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건강한 시니어를 위한 사회공헌행사 ‘신한은행과 함께하는 브라보! 2022 헬스콘서트’가 오는 6월 28일 오후 2시 포스코타워 역삼 이벤트홀에서 열린다.
브라보 헬스콘서트는 본지 독자와 중장년 세대를 대상으로 올바른 건강정보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신개념 문화 공연이다. 건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시니어에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명의와 사회자가 질환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건강정보를 제공한다. 이후에는 즐거움과 여운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축하 공연으로 행사를 마무리한다.
이번 행사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신중년 활력 찾기’이다. 장기간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인해 중장년층의 건강 지표가 악화됐다.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타나는 근육량의 감소는 노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또 홈술·혼술 문화는 간 건강에 무리를 주고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중장년 독자들이 활기찬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헬스콘서트는 1부 초청 강연과 2부 축하 공연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1부에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중장년층에게 유용한 건강·재무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의 ‘거리두기가 만든 근육 빨간불 극복하기’ 강연을 시작으로 인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권정현 교수의 ‘홈술·혼술이 만든 간 건강 빨간불 이겨내기’, 신한은행 이관석 은퇴솔루션 컨설턴트의 ‘100세 시대 5대 장수 리스크를 이겨라’ 등이 이어진다.
2부 순서에서는 한국의 젊은 테너 10명으로 이뤄진 프로젝트 그룹 ‘그룹 더 텐테너스’의 공연이 열린다. 성악에서 진성으로 가장 높은 음역을 소화하는 테너 10명의 하모니가 어우러지는 성악과 팝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행사에 참여한 관객들에게는 기념품을 제공할 예정이다.
올해로 6회째 열리는 브라보 헬스콘서트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발행하는 이투데이피엔씨가 주최하고 신한은행이 후원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대한민국 프리미엄 시니어들의 삶과 꿈, 지혜와 품격이 가득한 문화 지성 플랫폼 역할의 국내 유일 온·오프라인 시니어 전문 매거진이다. 초고령사회로 달려가는 대한민국에서 노년의 삶을 준비하고 살아가는 시니어들의 노후 행복을 사유하는 길잡이로서 흥미진진한 정보를 전한다. 2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우수콘텐츠 잡지로 뽑힌 바 있다.
행사 참가신청은 전화(02-799-6713) 등록이나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하면 된다.
편스토랑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이 있다. 미식가 스타들이 혼자만 먹기에는 아까운 필살의 메뉴를 공개하고 이 중 승리한 메뉴는 방송 다음 날 전국 편의점에 출시되는 신개념 신상 메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가수 장윤정 남편으로 잘 알려진 도경완, 규라인으로 유명한 이경규, 개그우먼 이영자 , 중식으로 유명한 이연복 셰프 등이 고정 출연하고 매회 메뉴를 소개할 초대 손님이 나온다.
최근 트로트계의 BTS로 불리는 가수 진성이 출연하여 자신의 건강 식단을 소개했다. 이름하여 항당뇨 식단.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 그래 한때 삶의 무게/ 견디지 못해/ 긴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 어허허 어허허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얼 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의 태클을 걸지 마
인생에 태클 걸지 말라는 트로트 가수 진성은 시니어 공감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 8월호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밝힌 바 있다. 어려서부터 잡초처럼, 고생인지도 모르고 그저 살아왔다는 진성은 오랜 무명생활 끝에 '안동역에서'로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등을 맞대고 온다는 말처럼 안동역에 노래비가 세워질 만큼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혈액암과 심장판막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고된 투병은 그에게 건강한 식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고 한다. 그 후 각종 건강 발효액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간을 맞출 때도 함초소금을 사용하는 등 늘 신경을 쓴다.
화면을 따라가니 아침은 자신의 땅에서 직접 키운 오이를 따서 먹거나 그 옆에서 자라는 토마토를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먹는다. 노래하느라 바쁜 중에도 건강을 챙기는 생활이 습관이 된 듯하다. 항암치료 후 기억력이 감퇴되어 호랑이콩과 식초콩을 수시로 먹는다는 그는 꿀벌 화분도 챙겨 먹는데 꽃에서 직접 따는 거라 몸에 좋을 거라면서 웃는다. 촬영 중 이 사진은 여러분이 꼭 보셔야 한다며 표지모델로 나온 ‘브라보 마이 라이프’ 8월호를 들어 자랑하는 진성. 확실히 자랑할 만한 멋진 모습이다.
진성이 소개한 항당뇨 식단 재료는 돼지감자와 여주다. 만들기도 쉽다. 나이가 들면 더 신경 써야 하는 당뇨에 좋은 건강 식단. 건강전도사로 불리는 진성의 건강한 식단을 배워보자.
진성의 항당뇨 식단 만드는 법
1. 돼지감자 물김치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썬다.
-큰 볼에 담는다.
-당근, 쪽파, 파프리카, 붉은 청양고추를 넣는다.
-생수를 자박하게 부어준다.
-함초소금으로 간을 맞춘다(짠맛이 덜해서 넉넉하게 넣어줘도 된다).
-마지막으로 개복숭아 발효액을 넣어준다.
2. 천연 인슐린 여주 볶음
-여주는 씨를 제거한 후 적당히 썰어준다.
-썬 여주를 넣은 팬에 꾸지뽕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다.
-파프리카, 양파 등 갖은 채소를 넣어준다.
-재료가 익을 정도로 볶아준다.
-마지막에 스테비아로 여주의 쌉싸름한 맛을 완화한다.
3. 도미찜
-도미를 깨끗하게 손질한다.
-양념이 잘 배도록 적당한 간격으로 칼집을 낸다.
-고춧가루, 스테비아, 진성표 간장, 물 약간, 홍고추, 다진 마늘을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생선 비린내를 잡기 위해 마가목 술을 넣어준다.
(마가목 술은 마가목의 열매로 만든 약용주다. 중풍과 어혈을 치료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칼집 사이로 양념장을 골고루 발라준다.
-뚜껑을 덮고 30분 찐다.
4. 그 외 팁
-된장찌개에 배추 대용으로 상추를 넣어주면 색다른 맛이 있다
-가지와 울금을 넣고 밥을 지으면 색도 예쁘고 밥맛이 훨씬 더 좋아진다.
먹방이 단연코 대세다. TV를 틀면 맛있게 먹는 화면들이 이제는 식상할 정도다. 그런데도 식생활은 중요하기에 간간이 요리 프로그램을 본다. 농어민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이나 소규모 자영업자 식당을 찾아가 애환을 듣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방송을 보면서 식재료 정보나 요리법의 깨알 팁을 얻기도 한다. 요즘에는 맛을 잘 아는 스타들이 그들만의 환경에서 만들어내는 요리의 필살기가 인기다.
연예인들의 주방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과연 주방일을 어떻게 할까. 그릇을 좋아하는 나는 그들이 어떤 감각으로 플레이팅을 하는지도 눈여겨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요리를 평가단들이 평가하고, 승리하면 편의점에서 출시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신상 출시 편스토랑'은 요리 정보는 물론이고 이런 호기심들을 해소해준다.
스타들이 만들어내는 요리는 다양하다. 또 간단한 듯하면서도 일반인들이 쉽게 구하기 어려운 희귀 재료가 나올 때도 많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괴리감이 들 만큼 유난한 주방 도구와 호화로운 인테리어는 그저 눈요깃감으로만 좋을 뿐이다. 버터나 치즈가 넘쳐나는 요리 과정을 보면서 출연자들이 “오, 맛있겠다”를 연발할 때는 느끼한 음식에 진저리치는 나와는 너무 달라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트로트 가수 진성이 이 프로그램에 나왔다. 생각 외로 소박하고 진솔한 일상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별 관심 없이 무심코 봤는데 볼수록 식생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놀랄 만큼 특별했다. 그의 일상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진성은 ‘면역력 밥상’이라는 주제로 요리를 했다. 대부분의 재료는 그가 가꾸는 텃밭에서 가져왔다. 바쁜 스케줄에 쫓기면서도 텃밭을 가꿔 채소를 키워내고 직접 장까지 담그는 걸 보고 놀랐다. 생소하고 진귀한 약재로 발효시킨 발효액들은 자연 조미료가 됐다. 밀짚모자를 쓰고 밭에 들어가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를 따서 크게 한입 베어 물더니 “신선도 A++급 무공해니까 밭에서 따 바로 먹는다”고 말했다. 신선한 식재료가 풍성한 텃밭과 거기서 수확한 채소들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부러울 정도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요리 솜씨였다. 텃밭에서 따온 몇 가지 재료로 직접 담근 효소를 이용해 부추 돌나물 샐러드, 오가피순 간장 무침, 돼지감자 물김치 등 건강 밥상을 뚝딱 만들어냈다. 한때 식당을 운영한 경험도 있었다는데, 요리를 해내는 노련한 손놀림이 역시 남달랐다.
진성이 자연식을 하기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때 림프종 혈액암과 심장판막증을 동시에 진단받아 한 달에 체중이 20kg이나 줄고 걷지도 못할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고통스런 수술과 투병생활을 하면서 우리 자연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를 찾아서 먹게 됐고, 그로 인해 다시 건강을 회복한 사연을 들려줬다. 그 시절 아내는 남편을 위해 항암에 좋다는 약초를 따다가 절벽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단다.
그는 눈물겨운 아내의 헌신과 항암 비법이 담긴 자연 밥상을 소개하면서 “이제 이 모든 것을 필요한 이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개그맨 이경규가 그에게서 살짝 허준이 느껴진다고 농담할 정도로 식재료에 훤한 지식을 자랑했다. 진성은 건강식의 아이콘이 되어 좋은 나눔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픈 분들에게 직접 담근 발효액을 보내주고 지인들과는 청국장을 나누기도 한다.
요리를 하며 구수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에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이의 깨달음과 여유와 너그러움이 묻어났다. 간간이 특유의 사투리를 쓰며 던지는 긍정의 유머는 음식 맛을 돋우는 조미료가 됐다. 그는 가수로서도 신화 같은 존재이지만, 소탈한 웃음과 함께 건강 정보까지 선사하는 건강 전도사로서도 손색없어 보였다.
여유롭게 유기농 간식을 먹던 그가 문득 옆에 있던 잡지를 집어 들었다. 그러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식으로 자화자찬을 하며 익살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순간 잡지 표지에 나온 사진이 낯익다. 아니,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아냐? 지난 8월호의 모델로 표지를 멋있게 장식했는데, TV로 다시 보다니! 그러고 보니 그의 나이 61세, 액티브 시니어다.
동서양 구별 없는 글로벌한 음식을 우리는 날마다 접한다. 이럴 때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먹거리로 투병을 이겨냈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태풍이 서너 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농가의 시름이 한가득이다. 누구라도 우리 농산물 소비 촉진에 참여할 때다. 신선한 우리 농산물이 건강의 첫걸음이다. 괜히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아니다.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08@naver.com
1975년 8월 발행된 1000원권의 인물은 조선중기 문신이며 성리학의 대가로 영남학파를 형성한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다.
영남학파는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유파로, 조선 중기에 영남좌도에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과 예학(禮學)을 바탕으로 한 사변적(思辯的)인 성리학을 더욱 중시하였다.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에 대칭되면서 학문적으로는 주리론(主理論), 정치적으로는 동인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성군을 바라는 지어 올려
또한 이황은 살아 있을 때부터 유종(儒宗 : 유학에 통달한 권위 있는 학자)으로 불렸다. 그동안 유학을 하는 선비들은 주자학(朱子學)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실천하는 데 불과했으나, 이황은 사상적으로 깊이 파고들어 주희(朱熹)에 버금가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황은 이로 인하여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고, 영남학파를 이끌어 가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황은 시와 서화에도 뛰어났으며 벼슬보다는 학문 탐구를 더 원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정치 성향은 전반적으로 왕권을 중시하고 군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군주의 자리는 백성의 지도자로서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으로 온갖 욕심을 부리고 조금이라도 직무에 태만하고 소홀히 한다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에 해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 위기가 온다. 그것은 곧 백성에게 화(禍)가 미칠 것이라는 마음에 이황은 선조를 위해 를 지어 올렸다. 자신이 보필하지 못하더라도 학문을 열심히 하고 늘 경계하는 마음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추어 성군이 될 것을 주청(奏請)한 것이다. 성학십도는 병풍으로 만들어져 지금도 도산서원에서 퇴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진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리)
1000원권 지폐가 처음으로 나온 해인 1975년은 유신헌법의 찬반을 묻는 국민 투표(2월12일)가 실시된 해였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에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는 물론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목 아래 계엄을 선포하였다. 이와 동시에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을 중지시켰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구성된 비상 국무회의는 즉각 헌법개정안을 제출, 의결하였으며 이를 국민투표에 부쳤던 것이다.
아이러니라 할 수 있지만 퇴계 이황이 성군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던 선조 시대, 사림들의 극심한 대립으로부터 당파가 생겨났다. 동인 서인으로 나누어진 동기는 이조전랑(정5품), 좌랑(정6품)의 벼슬자리가 원인이 되었는데 그때 서울 동쪽에 살면 동인, 서쪽에 살면 서인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황이 지폐의 인물이 된 이유는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존경하는 인물이라서라는 말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성군을 바라는 이황의 마음을 간절하게 담아 임금을 교육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매화를 사랑하는 섬세함, 손주를 아끼는 인간적인 마음 등이 부러웠을 것이다. 사람의 향기와 굳은 절개를 두루 갖춘 그의 모습을 닮은 협조자를 휘하에 두고 싶은 간절함을 담았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병약해 보이는 초상화 실제와 다른 듯
이황의 초상은 세종대왕이나 율곡의 모습에 비해 몹시 여위고 말라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잔병이 많았고, 성품이 깔끔했다는 고증을 반영하여 1974년 이유태 화백이 그린 상상화로 당시에 논란이 많았다. 2007년에 발행된 1000원권에서도 인물 초상은 이황을 그대로 유지했다. 앞뒷면에 초상을 동시 반영해 파격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1000원권의 이황 초상을 접할 때마다 과연 이분이 그 많은 저서를 남겼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남기신 인물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큰 인물의 초상을 그릴 때는 많은 고증을 통해 그의 성품을 먼저 파악하여야 한다. 진성(眞城)이씨 대종회에서 발간한 제20호, 2005년판에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선생은 평소 “털 하나라도 틀리면 나의 진면목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하신 바 있으며, 진영은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모를 짐작할 수 있는 기사로는 잡기19칙 제1에 ‘선생, 안각풍광(顔角豊廣) 송재기애지(松齋奇愛之) 상호왈(常呼曰), 광상(廣?),이불명언(而不名焉)’ (이안도(李安道) 선생 , 퇴계선생언행록에서)이다. 해석하자면 “선생은 이마가 모가 나고 풍성하여 송재께서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평상시에 부르기를 廣?(넓은 이마)이라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내용이 전하는 바도 있지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의지력으로 퇴계는 300여년을 성리학의 대가로 인정받으며 우리 시대를 이끌어 가는 큰 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에서도 성리학을 완성 한 큰 인물로 존경 받고있다. 유럽에서도 퇴계 연구가 왕성한 것을 보면 초상화 속 인물보다는 턱이 넓고 단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우리는 퇴계 이황이 완성한 성리학을 예(禮)의 근본으로 삼아 바르고 밝고 어질게 살아가려고 한다. 인상학자의 작은 바람이지만 우리의 위대한 성인의 모습을 제대로 고증, 복원해 훌륭한 인물을 정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용문사 가는 도로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도로 양 편으로 길게도 이어진다.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 만추의 여정이 가득한, 휘어진 길. 그 뒤로 아스라이 옛 추억 한 자락이 떨어지는 낙엽 위로 오버랩된다. 형형색색으로 변한 산야 속에 유난히 노란 단풍잎이 눈을 시리게 한다. 이렇게 도로변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은 것은 용문사에 노거수 은행나무가 성성하게 버티고 있음을 알려주려 함이었으리라.
◇ 단풍 든 한적한 산길에서 만난 정지국사부도
용문사의 가을은 화려하다. 해마다 이곳의 아름다운 가을을 만나기 위해 많은 행락객들이 찾아든다. 주차비(소형 3000원)와 입장료(성인 2000원)를 내고부터는 누구나 걸어야 한다. 입구 쪽에 단풍 든 공원 앞으로 2007년에 개관한 양평 친환경 농업박물관(용문면 신점리 508-10, 070-7715-3796, http://sam.go.kr)이 있다. 옛 성루를 연상케 하는 한옥 모양의 박물관 앞으로 분수가 솟구친다. 유치원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아이들 눈 속에는 감성이 많이도 묻어 있는 듯하다. 실내에는 양평역사실과 친환경농업실이 있고 사찰요리를 만들어보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주변의 공원에는 아이들 취향인, 귀여운 조형물과 시비 등이 많이 눈에 띈다. 사자상 양 귀 쪽으로 수도꼭지를 달아 놓은 모습도 해학적이다.
다리를 건너면 일주문이지만 이번 여행길에는 곧추 정지(正智)국사부도 팻말(0.5㎞)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산길은 큰 도로와는 달리 한적하다. 아직 걸음이 서투른 유치원생들과의 눈높이 대화가 싱그럽다. 부도까지 올라가야 하는 길목은 붉은 단풍이 에워싸고 있다.
우선 정지국사탑비를 만난다. 비문은 권근이 지은 것이라지만 글자가 거의 마모되어 버렸다. 80m 정도 오르면 정지국사부도(보물 제531호)가 홀로 있다. 정지국사(1324∼1395)는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고려 충숙왕 복위 1년(1332), 8세 때 장수산 현암사로 동진출가(童眞出家)했다. 바로 선을 닦다가 능엄경을 배워 깊은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공민왕 2년(1353)에는 무학과 함께 원나라로 가서 지공을 스승으로 한 나옹의 제자가 되었다. 1356년, 귀국해서는 은둔하면서 수행에만 힘썼다고 한다. 천마산 적멸암에서 “나는 간다”는 말을 남기고 법랍 54세로 입적했다. 제자 조안이 이곳에 부도와 비를 세웠고, 나라에서는 ‘정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생전에 개풍 영천사의 대장경을 용문사로 옮겨 봉안했다고 한다.
사찰 쪽으로 내려오는 길목에는 무수한 돌탑이 있다. 넓은 터에는 ‘산사무공(山寺武功)’이라는 손 글씨가 쓰여 있다. 무공 템플스테이가 펼쳐지는 곳이며 108탑을 조성하는 듯하다.
◇ 국내에서 가장 큰 용문사 은행나무는 단풍 들기도 더뎌
조금 더 내려오면 용문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경내의 건축물과 함께 단풍 든 용문산(1,157m)이 한눈에 조망되는데, 무엇보다 커다란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50m, 둘레 12.3m)에 눈길이 머문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 전해오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다. 수령이 대략 1100여 년에서 1500여 년으로 추정된다. 정미의병 때 톱을 댔더니 피가 났고, 불을 질렀을 때도 이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던 신목(神木). 노익장을 과시하듯 잎이 무성하고 주변 나무들보다 단풍도 더디 든다.
경내 약수에 목을 축이고 잠시 둘러본다. 이 사찰은 진덕여왕 3년(649)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진성여왕 6년(892)에는 도선국사가, 고려 공민왕 때는 나옹선사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다. 세종 29년(1447)에는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의 원찰로 삼으면서 대대적으로 중건했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그 후 왜군이 전소시켰고 6·25 때도 파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을 비켜날 즈음, 찻집 솔내음, 다래향에서 맛있는 대추약차의 그윽한 향내에 취해보거나 용문산 정상까지 산행을 해도 된다.
◇ 상원사에 오르면 속세의 번뇌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
굳이 산행을 안 해도 된다. 찻길이 잘 나 있기 때문. 상원사 입구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석불부터는 민가가 사라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차 한 대가 갈 수 있는 임도 운전이 아슬아슬하지만 잠시 차를 멈출 수 있는 공간이 반갑다. 시원한 물줄기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그곳에도 아름답게 단풍이 들었다. 물소리, 새소리, 단풍 숲까지 어우러져 사랑스러운 길이다. ‘무릉도원’이 여기구나 싶을 생각이 절로 드는 곳. 찻길이 끊어지는 곳에서 누군가 정성스레 가꿔 놓은 텃밭, 작은 연못, 깎아지른 듯한 언덕에 잘 쌓은 돌담이 해사한 웃음으로 반긴다.
돌계단을 따라 경내에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3층석탑을 에둘러 대웅전, 선방으로 이용되는 청운당, 요사채인 제월당이 있다. 대웅전 뒤쪽으로는 삼성각이다. 절 마당, 트인 공간 저 멀리 용문산 능선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상원사는 창건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 보우선사(1301∼1382)가 여기 머물며 정진했다고 전해온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조안선사가 중창했으며 무학대사(1327~1405)가 왕사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수행했다.
또 효령대군(1396~1486)은 원찰로 삼았다. 세조 8년(1462)에는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러 찾아왔다가 중창불사를 했다고 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 순종 원년(1907)에 왜병이 이 지역에 집결해 있던 의병을 소탕하기 위해 불을 질러 법당만 남겨놓고 모두 타 버렸다가 1918년에 복원했으나 6·25 때 모두 불타 버렸다. 이후 1969년이 되어서야 주지 덕송이 초막삼간을 짓고 복원에 착수, 1970년에 주지 경한니가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원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사자석상을 닮았지만, 정확한 형태가 아닌, 예사롭지 않은 조형물이다. 땅속에서 나온 유물들을 한데 조합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또 사찰 내에는 철조 여래좌상(경기문화재자료 제119호)이 있다. 상원사 가까이 있는 윤필암은 고려 중엽 모덕이 창건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다.
◇ 보릿고개 연수리 정보화 체험마을의 돌담 따라 걷기
상원사에서 내려오면 ‘연수리 보릿고개 정보화 체험마을’을 만난다. 연수리는 연안마을과 장수마을을 합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예로부터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장수골’이라고 불렸다. 현재 보릿고개마을은 성공한 정보화마을이다. 다양한 체험거리는 계절에 맞추어진다. 봄에는 산나물 채취, 냉이 캐기를 하고 여름에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가을에는 밤 줍기와 등산을, 겨울에는 청국장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한다.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돌담장에 형형색색으로 색칠해 볼거리를 준다. 사계절 체험객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슬로푸드 음식체험이 인기다. 보리떡 직접 만들어보기, 지천에 난 쑥을 직접 뜯어 쑥떡 만들기, 농민들이 재배한 국산 콩으로 두부 만들기, 잘 익은 호박으로 호박밥 지어 먹기 등. 체험객들이 늘 찾는, 성공한 체험마을이다.
마을을 비켜 용문으로 오는 동안에도 눈이 시리다. 곳곳에 멋지게 지은 전원주택들이 구슬처럼 박혀 이국적인 모습을 자아낸다. 그리고 경기도 영어마을 양평캠프도 있다. 실제 미국 버지니아의 마을을 재현한 이국적인 캠퍼스다. 그래서 와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이용되었다. 학습 목적이 아닌 관광객들은 6000원이라는 입장료를 감수해야 한다.
용문면에도 할 거리가 있다. 레일바이크(031-775-9911, http://www.yprailbike.com)를 탈 수 있다. 용문면 삼성리∼양평읍 원덕리까지 왕복 6.4㎞ 구간이다. 또 용문장날(5일, 10일)도 볼만하다. 국철이 생기면서 장날은 제법 구색을 갖춰가고 있다. 지역에서 나오는 가을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Travel Tip
- 주소
용문사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 문의 : 031-773-3797, http://www.yongmunsa.org
상원사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220-5, 문의 : 031-773-4634
보리울체험마을 문의 031-774-7786, http://borigoge.invil.org
기타 문의 양평군청 문화관광과 : 031-773-5101
- 찾아가는 방법
자가용 서울 → 6번국도 이용 → 마룡교차로에서 341지방도로로 좌회전 → 덕촌삼거리에서 직진 → 용문산 관광단지 주차장
대중교통 수도권전철 중앙선이 용문까지 운행(2009년 12월 개통)되고 있다. 용산역~용문역(05:20~22:58) 약 1시간 30분 소요. 용문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용문사, 연수리행 등 각 방향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문의 용문시외버스터미널 : 031-773-3100, 용문역 : 031-773-7788
- 추천 맛집
용문산 입구에 중앙식당(031-773-3422), 한마당식당(031-773-5678), 용문산식당(031-773-3434) 등 산채요리 음식점이 있다. 그외 용문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무쇠솥에 오랫동안 달여 낸, 국물 진하고 고기 넉넉한 고바우집(031-771-0702, 설렁탕)을 비롯하여, 이북식 만두가 맛있는 회령만두국(031-775-2955)이 괜찮다. 용문읍에 있는 강원식당(031-773-4459, 막국수, 묵채밥 등)도 괜찮다.
- 주변 볼거리
용문산에는 용계, 조계골(신점1리)이 있다. 또 용문면에서는 레일바이크(031-775-9911, http://www.yprailbike.com)를 탈 수 있다. 2010년 5월 3일 개장되었고 용문면 삼성리에서 양평읍 원덕리까지 왕복 6.4㎞ 구간이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선생님, 물어보기 좀 거시기하지만… 뭐 하나 물어봐도 돼유?”
“저는 거시기한 부분만 보니까 물어보셔도 돼요.”
“그러니까… 제가 포경수술을 안 했는디, 요즘에 자꾸 껍데기가 헐어서 안 좋네요. 무슨 큰 병은 아닐까요?”
진찰을 해보니 음경의 귀두를 둘러싸고 있는 포피가 헐어서 전체적으로 돌아가면서 세로로 터져 있는 모양이었다. 염증이 심하지는 않았고, 단지 피부가 헌 정도로 보였는데, 아프거나 덧나지 않도록 연고와 약 처방을 해준 후 말씀드렸다.
“아버님, 나이가 드시면서 피부의 탄력도 떨어지고 더 약해져서 그런 거니 자꾸 재발하면 포경 수술을 지금이라도 하는 게 나을 거예요. 그게 위생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 환자분은 2주 정도 후에 국소마취로 포경수술을 하고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잘 지낸다.
자, 그럼 포경수술은 도대체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나이가 들어서 해도 아무 상관 없을까.사실 포경수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행해왔던 수술 중 하나다. 주로 고대 이집트와 중동 등 이슬람권 국가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슬람교, 유대교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계속돼 왔다.
우리나라는 어떤 종교적 배경이 없는데도 포경수술을 많이 하는 편에 속해왔는데, 신생아 포경 수술이 인권문제로 대두하면서 많이 감소한 추세다.
그러면 안 해도 되는 걸까.
포피가 귀두를 덮으면 청결한 환경 유지에 어려움이 있고, 소변 잔류물 등으로 냄새가 날 수 있다. 성인이 됐는데도 귀두가 노출되도록 포피가 벗겨지지 않으면 (이를 진성포경이라고 한다) 이런 문제가 생긴다. 또 한 가지, 요즘 감염 관련 연구에서 많이 나오는 보고 중의 하나가 세균감염이라 바이러스에 의한 성병이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남성에서 포경수술을 한 남성보다 더 전파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서구의 여러 나라가 연합한 연구에서 아프리카의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 바이러스의 전파에 관해 포경 수술 여부가 영향이 있다는 것을 발표한 지도 한참 됐고, 국내의 연구 데이터도 비교적 흔한 성병인 곤지름(성기사마귀), 헤르페스 등 성적 접촉으로 전파되는 질환은 아무래도 포경수술을 한 쪽이 위험도가 덜하긴 하다. 특히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으로 길어지고, 중년 이후의 연령층이 더 두꺼워지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고, 성생활에도 건강을 유지하려면 안 하는 것보다는 수술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의학적으로 신생아 포경은 음경암을 예방하려는 의미가 클 뿐, 그 밖의 다른 장점은 없다. 비뇨기과 의사 입장에서도 아무리 어린 아기라도 바늘로 찌르면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데, 엄마 젖도 다 떼지 않은 아이를 소량의 마취제만 바르거나 아직 신경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마취도 안 하고 포경 수술을 하는 것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요즘은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건강관리도 잘 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음경암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발생빈도도 선진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0.3~1% 정도로 확 줄어들었다. 국민 건강 면에서는 음경암을 걱정해 신생아 포경 수술을 해주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도대체 포경 수술을 한다면 무슨 이유로, 언제 해야 하는 걸까?
필자의 비뇨기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당히 주관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포경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는, 첫째, 귀두 포피에 반복되는 염증이 생기는 경우 입구의 협착을 막고 더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해 줘야 한다. 둘째, 성인이 돼서도 포피가 뒤로 젖혀지지 않는다면 해줘야 한다. 셋째, 성생활이 예전에 비해 많이 오픈되어 있고, 훨씬 더 어린나이부터 성생활을 하고, 성 상대자가 인생에 걸쳐 한 사람만 있는 경우가 드문 요즘 젊은이들은 해줘야 한다. 성병에 걸리거나 성병을 보균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다. 넷째, 어쨌든 수술 없이 잘 지내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포피가 자주 헐거나 붓는 경우 전문의의 진찰과 상담을 거친 후 수술을 해 주는 것이 낫다. 반드시 비뇨기과의사의 상담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성기나 음낭의 모양이 비뚤어져 있거나, 성기가 살 속에 숨어 작은 경우는 그냥 포경 수술을 하면 안 된다. 어떤 경우에는 이 포피가 모양을 교정하는 데 필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술을 언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니면 차후에라도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고 싶은지 등등을 고려해서 수술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성병 문제만 따진다면 성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해주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런 면을 고려하면 만 10~12세 정도가 제일 적당하다. 이 시기를 지나서는 언제든 상관이 없다.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서 결정하고, 편한 시기에 하면 된다. 나이가 들었다고 ‘이 나이에 무슨 포경 수술이야’ 할 게 아니라 건강관리상 유리하거나 필요하면 하는 것이다. 단,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남들이 안 하니까 안 한다든지, 주변에서 많이 하니까 한다는 식의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골골 백세’가 아니라 ‘건강 백세’, 기왕이면 건강하고 탈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닌가.
>>>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대한성학회 상임이사, 대한여성 성의학 연구회 학술이사, 대한요실금배뇨장애학회 교육이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 와 공동저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