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말하는 현명한 노후, “여생엔 ‘과학’하세요!”

기사입력 2025-01-16 08:48 기사수정 2025-01-16 08:48

[명사와 함께하는 북인북]이정모 前 국립과천과학관장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우리는 첫 번째만, 그것도 첫 번째 눈앞에 드러난 성공한 영웅만 기억하려고 한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는 것은 아폴로 1호부터 10호까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달 착륙 이전의 열 차례 탐험가들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아폴로 1호 우주인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280p

이정모 관장이 신간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를 펴냈다. 정신이 아득할 만큼 급격하게 확장되는 세계관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과학자와 시민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이야기를 빌려 답을 찾아보자.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어느 때보다 규모가 크다. 논의가 필요한 사회적 문제 역시 다양하다.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소식도 적지 않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떤 눈을 가져야 할지 혼란스럽다.

12년 동안 공립과학관 대표로 일하며 과학 대중화의 최전선에서 시민과 직접 소통해온 이정모 관장은 이럴 때일수록 ‘과학 문해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현상과 타인을 올바르게 대하기 위해서다. 과학 문해력은 복잡하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본질을 헤아리고 사고하는 기준을 ‘과학’으로 삼는 태도다. 단편적인 수치나 이론, 믿음직한 사람의 말에만 기댈 게 아니라, 과학적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다. 이 힘을 기르면 쏟아지는 뉴스와 쉽게 통용되는 상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관장의 신간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를 통해 매일 마주치는 택배 상자 때문에 쓰러지는 사람들, 주 4일제 도입, 일본의 오염수 방류와 해산물 수입, 인공지능 시대 기후 정치 등 다양한 정세를 과학의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다. 생활밀착형 소재로 풀어낸 유쾌하고도 날카로운 담론은 과학 문해력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그는 다사다난한 현실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과학적 태도로 행간을 이해하고 더욱 단단해지는 여정을 겪길 바란다. 책장을 넘기며 평소 생각지 않았던 일상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기회를 얻고 고정관념을 깨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이정모 관장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정모 관장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현실을 구별하는 눈

최근 매스컴을 통해 ‘포장된 담배라도 유해 물질이 방출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전국 95개 편의점에서 니코틴이 모두 검출됐다는 거다. 담배 진열대 근처의 공기 중 니코틴 농도 중앙값은 0.0908㎍/㎥. 발표에 따르면 편의점을 비롯한 담배 판매 장소에서 일하는 직원은 물론 그곳을 자주 방문하는 집단 역시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정모 관장은 이럴 때 숫자와 정보를 교차해 판단하고, 사안을 해석하는 과학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동생이 ‘기사를 접한 직원들이 갑자기 퇴사를 통보했다’며 답답해했어요. 진짜일까 의심이 들어 기사와 논문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따져봤습니다. 환산해보니 진열대 앞에 24시간 서 있으면 약 1.4㎍의 니코틴을 빨아들이는 셈이더라고요. 이 수치가 얼마나 치명적일까요? 우리가 흔히 먹는 토마토나 가지, 감자 등 여러 식물에도 니코틴이 들어 있는데요. 1.4㎍면 가지 14g 정도예요. 먹는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입이 채 안 되죠. 평소에 가지를 두세 개 먹었다고 니코틴에 중독될까 걱정하지 않잖아요. 그 연구와 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답은 이렇게 찾는 겁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0등성이니 5등성이니 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밝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무리 밝은 별이라도 멀리 있으면 어둡게 보이고,

아무리 어두운 별이라도 가까이 있으면 밝게 보이는 것이다.

(중략) 혹시 삶의 지표가 되는 북극성 같은 인물이 있는가?

사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저 나와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89p


어른에게 더 필요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등 개인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면서 각각의 입장에 따라 하나의 사안을 다르게 해석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갈등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 관장은 세대, 성별, 계층 등 집단 사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방책으로 과학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과학 문해력은 세상을 더 폭넓게 바라보고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해석이다.

“물론 과학이 진리는 아닙니다. 의심하는 방법이자, 의심에 대한 잠정적 답일 뿐이에요.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때마다 그 숫자나 지표는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북반구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이들,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인도양을 건너는 모험가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던 북극성도 시대에 따라 바뀌었어요. 플라톤 시절에는 코카브가, 그로부터 2000년 후에는 투반이 기준이 됐죠. 과학을 공통의 유연하고 합리적인 틀 정도로 설정하고 서로 눈높이를 맞춰간다면 명랑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슷한 맥락으로 이 관장은 나이 들수록 과거에 쌓은 경험치를 의도치 않게 절대 법칙처럼 여기는 순간이 잦아지기에 과학 문해력을 갖춘 소통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언젠가 내가 믿는 지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과학 문해력은 근거에서 시작하는 검증, 더 나은 의견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수용,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에서 생긴다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소통을 위한 과학적 노력

이쯤 되면 ‘구체적으로 내가 뭘 하면 되는 건지’ 궁금할 테다. 이 관장은 과학 문해력을 갖추고자 하는 이에게 과학자의 대화법을 참고하길 권한다. 1632년 출판된 실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책 ‘대화: 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지동설주의자 살비아티가 천동설주의자 심플리치오에게 ‘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모르겠다’며 대화의 물꼬를 튼다.

그 후로는 ‘정리-칭찬-공격-칭찬’의 흐름이다. 정리는 상대방의 뜻을 오해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고, 칭찬은 그의 업적을 깎아내리지 않는다는 인정의 표현이며, 그럼에도 공격할 요소가 있었고, 또 그럼에도 당신은 훌륭하니 같이 잘 해보자는 뜻이다. 이처럼 격조 있는(?) 대화는 비단 과학자만의 비법이 아니다. 더불어 그는 과학 이전에 문학과 친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학에서도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서다.

“타인을 설득하고 합의를 볼 때는 우선 근거와 지식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과학책에 충분히 담겨 있긴 하지만, 전문가의 언어로 기술돼 있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어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두꺼운 고전 도서를 억지로 읽다가 ‘역시 과학이랑 안 맞다’며 포기하지 말고, 문학책부터 펼쳐봐도 좋겠습니다. 독서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어제까지 좋았는데 왜 도망을 가는지’, ‘갑자기 왜 바람이 나는지’, ‘또다시 마음이 통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말 한마디에 깔린 기저를 읽고, 상상을 해야 하니까요. 물론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한 분들 정도의 시간, 지적 능력, 탐구력이라면 이미 독서력을 갖췄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명현 저)’이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심채경 저)’로 차근차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인생 2막, 3막이 열릴 거예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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