 29개 종목. 대부분 연령대별(5세 간격)로 나뉘어 경기가 치러진다. 축구, 소프트볼, 배구 등 3개 종목은 팀경기로, 볼링 등 나머지 26개 종목은 개인경기로 진행된다.
팀경기는 팀원을 구성해 함께 등록해야 한다. 개인경기는 개별 등록 후 같이 뛰고 싶은 선수를 등록 리스트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일정만 맞으면 여러 종목 참가도 가능하다. 한 번 등록한 선수의 번호는 바뀌지 않고 매년 같은 번호가 부여된다. 그래서 다음해 같이 경기를 하고 싶은 선수가 있으면 지정하기도 편리하다.
골프는 사교 경기와 메달 경기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어 자신의 수준에 맞는 경기를 택할 수 있다. 메달 경기도 36홀의 연령대별 경기와 18홀의 핸디캡 경기로 나누어 치러진다. 특히 준프로급이 참여하는 연령대별 경기는 내년에 미국에서 열리는 내셔널시니어골프대회 예선전을 겸하고 있어 좋은 성적을 거두면 내셔널골프대회 출전자격도 덤으로 얻을 수도 있다.
유타주 세인트조지시는 선브룩나 딕시 레드힐스와 같은 유명 골프장이 주변에 즐비해 세계의 골프 마니아들이 연중 몰려드는 골프 휴양지다. 건조한 사막성 기후에 붉은 바위산을 끼고 양탄자 같은 잔디가 펼치진 링크코스는 골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도전적인 신중년들은 철인 3종 경기와 산악자전거 경기에서 세계의 베테랑 철인들과 한판 승부를 겨뤄 볼만하다.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선인장밖에 없는 황무지에서 진행되는 사이클링, 도로 달리기와 경보는 요즘 붐이 일고 있는 운동. 동우회의 회원들이 함께 참가하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과는 달리 헌츠먼 시니어대회는 매년 열려 미국, 캐나다는 물론 세계 각지 스포츠 동우회의 연례 모임 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네바다주 카슨시의 브렌다 블랙햄 여사는 35년 전 고등학교 배구팀 코치로 활약했다. 전국 대회를 휩쓸었던 추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동고동락했던 학생 선수들이 이제는 의사, 변호사, 교육자 등으로 미국 각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으나 다 같이 한번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 지천명(50세)의 나이를 넘긴 2014년, 이 대회에 배구팀으로 함께 참가하면서 소망했던 재회가 이루어졌다. 손발 한 번 맞추어볼 겨를도 없이 바로 경기에 참가했지만 그저 즐거웠고 경기를 거듭할수록 옛날 팀워크가 되살아나면서 더 즐거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10월의 대회기간에도 바쁜 일을 접어놓고 모두 모여 경기를 하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눌 계획이다.
독일 배구팀은 지난해 금메달의 한을 10년 만에 풀었다. 2006년부터 참가한 독일팀은 2013년에는 세계시니어배구챔피언십을 겸한 이 대회에서 캐나다 팀에 석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2년간 실력을 더 갈고 닦아 지난해 우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올해 있을 독일과 캐나다 팀 간의 리턴매치는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심금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도 빠질 수 없다. 서울올림픽 때의 안재형과 자오즈민의 열애에 견줄만한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역 군인인 미국의 댄 크레이번스와 러시아의 마리나 안드리바는 2004년 탁구 경기에 출전했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이제는 복식조로 함께 참가하고 있다. 신중년과 꽃중년이 뒤늦게 소울 메이트로 만나 적대적인 양국의 탁구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중국 청소년들의 자원봉사활동도 화제다. 2010년 미국의 시니어배구팀이 중국 순회 경기를 갔을 때 친절하게 봉사한 중국 청소년들과 인연이 되어 그 후 해마다 중국 청소년 10여명이 이 대회 때 미국에 와서 한 달여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제법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발된 중국 청소년들은 현지 자원봉사를 통해 영어는 물론 국제 매너와 봉사정신을 익히게 된다.
헌츠먼 대회는 각계의 봉사자와 후원이 뒷받침되면서 참가 선수만 1만명이 훌쩍 넘는 국제대회로 성장했지만 출범은 단순했다. 1987년 존 모건 주니어 부부가 ‘운동과 체력단련이 일상이 되면 신중년의 황금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각지의 시니어가 함께 하는 대회를 구상하게 됐다.
여기에 홀인원을 5차례나 기록한 만능 스포츠맨이자 건강과학박사인 스티븐 워너 하이너 교수가 가세하고 세인트조지시도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대회를 출범시켰다. 출범 2년 뒤 헌츠먼코퍼레이션의 존 헌츠먼 회장과 부인이 본격적으로 후원하면서 세계적인 대회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 대회가 성황을 이루는 데는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자이언캐년 국립공원이 있고 브라이스캐니언, 그랜드캐니언, 라스베이거스, 솔트레이크시티 등 많은 관광 자원과 부대시설이 뒷받침하고 있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문화 행사와 박물관 투어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고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등 세심한 서비스도 참가율을 높이는 요인이다.
모건 회장은 메시지를 통해 “봉사자, 후원자, 참가자 및 임직원의 헌신과 노력으로 대회가 놀랍게 발전했다”며 “30주년을 기념해 성대하게 진행될 올 대회에 세계의 신중년들이 적극 동참하여 건강을 증진하고 우정도 돈독히 하자”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