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은 별과 시, 소설을 사랑하는 전파 천문학자다.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천체를 관측한다. 현재 외계 생명체를 찾는 과학 프로젝트 ‘세티’의 한국 책임자(SETI KOREA 대표)와 메티 인터내셔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더불어 어릴 적 자랐던 삼청동 옛집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고 과학 소통가로서 우주과학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이명현 천문학자가 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70년대 서울의 변두리, 답십리 골목길에서 딱지치기나 소꿉장난을 하며 놀았던 어린 시절이다. 해 질 무렵,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 엄마의 부름에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혼자 남아 밤하늘을 바라봤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이 퇴근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별에 매료돼 ‘별을 헤는 사람’이 됐다.
상반된 단어들의 별난 집합
“초등학교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어요. 최연소 회원이었죠. 그때만 해도 서울 밤하늘이 제법 어두웠어요. 인공 불빛이 덜했으니 어지간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겨울 은하수는 가끔, 안드로메다 은하는 맨눈으로 보고 망원경으로도 다시 만나던 단골손님이었어요. 성운과 성단의 이름을 적은 노트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눈으로 찾고, 망원경으로 자세히 본 후 그림을 그리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고등학교 때는 유리알을 직접 갈아 망원경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의 세월은 문학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가을날,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로부터 이별을 알리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인생 첫 실연이었다. 편지에는 김소월의 ‘초혼’과 윤동주의 ‘서시’ 두 편이 적혀 있었다. 서럽게 울다가 두 시인의 시를 보았다. 그리움을 곱씹으며 구할 수 있는 모든 시집은 다 구해서 읽고 외웠다. 이별이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준 셈이다. 윤동주가 공부했던 숭실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그가 참여했던 평양 숭실고 교지 ‘숭실활천’의 정신을 잇는 문학 동인회 ‘활천’을 만들었다. 그 이름으로 동인지도 발행했다. 대학교도 윤동주의 흔적이 남은 연세대학교로 갔다. 마침 같은 학교에 입학한 아내를 1학년 가을, 윤동주 시비 앞에서 다시 만났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을 관측하는 천문학자가 된 후 전파 망원경을 통한 은하 연구의 중심지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유학하며 연구원 생활을 마쳤다. 귀국해서는 연세대학교 연구교수와 천문대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이명현 인생의 화두인 별과 윤동주의 문학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다.
“2010년 11월 말, 일요일 밤이었어요. 김장철이라 배추를 나른 뒤였죠. 약간 숨이 찼지만 힘들진 않았는데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어요. 응급처치 덕에 살았지만 지금은 심장 근육의 일부만 뛰는 상태에요. 그때 현장 과학자로서는 은퇴했어요. 당시 연재 중이던 온라인 매체 ‘프레시안 북스’의 서평 연재 코너 빼고요. 격주로 진행했는데, 책을 한 권 읽고 글 쓰는 게 다였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 재활 훈련으로 여겼죠.”
‘과학의 문학’을 위한 책방
2018년에는 삼청동 뒷골목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었다. 원래 이 공간은 아버지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저자)가 1979년에 지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 관리가 살던 단층 적산 가옥이 있었다. 이 명예교수가 2002년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집을 새로 지어 옮겨간 후 삼청동 집은 지인이 오랫동안 비폭력대화센터로 운영해왔다. 그러다 센터가 이사하며 집이 비자 이 명예교수는 장남 이명현 천문학자에게 공간을 내줬다.
“갈다는 갈릴레오(Galileo)와 다윈(Darwin)의 앞글자를 합친 단어예요. ‘세상을 바꾼 과학을 만나는 곳’이란 뜻부터 ‘문화의 터전을 갈다’, ‘지식의 칼날을 갈다’, ‘딱딱한 과학을 부드럽게 갈다’, ‘지식의 판을 갈다’ 등 5가지 의미를 담았어요. 장대익 서울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김상욱 경희대 교수 같은 친한 학자 10여 명과 아이디어를 모았죠. 이름을 지은 다음 뭘 할까 고민했어요. 다들 과학자이면서 책을 쓰는 사람이고, 책방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터라 교양과학 책방을 열기로 했죠. 2층에는 저자의 방, 지하엔 북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어요.”
이명현 천문학자는 과학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을 소중히 여긴다. 출발은 대학원생 때다. 연구실로 초등학생 꼬마 한 명이 들어와 다짜고짜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론에 입거한 증거를 나열해 친절히 얘기해줬지만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자신을 납득시켜달라고 보챘다. 아무리 설명해도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천문학을 매개로 비전공자와 교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이후 다양한 강연을 통해 과학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사람들에게 꾸준히 전한다.
왜 과학, 책일까?
“대부분 과학책이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거리를 둬요. 과학책을 쉽게 읽고 싶다면 ‘느슨한 독서’를 추천합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적어 책이 갖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어요. 그만큼 정독, 완독, 반복 등이 중요했죠.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서 좋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와요. 첫 장부터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고, 모르는 부분은 과감히 넘기세요.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등 비독서 행위를 활용하면 효율적입니다. 다른 사람이 흘려놓은 정보에 올라타는 거죠. 장으로 챕터가 나누어져 있는 책은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는 것도 느슨한 독서 방법이에요.”
물론 영상, 팟캐스트 등의 미디어를 통해 과학을 접한다 해도 진입장벽은 높다. 그럼에도 느슨하게나마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 매체가 익숙한 시대에 살다 보니 현대인은 즉각적인 반응을 도출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현대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복잡한 상황도 마주한다. 이명현 박사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독서가 최적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정보 습득의 목적도 있지만,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의미가 있어요. 사고력을 기르는 거예요. 많은 분야 중에서도 왜 하필 과학책일까요? 중세에는 신학, 천문, 지리, 음악이 핵심 교양이었죠. 그걸 알아야 사람들과 호흡하고, 시대를 풍성하게 누릴 권리를 얻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과학이 핵심 교양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봐요. 심리학이나 행동과학 등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과학으로 이해한 다음,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현대 인문학이에요. 인문학과 과학은 뗄 수 없는 관계죠. 핵심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익혀 우리 함께 인문학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갈림길에 섰을 때 사람은 세 가지로 나뉜다. 남들이 지나간 길을 가는 사람,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 있는 사람, 남들이 꺼리는 길을 기꺼이 가는 사람. 어느 것이 더 맞고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걸 ‘용기’라 읽고 ‘모험’이라 쓴다. 이번 호에서는 전형적인 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타투이스트 조명신(56)을 만났다.
의사와 타투이스트. 이 두 단어를 보고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수술실처럼 어두운 곳에서 일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접점이 없어 보였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한쪽은 엘리트에 가깝고, 다른 쪽은 고독한 예술가 같다. 바둑으로 치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백돌이고, 타투를 새기는 타투이스트는 흑돌처럼 보인다. 물론 의미의 경중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미지의 대조는 확실하다.
이 거리감을 증명하듯 수술복을 입은 채 타투 시술을 하는 그의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두 번째는 궁금했다. 메스를 들던 의사가 왜 수술복을 입고 몸에 타투를 새기는 걸까? 의사로서 남극에도 다녀오고,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공부한 이유는 뭘까? 특이한 이력에 관한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 위해서 그를 만나 지나온 시간 속 사연을 들어봤다.
성형외과 의사 시절 타투와 관련된 일을 하셨나요?
당시 의사로서 타투 제거 시술을 많이 했다. 진짜 다양한 타투를 많이 지웠다. ‘착하게 살자’, ‘영숙아! 사랑해’와 같이 다소 유치한 문장부터 화려한 꽃이나 화살표가 꽂힌 하트 등을 지웠다. 일종의 낙서라고 보면 된다. 10대 때는 이렇게 하고 다닐 수 있지만, 커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 했던 타투를 지우는 분이 많았다.
타투이스트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느 날 병원에 장미가 그려진 타투를 지우러 온 분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그려진 문양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 장미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마음에 무척 들어서 시술한 분을 찾아갔다. 그분은 송탄 미군 부대 앞에서 ‘키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셔서, 제자가 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분 덕분에 타투이스트로서 첫걸음을 잘 뗐다. 당시 타투는 법적으로 의료 행위였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가 없었다. 나는 성격상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의사 교육 과정에 타투가 있었다면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타투 시술을 시작했고, 실력을 더 쌓기 위해 미국에 가서 배우기도 했다.
메스를 들지 않는 의사, 아쉬움은 없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의사가 된 건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위에 있는 형과 누나들이 다 재수,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집에 부담이 컸다. 알다시피 등록금부터 생활비, 월세 등등 들어가는 돈이 많지 않나? 우리 집 형편으론 그게 빠듯했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의사를 선택했다. 학력고사 성적도 잘 나와서 의대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다만 경제적 부담 없이 다니고 싶어서 여러 의대를 알아봤는데, 마침 한 대학에서 장학금과 함께 매달 용돈을 지원했다. 그렇게 들어간 의대였지만,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길과 달라서 방황했다.
원래의 꿈은 고고학자
가고 싶었던 길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 고고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영화 속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며 별을 관찰하거나 고대의 유물을 발견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직업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그때는 잠시 보류했다. 의사가 된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이런 마음으로 잠시 그 꿈들을 내려놓았다.
매머드 연구가 그 연장선일까요?
연구까지는 아니고 매머드와 관련된 공부를 잠깐 했다. 끝내 못 이룬 고고학자의 꿈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지도 교수님이 사하 공화국으로 매머드 연구를 하러 가자고 제안하셔서 함께 다녀왔다. 사하 공화국에는 냉동 상태로 발견되는 매머드가 많아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곳이다. 의사로서 미생물학을 공부한 적도 있고, 인류학이나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서 흔쾌히 다녀왔다. 예전에는 남극에도 잠깐 있었다.
남극에는 어떤 일로 다녀오셨나요?
월동의사로 다녀왔다. 알다시피 남극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이 아니다. 아무나 갈 수 없다. 의사라고 해서 남극 기지의 월동의사로 무조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특수성이 있어, 남들이 안 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기회였다. 한 명을 뽑았는데 여덟 명이 지원했다. 정말 간절하게 가고 싶어서, 전략적 승부수를 띄웠다. 그때 관장 부서가 복지부였는데, 복지부 장관에게 내가 가야 하는 이유 7가지를 적어서 편지를 보냈다. 장관 대신 실무자가 편지를 읽고, 나의 적극성을 높이 샀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결국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중보건의 시절 중 1년을 남극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의사로서 본분을 잊은 적 없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했다. 밑에 있는 직원도 와서 만류하고, 동료 의사도 반대하고, 타투이스트도 찾아와서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동료 의사로부터 질타를 많이 받았다. “왜 그런 걸 하냐”는 식이었다. 홈페이지에는 “이게 그림이냐? 학원이라도 다녀라” 같은 댓글도 달렸다. 아무 맥락 없이 “밤길 조심하세요” 하며 험악한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타투이스트는 직접 찾아와서 자중하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꾸준하게 활동하고 교류하면서 이제는 그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주로 어떤 타투를 하시나요?
정해진 틀은 없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 다만 의사이다 보니 메디컬 타투에 신경 쓰고 있다. 의료 문신 혹은 재건 문신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인 타투가 미(美)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타투는 복원에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백반증 환자의 경우 하얗게 된 부위를 타투를 이용해 보통의 살처럼 만들어준다. 의사로서 가진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타투를 하면서 내 신분을 한 번도 망각한 적은 없다.
타투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성형외과를 하면서 3만 건 정도의 쌍꺼풀 시술을 했는데 얼굴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타투는 시술한 사람의 얼굴이 모두 기억난다. 특히 한 부자(父子)의 사연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유대가 없던 부자였는데, 타투가 하나의 매개체가 됐다. 아버지는 타투를 한다는 아들을 한사코 말리셨는데, 직접 병원에 와서 보시고 생각을 바꾸셨다. 나중에는 등판에 타투를 새기고 가셨다. 마지막 시술을 받고 가시면서 고맙다고 했다. 타투 때문에 평소 대화가 없던 아들과 말문을 열게 됐다고 하시면서. 그 기억이 참 오랫동안 맴돌았다.
타투는 구속할 수 없는 자유
20년 동안 타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타투는 늘 새롭다. 코와 쌍커풀은 정형화된 방법으로 시술한다. 하지만 타투 세계에서는 그런것이 없다. 사람마다 옷을 입는 방법이나, 귀걸이를 고르는 취향도 다 다르지 않나? 타투도 마찬가지다. 같은 독수리 도안이라도 취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서 늘 새로운 걸 시도했고, 그러면서 실력이 쌓였고, 재미도 있었다. 이런 새로움이 없었다면 지루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인 소양을 알려준 건 키미이지만, 실제로 나를 키운 건 고객이다. 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한다. 기자나 포토그래퍼도 그렇지 않나? 나도 똑같다. 타투도 같은 형식 속에서 계속해서 다른 내용을 담는 일이다. 끊임없는 새로움이 내 원동력이다.
삶의 롤모델이 있나요?
앙드레 김 선생님과 반 고흐를 존경한다. 둘 다 전형성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좋아한다. 같은 해바라기이지만 고흐는 전부 다 다르게 표현했다. 안정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는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앙드레 김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것도 모자라 패션에 자신만의 가치를 불어넣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큰 목표는 없다. 그냥 타투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 지금 하는 걸 잘하고 싶다. 2년째 소방관에게 무료로 타투를 시술해주고 있다. 앞으로는 경찰관과 응급실 의사를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사소하지만 나의 무료 시술이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 테러가 발생할 당시 태평양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후에 미국 여행 중 만난 분이 인상적이었다. 팔에 영어가 빼곡하게 타투로 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9·11 테러로 희생당한 소방관들의 이름이었다. 미안과 존경의 표시로 말이다. 그분을 만난 이후 나도 나중에 소방관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의 결심을 이제야 실행하게 됐다.
타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구속할 수 없는 자유다. 하는 것도, 지우는 것도 본인의 자유다. 독수리를 새기고 싶으면 새기면 된다. 20대에 할지, 나이 들어서 할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누구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운 것이다.
바둑 용어 중에 미생(未生)이란 말이 있다. 몇 년 전 유행한 드라마의 제목과 같다. 미생은 가능성을 품은 순간을 뜻한다. 어떤 수를 두느냐에 따라서 상대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삶의 경로가 달라진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헷갈린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를 때가 많다. 선택의 결과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용기는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알고도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다.
조명신 원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그가 선망하던 인디아나 존스처럼 고고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공중보건의 시절 남극 월동 의사에 도전했다. 의사로서 안정적인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수술실에서 메스를 드는 대신 몸에 타투를 새겼다. 유년 시절 못다 이룬 꿈에 다가가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탐구했다. 현재도 타투이스트로서 안주하지 않고, 메디컬 타투를 시술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바둑판 안에 갇힌 돌로 남기를 거부하고 늘 새로운 길을 찾으며 도전하고 있다.
그는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안락한 안정이 아닌 구속할 수 없는 자유를 좇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적이지만 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에서 ‘안정’ 대신 ‘모험’으로 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말년에 소박하게 타투와 관련된 책을 쓰고 싶다는 조명신 원장의 또 다른 모험을 응원한다.
◇ Exhibition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여 년을 재조명한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기획전은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작품에서 시작해, 1980~90년대의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과 싱글채널 비디오까지 아우르며 한국 비디오 아트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 미술’, ‘탈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등 크게 7개의 주제로 나뉜다. 기술과 영상 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등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진화해온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볼 기회다.
# 매그넘 인 파리
일정 2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한 사진전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소속 작가 40명의 작품 400여 점이 공개됐다. 2014년 오텔 드 빌(파리 시청)에서 처음 개최됐던 이번 전시는 2017년 일본 교토문화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앞서 열린 파리와 교토 전시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엘리어트 어윗의 사진 40여 점으로 구성된 특별 섹션 ‘Paris’와, 파리의 패션 세계를 담은 작품 41점을 추가로 만날 수 있다. 파리의 풍경이 담긴 옛 지도와 희귀도서, 앤틱가구 등으로 꾸며진 ‘파리 살롱’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풍성하다.
#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작품 230여 점을 작가의 삶과 여정에 따라 총 5부로 나눠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체코 출신의 테니스 선수 이반 렌들의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일명 ‘무하 스타일’이라 알려진 넝쿨 같은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등 매혹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의 포스터에서 작가가 고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작품까지 총망라한다. 도슨트 운영과 더불어 체코문화원과 함께하는 미술사 강연 및 시즌 이벤트, 키즈 아틀리에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할 예정이다.
# 고향 gohyang: home
일정 3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시립미술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복잡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가진 중동 지역의 현대 미술을 살펴본다. 중동에서 발생한 다양한 미술적 활동을 통해 고향을 잃거나 빼앗긴, 또는 고향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민족’이라는 관념적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기억의 구조’, ‘감각으로서의 우리’ 등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이미지, 사운드 설치,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아우른다. 전시기간에는 할리드 쇼만 컬렉션의 영상 작품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시네마테크 컬렉션으로 구성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 Stage
# 뮤지컬 '레베카'
일정 3월 15일까지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엄기준, 신성록, 옥주현 등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계 콤비 미하엘 쿤체(대본·작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의 대표작. 영국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소설 ‘레베카’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레베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로맨스,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강렬한 음악으로 전 세계 1900만 관객을 마음을 사로잡으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상징이 된 회전하는 발코니 신은 관객이 꼽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다.
# 마당놀이그 '춘풍이 온다'
일정 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연출 손진책 출연 김준수, 서정금, 김미진 등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한 마당놀이극이다. 34명의 배우와 20명의 연주자가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기생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탕진한 한량 춘풍을 그의 어머니와 몸종이 혼쭐내고 가정을 되살린다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마당놀이 특유의 세태를 꼬집는 풍자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 2020 신년음악회
일정 1월 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 정명훈 출연 서울시립교향악단, 클라라 주미 강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경자년을 맞아 새해 첫 주 토요일 신년음악회를 개최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끈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며 의미를 더한다.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협연으로,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비롯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받아온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 Movie
# 피아니스트의 전설
개봉 1월 1일 장르 드라마·판타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팀 로스,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등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에 이은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감독과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 감독이 함께한 ‘예술과 사랑’ 3부작 마지막 편이다. 2002년 12월 개봉 이후, 22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첫 정식 개봉을 확정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노베첸토’가 원작. 평생 바다 위에서 살며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과 황홀한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개봉 1월 1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아델 하에넬, 노에미 메를랑 등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2관왕에 이어 토론토, 뉴욕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여인과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 의뢰를 받은 화가 마리안느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다.
# 몽마르트 파파
개봉 1월 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민병우 출연 민형식, 이운숙, 민병우
아버지의 인생 2막을 담은 아들의 다큐멘터리. 미술교사로 평생을 산 아버지는 은퇴 후 ‘몽마르트 거리 화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파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도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 Book
#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 (키만소리 저·책들의정원)
엄마는 해외로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자신도 영어공부를 해서 혼자 해외여행을 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거부한 그녀는 ‘현자 씨’라 불러 달라며 가족들에게 선포한다.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나다운 나’로 살고 있는 현자 씨의 홀로서기 에피소드를 웹툰과 에세이로 담았다.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인생 2막을 살며 못다 한 꿈을 이뤄가는 당당한 꽃중년의 모습을 그린다.
#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신정근 저ㆍ21세기북스)
베스트셀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에 이은 신정근 교수의 신작. ‘중용’의 원문 중 신중년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60개의 명문장을 엄선해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일러준다.
#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수지 홉킨스 저ㆍ에프)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딸에게 전하는 엄마의 사랑과 조언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엄마가 떠나고 딸이 홀로 할 일들을 날짜별, 단계별로 보여주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처방전도 제시한다.
# 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저ㆍ시공사)
북극에 고립된 78세 천문학자와 지구로 귀환 중인 우주비행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 느낀 지난날의 사랑과 회한을 그린 소설. 극한 상황 속 인간의 고독과 복잡한 내면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 어반 우즈맨 (맥스 베인브리지 저ㆍ목요일)
우드 카빙으로 숟가락, 주걱, 도마 등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을 손수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목재 구하기부터 도구 사용법, 관리법 등 초보자를 위한 목공 매뉴얼이 자세히 실려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색약 판정으로 꿈을 저버리고 만다. 절망으로 보낸 질풍노도의 시기, 그를 붙잡아준 건 한 그루의 나무였다. 어떤 악조건에도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가 보여준 단단한 삶의 태도. 그렇게 얻은 인생의 가르침을 보은으로 여기며 우종영(禹鍾榮·64)은 아픈 나무들을 위해 나무의사가 됐다. 어느덧 인생 후반, 나이가 들수록 제 속을 비우고 작은 생명들을 품는 고목을 보며 그는 다짐한다. 남은 날들을 꼭 나무처럼만 살아가자고.
나무의사 우종영은 그동안 나무로부터 얻은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나누고자 에세이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펴냈다. 20년 전 출간한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와 메시지는 비슷하지만, 중년 이후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며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이다.
“사르트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자연은 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말을 번역하는 것은 인생의 경험이다.’ 나무뿐만 아니라 어떤 생명이든 우리에게 말을 걸고 표정을 짓는데, 그건 저마다의 경험에 비춰 해석하게 된다는 거죠. 연륜이 쌓인 만큼 자연이나 사회를 대하는 시각과 깊이가 달라졌어요. 나무를 바라볼 때도 단순히 특성보다는 그 품성을 이해하려 하고요.”
그는 누군가를 만날 때면 줄곧 그이와 닮은 나무를 떠올리곤 한다. 전에는 겉으로 보이는 성향을 두고 비슷한 나무를 찾았다면, 이제는 사람과 나무가 지닌 사연과 태도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닮고 싶은 나무’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단다.
“한때는 소나무를 닮아야지, 대나무를 닮아야지 그랬다면, 이제는 꼭 어떤 나무를 정하지 않아요. 가령 산에 가면 바위틈에 자라는 작은 팥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 나무가 산 아래 계곡에서 뿌리를 내리면 어마어마한 거목이 돼요. 그러니 산에 있던 팥배나무는 자신이 뿌리내린 곳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억제한 거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우연히 만난 팥배나무에게 인내와 강인함을 발견하듯, 요즘은 그때그때 마주치는 나무들의 품성을 본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높아질수록 뿌리와는 멀어진다
척박한 땅에서도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던 나무들은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추기 시작한다. 계속 자라기만 하면 하늘에는 가까워져도 뿌리와는 멀어져 양분이 고갈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성장을 멈추는 것이다. 그는 나무가 멈춤의 시기를 갖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드론으로 위에서 찍은 숲 사진을 보면 나무들의 키가 거의 일정합니다. 그건 숲에 사는 나무 간의 약속이에요. 한 나무가 자라면 또 다른 나무도 더 자라려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존을 위한 동맹을 맺는 겁니다. 그에 반해 인간 사회는 경쟁이 난무하죠.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살기 위해 스스로 멈출 줄 아는 나무의 자세는 우리가 배울 점이라 생각해요.”
이러한 나무의 성장과 멈춤은 ‘우듬지’가 조절한다. 우듬지란 나무 맨 꼭대기의 줄기인데,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자라게 하는 동시에 아래 가지들이 제멋대로 뻗는 것을 통제한다. 인간으로 따지면, 우듬지는 곧 삶의 구심점이자 목표, 방향 등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우듬지는 나무가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소멸한다. 그는 자신 역시 우듬지가 거의 사라진 상태라며, 그것이 순리에 맞다고 설명했다.
“젊을수록 우듬지는 왕성하죠. 일종의 줏대이기도 하고, 때론 희망이나 꿈의 역할을 하니까요. 그러나 나무가 우듬지를 소멸시키듯, 사람도 나이가 들면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알아야 해요. 과거와 똑같이 경쟁하고, 벌고, 쓴다는 건 무리입니다. 덜 경쟁하고, 덜 벌고, 덜 쓰면서 그 안에서의 행복을 찾아야죠. 나무는 자신에게 필요한 햇빛을 쬘 만큼의 하늘만 확보되면 더는 욕심부리지 않습니다.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그런 자기만의 하늘을 가진 거라고 봐요. 그땐 우듬지가 사라져도 길을 잃거나 방황하지 않죠.”
그는 나이가 들수록 우듬지보다는 ‘틈’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역시 나무에게서 얻은 깨달음이란다.
“오래된 숲일수록 적당한 틈이 존재합니다. 어른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에 틈이 없다면, 키 작은 어린 나무들은 햇볕을 쬘 수 없잖아요. 그보다 더 아래에서 사는 풀이나 꽃, 곤충 등은 더 심할 테고요. 숲에 틈이 있어야 빛이 들고, 새로운 희망이 자랄 수 있는 겁니다. 큰 나무는 그런 틈을 내어줍니다. 동시에 어린 생명들이 안전하게 자라도록 비바람과 눈보라를 막아주는 버팀목 역할도 해주죠. 우리네 인생에서도 이런 큰 나무 같은 어른이 많아져야 합니다.”
수목장의 불편한 진실
마지막 순간까지 주변을 보듬고 살다 미련 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처럼, 그는 자신의 인생 말미 또한 그러하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삶의 끄트머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수목장과 관련해 한마디했다. 친환경적인 장례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가혹한 행위라며 우려를 내비쳤다.
“대개 나무 아래 유골함을 묻는 방식인데, 그러면 뿌리가 다칠 수밖에 없어요. 뿌리가 상한 나무는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나무에게도 고인에게도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수목장이 발달한 스웨덴은 ‘회상의 숲’을 만들어 운영해요. 우리와 다르게 지정된 숲에 유골을 뿌리는 식이죠. 산골(散骨) 장소를 별도로 표시하거나, 숲에 들어가거나 꽃, 나무를 심는 것도 금지합니다. 유족이 그 장소나 식물을 망자의 흔적이라 여겨 집착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함이죠. 또 나무 앞에서 추모하는 일도 없습니다. 대신 숲 둘레길 등을 걸으며 고인을 회상합니다. 그게 숲을 건강하게 지키면서 고인을 편안히 모시는 길이라 여기는 겁니다.”
어떻게 사느냐와 더불어 어떻게 죽느냐까지 고민해야 하는 세상. 그는 웰다잉의 한 방법으로 ‘나무 심기’를 제안했다. 물론 나무의사로서의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무를 심고 10년만 지나면 그 그늘 안에서 책을 읽고 쉴 수 있습니다. 여유 땅이 있다면 나무를 심어보길 권해요. 이때 내가 좋아하는 나무보다는 그 땅을 좋아할 나무, 내가 심고 싶은 곳보다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위치를 골라야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습니다. 나무의 생명력은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죠. 우리 세대의 손으로 키운 나무들이 먼 훗날 후손들에게도 위안과 지혜를 준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